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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김천 상무 FC/정정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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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김봉수 · 16 서민우 · 18 유강현 · 20 김민덕
C
· 21 김동헌 · 22 김대원 · 23 박수일 · 24 조진우 · 25 박승욱
VC

27 모재현 · 28 이진용 · 29 최기윤 · 30 이상민 · 33 조현택 · 34 이동경 · 35 홍욱현 · 36 박찬용 · 37 이동준
38 김강산 · 39 원기종 · 41 정명제 · 42 김찬 · 43 이현식 · 44 오인표 · 45 유선 · 46 최예훈 · 47 맹성웅
48 박대원 · 49 박상혁 · 50 김승섭 · 51 김태훈 · 52 추상훈 · 53 김경준 · 54 이승원 · 55 김준호 · 61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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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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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

( 김천 상무 FC)
시즌 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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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52427><colcolor=#ffffff> 김천 상무 FC 감독
Gimcheon Sangmu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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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정정용
鄭正溶 | Chung Jung-yong
[1]
출생 1969년 4월 1일 ([age(1969-04-01)]세)
경상북도 달성군
(現 대구광역시 달서구)[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 체중 76kg
직업 축구 선수 (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b52427><colcolor=#ffffff> 선수 이랜드 푸마 (1993~1997)
감독 대한민국 U-14 대표팀 (2008/ 코치)
대한민국 U-14 대표팀 (2008)
대한민국 U-14 대표팀 (2009/ 코치)
대한민국 U-17 대표팀 (2011/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2/ 코치)
대한민국 U-17 대표팀 (2012~2013)
대구 FC (2014/ 수석코치)
현풍고등학교 (2015)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16 / 감독대행)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7 / 감독대행)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17~2019)
서울 이랜드 FC (2020~2022)
김천 상무 FC (2023~ )[3]
기타 한국프로축구연맹 (2023~ / TSG 위원)
국가대표 없음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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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52427><colcolor=#ffffff> 서명 파일:정정용서명.png
본관 연일 정씨 (延日 鄭氏)[4]
학력 대구신암국민학교[5] ( 졸업)
청구중학교 ( 졸업)
청구고등학교 ( 졸업)
경북산업대학[6] ( 건축학 88 / 학사)[7]
성결대학교 사범대학 ( 체육교육학 / 학사)
명지대학교 대학원 ( 체육학 / 석사[8])
한양대학교 대학원 ( 운동생리학 / 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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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지도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기타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이랜드그룹 산하 축구단 프랜차이즈 선수로 첫 프로 감독 경력을 2019년 서울 이랜드 FC에서 시작했다.

프로 선수 경력이 없는 무명 출신인데도 20세 이하 대표팀을 FIFA U-20 월드컵 결승에 올려놓은 명지도자로 거듭난 입지전적인 인물로 대구 FC에서 한 차례 코치를 맡은 것을 제외하고 거의 유소년 전담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으나 2020년 서울 이랜드 FC 감독을 맡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프로 구단 감독으로서는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를 기록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 남자 축구 역사상 최초로 U-20 월드컵 준우승을 거두며 한국 남자 축구 감독 최초의 FIFA 공인 대회 결승전 진출 감독이 되었다.[9]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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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센터백 포지션을 맡았던 그는 상기한 것처럼 프로에 입문하지 못해 유명한 선수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1969년 4월 1일 경상북도 달성군(現 대구광역시)에서 아버지 정원일(鄭元一)[10]과 어머니 경주 김씨 김춘기(金春起)[11] 사이에서 3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신암국민학교[12] 4학년 재학 시절에 축구에 입문한 뒤, 대구 지역의 축구 명문학교인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13]를 거쳐 1988년에 경일대학교[14]에 입학한다. 대학 졸업 직전인 1992년 12월에 창단된 실업팀 이랜드 푸마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다섯 시즌 동안 활약하였으나 머리 쪽 부상으로 인해 29세의 젊은 나이에 축구화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부상이 꽤 심각해서 의사가 헤더를 더이상 할 수 없다고 진단했고 센터백이 헤더를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가 은퇴한 직후인 1998년 2월에 이랜드 푸마 역시 해체되었다. 당시 IMF 외환위기로 인해서 여러 스포츠 팀들이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는데, 이랜드 푸마 역시 그 여파를 비껴나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수 시절부터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이랜드에서 선수로 뛸 당시 구단의 허락을 받아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 과정에 재학했고, 이런 학구열은 그가 무명 선수 생활을 딛고 유능한 지도자로 거듭나는 데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3.1.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

은퇴 후 1997년 12월, 선수 시절 말기에 이미 재학 중이던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5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스포츠생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는 등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준비했고, 유소년 축구 강국인 포르투갈로 축구 유학을 떠나는 등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쌓는 데에 주력했다. 이후 U-14 대표팀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올라갔다.

