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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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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do you tell a communist? Well, it's someone who reads Marx and Lenin. And how do you tell an anti-Communist? It's someone who understands Marx and Lenin."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알아보냐고요? 글쎄요, 마르크스와 레닌에 관한 책을 읽은 사람이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반공주의자들을 알아보냐고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겠죠."
로널드 레이건
1. 개요2. 각국의 반공주의
2.1. 대한민국에서의 반공주의
2.1.1. 201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의 분화2.1.2. 오해와 설명
2.2. 미국에서의 반공주의
3. 미디어의 반공주의4. 관련 자료5. 관련 문서

1. 개요

반공주의(反共主義, Anti-Communism)는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상을 일컫는 한자어이다. 대표적인 반공주의계열 이념으로는 자본주의, 보수주의, 파시즘등이 있으며, 종파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기독교, 이슬람교 역시 일반적으로 반공 성향을 띤다. 공산주의에서 내세우는 유물론적 사관과 반종교적 이념 등이 종교와는 상극이기 때문.

역사적으로 반공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17년 부터로,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으로 인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된 이후 서방 자본주의 세계에서 반공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게 그 시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인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으로 냉전이 시작되자 서방세계에서의 반공주의는 더욱 심화되었다.

냉전 당시 반공의 주요 대상은 공산주의의 분파 중 주류 세력이었던 스탈린주의 마오주의였다.[1] 특히 스탈린 당시 소련에서 벌어진 대숙청, 강제 수용소와 기근, 노동자 착취 등은 반공주의자들에겐 좋은 비판소재로서 작용하며 반공주의가 널리 퍼지게 된 기반이 되었다. 특히 아시아의 반공주의가 훨씬 더 강경하였다.

다른 분파들은 이야기가 달랐는데, 반공주의자들은 레닌이니 트로츠키니 하는 공산주의의 분파 같은 건 신경쓰지 않았고 스탈린이 그랬던 마오가 그랬던 그냥 다 같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짓거리라고 인식했고, 그 이유는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가 오랫동안 공산권의 주류로 군림하며 공산주의의 상징같은 존재가 된 반면 다른 분파들은 이들에 밀려 항상 비주류로 존재했기 때문에 반공주의자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학문적 성격이 강했고, 트로츠키주의는 소련에선 진작에 스탈린에게 숙청되어 동구권에서 금지어 수준으로 전락하며 그 세력을 잃어 비주류가 됐으며, 유고연방의 티토주의는 유고연방이 제3세계 노선을 따르면서 서방과도 친밀관계를 유지했고 티토주의 자체도 스탈린주의 보다 훨씬 온건하고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당시 체코 서기장 둡체크의 '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와 더불어 서방 지식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반공주의자들의 큰 비판은 받지 않았다. 그외에 룩셈부르크주의나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등도 있지만 이들은 너무 소수라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없었다.

21세기 현재에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맹목적인 반공주의는 점차 사그러들었지만, 반세기가 넘도록 서방 자본주의 세계에 불었던 반공의 열풍은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유럽은 사회주의의 발원지이라는 점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좌파의 주류로서 기득권에 안착했기 때문에 그나마 덜하지만, 미국은 정부와 기업의 탄압으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세력은 사실상 소멸했고[2], 사회민주주의 세력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양당체제에 밀려 주류가 되지 못했다. 최근에 와서야 버니 샌더스 돌풍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 중심으로 사민주의가 점차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런 좌익 사상을 경험하지 못한 구세대 미국인들에겐 여전히 공산주의 빨갱이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분단의 고착화와 독재정권의 좌익 탄압 등으로 정치지형이 우경화 되었기 때문에, 이후 반공을 내세운 우파 독재정권의 장기 집권을 겪으며 2000년대에 와서야 좌경화되어 자유주의 세력이 된 민주당계 정당들이 좌파 공산주의자 소리를 듣는 경우가 허다하며, 반공의 영향으로 역사가 짧고 지지기반이 좁은[3] 그래서 북한에 대한 이해 관계로 통합과 분열을 반복하는 극진보정당과 진보정당은 군소정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4]

일반적으로 반공주의는 우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좌파들 사이에도 반공주의는 존재했다. 사회민주주의는 제2인터내셔널 이후론 공산주의와는 등을 돌렸다. 러시아 혁명 당시엔 사민주의 세력은 멘셰비키로 불리며 볼셰비키 공산주의자와 대립했으나, 결국 패배하여 소멸되었다. 이후 서유럽의 사민주의 세력은 제도권에 안착하며 반소-반공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갔으며, 이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반공주의는 보통 보수주의, 우파 권위주의 등과 연계되는 개념인 경우가 많다.

