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6 20:35:24

신태용

신태용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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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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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7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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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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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Tim nasional sepak bola Indonesia
파일:신태용감독님.jpg
이름 신태용
申台龍 | Shin Tae-yong
출생 1969년 4월 11일[1] ([age(1969-04-11)]세) /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리[2]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학력 영남대학교
신체 174cm | 몸무게 72kg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3] / 은퇴)
축구감독
등번호 7번
주발 양발[4]
소속 선수 성남 일화 천마(1992~2004)
퀸즐랜드 로어 FC(2005)
감독 퀸즐랜드 로어 FC(2005~2008 / 코치)
성남 일화 천마(2009 / 감독대행)
성남 일화 천마(2010~2012)
대한민국 대표팀(2014 / 감독대행)
대한민국 대표팀(2014~2016 /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2015~2016)
대한민국 U-20 대표팀(2016~2017)
대한민국 대표팀(2017~2018)
인도네시아 대표팀(2020~)
기타 JTBC(2019 / 해설위원)[5]
국가대표 23경기 3골( 대한민국 / 1992~1997)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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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대구공업고등학교(1985~1988 / 졸업)
영남대학교(1988~1992 / 체육교육학 학사)
용인대학교(1992~2000 / 스포츠마케팅 석사)
경기대학교(2005~2017 / 체육학 박사)[6]
종교 불교
가족 배우자 차영주, 아들 신재원, 신재혁
별명 소방수[7], 맥콜라리[8], 꾀돌이[9], 난 놈[10] 그라운드 여우[11], 아시아의 뢰브 쌍둥이, 가짜 뢰브[12], 트릭술사[13][14] 태용스트레인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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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2.3. 기록
2.3.1. 성남 일화 천마2.3.2. 통산 성적
2.3.2.1. 국가대표
2.3.3. 주요 개인 수상
2.3.3.1. 표로 보기
3. 지도자 경력4. 해설위원5. 어록6. 이야깃거리7. 둘러보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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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20년부터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다.

선수 시절 자타공인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였고, K리그 최초로 60-60 클럽을 달성한 성남 일화 천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K리그의 레전드.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등번호는 7번이었다.[16] 별명은 '그라운드의 여우'.

현역 은퇴 이후로는 성남 일화 천마의 감독과 K리그 홍보대사, tbs 교통방송의 해설위원 등을 맡았다.

관운(官運)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 초기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 코치를 역임 중이었는데, 23세 이하 대표팀 이광종 감독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A대표팀 코치였던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그리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해서 U-23 대표팀을 8강에 진출시킨다. 그 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던 안익수가 U-20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한, 2016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조별 리그 탈락의 수모를 당해서 갑자기 경질된 뒤[17], 리우 올림픽에서의 지도력을 검증받은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신태용이 이끈 U-20 대표팀은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는 16강에 진출한다. 그 다음에는 울리 슈틸리케가 월드컵 예선에서 카타르에게 패하며 갑자기 경질되면서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급하게 임명되었다. 좋게 말하면 관운이지만, 실상은 전부다 땜빵이다

감독 커리어 내내 조별리그 탈락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성남 일화 감독 시절 한요윤으로 요약되는 폭망의 2012시즌에서조차 신태용의 성남은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다만 A대표팀 감독으로 도전한 러시아 월드컵은 스웨덴전 전까지 5승 3무 1패 13득점 7실점이라는 좋은 결과와 꽤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4-4-2 포메이션 대신 준비가 덜 된 4-3-3이라는 도박수를 던졌다가 실패하는 등[18] 1~2차전에서 패배하면서 여론의 질타도 많이 받았고 토너먼트 진출에도 사실상 실패한 상태였지만, 그런 와중에 마지막 3차전에서 주 포메이션인 4-4-2를 들고 나와 독일에게 승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독일전의 통쾌한 승리로 신태용 감독 재계약론도 힘을 얻었지만 축구협회에서는 김판곤을 감독선임위원장으로 앉히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원했다. 체계적인 국대 시스템의 안착을 위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했고 그 결과 파울루 벤투에게 바통을 넘기게 되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성남 일화 천마 (199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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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이 K리그에 남긴 발자취는 범상치 않다. 현역 시절 행적을 따라가보면 윤상철[19]이나 울산 현대의 레전드 김현석 못지 않은 기록의 사나이. 참고로 성남 일화 천마에서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절 얻은 우승 트로피의 숫자는 K리그 최다이며 2010년 기준, 여기의 90% 이상이 그가 선수 시절에 얻은 업적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일화 천마[20]에 입단하여 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일화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K리그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한다. 당시 일화 감독은 이름난 빠따 맹장 박종환이었고, 발레리 사리체프, 고정운, 이상윤, 박남열 등 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리더 신태용이 있었다. 특히, 박남열과의 황금 콤비는 지금도 골수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찬양을 받을 정도다.

