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06:06:20

카를로스 케이로스


카를로스 케이로스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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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7대, 45대
파일: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9대
파일: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9대
파일: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9대, 42대
파일: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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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대
파일:카타르 축구 협회 로고.svg

48대
클럽
파일:스포르팅 CP 로고.svg

78대
파일:뉴욕 레드불스 로고.svg

2대
파일:나고야 그램퍼스 로고(1999~2023).svg

7대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50대

}}} ||
포르투갈의 축구감독
파일:케이로스.jpg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이름 카를로스 케이로스
Carlos Queiroz
본명 카를루스 마누엘 브리투 레알 케이루스
Carlos Manuel Brito Leal Queiroz
출생 1953년 3월 1일 ([age(1953-03-01)]세)
포르투갈령 모잠비크 남풀라주 남풀라시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
[[모잠비크|]][[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선수 페로비아루 데 남풀라 (1968~1974)
감독 포르투갈 U-20 대표팀 (1989~1991)
포르투갈 대표팀 (1991~1993)
스포르팅 CP (1994~1996)
뉴욕 레드불스 (1996)
나고야 그램퍼스 (1996~1997)
UAE 대표팀 (1998~1999)
남아공 대표팀 (2000~20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2~2003 / 수석코치)
레알 마드리드 CF (2003~200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4~2008 / 수석코치)
포르투갈 대표팀 (2008~2010)
이란 대표팀 (2011~2019)
콜롬비아 대표팀 (2019~2020)
이집트 대표팀 (2021~2022)
이란 대표팀 (2022)
카타르 대표팀 (2023)
국가대표 없음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감독 경력
3.1. 초기 감독 경력3.2. 스포르팅 CP3.3. 나고야 그램퍼스3.4. UAE 대표팀3.5. 남아공 대표팀3.6. 맨유 수석코치 1기3.7. 레알 마드리드3.8. 맨유 수석코치 2기3.9. 포르투갈 대표팀 2기3.10. 이란 대표팀3.11. 콜롬비아 대표팀3.12. 이집트 대표팀3.13. 이란 대표팀 2기3.14. 카타르 대표팀
4. 평가5. 특징 및 일화6. 수상
6.1. 클럽6.2. 국가대표팀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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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 축구 선수 출신 감독.

프로에 데뷔하지 못한 무명 아마추어 선수 출신으로 유소년팀 지도자부터 시작, 빅클럽 및 국가대표팀 지도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전술뿐만 아니라 육성에도 상당한 능력을 보여서, 국가대표 감독을 여러번 맡았으며, 루이스 피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끈 명장 알렉스 퍼거슨의 수석코치로서 활약했으며,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맡기도 했다. 다만, 많은 빅클럽들과 축구 강국 대표팀을 거쳤던 것에 비해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한계도 존재한다.[1]

대한민국에서는 이란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주먹감자 논란 등으로 잘 알려졌다. 월드컵 예선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던 이란 대표팀을 두 번이나 본선으로 이끌었으며, 특히 2018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예선을 무패로 통과하여 본선 티켓을 따냈다.

2. 생애

케이로스가 태어나던 당시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많은 포르투갈인들이 식민지배를 위해 모잠비크에 이민와 살고 있었다. 케이로스도 이런 모잠비크로 이주한 포르투갈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선수 시절은 보잘 것 없었다. 그는 모잠비크의 아마추어 축구 클럽인 Ferroviário de Nampula에서 1968년부터 1974년까지 골키퍼로 뛰었다. 그는 골키퍼로서 별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하고, 공부로 방향을 틀었다.

1974년 4월 25일, 케이로스는 대학에 가기 위해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난 포르투갈로 이주했다. 그후 1년 뒤, 그가 태어난 지역인 모잠비크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면서 고향을 잃은 케이로스는 포르투갈에 눌러앉게 된다. 어쨌든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최고 명문인 리스본 대학에 입학해 체육을 전공하면서 체계적으로 이론 수업을 받았다.

3. 감독 경력

3.1. 초기 감독 경력

대학을 졸업한 후 본격적인 축구지도자의 길로 나서 1984년 Estoril-Praia팀의 코치로 일했다. 5년간 코치 생활을 하며 경력을 쌓은 케이로스는 1989년에 포르투갈 U-20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참가했다. 이때 그는 1989년과 1991년에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케이로스는 유로피언 U-16 챔피언십에서도 1989년 우승을 차지했다. U-20 축구 대표팀에서 포르투갈 황금세대 세대교체의 기반을 마련한 성과를 거둔 케이로스는 1991년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28경기에서 10승 8무 5패를 기록하여 43.48%의 승률을 거두었으나, 승부처인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이탈리아와 스위스에 밀려 조 3위로 탈락하여 24강 본선에 진출 실패하면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그 후 케이로스는 1994년에 포르투갈 축구 리그 팀인 스포르팅 CP 감독으로 부임했다.

