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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및 고려의 호족과 군벌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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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대광(大匡) 왕규(王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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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91970><colcolor=white>향직 품계 |
좌승(佐承)[1] 대광(大匡)[2] |
성씨 | 함(咸)[3] → 왕(王)[4][5] |
이름 | 규(規) |
딸 |
광주원부인(廣州院夫人)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후광주원부인(後廣州院夫人)[6] |
손자 | 광주원군(廣州院君) |
생몰연도 | ? ~ 945년( 정종 즉위년) |
[clearfix]
1. 개요
고려 전기의 재상이자 권신으로, 태조와 혜종의 장인이며, 강릉, 양근 함씨의 중시조이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신문왕의 장인이었던 김흠돌과 비슷한 행적을 걸었던 인물이다. 문종(고려)과 인종(고려)의 장인이었던 이자겸도 비슷한 행보를 걷는다.2. 생애
경기 광주의 호족 출신으로 본래 함씨였다가 태조 왕건에게 사성을 받아 왕씨가 되었다.[7] 통일 직후인 태조 20년(937)에 후진(後晉) 석경당의 즉위 축하 사절로 중국에 다녀온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후 벼슬이 대광에 이르렀고 태조에게 시집보낸 두 딸은 각각 제15비, 제16비가 되었으며, 왕건의 장남 왕무( 혜종)에게 시집보낸 셋째 딸은 제2비가 되었다.3. 왕규의 난
고려시대의 실패한 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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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 주도 세력 |
왕규의 난 | <colbgcolor=#ffffff,#670000> 왕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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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의 난 | 이자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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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저의 난 | 김저 | |
참고: 고려시대의 정변 | }}}}}}}}} |
고려사 반역 열전에서는 왕건 사후 왕규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각각 왕건의 차남과 3남인 왕요와 왕소에 비해 배경과 세력이 미약했던 혜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하도 병약하여 손수 정무를 보기 어려운 그를 대신해 권력을 독차지하는 한편 태조의 유언을 받은 공신 박술희를 모함하여 유배보냈다. 외가쪽 기반이 강력한 왕요와 왕소도 혜종의 약한 세력과 혼란을 틈타 왕위를 노리자 왕규와 왕요, 왕소 사이의 대립은 나날이 커져갔다.
왕규는 왕요와 왕소를 한꺼번에 제거해버릴 심산으로 혜종에게 왕요와 왕소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고했으나 혜종은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왕소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는 행보를 보였다.[8] 이렇게 되자 왕규는 혜종을 시해하고 자신의 외손자이자 태조의 아들인 광주원군을 임금으로 만들기 위해 계획을 세웠으나, 뛰어난 무장이었던 혜종은 자객을 직접 제압하였고, 결국 암살 시도는 말짱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혜종이 붕어하고 왕위를 왕요가 이어받아 제3대 왕 정종으로 즉위하자 반란을 일으켰지만, 태조의 사촌동생 왕식렴이 이를 진압해 결국 왕규는 물론 그의 부하 300여명도 전부다 처형되었다.
3.1. 의문점
그러나 이 기록은 정황상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 굉장히 많아 고려 시대 정치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심각한 왜곡이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후에 왕권을 차지한 왕요 일파의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왕규가 두 딸을 태조에게 시집보내 광주원군을 보았지만 이미 위의 형들이 많았던 탓에 왕위를 노릴 명분이 턱없이 부족했으며 무엇보다도 왕규는 셋째 딸을 혜종에게 시집보내기도 했다.왕규는 한강의 요소를 움켜 쥔 광주 일대의 유력한 호족으로 일찍이 왕건에게 왕씨(王氏) 성(姓)을 하사 받음과 동시에 대중 외교 등의 중책을 담당하였으며 왕건이 승하하기 전 그의 유조를 받든 신하 중 1명이었고, 왕건 재위 당시 엄청난 신임을 받고 있었던 중신이었던 것. <고려사>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런 중신이 갑자기 왕위 계승 서열도 한참 떨어지는 외손자를 임금 자리에 올리기 위해 사위를 죽이려 하였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 그려진다.[9]