2. 각국의 반공주의

과거 대한민국, 미국, 대만, 터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독일 제국,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일본[5], 스페인국, 포르투갈 제2공화국,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남베트남, 필리핀, 쿠바[6],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은 강력한 반공 정책을 실시했다. 이 나라 중에서는 지금도 반공 정책을 실시해 공산당을 금지하거나 지금은 정부차원에서 반공 정책을 실시하진 않지만 민간차원에서는 반공주의가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공주의를 주장했던 나라 가운데서도 대만/일본의 장제스/ 도조 히데키를 보면 알겠지만 반대세력 탄압이나 학살을 이유로 해서 반공을 주창하면서도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를 억압하는 경우가 참 많았으며 공산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점을 스스로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허다했다는 것은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공산정권이 자행한 인권침해나 학살사건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거나 교육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고 개중에는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나 지나치게 악랄하게 그려져서 어린아이에게 보여주기에는 심히 그로테스한 경우가 많은데 정작 고문이나 야당탄압을 자행하고 심하면 학살이 벌어지는 등 그러한 사례들을 반공정권 스스로가 재현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즉, 반공주의=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7] 공산주의든 반공주의든 간에 권력에 미친 놈은 미친 놈일 뿐이었다. 한국에서도 삼청교육대나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해서 반대세력을 탄압하는데 악용했다. 미국은 조셉 매카시의 허풍이 드러나면서 공식적으로 반공을 한다면서 인권침해를 하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해외에서는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하면서 인권침해나 민주화 인사탄압에는 눈을 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리핀의 반공주의는 미국의 지배를 받고 독립해서 냉전 중에 마누엘 로하스, 엘피디오 퀴리노, 라몬 막사이사이 등 역대 대통령들이 필리핀에 반공주의를 안착하였다. 대만은 나라 자체가 공산당에 밀려 대만 섬으로 도피한 것이기 때문에 냉전 당시 외성인을 중심으로 대만에 반공주의가 성행하였다. 그 사이 유엔 퇴출 등 외교적으로 침체되기도 했다. 남베트남계 실향민의 반공주의는 진짜 말이 필요 없다. 공산 주의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나라를 잃었기 때문.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반공주의는 1970년대 친미계 우파 정권이 집권할 당시 고조되었는데,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파라과이 6개국이 공산주의 척결을 목표로 벌인 콘도르 작전으로 80,000명이 죽고 400,000명이 정치범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2.1. 대한민국에서의 반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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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산당이 싫어요!" - 이승복 어린이[8]


대체로 일제강점기에도 독립운동가들 중 우익 계열은 좌익 계열의 공산주의자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 경계했다. 우익 독립운동가들의 대체적인 생각들은 '좌익들은 자주 독립을 하자고 말은 잘하면서, 왜 저렇게 소련에 기대려고 하냐' 였거나 아니면 공산주의 자체를 아주 혐오하는 독립운동가들도 있었다. 물론 좌익 측에서도 미국에 의존하는 측면이나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의 장점을 받아들여 우익을 싫어하는 일도 흔했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벌어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자유시 참변. 같은 고려공산당 계열 독립군끼리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로 나뉘어 주도권을 잡겠다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이르쿠츠크파가 소련군까지 끌어들이게 되고 상해파는 몰살을 당한다. 지휘권 하나 잡겠다고 일본에 맞서 싸우는 같은 독립군을 그것도 외국군을 끌어들여 몰살시키는 걸 똑똑히 본 비좌익계 독립군 상당수가 반공주의자로 돌아서게 된다. 또한 우익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주의자들이었고, 독립을 위해 항일 투쟁을 벌였지만 같은 의미에서 소련도 또 하나의 외세로 평가했기 때문에 반공주의의 영향하에 있었다. 아시아주의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동아시아에는 서양과 동양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이들 중 아시아주의가 영 좋지 못한 곳을 스친 사람들이 1930년대에 친일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민생단 사건이다.