3.2. 스포르팅 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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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6월 1일 스포르팅 CP 감독으로 부임한 케이로스는 1994~1996년까지 2시즌 동안 68경기 45승 17무 6패를 기록, 66.18%의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그는 1994-95 시즌에 포르투갈 컵(Taça de Portugal) 우승을 차지했고 뒤이어 포르투갈 슈퍼컵(Supertaça Cândido de Oliveira)도 우승했다. 이렇듯 잘나가던 그는 1996년에 뉴욕 레드불스의 제의에 응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1996년 6월 18일부터 그해 11월 19일까지 팀을 맡으며 24경기에서 12승 12패를 기록했다. 이 시기에 케이로스는 "Q-Report"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미국의 축구 선수들의 발전을 돕는 과정을 묘사했다. 그는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10년 월드컵에서 강력한 팀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3.3. 나고야 그램퍼스

파일:gramper.jpg
1997년 일본 축구 잡지에 J리그 외국인 수장을 전국시대(일본) 무장의상으로 합성한 것. 뒷줄 왼쪽이 케이로스 오른쪽이 스콜라리 (당시 주빌로 이와타 감독), 아래는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당시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 [2]

1996년 11월, 나고야 그램퍼스 아르센 벵거가 아스날로 간 뒤 새 감독을 찾다가 포르투갈에서 나름 명성을 날리고 있던 케이로스를 신임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는 나고야에서 1997 시즌을 치르며 19승 19패를 기록했다. (무승부가 없는 이유는 당시 J리그에 연장전 후 승부차기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J리그는 17개팀이 참가하는 전후기 리그로 나뉘어 있었으며 (퍼스트, 세컨드 스테이지) 각 스테이지의 1위팀끼리 홈-원정 결승을 벌여 리그 우승팀을 가렸으나, 케이로스가 맡은 나고야는 퍼스트 스테이지 12위 에서 세컨드 스테이지에서 5위를 하여 결승진출에 실패하고 물러난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 우승팀이 스콜라리가 맡았다가 4개월만에 떠났던 주빌로 이와타였다.

3.4. UAE 대표팀

나고야 감독직을 사임한 뒤 1년간 휴식을 취하던 케이로스는 1998년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1999년 1월까지 16경기에서 8승 2무 6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현지 적응에 실패하여 도중에 그만뒀고 다시 휴식을 취하다가 2000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감독으로 부임했다.

3.5. 남아공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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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케이로스는 24경기에서 10승 8무 6패를 기록했고 팀을 2002 한일 월드컵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네이션스컵 8강에서 말리에 패배한 뒤 사퇴압력에 시달렸고 선수단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 언론에 유출되는 것을 불만스럽게 여긴 데다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축구협회가 월드컵 축구대표 선수구성을 두고 간섭을 벌이자 축구협회와 대판 싸운 끝에 월드컵이 한달 남은 시기인 2002년 5월 사임했다.

3.6. 맨유 수석코치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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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케이로스는 퍼거슨의 부름을 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포르투갈 국가대표팀과 스포르팅을 맡아서 루이스 피구 등 여러 스타 선수들을 발굴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진가를 보이지 못했던 그였다. 퍼거슨이 그런 그를 수석코치로 덜컥 임명한 것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특히 케이로스 이전에 맨유의 수석코치로서 일했던 스티브 맥클라렌은 맨유 코치로서 부임 첫해만에 퍼거슨을 도와 트레블을 달성해 냈으며 맨유를 떠난 이후에도 퍼거슨의 가장 완벽했던 오른팔로 화자될만큼 맨유팬들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케이로스에 대한 의구심은 한층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퍼거슨이 케이로스를 선임한 것은 사실 포르투갈 선수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케이로스는 일찍이 포르투갈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일하면서 여러 스타 선수들을 발굴했고 그들을 잘 길러내어 포르투갈 선수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당시 유망주들이 즐비한 포르투갈 축구리그에 관심을 기울이던 퍼거슨은 이 점에 주목하고 케이로스를 선임한 것이다. 이후 케이로스는 2002-03 시즌 퍼거슨의 수석코치로 일하면서 퍼거슨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줬다. 사실 퍼거슨은 여러 부문에서 탁월한 재능을 갖췄지만 위대한 전술가는 아니었고 세부 전술은 코치들에게 맡겨놓곤 했다. 케이로스는 축구 전술 관련 지식이 풍부하고 상대팀에 맞춰 전술을 짜는 데에서도 탁월한 모습을 보여 퍼거슨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3.7. 레알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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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03년 여름, 케이로스는 느닷없이 레알 마드리드 CF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선임과정은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게 된다. 전(前) 레알 감독인 델 보스케는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였고 감독으로서도 90년대 감독들이 짤릴 때마다 땜빵 역할을 잘 수행했고 19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라 리가 우승 2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인터콘티넨탈컵 1회 등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했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선 4번 진출해서 4번 모두 4강 안에 드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한 겸손, 근면하고 소박한 성품으로 언론으로부터 평판이 좋았고 당시 갈락티코 정책으로 팀에 유입된 무수한 스타 선수들을 잘 다스려 한 팀으로 융화시키는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경질되었으니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델 보스케를 경질한 이유에 대해 "델 보스케는 피로를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지만, 그가 미래에 적절한 감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델 보스케의 전술은 전통적인 것이며 우리는 더 전술을 중요시하는 인물을 찾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퍼거슨의 '두뇌'로서 탁월한 전술 감각을 선보이는 젊은 감독 케이로스야말로 팀의 미래를 맡길 수 있으며 팀의 전술을 개선시킬 인물이라고 장담했다. 레알 팬들은 델 보스케에 비해 영 미덥지 못한 경력을 지닌 케이로스를 못마땅하게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퍼거슨이 높게 평가할 만큼 능력이 있는 인물이니 팀을 잘 이끌 것이라고 기대했다.[3]

그러나 케이로스는 레알의 흑역사를 초래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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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로스가 부임한 레알 마드리드는 당대 최고 스타들이 즐비했다.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라울 곤잘레스, 호베르투 카를루스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영국, 프랑스, 브라질,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여러 국가들에서 최고의 선수로 각광받는 선수들이었다. 이 선수들을 잘만 활용한다면 라 리가는 물론이고 빅 이어도 손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케이로스는 이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전술을 개발하는데 실패했다.

