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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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주요 수상 및 수훈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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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주요 선정 및 헌액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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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찰리 채플린 경 Sir Charlie Chaplin KBE[1] |
|
본명 |
Charles Spencer Chaplin Jr. 찰스 스펜서 채플린 주니어 |
출생 | 1889년 4월 16일 |
대영제국 잉글랜드 런던 | |
사망 | 1977년 12월 25일 (향년 88세) |
스위스 보 주 브베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5cm, 62kg[2] |
데뷔 | 1914년 영화 '생계' |
배우자 |
밀드러드 헤이스(1918 결혼, 1921; 이혼) 리터 그레이(1924 결혼, 1927; 이혼) 폴렛 고다드(1936 결혼, 1942; 이혼) 우나 오닐(1943 결혼, 1977; 사별)[3] |
자녀 | |
종교 | 무종교 |
서명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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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11]
|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찰리 채플린/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작품
자세한 내용은 찰리 채플린/작품 문서 참고하십시오.4. 어록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내려다보고만 있다면 절대
무지개를 찾지 못할 겁니다.
1928년작 "서커스"를 1969년에 다시 재상영할 때, 채플린이 작사/노래한 오프닝 곡인 "꼬마 아가씨를 높이 그네태우다(Swing High Little Girl)"[12]
1928년작 "서커스"를 1969년에 다시 재상영할 때, 채플린이 작사/노래한 오프닝 곡인 "꼬마 아가씨를 높이 그네태우다(Swing High Little Girl)"[12]
미안합니다.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으며 그건 제 할 일도 아닙니다.
전 누군가를 다스리거나 정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모든 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유태인, 기독교인, 흑인, 백인이건 모든 인류가 그렇듯, 우리 모두가 서로 돕기를 원합니다.
남의 불행을 딛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행복한 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거나 경멸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고 풍요로운 대지는 모두를 위한 양식을 줍니다.
인생은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 방법을 잃게 되었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세계를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았는가 하면 우리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급속도로 발전을 이룩했지만 우리 자신들은 그것에 갇혀버렸습니다.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기계는 우리에게 더한 갈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냉정하고 냉소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너무 많이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거의 느끼는 게 없습니다.
기계보다는 인간성이 더욱 필요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비참해지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비행기와 라디오 방송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연결시켰습니다. 이러한 발명의 진짜 의도는 인간의 선함에 전 지구적 형제애와 우리 모두의 화합을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내 목소리가 세계 방방곡곡에 울려퍼져나가 인간을 고문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가두는 제도에 희생된 수백만의 절망하고 있는 남녀노소에게까지 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우리가 겪는 불행은 탐욕에서 인류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조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증오는 지나가고 독재자들은 사라질 것이며 그들이 인류로부터 앗아간 힘은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한 자유는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군인들이여, 그대들을 경멸하고 노예처럼 다루며, 당신들의 행동과 사고와 감정·삶까지 통제할 뿐만 아니라 당신들을 짐승처럼 다루고 조련하여 전쟁터의 희생물로 만들고 있는 이 잔인무도한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시오!
이런 비인간적인 자들에게 기계의 지성과 마음을 가진, 기계나 다름없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시오!
그대들은 기계도 짐승도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당신들의 마음속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이 숨쉬고 있습니다!
증오하지 마시오. 비인간적인 자들만이 증오를 합니다. 군인들이여, 노예제도를 위해 싸우지 말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시오.
루가의 복음서 17장에서, "주의 왕국은 인간들 사이에 있다" 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한 무리가 아닌 인간 전체에 바로 당신들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계를 창조할 힘과 행복을 창조할 힘 말입니다.
사람은 삶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그리고 멋진 모험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 힘을 사용하여 화합을 이룩합시다.
모두에게는 일할 기회를, 젊은이에게 미래를, 노인들에게는 안정을 제공할 훌륭한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싸웁시다.
극악무도한 자들도 이런 것들을 약속하며 권력을 키웠지만 그들의 약속은 실행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절대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면서 민중을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이제 그들이 했던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싸웁시다.
세계를 해방시키고 나라간의 경계를 없애며 탐욕과 증오와 배척을 버리도록 함께 투쟁합시다.
이성이 다스리는 세계, 과학의 발전이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세계를 만들도록 함께 투쟁합시다.