오히려 왕규는 박술희와 함께 혜종의 친위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태조는 무력 기반은 탄탄하지만 한미한 무관 출신으로 지지 기반이 없었던 박술희를 돕고자 왕규를 혜종의 후견인으로 내정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혜종이 경쟁자인 왕소에게 딸을 시집보낸 것도 왕요와 왕소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한 정략으로 볼 수 있는 부분도 더러 있다. 그러다 박술희가 서경의 왕식렴 세력을 끌어들인 왕요 일파에 의해 유배를 당한 후 처형되었고 수도 개경을 장악한 왕요 세력이 정적인 왕규에게 역적 혐의를 뒤집어 씌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왕규는 유력 호족 세력에다가 조정 내 위치도 굳건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신이었다. 만약 왕규가 박술희와 함께 혜종의 친위 세력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면 혜종을 지원하는 문신 세력은 왕규, 무신 세력은 박술희가 담당했을 것이다. 고려 초기의 불안정한 정국에서 왕위 계승 쟁탈전이 치열한 마당에 왕규가 혜종의 무력 기반인 동시에 자신의 무력 기반이기도 한 박술희를 제거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왕규의 난'이라 기록된 사건, 즉 혜종이 죽고 정종이 즉위하자 왕규가 군사를 일으켜 개경으로 쳐들어왔다가 잡히는 과정인데 기록에는 서경의 왕식렴이 왕규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서경 주둔군을 이끌고 개경에 먼저 입성해 왕규의 군대를 맞이했다고 되어있다. 기본적으로 광주-개성의 직선거리는 약 80km, 개성-평양의 직선거리는 약 140km 정도이며 실제 거리와 길어야 20~30km 정도 차이가 난다. 저 서술대로라면 왕규가 군사를 일으켜 약 80km를 이동하는 동안
1) 경기도 광주에서 왕규가 군사를 동원했을 때 '왕규가 난을 일으켰다'는 첩보를 가진 전령이 80km를 달려 개경에 도착한 뒤,
2) 다시 그 첩보를 갖고 서경으로 140km를 달려가서 왕식렴에게 전달하고,
3) 그 소식을 들은 왕식렴이 군사들을 준비시켜 서경에서 출발해 140km를 행군하는데, 그 속도가 매우 빨라 고작(!) 80km 이동하는 왕규의 군대보다도 먼저 개경에 도착해서 뒤늦게 도착한 왕규의 군대를 맞았다. 는 말이 된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게 억지로라도 가능하게 만들려면 광주의 왕규 군대는 농민잡병 수준의 보병 위주 군대고, 서경의 왕식렴 군대는 유목민족 급의 고려 최정예 기병 위주 군대라도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왕규의 이동거리인 약 80km면 당시 보병 행군 속도로 2~3일, 기병이었다면 하루 반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이동 수단이 고려 초와 별다를 것이 없는 조선 임진왜란 당시 파발마의 하루 이동거리가 약 100km였던 것을 감안해도 광주-개경-서경까지 빨라도 3일, 서경에서 출발해서 개경까지 오는 시간 3~4일, 엄청난 진격 속도를 자랑했던 고구려 개마기병의 속도로 계산해도 2일 이상 걸린다. 서경군의 이동 시간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최소 5일은 넘긴다는 뜻으로 군대를 준비시키는 기간, 명령 처리에 걸린 시간 등은 덤이다.
물론 왕식렴이 왕규의 난에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으나 명색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양반이 반대 세력인 왕식렴이 이끄는 서경군의 정황도 모른채 무작정 들고 일어났다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당시 서경군이라면 왕건이 서경을 중시하여 키워준 최정예 부대였다.
왕규 세력의 처벌 기록에서 왕규가 왕으로 옹립했다고 전해지는 왕규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는 것 또한 왕규의 난에 회의적인 근거 중 하나. 원래 반란이 일어나면 그 우두머리는 물론 그들이 왕으로 옹립했던 인물까지도(설령 자기가 왕으로 옹립 된 사실조차 몰랐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처리되는 것이 봉건사회의 법이자 관례였음을 감안해보면 광주원군의 기록이 빠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단순 가담자라면 몰라도 옹립된 인물이자 반란세력 우두머리의 외손자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왕규의 난 조작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만약 혜종이 병으로 승하(혹은 시해당하였거나)한 뒤 혜종의 아들인 흥화군을 대신해 혜종의 동생인 왕요가 서경의 왕식렴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이 소식을 듣고 막으러 온 왕규의 군대를 궤멸시켰다고 가정한다면 오히려 이야기가 자연스러워진다.
기록으로 입증된 사실은 없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왕식렴과 연합한 왕요이고 이에 반대했던 혜종의 최측근 왕규와 박술희를 처형한 후 기록을 조작해 왕규에게 모든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는 시나리오가 오히려 정황상 자연스러워 보인다.