1995년 신태용은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했고, 리그 MVP를 차지한다. 또한 연말에 열린 1995-1996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마저 제패하며 일화 천마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여담으로 이 해 포항 아톰즈와 벌인 챔피언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꼽는다.

1996년 일화 천마 천안시로 연고지를 이적한다. 또한, 상부와 불화를 겪은 박종환 감독이 해임되고 이장수 당시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았다. 이후 일화는 꼴찌까지 떨어지는 암흑기를 겪는다. 하지만 신태용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이 때는 아예 리그 득점왕까지 먹었는데, 미드필더로 뛰면서 먹은 득점왕인데다가 K리그 MVP를 수상했다. 특히, K리그 MVP를 2회 이상 수상한 것은 2017년 기준 신태용과 이동국(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 단 두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며, 신인상과 MVP, 득점왕을 모두 수상한 적이 있는 경력 역시 신태용과 이동국, 그리고 정조국 단 세 사람만이 보유한 기록이다. 또한, 라피도 컵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을 2번째로(첫 번째는 1986년 정해원) 기록한다. 역시, 그 이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이때까지 신태용은 프로데뷔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다.

1997년 천안 일화는 이장수 감독 대신 벨기에 출신의 레네[21] 감독을 영입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한다.

1998년 개인 통산 30득점 30도움을 기록. 이 때 독일 분데스리가 한자 로스토크의 영입 제의를 받아 유럽에 진출할 듯 했으나 무산이 되었다. #

1999년 차경복 감독이 천안 일화를 맡는다. 이때 첫 FA컵 우승을 차지한다.

2000년 개인 40득점 40도움을 기록한다. 같은 해에 일화 천마는 연고지를 성남시로 옮겨 다시 한번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2001년 50득점 50도움을 달성한다. 그리고 성남 일화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K리그 3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남긴다. 이때도 성남은 우승 청부사 샤샤를 비롯해, 김대의, 김상식, 김영철, 김도훈, 윤정환, 이싸빅, 이성남 등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K리그의 골수팬들 사이에서는 2003년의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로 거론하기도 한다. #

그렇게 신태용은, 리그 3년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무려 두 번이나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1101301000962200081791.jpg

2003년 K리그 최초로 60득점 60도움을 기록한다.
또한 팀이 성남 일화로 재도약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다. 2019년 현재까지 60-6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신태용, 에닝요, 이동국 단 셋 뿐이다. 1979년생 김은중이 50-50 기록을 달성했고, 두 번째 60-60클럽 가입은 2013년에 에닝요가 달성했다. 이어서 이동국이 2014년 7월 20일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K리그 통산 세 번째 60-60 클럽에 가입했다.

2003 시즌에는 K리그 팬들의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장면 2개를 선사한 적도 있다. 하나는 모란( 성남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마계대전 경기. 수원의 서포터즈인 그랑블루[22]가 코너킥을 차러 가던 신태용을 향해 경기장에 물병을 던지자, 신태용은 그걸 집어들어서 원샷을 하고 따봉을 선사해 준 일화가 있다. 또다른 경기인 대전 시티즌 원정경기에서는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시키고, 후반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김해운을 대신하여 골키퍼로 활약했다. 비록 두 골을 먹기는 했으나, 팀은 3-2로 승리했다.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성남과 재계약하지 못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성남 일화 천마에서 변변한 은퇴식조차 갖지 못해서 성남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당시 신태용은 성남에서 더 뛰고 싶어서 플레잉 코치도 괜찮고 연봉도 구단측에 맡기겠다는 등 재계약에 의욕적이었는데 불발된건 좀 의문이다. #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을 기록했다. 신태용이 남긴 도움 기록은 무려 2015년에 가서야 염기훈이 경신한다.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20040720_08_03.jpg

2017년 현재 K리그 역사상 100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단 8명 뿐이다. 현역 선수로는 이동국(180골), 데얀(141골). 그리고 은퇴한 선수로는 김은중(120골) 우성용(116골), 김도훈(114골), 김현석(110골), 샤샤(104골), 윤상철(101골)이 전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포워드지만, 신태용 미드필더였다. 사실 꿈의 100골 달성도 가능했지만, 100번째 골은 필드골로 넣겠다는 공약 때문에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23]