일제강점기에 니항사건이나 자유시 참변의 과정, 스탈린의 강제이주 등의 진면모를 알고있는 사람은 일부에 그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광복 직후 한국의 민심은 좌파 성향이 우세했지만 좌파 계열의 과거 사실이 알려지고 그들이 본격적으로 소련의 이익을 위해 재산을 약탈하고 유혈 범죄 사실이 알려지자 민심이 점점 이반되었다.

결국 아무 것도 모르던 민간인에게 광복 이후 북한 지역에서의 소련군정 용암포와 신의주에서 일어난 반공학생사건에 대해 유혈 진압을 단행했고, 수즈달레프가 작성한 '조선에서의 일본의 군비와 중공업에 관한 보고서'에 근거해 발전소, 제련소, 제철소, 공장 등 국가 주요 공업 시설 및 설비와 양곡 244만 섬, 한우 15만 마리, 말 3천 마리, 돼지 5만 마리를 무단 반출했으며, 주민의 은행예금도 무단 공출한 데다 이것들을 범죄적으로 약탈, 소련으로 무단반출하여 북쪽에서 반공주의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데 기여했다. # 이 시기에 월남한 대표적인 반공주의자가 최능진이다. 이후 북쪽에서 진행된 각종 유혈 범죄에 반발해 월남한 개신교 인사, 조선민주당, 청년, 농민, 공업 시설 근로자, 지주, 남한 지역에서 서북청년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남쪽은 미군이 들어와 일단 민족 우익 진영과 친중/친일 우익 진영이[9] 성립됐으나, 남쪽마저 공산화를 시키려는 친소련 공산주의자들과, 미군정 및 우익들의 대립이 시작되고 좌파와 우파들은 서로에게 테러를 시도했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이념으로 인해 갈라져 동료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되는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10]

이때까지도 국민들은 그다지 나라 상황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광복 이후 미군정에서 정부 수립기로 가는 과정에서 제주 4.3 사건, 여순 반란사건 등에 의한 좌우 대립 속에서 무고한 사람이 좌익으로 몰려 단체로 죽는 일 또한 빈번하였다.

위와 같이 일제강점기에도 니항사건이나 자유시 참변의 과정, 스탈린의 강제이주 등의 전면모를 알고있는 사람은 일부에 그쳤었으나, 그러나 대한민국의 전 국민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된 결정적 사건은 1950년,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이었다.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를 표방한다는 공산군이 쳐들어와 도시 하나하나를 점령하며 식량을 징발하고, 인민군으로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고, 인민재판을 열어 조금이라도 공권력과 연관이 있으면 모두 처형하다가, 나중에 UN군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민군은 아예 대놓고 학살을 벌이기까지 이르며, 혼란 속에서 국군 등에게 공산주의자로 몰려 많은 사람들이 죽는 사건까지 벌어지며 사실상 휴전 후 한반도 사람들은 공산주의라면 학을 떼는 수준이 되었다. 이북 사람들까지 공산군과 폭격을 피해 단체로 남쪽으로 피난을 오기까지 했으니, 수십만 명이 죽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대한민국의 인구가 북한에게서 많이 월남하고 유입되어 늘어날 정도였다.[11] 결론을 말하면 전쟁 전 남한의 인구는 2,050만 명인데 1955년의 대한민국에는 100만 명이 더 늘어났다는 게 그 증거이다. # 이렇듯 북한에서 월남한 인구도 많아서 전후 인구가 오히려 증가했다.[12][13]

이때 월남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 대부분은 전쟁 당시 김일성을 따르는 정치세력이나 소련군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폭행, 사살, 약탈을 자행했음을 증언했다. 북한 지역에서 실시된 무분별한 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토지와 재산[14]을 잃는 광경을 본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도 자신과 가족이나 재산권을 보호하고자 하였고, 근로 노동의 대가와 자유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국군에 입대하거나 반공 정치인이 되기도 했다.[15] 현재도 이들은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국제연합과 관련된 외교적 노력을 하거나 그러한 정책을 지지하는 중이다.