2003-04 시즌 중반엔 라 리가 선두를 찍고 스페인 컵과 챔피언스 리그를 순항할 때만 해도 모든 게 잘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당시 레알은 스타 선수들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 정작 중요한 수비 쪽은 제대로 보강하지 않았고 유스들로 수비를 채우고 공격 쪽엔 스타 선수를 채운다는 이른바 지단-파본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다보니 화려한 공격에 비해 수비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급기야 뒷공간을 책임지는 믿음직한 수비 클로드 마켈렐레를 팔아버리고 공백을 메꾸지 않는 우를 범하는 바람에 전력의 균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레알은 스페인 국왕컵에서 16강 진출에 그치는 실망스런 성적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챔스 8강에서 모나코에게 3골을 먹히며 탈락했고 리그에서도 마지막 5경기를 모두 패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하여 리그 4위에 그쳐 결국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4] 시즌이 끝난 뒤 케이로스는 곧바로 경질되고 만다.

그의 레알에서의 실패 원인은 전력의 불균형이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타 선수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델 보스케 시절, 선수들은 그의 지시에 절대 복종했고 모두가 한 팀이 되어 팀워크가 잘 맞았다. 그러나 케이로스에겐 그런 리더십이 없었고 선수들은 선수 경력이 보잘 것 없는 그를 경원시했다. 베컴은 아예 그를 "이상한 감독"이라 칭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때와는 달리 충분히 체력훈련을 받지 못했고, 소속팀 동료 선수들도 각자 개인훈련으로 체력을 단련했다며 케이로스 전 감독의 훈련 태만을 지적했다. 이에 포르투갈의 피구도 레알 마드리드의 체력훈련에 문제가 있었다며 베컴에게 힘을 실어줬다. 베컴 '부진 설명'..."아내가 아니라 이상한 감독 탓"

사실 그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때까지 그의 경력을 보면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는 포르투갈 국가대표팀과 스포르팅 CP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것 뿐이었고 그 외에는 퍼거슨의 수석코치로 한 시즌 동안 함께 한 것이 거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누가 봐도 레알 마드리드같은 명문 중의 명문 클럽을 맡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선수로서 레전드였던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로서 골키퍼를 몇년 했던 게 전부였다. 게다가 전임 감독은 레알의 레전드였고 감독으로서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레알 선수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공백을 훌륭한 경력을 쌓아온 굴지의 명장들이라고 해도 어려울 판에 케이로스 같은 인물이 어찌 메꿀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2003-04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실패는 케이로스보다는 그를 선임하고 팀의 전력을 흐트러지게 만든 페레즈 회장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3.8. 맨유 수석코치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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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1일, 케이로스는 3년 계약을 체결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수석코치로 복귀했다. 당시 맨유는 아스날보다 승점 15점이 뒤진 상태로 시즌이 마감된 충격으로 퍼거슨에 대한 회의론에 휩싸여 있었다. 퍼거슨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케이로스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하고 마침 레알에서 경질된 그를 데려왔다.

하지만 케이로스는 2005년 11월 로이 킨이 맨유를 떠난 것에 연관되었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로이 킨은 케이로스가 자신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안겼으며 그의 전술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킨은 급기야 MUTV과의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맨유 선수들을 비난한 것과 동시에 케이로스도 비난했다. 하지만 퍼거슨은 케이로스를 계속 신임했고 로이 킨은 맨유를 떠나 셀틱으로 이적했다.

2006년,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벤피카에서 그를 감독으로 선임한다는 루머가 퍼졌다. 그러나 그는 계속 맨유에 남았고 2007년 맨유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케이로스는 퍼거슨 대신 BBC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퍼거슨은 BBC가 자신의 아들 대런 퍼거슨이 선수이적 부정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폭로한 것에 격노하여 BBC와의 인터뷰를 일절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3월 말, 벤피카가 또다시 케이로스를 감독으로 선임하려 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당시 맨유는 리그 우승 레이스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우승까지 승점이 5점 남아 있었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가시권에 놓여 있었다. 케이로스는 벤피카 부임 루머에 대해 어떠한 공식 발언도 하지 않았다.

이때 퍼거슨은 케이로스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맨유 감독이 될 것을 종용했다. 퍼거슨, "내 후임자로 카를로스 케이로스 염두" 하지만 시즌이 끝난 뒤에도 케이로스가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결국 2008년 7월 11일, 맨유는 케이로스와의 게약 해지에 동의했고 케이로스는 포르투갈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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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맨유에서 수석코치로 일하는 동안 가장 큰 공헌을 한 걸 꼽자면 단연 호날두를 갱생시킨 것이리라. 호날두가 처음 맨유로 이적했을 때만 해도, 그는 혼자우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팀 플레이는 전혀 하지 않고 혼자서 개인기를 부리는 철없는 소년에 불과했다. 케이로스는 그런 그와 항상 함께 하면서 그가 팀에 적응하고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고 호날두는 그의 도움 덕분에 맨유에 적응하고 몇년 후 세계 최고의 선수로 각광받을 수 있었다. 호날두는 자신을 도와준 케이로스를 스승님으로 여기고 존경을 표했고 케이로스 또한 "호날두를 키운 건 내 생애 최고의 성과"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그가 포르투갈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날두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 케이로스가 베베를 적극 추천했고 퍼거슨이 이를 받아들여 베베가 맨유로 이적하는 데 기여했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화되고 있지만, 본인은 이를 부정했다. 케이로스 "베베의 맨유 이적, 난 몰랐던 일"

3.9. 포르투갈 대표팀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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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로스는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한 후 첫상대였던 약체 몰타와의 예선 경기에서 가볍게 4:0 낙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4경기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그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특히 홈에서 덴마크에 3:2 패배를 당한 것은 치명타였다. 포르투갈은 이 패배로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할 위기에 빠지고 만다.