군인들이여, 민주주의의 이름하에 하나로 뭉칩시다!
1940년작 위대한 독재자. 영화 장면에서의 연설.
전 누군가를 다스리거나 정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모든 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유태인, 기독교인, 흑인, 백인이건 모든 인류가 그렇듯, 우리 모두가 서로 돕기를 원합니다.
남의 불행을 딛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행복한 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거나 경멸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고 풍요로운 대지는 모두를 위한 양식을 줍니다.
인생은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 방법을 잃게 되었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세계를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았는가 하면 우리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급속도로 발전을 이룩했지만 우리 자신들은 그것에 갇혀버렸습니다.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기계는 우리에게 더한 갈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식은 우리를 냉정하고 냉소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너무 많이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거의 느끼는 게 없습니다.
기계보다는 인간성이 더욱 필요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비참해지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비행기와 라디오 방송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연결시켰습니다. 이러한 발명의 진짜 의도는 인간의 선함에 전 지구적 형제애와 우리 모두의 화합을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내 목소리가 세계 방방곡곡에 울려퍼져나가 인간을 고문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가두는 제도에 희생된 수백만의 절망하고 있는 남녀노소에게까지 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우리가 겪는 불행은 탐욕에서 인류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조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증오는 지나가고 독재자들은 사라질 것이며 그들이 인류로부터 앗아간 힘은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한 자유는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군인들이여, 그대들을 경멸하고 노예처럼 다루며, 당신들의 행동과 사고와 감정·삶까지 통제할 뿐만 아니라 당신들을 짐승처럼 다루고 조련하여 전쟁터의 희생물로 만들고 있는 이 잔인무도한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시오!
이런 비인간적인 자들에게 기계의 지성과 마음을 가진, 기계나 다름없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시오!
그대들은 기계도 짐승도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당신들의 마음속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이 숨쉬고 있습니다!
증오하지 마시오. 비인간적인 자들만이 증오를 합니다. 군인들이여, 노예제도를 위해 싸우지 말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시오.
루가의 복음서 17장에서, "주의 왕국은 인간들 사이에 있다" 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한 무리가 아닌 인간 전체에 바로 당신들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계를 창조할 힘과 행복을 창조할 힘 말입니다.
사람은 삶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그리고 멋진 모험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 힘을 사용하여 화합을 이룩합시다.
모두에게는 일할 기회를, 젊은이에게 미래를, 노인들에게는 안정을 제공할 훌륭한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싸웁시다.
극악무도한 자들도 이런 것들을 약속하며 권력을 키웠지만 그들의 약속은 실행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절대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면서 민중을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이제 그들이 했던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싸웁시다.
세계를 해방시키고 나라간의 경계를 없애며 탐욕과 증오와 배척을 버리도록 함께 투쟁합시다.
이성이 다스리는 세계, 과학의 발전이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세계를 만들도록 함께 투쟁합시다.
군인들이여, 민주주의의 이름하에 하나로 뭉칩시다!
1940년작 위대한 독재자. 영화 장면에서의 연설.
전 정치인이 아니요, 정치적 신념도 없습니다. 난 자유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게 제 유일한 정치적 이념입니다. 한편 전 최고의 애국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극단적인 애국주의가
파시즘으로 빠질 뿐이라는 것을
아돌프 히틀러에게서 배운 바 있습니다. 전 혁명을 일으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영화를 더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1952년 12월 23일, 가디언지에 실린 "채플린 씨의 답변(Mr. Chaplin's Defense)"에서 채플린이 자신의 재입국 허가가 무효화되었다는 선언을 듣고 저널리스트에게 한 답변.[14]
1952년 12월 23일, 가디언지에 실린 "채플린 씨의 답변(Mr. Chaplin's Defense)"에서 채플린이 자신의 재입국 허가가 무효화되었다는 선언을 듣고 저널리스트에게 한 답변.[14]
해파리[15]에게도 삶은 아름답고 멋진 것이란다. (중략) 문제는 네가 싸우지 않는다는 거야. 포기해 버렸지. 하지만 죽음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게 있단다. 그게 삶이야. 지구가 돌게 하고 나무가 자라게 하는 우주의 힘을 생각해 보렴. 네가 용기와 그것을 사용할 의지만 있다면, 같은 힘이 너에게 깃들일 거야.