결정적으로 한국전쟁에 중공군까지 참전하자 한반도에서의 반공주의 성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며, 휴전으로 끝나게 된 전쟁을 겪은 후 한국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하게 되고, 강력한 반공을 표방하는 국가가 된다.공산권과의 수교도 거의 전무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까지 여러 프로파간다가 쓰이기도 하고, 학교나 사회 곳곳에서 반공 교육, 성향이 생활 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1970년대만 해도 거의 모든 상업 광고에 반공 표어가 꼭 들어갔다. 이때까지도 북한이 대한민국에게 온갖 공작과 테러, 도발을 벌였기 때문에 국민 정서상 악감정도 컸고, 정부도 반공을 계속해서 표방하였다. 노태우 정부 때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시기였고, 노태우가 공산주의 국가들과 줄줄이 수교를 맺고 외교 관계를 맺고,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며 "제1항의 목적으로 공산계열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도 반국가단체로 본다."라는 내용을 삭제하여 공산주의 활동이 법적으로는 가능하게 되며 한국에서도 '공산주의를 반대한다' 라는 의미의 '반공'은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16]

5공화국이 끝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져 가는 시기에 인식도 점점 반공(反共)에서 지공(知共) 노선으로 인식이 바뀌어 가던 시대 흐름도 있었지만 노태우 정부 때도 반공이 사라지지는 않았고 김영삼 정부까지 반공은 있었는데, 김영삼의 모친이 무장 간첩단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영삼 때만 해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잔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김영삼 때만 해도 반국가행위자에대한특별조치법이나 사상 전향 제도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김영삼 정부 때도 반공은 이어져 왔다. 게다가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이 상당히 강했으며,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이 가져다준 영향도 반공 분위기가 지속되는데 한 몫을 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반공 분위기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자민련 출신과 민정계 출신 정치인들이 아직 자리 잡고 있어서 반공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북핵위기 서해교전이 닥치면서 반공 분위기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러한 반공 분위기는 옅어졌는데, 북한과의 훈풍이 계속 유지되는 등 남북 간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 틈을 타서 반공 태세는 완전히 사라지는 듯 했지만 이 정권마저도 분위기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4대 개혁 입법 파동을 틈타서 반공 분위기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북한의 1차 핵실험 등으로 반공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취임 초만 해도 반공 분위기가 옅었으나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대청해전과 북한의 2차 핵실험, 천안함 피격사건, 5.24 조치, 연평도 포격 사태 등을 통해서 반공 분위기는 되살아나고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왕재산 간첩 사건과 북한이 자행한 사이버 테러 등으로 인해 반공분위기는 계속해서 강화되고, 김정은 체제가 출범하면서 반공 분위기는 계속해서 강해졌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반공 분위기는 계속해서 강해지는데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정전협정 백지화, 북한이 자행한 사이버 테러,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인해 반공 분위기가 계속해서 강해졌다. 이후 북한 무인기 사건과 한수원 사건을 겪으면서 반공 분위기가 강해졌고 이후에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목함지뢰 도발 사건, 서부전선 포격 사건 등으로 인해서 반공 분위기는 계속해서 강해졌다. 이후에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태영호 망명, 북한 여종업원 탈북 등으로 반공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반공 분위기가 다시 옅어진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반공 분위기는 다시 옅어지는데 이전 김대중과 노무현처럼 조금 옅어지거나 완전히 없애지 못한 형태가 아닌, 반공 분위기가 풀리는 분위기로 가게 되었다. 적폐청산의 바람에 맞물려서 반공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듯 했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 등으로 인해 반공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반공 태세가 예전과 달리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흥진호 납북사건이 터지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연일 이어지면서 약간 정도 반공 분위기가 되살아났고 남북 단일팀 논란과 김영철 방한 논란으로 반공 분위기가 다시 크게 살아나는 듯 보였지만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에 묻히면서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는다.

이렇게 평화무드가 조성됨으로 해서 반공 분위기가 완전히 풀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북한산 석탄 등 위장 반입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반공 분위기가 미세하게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반공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그런데 리선권의 각종 막말 논란과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화 등으로 인해서 또다시 반공 분위기가 미세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삭간몰 미사일기지 논란이 불거지고 남북관계 과속론까지 제기됨과 동시에 북한 군용기가 대한민국 상공을 날아다니는 일이 발생하면서 반공 분위기는 다시 되살아났었다. 하지만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소식이 알려지면서 반공 분위기가 다시 옅어졌으나,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반공 분위기는 다시 급격히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이후 동창리 미사일기지 논란이 불거지고 남북연락사무소 철수 사태가 이어지면서 반공분위기는 다시 크게 살아났고 그 이후 북한의 이스칸테르 미사일 발사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반공분위기는 더욱 강해진다. 게다가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까지 터지면서 반공분위기는 계속 강화되었다. 하지만 2019년 남북미정상회동이 일어나면서 반공분위기는 다시 약간 옅어졌다. 그리고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 통제로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반공분위기는 다시 다소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 즈음에 북한의 이스칸테르 미사일 발사가 또 다시 일어나면서 대한민국의 반공분위기는 다시 살아나고 있는 추세다.

