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20:31:37

말랄라 유사프자이

<colbgcolor=#808080><colcolor=#fff> 말랄라 유사프자이
Malala Yousafzai
파일:말랄라.jpg
언어별
성명
ملاله یوسفزۍ ( 파슈토어)
ملالہ یوسفزئی ( 우르두어)
출생 1997년 7월 12일 ([age(1997-07-12)]세)
파키스탄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 민고라
국적
[[파키스탄|]][[틀:국기|]][[틀:국기|]]
|
[[캐나다|]][[틀:국기|]][[틀:국기|]] (명예 시민권)
직업 사회운동가, 前 블로거
학력 에지배스턴 고등학교 (졸업)
옥스퍼드 대학교 ( PPE / 학사)
경력 UN 평화대사 (2017.4. ~)
수상 필라델피아 자유메달 (2014)
세계어린이상 (2014)
노벨평화상 (2014)
배우자 아세르 말리크 (2021년 결혼)
종교 이슬람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평가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밸리 출신의 여성 교육 운동가이자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

2. 생애

말랄라의 아버지 지아우딘은 엄청나게 진보적인 교육자로서 말랄라가 태어났을 때 기뻐했다.[1] 심지어 족보에 파란 잉크로 이름을 기재했는데, 아들이 아니면 족보에 잘 기재하지 않는 이 지역에서 그랬다는 건 성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이걸 뭐라고 하던 친척들에게 당당하게 대꾸하였으며, 남동생들에게도 말랄라를 차별하지 않도록 가르쳐왔다. 교육자이기도 한 아버지는 남녀공학 학교까지 운영하며 여자에게도 교육 받을 기회를 줘야 하며, 타 종교를 억압하지 말고 공존을 인정해야 한다는 개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2]. 말랄라가 가진 사상과 생각 역시 개방적인 아버지 영향이 큰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세력을 넓히면서 파키스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드러났다. 말랄라의 가족은 파키스탄 북부 지방에 거주 중이었기 때문에 아버지 또한 탈레반에게 비난을 받고, 학교도 심심치 않게 테러를 당해야 했다.

말랄라도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지만, 탈레반이 자신이 사는 곳을 망쳐놓고 여성의 인권을 짓밞는 것을 보고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당시 11살이었던 말랄라는 자기 목소리를 냈다. 2009년 1월, 영국 공영방송 BBC 우르두어 블로그에 '굴 마카이'라는 필명으로 탈레반 정권 아래에서의 삶과 그들이 억압한 여성들에 대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말랄라의 글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 탈레반이 2011년 12월에 제1회 파키스탄 청소년평화상을 수상한 뒤의 말랄라에게 살해 협박을 했는데, 말랄라는 개의치 않고 용감하게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갔다.

그러나 탈레반의 살해 협박은 그대로 실현되었는데 2012년 10월 9일, 말랄라는 하굣길 스쿨버스 안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탈레반 병사에게 총을 맞았다. 말랄라의 기억에 따르면, 한 남자가 운행 중이던 스쿨버스를 멈춰 세우고 버스에 올라타서 "여기서 누가 말랄라냐?"라고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전부 쏘겠다"고 하자, 그녀는 신원을 밝혔고, 그 남자는 곧바로 말랄라에게 다가와서 총을 쐈다고 한다. 이때 그녀가 맞은 총알은 이마와 얼굴, 그리고 목을 관통해 척추 근처 어깨에 박혔는데[3] 현지 병원으로 옮겨진 말랄라는 부어오른 뇌 때문에 두개골 일부를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고[4], 집중 치료를 위해 10월 15일 영국 버밍엄의 퀸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아버지는 당시 인터뷰에서 "우리 딸이 장한 겁니다. 정말 장한 겁니다. 망할 광신도, 아니 이슬람을 더럽히는 쓰레기들은 이런 어린 소녀에게도 총을 들이대면서 세계에서 자기 이름을 다시 더럽게 알렸군요."라며 통곡했다.

이후 탈레반은 말랄라가 살아난다면 그녀와 아버지 모두 죽일거라고 공언했다.
파일:external/www.cbc.ca/malala-yousafzai-surgeries-1.jpg
입원 당시의 말랄라
이후 2013년 1월에 무사히 퇴원했다. 단, 신변 위협[5]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가족, 아버지를 옹호하던 친척 몇몇은 모두 고국인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에 체류 중이다. 아버지 지아우딘은 버밍엄 주재 파키스탄 영사관에서 교육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후 말랄라는 유엔(UN) 본부 단상에 선 것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와 연설 및 말랄라 펀드 조성을 통해 파키스탄은 물론 시리아, 나이지리아, 케냐 등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와 만나서 파키스탄에 민간인이 무인기 공격에 휩쓸려 죽기 때문에 멈춰달라고 하였다.

