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9:27:39

로자 파크스

로자 파크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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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Congressional Gold Medal
미합중국 의회 명예 황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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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머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스 2세
대위 에드워드 매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턴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콥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스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년,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덩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더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재러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랜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컴 중위 데이비드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새뮤얼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선장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스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즈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M. 코핸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랜시스 퀸 윌리엄 시넛
1942년 1945년 1946년
롤런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전쟁의 참전 용사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머스 앤서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팀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머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네이선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앤드루 와이어스 로런스 록펠러 대장 매튜 B. 리지웨이 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콜린 파월
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시어도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M.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셸턴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러시 하이트 박사 조셉 디레인
해리 & 일라이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달라이 라마 14세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 산 수 치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윌리엄 브룩 3세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군무원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널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제100 보병대대
제442 보병연대 전투단
군사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전우회 9.11 테러 참사 사망자 라울 발렌베리 애디 메이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럴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 미국의 공군 에이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 OSS
2017년 2018년
밥 돌 래리 도비 제2차 세계 대전
중국계 미국인 참전 용사
USS 인디애나폴리스 승무원 안와르 사다트
2019년
스티브 글리슨 캐서린 존슨 크리스틴 다든 도로시 본 메리 잭슨
2019년 2020년 2021년
무명의 수여자들 그렉 르몬드 미국 국회의사당 경찰
워싱턴 광역 경찰국 소속 경찰관
제369 보병연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전사한 13명의 장병
2022년 2023년
미 육군 제23부대 본부 특수부대
제3133 신호 복무 중대
제6888 중앙우편대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상선 선원
에밋 틸
메이미 틸모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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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선정 세계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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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을 선정했다.
긍정적 영향을 미친 여성들뿐 아니라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여성들'을 뽑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들 혹은 논란 있는 인물들도 있다.
성인들
성모 마리아 예수의 테레사 마더 테레사
지도자들
앙겔라 메르켈 베나지르 부토 예카테리나 2세 캐시 프리먼 서태후
클레오파트라 코라손 아키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다이애나 스펜서
지우마 호세프 에디트 크레송 엘레오노르 다키텐 엘리너 루스벨트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2세 엘런 존슨 설리프 에바 페론 골다 메이어 그로 할렘 브룬틀란
한나 수호츠카 하트셉수트 인디라 간디 이사벨 1세 제니 시플리
줄리아 길라드 칼레다 지아 킴 캠벨 마거릿 대처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로빈슨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미첼 바첼레트 미셸 오바마 박근혜
잔 다르크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쑹메이링 탄수 칠레르 테오도라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빅토리아 여왕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비올레타 차모로 측천무후
잉락 친나왓
발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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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마이트너 마거릿 미드 마리아 미첼 마리 퀴리 마리암 미르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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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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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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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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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 안네 프랑크 토니 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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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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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엄 마케바 오프라 윈프리 사라 베르나르 움 쿨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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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넬리 테일로 로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셜리 치점 빅토리아 우드훌
참정권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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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프랜시스 하퍼 프랜시스 윌러드 해리엇 스탠턴 블래치 헤르타 아일톤
후다 샤아라위 아이다 벨 웰스 제인 애덤스 줄리아 워드 하우 케이트 셰퍼드
루크레티아 모트 루시 번스 루시 스톤 메리 처치 테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이 라이트 슈 밀리센트 포셋 소저너 트루스 수전 앤서니 버지니아 루이자 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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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100: The Most Important People of the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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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멀린 팽크허스트 헬렌 켈러 로자 파크스 서굿 마셜 에드먼드 힐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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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린드버그 재키 로빈슨 미군 펠레 안네 프랑크
빌 윌슨[1] 안드레이 사하로프 체 게바라 다이애나 스펜서 하비 밀크
같이 보기: 지도자 & 혁명가 부문, 과학자 & 사상가 부문, 예술가 & 연예인 부문, 건설자 & 거인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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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AOL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가장 위대한 미국인’ 명단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로널드 레이건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6위 7위 8위 9위 10위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엘비스 프레슬리 오프라 윈프리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빌리 그레이엄 토머스 제퍼슨 월트 디즈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토머스 에디슨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존 F. 케네디 밥 호프 빌 게이츠 엘리너 루스벨트 랜스 암스트롱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무하마드 알리 로자 파크스 라이트 형제 헨리 포드 닐 암스트롱
영문 위키 참고.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colbgcolor=#000><colcolor=#fff> 로자 파크스
Rosa Parks
파일:로자_파크스.webp
본명 로자 루이즈 매콜리 파크스
Rosa Louise McCauley Parks
출생 1913년 2월 4일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
사망 2005년 10월 24일 (향년 92세)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묘소 미국 워싱턴 D.C. 미국 국회의사당 캐피톨 힐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인권 운동가
신체 160cm
학력 앨라배마 주 흑인교원대학교 (중퇴)
배우자 레이먼드 파크스 (1932년 결혼, 1977년 사별)
종교 개신교( 감리회)[1]

1. 개요2. 생애
2.1. 평범한 주부2.2.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2.3. 흑백차별 철폐2.4. 세상을 바꾸다
3. 평가4.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흑인 인권 활동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이끌고 이를 성공시켜 미국 흑인의 인권 신장을 이뤄냈다.