왕건의 사촌동생이자 개국공신인 왕식렴은 왕건이 생전에 중시했던 서경의 재건과 경영을 맡겼을 정도로 왕건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는데, 서경의 병력을 기반으로 한 세력 때문에 왕요가 박술희의 무력을 기반으로 한 혜종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포섭했을 가능성이 높다. 왕식렴의 사망연도가 949년인데 제3대 임금 정종의 승하연도 역시 949년이라는 것은 또 다른 의문을 던져주기도 한다.
정종 역시 경춘원군이라는 왕자가 있었음에도 정종의 동생이자 왕건의 3남인 왕소가 왕위에 오르는데 왕권 강화를 이룩한 제4대 광종이다. 이 점을 보면 정종 역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광종 및 다른 세력에 의해 패배해 시해당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혜종의 무력 기반은 개국공신인 박술희이고 정종의 무력 기반은 역시 개국공신인 왕식렴이다. 박술희가 제거당한 945년에 혜종이 승하했고 왕식렴이 사망한 949년에 정종이 승하했다. 이후 광종은 왕위에 오른 뒤 서서히 신하들을 압박하면서 힘을 키우다가 어느 순간 아버지인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들을 철저하게 숙청했다.[10]
한편 왕규의 난일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도 있는데, 일단 혜종의 기록을 보면 왕규는 혜종과 달리 왕소와 왕요를 제거하려다 실패했다. 박술희 역시 왕규와 대립하여 서로 호위병을 두었다는 말은 사실상 박술희가 왕소와 왕요 제거에 최소 찬성하지 않았다는 맥락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만약 왕규가 왕요와 왕소를 제거하려 했다는 기록이 사실이라면 왕규로써는 반역 외에는 달리 길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11] 게다가 박술희의 병력들이 왕식렴을 보호하면서 당연히 자유롭게 행동하게 내뒀을리는 만무하고, 허튼 짓 못 하게 감시까지 철저히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왕식렴은 자기를 보호해주는 박술희를 무작정 귀양 보내는 위험수를 쓸 수는 없었고, 왕규가 귀양을 보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즉, 박술희의 귀양은 왕규나 그의 세력이 저질렀을 것이고, 왕식렴은 박술희의 감시에서 벗어나 마음놓고 일을 저질렀다고 가정하면, 왕규가 왕식렴과의 충돌에 책임이 당연히 있다고 봐야 한다.
이미 혜종이 병이 들어 위중한 상황에서 무력적 기반을 갖추고 있던 박술희는 자신과 왕규가 척을 지니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결국 왕요가 군신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르자[12] 정종은 과거 혜종의 후견인이자 충신이었던 박술희를 역모로 의심하고 그를 유배보냈다. [13] 이는 왕규에게는 사형 선고와 같았을 것이고[14] 박술희 열전에는 왕명을 사칭했다고 하는데 이는 왕규가 정종이 박술희를 처형한 것으로 꾸며 그를 귀양지에서 살해한 후 그 휘하 세력을 흡수해 최후까지 저항을 했을 확률이 크다. 그러나 기록에도 나와있듯 정종과 왕식렴은 이미 이를 예측해 준비하고 있었고[15] 만약 왕규가 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세력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문관 세력을 기반으로 한 관료였다면 군사를 다루는 일이나 무력행동에 익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국토를 확장해왔던 왕식렴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혈연 관계로 광대한 세력[16]을 가진 왕요에게 밀리는 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결국 왕규의 마지막 저항은 실패로 끝났고 이와 연루된 이들은 모조리 제거당한다. 이로 인해 왕식렴의 위세는 올라가고 정종은 왕식렴을 더욱 신임했으며 이는 서경 천도의 빌미가 되는 동시에 동생 왕소와 척을 지는 계기로 이어졌다.