노벨평화상 수상 당시에 오전 10시 화학 수업에서 구리 전기분해를 배우던 도중에 선생님을 통해 수상 소식을 처음 전해들었다. 말랄라는 수상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곧바로 물리 수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2017년 7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옥스퍼드 대학교의 레이디 마가렛 홀으로부터 조건부 합격 통지를 받아 PPE[6] 전공으로 입학했다. # 2020년 6월에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했다. #

2018년 3월 31일에는 탈레반의 총격 6년만에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고향인 스와트밸리에 도착했다. #

캐나다 명예 시민권을 받았다.

2021년 3월에는 애플과 파트너십을 맺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했다. #

파슈토어, 우르두어, 영어가 유창하다.[7]

CNN이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7월호 영국 보그의 커버걸이 됐다고 보도했다. #

탈레반 점령 이후 아프간 언론사 TOLO NEWS와 인터뷰를 가졌다. #

2021년 11월에 파키스탄 크리켓 위원회의 경기력 향상센터 단장 아세르 말리크와 결혼했다. #

2023년 개봉한 파키스탄 영화 '조이랜드'에 총괄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2024년 개봉한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마지막 해녀들'에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3. 평가

여성인권이 보편화된 지역에선 훌륭한 평가를 받는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총을 맞아 죽을뻔 했고 신변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 높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단, 탈레반을 대하고 살아야 하는 서북부 파키스탄 현지에서 유사프자이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린다. 한쪽은 위에 나온 서술대로의 평가, 다른 평가는 계집 주제에 괜히 삽질해서 공동체에 모욕을 주었다는 평가인데, 이 지역에선 후자가 압도적이다. 왜냐면 워낙 성차별이 심한 지역이라서 아직도 여성의 권리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 다만 그들을 무조건 욕할 수도 없는데, 스와트밸리 주는 아프가니스탄에 가까운 만큼 탈레반이 극성을 부리니 그녀를 지지해도 내색하지 못하고 욕하며 탈레반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꽤 많다.《 내가 말랄라를 싫어하는 이유》라는 글이 남존여비 /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갇힌 후자의 의견을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다.[8]

그리고 류샤오보에 대한 중국 당국의 처사를 비난한 것에 대해서 중국 매체들이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고 믿겠지만 서방 언론이 그런 언급을 하도록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이며 그녀는 도구로 쓰였을 뿐"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 그리고 이후 중국 정부는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 당시 탈레반 정권을 승인, 지지하였다.

말랄라에 대한 다수 여론이 좋지 않은 파키스탄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그녀를 비판한다거나 탄압하지는 않는다. 파키스탄 정부의 성향은 탈레반과 다르고[9] 국제 여론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기 때문.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탈레반이나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면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파진다.

파키스탄과 앙숙지간인 인도 정부는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칭찬하는 성명을 낸 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고향으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도 탈레반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위험으로 인해 신변이 안전하지 못하며, 부패한 파키스탄 정부가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리라는 보장이 없다.[10]