주로 극우성향을 띈 보수 정당에선 반대자를 무작정 '좌파', '용공' 2000년대 후반에 와서는 종북이란 말로 모는 식으로 말이 오가지만 이를 악용한 '북풍'이 예전만큼 정치적으로 강하게 작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반북 성향이 생기는 걸 북풍이라고 주장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북한이 도발했을 때 반북 성향이 생기는 것과 이를 정치적으로 몰아가서 정치적 반대자를 공격하는데 악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선 반공문화로 정의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해도 반공성향이 다시 널리 퍼졌다. 햇볕정책을 비롯한 각종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해준 게 뭐냐는 반감도 한몫하고 있다. 문제는 전쟁이란 게 쉽게 안 끝난다는 것. 그러나 북한의 도발사태가 이어지면서 북한에 대한 경계에 대해서는 성향을 떠나 동의하는 편이다. 당연하지만 북한의 도발은 무력으로 이루어지는 게 태반이라 국군이나 한국인들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이건 국민의 안위가 달려 있으니, 정당이라면 좌우 가리지 않고 당연히 신경을 쓰는 부분인 것이다.[17]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주적인 북한 정권[18]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되, 정계에서 정적을 무조건 북한과 연결시켜 제거하는데 쓰는 광적인 반공사상 또한 경계해야할 것이다.[19] 반공은 국가의 안보를 위한 수단일 뿐이지 명백한 불법적/비도덕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만능카드가 아니다.

국가가 안보를 내세우며 반공을 권하는 것이 논란은 있겠으나, 그렇다고 북한이 도발을 펼치는 와중에도 음모론을 내세우거나 정당한 대응이나 안보를 보여도 '또 반공으로 국민 세뇌한다' 라는 반응을 지나치게 보이는 것 역시 좋지 않다. 그동안 북한의 도발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에선 상당한 무고한 희생자가 있었으므로. 반북한 정서를 이전 정권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쓴 이력이 있다 해도 한국인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행위를 펼치는 북한에 대한 경계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반공에 무작정 반대하는 진보층에게 '한국 장년층들이 반공 성향을 가진 이유는 보수 정권/언론의 세뇌나 교육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잘 살고 있는데 공산당의 이름을 내세운 북한군이 쳐들어와 식량을 모두 갈취하고, 점령지 사람들을 강제로 인민군으로 징집하고, 인민재판에다가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걸 그들이 직접 보고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20] 라며, [21]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에 대해선, 북한의 책임이 아주 크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반공교육도 부작용이 컸는데 국민학교 시절, 반공 프로파간다 영화를 유료로 틀어주지 않나. 반공도서를 강매하게 하여 그걸로 독후감을 내게하고 방위성금비를 강요한다든지 어린 시절 반공교육에 대하여 그런 코묻은 돈을 뜯어가서 대체 누가 처먹은 건지 궁금하다고 불쾌해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반공영화랍시며 토막나거나 피투성이 시체, 사지절단, 산채로 화장하는 장면 등등 왠만한 고어물 못지않은 장면들이 속출하는 걸 당시 국민학생들이 억지로 봐야 했다. 안보면 선생이 뭐라고 화내며 억지라도 봐야하던 시절이다....

2.1.1. 201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의 분화

전통적인 반공주의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사용하던 멸칭인 빨갱이는 21세기에 들어서는 보수 측에서도 사용을 다소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되기까지 했었다. 대신 빨갱이란 표현은 촌스러워서인지 잘 쓰지 않고, 좌빨, 좌좀이라는 표현이 즐겨 사용되고 있다. 사실 어느 단어이건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의 입을 멸칭 하나로 틀어막으려고 한다는 것에서 별로 좋은 말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좌파에도 해당된다.

한편 전통적인 반공주의에는 비판적이지만, 반공(반북)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 역시 상당수 존재하는데, 이러한 연성의 반공은 극우를 제외한 중도우파 계열 지지자들, 그리고 군필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이 항목을 비롯하여 나무위키의 대다수의 서술은 명백히 이러한 '연성의 반북'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반북은 기본적으로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우파적 관점에서 볼 때 전통적 색깔론과 달리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이슈에서도 "쟤네들이 병신인 것은 맞는데, 어차피 저 따위 사상 믿을 사람도 없고, 오히려 풀어줘야 우리 체제 우월성도 과시하고, 쟤네들이 혁명가 코스프레하는 것도 막을 수 있지 않겠냐"라는 식의 논리로 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주적인 북한의 위협이 있다는 특수성은 고려해야 해서 지극히 조심히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사람들 정도로 나뉜다.