다행히 포르투갈은 이후 잘 수습하고 알바니아, 헝가리, 몰타를 상대로 모조리 승리를 거두며 조별예선에서 2위를 차지하며 UEFA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포르투갈의 상대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포르투갈은 홈과 원정에서 모두 1:0 승리를 거두며 가까스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었다.

2010 월드컵[5]에서 포르투갈은 브라질, 북한,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G조에 속했는데, 본인네 나라를 포함하여 상대들이 상대들이니만큼 해당 조는 죽음의 조라는 소리를 들었다. 포르투갈은 코트디부아르와의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어진 2차전에서 북한을 상대로 7:0으로 압살하고, 최종전인 3차전에서 브라질과 0:0 무승부를 거두며 1승 2무 승점 5점으로 조별리그를 무사히 통과하고 16강에 진출했고, 16강에서는 바로 옆동네 국가 스페인과 싸우게 되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스페인의 오프사이드 오심 골로 1:0으로 패하고 탈락(11위)하면서 지난 월드컵 4위 팀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을 내며 너무 일찍 대회를 마치고 말았다. 이로서 포르투갈은 4경기 중 3경기를 무득점으로 마감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또한 월드컵 기간 동안 그의 전술에 대한 선수들의 반발이 꽤 심했다. 데쿠는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케이로스 감독으로부터 평소 부여 받아온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측면에 치우친 움직임을 지시 받아서인지 효과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는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내가 왜 교체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질문은 감독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라며 62분에 자신을 교체한 감독의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게다가 나는 오른쪽 측면에서 움직이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데쿠는 "오른쪽은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며 단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자리다. 나는 측면 미드필더가 아니다."라고 밝힌 뒤, "이번 경기는 내가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로서 치른 75번째 경기였다. 그러나 승리를 하지 못했기에 만족할 수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데쿠 "케이로스 감독의 전술, 이해 못해"

심지어 그와 절친한 관계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그를 비난하는 듯한 언행을 취했다. 그는 스페인과의 16강전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결국 경기에서 패하고 탈락한 뒤 포르투갈의 탈락 원인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케이로스 감독에 대한 불만이 잔뜩 섞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경기 후 포르투갈 TV 'RTP'를 통해 "나는 포르투갈의 탈락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당신들은 그 질문을 케이로스 감독에게 던져야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호날두 "탈락 이유? 감독이 대답해야" 이날 후반전에 교체된 우구 알메이다 역시 "나는 전혀 지치지 않았다. 더 뛰고 싶었지만 케이로스 감독이 교체를 명령했다."며 감독의 결정과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케이로스는 도핑 검시관에게 폭언을 퍼부어 물의를 사고 말았다. 케이로스, 도핑 검사관에게 폭언으로 물의 당시 케이로스 감독은 선수들에 대한 검사가 너무 자주 이뤄지는 것에 대해 짜증을 내며 루이스 호르타 반도핑 위원회장에게 과도한 폭언을 내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포르투갈 축구 연맹은 19일, 반도핑 위원회와 마찰을 빚은 케이로스 감독에 대해 30일 자격정지 징계를 내린다고 발표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또한 1000 유로(약 150만원)의 벌금도 내게 되었다. 또한 케이로스는 이와 더불어서 UEFA 유로 2012 예선에서의 성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2010년 9월 9일, 해임되고 만다. 후임자가 바로 前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파울루 벤투.

3.10. 이란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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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팀을 맡아 2019년까지 장기집권하며 이란의 월드컵 통산 본선 5회 진출 및 사상 첫 2연속 본선 진출을 달성했지만 월드컵, 아시안컵 등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1년 4월 4일, 케이로스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4 브라질 월드컵 준비에 착수했다. 케이로스는 몰디브를 4:0으로 격파하며 월드컵 예선을 순탄하게 시작했고 인도네시아, 카타르, 그리고 바레인을 연달아 격파하며 일찌감치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이란은 대한민국,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레바논과 같은 조에 속했다.

케이로스는 그의 스쿼드를 귀화 외국인 선수들로 채워 전력을 보강하고 우즈베키스탄을 1:0으로 제압하며 순탄한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카타르와 무승부, 레바논에 패하면서 탈락 위기에 직면했다. 이후 이란은 홈에서 대한민국을 이겼지만 우즈베키스탄에 1:0으로 패하며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였다. 케이로스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도하에서 카타르를 1:0으로 제압했고 레바논을 홈에서 4:0으로 대파하며 원정에서의 패배를 복수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는 대한민국과의 울산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케이로스는 1:0 승리를 거두며 승점 16점을 획득하며 조별 예선 1위를 기록하며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때 그는 일명 주먹감자 사건을 저지르는데, 이건 하단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란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한 조에 속하게 되었다. 2014년 6월 16일 나이지리아와의 1차전에서, 이란은 철저한 수비로 일관하여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축구 팬들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재미없는 경기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선 철저한 수비로 일관하여 상대의 공격을 원천 봉쇄하면서 또다시 0:0으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종료 몇 초전, 리오넬 메시의 극적인 결승골로, 이란은 1:0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이란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3차전에서 3:1로 패하고 말았다. 이란의 ‘극단적 수비’ 전략은 실패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케이로스는 이란 대표팀 감독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케이로스 이란 감독, 사의 표명… “이란은 항상 내 마음 속에 있을 것" 그런데 며칠 후 알리 카파시안 이란축구협회 회장은 "케이로스에게 재계약을 제안했다. 그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히며 재계약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2014년 7월 22일, 케이로스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이란 대표팀 감독을 맡기로 합의했다. 케이로스, 이란대표팀과 계약 연장 합의...2018 월드컵까지