4. 대중매체
- 2000년 KBS 드라마 <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김명수[17]가 연기했다. 비중은 문신 A 정도로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비중이 큰 것도 아니라 조정에서 관직을 지냈던 다른 인물이 대신 나왔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을 정도. 그나마 중책을 수행하는게 고창 전투 직전 고창성에 사신으로서 파견된 것과, 왕건의 명을 받고 추언규와 함께 후백제에 있는 경보대사를 만나러 가는 장면 정도.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왕규로 나오고 왕건에게 성씨를 받는 장면도 없다.[18] 같은 작가가 쓴 <제국의 아침> 제2회에서는 왕식렴의 대사로 나온다.[19]
- 2002년 KBS 드라마 < 제국의 아침>에서는 배우 김무생[20]이 연기했다. 다만 단군이 어쩌고 고조선이 저쩌고 고구려가 어쩌고 고기(古記)가 저쩌고 하는 등 뜬금없이 환빠로 나와 작품의 수준을 깎아먹는 모습이 나오기는 했다. 혜종의 장인이자 후견인으로서 왕권 강화를 위해 왕족들을 견제하다가 박술희를 귀양보낸 사이[21] 결국 왕요, 왕소와 연합한 왕식렴에 의해 처형당한다는 식으로 나온다. 정종은 사람을 보내 유배지에 머물고 있던 박술희를 처형하고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왕규가 시킨거다"라고 말하게 해서 그에게 누명을 씌운다. 자신의 외손자 광주원군을 다음 황제로 올리는 것이 어떠하냐는 왕함민의 상소를 보고 오히려 이간책이라며 대노했다.
- 2016년 SBS 드라마 <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는 2대 황제를 독살하고 3대 황제에 오른 왕요가 왕권 확립을 위해 10황제 왕은을 살해한다. 해당 드라마에서 왕요는 절대 악역이고 10황제는 팔굽혀펴기도 못하고 장난감만 좋아하는 어린아이로만 묘사되기 때문에 상술된 의문점을 고려해 역사왜곡설을 채택한듯 하다. 어리게만 묘사되던 10황제의 성장과 본격적인 형제의 난을 알리고 남주인공( 이준기)과 여주인공( 아이유)의 이별 계기가 되기도 하는 등 후반부의 중요한 사건이다.
- TRPG WoD 킨드레드 오브 이스트의 서플리먼트 룰북 <Blood and Silk>에서는 사후 인귀가 된 왕규와 묘청의 제자가 평양의 선조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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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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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권 「간신2(姦臣二)」 | ||||||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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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선길 · 이흔암 · 왕규 · 김치양 · 강조 · 이자의 · 이자겸 · 척준경 · 묘청 ( 정지상) | 정중부 이광정 송유인 · 이의방 · 이의민 · 정방의 · 조원정 석린 |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 }}} | |||
<rowcolor=#670000,#fedc89> 130권 「반역4(叛逆四)」 | 131권 「반역5(叛逆五)」 | |||||
한순 다지 · 홍복원 (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 |||||
132권 「반역6(叛逆六)」 | ||||||
신돈 | ||||||
133·134·135·136·137권 | ||||||
신우(우왕) ( 신창(창왕)) | }}}}}}}}}}}} |
[1]
3품 6등위.
[2]
2품 3등위.
[3]
함씨 항목참고
[4]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왕규는 본래 함씨였다가 왕건의 신임을 받아 왕씨 성을 하사받았으며 ..."
[5]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01291&cid=51884&categoryId=53422
[6]
고려 혜종의 2번째 왕비
[7]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한국사 12), 국사편찬위원회, 김갑동 저 - " 왕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양근군(楊根郡) 인물조(人物條)와 고려사 함유일 열전에 나오는 함규(咸規)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함규가 태조대 최고의 관부로 여겨지는 광평성(廣評省)의 차관급인 시랑(侍郞)이었으며 태조공신(太祖功臣)이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태조공신에는 여러 부류가 있었지만 태조의 비부(妃父)들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규가 왕성(王姓)을 하사받아 왕규(王規)로 포함된 것이라 짐작된다. 춘천의 박유가 왕성을 하사받아 왕(王)유로 표기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또 양근군은 통일신라 때의 빈양현(濱楊縣)이 고려 초에 양근현(楊根縣)으로 개명되면서 광주에 내속(來屬)되었다가 고려 말에 군으로 승격된 지역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왕규의 출신지는 양근현이지만 이곳이 광주의 속현이었으므로 광주인으로 표기됐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8]
이 부분을 다르게 해석하면 혜종이 왕요와 왕소의 세력과 사이를 분열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다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9]
혜종이 병약했다는 고려사의 기록도 왕규가 보낸 자객을 병약하다는 혜종이 직접 맨손으로 때려죽였다는 대목을 보면 의심의 여지가 있다. 후에 왕위에 오르게 되는 왕요와 왕소 형제의 반란에 휘말려 시해당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
[10]
광종이 정종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수도 있는 배다른 형제들의 무력 기반이 될 수도 있는 개국공신 세력을 숙청했다는 말이다. 둘째 형인 정종이 맏형 혜종에게 그랬고 자신이 정종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동생들이 공신 세력의 무력 기반으로 해서 본인을 제거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광종이 정종을 제거했다는 건 전적으로 일부 학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애초부터 기록이 아닌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공신 세력 숙청은 왕권 강화가 1번째 목적이기 때문에 상당한 개연성은 있을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 역대 왕조의 개국공신들은 체제가 어느 정도 잡힌 뒤 건국자 혹은 그 후손에게 대부분 숙청당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유방,
주원장,
이방원 등. 개연성이 없지는 않지만 '설'임을 감안하자.