3.2. 대구 FC 코치

파일:903_1069_3924.jpg

2014년 자신의 고향 팀 대구 FC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면서 최덕주 감독을 보좌하였다.

2015년에는 대구의 산하 유스팀인 현풍고등학교의 감독으로 보직을 변경하며 유소년 지도자로 복귀하였다.

3.3.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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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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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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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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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2기.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잠깐 맡기도 했다.

정정용 감독은 대한민국을 2019년 U-20 세계청소년 축구 대회 결승전에 진출시킨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다.

3.4. 2020 AFC U-19 챔피언십

지도력을 인정 받아 8월 2021년까지 U-20 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재계약하면서 2019년 11월 미얀마에서 개최되는 2020 아시아축구연맹 19살 이하 챔피언십 예선과 2021 U-20 월드컵을 준비하게 되었다. 여러 클럽과 중국 U-20 감독 오퍼도 있었는데 중국은 일단 한국과 붙어야 하는 상대라 고려도 하지 않았고, 클럽팀으로 떠나자니 챔피언쉽 예선이 2달 밖에 남지 않아 무책임하게 떠나기 싫었다고 이야기했다.

10월 1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GSB 방콕컵에서 우즈벡을 5:1로 대파하면서 결승에 진출했고, # 10월 13일 결승전에서 베트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

11월 6일부터 10일까지 열린 2020 AFC U-19 챔피언십 예선에서 싱가포르, 미얀마, 중국을 상대로 3전 전승, 18득점, 1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며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특히 뜬금없이 판다컵 복수를 운운하며 나온 중국은 PK 2개를 선언받지 않는 혜택을 얻고도 1-4로 대패하며 축구팬들에게 웃음을 주었으며, 조 2위 간 순위에서 캄보디아에게 밀리면서 6위까지 내려가면서 탈락 위기에 놓였다. 각 조 2위들이 2승 1무한 팀만 무려 5팀이나 되는데다가 AFC 챔피언쉽 개최국이 떨어지는 바람에 2위 진출권 하나가 그쪽으로 넘어가, 중국은 탈락이 확정되었다. 사실 중국은 말로는 판다컵의 복수를 하겠다며 큰소리를 떵떵 쳤지만, 실제 전략은 미얀마와 싱가포르는 이기고, 조 최종보스 한국과의 경기는 대량실점을 최대한 막으며 2위들 간의 겅쟁을 노린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물론 미얀마와 싱가폴을 이기고 한국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순간까지는 예상대로였는데, 후반 막판 수비진의 집중력 저하로 3골을 연달아 먹히며 대패하고 골득실에서 밀린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중국을 한국이 직접 떨어뜨린 꼴이었다

3.5. 서울 이랜드 FC

축구협회로부터 U-20 대표팀 전속 감독 계약을 맺는 등 다음 U-20 월드컵 때까지 쭉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맡을 것으로 전망되었지만 2019년 11월 28일 돌연 서울 이랜드의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프로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연봉은 무려 5억 원이라고 한다.

이미 U-20 월드컵 이후 다수의 클럽으로부터 다양한 구애를 받았지만 성인과 유소년 대표팀의 가교 역할을 수행코자 하는 의지와 AFC U-19 챔피언쉽 예선이 얼마남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사해왔으나 계속된 서울 이랜드FC의 지속적인 요청에 KFA는 대승적 차원의 축구발전을 위해, 그리고 정정용 감독은 지도자로서의 발전 기회 모색을 위해 제안을 승낙했다고 한다. #
한편 이랜드 감독 부임 직후 2019 AFC 어워즈에서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

팬들은 주로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정정용 감독의 용병술이나 지도 역량에 대한 의심은 아니고, 굳이 다른 클럽을 놔두고 하필이면 '이랜드'로 간다는 점을 문제로 여기고 있다. 서울 이랜드가 보여준 그간의 행적들이 기행적이기도 하고 조급함에 감독을 믿고 기다려 주기보다는 단기간의 성적에 매몰되어 쉽게 경질하던 모습을 너무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15] 더군다나 정정용 감독이 이랜드의 2차 구애를 받았던 10월을 떠올려 보면 의외로 갈 구단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무산되기는 했으나 K리그2 구단 창단의 의사를 보인 청주도 가능했었고, 하나은행 인수 과정에서 이흥실- 황선홍 감독 교체 문제로 혼란이 일어난 대전이나 김대의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던 수원 FC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강등 위기에 몰려있던 '인경제'( 인천, 경남, 제주) 세 팀을 지켜보다가 강등되는 팀을 고를 수도 있었다. 이런 반응을 정리한 서호정 기자의 칼럼.

