<colcolor=#fff><colbgcolor=#000> 前 스타크래프트 1, 2 프로게이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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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박경락(朴慶洛) |
출생 | 1984년 9월 19일 |
경기도 안성시 | |
사망 | 2019년 7월 29일 (향년 34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혈액형 | B형 |
가족 | 무매독자[1]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베드로) |
소속 | 한빛 스타즈 → IM |
주 종목 | 스타크래프트 |
종족 | 저그 |
ID | Junwi_[saM][2] → JunwiPrime → IMJunwiPirme[3] |
별명 | 공공의 적, 마사지 저그, 삼지안, 전지구적 재앙, 스2 악연류 원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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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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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Gyung-lak, Junwi_[saM] |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온게임넷 옵저버였다. 은퇴 이후에는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겸 게이머 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GSL 코드 A 옵저버를 담당하기도 했다.
2. 주요 기록
2.1. 개인 리그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
스타리그 역대 4강 진출자 |
- 2002년 2차 GhemTV 스타리그 준우승
- 2002년 KPGA 투어 4차 리그 16강
- 2002년 파나소닉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4위[4] (vs. 홍진호 1:3)
- 2003년 올림푸스 온게임넷 스타리그 4위[5] (vs. 임요환 1:3)
- 2003년 KT-KTF 프리미어 리그 초청
- 2003년 마이큐브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6] (vs. 박정석 3:2)
- 2003년 NHN 한게임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주목할 만한 것은 3시즌 연속 4강이었다는 것이다. 3시즌 연속 '4강 이상'을 달성한 게이머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딱 4강' 에서 멈춘 게이머는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물론 MBC GAME 스타리그까지 합쳐도 한명도 없는 진기록이었다.
2.2. 팀 단위 리그
- 2003년 계몽사배 KPGA 팀리그 4위
- 2003년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준우승
- 2003년 라이프존 KPGA 팀리그 준우승
- 2004년 neowiz Pmang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3위
- 2004년 LG IBM MBC GAME 팀리그 4위
-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우승
- 2004년 Tuscon MBC GAME 팀리그 4위
-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공동 3위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우승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4위
- 2005년 제1회 KeSPA Cup 준우승
3. 전적
박경락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vs 테란 | 29전 16승 13패 (55.2%) | 13전 6승 7패 (46.2%) | 42전 22승 20패 (52.4%) |
vs 저그 | 22전 10승 12패 (45.5%) | 6전 1승 5패 (16.7%) | 28전 11승 17패 (39.3%) |
vs 프로토스 | 17전 8승 9패 (47.1%) | 2전 1승 1패 (50.0%) | 19전 9승 10패 (47.4%) |
총 전적 | 68전 34승 34패 (50.0%) | 21전 8승 13패 (38.1%) | 89전 42승 47패 (47.2%) |
4. 특징과 경력
2002년 등장하며 날렸던 저그 유저 중 한 명이다. 홍진호, 조용호 등과 함께 ' 조진락'이라는 별칭으로 묶여 불리기도 했다.[7][8]주특기는 정신 없을 정도로 곳곳에 떨어지는 드랍으로, 이름과 조합된 별명인 경락 마사지 드랍은 아직도 그를 떠올리게 하는 별명. 특히 당시 세군데에 동시에 떨어지는 럴커드랍으로 수 많은 테란을 압살했던 모습은 항상 테란들에게 무참히 짓밟혀온 저그들에게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박경락은 이처럼 역상성 종족인 테란전에서 공격적이고 화려한 플레이를 자주 선보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2년 갑작스럽게 등장해 굉장한 실력을 선보였고, 언급한대로 특히 테란 유저들을 압살하면서 그 이름을 날렸다. 파나소닉배 스타리그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그 포스가 엄청났는데, 특히 테란전에서 그 스타일리쉬하고 강력한 경기력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8강 첫 경기에서 같은 저그유저인 홍진호에게 패했으나 테란 유저 베르트랑을 만나 특유의 동시 견제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1승 1패를 기록한 이후 당대 저그전 최강자 중 한명이었던 임요환에게 완벽하게 승리를 따내며 4강에 진출했다. 임요환 입장에서는 초반 치즈러쉬 이후 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패배했던 굴욕적인 경기였다. 김태형 해설에게 "지금까지 봤던 저그 중 가장 테란전이 완벽한 저그"라는 찬사를 받았다. 옆에서 엄옹이 이런 찬사에 수긍을 했을 정도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임팩트 있는 승리를 보여주긴 했지만 임요환, 이윤열, 서지훈에게는 천적 수준으로 매우 약했고 마찬가지로 최연성에게도 매우 약했다.[9][10]
물론 이는 이 선수가 테저전만 특출나게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프전도 의외로 수준급의 실력을 선보였으며, 이렇게 해서 얻은 별명이 공공의 적이다. 이처럼 박경락의 전성기 임팩트는 골수 저그 유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오래 되지 않은 팬들은 갸우뚱하겠지만 조진락 트리오 중에서 순수 기량만큼은 박경락이 최고였다라고 꼽는 올드저그팬들도 생각보다 많다.[11] 이재균 감독도 " 최초의 저그 우승자는 박경락이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부종족으로는 테란을 자주 플레이했다. 마이큐브 스타리그 4강에서 박용욱을 만나 패러독스가 걸리자 테란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패배.[12]
문제는 게임 양상 특성상 주특기인 드랍이 거의 불가능한 저저전에 고질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던 저막이었다는 거고[13], 그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자원 활성화가 되어 물량을 뽑아낼 수 있는 시점이 되면 특유의 경락 마사지로 이곳저곳 몰아치는 스타일이라, 그 이전 타이밍에 약점이 있었다. 결국 파나소닉 스타리그과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조진락의 다른 멤버인 조용호와 홍진호에게 4강에서 연달아 패퇴했고,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는 프로토스인 박용욱을 만나 드디어 결승에 오르는가 했지만 박용욱의 하드코어 질럿러쉬에 어처구니없이 무너지며[14] 3연속 4강에 그치고 말았다.[15] 그리고 그 다음 리그인 NHN 한게임배에서 재경기 끝에 8강에 진출했으나 역시 저그인 박태민, 변은종에게 패하면서 탈락하고 만다.[16] 이어지는 듀얼 토너먼트에서 1경기에서 김정민에게, 패자전에서 변길섭에게 패배하며 탈락한다.