또한, K리그 최초 400경기 출장 기록도 신태용이 세웠다. 이 기록은 한동안 최다출장 기록이기도 했는데, 이 기록을 경신한 선수는 김병지 골키퍼로 2006년에 갱신했다. 이후 필드 플레이어로는 2007년에 김기동이 기록을 깼으며, 최고 출장 기록은 김병지[24]가 보유하고 있다. 필드플레이어 가운데 최고 출장 기록, 최고령 골, 최고령 도움은 김기동이 가지고 있다.[25]

2.1.2. 퀸즐랜드 로어 FC (2005)

파일:attachment/Shin_Tae-Yong_Queensland_Roar.jpg

그리고 2005년 호주로 떠나 퀸즐랜드 로어 FC에 입단해 1경기에 출장한 후, 발목 부상을 입고 그 해 9월에 완전히 은퇴를 선언하며 곧바로 퀸즐랜드 로어 FC의 코치가 되었다. 이때 알게 된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를 나중에 성남 감독으로 부임한 뒤 직접 찾아가서 영입했다. 그리고 선발 수비수 겸 주장으로 중용했다.

그가 코치를 맡을 당시 2006년 퀸즐랜드에 갓 부임한 감독이 프랭크 파리나였는데, 언어 문제와 지도 방향에 이견을 보여 그다지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파리나 감독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그리고 파리나 감독이 리우 올림픽 조별 리그에서 피지 축구올림픽대표팀을 맡으면서 U-23 사령탑으로 서로 재회하게 됐다. 결과는 한국이 8-0으로 대승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다만, 이렇게 화려한 클럽 커리어에 비해 대표팀 커리어는 아쉬움이 남는다.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거친[26] 엘리트 선수였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K리그 골수팬이 아니고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A매치에서 통산 23경기 3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K리그에서 신태용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아쉬운 기록이다.

1992년에 아랍에미리트와의 평가전을 통해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지만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는 뛰지 못했고, 국가대표로서 유일하게 참가했던 메이저 대회인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8강 이란전의 2:6 참패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신태용의 이름이 포함되는 일이 없었다.[27]

차범근 감독 체제에서 1997년 상반기까지는 뽑혔으나 월드컵 최종예선 때부터는 제외되었고, 이후 허정무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 때에도 소속팀과 함께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도 대표팀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사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가대표 축구의 조직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당시 신태용은 30대 중반의 노장 선수였음에도 여전히 K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28]

혹자들은 신태용이 레전드급 선수이면서도, 기본기나 퍼스트 터치와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말들도 한다.[29] 또 당시 한국 축구의 플레이메이커는 홍명보로 고정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K리그에서 뛰어난 미드필더라고 해도 홍명보와 궁합이 맞지 않다면 국가대표에서 미드필더로 뛸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신태용은 윤정환과 함께 그런 류의 대표격인 선수였고, 그러다 보니 국가대표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3. 기록

2.3.1. 성남 일화 천마

  • K-리그 우승 6회 :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 K-리그 준우승 1회 : 1992
  • FA컵 우승 1회 : 1999
  • FA컵 준우승 2회 : 1997, 2000
  • 아디다스 컵 우승 2회 : 1992, 2002
  • 아디다스 컵 준우승 2회 : 1995, 2000
  • 하우젠 컵 우승 1회 : 2004
  •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1회 : 2002
  • 대한민국 슈퍼컵 준우승 1회 : 2000
  •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 1996
  •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 1회 : 1997
  •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2004
  • 아시아 슈퍼컵 우승 1회 : 1996

2.3.2. 통산 성적

2.3.2.1. 국가대표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 - 17 4 2
U - 20 1 1
U - 23 6 1
A 대표 23 3
종합기록 34 7

