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6 10:59:25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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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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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언어4. 종교5. 유명인6. 관련 기사7. 관련 문서

1. 개요

에스토니아어: Eesti venelased
러시아어: Русские Эстонии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또는 러시아계 후손들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러시아 제국 시절 이주한 사람들 및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 이주한 사람들이 주가 되었으며 소련 붕괴 후 대다수는 무국적자로 전락하였다. 상당수가 무국적자인 이유로 통계에는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지만 2021년 기준으로 에스토니아 총 인구의 23%인 31만명이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이다. 1989년에 최고치인 47만명을 기록했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걸쳐 급속히 감소하여 2011년에는 32만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에스토니아인보다 낮은 출산율과 낮은 평균 수명이라는 악재에도 30만명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어서 안정된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이 탈린이나 이다비루 주 일대의 나르바 등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데 상당수의 에스토니아인과는 달리 러시아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에스토니아에서 다른 고세서는 다 철거해 버린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이 유일하게 2022년까지 남아 있었던 도시가 나르바일 정도였으며 소련 시대 상징물들을 일부러 떼지 않고 남겨두기도 했다. 다만 러시아로 이주한 러시아인들이 많다고 해도 러시아의 국민소득과 복지 수준이 에스토니아보다 평균적으로 뒤떨어지는 편인지라 아직도 불편을 감수하고 에스토니아에서의 삶을 고수하는 러시아인들 및 아예 에스토니아로 돌아온 러시아인들도 있는 편이고 러시아 본국의 러시아인과는 약간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 역사

제정러시아 통치 시기와 마찬가지로 소련 시기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양국 러시안 디아스포라는 다양한 이념, 계급, 직업, 문화 정체성을 가진 매우 혼종적인 구성을 보였다. 집단 내 차이와 분화의 정도는 제정러시아 시기보다 훨씬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소련 합병기 발트지역 내 러시안 디아스포라는 다음의 다섯 가지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그룹은 러시아에서 파견된 공산당 통치엘리트 및 발트 주둔 군대 장교 및 일반사병 등의 군인들이다. 여기에는 퇴역 후에 발트 지역에 남은 장교와 군인도 포함되는데, 이들은 발트국 정착 후 본토의 가족, 친척들을 데려옴으로써 일종의 '이민 체인(immigration chain)'을 형성했다. 이들은 ‘해방자’로서의 소련 이념에 충실하며,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린집단이다.

두 번째 그룹은 노보탈린스크나 벤츠필스 항구, 올라인의 화학단지, 리가의 포포프 플랜트 등 국가 기반산업에 종사한 건설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러시안 디아스포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또 가장 늦게 이주한 이들이기도 하다. 특히 러시아의 가장 가난한 지역 거주자들이 주로 채용되었다. 첫 번째 그룹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가족이나 친척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규모 국가산업에 종사하기에 정착과 동시에 집이 주어지고 높은 임금을 받는 등의 혜택을 누렸다.

세 번째 그룹은 엔지니어, 의사, 교사, 연구원, 연극계나 언론계 종사자, 고숙련 노동자 등 전문가 집단이다.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 오데사 출신의 지식인으로, 특히 엔지니어나 연구원, 고숙련 노동자의 경우, 위에 열거한 국가기반산업을 이끄는 최고기술자로 발트 지역의 전문적, 기술적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이들과 더불어 의사나 교사, 문화계 종사자들은 소련 전체에 구축된 전문가 고용 시스템을 통해 발트국에 정착하게 된 일종의 ‘다국적 소련 지식인(multinational Soviet intelligentsia)’에 해당한다.

