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07:46:56

데이비드 린

데이비드 린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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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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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기사 서임자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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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콧 셰링턴

(1922)
에드워드
빅터 애플턴

(1946)
리들리
스콧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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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벤팅
(1934)
에드먼드 힐러리
(1953)
게오르그 솔티
(1971)
시드니 푸아티에이
(1974)
찰리 채플린
(1975)
앨프리드 히치콕
(1980)
밥 호프
(1998)
앤드루 와일스
(2000)
로저 무어
(2003)
팀 버너스리
(2004)
조너선 아이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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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
(1705)
찰스 라이엘
(1848)
찰스 휘트스톤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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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
아서 코난 도일
(1902)
W. S. 길버트
(1907)
프랜시스 골턴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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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프레더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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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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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오언 리처드슨
(1939)
알렉산더 플레밍
(1944)
랠프 리처드슨
(1947)
로런스 올리비에
(1947)
존 길구드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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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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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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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마이클 아티야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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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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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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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이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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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E +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데이비드 린
(1953)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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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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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버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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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이시고니스
(1969)
에른스트
곰브리치

(1972)
리처드 애튼버러
(1976)
존 밀스
(1976)
월터 윈터보텀
(1978)
데이비드
애튼버러

(1985)
윌리엄 골딩
(1988)
피터 유스티노프
(1990)
이안 맥켈런
(1991)
안소니 홉킨스
(1993)
데릭 제이코비
(1994)
바비 찰튼
(1994)
사이먼 래틀
(1994)
조지 마틴
(1996)
마이클 갬본
(1998)
아서 C. 클라크
(1998)
엘튼 존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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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존 엘리엇
가디너

(1998)
톰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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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호손
(1999)
알렉스 퍼거슨
(1999)
프랭크 윌리엄스
(1999)
마이클 케인
(2000)
폴 스미스
(2000)
바비 롭슨
(2002)
앨런 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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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브루킹
(2004)
제임스 다이슨
(2007)
크리스토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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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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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칼 젠킨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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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데이비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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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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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이클 페일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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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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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프라이스
(2021)
존 부어만
(2022)
브라이언 메이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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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섀클턴
(1909)
윌리엄 브래그
(1941)
리처드 돌
(1971)
잭 브라밤
(1978)
지미 새빌
(1990)
클리프 리처드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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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스털링 모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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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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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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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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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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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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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I 평생 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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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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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시상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인해 시상식 개최가 2년 연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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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
'''[[틀: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Academy Award for Best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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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1929년)
제2회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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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제4회
(1932년)
제5회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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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마일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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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마일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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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피)
프랭크 보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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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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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1948년)
마이클 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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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맥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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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와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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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와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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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 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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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1949년)
제22회
(1950년)
제23회
(1951년)
제24회
(1952년)
제25회
(1953년)
존 휴스턴
(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
조셉 L. 맨키위즈
( 세 부인)
조셉 L. 맨키위즈
( 이브의 모든 것)
조지 스티븐스
( 젊은이의 양지)
존 포드
( 말 없는 사나이)
제26회
(1954년)
제27회
(1955년)
제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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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1957년)
제30회
(1958년)
프레드 진네만
( 지상에서 영원으로)
엘리아 카잔
( 워터프론트)
델버트 만
( 마티)
조지 스티븐스
( 자이언트)
데이비드 린
( 콰이 강의 다리)
제31회
(1959년)
제32회
(1960년)
제33회
(1961년)
제34회
(1962년)
제35회
(1963년)
빈센트 미넬리
( 지지)
윌리엄 와일러
( 벤허)
빌리 와일더
(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로버트 와이즈
제롬 로빈스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데이비드 린
( 아라비아의 로렌스)
제36회
(1964년)
제37회
(1965년)
제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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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1967년)
제40회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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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
조지 큐커
( 마이 페어 레이디)
로버트 와이즈
( 사운드 오브 뮤직)
프레드 진네만
( 사계절의 사나이)
마이크 니콜스
( 졸업)
제41회
(1969년)
제42회
(1970년)
제43회
(1971년)
제44회
(1972년)
제45회
(1973년)
캐럴 리드
( 올리버!)
존 슐레진저
( 미드나잇 카우보이)
프랭클린 J. 샤프너
( 패튼 대전차군단)
윌리엄 프리드킨
( 프렌치 커넥션)
밥 포시
( 카바레)
제46회
(1974년)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제49회
(1977년)
제50회
(1978년)
조지 로이힐
( 스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대부 2)
밀로스 포먼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존 G. 아빌드센
( 록키)
우디 앨런
( 애니 홀)
제51회
(1979년)
제52회
(1980년)
제53회
(1981년)
제54회
(1982년)
제55회
(1983년)
마이클 치미노
( 디어 헌터)
로버트 벤튼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로버트 레드포드
( 보통 사람들)
워렌 비티
( 레즈)
리처드 애튼버러
( 간디)
제56회
(1984년)
제57회
(1985년)
제58회
(1986년)
제59회
(1987년)
제60회
(1988년)
제임스 L. 브룩스
( 애정의 조건)
밀로스 포먼
( 아마데우스)
시드니 폴락
(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올리버 스톤
( 플래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마지막 황제)
제61회
(1989년)
제62회
(1990년)
제63회
(1991년)
제64회
(1992년)
제65회
(1993년)
배리 레빈슨
( 레인 맨)
올리버 스톤
( 7월 4일생)
케빈 코스트너
( 늑대와 춤을)
조나단 드미
( 양들의 침묵)
클린트 이스트우드
( 용서받지 못한 자)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제68회
(1996년)
제69회
(1997년)
제70회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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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
( 타이타닉)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73회
(2001년)
제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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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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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
( 피아니스트)
제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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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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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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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파티드)
조엘 코엔
에단 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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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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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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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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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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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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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마을)
데이비드 린
(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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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칸델라리아)
빌리 와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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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미넬리
(지그펠드 폴리스[1])
자크 베케르
(앙트완과 앙트와네트[2])
벤 샤프스틴
( 덤보[3])
에드워드 드미트릭
(십자포화[4])
르네 클레망
(패배자의 최후[5])
}}} ||
데이비드 린
Sir David Lean
CBE
파일:David_Lean.jpg
이름 데이비드 린 (David Lean)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08년 3월 25일
서리주 크로이던
사망 1991년 4월 16일 (향년 83세)
런던 라임하우스
직업 영화 감독, 영화 제작자, 각본가, 편집자
신체 185cm
1. 개요2. 생애3. 작품 특징
3.1. 비판
4. 필모그래피5. 기타

