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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데이비스 (찬란한 나의 인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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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191a><colcolor=#ffffff> 제인 폰다 Jane Fon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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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제인 시모어 폰다 Jane Seymour Fonda |
출생 | 1937년 12월 21일 ([age(1937-12-21)]세) |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0cm[1] |
부모 |
아버지
헨리 폰다 어머니 프랜시스 포드 시모어 |
형제 | 동생 피터 폰다 |
배우자 |
로제 바딤(1965년~1973년) 톰 헤이든(1973년~1990년) 테드 터너(1991년~2001년) |
자녀 |
딸 메리 루아나 윌리엄스(1967년생)[2] 딸 바네사 바딤(1968년생) 아들 트로이 개리티 헤이든(1973년생)[3] |
종교 | 무신론 → 기독교 |
직업 | 배우 |
활동 | 1960년 ~ 현재 |
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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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배우. 영화 배우 헨리 폰다의 딸로 아카데미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스타다. 하노이 제인 및 적극적인 사회운동으로도 유명하다.2. 생애
1937년 12월 21일, 배우로서 명성을 널리 펼치던 헨리 폰다와, 당시 사교사회에서 동경의 대상으로 각광 받던 사교계 명사 프랜시스 포드 시모어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인 폰다가 12살이던 해, 어머니가 우울증을 앓기 시작하여 정신 치료를 받던 중 아버지의 불륜과 이혼 신청으로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이후 제인은 모델로 데뷔하여 보그 표지를 두 번이나 장식하였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여 메소드 연기의 창시자 리 스트라스버그가 운영하는 수 많은 명배우들을 산출한 액터스 스튜디오에 들어갔다고 한다. 리 스트라스버그가 재능이 있다며 호평을 내리자 배우로서의 확고한 꿈을 가지게 된다.
1960년 정식으로 배우로 데뷔하여 1970년대까지 최정상 스타 배우 반열에 올랐으나, 1991년 유명 기업인 테드 터너와 자신의 세번째 결혼을 하면서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2005년 다시 복귀하여 현재는 넷플릭스 시트콤 <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주연과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다.
2.1. 하노이 폰다
제인 폰다는 아버지 헨리 폰다[4]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 정치관을 가지게 되었으나, 이로 인하여 반전주의 운동을 하던 중 도를 넘는 행동을 하여 논란을 샀다.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하였다. 그냥 시위 정도가 아니라, 전쟁 중인 적국 북베트남을 500여명의 반전주의자들과 함께 직접 방문하여 각종 마을, 학교 등을 다니며 미군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심지어 전쟁통에 북베트남 육군 장병들과 함께 장난을 치는 장면이 포착되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진 사진2[5] 특히 당대 최고의 스타가 반전 운동을 노골적으로 하는 데에 많은 사람들의 격분을 샀다.
그러나 이에 대해 폰다는 자신의 블로그 글에 위 사진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위 사람들의 호응에 휩쓸리다 북베트남군에 의해 찍혔으며, 자신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제야 모든 것이 그들의 의도된 악성 선전 계획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으며, 이에 자신이 비난을 받는 것은 마땅하며 상처받았을 군인들과 국민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비밀 작전 수행 중 포로가 된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나 SOG같은 특수전 부대원들의 신원을 확인해서 북베트남 정부에 통보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 점으로 인해 당시 포로가 됐던 참전용사들은 더욱 악랄한 고문을 당했다고 치를 떨며 분노했고 제인 폰다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를 갈며 분노한다고 한다.[6]
그러나 신원을 통보하였다는 사실은 조작 의혹 논란이 있으며, 제인 폰다는 "난 그들을 만난 적도 없고, 이름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신원을 통보하느냐" 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제인 폰다의 말대로 루머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나 MACV-SOG 같은 특수전 부대 소속 군인들의 신상명세를 아무리 반전 운동에 열심인 활동가라고 해도 일개 할리우드 배우가 제대로 알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제인 폰다가 군복무를 하거나 국방부 정보 분야에 근무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악성 루머까지 돌았을 정도로 당시 제인 폰다의 처신은 매우 부적절했으며 그녀의 이미지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사실이 맞다.