다만 반북과 반공을 같다고 하는 것은 형식상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제3세계 독재국의 구조로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평가하는 꼴과 같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반소련을 반공이라고 하면 모를까..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반공과 반북을 분리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2.1.2. 오해와 설명

그러나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조차 흑백논리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등을 겪으며 NLPDR, 주사파 계열의 병크가 반보수적인 젊은 층에게도 많이 알려지고, 북한의 삼대세습과 극단적 행보를 겪으며 2000년대의 반미, 통일 지향적 정서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는 극우반공세력과 이러한 '합리적 반북'세력, 그리고 종북주의자만이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들이 있으며, 반공과 반북에 대해 비판적인 진보주의자는 모두 종북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PD 계열이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전 문단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논리 정도에 동조할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NLPDR이나 주사파가 아닐지라도 진보좌파들은 관점이 다르다. 그러니 뭔가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듯' 한 관점이 보이더라도 '네! 다음 종북주의자' 라는 식의 아몰랑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당마다, 그리고 당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정의당[22], 노동당, 녹색당 계열에서는 국가보안법의 완전 폐지는 당연히 깔고 간다.

물론 북한과 종북주의를 비판하는 것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반종북주의와 반북의 프레임에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사로잡히는 것은 근본주의, 극단주의, 흑백논리, 진영논리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어떤 것이건 이분법으로 지나치게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2.2. 미국에서의 반공주의

레드 컴플렉스 매카시즘 문서로.

3. 미디어의 반공주의

파일:usanticommpropaganda.jpg
1947년 미국 민간단체에서 제작한 반공 프로파간다 만화책.
나치 통치기의 독일이나 냉전 시기 서방세계에선 반공 프로파간다 미디어가 많이 제작되었다. 주로 영화나 만화,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그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공산당, 공산주의자가 악역으로 등장하며, 열등하고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여주며 조롱하거나, 악마나 짐승 등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등장시켜 악의 축으로 그리고, 소련등 동구권 국가는 전체주의적인 악의 제국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자본주의 진영의 인물이나 단체, 국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이들을 물리치고 '자유'를 지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반공 프로파간다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반공주의적 인식을 각인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젔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논리적인 비판보단 자본주의[23]를 선, 공산주의를 악으로 설정하고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악행을 부각시켜 감성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여러 서방 학자들이 저술한 The Black Book of Communism이라는 책이 있는데, 내용은 단순히 "공산국가들에서 죽은 사람들 수가 1억명이니 2500만을 죽인 나치보다 나쁘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를 과장했다는 의혹이 있고 공산주의를 어떻게든 나치와 엮어서 비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보니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여러 좌파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24]

당시 서방 사회엔 공산주의와 동구권은 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에, 무조건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제작된 매체가 아니더라도 소련과 공산주의 국가들은 단골 악역으로 등장했다. 첩보물에서 주인공인 서방 첩보원과 싸우는 KGB 요원이나, 람보같은 액션 영화에서 소련군이나 북베트남군이 악역으로 나와 학살당하는것이 그 예시다. 냉전 종식과 동구권 붕괴 이후에는 그 역할을 중국, 러시아, 중동 등 반미, 반서방 세력이 맡게 된다.

문학 분야에선 프로파간다 매체보단 수준 높고 심도 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반소 반공 작가로는 아인 랜드 솔제니친 등을 꼽을 수 있다. 좌익 문인들 또한 반공문학을 집필했는데,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지만 스탈린주의를 반대했기 때문에 1984와 동물 농장같은 소련과 공산주의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소설을 썼고, 이 두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됐다. 헝가리 출신의 작가 아서 쾨슬러는 젊은 시절 공산주의자로 활동했으나, 스탈린주의 독재로 변질된 소련과 독소 불가침 조약 등에 회의를 느껴 소련에 대한 비판을 다룬 소설 '한낮의 어둠'을 집필했다.