정정용 감독과 이랜드 구단도 이런 시선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정정용 감독의 취임식에서 같이 나왔던 장동우 이랜드 대표이사는 "총괄을 하며 1년 동안 대표 생활을 하면서 축구단을 이해하기 위해 굉장히 관계자 많은 분들을 만나봤다. 이구동성으로 우리 문제점을 많이 이야기해주셨다. '기업이 일하는 것처럼 단기성과에 급급해 매년 감독을 바꾸더라', '1년 만에 되는 게 아닌데 기다려주지 않더라'라는 이야기를 해줬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정정용 감독을 모시는 데 이런 시선을 가진 상태에서 감독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 감독을 모시기 위해 목포 축구센터, 포항, 경주, 파주, 심지어 대구 자택까지 찾아다니며 설득을 했고, 모기업으로부터 지원과 시간을 기다려주겠다는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정용 감독에게 최대한 시간을 보장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랜드의 그전 행보들을 보면 이 말을 마냥 신뢰할 수는 없어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정정용 감독도 이런 시선에 대해 "여론이 안 좋은 걸 잘 안다. 우리 아들도 '괜찮겠냐'고 걱정했다."라며, 간절한 구단이기에 선택했고, 3년 보장을 믿고 계획을 짜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연령대별 대표팀은 전임지도자들이 잘하고 있어 이제 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판단했다"고 밝히면서 목표를 '젊은 선수 육성'을 통한 1년의 리빌딩 후, 3년 내 승격으로 잡았다. 기사

3.5.1. 2020 시즌

2020년 5월 9일 K리그2 개막전에서 남기일 감독의 제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두며 팬들에게 기대감을 주었다.[16] 경기 내용도 좋았고 막판 VAR로 골취소만 없었으면 이길 뻔한 경기였다. 2차전 경남전에서는 2:2 무승부, 3차전 전남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4차전 안양전에서 0:2로 패했다.

그리고 5라운드 아산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드디어 프로팀 감독 데뷔 첫 승을 거두었다. 6월 6일 FA컵에서 승리했다.

6월 13일, 홈에서 황선홍 감독의 대전과 6차전을 가졌는데 상대팀 에이스 안드레를 철저히 틀어막으며 2:0으로 승리했다. 이로서 홈에서의 첫 승을 달성했다.

7라운드 하위권 안산이라 여기서 이겼으면 상위권이었는데, 수비 실수, 부상 등이 겹치며 0:2로 패했다. 8라운드 부천전에서 전반, 후반 초반까지 고전했고 Pk로만 2골을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치렀으나 적절한 교체 이후 맹공을 퍼부어 3:2로 역전승을 한다.

2020년 7월 1일 FA컵 제주전에서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2:3으로 역전패하며 탈락했다. 9라운드 수원FC와의 홈경기에서 0:3으로 완패했다.

7월 11일, 원정에서 설기현의 경남과 10라운드를 가졌는데 전반 43분 경남의 이광선한테 골을 내줬지만 후반 20분 김태현이 동점골을 넣었고 후반 43분 수쿠타 파수가 역전 결승골을 넣으며 2:1로 이기며 경남을 2연패의 수렁으로 빠뜨렸다.

10월로 진입하면서 진짜로 이번 시즌 목표였던 플레이오프를 갈 수 있는 확률이 커졌다! 경남을 다시 1:0으로 이기면서 4위로 상승하였고, 작년만 해도 최하위권을 전전하던 이랜드를 돌풍의 팀으로 만들고 있다.[17]

10월 11일 부천 FC 1995와의 홈경기에서 일부 선수들이 올림픽 대표팀으로 차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0 완승을 거두었다. 순위도 많은 투자를 한 대전같은 팀을 제끼고 단독 3위로 상승하였다. 최근 몇년간 최하위권을 전전한 팀이 맞는지 신기할 정도다. 안양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잠시 4위로 내려갔다가 안산전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다시 3위에 올랐다.

최종라운드인 27라운드에서 승점 상황은 대전 39, 이랜드 38, 전남 37, 경남 36. 이랜드는 전남과 붙게 되었다. 이 경기의 승자는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이고 설사 비기더라도 대전이 이기면 이랜드의 진출이었다. 허나 대전이 초반에 실점하고 결국 경남에게 졌고, 이랜드는 전남과 비기면서 경남, 대전, 이랜드 모두 승점 39가 되었으나 다득점에서 밀리면서 이랜드의 플레이오프 진출은 실패했다. 최종 순위는 5위다. 그렇지만 최근 최하위권을 전전하던 이랜드를 좋은 경기력으로 플옵 경쟁권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 적절한 투자가 있으면 승격도 기대해봄직 한 시즌이었다. 괜히 U-20 월드컵을 준우승시킨 감독이 아니라는 평이다.

3.5.2. 2021 시즌

파일:SK004_20211002_130401.jpg

황태현, 김선민 등을 영입하고 이상민 문정인을 완전영입에 성공하면서 보강에 점점 힘쓰고 있다.

21 시즌 개막전 부산 아이파크 원정에서 3:0 승리를 거두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개막전 승리를 가져왔다. 2라운드는 홈에서는 1부 상위급 전력인 김천 상무에게 4:0 대승을 거두었다. 그 후 무려 5경기 무패행진으로 1위에 올라있다. 참고로 이랜드는 정정용이 오기 전에는 2년 연속[18] 10위 즉 꼴찌를 달리던 팀이었다.