2.3.3. 주요 개인 수상

  •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수상 : 1987
  • K-리그 신인상 수상 : 1992
  •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1992, 1993, 1994, 1995, 1996, 2000, 2001, 2002, 2003
  • 프로축구 골든볼 수상 : 1995
  • K-리그 득점왕 수상 : 1996
  • 디아도라 프로축구 대상 수상 : 1996
  • K-리그 MVP 수상 : 2001
  • 험멜코리아 - 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선수상 미드필더 부문상 수상 : 2002
2.3.3.1. 표로 보기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신인왕
1991년 1992년 1993년
조우석
( 일화 천마)
신태용
( 일화 천마)
정광석
( 대우 로얄즈)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MVP
1994년 1995년 1996년
고정운
( 일화 천마)
신태용
( 일화 천마)
김현석
( 울산 현대)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득점왕
1995년 1996년 1997년
노상래
( 전남 드래곤즈)
신태용
( 천안 일화 천마)
김현석
( 울산 현대)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MVP
2000년 2001년 2002년
최용수
( 안양 LG 치타스)
신태용
( 성남 일화 천마)
김대의
(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FW
황선홍
FW
최순호
MF
김주성
MF
신태용
MF
유상철
MF
서정원
DF
최강희
DF
김태영
DF
홍명보
DF
박경훈
GK
신의손



1992 K리그 베스트 XI
FW
박창현
FW
임근재
MF
신홍기
MF
김현석
MF
신태용
MF
박태하
MF
신동철
DF
홍명보
DF
이종화
DF
박정배
GK
사리체프
1993 K리그 베스트 XI
FW
차상해
FW
윤상철
MF
김판근
MF
신태용
MF
김동해
MF
이상윤
MF
김봉길
DF
최영일
DF
이종화
DF
유동관
GK
사리체프
1994 K리그 베스트 XI
FW
윤상철
FW
라데
FW
김경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황보관
DF
안익수
DF
유상철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사리체프
1995 K리그 베스트 XI
FW
황선홍
FW
노상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김현석
MF
김판근
MF
아미르
DF
최영일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사리체프
1996 K리그 베스트 XI
FW
라데
FW
세르게이
MF
신태용
MF
바데아
MF
홍명보
MF
하석주
MF
김현석
DF
윤성효
DF
김주성
DF
허기태
GK
김병지
2000 K리그 베스트 XI
FW
최용수
FW
김도훈
MF
안드레
MF
신태용
MF
전경준
MF
데니스
DF
강철
DF
이임생
DF
김현수
DF
마시엘
GK
신의손
2001 K리그 베스트 XI
FW
우성용
FW
산드로
MF
신태용
MF
서정원
MF
송종국
MF
남기일
DF
우르모브
DF
김현수
DF
김용희
DF
이영표
GK
신의손
2002 K리그 베스트 XI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3 K리그 베스트 XI
FW
김도훈
FW
마그노
MF
신태용
MF
이성남
MF
이관우
MF
김남일
DF
최진철
DF
김태영
DF
김현수
DF
산토스
GK
서동명

3. 지도자 경력

파일:4109.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태용/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해설위원

2018년 12월 20일, JTBC의 해설위원으로 선임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 아시안컵 동안만 단기간으로 맡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조금씩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려지고 있다. #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조별리그 필리핀전부터 해설을 맡게 되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신태용 본인에게도 쓰라린 기억이 있는 땅인데, 상기한 국가대표 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23년 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있었던 한국 축구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였던 그 경기에 신태용 본인이 출전하여 골까지 기록했었고, 이 대회의 참패 이후 국가대표팀과 멀어지게 된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마지막 날에 홍보 영상이 공개 되었다. #

공개 직후 얼마되지 않아 지워졌다가 재업로드 되었는데 마지막 대사가 수정되었다. 'JTBC가 중계하면 맨날 진다며?'라는 언급이 실현될 줄은...

첫 해설의 평은 상당히 안 좋다. 감독 출신 답게 경기를 보는 안목도 있고특히 벤투호의 문제점들을 보는 능력이 상당히 좋다 설명을 하는 능력도 괜찮은데, 문제는 발음이 장점을 다 잡아먹을 정도로 굉장히 안 좋다. 시청자들에게 경기 상황을 전하는 입장에서 발음의 중요성이 매우 높은데 정작 이것이 잘 안되고 있다.[30] 그런데 이상하게 아시안컵에서 벤투호의 경기력이 안 좋은 상황이라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다행히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중국전부터는 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발음이 보다 정확해져 전의 부정확한 발음으로 잘 전달되지 않아 좋은 설명을 깎아먹던 점이 훨씬 나아졌다. 해설진간의 소통이 보다 원활해지기도 했다. 이때 임경진 캐스터가 들은 신태용 위원의 발음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카타르전 이후 다시 재평가를 받는 중. 신태용이 상대의 전술에 따라 유연하게 전술을 바꿔 나갔고 점유율에 대한 집착이 없이 철퇴 축구로 월드컵에서 성과를 냈던 것에 비해[31] 벤투가 점유율과 같은 멤버들로의 4-2-3-1 전술에만 집착해서 8강에서 떨어진 것이 대비가 크다. 해설 중에도 후반전에는 차라리 황의조와 손흥민을 투톱으로[32] 써서 수비벽을 분산시키는 쪽으로 전술을 바꾸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을 보였다. 실제로 이후 벤투 감독은 손흥민 황의조를 투톱으로 기용하는[33] 4-4-2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정확히는 4-1-3-2, 흔히 다이아몬드 4-4-2로 부르는 형태.

