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6 08:58:53

오카지마 히데키

오카지마 히데키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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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1992~2005).svg 파일:2006닛폰햄우승.pn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6.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00 20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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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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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지마 히데키
[ruby(岡島, ruby=おかじま)][ruby(秀樹, ruby=ひでき)] | Hideki Okajima
출생 1975년 12월 25일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3년 드래프트 3순위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4~2005)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6)
보스턴 레드삭스 (2007~201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2)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201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4)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5)

1. 개요2. 선수 생활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성적5. 여담6. 관련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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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미국과 일본에서 오랜 기간 좌완 불펜 투수로 활약해왔다.

2. 선수 생활

2.1. 요미우리 자이언츠~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히가시야마 고등학교 졸업 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3순위로 지명받아 프로에 입성한다. 첫 2년동안은 거의 2군에서 담금질을 하다가 데뷔 3년차인 1997년에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1] 4승 9패 평균자책점 3.46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다음 해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불펜으로 보직을 옮기게 된다. 1999년 4승 1패 평균자책점 2.97으로 불펜에서 자리잡았고 2000년에는 다리 부상으로 시즌을 접은 마무리 투수 마키하라 히로미를 대신해 임시 마무리를 맡아 7세이브를 기록, 데뷔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에 뽑혔고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다. 2001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고정되어 25세이브를 기록하며 2년 연속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했지만, 2002년에는 마무리 자리를 카와하라 준이치에게 내주고 셋업맨으로 보직을 이동했다. 이후에도 주축 불펜으로 활약하긴 했지만, 특급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고 2006년 개막전을 앞두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트레이드된다.

닛폰햄에서도 마이클 나카무라[2]의 뒤를 받치는 셋업맨[3]으로 나섰는데, 2승 2패 4세이브 20홀드 평균자책점 2.14의 호성적을 거두며 팀의 44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2006년)에 기여했다. 그리고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오카지마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2+1년 계약을 맺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선언한다.

2.2.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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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첫 해, 보스턴 팬들의 관심은 같은 해 입단한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쏠려있었고 염가로 데려온 오카지마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마쓰자카 말동무 하라고 데려왔냐는 농담도 있었다 하지만 오카지마는 기대 이상의 맹활약을 펼치면서 조나단 파펠본 등과 함께 팀의 핵심 불펜으로 자리잡았고,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에도 선발되었다! 또한 이달의 신인상도 한번받고 신인왕 투표에서도 표를 받았다. 시즌 성적은 3승 2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2.22. 더불어 포스트 시즌에서도 2.40의 ERA를 기록하면서 팀의 2007 월드 시리즈 우승에도 공헌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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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자카와 함께

이후 2008년에는 3승 2패 평균자책점 2.61, 2009년에는 6승 0패 평균자책점 3.39로 좋은 성적을 이어나갔으며 시즌 종료 후 팀과 1년 연장 계약을 맺었으나, 2010년에는 부상 등으로 슬럼프에 빠지며 4승 4패 평균자책점 4.50으로 메이저리그 입성 이후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시즌이 끝난 후 다시 1년 계약을 맺었지만 시범경기에서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트리플 A 포터켓에서 시즌을 출발하게 된다. 포터켓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콜업 기회는 쉽게 나지 않았고, 결국 메이저리그에서는 7경기에 등판하는데 그쳤다.

시즌 후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며 계약이 취소되었다.

2.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12시즌을 앞두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1년 계약을 맺으며 일본프로야구에 복귀했다. 56경기에 등판해 9세이브 24홀드 평균자책점 0.94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시즌 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재도전 의사를 밝혔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다.

2.4.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시절

시범경기에서 영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트리플 A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5월 중순에 메이저리그로 올라왔지만 5경기에만 등판한 뒤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고, 시즌 후 팀에서 나오게 된다.

2.5. 일본 재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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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시절

2013년 말에 소프트뱅크에 입단하면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고, 2014시즌 4승 4패 27홀드 평균자책점 2.11을 기록하며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재계약은 하지 않았고, 시즌 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계약을 맺었다. 스프링캠프에서 다리 부상을 입는 바람에 6월에야 1군으로 올라왔는데, 6월 11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마쓰이 가즈오에게 만루 홈런을 얻어맞으며 패전투수가 되었고 다음 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15시즌 성적은 10경기 등판 2패 2홀드 평균자책점 8.59. 시즌 후 요코하마에서 방출되어 FA 신분이 되었다.

2.6. 다시 미국으로

2016년 2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마이너리그 캠프에서 5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지만 시즌 전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본인은 나이가 걸림돌이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3.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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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기준으로 포심의 평균 구속은 140km/h 안팎, 최고 구속은 145~147km/h 정도에서 형성되었으며 변화구로는 포크볼, 체인지업, 커브를 구사했다. 일본 시절에는 낙차 큰 커브를 결정구로 구사했으나 메이저에서는 공인구가 미끄러운 관계로 커브를 구사하기 어려웠고 우타자에게 효과적인 구종도 추가할 겸 해서 체인지업을 연마해 결정구로 사용했다.[4]

극단적인 오버핸드 스로 투구폼을 가지고 있는데,[5] 사진과 영상에서도 보이듯이 공을 손에서 놓는 순간 고개를 완전히 돌려버린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나 미국에서나 저렇게 던지면서 어떻게 스트라이크를 넣는지 모르겠다며 신기해하는 반응들이 많았다.[6][7] 이 조합이 어필했는지 메이저리그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며 최고의 원 플러스 원 상품이라는 평을 받았고, 사이토 다카시, 오츠카 아키노리와 더불어 '일본산 불펜투수는 로또로 긁어볼만 하다'라는 좋은 선례를 남긴 선수가 되었다.

4. 연도별 성적

4.1. NPB

파일:NPB 로고.svg 오카지마 히데키의 역대 NPB 기록

4.2. MLB

파일:MLB 로고.svg 오카지마 히데키의 역대 MLB 기록

5. 여담

  • 2001년에 아나운서 쿠리하라 유카와 결혼, 슬하에 세 아이를 두고 있다.

6. 관련문서



[1] 1997년 당시 요미우리는 사이토 마사키, 발비노 갈베스 원투펀치에 부상에서 돌아온 쿠와타 마스미 마키하라 히로미로 이어지는 철벽 선발진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에이스인 사이토가 부상 때문에 규정이닝도 채우지 못했고, 새로 합류한 외국인 타자들까지 폭망하면서 팀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여담으로 이 때의 외국인 타자들 중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KIA 타이거즈의 첫 타자 용병이던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가 있었다. [2] 일본-호주 혼혈 투수로 호주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3] 당시 닛폰햄의 필승계투진은 타케다 히사시/타테야마 요시노리-오카지마 히데키-마이클 나카무라의 앞자를 따서 'TOM' 라인으로 불렸다. [4] 스프링캠프에서 에이전트의 주선을 통해 좌완 체인지업의 대가로 당시 한창 주가를 달리던 요한 산타나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5] 박정진의 투구폼과 흡사하다. [6] 요미우리 시절 팀 동료이던 마쓰이 히데키도 미국에서 오카지마와 재회하고 어떻게 컨트롤이 저렇게 좋아졌는지 의문을 표했을 정도. 이에 대해 본인은 던질 곳을 보고, 나중에 고개를 돌린다고 답하였다. [7] 선동열의 일본 진출로 대한민국에서 일본 프로야구를 방영해줬는데 해설자가 요미우리 시절 오카지마의 폼을 보고 저폼으로는 절대 살아남기 힘들다고 악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