4월 14일 하나은행 FA컵 3라운드에서 펼쳐진 구단 역사상 첫 서울더비에서 후반 85분 레안드로의 결승골로 0:1 승리를 챙기면서 16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충남 아산한테 충격패를 당하고 대전과의 경기에서도 패하며 승격경쟁에 불리해졌다. 그리고 초반의 기세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매우 부진하다. FA컵 서울 더비 이후 리그에서 딸랑 1승만 했으며 6월 첫 경기 전남전에서 3:0 대패를 당하며 정정용 감독에 대한 비판도 늘었다. 앞으로도 변화가 없는 한 이랜드 감독 자리도 안심할 수 없을 듯 하다.

7월 7일 김희호 코치가 갑작스럽게 별세하는 비극이 발생했고, 정정용 감독은 큰 충격 속에 3일간 빈소를 지켰다. 이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이 커져 주치의와의 상의 끝에 7월 10일 진행되는 대전 하나 시티즌과의 경기에 불참하게 되었다. # 대전과의 경기는 인창수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맡았고, 그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현재 여름 이적시장에 고바야시 유키, 이재익, 이규로, 김인성 등의 1부 리그 수준의 선수들을 다수 영입하였다. 구단에서 이 정도까지 보강을 해줬는데도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감독 경질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19] 하위권 팀인 충남 아산전, 부천 FC전에서 모두 패하면서 최하위 부천과 승점 1점 앞서는 9위가 되었다. 코로나로 연기되었던 FC안양과의 경기에서도 또 졌다. 벌써 3연패다.

현재까지 시즌 동안 두번의 확진으로 인한 자가격리, 김희호 코치가 별세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감독, 코치 이하 선수들 및 프런트 주요 구성원들의 멘탈이 온전하지 않아 심리 상담 전문가를 초빙해 카운셀링을 한다고 한다. 지금의 부진에 대해 완벽한 변호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 후 멘탈을 회복할 시간이 없었던것도 사실이긴 하며, 이러한 조치 이후 달라질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 기사 경남전에서 간만에 다득점했지만 역시 다실점하며 3:3 무승부, 김천전에서 3:1로 박살나며 최하위가 되었다. 때마침 같은 서울 연고팀이고 같이 최하위를 달리던 FC서울 박진섭이 사퇴한만큼 다가올 부천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정정용의 감독 자리가 위태로울 것이다.

그러다가 리그 29라운드 부천 FC 1995전에서는 오랜만에 3:0 대승을 거두며 다시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85분에 과도한 항의로 퇴장당해 남은 시간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했다. 퇴장당한 후 치른 대전전에서는 2:1로 승리했으며, 코로나로 연기된 부산전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퇴장 징계 복귀 후 치른 부산과의 정규라운드에서 2:1로 패하고 말았다. 10월 2일 경남과의 홈 마지막 경기이자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리모델링전 마지막 경기를 1-1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네 경기 남은 상황에서 승강 플레이오프 하한선인 4위도 어렵다. 현 4위 전남과 승점 차이는 12점 차가 되었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려면 일단 남은 경기를 다 이겨야만 하는데, 문제는 만일 이후 4위 전남이 다득점을 기록해서 서울과 승점은 같지만 득점이나 득실차가 더 높을 수도 있고, 5위에서 8위 팀들이 더 이상 승점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당장 5위인 부산이 두 경기만 더 이기거나 승점 6점만 추가해도(1승 3무의 경우) 승점 47점이 돼버리기 때문에 설령 서울 이랜드가 남은 전 경기에서 다 이겨도 플레이오프 진출을 장담할 수 없고, 이후 인터뷰를 보면 사실상 남은 4경기는 유종의 미와 다음 시즌을 대비해 새로운 비전을 찾는 것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

10월 9일 전남전에서 0:1로 패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게다가 이랜드보다 앞서 경기를 치른 부천이 승리하면서 결국 리그 최하위인 10위로 추락했다. 전남에게 승리하면 조금이나마 플옵 진출의 가능성이 생겼겠지만, 최근의 처참한 리그 성적을 생각해보면 사실 기대를 한 사람도 그리 없었다. 10월 31일 최종전 충남아산전에서 1:2로 패하며 시즌을 9위로 마무리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성적에 책임은 지겠지만 사퇴하진 않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스스로 감독직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다는 것을 시사하였다. 두 번째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이랜드 감독으로서의 정정용의 행보는 묘하게 첼시 감독 시절의 램파드의 행보와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 해당 팀의 역사를 같이 한 인물이라는 점, 아래 레벨에서 지도력을 인정 받았던 점 [20], 첫 시즌에 가능성을 보여주어 보드진이 첫 시즌보다 더 적극적으로 영입을 타진하였으나 막상 두번째 시즌에서는 전 시즌보다 안 좋은 결과를 냈다는 점 등의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프로팀 감독보다는 유소년팀 감독으로 있을 때 능력이 더 빛나는 케이스로 볼 수 있다.