[11]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혜종은 왕소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는데 계책인지 우호적 행동인지 알 길은 없다.
[12]
후대까지 고려는 형제가
세습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이 된 것이
훈요 10조인데 3번째 조항에 장자가 왕위를 잇되 자질이 안 되면 다른 자가 왕위를 이으라고 되어 있다.
[13]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는데, 박술희가 정종의 명령으로 귀양을 가게 되면, 박술희의 호위병이 풀리게 됨으로, 그 찬스로 왕규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오히려 정종이 위험해진다(...). 즉, 왕규의 손으로 귀양을 갔다면 모를까 정종 자신의 손으로 박술희를 귀양 보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14]
애당초 왕요와 왕소를 죽이려한 사람이 왕규였다고 한다면 왕이 될 왕요로써는 어떻게 해서든 왕규를 죽이는 수 밖에 없다. 결국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나는 상황이다. 아니라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일 뿐이다.
[15]
왕식렴과 왕규 열전에는 왕요와 왕식렴이 왕규의 반란을 대비하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왕규의 반란을 갑작스럽게 맞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왕규가 정종과 왕식렴의 덫에 빠진 것일 수 있다.
[16]
어머니가 유력 호족인
충주 유씨, 그의 장인이
후백제의
박영규(
견훤의 사위), 여동생
낙랑공주가
신라
경순왕의 부인으로 왕요가 얼마나 막강한 세력을 갖추었는지 알 수 있다. 사실상
경기도,
강원도,
패서 일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세력이 왕요를 지지했을 것이다. 다만 이는 왕소도 마찬가지라는
아이러니가 있다.
[17]
2004년
KBS 드라마 <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
[18]
이는
박유나
김순식과 대조되는데 박유의 경우 극 중에서 왕건과 박유의 대화 중에 사성하는 내용이 나왔고 김순식의 경우
나레이션으로 언급되었다.
[19]
"저 왕규가 언제부터 왕씨였소이까? 본래는 함씨가 아니었소니까."라고 까는 장면이 나온다.
[20]
아들이 배우
김주혁. 1996년
KBS 드라마 <
용의 눈물>에서는 해당 배우가
태조 이성계였고 여기에서 왕식렴 역할을 맡은 배우
김흥기가
정도전인 점을 감안하면 훌륭한
배우개그. <제국의 아침>
오프닝에서 왕규와 왕식렴은 서로를 흘겨보며 등장하는데 <용의 눈물>에서 묘사된 이성계와 정도전의 수어지교를 생각하면 묘한 느낌이 드는 장면.
[21]
박술희가 아군이기는 하지만 왕식렴, 왕요, 왕소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병부령인 박술희의 지위를 자신들 쪽이 가져야 활용이 가능하다고 여기며 죄가 없음에도 귀양가는 박술희에게는 왕식렴 일파를 처리한 후에 다시 불러와서 잘대해주면 그만이라고 근시안적으로 생각했고 왕규 세력의 핵심 인물들도 반대했으나 병부의 군사들에게 강압적으로 대하면 된다고 군부를 간단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 결국 병부의 군사들이 왕식렴 일파에게 합세해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이 때 병부의 군사들을 지휘한
염상도 '왕규가 더 위험하다'는 망상에 빠져서 왕식렴을 도와서 왕규 세력을 제거하나 결국 왕식렴에게 토사구팽당하고 병부의 군사들도 왕식렴 세력의 군사들에게 쫓겨나면서 병부 역시 박술희의 뜻을 따르고자 했지만 멍청함으로 인해 적인 왕식렴을 도우면서 결국 왕규와 병부는 사이좋게 왕식렴에게 제거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