4. 둘러보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5px -1px -5px; word-break:normal"
{{{#555,#aaa
<rowcolor=#cd9f51> 1901 1902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앙리 뒤낭 프레데리크 파시 엘리 뒤코묑 샤를 알베르 고바
<rowcolor=#cd9f51> 1903 1904 1905 1906
파일:영국 국기.svg -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윌리엄 랜들 크리머 국제법학회 베르타 폰 주트너 시어도어 루스벨트
<rowcolor=#cd9f51> 1907 1908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에르네스토 모네타 루이 르노 클라스 아르놀드손 프레드리크 바예르
<rowcolor=#cd9f51> 1909 1910 1911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벨기에 국기.svg -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국제평화국 알프레트 프리트
<rowcolor=#cd9f51> 1911 1912 1913 1917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벨기에 국기.svg 파일:적십자 기.svg
토비아스 아서르 엘리후 루트 앙리 라퐁텐 국제적십자위원회
<rowcolor=#cd9f51> 1919 1920 1921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우드로 윌슨 레옹 부르주아 얄마르 브란팅 크리스티안 랑에
<rowcolor=#cd9f51> 1922 1925 1926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리드쇼프 난센 오스틴 체임벌린 찰스 G. 도스 아리스티드 브리앙
<rowcolor=#cd9f51> 1926 1927 1929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페르디낭 뷔송 루트비히 크비데 프랭크 켈로그
<rowcolor=#cd9f51> 1930 1931 1933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영국 국기.svg
나탄 셰데르블롬 제인 애덤스 니컬러스 버틀러 노먼 에인절
<rowcolor=#cd9f51> 1934 1935 1936 1937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아서 헨더슨 카를 폰 오시에츠키 카를로스 라마스 로버트 세실
<rowcolor=#cd9f51> 1938 1944 1945 1946
파일:국제연맹기(1939).svg 파일:적십자 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svg
난센 국제난민 사무국 국제적십자위원회 코델 헐 에밀리 그린 볼치
<rowcolor=#cd9f51> 1946 1947 1949 1950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Quaker_star-T.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존 모트 퀘이커 봉사협회 존 보이드 오어 랠프 번치
<rowcolor=#cd9f51> 1951 1952 1953 1954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UN기.svg
레옹 주오 알베르트 슈바이처 조지 마셜 유엔난민기구
<rowcolor=#cd9f51> 1957 1958 1959 1960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파일:벨기에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레스터 피어슨 도미니크 피르 필립 노엘베이커 앨버트 루툴리
<rowcolor=#cd9f51> 1961 1962 1963 1964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적십자 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다그 함마르셸드 라이너스 폴링 국제적십자위원회 마틴 루터 킹
<rowcolor=#cd9f51> 1965 1968 1969 1970
파일:유니세프 로고.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국제노동기구 로고.svg 파일:미국 국기.svg
유니세프 르네 카생 국제노동기구 노먼 볼로그
<rowcolor=#cd9f51> 1971 1973 1974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베트남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빌리 브란트 헨리 키신저 레득토
(수상 거부)
사토 에이사쿠
<rowcolor=#cd9f51> 1974 1975 1976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숀 맥브라이드 안드레이 사하로프 베티 윌리엄스 메어리드 코리건
<rowcolor=#cd9f51> 1977 1978 1979
파일:국제앰네스티 로고.svg 파일:이집트 국기(1972-1984).svg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파일:인도 국기.svg
국제앰네스티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마더 테레사
<rowcolor=#cd9f51> 1980 1981 1982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파일:UN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아돌포 에스키벨 유엔난민기구 알바 뮈르달 알폰소 가르시아
<rowcolor=#cd9f51> 1983 1984 1985 1986
파일:폴란드 국기(1928–1980).svg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 파일:미국 국기.svg
레흐 바웬사 데즈먼드 투투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엘리 비젤
<rowcolor=#cd9f51> 1987 1988 1989 1990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파일:UN기.svg 파일:티베트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svg
오스카르 아리아스 유엔 평화유지군 달라이 라마 14세 미하일 고르바초프
<rowcolor=#cd9f51> 1991 1992 1993
파일:미얀마 국기(1974-2010).svg 파일:과테말라 국기.svg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아웅 산 수 치 리고베르타 멘추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
<rowcolor=#cd9f51> 1994 1995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파일:폴란드 국기.svg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 조지프 로트블랫
<rowcolor=#cd9f51> 1995 1996 1997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퍼그워시 회의 카를로스 벨로 조제 하무스오르타 조디 윌리엄스
<rowcolor=#cd9f51> 1997 1998 1999
-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국경없는의사회의 로고.svg
지뢰금지국제운동 존 흄 데이비드 트림블 국경없는의사회
<rowcolor=#cd9f51> 200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대중
}}}
}}}}}}}}}
[ 21세기 ]
##
||<rowbgcolor=#663334><rowcolor=#cd9f51><-2> 2001 || 2002 || 2003 ||