이후 이런저런 이유[17]로 연습량이 떨어지면서 팀을 나가니마니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중간 프로리그에선 한빛 스타즈의 광안리 우승 선봉장 역할까지 했으나, 개인리그에선 다시 저때의 포스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 특히 2004 프로리그 1라운드 결승전 2주 전에는 과일가게를 운영하며 자신을 키워주신 홀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쓰러지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18]
그러다가 서바이버 리그 예선을 통과하며 올드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역시나 시간의 무게는 무거웠다. 곰TV MSL 시즌1 서바이버에서 이학주와 이병민을 잡고 진출전에 직행했으나 이재호에게 패하고 2라운드에서 변형태에게 무너졌고, 곰TV MSL 시즌3 때는 임요환의 서바이버리그 포기로 한번만 이기면 MSL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안상원, 박대경에게 연이어 패하며 탈락했다. 이후 손목 부상까지 겹쳐 결국 2008년 조용히 프로게이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온게임넷의 옵저버로 활동했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2010년 8월 29일, GSL 시즌1 본선에 진출했다. 세팅 때문에 경기를 연기하고도 김경수[19] 선수에게 2:0으로 무난하게 발리고 탈락해서 까였다. 이후 시즌2에서는 아예 예선도 못뚫었다. 예선을 광탈시켜준 게 참고로 김경수.
2011년 1월 31일, 스타크래프트 2 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
GSTL Feb. 결승에서 나도현 선수에게 패했다. 하여튼 팀은 이겼다.
2011년 가을 스타크래프트 2 협의회가 해체되면서 게이머 협의회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코드A 예선을 뚫는 것도 시원치 않자, 이듬해인 2012년에 조용히 은퇴했다. 그리고 곰TV에 입사해 HOT6 GSL Season 1부터 코드A 게임연출(옵저버)을 맡았다.
5. 갑작스런 사망
GSL 옵저버를 그만 둔 이후 별다른 근황이 전해지지 않다가[20], 2019년 7월 29일에 본인상으로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 자세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지인 및 e스포츠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고 전해졌다. # 발인은 7월 31일[21][22]에 이루어졌으며, 이 소식을 접한 수많은 스타 팬들은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애도를 표했다.그의 빈소에는 현재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고 있는 옛 동료이자 후배인 김명운, 임진묵, 김승현이 조문하러 갔다고 그들이 언급했으며, 임진묵의 말로는 김인기도 조문했다고 한다. 또한 같은 팀에 속했던 강도경[23]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추모의 글과 고인이 안치된 곳을 안내해주었고, 박경락과는 다른 팀이었지만 동갑내기였던 이윤열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비통하고 허망하다는 추모의 메세지를 남겼다. 이밖에 해외 커뮤니티인 팀리퀴드에서도 추모의 글이 올라왔다.
특히 이 날은 박경락의 이름이 네이버와 카카오 실시간 검색어에 꽤 오랫동안 상위권을 점하면서 그를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보여주기도 했다.
6. 기타
- 한빛 스타즈의 올드 게이머인 만큼, 이재균 감독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후반기부터의 재기에도 이재균 감독의 힘이 많이 보태졌다고 하며, 온게임넷 옵저버 자리에 들어갈 때도 이재균 감독의 주선이 있었다고 한다.[24]
- 박경락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맹위를 떨쳤던 3대토스 게이머 중에서도 강민과 박정석에게 유달리 강했었다. 강민과는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이 5:1로 크게 앞서고, 박정석에게도 상대전적이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이 8:3으로 크게 앞섰다. 다만 박용욱에게는 매우 약했다.[25]
[1]
과일가게를 운영하던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아버지에 관해선 알려진 게 없다.
