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6 02:21:10

경질


1.

Fire, Sack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한다는 뜻으로 공무원이나 스포츠 관련 지도자가 제대로 실적이나 성적을 내지 못할 때 자르는 것을 주로 경질이라고 칭한다. 이 외에 일반적인 기업이나 실생활에서는 보통 해고라 표현하며 경질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편이다.

보통 경질이라는 말을 쓸 때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데 그 계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잘라버리는 행위를 지칭한다. 다만 서류상 계약기간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사람만 잘라버렸기 때문에 잔여 계약기간에 대한 연봉을 지급해주는 것이 일종의 관례다. 한 예로 전 첼시 FC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디 마테오는 2012년 첼시에서 경질된 후 원래 계약 기간인 2014년까지 매주 약속된 주급 약 2억씩을 고스란히 받았다.

경질과 사임은 차이가 있는데 경질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잘렸을 때 쓰는 말이고 사임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스스로 떠나는 것이다. 스포츠에서 특정 팀의 감독이 시즌 중 중도 사임을 발표했을 때 구단에서는 남은 계약 기간의 연봉을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1990년대에도 경질이라는 표현은 스포츠뉴스 등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예를 들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네덜란드전 대패의 책임을 물어 차범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전격 경질했을 때가 대표적 용례였다. 2010년대 들어서도 경질이라는 표현은 스포츠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스포츠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 감독을 경질하라!" 등의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진 것이 경질 용례 확대의 요인이 됐다.

어쨌든 경질이라는 단어는 종목을 불문하고 모든 스포츠 팀의 감독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단어이다. 감독의 경우 경질이라는 단어를 주로 쓰지만 코치가 팀을 떠날 때는 보통 경질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코치는 아무래도 감독과 구단의 지휘 아래에서 움직이고 코치 본인이 물러나지 않는 이상[1] 계약기간을 그대로 지키는 편이기 때문에 재계약 불가 등의 단어를 쓴다.

한국 스포츠계에서는 의외로 명목상 경질의 케이스는 많지 않으며 대외적으로는 자진 사퇴, 상호 해지라고 포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질인 경우가 많다. 자진사퇴하기로 했지만 잔여연봉은 보전해준다거나[2] 다른 보직으로 이동시켰다거나[3] 했다면 사실상 경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경질’ 단어가 아예 없는건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2019년 포항 스틸러스 최순호, 2021년 강원 FC 김병수, 2022년 NC 다이노스 이동욱, 부산 아이파크 히카르두 페레스, 202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병근, 2023년 강원 FC 최용수, 2023년 SSG 랜더스 김원형 감독 경질이 있다. 2023년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유도훈 감독은 계약 해지라는 단어를 썼다. 보통 대놓고 경질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구단과 감독 사이가 심각할 정도로 틀어졌거나 감독이 심각할 정도로 못 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감독이 경질당하면 그 경질당한 감독 본인의 자존심에도 금이 가거니와, 감독이 경질당한 팀도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종종 감독 경질 효과로 경질 직후 성적이 향상되는 팀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첼시 FC.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인내심이 부족해 한 시즌만 못하면 감독을 잘라버리지만 어떻게 소방수로 구한 감독들이 기적적으로 챔스 우승을 달성하거나, 첫 시즌에 구단 레코드를 세우면서 리그를 평정하는 등 천운이 따라 주는 편이다. 또, 2018년 12월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제 무리뉴 감독도 성적 부진과 선수들과의 불화로 경질되고 나서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임시감독으로 부임했는데 언제 부진했냐는 듯 부임하자마자 9연승을 달리고, 순위도 첼시, 아스날을 제치고 4위로 올라가는 등 엄청난 성적 향상을 보였다. KBO 리그에서도 2011년 SK 와이번스가 김성근 감독의 전격 경질 이후 팀 안팎으로 대혼란을 겪으면서 시즌을 3위로 마감했으나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에서 연전연승을 기록하며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당연히 경질을 당하면 구단도 계약을 지키지 않은 것이니 욕을 먹지만 감독 커리어에는 치명적이다.

승강제 리그를 운영하는 종목의 감독들은 어떻게든 강등을 막아야 하는 하위권 팀들의 사정상 매 시즌마다 몇 명씩은 반드시 짐을 싸게 된다. 특히 이적 시장이 정해져 있어서 트레이드 등으로 팀 분위기를 바꿀 수 없는 축구계, 야구계의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감독 경질이 종종 선택된다.

공무원들이 기피하는 상황이기도 한데 경질로 나가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 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징계를 받거나 경질되기 전에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나가려고 한다. 커버가 되는 경우에는 사표가 수리되지만, 대놓고 잘못이 있는 경우 경질 내지는 해촉이라는 말이 대외적으로 나간다.

한편 공무원 중 판사의 경우가 조금 특이하므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여러 소송절차법에서 규정한 소송절차의 갱신 사유로 '법관의 경질'을 들고 있는데, 이때의 경질이란 위와 같은 부정적인 사례가 아닌 단순한 법관 인사에 따른 재판부 구성원의 변동을 말한다.

대체로 이때 재판장은 "법관(재판부, 판사 등 재판장의 취향에 따라 호칭이 다를 수 있음)의 경질이 있어 변론을 갱신합니다." 등의 발언으로 종전 변론 진행 내용을 갈음하는데, 이때 법률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이 오해해 잘못된 용기를 갖는 일이 생기곤 하므로 주의하도록 하자.

2.

단단하고 굳은 성질. 반대말 연질(軟質)이다.

예시로 경질 토기의 반댓말은 연질 토기.


[1] 김성근 감독이 2011년과 2017년 각각 SK 와이번스 감독과 한화 이글스 감독에서 경질됐을 때 소위 '김성근 사단'으로 분류됐던 코치들도 팀을 떠났다. 계약기간 도중 코치가 스스로 직위를 내던진 흔치 않은 케이스다. [2] 원칙적으로 자진사퇴라면 구단은 잔여연봉을 보전해줄 의무가 없다. [3] 이럴 경우 총감독, 고문, 기술자문 등 보통 실권이 없는 명예보직으로 이동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