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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연방조약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소련의 구성국이었으나 마찬가지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에서도 소련 붕괴와 같은 상황, 즉 구성 주체들의 독립, 이탈이 일어나 연방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3]로 러시아 연방정부와 연방주체 간에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에서 러시아 연방정부는 러시아 연방의 구성 주체를 규정하고 각 연방주체는 러시아 연방의 구성 주체로 잔류할 것과 이에 따른 권한, 의무, 관할권 및 타 연방주체와의 상호 관계를 규정했다. 조약 체결 이후 1978년판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4]에 조약이 명시됨으로써 러시아 연방의 구성 주체가 성문화되었다. 즉 연방국으로서의 러시아의 국체의 근간이 되는 아주 중요한 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2. 내용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3. 결과
빨간색 부분은 거부, 초록색 부분은 승인이다. 타타르스탄 공화국,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제외한 모든 연방주체가 조약을 승인하고 러시아 연방에 잔류 의사를 보였다.
4. 반대 국가 (조약 거부)
타타르스탄 공화국 |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4.1. 타타르스탄 공화국
공고 타타르스탄 공화국 국민투표에 관해 1992년 3월 21일 귀하는 타타르스탄 공화국이 주권 국가이며, 국제법의 주체이며, 러시아 연방과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관계를 맺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
러시아 연방 귀속 조약 체결 직후 타타르스탄 공화국 대통령 민티메르 샤이미예프와 러시아 연방 대통령 보리스 옐친 |
4.2.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또한 1990년 주권선언을 한 자치공화국들 중 하나였지만, 1991년 8월 쿠데타의 영향을 받은 체첸에서의 봉기로 인해 공화국 최고 소비에트가 퇴진하고 조하르 두다예프의 체첸 국민회의가 체첸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1991년 말부터 체첸-인구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과 인구셰티야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즉 연방조약 체결 당시 체첸-인구시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행정구역이었으며 체첸-인구시 최고 소비에트는 이미 해체된 상태였기 때문에 조약에 서명할 공화국의 실체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4.2.1. 체첸 공화국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은 연방조약을 무시로 일관했고 결국 이는 1994년 제1차 체첸 전쟁으로 이어진다.4.2.2. 인구셰티야 공화국
인구셰티야 공화국은 러시아 연방조약에 거부 의사를 드러낸 적이 없으며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원한 적도 없었다. 이것은 인구시인의 민족감정과도 관련이 있는데, 체첸인이 아니라 오세트인에 대한 민족감정이다. 1944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캅카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추방할 때 인구시인들이 추방당했는데, 다시 돌아올 때에 블라디캅카스를 포함한 원래 인구시인 땅을 오세트인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시는 1991년 러시아가 소수민족 보호법을 통과시키자 러시아 연방에 가입해 러시아가 북오세티야로부터 땅을 되찾아주기를 바랐고[8] 1991년에 이미 이를 찬성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압도적인 찬성을 받았다. 그러면 연방조약 당시에 체첸 공화국에 종속된 상태였기 때문에 조약에 참여할 수 없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체첸 국민회의와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은 인구셰티아의 분리를 허용했다. 그러면 체첸을 제외한 인구시 공화국이라도 따로 연방조약에 참여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애초에 러시아는 자국의 행정구역인 체첸-인구시를 분리한 적이 없었고 만약 러시아가 체첸과 인구시의 분리를 인정한다면 결국 체첸의 독립을 인정해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9] 러시아는 체첸-인구시 전체가 조약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해 버렸다. 그러나 결국 체첸과 인구시의 분리를 인정하고 1992년 6월 인구시만 따로 러시아 연방으로의 가입을 승인하면서 러시아에 귀속되었다.
[1]
당시까지 존속하던 일부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ASSR)들은 1990년 주권 선언을 통해 '자치'를 명칭에서 삭제하여 기존 소련 구성국들과 동등한 지위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SSR)으로 변경된 상태였음을 일러둔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2]
사실상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
[3]
이미 체첸 공화국은 1991년
8월 쿠데타 직후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상태였다.
[4]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전까지 소련 헌법이 운용됐다.
[5]
압하스 ASSR,
체첸-인구시 ASSR,
코미 ASSR,
마리 ASSR,
야쿠트 ASSR,
바시키르 ASSR,
다게스탄 ASSR,
칼미크 ASSR,
카렐리야 ASSR,
북오세티야 ASSR.
[6]
이러한 옐친 정부의 달래기 정책은 자치공화국에 대한 지나친 특권 남발로 이어져 옐친 시기 타타르스탄과 바시코르토스탄은 외교권이, 기타 일부 공화국들은 자원에 대한 독점적 무역까지 허용되었을 정도이다.
[7]
어차피 독립을 한다고 한들 국경 지대에 있던 체첸과 달리 사방이 러시아로 둘러싸여 있어 러시아와 협력하지 않는 한 말라죽을 수밖에 없었다. 주권국가연맹 내부에서 러시아로부터 독립해 봤자 행정 구역 간의 독립이지만, 독립국 간에는 국경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8]
결과적으로는 땅을 되찾지 못했고
블라디캅카스는 현재
북오세티야-알라니야 공화국의 수도이다.
[9]
1992년 5월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체첸-인구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체첸-인구시 공화국으로 개명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