2. 생애

2.1. 평범한 주부

1913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으로, 흑인을 차별하는 분위기로 인해 남편 레이먼드 파크스와 함께 NAACP(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에 가입했다.

다른 미국 흑인들처럼 파크스 부부는 가난하여 몽고메리에서 여러가지 잡일을 하면서 사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파크스는 남편의 외조로 고등학교 교육을 받았고[2] NACCP 지부에서 간사와 서기를 맡을 정도로 나름 열성적인 흑인 민권 활동가였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 이전까지는 평범한 주부였다가 자리 이동 거부 사건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인상이 씌워져 있지만 이는 이후의 버스 보이콧 운동과 민권 운동 과정에서 대중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어느 정도 만들어진 것[3]으로 실제로는 이전부터 이미 흑인 운동에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2.2.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osaparks_bus.jpg
재연사진이며 뒤에 있는 사람은 당시 사건 보도를 맡은 UPI 기자 니콜라스 크리스(Nicholas C. Chriss)다.
사건은 1955년 12월 1일에 그녀가 일하던 백화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던 중에 일어났다. 당시 미국에는 버스 안에서도 흑백으로 나눠 좌석을 차별하는 법이 존재했다.

* 버스 기사는 반드시 백인이어야 한다.
* 흑인과 백인은 서로 지정된 좌석에서 격리된다.
* 버스 앞에서부터 네 줄은 반드시 백인들만이 앉아야 한다. 설령 버스 안이 비어 있어도 흑인은 앉지 못한다.
* 버스가 차면 흑인들은 백인들을 위해서 본인들의 자리를 비워야 한다.
*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경우 앞에서 뒤로 걸어가면 백인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으므로 앞문 쪽으로 가 요금을 내고 내린 뒤 뒷문으로 다시 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흑인이 내리면 버스 기사가 흑인을 무시하고 돈만 받고 버스를 출발시키는 경우도 상당했다.

앨라배마는 지금도 보수적인 미국 남부에 위치하며 6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곳으로 악명높았다. 전성기에는 KKK단이 대놓고 야간 행진을 했으며 도로 표지판으로 KKK 광고를 했을 정도다. 이로 인해 당시 인종차별 반대론자들은 미국 남부에서 활발히 행동했다.

이 날 그녀는 버스의 흑인 전용 좌석에 앉아 있었지만 버스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백인 탑승객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백인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지자 버스 기사는 흑인들에게 버스에서 흑인 좌석을 양보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그녀가 흑인 좌석에 앉아 있었고 흑인 좌석에 앉은 자신이 백인에게 양보할 이유가 없다고 하며 양보를 거부했다. 이에 분노한 버스 기사는 그녀를 경찰에 신고했고 그녀는 경찰에 체포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사건은 흑인 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흑인들은 이 사건으로 버스를 타지 않을 것을 결의하면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당국은 그녀에게 불법 보이콧을 했다는 명목으로 14달러라는 당시 흑인들의 경제력으로는 납부하기 어려울 정도의 벌금형을 선고했는데 이 결정은 오히려 버스 보이콧 운동에 불을 지피는 결과만 낳았다.

2.3. 흑백차별 철폐

결국 연방대법원이 버스 안에서의 차별을 철폐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380여 일이 넘는 버스 보이콧 운동은 막을 내렸으며 이 사건에서 자신감을 얻은 흑인들은 유색인종 차별 반대 운동을 더더욱 활발하게 벌였고 결국 1970년대 들어서는 흑인과 백인 사이의 법적 차별은 완전히 사라졌다.

반면 당사자인 그녀는 이 사건 이후 계속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협박으로 몽고메리에서 살 수 없어져 디트로이트로 이주했다.[4] 한편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존 콘이어의 비서로 1988년까지 19년간 일했다.

2.4. 세상을 바꾸다

파일:external/www.achievement.org/par0-021a.gif

그녀는 이 사건으로 20세기 중요한 인물 100인으로 뽑혔고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훈장을 받았으며 미국 의회로부터도 명예 황금 훈장을 받는 영예를 누렸으며 2005년 건강이 악화되어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5] 12명의 조카들이 그녀의 임종을 지켜보았으며 미국 역사상 최초로 미국 국회의사당 로툰다에 이틀간(2005년 10월 30~31일) 관이 안치된 여성이자 첫 번째 민간인이 되었다. 장지는 디트로이트의 우드론 묘지(Woodlawn Cemetery)다.