12월 31일 공개된 K리그 연봉표에 따르면 서울 이랜드는 연봉 총액이 약 53억원으로 K리그2 10개 구단 중 3위다. 연봉은 3번째로 많이 쓰고도 정작 리그 순위는 뒤에서 2번째라는 참담한 결과표를 얻었다.

3.5.3. 2022 시즌

계약 기간 3년의 마지막 해로서, 본인 스스로도 3년 내 승격을 약속한 만큼 이번 시즌이 정정용과 이랜드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1 시즌이 끝난 직후부터 새 시즌 구상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시즌 도중 소방수로 합류했던 공오균 코치와 박지현 피지컬코치, U-20 월드컵부터 함께했던 임재훈 전력분석코치, 인창수 수석 코치와와는 모두 결별하고, 최철우 수석코치, 서동명 골키퍼 코치, 백영철, 이문선 코치, 김연준 피지컬 코치를 새로 선임했다. 오피셜

코치 뿐만 아니라 문상윤, 이규로, 바비오, 유키 등 15명 가까이 되는 선수들과 결별하며 그야말로 선수단을 싹 갈아 엎었으며, 영입으로는 이동률, 니시 츠바사, 윤보상, 배재우, 박태준, 채광훈 등 수준급 선수를 많이 보강했다.

이렇게까지 구단이 정정용의 입맛에 맞게 돈을 많이 적지 않게 들여 선수단을 싹 갈아엎으며 최대한 해줄수 있는 것을 다 해준 만큼 2022 시즌은 정정용도 결과로 반드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시즌이며, 만일 22시즌도 승격에 실패한다면 재계약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2시즌 개막전 경남 FC 원정에서 설기현이 어깨빵으로 퇴장당한 상태서 새로 영입한 외국인 공격수 까데나시를 교체 투입했고 이것이 적중해서 1:0으로 승리했다.

FA컵 창원시청과의 대결에선 승부차기 끝에 패배해버리면서 서울 더비는 성사되지 않았다.

모구단이 이렇게까지 감독에게 최대한 입맛에 맞게 많은것을 지원해주는 사례는 드문경우인데, 이렇게까지 해줬는데도 경기력은 좀 처럼 나아지질 않고 있다. 그간 이랜드에서 감독들을 너무 함부로 날려서 이번엔 임기를 보장해주려 하는데 그 감독이 하필 종신감독급이라 팬들은 암울하다.

현재 8라운드 2승 5무 1패로 여전히 무승부경기가 대다수를 이루며 거기다 6득점 5실점으로 득점조차 저조하다.물론 8경기 5실점 좋은 수비력을 갖추었다고 보일지도 모르나 결국 승리는 2경기 밖에 가져오지 못하였으며 이번 시즌조차 공격에서 미숙한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12라운드 경남전에서 1:3으로 패하면서 정정용 부임 후 처음으로 경남에게 졌고, 연이은 광주원정에서도 1:0으로 패했다.

김포 FC와의 홈경기에서 간만에 3:1 대승을 거두며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5월 대전과의 홈경기에서 0:1로 패하자 계속 좋지 않은 경기력, 성적에 인내심이 바닥난 팬들이 경기가 끝나고 정정용 감독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서울 이랜드 팬들: 감독님은 나가면 그만이잖아요.
정정용: 나 안 나갈 건데?

문제는 이때 나온 정정용의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21]

부천전에서 부천의 실수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한 명 퇴장당한 부천에게 바로 동점골을 실점하며 결국 무승부를 거뒀다. 전남전에서도 또 무승부를 거뒀다. 여전히 경기력은 좋지 않다. 이후 4경기동안 2무 2패를 기록했다.

파일:Screenshot_20220725-085101_Instagram.jpg
감독님, 언제 나가요?

광주전에서 까데나시의 원더골을 비롯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후반 거의 끌려다니다시피한 경기를 보여주다 무승부를 기록하며 10경기째 무승을 기록했고, 이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일부 관중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걸개를 걸기도 하였다.

7월 18일 대전전에서 3:1로 졌다. 다만 패배의 계기가된 김정환의 퇴장이 오심으로 밝혀지면서 참작할 부분은 있다.

8월 1일 김포전에서 간만에 3:0 대승을 거뒀다.

8월 6일 안산전에서 2:1로 앞서자 지나치게 일찍 라인을 내리며 안산에게 실컷 두들겨 맞았다. 결국 후반전 추가시간에 동점골을 내주며 연승할 기회를 날렸다.

8월13일 부천전에서 답답한모습만 보이면서 0대0으로 비겼고 이로인하여 안산하고의 승점이 1점차로[22] 좁혀지면서 그야말로 팬들에게 몰매를 맞고있다.