이후 이란은 2015 아시안컵에 참여하여 바레인, 카타르, 그리고 아랍에미레이트와 한 조를 이루었다. 이란은 바레인을 2:0으로 격파하고 카타르를 1:0으로 격파했으며 UAE 또한 1:0으로 격파하며 3전 3승으로 조별리그 1위를 기록하며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은 이란의 숙명의 라이벌 이라크와의 한판 승부였다. 이 경기에서 이란이 선제골을 넣으며 쉽게 가는가 했지만 전반 43분 이란 선수 팔라디가 퇴장을 당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흘려갔다. 결국 후반 11분 이라크는 동점골을 넣었고 승부를 연장전으로 몰고 갔다. 연장전은 그야말로 막장대첩이었다.

연장 전반 3분, 이라크의 마무드가 헤딩으로 역전골을 터트림.
연장 전반 13분, 이란의 푸랄리간지가 헤딩 동점골을 터트림.
연장 후반 8분, 푸랄리간지가 페널티킥을 내주고 이라크가 이를 성공시킴.
연장 후반 14분, 이란의 레자 구차네자드가 동점골을 터트림.

결국 3:3으로 연장전까지 종료,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이란의 첫번째 키커 하지사피가 실축하며 분위기가 이라크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라크 첫번째 키커인 압둘라미르도 실축하고 말았고 이후 모든 키커들이 침착하게 성공한 가운데 이란의 8번째 키커인 아미르가 골대를 맞춰버렸고, 그 뒤 이라크가 골을 성공시켜 결국 이라크가 승부차기에서 7:6으로 승리했다.

아시안컵이 끝난 뒤, 케이로스는 돌연 사퇴를 선언했다. '사퇴' 케이로스, "이란 축구협, 나에게 모욕감을 줬다" 케이로스는 정상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대표팀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다가오는 스웨덴, 칠레와의 평가전에 사르다르 아즈문, 알리레자 자한바크슈를 선발하려다 무산되자 감독직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이란 축구협회 내부는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뉘어있다"면서 "그 중 한 개의 파벌은 자신들에게 엄청난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와 선수들 그리고 코칭 스태프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대해 불쾌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모욕감을 줬다. 이런 부분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며 사퇴의 배경을 밝혔다.

그런데 불과 한 달 후, 케이로스는 이란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케이로스, 이란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유턴' 케이로스 감독은 타스님과 한 인터뷰에서 "이란축구협회 및 이란 체육부 관계자들과 회의을 했다"며 "우리는 모두 이란 축구의 미래를 생각했다"고 복귀 이유를 밝혔다.

2016년 10월 11일(한국시간) 이란 홈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4차전에서 이란이 공수 양면에서 한국을 압도하며 또 승리를 챙기는데 성공했다. 이 날 경기에서 이란은 침대축구를 사용하지 않았고 케이로스 감독도 별다른 구설수는 일으키지 않은채 한국팀의 전술을 완벽하게 연구하고 파악하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한국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전 비판 여론에 날선 반응을 보인데에 이어 경기 패배 후 "카타르의 소리아같은 스트라이커가 없어서 졌다"는 책임전가식 변명을 늘어놓자 한국 축구팬들 사이에서 '케이로스가 확실히 전술적 역량은 뛰어나긴 하다', '인정할건 인정하자'는 식으로 긍정적인 재평가를 받았다.

2017년 8월 31일 상암에서 열린 한국과의 최종예선 9차전에선 후반 초반 한국의 둔해진 움직임을 노리고 역습을 강화해 나가는 순간 퇴장자가 발생해 플랜이 어그러지는 상황을 맞았으나 신속한 교체와 체력안배로 두줄 수비를 견고하게 유지해 최근 한국전 전승은 깨졌으나, 홈팀 한국을 한국 유효 슈팅 0개로 묶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끝으로 이란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하겠다고 했다. 협회 태도에 빈정상한 케이로스, WC 후 이란 지휘봉 놓는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모로코와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모로코의 자책골로 1:0 승리를 기록하며 20년만에[6]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모로코는 1명[7] 빼고는 모조리 유럽파로 구성된 실질적인 유럽팀[8]이라고 할 수 있는데다가, 아프리카 예선에서도 무패를 하는 등, 아프리카 최강자였기 때문에 케이로스의 승리가 빛났다.

6월 20일의 2차전 스페인전에서도 침대축구는 여전했지만, 스페인의 화력을 효과적으로 막았고, 특히 디에고 코스타에게 1골을 먹은 후 이란팀은 침대를 걷어버리고, 닥공, 세계 최강팀의 하나인 스페인과 거의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졌잘싸의 표본으로 칭송을 받았고, 케이로스가 침대축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6월 25일, 자국인 포르투갈과 16강을 놓고 단두대 매치를 벌이게 되었는데, 결과는 1:1 무재배로 끝났다. 같은 시간 열린 스페인 모로코의 대결에서 두팀도 무재배를 하는 바람에 이란은 3경기를 다 끝낸 결과 승점 4점 1승 1무 1패, 조 3위(대회 18위)로 이번에도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지막까지 졌잘싸였기에 탈락하고도 많은 칭찬을 받았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조별리그 시작전 B조 리뷰를 하면서 이란이 대진운이 참 안좋다고 전패할 가능성에 대해 안타깝게 말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점 4점 1승 1무 1패 대회 18위로 선방했기 때문에 케이로스는 16강 탈락에도 불구하고 감독 커리어를 이어나갈 듯하다.

