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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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군도 도민정청 Insular Government of the Philippine Islands Pamahalaang Insular ng mga Islang Pilipin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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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식민지 | ||
<rowcolor=#fff> 국기[1] | 국장 | |
1901년 7월 4일 ~ 1935년 11월 15일 | ||
<rowcolor=#fff> 성립 이전 | 독립법 통과 이후 | |
필리핀 군정청 | 필리핀 자치령 | |
필리핀 제1공화국 | ||
<colbgcolor=#002664><colcolor=#fff> 국가 | The Philippine Hymn[2] | |
위치 | 필리핀 군도 | |
면적 | 343,385.1 km2 | |
인구 | 10,350,640명 | |
수도 | 마닐라 | |
정치체제 | 공화제 | |
국가원수 | 미국 대통령 | |
정부수반 | 총독 | |
언어 | 영어, 스페인어, 필리핀어 | |
종교 | 가톨릭 | |
통화 | 필리핀 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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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01년부터 1935년까지 필리핀 군도에 존속한 미국의 영토이다. Insular Government는 도민정청(島民政廳), 즉 민간 정부를 뜻한다.2. 역사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은 1901년 3월 23일 필리핀 혁명정부의 지도자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생포하는 데 성공하였다. 혁명정부는 지도자의 생포로 급격하게 와해되었으며, 1902년 4월 16일 이후에는 필리핀 전역이 진압되었다.1901년 미군정은 정식으로 도민 정청(민정)로 계승되었다. 1901년 7월 4일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민정 총독으로 취임하였다. 태프트는 '필리핀인을 위한 필리핀'을 주장하며 1902년 6월 필리핀 조직법(The Philippine Organic Act)을 선포하였다.[3]
태프트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통치가 자국의 이익 때문이 아닌 필리핀인들의 이익을 위하여 통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필리핀 자치정부를 실현하겠다는 미국의 계몽적, 인도주의적 목적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보다는 필리핀을 식민지화함으로써 미국의 국익을 우선했다고 볼 수 있다.[4] 이 시기 미국 정부와 미국 시민들은 그들이 구원자, 해방자, 문명 전달자일 뿐 유럽식 제국주의 정복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필리핀 현지인들의 생각이야 어쨌든, 자기들은 그랬다.
1907년 7월 30일에 초대 필리핀 의원선거가 시행되었다. 1907년 10월 16일에는 필리핀 하원이 공식적으로 열렸다. 초대 민정총독이자 당시 육군장관이었던 태프트가 개원식 특사로 참여하였다. 또한 당시 민정 총독이었던 제임스 F 스미스(James F. Smith)가 개원식에서 연설하였다. 이 시기 국민당이 출범하어 필리핀 정당체제의 출현을 알렸다.
1912년 우드로 윌슨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면서, 미국의 해외 식민지 정책이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변화의 핵심은, 도민 정부에 필리핀인들을 보다 많이 참여시켜 끝내는 독립을 준비시킨다는 것이었다. 1913년 프란시스 버튼 해리슨(Francis Burton Harrison)이 필리핀 총독으로 임명되면서, 도민 정부의 필리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1913년 윌슨은 5명의 필리핀인을 필리핀 위원회 의원으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필리핀 위원회는 처음으로 필리핀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해리슨은 필리핀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을 분노하게 할 만큼 공공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필리핀인들로 신속하게 대치시켰다.
1916년 윌슨 대통령은 존스 법안(The Jones Act)를 통과시켰다. 존스 법안의 서문에는 필리핀에 안정된 정부가 설립되면서 즉시 독립시켜주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명문화되어 있었다. 필리핀 위원회 대신 필리핀 상원이 국회의 상위 입법기관으로 발족되었다. 이전 필리핀 위원회와 달리, 상원 24명 중 2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존스 법안으로 말미암아 필리핀인들은 이제 입법기구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5]
이러한 해리슨 총독과 미국의 노력으로 해리슨 총독의 임기가 종료된 해인 1921년에는 필리핀의 공공업무를 담당하는 미국인이 겨우 6%에 불과하였다. 1918년 11월 필리핀 의회는 독립위원회(The Commission of Independence)를 설립하였다. 독립위원회의 임무는 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하고 일반 미국인들에게 필리핀 독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1934년 3월 24일에는 타이딩스-맥더피 법(Tydings–McDuffie Act)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필리핀 독립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의 골자는, 필리핀의 완전독립까지 10년의 기간을 갖고, 그 기간동안 필리핀 자치령을 설립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타이딩스-멕더피 법에 따라 도민 정부는 필리핀의 완전한 자치정부인 필리핀 자치령으로 계승되었다.
3. 역대 도민정청 총독[6]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1901-1904
- 루크 E.라이트 (Luke E. Wright), 1904-1906
- 헨리 C.아이드 (Henry C. Ide), 1906
- 제임스 F.스미스 (James F. Smith), 1906~1909
- 윌리엄 카메론 포브스 (W. Cameron Forbes), 1909-1913
- 프란시스 버튼 해리슨 (Francis Burton Harrison), 1913-1921
- 레너드 우드 (Leonard Wood), 1921-1927
- 헨리 L.스팀슨 (Henry L. Stimson), 1927-1929
- 드와이트 F.데이비스 (Dwight F. Davis), 1929-1932
- 시어도어 루즈벨트 3세(주니어) (Theodore Roosevelt III(Jr)), 1932-1933
- 프랭크 머피 (Frank Murphy), 1933-1935
4. 참고 문헌
- 서용석 (1997). [연구논문1]필리핀의 식민지 경험과 사회발전 : 1898-1946. 비교사회, 200-269.
- 양승운, '필리핀',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3.
-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 17권: 동남아시아', 김영사. 2018. p183~185.
- 조병욱, '이야기 필리핀사', 해피&북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