}}}}}} ||

파일:1200px-Encyclopædia_Britannica.svg.png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선정 세계의 여성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black,#whit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2019년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을 선정했다.
긍정적 영향을 미친 여성들뿐 아니라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여성들'을 뽑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들 혹은 논란 있는 인물들도 있다.
성인들
성모 마리아 예수의 테레사 마더 테레사
지도자들
앙겔라 메르켈 베나지르 부토 예카테리나 2세 캐시 프리먼 서태후
클레오파트라 코라손 아키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다이애나 스펜서
지우마 호세프 에디트 크레송 엘레오노르 다키텐 엘리너 루스벨트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2세 엘런 존슨 설리프 에바 페론 골다 메이어 그로 할렘 브룬틀란
한나 수호츠카 하트셉수트 인디라 간디 이사벨 1세 제니 시플리
줄리아 길라드 칼레다 지아 킴 캠벨 마거릿 대처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로빈슨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미첼 바첼레트 미셸 오바마 박근혜
잔 다르크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쑹메이링 탄수 칠레르 테오도라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빅토리아 여왕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비올레타 차모로 측천무후
잉락 친나왓
발견자들
에이다 러브레이스 어밀리아 에어하트 바버라 매클린톡 캐롤라인 허셜 도러시 호지킨
엘리자베스 블랙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히파티아 제인 구달 캐서린 존슨
리제 마이트너 마거릿 미드 마리아 미첼 마리 퀴리 마리암 미르자하니
레이첼 카슨 로잘린드 프랭클린 사카자위아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예술가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코코 샤넬 도로시아 랭 프리다 칼로 카라 워커
메리 카사트 쿠사마 야요이 자하 하디드
사회운동가들
앨리스 워커 앤절라 데이비스 앤 로이페 아얀 히르시 알리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엘프리데 옐리네크 그레타 툰베리 제인 폰다 주디 시카고 리마 보위
나오미 클라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수잔 팔루디 타우왁쿨 카르만 와리스 디리
말랄라 유사프자이 마거릿 생어 마리아 몬테소리 해리엇 터브먼 캐롤리 슈니먼
로자 파크스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에멀린 팽크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작가들
에밀리 디킨슨 제인 오스틴 사포 버지니아 울프 마거릿 애트우드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헬렌 켈러 J. K. 롤링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무라사키 시키부
시몬 드 보부아르 안네 프랑크 토니 모리슨
운동선수들
베이브 디드릭슨 빌리 진 킹 파니 블랑커스쿤 재키 조이너커시 미아 햄
나디아 코마네치 세레나 윌리엄스
퍼포머들
비욘세 엘라 피츠제럴드 캐서린 헵번 마돈나 메릴 스트립
미리엄 마케바 오프라 윈프리 사라 베르나르 움 쿨숨
정치인들
에이미 클로버샤 바바라 조던 캐롤 모즐리 브라운 엘리자베스 워런 프랜시스 퍼킨스
제럴딘 페라로 해티 캐러웨이 힐러리 클린턴 저넷 랭킨 매들린 올브라이트
낸시 펠로시 넬리 테일로 로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셜리 치점 빅토리아 우드훌
참정권주의자들
앨리스 폴 앨리스 스톤 블랙웰 캐리 채프먼 카트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 도리아 샤픽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프랜시스 하퍼 프랜시스 윌러드 해리엇 스탠턴 블래치 헤르타 아일톤
후다 샤아라위 아이다 벨 웰스 제인 애덤스 줄리아 워드 하우 케이트 셰퍼드
루크레티아 모트 루시 번스 루시 스톤 메리 처치 테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이 라이트 슈 밀리센트 포셋 소저너 트루스 수전 앤서니 버지니아 루이자 마이너
출처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23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알리 하메네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압둘라 2세
6위 7위 8위 9위 10위
무프티 타키 우스마니 모하메드 6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 알리 알시스타니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하비브 우마르 빈 하피즈 살만 알오우다 조코 위도도 아마드 무함마드 알타예프 마울라나 마무드 마다니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압둘라 빈 바야 모하마두 부하리 무함마드 빈 사두 아부바카르 3세 야흐야 촐릴 스타쿼프 알리 고마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하산 나스랄라 하비브 알 자인 알 아비딘 알지프리 함자 유수프 한손 아마드 티자니 빈 알리 키세 문니라 쿠베이시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무스타파 호스니 압둘아지즈 이븐 압둘라 아알 알 셰이크 우사마 알세예드 알아즈하리 샤 카림 알후사이니 알하비브 무함마드 루트피 빈 야흐야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압둘 말리크 알후티 마울라나 타리크 자밀 할리마 야콥 무함마드 알야코우비 세예드 호세인 나스르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우트만 타하 캘리그래퍼 셰이크 라체드 가노우치 사미아 술루후 하산 모하메드 살라 압델 파타 엘 시시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무크타다 사드르 마울라나 나주르 우르레만 무에즈 마수드 티모시 윈터(셰이크 압달하킴 무라드) 이브라힘 살레 알후세이니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모하메드 베차리 아미르 칼레드 아레프 알리 나예드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 셰이크 무함마드 일야스 아타르 콰디리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지명 인물 펼치기 · 접기 ]
압둘라 자와디 아몰리 무함마드 이스하크 파야드 딘 샴수딘 시에드 무함마드 나퀴브 알아타스 아크바르 아메드
잉리드 매트손 마흐무드 압바스 이스마일 하니예 안와르 이브라힘 마하티르 빈 모하맛
임란 칸 사디크 칸 아미누 아도 바예로 무프티 압둘 콰심 노마리 셰이크 누 켈러
무함마드 알아리피 자키르 압둘 카림 나이크 아헤드 태미 로제인 알하틀룰 말랄라 유사프자이
우구르 사힌 새미 유수프 셰이크 압둘라흐만 알수다이스 사디오 마네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
The Muslim 500 선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 10%,transparent 10%), linear-gradient(to right, #01411c 15%,transparent 15%), linear-gradient(to right, #01411c 15%, transparent 15%, transparent 100%,#01411c 100%), linear-gradient(to bottom, #01411c 10%,#01411c 100%)"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color=#fff><colbgcolor=#01411c> 상징 <colcolor=#000,#fff> 국가 · 국장
역사 역사 전반
시대 인더스 문명 · 베다시대 · 십육대국 · 마가다 · 마우리아 왕조 · 인도-그리스 왕국 · 인도-파르티아 왕국 · 쿠샨 왕조 · 굽타 왕조 · 델리 술탄국 · 무굴 제국 · 두라니 왕조 · 인도 제국 · 파키스탄 자치령
정치·치안·사법 정치 전반 · 행정 구역 · 파키스탄 대통령
외교 외교 전반 · 영연방 · 상하이 협력기구 ·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
경제 경제 전반 · 파키스탄 루피 · 넥스트 일레븐
사회 사회 전반
국방 파키스탄군 · 파키스탄 해군
문화 문화 전반 · 요리 · 비르야니 · 커리 · 파키스탄/성문화 · 파키스탄 영화 · 파키스탄 크리켓 국가대표팀 · 파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 우르두어
인물 사이드 아흐마드 칸 · 무함마드 이크발 · 모하마드 진나 · 줄피카르 알리 부토 · 베나지르 부토 · 말랄라 유사프자이 · 임란 칸
지리 힌두쿠시 산맥 · 인더스 강 · 훈자 · 인도 반도
사회 파키스탄 마피아
민족 파키스탄인 · 파키스탄계 한국인 · 신드인 · 펀자브인 · 칼라쉬인 · 파슈툰인 · 발루치인 · 카슈미르인 · 파샤이인 · 발티인 · 와키인 · 파키스탄계 영국인 · 파키스탄계 미국인
}}}}}}}}} ||