8월 16일 최하위 부산 아이파크 원정에서 답답한 경기를 하다가 선제골을 얻어맞고 패했다.

8월 20일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광주 FC와의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홈에서 4대0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경기력, 세부 지표, 경기 내용면에서 모두 광주에게 밀렸고 그야말로 양학 당했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처참한 패배를 거두었다. 팬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엄청난 비난을 퍼붓고 있다.

8월 31일 대전하나시티즌전에서 전반22분 까데나시의 선제골로 앞서갔고 4분 뒤 이동률의 추가골로 앞서갔으나 전반43분 이진현에게 한골을 얻어맞으면서 팬들의 불안함을 샀으나 이후 후반전을 나름 잘 지켜내며 드디어 승리를 맛보는데 성공했다.

이후 경남전, 김포전, 충남아산전에서 모두 승리하며 4연승을 이룩했고 멀게만 느껴졌던 승강 플옵 진출의 마지노선인 5위도 불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간 제기되었던 정정용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에 대해 경기력과 결과 모두 가져오며 긍정적인 의미로 재평가 받았다.

9월 18일 안산전에서 상대의 이른 퇴장과 선제 득점으로 5연승을 거둘 기회를 맞았으나, 소극적인 운영으로 밀리더니 결국 동점골을 허용하며 무승부를 거두고 말았다. 그리고 9월 21일 순연되었던 28R 경남FC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2분만에 선제골을 얻어 맞은 뒤 만회골을 넣지 못하고 0:1로 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5위 경쟁에서 다시 불리해졌으며, 결국 잠깐의 우연이였다는 평가를 받는 듯했다.

이후 리그 3,4위의 안양, 부천을 각각 3:2, 3:0으로 모두 때려잡으며 6위로 도약했다. 3경기 남은 상황에서 5위 경남과는 승점 2점차다. 그러나 10월 5일 아산과의 순연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2경기 남은 시점에서 5위 경남과 승점차가 5점으로 벌어졌다. 다만 잔여 일정상 이랜드에게 아직 기회는 있었다.[23]

10월 8일 10위 전남과의 원정 경기는 플레이오프에.진출하려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기였으나 이재익이 퇴장당하는 바람에 수적으로 불리해졌고 결국 0:3으로 패배하면서 정정용 3년차에도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이제 의미는 없지만, 다음날 치러진 경기에서 경남, 아산이 모두 패하는 바람에 서울 이랜드만 이겼으면 마지막까지 플레이오프 싸움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어떤 선수단을 갖추더라도 감독의 역량이 부족하면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말았고, 서울 이랜드 FC와의 재계약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였으나, 2022년 10월 21일 정정용 감독이 서울 이랜드와 재계약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계약 기간은 '1+1년'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기사

그러나 위 기사와는 달리 10월 25일 상호 합의 후 재계약 없이 팀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구단 SNS를 통해 작별 인사를 남겼다. #

정정용이 떠난 후 12월 30일에 공개된 연봉표에 따르면, 서울 이랜드의 연봉 총액은 약 57억원으로 K리그2 11개 팀 중 2위였다. 반면 리그 순위는 7위를 기록했는데, 지난 시즌보다 리그 순위는 올랐지만 결국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며 2시즌 내내 처참한 결과만 남았다.

3.6. 퇴임 이후

서울 이랜드 FC의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2023년 1월 1일 모교인 경일대학교 SMART스포츠대학 전문스포츠학부 축구학과 부교수 부임했다.

또한 교수직 이외에도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TSG)직도 맡게 되며, 평일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경기장을 찾아 기술위원으로 경기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24]

거주지가 대구인데, 경상권에는 기술 위원이 없어서 경상권 팀 위주로 맡아서 분석하게 된다고 한다. #

3.7. 김천 상무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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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도 스타일

주제 무리뉴가 자주 사용 하는 선 수비 후 역습으로 이 전술을 항상 사용한다.

좋은 성적을 냈을 때는 수비 벽을 두텁게 쌓은 후, 역습 한두 방이나 세트피스로 재미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장점이 단적으로 드러난 경기가 2019년 20세 이하 월드컵이었다.

역으로 상대방이 수비적으로 나오거나 정정용 감독이 주도적인 축구를 해야할 때에는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25]

비상시에 다양한 전술, 전략을 가져올 수 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최근들어서는 정정용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혹평을 받았다.

공격시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이 전진하여 득점을 노리는 편으로서, 역습 시에는 기술 좋은 윙어들을 앞세워서 3선에서 주도해나가며 공격을 해 나가는데 너무 윙어의 개인 능력에만 너무 의존한다고 평가 받는다. 또한 공격에서 세부 전술이 부족하고 아무리 영입을 하고 다른 선수가 나오더라도 같은 경기력이 나오고 있음을 보아 그냥 전술 자체에 문제가 많아보인다.