5. 어록

파일:신태용 2.jpg
라돈치치요? 싸가지 없는 놈이죠.
방송에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자 그에 대한 감독의 답변.
내 차보다 훨씬 좋길래 차를 발로 한 대 차고 라커룸에 들어가 " 정우 임마, 차 키 좀 줘 봐. 나 한 번 몰아보자. 차 좋으면 나도 사게."
주차장에 못 보던 신형 포르쉐가 보였는데, 알고 보니 김정우가 상무에서 제대하고 새로 뽑은 차였을 때의 반응.
오늘이 화이트 데이다. 오늘 너희들이 잘하면 경기 끝나고 애인과 웃으면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겠지만, 오늘 너희가 지면 인상쓰고 얼굴 찌푸리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선택은 너희 몫이다.
2010년 3월 14일, 성남 일화 감독 시절 인천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던진 말. 이 날 성남은 인천을 6:0으로 제압했다.
K리그 MVP는 J리그에 가지 않는다.[34]
트릭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볼리비아와의 평가전 종료 직후 기자회견 중.[35]
한국은 월드컵 기간만 되면 3천만명이 감독이 된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던 FC코리아들을 저격한 발언.

워낙 솔직하고 거침없는 언행 탓에 인터뷰 기술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관련기사

6. 이야깃거리

  • 좋아하는 음악은 뽕짝, 트로트라고 한다.
  • 2012년 4월 AFC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치루는 도중, 보온병에 담긴 차를 머그컵에 따라 마시는 장면이 화면에 잡히면서 친환경 감독으로 화제를 모았다. 위 사진은 이후 팬이 제작해 보내준 머그컵[36]을 쓰는 모습.
파일:external/cphoto.asiae.co.kr/2012052617144643734_1.jpg
  • 2012년 5월에 에닝요의 국가대표 발탁을 위한 귀화 추진 계획에 대해 소신을 말하기도 했다.
  • K리그에서 박경훈 감독과 쌍벽을 이루는 K리그의 패셔니스타로 칭송받고 있다. 비록 감독 초기에는 무척 젊은 40대 초반이라 과감한 패션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군살없는 준수한 몸매에 적절하게 옷발이 받쳐준다. 여담으로, 2012년 7월 피스컵에 참가했던 함부르크의 지역 언론은 신태용 감독의 패션에 관심을 보였다.
  • K리그에서 가장 팬 친화적인 감독이었다. 아래 사진처럼 2009년 감독대행 부임 때 첫승 세리머니로 심권호와 함께한 레슬링 세리머니는 매우 유명하다.
파일:external/pds.joins.com/200904111929211202_1.jpg
그밖에 2012 시즌 새 유니폼 발표식 때 신태용이 직접 유니폼을 입고 공개한 것도 유명하다. 간혹 감독의 권위를 무너뜨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감독 본인이 나서서 흥행을 위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노력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2011902510001300_P2.jpg
  • 선수 시절에도 팬 서비스가 훌륭했던 축구인이었다. 오른발로 코너킥을 차려다가도 "태용이형 왼발!"을 외치던 팬을 위해 왼발로 코너킥을 차기도 한 사례가 유명하다. 국가 대표 감독이 되어서도 선수들에게 팬 서비스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2017년 11월 세르비아와의 평가전 경기 시작 1시간 전 쯤 골대 근처의 잔디 상황을 홀로 확인하던 신태용 감독에게 한 축구팬이 화이팅을 외쳐주자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 성남 일화 천마 통일교 재단 소속이나, 신태용 감독 본인은 독실한 불교 신자다. 이와는 별개로, 성남 일화 천마는 창단 시절부터 공개적으로 종교색을 드러내지 않았고, 선수단이나 감독, 직원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골만 기록하면 11명의 주멘 박주영으로 빙의되는 등 노골적으로 종교색을 드러내는 고양 Hi FC와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 모교인 대구공고 선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장 아끼던 선수였다. 결혼 당시 축하한다고 연희동에 초대해 칼국수를 대접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신태용의 스승인 박종환 감독과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 일베 일부 회원들이 신태용 감독이 콜롬비아 선수들에게 뇌물을 제공해 경기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관련기사