2018년 6월 30일 2019년 AFC 아시안컵까지 재계약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기사 언론의 추측이었는지 사임의사를 밝힘으로써 7년간의 이란 감독 대장정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기사

이후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유력하다는 언론이 나타났지만, 얼마안가 알제리 측에서 자멜 벨마디 프랑스 국적으로 알제리 대표팀 선수이자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 감독을 선임하면서 사실무근이 되었다. 이런저런 향후 행선지가 거론되는 중에 이란축구협회장이 케이로스가 대한축구협회와 접촉했다고 밝혔다. # 이런저런 굴욕을 안겨주고 좋든 나쁘든 관심을 넘나드는걸 보면 한국과는 참 묘한 인연. 그리고 8월 7일 이란 국영통신 ILNA의 보도에 따르면 케이로스는 8일동안 이란 축협이랑 협상을 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결국 그의 코치진들과 리스본으로 떠났다.

그런데 8월 14일 모하메드 레자 디바르지니 이란 체육부장관이 케이로스의 재계약 조건을 모두 수용하며 2019년 아시안컵까지 잔류시킨다고 발표했다. # 케이로스의 재계약 조건은 대표팀에서 뛰는 선수들의 병역특례였고, 그는 이란 축협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자 SNS를 통해 사임을 발표하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이에 이란 축협은 물론이고 체육부와 국방부까지 케이로스를 잡기 위해 애썼고 이란 국방부 대변인 사르다르 카말리는 지난 8일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새 규정은 국가적 영웅인 그들을 위해 포괄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히며 케이로스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케이로스는 자신의 요구조건이 모두 받아들여진 이상 이란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이란 감독을 계속 맡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파울루 벤투가 선임된 후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의 코멘트 및 후속 기사에 의하면, 대한축구협회 측과 케이로스 간 협상이 상당부분 진척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협상 도중 이란축구협회장의 발언이 기사화가 되면서, 한국측에선 '이 감독이 한국행을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란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한국을 지렛대로 이용하는구나' 하고 느꼈고 이것이 협상 결렬의 결정적인 이유가 된 듯 하다. 이래저래 한국 축구팬들에겐 비호감도만 높인 결과가 되었다.

그런데 10월 20일 김판곤 감독 선임위원장이 비하인드 썰을 풀었는데, 케이로스는 위의 내용과 달리 이란 축구 대표팀을 압박해 상향된 계약을 체결하려는 행보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국대를 맡고 싶어했다고 한다. 다만 선임 조건 중 하나가 계속 한국에 머물러서 대표팀을 꾸준히 관리해줄수 있는 지도 포함이 됐었는데 아쉽게도 케이로스는 평소에 UAE에 머물렀기에 이 조건이 맞지 않아 결렬되었다고 한다. #

이후 2019 AFC 아시안컵[9]에서 승승장구하다 준결승전에서 일본에 0:3으로 충격패를 당한 후 사임했다. 8년간의 감독 생활을 마치고 명예롭게 물러나나 싶었으나, 기자회견장에서 두 명의 기자로부터 잇따른 비난성 질문을 받고 당신들은 지난 8년간 대표팀이 흔들릴 때 침묵 말고 무엇을 했나?고 일갈하며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가 회견장을 나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기사 8년이나 한 팀에 헌신한 감독의 마지막 경기인데 기자들이 무례했다는 의견이 있다.

반대로 높은 연봉[10]과 장기 집권에도 불구하고 내놓은 성과가 없다는 점으로 인해 이란 기자와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울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는데, 분명 꾸준한 월드컵 진출을 달성하지 못하던 이란 입장에서는 세대교체 성공과 함께 2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도 성과라면 성과겠지만, 그렇다고 이란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전혀 바라볼 수도 없던 수준의 약체였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과 함께 AFC에서는 손꼽히는 강팀이었다. 그런 강팀에서 20억원이 넘는 고연봉으로 8년이나 집권했는데 아시안컵 우승 0회에 월드컵 본선에 상대의 자책골로 1승을 거둔 것이 메이저 대회에서의 성과 전부다. [11]

3.10.1. 주먹감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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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1일. 한국과 이란은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당시 이란은 조 2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한국은 조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이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한국이 이란을 격파한다면, 이란은 조 3위 이하로 떨어져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향하거나 월드컵 진출에 실패할 수 있었다.