1952년작 《라임라이트》테리(클레어 블룸 분)의 "무엇을 위해 싸우란 거죠?"란 질문에 칼베로(채플린)가 한 대답.
1952년작 《라임라이트》테리(클레어 블룸 분)의 "무엇을 위해 싸우란 거죠?"란 질문에 칼베로(채플린)가 한 대답.
나에겐 딱 하나, 그것만이 남아 있는데 바로 '광대'이다. 덕분에 어느 정치인보다 더 높은 비행기를 타게 된다.
1960년 6월 17일, 런던의 "옵저버(The Observer)"지에서 인용된 말.
1960년 6월 17일, 런던의 "옵저버(The Observer)"지에서 인용된 말.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1977년 12월 28일, 가디언(The Guardian) 지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할 때 인용한 말.
1977년 12월 28일, 가디언(The Guardian) 지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할 때 인용한 말.
과거? 지나고 나면 결국 전부 웃어서 넘길 수 있는 것들뿐이지!
거울은 내 가장 친한 친구다. 내가 눈물 흘릴 때 절대로 비웃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돈벌이를 위해 장사에 뛰어들었고, 내 예술은 거기서 생겨났다. 사람들이 이 말에 환멸을 느껴도 할 수 없다. 사실이니까.
웃음 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다.
5. 수상 경력
-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 특별상 (1929) : 《서커스》에서의 연기, 각본, 감독에 대하여
- 네덜란드 에라스뮈스상 (1965. 잉마르 베리만과 공동 수상)
-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 (1970)
-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코망되르 (3급. 1971)
- 칸 영화제 특별상 (1971. 모든 영화 작품)
-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특별상 (1972)
- 미국 링컨센터 영화협회 평생공로상 (1972)
- 제44회 아카데미 시상식 명예상 (1972)
- 제44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영화음악상 (1972. 라임라이트가 20년 만에 미국에 정식 개봉된 뒤 받음)
- 대영제국 훈장 2등급 (KBE. 1975. 2등급 이상의 훈장이기 때문에 동시에 '경(Sir)' 호칭도 부여받음) 등
6. 평가
그는 웃음을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는 거의 어느 정도의 세계적인 인지 능력을 발명했고, 영화 산업을 예술로 바꾸는 것을 도왔기 때문이다.
타임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인물 100인의 선정 이유
타임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인물 100인의 선정 이유
거의 틀림없이 영화에 가장 중요한 예술가, 확실히 가장 뛰어난 연기자 그리고 아마도 여전히 영화의 가장 보편적인 아이콘이다.
앤드류 새리스 #
앤드류 새리스 #
7. 여담
자세한 내용은 찰리 채플린/여담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정식 2등급 기사
대영제국 훈장. 바로 1년 전 1974년에
시드니 포이티어가 KBE를 받아 영화사 최초는 아니다. 다만 푸아티에이는
영연방 소속인
바하마 출신으로, 지역안배 고려도 어느 정도 받았을 거라는 추측이 되기는 한다. 물론 푸아티에이도 이미 1964년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정도로 걸출한 배우인 것도 사실이다.
[2]
출처.
[3]
세계적인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이며, 채플린과 무려 36살 차이다.
[4]
7월 7일생으로
태어난지 3일만에 사망.
[A]
밀드레드 헤이스 슬하의 자녀
[6]
배우이며, 영화 13편을 출연하였다. 향년 42세 나이로 폐색전증으로 사망.
[B]
리터 그레이 슬하의 자녀
[8]
배우,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으로 뇌졸중으로 사망.
[B]
리터 그레이 슬하의 자녀
[C]
우나 오닐 슬하의 자녀들
[11]
영화에서 비극적 요소는 클로즈 업으로, 희극적 요소는 롱숏으로 찍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모든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면 비극적인 상황일 때 클로즈업을 하고, 웃긴 장면은 멀리서 롱숏으로 촬영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12]
구글링 결과 High는 들어가기도 하고 안 들어가기도 한다.
[13]
하지만 쌍따옴표 안의 말은 아주 예전에 베일비 포투스(Beilby Porteus) 주교에게 한 바 있다고.
[14]
당시
매카시즘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볼 수 있다. 이 재입국 허가의 무효화는 말 그대로 '국외
추방'을 다르게 표현한 것.
[15]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