북베트남 방문과 그에 따른 루머로 인해 어느 미국 군사 학교는 'Good night Jane Fonda, Good night Bitch!'를 야간 구호로 채택했으나 머지않아 그 구호는 규정 위반으로 금지되었다. 이러한 폰다의 활동에 대해 북베트남 육군총장인 Bui Tin은 미국은 민주주의 때문에 패전했다며 폰다를 위시한 자국민들의 프로파간다에 미군이 전투의지를 상실했다고 평했다.
당시 제인 폰다는 장뤽 고다르랑 협업 ( 이브 몽땅과 함께 만사형통을 찍기도 했다. 이렇게 비난받는 상황을 본 고다르가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는 영화를 찍기도 했다.
물론 폰다는 재산을 히피들과 반베트남전 시위대에게 기부하기도 했고 린든 존슨 대통령을 몹시 싫어했으며[7] 극우 배우인 존 웨인을 매우 싫어했다. 그러나 정작 제인 폰다 자신은 후에 CNN 설립자인 미디어 재벌 테드 터너와 결혼하는 등, 전형적인 부유층의 삶을 살았기에 여피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2005년, 미 해군 출신 참전용사 마이클 A. 스미스가 폰다의 자서전 사인회에서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고 도망친 사건도 있었다. 결국 체포되었으나 제인 폰다가 "큰 일을 원치 않는다"며 스미스의 죄를 묻지로 않기로 하여 석방됐다.
그녀가 당시에 저지른 이적 행위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아서, 홈쇼핑 채널에서 방송 예정이던 저서 'Prime Time'의 홍보방송이 수많은 시청자들의 항의로 인해 취소되기도 했다.
현재는 환경 운동과[8] 관련된 사회적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행보 및 노년의 적극적인 해명과 사과 등으로, 과거보다는 비판이 많이 사그라들어 원로 배우로서의 존경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존 보이트[9]와 함께 출연했던 1978년 영화 <귀향>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의 PTSD와 그에 대한 극복을 다루고 있으며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3. 출연작
- Tall Story (1960)
- A String of Beads (1961)
- Walk on the Wild Side (1962)
- The Chapman Report (1962)
- Period of Adjustment (1962)
- In the Cool of the Day (1963)
- Sunday in New York (1963)
- Joy House (1964)
- La ronde (1964)
- Cat Ballou (1965)
- The Chase (1966)
- The Game Is Over (1966)
- Any Wednesday (1966)
- Hurry Sundown (1967)
- Barefoot in the Park (1967)
- Spirits of the Dead (1968)
- Barbarella (1968)
- They Shoot Horses, Don't They? (1969)
- Klute (1971)
- 만사형통 (1972)
- Steelyard Blues (1973)
- A Doll's House (II) (1973)
- 컴스 호스맨 (1978)
-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2013)
- 심슨 가족 (2014) - 맥신 롬바드 (목소리)
- 그레이스 앤 프랭키 (2015) - 그레이스
- 북클럽 (2018) - 비비안
- 럭 (2022) - 드래곤 (목소리)
- 북 클럽: 넥스트 챕터 (2023) - 비비안
- 틴에이지 크라켄 루비 (2023) - 크라켄 여왕 (목소리)
4. 여담
-
핵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하던 도중에 넘어져 발목을 부상당했다. 이 때문에 체중 관리 목적으로 해오던 발레를 못하게 되자 그 대신에 음악에 맞춰서 하는 운동법을 개발하게 된다. 이를 녹화한 비디오가 나중에
VCR 시장이 발달하면서 역대 가장 많이 팔린
VHS 비디오가 되는 등 공전의 히트를 쳤는데 이것이 소위 비디오 운동의 시초이다.