[1] 말랄라의 자서전《나는 말랄라》에 따르면 자국인 파키스탄을 " 아들을 낳으면 축포를 쏘고, 을 낳으면 커튼 뒤에 숨기는 나라"라고 표현하며 비판했다. 하지만 아버지 지아우딘은 말랄라가 태어난 걸 기뻐하였고, 말랄라도 "정말 우리 아버지 같은 분에게 태어나서 내가 축복을 받았다"라면서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2] 심지어 이슬람교를 비판하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되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분노하여 그런 교육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반발했지만 "어떤 내용인지 읽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반대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나의 이슬람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라는 멋진 말로 거부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3] 총 3발. 출처 [4] 두개골 조각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뱃속에 집어넣었다고 함. [5] 그녀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학교까지 아예 탈레반의 대대적인 테러를 당하며 무참히 부서졌다. [6] 철학·정치학·경제학 [7] 출처는 영어 위키백과 [8] 다른 이유도 있는데, 바로 탈레반이 이 지역 주민들에게 복수한답시고 총이라도 쏴대면 그야말로 눈 떠보니 알라 옆에 와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9] 애초에 근본 자체가 다르다. 파키스탄의 국부 모하마드 진나 이슬람 모더니즘을 제창하며 비(非) 무슬림을 차별하지 말 것을 주장했고,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파키스탄 정부도 근본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이슬람주의가 득세하는 바람에 정책이 뒤집어졌지만 전 국민이 존경하는 진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는 없는 모양인지 탈레반에 비해 세속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덕에 유사프자이가 살던 서부에 비하면 정부의 통제가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고 파키스탄의 주요 대도시들이 몰려있는 동부 지역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며 이때문에 대놓고 여성들이 히잡을 안쓰고 서구식 복장과 화장을 하고 다니거나 음주나 흡연하는 사람들도 꽤 보이는 편이다. [10] 이미 정부기관이라는 ISI부터 탈레반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마당에 다른 조직이라고 괜찮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