[clearfix]

1. 개요

영국의 영화 감독, 영화 제작자, 각본가, 편집자.

생전 40여년이 넘는 활동 기간 동안 단 16편의 영화만을 찍었지만, 영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들 중 한 명으로 꼽히며[6], 콰이 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같은 대작 서사시 영화로 유명한 감독이자 1940년대와 1950년대 영국 영화를 대표하는 고전적 스타일 영화의 거장이기도 하다.

또한 찰스 디킨스 E. M. 포스터 같은 고전 영문학가들의 소설이나 희곡을 영화로 옮기는 데 능해, 문학을 가장 잘 영화화하는 감독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7]

2. 생애

1908년 3월 25일, 영국 크로이던에서 태어나 1927년에 TV 스튜디오에 입사해 슬레이트 보이로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편집 보조, 카메라 보조 일을 거친 뒤, 촬영 감독이 되었다가 뉴스 영화사로 옮겨 편집 기사로서 일을 하게 되며 실력을 쌓았고, 1930년대에는 꽤 촉망받는 편집 기사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8][9]

편집 기사로서 실력을 인정받은 데이비드 린은 1942년 전쟁 프로파간다 영화 《토린호의 운명》을 극작가 노엘 코워드와 공동 감독하며 장편 연출 데뷔를 하게 된다.[10]

이후 그는 노엘 코워드와 협업을 이어가며 코워드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깁슨 가족 연대기》 (1944), 《즐거운 영혼》 (1945), 《 밀회》 (1945) 등의 작품을 연달아 감독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밀회》가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두며 데이비드 린의 명성을 쌓게 된다.