3. 평가

그녀의 좌석 양보 거절사건은 현대 시민운동의 주요 유형 중 하나인 시민 불복종 운동을 보여준 사례로 꼽히고 있으며 미국과 전 세계의 차별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시민단체 회원이기 이전에는 평범한 여성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 현대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전설이 될 수 있었다. 진지하게 미국사를 다루는 책 중에서 이 사건이나 그녀의 이름이 없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미국 의회는 그녀를 '민권의 영부인'이자 '자유운동의 어머니'로 칭송했다. #

그녀가 촉발한 버스 보이콧 운동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평범한 주부의 저항활동에서부터 시작된 나비 효과는 아니었다. 실제로는 이전의 여러 실패 사례들을 고려해 이루어진 체계적인 시민불복 종 운동이었다. 그녀는 이전의 유사한 사건인 클로뎃 콜빈 사건에서는 직접 변호비용을 모금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로자 파크스 이전의 사례들은 대다수가 사례 당사자의 도덕적 흠결로 인해 대중의 호응을 제대로 얻지 못하거나 평범한 일반인이 주변의 압박을 받아 포기하면서 운동이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6] 그녀는 이러한 실패 사례들을 고려해 백인들이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요소들을 확실하게 배제하고 철저하게 순수한 피해자의 위치를 점했을 뿐만 아니라 인권 운동가인 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신념을 지켜서 버스 사건을 비롯해 이후의 흑인 인권 운동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사건에는 대중의 최적의 조건을 갖춘 인물을 대표로 내세워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그녀는 그런 부분에서 완벽한 조건을 가진 인물이었다.

물론 그녀가 완벽하게 준비된 조건의 인물이었다는 점이 이 운동의 의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당시 흑인이 받던 차별은 실존하던 문제였고 이전의 흑인 인권운동들이 약점 하나에 꼬투리를 잡혀 무너지는 걸 봐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녀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은 이유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그저 몸이 피곤했기 때문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난 신체적으로 힘들지 않았으며, 힘들다 하더라도 그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느날보다 더 힘든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종종 나에 대해서 떠올리는 것과 달리, 나이가 든 사람도 아니었다. 난 마흔두 살이었다. 내가 정말로 피곤함(진절머리)[7]을 느꼈던 것은 바로 참고 굴복해야 하는 일 그 자체였다.
People always say that I didn't give up my seat because I was tired, but that isn't true. I was not tired physically, or no more tired than I usually was at the end of a working day. I was not old, although some people have an image of me as being old then. I was forty-two. No, the only tired I was, was tired of giving in.
Parks, Rosa; James Haskins (1992). Rosa Parks: My Story. Dial Books. p. 116.

4. 여담

  • 아웃캐스트의 앨범 Aquemini의 싱글로 ’Rosa Parks’라는 곡이 있었는데 로자 파크스 재단이 해당 곡이 그녀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며 소송한 적이 있다. 곡 자체에는 그녀에 관한 내용이 거의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소송 자체가 말이 안 되는 내용이였고 아웃캐스트가 승소하였다.


[1] 일각에서는 그녀가 2005년에 불교로 개종했다고 주장한다. 법보신문 기사 트라이사이클 신문. 실제로 불교에도 관심을 보였다. # 그러나 뉴욕 타임즈에 올려진 글에 의하면 법보신문이 인용한 더글라스 브린클리는 그녀를 아프리카 감리교 감독교회의 독실한 신자로 남아있었다고 작성했으며, 그녀의 전기를 집필한 잔느 테오하리스도 그녀를 기독교 신자로 묘사했다. 워싱턴 포스트에서도 그녀를 기독교인으로 언급했다. [2] 당시 흑인들 중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은 7%정도에 불과했다. 즉, 고등학교 교육만 받아도 당시의 흑인사회에서는 나름 엘리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는데 심지어 로사는 남성들보다 훨씬 더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여성이었다. [3] 니전까지 흑인 일반인들은 흑인 차별에 환멸감을 느끼면서도 나서는 것은 다소 두려워하고 인권운동도 원래 하던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있었는데 로자 파크스가 이 운동에 트리거를 당겼고 그 과정에서 '파크스 부인 같은 평범한 사람도 이런 식으로 저항을 할 수 있다.'고 일반 흑인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흑인 민권 운동가 사회에서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4] 이 때 그녀가 디트로이트로 이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마이클 일리치는 그녀에게 좋은 아파트를 소개시켜줬고 10년 이상 월세도 대납해줬다고 한다. [5] 남편은 1977년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로자 파크스는 재혼하지 않았다. [6] 대표적으로 클로뎃 콜빈은 15세에 백인 유부남과 관계를 맺어 임신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대중의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이전의 다른 피해자 중에는 직장의 백인 상사들이 해고한다는 협박을 해서 항소를 포기한 경우도 많았다. [7] 이 구절에서 나오는 tired는 앞에 나온 tired와는 묘하게 의미를 틀어 중의성을 함의하고 있다. 이쪽의 tired는 피곤함과 함께 진절머리가 난다는 의미도 들어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sick and tired of라는 숙어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