흔히 한국과 이란 간 갈등의 발단을 최강희 감독이 제공했다고 잘못된 사실이 퍼져나가고 있는데 먼저 도발적인 발언을 한 것은 엄연히 이란 측이다. 자바드 네쿠남이 "한국 대표팀에게 이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발언한 것. 이에 최강희 감독은 "네쿠남인지 다섯쿠남인지... 농구선수야?"라며 무시했고, 기성용도 "인터넷도 안 되고 운동장 잔디도 안 좋고... 지옥이 맞긴 맞는 것 같다."며 공격적인 발언을 한 네쿠남과 낙후된 훈련장을 내어준 이란측을 동시에 비꼬았다.[12] 손흥민도 이 때 네쿠남의 발언을 마음에 담고 있다가 다음해 한국 홈경기 때 "네쿠남이 피눈물을 흘리게 하겠다"는 매우 격한 도발도 했었다. 그럴 정도로 크게 논란이 됐었던 것이 네쿠남의 도발인데, 이걸 기억에서 지우고 최강희가 먼저 도발했다가 주먹감자 맞았다고 왜곡된 사실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13]

이란전에 앞서 한국의 승리로 끝난 우즈벡전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강희 감독은 "우즈벡보다 이란이 더 밉다. 이란을 이겨서 우즈벡과 함께 월드컵 갈 것'이다. 케이로스 감독한테 내년 월드컵은 포르투갈 집에서 TV로 편안하게 보기를 바란다." 등의 도발을 했고, 여기에 최강희 못지않게 입담이 거친 케이로스 감독도 "최감독에게 우즈벡대표팀 유니폼을 선물하겠다. 우즈벡 유니폼을 입을 용기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맞도발했다. 양국 언론들까지 이를 부채질하며 점입가경에 들어섰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15개의 슈팅을 날리며 압도 하였으나 득점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결국 이란의 선수비 후 역습 전술로 한국 수비진의 김영권의 실수를 안 놓치고 한골을 넣으며 한국 홈에서 조차 1:0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가 끝난 후 최종예선 1위로 월드컵 행을 가까스로 확정지으면서[14] 이란은 선수고 감독이고 할 것 없이 경기장에 있는 한국 팬들을 조롱했으며, 이에 팬들에게 물병세례를 받는 등 한국대표팀과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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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케이로스는 손수 최강희 감독의 얼굴에 우즈벡 유니폼을 합성한 티셔츠까지 제작해서 착용하고 사진을 찍는 등 조롱을 계속했다. 이 일로 케이로스는 FIFA로부터 벌금 처분을 받았는데, 한국에겐 아무런 처벌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이란 축구협회가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한국과 이란 간의 사이는 급속도로 냉각되었고 케이로스는 한국 축구팬들의 밉상으로 찍혔다.

또한 인터넷에서 당시 사건과 관련된 여러 장면들이 캡처되어 빠르게 전파되었고 아래처럼 패러디되어서 큰 화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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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년이 지난 2014년 11월, 케이로스는 한국과의 A매치 친선전을 앞두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주먹감자 사과’ 케이로스 화해 손짓 의도는? 이란의 테헤란에서 성사된 이 경기는 당시 심판진의 석연치 않는 판정으로 또다시 1대0 으로 한국이 패배했으며, 당시 한국 감독은 슈틸리케였다.[15]

3.11. 콜롬비아 대표팀

2019년 2월 7일, 호세 페케르만 사임 후 공석이 된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케이로스가 이끄는 콜롬비아의 첫 경기 상대는 공교롭게도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준결승전에서 케이로스가 이끌던 이란을 0:3으로 참패시킨 일본이었다. 첫 경기는 후반 16분에 라다멜 팔카오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1:0으로 이겼다.[16] 3월 26일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방문해서 그의 후배인 파울루 벤투가 이끄는 대한민국을 상대했다. 손흥민 이재성이 득점해 2:1로 이겨 한국의 케이로스 상대 무승 징크스가 깨졌고, 한국 입장에서는 케이로스에게 이란 전에 대해서 설욕한 것이다.

2019년 6월 16일 2019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 조별리그 B조의 개막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2:0 승을 거두었다. 이로 8경기 연속 아르헨티나 상대 무승 기록을 격파하였다. 그리고 카타르와 파라과이를 1:0으로 격파하고 무실점으로 8강에 진출했는데 8강에서 칠레를 상대로 0:0으로 비기고 승부차기에서 패배, 무실점 탈락이라는 진기록을 쓰고 말았다.

2019년 10월 16일 알제리와의 친선전에서 0:3으로 졌다.

2020년 11월 14일 우루과이와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예선에서 0:3으로 패했다. 이 때를 시발점으로 해서 케이로스가 지휘하는 콜롬비아는 슬슬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

나흘 후인 2020년 11월 18일 에콰도르와의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 무려 1:6으로 대패했다. 전반전에 무려 4명을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페널티킥 만회골 이후 후반전에 무려 4골을 먹히면서 무너졌다. 중간에 이날 에콰도르에서 활약한 곤살로 플라타가 후반 중반에 퇴장당해서 수적 우위를 가졌음에도 한 골을 더 실점하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이 경기 이후 콜롬비아는 7위로 하락해서 본선 진출이 불투명해졌다. 두 경기 모두 경기력이 너무 개판이었는데, 우루과이전에서는 경기 시작 5분, 에콰도르전에서는 경기 시작 7분에 각각 첫 실점을 했으니 이건 시작하자마자 실점부터 하고 들어간 경기였으며, 이렇게 카를로스 케이로스는 남아메리카식 축구[17]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결국 이 때문인지 2020년 12월 2일 부로 콜롬비아 대표팀과 감독직이 상호해지됐다. 이에 대해서 하메스 로드리게스와의 불화설이 제기되고 있다.