  • 장남 신재원이 U-16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이승우를 비롯한 당시 U-16 대표팀이 축구팬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는데, 신재원이 뛰어난 활약만 보여준다면 부자가 사이좋게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38] 하지만 신태용이 코치시절에도, 감독시절에도 발탁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쉽게 팬들이 기대한 풍경이 펼쳐지지는 못했다. U-20 월드컵에는 발탁될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었지만, 당시 감독으로 선임된 신태용이 선임 직후 신재원[39]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었다. #
  • 국가대표에서 그리 많이 뛰지 않았지만 친화력이 강한 성격으로 친한 선후배와 동료들이 꽤 있는 편이다. 특히 선배들에겐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한편, 위에 있는 박항서 감독과의 모습처럼 어울리는 모습이 언론에 종종 찍힌다. 축구계 외에도 인맥이 넓어서 위에 언급한대로 심권호, 양준혁 등 다른 종목 선수들,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있고 영화배우 정준호와도 의형제라고 불릴만큼 친한 편.
  • 감독직을 맡고 있을때는 선수들과 굉장히 격식없이 친구 대하듯 편하게 해준다고 한다. 덕분에 선수들이 신태용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태용타 영상 역시 오늘 왜 그것 밖에 못했냐며 장난스럽게 질책하는 장면이라고 이야기했다.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잘 모르겠다
  • 축구선수로써는 작은 체격에 깔끔해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상당히 터프가이 기질이 있다. K리그의 레전드 외국인 사샤 드라쿨리치가 다소 거만한 기질이 있어서 일화시절에 한번 신태용 앞에서 가오를 잡다가 신태용이 사샤에게 풀스윙 싸대기를 때린 적이 있었다. 일반인 평균키 정도의 신태용이 190cm에 타고난 완력을 가진 백형을 상대로 주저없이 한방 갈길 정도로 상당한 터프함의 소유자다. 그 이후 샤샤는 신태용 앞에서 아주 예의가 바른 청년이 되었다 한다.
파일:쪼옵쪼옵.png
  • 관중석에서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짤방이 있는데, 넋 나간 채 관망하는듯한 표정이라 해충갤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나중에 슛포러브에서 이 짤방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했다. # 그리고 2019년 2월 13일 이 짤방의 2호가 등장했다.
  • 2019 AFC 아시안컵 조추첨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기 때문에 우승컵을 가져오겠다는 말을 남겼으나 유임이 불발되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 대신 아시안컵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
  • 장남 신재원선수가 2018년 12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FC 서울로 입단을 확정했다. 계약기간은 5년이다. #
  • 2019년 10월 13일 박문성의 달수네 라이브에 출연해 여러가지 썰을 풀었다. 방종 직전 능숙한 별풍선 유도를 시전하며 빠른 메타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 그 누구보다 FC코리아의 음해에 크게 시달린 인물이다. 심지어 영남대 출신임에도 연세대 파벌이라는 조작까지 당했을 정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신태용은 FC코리아 몰락의 서막을 연 인물인데, 많은 사람들이 학벌 논란이 거짓임을 알게 된데다가 탈락 위기였던 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 빠르게 수습해 베스트 11과 플랜 A를 구축하는데 성공하며 능력을 입증했고, 개막 직전까지 계속된 실험 역시 출국 직전 베스트 11 중 3분의 1 가량이 부상으로 갈려나가며 울며 겨자먹기로 실행한 것이어서[40] 월드컵 종료 이후 동정의 여론이 생겼다. 게다가 전술 자체는 괜찮았지만 이를 수행할 선수들의 역량이 부족했다거나[41], 독일전에서는 이를 깨닫고 오히려 단순한 전술을 내세워 기어이 승리를 따냈다는 점 등이 주목받아 부임 타이밍이 영 안좋아서 그렇지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고 인정받게된다. 그러나 FC코리아를 위시한 이들은 끝까지 축협에 개라는둥 뽀록이라는둥 인신공격을 해댔고, 축협도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기 위한 협상카드로만 써먹었다. 이때 생긴 FC코리아에 대한 반발 여론은 아시안게임, 벤투호를 거치며 점점 커져갔고, 2019년 동아시안컵 우승 이후 FC코리아는 거의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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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70년 생인 한준희가 직접 말한 바로는 "저보다 한 살 형이에요."