네 번째 그룹은 창조적 인텔리 러시아인들로 이들의 발트국 이주는 일종의 정치적, 이념적 망명에 해당한다. 이들 중에는 소련의 제5열(пятаяколонна)12)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에서 찾지 못하던 일자리나 사회적 인정을 이주를 통해 얻기도 했다. 러시아 이민자 중 수적으로는 가장 적었지만 가장 권위 있는 그룹으로 토착민족에게도 높은 존경을 받았다. 로트만(Ю. Лотман), 예고로프(Б. Егоров), 사모일로프(Д. Самойлов) 등 러시아의 저명한 인문학자, 작가 등이 여기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그룹은 2차대전 전, 또는 혁명 전부터 발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다. 17세기 발트지역으로 대량 탈주한 러시아 구교도의 후손이 대표적으로, 거의 토착민이나 다름없이 세대에 걸쳐 이 지역에 살아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러시안 디아스포라 중 거주국과 통합의정도가 가장 높으며 수적으로도 다수에 속한다. 이들은 러시아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보존하면서도 토착어에 능숙하고 거주국 문화에 익숙하며 이를 존중했다. 1930~40년대 스탈린의 대반동 시기 이 그룹은 발트인들과 함께, 때로는 그들보다 먼저 탄압 당했다(Simonian 2004, 67 74).

제1, 2 그룹이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현지인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데 반해, 나머지 세 그룹에 대한 현지인의 태도는 우호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이었다.
역전된 소수자: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사회의 러시안 디아스포라 연구

소련 합병 이전까지 에스토니아에서 살던 러시아인들은 주로 중근세에 유입된 독일인들이 러시아화된 발트 독일인들이 주류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에스토니아 내 발트 독일인들은 대부분 추방 혹은 학살당하고 그 빈자리를 소련 각지에서 온 소련인들이 채우게 되었다.

에스토니아 제1공화국이 독립하기 직전 에스토니아의 러시아계 인구는 약 7% 정도에 불과하였으나 소련 붕괴 2~3년 전에 해당하는 1989년 기준으로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인 인구는 30.3%, 러시아어 사용 인구는 약 35%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에스토니아인들이 사용하던 에스토니아어는 계속 실생활에서 사용하기는 했고 1970년대~1980년대부터는 러시아인 학교에서도 에스토니아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기는 했지만 에스토니아어의 문법이 난해해서 배우기 어렵고[1] 그렇다고 실용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때문에[2] 러시아인들은 관심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에스토니아어를 열심히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에서도 에스토니아어는 양층 언어의 하위언어가 되어나갔지만 이런 상황은 소련 붕괴 후 후술하는 언어 문단에서 보듯 급반전되는데...

소련 붕괴 직후 당시는 극심한 사회 혼란/경제 파탄으로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인들이 굳이 러시아로 돌아갈 만한 이유는 없었고[3] 무국적자인 상태 그대로 에스토니아에 사는 상황이 수십년 째 이어지는 기묘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렇게 무국적자가 된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는 가능하지만 여타 해외 왕래는 일반 에스토니아 시민에 비해 어렵다. 2010년 7월 2일 인구조사 기준 에스토니아 주민의 84.1%가 에스토니아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8.6%가 다른 국가(주로 러시아)의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고 7.3%가 무국적자로 조사되었다. 2015년이 되면 무국적자의 비율은 6.8%로 감소하였다. 다만 아직까지도 에스토니아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러시아인들은 많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러시아어를 할 줄 알면 취업이 그리 어렵지 않다.[4]

오늘날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들의 이권 및 권리를 대변해 주는 정당으로는 에스토니아 중앙당이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서 긴장감이 높아진 데다 러시아계 주민들도 러시아 언론매체와 현지 언론매체간의 논조가 다르기 때문에 여론이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에스토니아 정부가 반러 정책을 실시하면서 민족갈등이 생겨날 조짐도 보이고 있다. #1 #2 타르투 대학교는 러시아인의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5]

에스토니아에서는 에스토니아인들의 출산율이 2명에 근접하는 데 반해 러시아인들은 출산율이 다소 낮은 편이라고 한다.