3.1. 반공 영화

미국은 창의적이게도 반공영화 등을 단순히 공산당이나 간첩과 싸우는 평범한 구성보다는 대체역사물이나 SF 식으로 제작하는 일이 잦았다. 대표적인 경우로 일본 및 국내에 붉은 새벽, 젊은 용사들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진 레드 던 같은 경우도 있다.

80년대에는 아메리카, 아메리카라는 미국 드라마 시리즈로도 소련이 쳐들어와 미국 민간인이 서로 손잡고 무찌르자 소련~ 이런 구성을 보여준 바 있다[25].

사실 미국의 SF 영화의 범람이 빈발했던 50, 60년대가 반공 정서의 최고조였던 시절임을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외계인들이 악역을 맡은 이유가 외계인=소련이라는 의식의 반영이기도 했다. 그 시절 호러영화에 나오는 우주괴물은 소련에서 만든 비밀병기란 식의 구성도 흔했다.[26]

3.2. 반공 애니메이션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반공 애니메이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관련 자료

  • MBC 스페셜 - 정전, 65년간의 전쟁 (2018.12.17)

5. 관련 문서



[1] 물론 일일이 ‘스탈린주의자’ 같은식으로 콕 집진 않았고, 그냥 ‘공산주의자’로 싸잡아 지칭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산주의하면 떠오르는 게 스탈린식 독재기 때문에. [2] 미국 사회당은 50년대 이후 점점 쇠퇴하다가 결국 해체되었고, 그나마 IWW와 미국 공산당(CPUSA)은 여전히 존재하며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세력이 급격하게 줄어 3000명 규모의 군소세력으로 전락했다. [3] 현재 진보정당들의 주요 지지층은 노동조합과 진보성향의 과거 2000년대 민주노동당의 약진을 기억하는 중장년층의 정체는 골수 운동권이나 정체불명의 주사파 내 소수이다. 그마저도 사표심리와 비밀투표 때문에 전략적 투표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이익에 맞다면 한국당이나 민주당에 서슴없이 표를 주는 경우가 많다. [4]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시절엔 두 자리수 의석수를 얻어내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미 내부분열이 심각한 상황이었고, 결국 현재는 여러 당으로 흩어지며 약화되었다. [5] 특히 일본 제국. [6] 공산화 이전 [7]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즉 반공주의가 곧 자유민주주의와 동일한 개념으로 명백하게 왜곡되어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장 대한민국 사회에서 반공주의를 강경하게 외치는 자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주장한다. 왜나하면 그들한테는 반공주의가 곧 자유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업적과는 별개로,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진짜 자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8] 집에 들어왔던 북한 간첩의 칼에 살해당할 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그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것은 명백히 확인된 사실이나, 실제로 그때 이승복이 해당 발언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물론 진실은 고인만이 알 것이다. [9] 당시 중국은 장제스의 중화민국으로 공산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승리하기 전의 우익 성향 국가였기 때문에 한국의 우익 독립운동가는 중국과 연대를 많이 했다. 친일 세력의 경우 국정 운영을 이어간다는 이유로 남북 둘 다 그대로 등용했다. [10] 일각에서는 구 일본군 출신들이 일부 북한군과 대한민국 국군에 양쪽에 유입되면서 일본군의 반공 구호가 일부 수정되어 그대로 이식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일본군 군부는 방공협정 체결을 추진할 정도로 반공주의자들 천국이었다. 아니, 일본제국 자체가 고등경찰과 특별고등경찰이 활개치고 치안유지법으로 공산주의를 잡던 반공 국가였다. [11] 게다가 북한 출신의 반공주의자들이 남한에 대거 유입되면서 반공주의가 더 심화되었다. 서북청년단 문서로. [12] 다만 한국전쟁 당시, 이북에서 수많은 피난민들이 대한민국으로 도망쳐 온 가장 큰 이유는 공산당의 폭정 때문이 아니라 미군의 폭격, 특히 피난을 안 가고 있으면 머지않아 미군이 이북 땅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이북 주민들이 모두 죽는다는 공포심에서였다는 증언도 있다. 출처: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저/ 창비 [13] 또한 폭격의 저자인 김태우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의 어머니가 한국전쟁 중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공산당 검열이 아니라 미군의 폭격이었다고 한다. 