[2]
삼국지에 나오는 그
전위가 맞다.
[3]
프라임을 치려 했는데 오타로 피르메가 되면서 결국 별명까지 피르메가 되어 버림.
[4]
4강에서
조용호에게 2:3 패배
[5]
4강에서
홍진호에게 0:3 패배
[6]
4강에서
박용욱에게 0:3 패배
[7]
이후 '양박' 시대로 일컬어지는 저그의 전성기는 '
변태준'(
변은종+
박태민+
박성준)의 시기, 최근까지 이어지는 저그의 부흥기인 '
마준동'(
마모씨+
김준영+
이제동)의 시기와 스타의 황혼기를 장식한 '
이제동 +
3김저그'(
김정우+
김윤환+
김명운) 시기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네 시기 모두 한 명이 상대적으로 커리어가 달린다.
[8]
개인리그 커리어는 4강이 최대인 박경락이 조진락 중 가장 떨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팀 리그 커리어는 조진락 중 박경락만이 유일하게 우승경험이 있다.
[9]
임요환에게는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 4:8, 이윤열에게는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 3:10, 서지훈에게는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 8:12로 밀리고 최연성에게는 단 한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상대전적 0:3으로 매우 약했다.
[10]
그 외에
전상욱에게도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 2:4로 매우 약했다. 반대로
김정민과는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 3:3으로 호각이었고, 한빛 시절 같은 팀 동료였던
변길섭과는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 6:6으로 호각이었고, 마찬가지로 한빛 시절 같은 팀 동료였던
나도현과도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 2:2로 호각이었다. 거기에
한동욱에게는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 5:2로 천적 수준으로 크게 강했고,
이병민과도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 1:0으로 앞서있다.
[11]
조용호의 기량에 대한
재평가가 너무 먼 훗날에 이루어 져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어쨌든 전성기 시절 박경락은 정말 강했다.
[12]
패러독스 맵을 보면 알겠지만, 저그로는 이길 수가 없다.
[13]
통산 저그전으로 보자면 그리 약한 건 아니었지만, 당대에 같이 경쟁했던 최상위급 저그, 즉 홍진호와 조용호에게는 한없이 약했다.
돌아온 뒷담화 울산투어편에서
엄옹이 저그전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던 김명운을 인터뷰하면서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
[14]
3경기가 그 유명한
패러독스인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그걸 감안하고라도 1,2경기에서 힘 한번 못 써보고 무너졌다. 특히나 2경기는 박용욱이 박경락의 본진 입구를 질럿으로 봉쇄하고 거의 감금조교하다시피 하며 관광당했다. 프로토스가 저그를 역대급으로 관광보낸 경기이다.
[15]
정확히 말하면 파나소닉에서는 조용호에게 4강 2:3 패배, 3위 결정전에서 홍진호에게 1:3 패배로 4위를 했으며 올림푸스에서는 4강에서 재회한 홍진호에게
0:3 패배로 탈락하였다. 몇번 치르지도 않은 5전제 중에서 조진에게 5전제 사이클링 패배를 당할 만큼 이 2명에게 약했던 것. 이 정도면 저막으로 취급받아도 어쩔 수 없다.
[16]
변은종은 이때 박경락을 꺾고 첫 스타리그 진출만에 4강에 올랐으나 그 이후 그 역시
락라인 후배 회원이 되는 것에 그치고 만다.
[17]
카더라에 따르면 3번이나 결승 문턱에서 좌절한 이 성적 때문에 벽을 느낀 나머지 자존심과 자신감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
다행히 결승전 자체는 출전해서 승리했다.
[19]
리갈마인드.
[20]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사망 1년 전에는 자동차 딜러로 일했다고 했으며, 자동차 딜러를 그만둔 후에는
팬택 출신 김상우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채용 공고글에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
[21]
여담으로 이 날은 스타크래프트 2에 나오는
도니 버밀리언의 성우인
박일이 세상을 떠났다.
[22]
참고로 다음 날에는 같은 스타즈 팀의
김민철이 입대하였다. 다만 김민철은 박경락이 은퇴한 뒤에 데뷔해서 접점이 없다.
[23]
특히 강도경은
kt 롤스터 코치 시절
우정호를 백혈병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24]
다만 이재균 감독은 그가 사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핀 사건으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다.
[25]
사실 상대전적은 비공식전 포함 상대전적이 5:7로 크게 밀리지 않고, 저그와 프로토스전 전적은 5:6이다. 문제는 박용욱이 우승을 차지한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16강과 4강에서 4번 만나 모두 무너졌다. 또한 박용욱의 7승 중 1승은 박경락이
패러독스에서 테란을 플레이한 것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박경락이 저경기에서 테란을 고른 것도 이해되는 것이 애초에 당시 맵인
패러독스 자체가 1버전과 2버전 합쳐서 저그가 무려 프로토스에게 1:8로 패한 전장이었다. 그래서 테란을 선택한 것도 어느 정도 합당한 결정이었다. 다만 한빛에서 한솥밥을 먹던 시절 팀 내에서는 박경락이 우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