# 이 비디오 시리즈로 얻은 수익은 전액 사회운동에 쓰였다.
당시 제인의 비디오 운동 프로그램에서 유래한 용어가 ' 워크아웃'인데, 오늘날에는 기업의 구조조정 및 회생 절차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 "병적으로 차가운" 성미의 아버지 헨리 폰다가 어려서부터 자녀인 제인 폰다, 피터 폰다 남매를 정서적으로 학대해 두 남매는 아버지 헨리 폰다와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피터 폰다는 자서전 "Don't tell dad"에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두려움의 존재로 여겼다고 밝혔다. 제인 폰다는 헨리 폰다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헨리 폰다가 강요하는대로 늘 최고의 성적과 몸매를 필사적으로 유지해야했다. 어린 제인 폰다가 밖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헨리 폰다는 이를 혐오스럽게 여기며 딸을 경멸했다. 피터 폰다는 자신은 사탕을 먹었다고 엉덩이를 때릴 정도의 엄격한 아버지[10]를 두려워해 피했다면 누나는 오히려 달려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
부녀 사이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계기는 제인 폰다가 12살 때 헨리 폰다가 우울증을 앓던 42살의 아내 프랜시스 포드 시모어를 두고 수전 블랜처드와 바람피다가 아내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혼 신청을 해 아내가 그 충격으로 자살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면도기로 목을 그었다. 피터 폰다는 자신과 누나 제인 폰다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가지도 못했고, 그 뒤로 아버지는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죽은 것으로 자기들 남매를 속였다고 밝혔다. 아버지가 신문이나 잡지 일체를 못 보게 치워버리고 모두가 어머니에 대해 함구해서 두 남매는 진실을 모르는 채로 지냈다.
- 헨리 폰다는 아내가 사망하고 얼마 안 가 바로 수전 블랜처드와 재혼했다. 어머니가 사망하고 1년 뒤, 제인 폰다는 우연히 미술 수업에서 영화 잡지를 넘기던 중 기사를 읽고 진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동생 피터 폰다와 공유했다고 한다. 제인 폰다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거나 다름 없다고 여겼다. 이 사건의 여파로 제인 폰다는 자기혐오에 빠져 자기 학대의 일환으로 극심한 섭식장애에 시달렸으며 식욕억제제인 덱서드린[11] 중독에 빠져 매우 불우한 10대를 보냈다. 폰다는 40대에 들어서까지도 덱서드린을 끊지 못했다. 남매는 성인이 된 후엔 아버지와 교류를 거의 끊고 살아 셋이 모인 인터뷰에서는 서로 어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그래도 헨리 폰다의 말년에 딸과 화해 기미가 보이기 시작해 헨리 폰다가 AFI 공로상을 받았을 때 마지막 연설에서 자신의 딸을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 "닥쳐, 제인은 완벽하니까."라고 한방 날려주기도 했다. 아버지의 말에 감동한 제인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
황금 연못>에 함께 출연하며 부녀 관계가 개선됐다. 정확히는 남편과 아버지로서는 크게 잘못해온 헨리 폰다를 제인 폰다가 일방적으로 용서한 것. 이 사연은 2020년 9월 06일,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뤘다.
영상 11분 55초부터.
- 할리우드에서 보통 자식들이 책을 내면 스타 부모에 대한 폭로전인 것에 반해, 제인 폰다가 1982년부터 입양 절차 없이 키워온 딸은 제인 폰다가 얼마나 위대한 어머니인지를 간증하기 위해 2013년 책 "The Lost Daughter: A Memoir"를 냈다.