서울 이랜드에 첫 부임한 2020 시즌에는 부족한 퀄리티의 선수단으로 괜찮은 성적을 냈지만 오히려 선수 보강이 잘 된 2021, 2022 시즌에 부진한 걸 봐서는 성인 선수들의 장악 능력도 부족한 것 아닌가하는 의문점이 나왔지만 2023시즌 김천 상무 FC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K리그2 우승을 이끌고 2024시즌 K리그1에서 순항을 이끌면서 이런 의문을 종식시키고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대한민국체육상 지도자상(2019)
  • AFC 올해의 지도자(2019) [26]
  • KFA 올해의 지도자(2019)

6. 기타

  • 2019 U-20 월드컵 직후 추석을 맞아 이낙연 총리와 화상 전화를 하기도 했다.
  • 이승우와는 찰떡 케미를 자랑한다. 이승우도 제일 존경하는 감독을 뽑을 때 1순위로 정정용 감독을 말한다.
  • 선수들에게는 감독님이라는 호칭 대신 선생님이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린다.
  • 부인은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무명 지도자 시절에는 국제 대회 출전으로 인해 첫 아이의 출산조차 곁에서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기사
  • 둘째 형은 정두용(鄭斗溶) 대구광역시 분권선도팀장이다. 기사
  • 초등학생 아들이 U-20 월드컵 16강전을 앞두고 "한 골 넣으면 만 원, 두 골 넣으면 20,000원 줄 테니 꼭 이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애한테 용돈 받게 생겼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2019년 6월 22일 대구 FC FC 서울의 K리그 1 17라운드 경기에서 시축을 했다. 정정용 감독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 FC 수석 코치와 U-18 감독을 역임했기 때문에 대구 팬들에게는 각별한 존재로, 대구 유니폼을 입고 이 날 경기를 끝까지 직관했다. 이후에도 경기장에 종종 나타났고 K리그 2019시즌 최종라운드에도 직관했다.
  • 오랜 시간을 한국 유소년 축구 감독으로 있어온 감독으로써 현 세대에서 유망한 축구 선수들을 모두 지도해본 경험이 있다. 전임지도자로 U-14, U-16레벨의 소집 훈련도 자주 진행했기 때문에 사실상 95년생부터 01년생까지 연령별 대표급 유망주들 중에는 정정용 감독의 손을 거치지 않은 선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승우, 백승호, 이강인, 김정민 등 해외파 유망주들 외에도 한국 유망주들에 관해서 장기적인 육성과 단기적인 코치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다고. 실제로 2019년 U-20은 그의 유소년 축구 경험의 산물로써 엄원상, 이광연 등 대회 전에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던 선수들이나 정정용 감독이 소집하여 이강인 못지 않은 활약으로 극찬을 받았다.
  • 팬들에게 서명을 해 줄 때 십자가를 표시할 만큼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위의 프로필에 적혀 있는 사인란에도 버젓이 보인다.[27]
  • 군경팀 김천 상무의 감독으로 부임 중이지만 군대는 처음 와봤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으며, 당직 근무는 물론이고, 점호도 처음 해봤다고 한다. 심지어 2024 시즌을 앞두고 가진 K리그 1 미디어데이에서는 어설픈 경례로 무거웠던 현장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도 했다. 아무래도 부상 등의 이유로 군면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

7. 둘러보기

1 이광연 · 2 황태현
C
· 3 이재익 · 4 이지솔 · 5 김현우 · 6 김정민 · 7 전세진
8 이규혁 · 9 오세훈 · 10 이강인 · 11 엄원상 · 12 박지민 · 13 고재현 · 14 박태준
15 정호진 · 16 김주성 · 17 이상준 · 18 조영욱
VC
· 19 최준 · 20 김세윤 · 21 최민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정용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공오균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인창수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오성환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대환