《밀회》의 성공 이후 데이비드 린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작가인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 위대한 유산》과 《 올리버 트위스트》를 영화화하게 되고, 두 작품이 모두 성공하면서 데이비드 린은 '문학을 가장 잘 영화화하는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1950년대에 들어서 《매들린》, 《소리의 장벽》, 《홉스의 사위 고르기》 등의 수작을 감독한 데이비드 린은 50년대 중반에 이르자 캐서린 헵번[11]을 주연으로 한 《여정》을 기점으로 할리우드 자본을 축으로 한 다국적 대작 영화 쪽으로 연출 방향을 돌렸고, 피에르 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1957년작 《 콰이 강의 다리》를 통해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1960년대에 이르자 당시 기준으로 1,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초대작 《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7,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을 성공시키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영화화해 역시 1,100만 달러를 들인 대작 《 닥터 지바고》마저 1억 1,700만 달러라는 흥행 대성공[12]을 이루며 데이비드 린 감독의 명성은 정점을 찍게 된다.

그러나 《닥터 지바고》 이후 린의 후기작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을 원작으로 한 1970년작 <라이언의 딸>은 영국에서 1년간 장기상영됐을 만큼 관객의 사랑을 모았지만 평단의 집요한 비판에 의욕을 잃은 린은 무려 14년간을 칩거 상태로 보냈다. 다만 이는 <라이언의 딸> 이후 영국 영화계 자체가 불황에 들어서고 린 본인도 영화계 트렌드에서 밀려난 이미지였기에[13] 입지가 좁아졌던 부분도 있었다. 14년이 지난 1984년, E. M. 포스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인도로 가는 길》로 복귀해 호평을 받는다.

이후 여든이 넘은 나이에 후기작에서 함께 협업했던 각본가 로버트 볼트와 함께 조지프 콘래드의 16세기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노스트로모>를 영화화하던 도중, 1991년 4월 16일 영국 런던에서 촬영 현장에서 쓰러진 뒤 세상을 떠났다.

3. 작품 특징

단순하면서 중후한 화면 구성으로 고전 영화계의 화면 미학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으며, 정갈하면서 아름다운 영상미의 고전극이나 거대한 자연 풍경을 아주 멀리서 사물을 잡아내는 '익스트림 롱 샷'으로 드넓게 담아내면서도 빛을 잘 활용해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편집 기사로 활동했던 초창기 이력의 영향으로 영화 속 편집 장면에서 많은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14]

3.1. 비판

1960년대 즈음부터는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은근한 백인 우월주의, 구체적으로는 유럽 및 서구 우월주의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15]

린 감독의 대표작인 《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나 《인도로 가는 길》 모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랍인들이나 일본인들, 인도인들 같은 아시아인들에 대한 묘사로 상당히 비판을 받은 바 있으며 특히 《인도로 가는 길》의 경우 인도 극우들이 엄청나게 비난했으며 대다수 인도인들의 여론도 좋지 않았던 영화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영화 전체에 마치 '인도는 무식하니까 영국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라는 느낌이 깔려있다는 의견마저 있다.

다만 위 세 작품 모두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 한 것이며, 오히려 린 감독의 경우 원작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도 집필자의 시각상 필연적으로 나오는 제국주의적인 시각이나 아시아인들에 대한 비하를 상당히 편집해서 공정하게 그린 편이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또한 상술한 문학적인 성향 때문에 문학 각색물 같다고 까는 평론가들도 있었다. 영국 영화 항목에서 고다르랑 트뤼포가 깠던 부정적인 의미로 영국 영화스러움을 거론할 때 항상 꼽히는 감독이다.[16] 전반적으로 영화 고유의 방법론을 중시하는 평론가나 감독들에게는 평가가 짠 경향이 있다.

또 다른 단점으로는 《 닥터지바고》가 있는데, 원작의 사색과 자유의지에 대한 고찰이 영화에서는 대이비드 린 특유의 미장센으로 배경만 보여주고 끝났다는 비판이다. 다만 이는 책이라는 매체가 영화라는 영상매체로 변환되면서 어쩔수없었다는 변론도 있다.