- 90년대 초중반까지 유명했던 도시전설인 '갈비뼈 뽑는 성형수술'의 대표주자로 잘못 알려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허리 사이즈를 신체 한계보다 더 줄이기 위해 맨 아래쪽 갈비뼈 두 개를 뽑아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인데, 워낙에 널리 알려져서 대한민국에까지도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지만, 사람들이 하도 물어보는 통에 결국 X레이 사진을 찍어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해야만 했다.[12]
-
아버지가
헨리 폰다라는 것부터 알 수 있듯 젊었을 적에 엄청난 미녀였다.[13] 1960년대를 상징하는 섹스심볼 스타였으나(당시의 모습은 영화
바바렐라에 잘 나타나 있다), 70년대에 들어 반전 운동을 시작하면서 숏컷으로 바꾸고 섹시한 이미지를 탈피하여 연기파 배우로 나아갔다. 현재도 86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엄청난 동안력을 자랑한다. 지금도 매일 다섯 가지 색의 과일과 야채를 반드시 챙겨먹고 운동을 하며 관리를 한다고 한다. 심지어 환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도 감방에서 운동을 했다.
1962년, Walk on the Wild Side에 출연했을 때(25세).
1962년, Jane에 출연했을 때(25세).
-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시상자로 등장했다.
#
익스트림 무비에서 이를 예언한 유저가 화제가 되었다.
# 수상자를 호명한 후 봉준호 감독에게 트로피를 전달했다
- 미국 현지에서는 운동 비디오로 유명하다. Baby Got Back에서도 언급될 정도.[14] 그리고 거기서 엉덩이가 크지 않아 매력이 없다고 디스당한다.
- 바바렐라 출연 당시 나이는 31세로, 무려 임신 상태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코르그가 제인 포스터를 언급할 때 잘못 언급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나온다. 다른 이는 조디 포스터.
- 좋아하는 성관계 체위를 밝힌 적이 있다. 무릎을 꿇는 건 좋아하지만 무릎이 예전 같지 않다는 등 솔직하게 털어놨다. 국내 기사
5. 관련 문서
[1]
출처
[2]
입양
[3]
아들 트로이라는 이름은 1964년 남베트남을 방문한
로버트 맥나마라를 암살하려 했던 베트콩 출신의 인물
응우옌반쪼이의 이름 '쪼이(Trỗi)'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4]
여담으로 헨리 폰다는 제인 폰다가 N-word를 사용하자 제인 폰다의 뺨을 때릴 정도로 인종 문제에 깨어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제인이 인종 차별적 발언을 했던 것은 1950년대였으며 당시 인종주의가 만연한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당시엔 헨리의 행동이 더 드물고 진보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5]
베트남 전쟁 시기 북베트남을 방문한 반전운동가들은 많았었다. 작가인 수잔 손택이나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 등 많았지만, 제인 폰다 만큼 미국 사회에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다.
[6]
피터 폰다가 덴버 공항에 붙어있던 "고래의 먹이로 제인 폰다를 줘라."라는 선전물을 훼손하다 결국 체포된 적이 있었다.
[7]
그러나 정작 LBJ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다.
[8]
Fire drill fridays라는 환경운동 행사로
샘 워터스톤,
나탈리 포트만,
호아킨 피닉스,
루니 마라도 자주 참석하여 연설을 한다.
[9]
심지어 존 보이트는 할리우드 내 대표적 공화당원이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존 보이트의 딸인
안젤리나 졸리는 민주당 소속으로 대통령 출마도 고려해볼 정도로 독실한 민주당원이라는 점이다.
[10]
먹지 말라고 경고하는 아버지에게 대들다가 맞았다고 한다.
[11]
Dexedrine.
[12]
캠퍼스 러브 스토리 제작 과정에서도 이런 헛소문이 적용된 흔적이 남아 있다.
캠퍼스 러브 스토리/더미 데이터/강미령 문서 참고.
[13]
사실 폰다 가족 3인방 모두 장신+쾌남, 미녀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헨리 폰다와 피터 폰다는 190cm 정도의 장신이었고 제인 폰다는 173cm로 꽤 장신인 편이었다.(헐리우드는 오히려 옛날 배우들이 더 장신인 경향이 있어서 당대 배우 중 엄청난 장신은 아니다.) 청소년기 내내 아버지 때문에 마른 몸을 유지하느라 거식증을 앓은 것을 생각하면 거식증 아니었으면 더 컸을지도 모른다.
[14]
So your girlfriend rolls a Honda, playin' workout tapes by Fon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