[1] 영일정씨세보 7권 위양공파 851면(영일정씨 문정공파 인터넷족보) 참조. 생일과 둘째 형의 이름이 정두용(鄭斗溶)인 것이 일치한다. [2] 당시 달서구는 경상북도 달성군 월배면, 성서면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3] 시즌 도중 부임. [4] 문정공파-위양공파 27세 용(溶) 항렬. [5] 現 대구신암초등학교 [6] 경일대학교 [7] # [8] 석사 학위 논문: 축구 경기의 득점 및 어시스트 위치·방향분석에 관한 연구(1997. 12). [9] 사실 2017년 U-20도 감독할 수 있었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2017년 U-20세대도 어쨌든 16강에 갈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는 점과 유소년 감독으로 써나간 정정용 감독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 안타깝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본인은 그 당시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10] 족보명 정태열(鄭泰烈). [11] 김소의 딸이다. [12] 공교롭게도 20세 이하 대표팀 멤버 중에서 고재현 김세윤이 그의 초등학교 후배이다. [13] 박주영이 그의 중고등학교 직속 후배이다. 동기가 최원일 해군 예비역 대령이다. [14] 당시 교명은 경북산업대학. [15]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최근 강원 FC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김병수 감독이 있다. 김병수 감독 역시 영남대 축구부에서 일약 돌풍을 일으키며 폐부 직전의 축구부를 U리그를 제패하는 위상의 축구부로 만들어 냈기에 많은 클럽이 탐을 내던 감독이었다. 단순 성적뿐 아니라, 전술의 파격과 완성도, 선수를 키워내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이 영입전에서 이랜드는 2017년 김병수 감독을 선임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3년을 보장한다던 이랜드는 시즌 성적이 8위에 그치자 김병수 감독을 대표 이사와 함께 '동반 사임'의 형태로 구단에서 퇴출시켰다. 이후 김병수 감독은 2018년 8월 강원에 부임한 이후, 2019년 소위 ' 병수볼'이라는 이름으로 대구 안드레 감독과 함께 리그에서 가장 주목 받는 다크호스 팀의 감독이 되었다. 반면 이런 김병수 감독을 내친 이랜드는 '18, '19 시즌 연속 K리그 2 최하위를 하고 만다. [16] 제주가 유력한 승격 후보로 꼽혔던 팀인만큼 몇년 동안 최하위를 전전했던 이랜드에겐 상당한 소득이다. [17] 서울 이랜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건 창단 첫해인 2015년 K리그2(당시 K리그 챌린지) 4위였다. [18] 2018, 2019 시즌. [19]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된 바인데 이랜드가 호성적을 내면서 다른 팀들이 철저하게 분석한 것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U20 팀이 아무리 글로벌하게 U20 월드컵에 나와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을 이루었음에도 프로와 U20은 차이가 무조건 날 수밖에 없다. 폴란드 U20 월드컵 출신 선수들 중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전세계를 기준으로 봐도 현재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특급스타로 자리잡은 엘링 홀란드나 빅리그 무대에서 자리잡은 이강인. 그리고 실력은 이미 빅리그 수준이나 주전이 월드클래스라 부득이하게 세컨키퍼로 밀린 안드리 루닌 세 명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아니 전세계에서 프로무대에서 확실하게 자리잡은 선수는 아직까지는 찾기 힘들다. 그리고 이 세 선수는 U20에서 거둔 실적으로 주목받은 게 아니라 이전부터 빅리그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즉 원래 무명이었다가 U20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끌어올린 선수는 아직은 없다는 뜻이다. 아니, 나이가 더 많은 U23조차도 리그에서 자리잡은 선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게 현실이며 그나마 뉴질랜드, 루마니아, 온두라스의 비슷한 레벨의 선수들 상대로는 성과를 냈지만 결국 8강전에서 진짜 강팀인 멕시코 올림픽대표팀을 만나자 실력 격차에 더해 김학범 감독의 오판이 겹쳐 손도 못 써 보고 3:6으로 패배하며 탈락의 쓴맛을 봐야 했다. 그만큼 프로의 벽은 높으며 감독 또한 예외는 없다. 무능해서 조기 경질해야 하네, 종신감독이네 뭐네 해도 큰 무대에서 경기를 한 감독들은 엄연히 그 무대에서 무능한 것이지, 그 아래 레벨에서 무능한 게 절대 아니며, 몇몇 축알못들의 파울루 벤투 경질 주장을 정상적인 축구인들이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20] 램파드는 더비 카운티 감독을 하면서, 정정용은 U20 감독을 하면서 [21] 감독은 팀을 떠나 나중에 다른 팀 지도자로 부임하면 그만이지만 팬들은 구단과 계속 함께 해야되니까 잘 좀 하라는 의미로 팬들이 해당 발언을 한 맥락과 의미를 정정용이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22] 심지어 오늘 안산이 경기에서 비기면서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운빨로 간신이 8위를 유지중인 것인 상황이므로 더욱더 비난을 받고 있다. [23] 이랜드가 2승, 경남이 2패하고, 아산이 승점 3점 이하로만 따면 된다. 잔여일정은 경남이 1위 광주, 3위 안양을, 아산이 부산, 광주를, 이랜드는 10위 전남과 11위 부산을 만난다. [24] K리그는 경기마다 TSG(기술위원)가 배정된다. 기술위원은 해당 경기 보고서를 제출하고 선수들의 평점을 매긴다. M.O.M 역시 기술위원이 정한다. 기술위원들은 유럽 축구 빅클럽 경기를 분석해 보고서로 제출하고 이를 각 구단 감독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라운드별 베스트11도 TSG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선정된다. [25] 단적으로, 서울이랜드FC에서의 성적을 보면, 상대방이 퇴장당했을 때의 성적이 좋지 않다. [26] 박종환(1995), 차범근(1997), 차경복(2003), 허정무(2009), 김호곤(2012), 최용수(2013), 최강희(2016)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8번째 수상. [27] 정정용 이외에도 기독교를 믿는 스포츠 선수들 중 팬들에게 싸인을 해줄때 십자가 표시를 하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