라고 하였고, 또한 역시 실제 70년 생인 김병지 또한 감독님 호칭을 쓴 걸 봐서는 1969년 생이 확실하다. 또한 신태용은 예전 서형욱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하여 본인이 직접 69년 생임을 언급하였다. 이유 87년, FIFA U-17 월드컵을 출전하기 위해 당시 대표급 선수들 일부가 호적을 70년으로 고쳤고, 신태용 이외에도 몇몇 선수가 호적을 고쳤다고 신태용 본인이 직접 증언하였다고... # 현재는 대회가 열리는 해 1월 1일을 기준으로 하지만 당시만해도 대회 기준 만 나이를 따져서 그런거라고 한다, [2] 출생 당시 원전동. [3] 공격형 미드필더 [4] 오른발을 주로 쓰지만 상황에 따라 코너킥을 왼발로 찰때가 있다. [5]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해설위원을 맡았다. [6] 무려 13년만에 논문이 통과되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평소에 배움에 갈증이 있었다며 구단의 고민을 알고 선수들을 위한 효과적인 코칭스타일 연구를 위해 바쁜 일정 속에서 박사 논문을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링크 [7]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팀과 U-20 월드컵 대표팀의 지휘봉을 급작스럽게 잡으며 얻은 별명이다 [8] 신태용은 예전에 뛰었던 팀의 모기업에서 생산하는 보리탄산음료인 "맥콜"을 본따서 만든 별명이다. [9] 미드필드에서 공수를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며 붙여진 별명이다. [10] 이 별명은 평소 저돌적인 신태용 감독에 붙은 별명 중 하나다. 신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스스로 “난 난 놈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신태용 감독이 스스로 좋아하는 별명 중 하나이다. [11] 감각적이고 지능적인 플레이로 패스할 때와 드리블 할 때를 확실히 구분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12] 신태용 감독이 요하임 뢰브 감독을 따라했다는 점을 들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에 독일 언론 등지에서 붙인 별명이다. 가짜 뢰브가 이겼다면서 악몽같은 일이라고 표현 한 것이다. [13] 2018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 전 직전에 인터뷰에서 나온 '트릭' 발언을 가지고 놀린 별명이었으나, 역대급 이변의 독일전을 선보인 후에는 신태용을 찬양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그 밖에 신태용이 국가대표 시절의 행보가 나비효과를 불렀을 때도 이 모두가 신태용 감독 덕분, 그가 노린 트릭이었다 등의 드립과 함께 불린다. [14] 2019년 연말에 뭉찬에 출연했을때 뭉찬 제작진이 이걸 순화 해서 '신의 한 수'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15] 독일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의 수라는 드립과 함께 시작됐으며, 심지어 " 손흥민의 군 면제 달성 조건으로 월드컵을 포기하고 아시안게임에 올인(...)하기 위해 을 발굴하고 다른 빛은 숨겨두어야 했다"는 역대급 드립과 함께 이 별명이 추가되었다. [16] 성남의 등번호 7번은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로 계보가 내려져오고 있다. # 그래서, 신태용이 성남 일화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시절에는 등번호 7번을 달았던 현역 선수가 없었다. [17] 본선은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 이후 신태용 이전까지 정정용이 임시로 팀을 이끌고 정비했다. [18] 이는 기존 전술의 핵심자원이었던 권창훈 이근호가 부상으로 낙마해 전술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2차전에서 4-4-2로 회귀했고 1대2로 석패하는 등 확 달라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19] 윤상철도 역시 한 때 K리그 통산 최다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K리그 에서의 활약은 레전드급이나, 이에 비해 대표팀과는 그다지 인연은 없었다. [20] 이 때는 서울 연고 팀으로 동대문운동장을 사용했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때문에 천안시로 옮긴 때는 1996년이다. [21] 천안 일화에서 해임된 뒤, J리그 팀 세레소 오사카의 감독을 맡았다. 