링크 [14] 국가 소유의 공공시설 재산이나 박물관의 재산을 트럭째로 옮겼다. 반란은 유혈진압으로 제압하고, 소련군의 성범죄도 기록되어 있다. [15] 조만식의 조선민주당, 자유당 문서로. [16] 게다가 북한 공산주의의 탈을 완전히 벗고 주체사상으로 바뀐 데에다, 공산권들이 줄줄이 무너진 지 오래 된 지금은,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것을 척도로 보수-진보를 나누기 어렵기도 하다. 진보 측에서도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해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보수 측에서도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도입한 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1988 서울올림픽 때는 미국이 한국을 좀 업신여긴다고 생각한 피 끓는 젊은이들이 소련을 응원하기도 했다. # [17] 정말 북한이 저지르는 일을 보고도 '북한이 아니라 정부가 꾸민 거 아니냐' 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을 자꾸 진보 측에서 품어 주거나 두둔하는 걸 경계하거나 싫어하는 진보주의자도 정말 많은 게 이런 이유다. 진보세력도 북한의 도발을 크게 비판하고 비난하지만, 자기 진영 내에서 북한을 두둔하거나, 너무 반정부 성향이 극심해서 음모론을 품는 사람들의 쪽수와 목소리가 더 크다면 그것이 그 진영의 의견으로 비춰지기 매우 쉽다. 통합진보당이 민심을 잃고 다른 진보계열로부터도 버림받은 원인 중에는 지나친 종북적 발언 및 의심스러운 행동의 영향이 컸다. [18] 국군 기본정훈교육 교재의 정의를 따르자면 북한 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북한 공산정권과 북한군, 준군사조직,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국내의 지원•동조세력, 해외의 북한정권 지원세력이다. [19] 반공주의에 대한 경계심은 오히려 모호하고 추상적이라고도 종종 지적받지만, 그건 피해자나 유가족을 직접 못만나 이야기나 공감능력이 부족해 그렇다는 지적이 많다. 사회 전반에 팽배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반공사상 교육은 공산주의의 피해 관련 유가족 대한 입장을 반영한 명분이 무엇보다 가장 컸고, 이에 따라 주민등록, 지문감식 등 통해 점차 치안과 범죄율 또한 개선되어 국민의 생명에 대한 안전한 생활을 보호, 개선되었다. [20] 사실 김대중 자신이 6.25 당시 인민군 목포시를 점령했을 때 자본가(광복 직후 해운업을 하였다)라는 이유로 인민재판에 넘겨져 처형당할 뻔했다. [21] 40~50년대 중년층은 예전에 운동권을 했었던 사람도 많은 세대인데다, 애초에 선거 때부터 덜 반공적인 태도를 보이겠다고 했던 진보진영의 김대중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되도록 한 주요 세대여서, 이 쪽은 어느 쪽을 딱히 지지한다고 정의하기 힘든 세대라고 보여진다. [22] 여긴 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23] 사실 대부분의 반공 프로파간다와 반공 정치인들은 자본주의를 민주주의로 지칭하고, 자유라는 단어를 특히 강조했다. 서방 국가 대부분이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도 하고, 대중 역시 자유와 민주주의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고 공산주의는 독재라는 인식을 가졌기 때문에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구도로 엮는 것이 선악 구분이 더 명확해 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진영인 제1세계가 스스로를 '자유진영'이라 자칭하고 미국이 제3세계 국가에 간섭, 침략할때 '민주주의 수호'같은 명분을 내새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이런식의 선전 덕분에 이 분야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같은 잘못된 상식이 퍼졌다. [24] 이런 ‘공산주의 때문의 n명이 죽었다’같은 주장은 냉전기부터 지금까지 서방의 반공우파 정치인, 학자들이 좌익을 공격하기 위한 주요 레퍼토리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수치가 제각각이라 근거의 신뢰성이 떨어질 뿐더러 제국주의 시기부터 21세기까지 지속되고 있는 서방 자본주의에 의한 수많은 인명피해를 무시한체 뻔뻔하게 큰소리치는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25] 이것도 당시 국내에 비디오로도 나온 바 있다. 미국 서민은 람보라는 구성 [26] 슬라임을 모티브로 한 영화 〈우주생명체 블롭〉은 이런 구성을 비틀어버리는 설정이다. 미국이 생체무기를 실험하다가 생물을 흡수하는 거대 슬라임을 만들게 되자 미국 과학자들은 "이걸로 소련도 뭉개버릴 수 있다!"고 좋아한다. 반공물을 아주 비틀어버린 것.더군다나 영화 안에서 언급이 나오길 그 거대 슬라임들이 나중엔 미국 전역을 덮어 버릴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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