3. 언어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에스토니아는 이웃한 라트비아와 마찬가지로 자국에 거주하던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등등이 에스토니아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소련 시절 에스토니아 현지인이 아닌 사람들 중 에스토니아어에 능숙한 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 결과 소련 붕괴 당시 에스토니아 내 비에스토니아인 대다수는 그대로 무국적자로 전락하였다. 1992년 에스토니아 인구 중 32%가 무국적자가 되었던 바 있었다. 출처[6]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인 관련해서 종종 지적되는 점이 있는데 러시아인 디아스포라의 민족적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이나 벨라루스인, 체첸인 등등을 포함하는 '러시아어는 할 줄 알지만 에스토니아어는 못 하는 구소련 출신 여러 이주민'들이 모조리 러시아계로 분류되곤 한다'는 점이다. 즉 과거에 소련 시민이었던 다양한 민족들 중 에스토니아어 원어민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러시아계”라는 범주에 묶이곤 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출생한 사람들이 에스토니아어를 배우고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 사회는 30여 년 전 에스토니아 독립 직후와 비교하여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인 중 많은 이들이 러시아어와 문화와의 연계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특히, 50세 이상의 러시아인들, 즉, 소련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 중에서 83% 이상이 이러한 연대감을 표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젊은 세대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어와 문화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윗세대와는 달리, 젊은 러시아인들의 언어 및 문화정체성은 모국과의 강한 애착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때 노동시장 에서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이득과도 연관이 있다.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난 이들은 기성세대보다 빠르게 에스토니아 언어와 문화를 흡수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러시아인들이 밀집하여 거주하는 지역이나 부모 모두가 러시아인일 때, 러시아어는 가정 내외에서 중요한 의사소통 언어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러시아어도 습득하게 된다. 이들에게 러시아어 능력은 에스토니아 밖에서도 추가적인 사회경제적 기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언어가 가지는 실용성이 이들에게 언어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새로운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 내 러시아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변화

4. 종교

오늘날 에스토니아인의 상당수가 무신론 성향이 강한 것과[7] 반대로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인 인구는 정교회의 영향력이 강한 편이지만 이들 중 소련 시절 국가 무신론의 영향으로 무신론 성향이 강한 사람도 적지는 않다.

5. 유명인

6. 관련 기사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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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스토니아어는 한국어처럼 교착어라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배우기 어렵다. 역으로 한국인이 영어 문법 배우는 것만큼 학습이 어려운 셈이다. [2] 핀란드어가 에스토니아어랑 계통상으로 가까웠고 핀란드의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서방 프로그램과 가요가 전파되었지만 이 경우에는 핀란드어를 직접 배우는 걸 더 선호했다. 한류 팬이거나 한류에 관심 있는 외국인이 남한 표준어를 배우지 북한 문화어를 안 배우는 것과 비슷했다. [3] 물론 에스토니아도 1991년~92년에 걸쳐 예금이 휴지조각이 되고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는 등 경제파탄 문제를 겪기는 매한거지였지먼 그 후유증이 10년 가까이 이어진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과는 달리 재빠른 수습에 성공해서 1990년대 중반에는 북유럽 국가들보다 가난하지만 그래도 구소련권 가운데서는 사람 살만한 나라라는 평이었고 1999년에 에스토니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4000달러대 였을때 러시아는 1300 달러, 우크라이나는 600달러였다. [4] 에스토니아라는 나라가 작다 보니 핀란드어, 스웨덴어, 러시아어만 구사해도 되는 직업도 많다. [5] 모든 러시아인의 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고 대학/대학원 수업이 끝날 때까지 유효한 비자를 가지고 있다면 지원할 수 있다. 즉 러시아인의 새 비자 발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6]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려인들도 무국적자로 전락하였다가 이후 시민단체나 선교단체의 노력으로 일부나마 구제를 받기도 했다. [7] 에스토니아인들은 전통적으로 루터교인이었지만 기독교 자체에 대한 환멸감이나 적대감이 적지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