당시 황선홍 세레소 오사카에서 뛰며 J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22] 프렌테 트리콜로 [23] 슛포러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00골은 조기축구회에서 넣었다고 한다(...). [24] 2016년에 은퇴할 때까지 김병지는 선수 생활 내내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할 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다. [25] 김기동 선수는 2011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통산 501경기 출전. [26] 연령별 대표 시절에 1987년 FIFA U-17 월드컵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했다. [27] 참고로 이 경기에서 신태용은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었다. [28] 심지어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때인 2003년에는 김도훈, 김대의, 이기형, 박충균, 김현수, 이상헌 등 대표팀과 인연이 없거나 오랫동안 뽑히지 않았던 중견급, 노장 선수들을 국대에 뽑았는데 이들 대다수가 성남 일화 소속이었고, 이 당시에도 신태용은 성남 일화와 함께 잘 나갔는데 이 때도 뽑히지 않았다. [29] 스페인에서 비슷한 이례로 구티가 프리메라리가에서 탑급 미드필더였음에도 '구티의 그 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복이 심해 국가대표로서는 이렇다 할 커리어가 없다. [30] 방송 출연이 그렇게까지 잦은 편은 아니었던지라 사투리에서 묻어나오는 억양을 크게 교정하지 못한 채 해설에 임했다. 또 다른 인터뷰 등을 보면 말을 그렇게 심하게 더듬는 건 아닌데 말을 급하게 하려다보니 발음이 꼬이고 뭉개진다. [31] 주전선수 몇몇들이 부상까지 입어 출전을 못한 상황에서 독일을 이겼다. [32] 신태용 본인이 투톱 체제인 4-4-2 포메이션을 잘 활용했다. 그리고 이겼던 경기는 바로 독일전 [33] 벤투호 초창기에는 손흥민이 톱을 맡기보다는 플레이메이커 수행을 많이 했던 편인데, 아시안컵 이후로는 투톱으로 바꾸었다. [34] 일단 이 발언은 공신력 있는 기사나 인터뷰로 확인된게 아니라 팬피셜로만 인터넷에 떠돌고 있어서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실제로 신태용이 저 발언을 했다고 증언하였다. # 실제로 신태용은 일본 진출을 시도했었으며, 일본에서 좋은 제의가 왔는데 성남과 K리그를 위해서 남은 것도 아니었다. 신태용은 2000년부터 J리그 진출을 타진했으나 관련 기사1, 관련 기사2 연봉문제로 결렬되었다. 결렬 기사 이 때 성남은 K리그에서 가장 자금력이 막강한 구단이라 주전들 대우가 좋았기 때문에 연봉을 낮추면서 일본 진출을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2001년 신태용이 앉은 돈방석 따라서 K리그 MVP가 이 정도 조건으로는 J리그에 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후 달수네 라이브에서 한번 더 언급됐는데 나무위키 과거 편집본대로 J2리그 오퍼였다고... [35] 슛포러브에서 이 발언에 대해 설명했는데, 스웨덴전에 김신욱을 내보내는 것을 스웨덴 감독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위해 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트릭은 엉뚱한 경기에서 터졌다. [36] 성남 로고와 신태용 감독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37] 이 때문에 양준혁도 까였다. 왜냐하면 이 말을 듣고 반박을 못해서라는데 신태용 본인이 언급한 부분이라 진실이 어떤지는 모른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에펨코리아에서는 야구를 부를 때 말머리에 농담 섞어서 레저나 레쟈라고 부른다. [38] 이렇게 된다면 김찬기-김석원 부자, 차범근- 차두리 부자에 이어 세 번째로 대를 이어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39] 1997년생. 고려대학교에 재학중이며, 2018년 12월 10일 겨울 이적시장에서 FC 서울으로 입단이 확정되었다. 계약은 5년이다. [40] 이 정도면 웬만한 팀은 그대로 시즌 말아먹는다. 심지어 클럽팀들도 이거보다 덜한 핵심 1~2명의 장기 부상만으로 트레블할 기세로 달리다가 고꾸라져 무관을 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당시 한국은 손흥민과의 조합에 핵심이었던 주전 스트라이커 이근호, 대회 전 감독과 팬들에게 골을 기록할 것이라며 가장 촉망받던 주전 미드필더 권창훈, 주전 레프트백 김진수, 역시나 촉망받던 준주전급 센터백 김민재, 예리한 왼발 킥을 바탕으로 조커카드로 기용될 베테랑 미드필더 염기훈 등이 모조리 부상으로 나가리를 당해버린다. 심지어 본선가서도 기껏 정해놓은 레프트백 박주호와 팀 핵심 플레이메이커 기성용까지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독일전을 앞두고 전술적으로 쓸 카드가 바닥나버린 암울한 상황이었다. [41] 벤투의 동아시안컵 우승 이후 이 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