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도로시아 랭 Dorothea Lan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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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5년 5월 26일 |
미국 뉴저지주 호버컨 | |
사망 | 1965년 10월 11일 (향년 70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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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사진작가 |
모교 | 컬럼비아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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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2. 생애
1895년 5월 26일 독일계 이민 2세로 뉴저지주 호보컨에서 태어났다. 7살에 소아마비에 걸린 후 내내 오른편 다리를 절었었고, 10살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자 어머니의 성인 Lange을 쓰기 시작했다.고교 졸업후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여러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사진을 배웠으며 몇 년 동안 아르놀트 겐테를 비롯한 여러 사진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클라랜스 H. 화이트에게 사진을 배웠고 1918년 사진 일을 찾아 친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였고 1920년 화가 메이나에 딕슨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
1932년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도 실업과 불황이 닥친 속에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도로시아는 농업과 노동에 관심이 많은 버클리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 폴 테일러를 만나게 되었는데 테일러는 캘리포니아의 긴급구호관리 현장 책임자로 북서부에서 몰려드는 이재민들의 생활조건을 조사하는 과제를 맡았고 테일러의 강의를 들으러 다닌 도로시아는 그의 조사템에 합류하여 사진을 찍었다. 1935년 늦게 테일러와 결혼했다.
1935년부터 1939년에 걸쳐 그녀의 활동은 소농과 농가, 이주노동자의 처지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은 일약 이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1941년 구겐하임 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12월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내 일본인들을 격리시켰고 랭은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작업을 맡았다. 1945년에는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의 교수로 초빙되었으며 1965년에 식도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사진 에세이를 제작하였다. 사후 도로시아의 작품은 오클랜드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3. 작품
- 랭의 상징적인 사진 : <이민자 어머니 (Magrant Mother)> #
이 사진은 캘리포니아 이주 농민들의 생활과 그 상태를 기록한 사진으로 이주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이주하며 생활했었다. 텐트 속에서 어린애에 둘러싸인 모습을 통하여 당시의 미국 노동자의 삶과 얼굴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에서 랭은 원본사진에서 어머니의 왼손 손가락이 기둥을 잡고 있는데 이 손가락을 흐리게 지운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에서 랭은 원본사진에서 어머니의 왼손 손가락이 기둥을 잡고 있는데 이 손가락을 흐리게 지운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