4. 필모그래피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81818><tablebgcolor=#181818>
데이비드 린 감독 장편 연출 작품
,(편집 참여작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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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제목 연출 각본 편집 비고
1942 토린호의 운명
In Which We S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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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깁슨 가족 연대기
This Happy B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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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즐거운 영혼
Blith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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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밀회
Brief Enco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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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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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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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정열적인 친구들
The Passion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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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매들린
Madel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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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소리의 장벽
The Sound Bar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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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홉슨의 사위 고르기
Hobson'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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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여정
Summer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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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콰이 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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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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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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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라이언의 딸
Ryan's Dau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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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인도로 가는 길
A Passage to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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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 요절한 제임스 딘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데이비드 린은 자신의 후기 대표작 <라이언의 딸>에 제임스 딘 닮은꼴 배우 크리스토퍼 존스(Christopher Jones)를 캐스팅했는데 문제는 이 크리스토퍼 존스가 인간 말종이었단 점이다. 영화가 한창 촬영 중이던 1969년, 전 연인 올리비아 허시에게 데이트 폭력을 저질렀다. 심지어 당시 허시는 만18세로 미성년자였다.


[1] 뮤지컬 코미디 부문. [2] 심리 애정 영화 부문. [3] 애니메이션 디자인 부문. [4] 사회 영화 부문. [5] 모험 범죄 영화 부문. [6] 직접적으로 인터뷰 등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감독들만 해도 스탠리 큐브릭,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이지, 조지 루카스, 스파이크 리, 세르조 레오네, 존 부어만, 폴 토머스 앤더슨, 기예르모 델 토로, 오우삼, 조 라이트, 크리스토퍼 놀란 등 수없이 많다. [7] 대표작 콰이 강의 다리와,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모두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었고, 하술하듯 죽기 직전까지도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노스트로모》를 촬영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8] 이 시절 주로 전쟁터에서 직접 공수된 필름을 편집해서 뉴스릴로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시간에 쫓긴 나머지 본능에 따라 손이 가는 대로 편집한 뒤 나중에 작업실 뒤편 마당을 거닐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가를 점검하면서 영화 편집의 리듬감을 익혔다고 한다. [9] 즉 보다시피 촬영 감독과 편집 감독 경력이 둘 다 있어, 영상에 관한 것은 모두 통찰했다고 볼 수 있다. 완벽한 영상미의 비결은 바로 이것인 듯. [10] 그 이전에도 1941년작 '바바라 소령'의 편집에 참여하며 공동 연출자 중 한 명이기도 했지만, 크레딧에는 이름이 기재되지 않았다. [11] 캐서린 헵번은 함께 작업한 감독 중 데이비드 린을 가장 존경했다. [12] 2020년 기준으로 물가 상승률을 적용할 경우 역대 가장 성공한 영화 9위라는 엄청난 대성공이다. [13] 당장 린과 반대되는 '앵그리 영 맨' 사회파 사실주의 감독들도 중견에 들어서던 시절이었다. [14] 특히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성냥을 불어 끄자 사막의 여명으로 하드컷이 되는 씬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화인들 사이에서 영화사상 최고의 명편집으로 뽑히고 있다. [15] 이러한 원인은 아무래도 데이비드 린이 대영제국 시대를 살았던 영국인이었던지라, 사고방식에서 보수적인 면이 컸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16] 이외에는 제3의 사나이로 유명한 캐롤 리드, 바질 디어든이 꼽힌다. [17] 다만 후기작으로 갈수록 주연에서 비중 있는 조연 급으로 비중이 줄어든다. [18] <콰이 강의 다리>는 영국군 일본군의 악연이니 영국인 데이비드 린 입장에선 감독할 이유가 충분했지만, 진주만 공습 미국군과 일본군의 악연이다. 린이 섣불리 나설 순 없는 소재이기도 했고, 공교롭게 이 시기는 린이 <라이언의 딸>을 끝내고 14년의 긴 칩거 생활에 들어가는 시기와 맞물린다. 그래서 진작에 거절한 프로젝트인데, 20세기 폭스 측은 요 부분은 쏙 빼놓고 " 데이비드 린 감독님에게도 시나리오 초안을 보냈다."까지만 구로사와에게 이야기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