3.12. 이집트 대표팀

2021년 9월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9년만에 아프리카 무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또한 부임한지 얼마 안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하게 되었다. 네이션스컵 첫 경기인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0으로 패했으며 이후 이집트에게 PK를 주지 않은 심판에게 불만을 표했으며 # 기니비사우와의 경기 직전에도 해당 판정에 대해 불평했다. 다만 나이지리아는 잘못이 없고 전적으로 심판의 잘못이라며 나이지리아인들에게는 사과의 뜻을 전했다. #

그러나 이후 이집트보다 전력 면에서 위로 평가받는 16강 코트디부아르, 8강 모로코, 개최국인 카메룬을 준결승전에서 이기며 네이션스컵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세네갈과 맞붙었는데,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이후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아프리카 예선에서는 승승장구하며 최종예선에 진출하였으나 운명의 장난인지 세네갈과 매칭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승부차기에 패배하면서 세네갈에게 대륙컵 트로피와 월드컵 티켓 모두 헌납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이집트 대표팀의 케이로스의 팀 컬러는 쉽게 말해서 이란 대표팀+ 모하메드 살라...였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면 이란 시절 포르투갈도 쩔쩔매던 질식수비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여주나 싶었지만 아쉽게 실패했다.

결국 2022년 4월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3.13. 이란 대표팀 2기

2022년 9월 7일, 카타르 월드컵 직전에 이란 대표팀 감독에 전격 복귀했다. 기존 미슈라드 마제디 전 이란축구협회 회장은 스코치치 감독을 재신임했으나, 이때 이란축구협회장 선거에서 메흐디 타지 회장이 새로 부임했다. 타지 회장은 자신이 부임할 경우 케이로스 감독을 데려올 것이라 천명했었기에 회장직에 오르자마자 바로 케이로스를 복귀시켰다. 이로써 2010년 이후 4회 연속으로 본선에 참가[18]하는 유일한 감독이 될 듯 하다. 헌데, 이 과정에서 드라간 스코치치 감독과 이란 국적의 팀 매니저에게 이를 알리지도 않았고, 그리고 기술위원회 통과도 없이 회장이 독단적으로 이를 진행한 터라 이란 축구 연맹의 일처리에 대한 비판이 많은 편이다.

9월 A매치에서 복귀하자마자 흔들리던 이란 대표팀을 곧바로 예전의 모습으로 회귀시키며 늪 축구로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1:0으로 잡아내면서 만만치 않은 전력을 자랑했다.

거기다 이어진 세네갈과의 평가전까지 1:1로 비기며 이란 대표팀에 있어서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극대화시키는 최적임자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32강 조별리그 1차전에서 만난 잉글랜드에게 전반전에만 3골을 내주며 처참하게 무너졌고, 특히 골키퍼 알리레자 베이란반드가 부상을 당해 들것에 실려가는 등 전력 누수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안 그래도 주전 의존도가 엄청나게 심한 이란인데 다른 포지션도 아니고 무려 골키퍼가 들것에 실려나가 교체되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직면했다.[19]

결국 계속되는 실점 행진에 경기 다 끝나갈 무렵에 1골을 또 내주며 스코어는 6대1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까지 벌어져버렸고, 그나마 경기 종료 일보 직전에 패널티 킥으로 한 골을 넣어 6대2를 만들기는 했지만, 벌어진 실점차를 극복하기는 무리였고,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후 웨일스와의 2차전은 경기 막판에 웨일스 골키퍼 웨인 헤네시의 퇴장을 틈타 루즈베 체슈미 라민 레자에이안이 하나씩 넣은 골로 2대0으로 승리했다.

이후 비겨도 16강에 갈 수 있었지만 미국과의 최종전에서는 크리스천 풀리식에게 내 준 결승골 한 방에 0대1로 패하며 오랜만에 찾아온 16강 문턱에서 또다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이 축구 가족의 일원이 된 건 영광이자 특권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여러분이 국가와 축구 팬들에게 신뢰를 주며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모든 행복과 평과, 성공과 건강을 기원한다"고 전하며 사퇴를 암시했고, 결국 이란 대표팀 감독직에서 사임 의사를 밝히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

3.14. 카타르 대표팀

2023년 2월 6일,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감독으로 활동할 예정이었다. #

6월 친선전을 통해 데뷔전을 치렀다.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23세 이하 B팀에 0:1로 패했고,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에 2:1로 승리했다. 뉴질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는 전반 0:1로 밀리다가 인종차별 이슈로 경기가 취소되었다.

2023 CONCACAF 골드컵에 카타르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첫 경기부터 최약체 아이티 축구 국가대표팀에 후반 추가시간 극장골을 내줘 1:2로 패했다. 이어진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도 후반 추가시간 극장골을 내줘 1:1로 비겼다. 경기 종료 후 양 팀간에 싸움이 벌어져 한 명씩 퇴장당한 건 덤. 3차전은 최강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라 사실상 꿈도 희망도 없어 보였으나, 전반 25분 한 골을 얻어낸 이후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보여준 우주방어와 침대축구를 통해 멕시코가 이날 1.5군으로 나왔다가 사실상 1군을 다 꺼내며 총 공세를 펼쳤음에도 이걸 다 막아내어 1:0 승리를 거두고 극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 참고로 이날 멕시코의 슈팅은 25개, 카타르의 슈팅은 1개였다.

그러나 파나마와의 8강전에서는 0:4로 대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성적 부진으로 인해 아시안컵을 불과 한 달 앞둔 12월 5일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재취업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이도 나이인지라 이대로 은퇴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후임 틴틴 마르케스가 부임 1달만에 월드컵에서 3전 전패를 기록해 우승 확률이 극히 낮게 점쳐지던 카타르를 우승시켰다.

4. 평가

스포르팅 CP,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수석코치로 좋은 평가,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 본선 16강을 기록하며[20] 감독으로서 능력은 인정받으나 이후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유독 한국전 전적이 좋아 국내에서 상당히 과대평가를 받았을 뿐,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 매번 조기 탈락하여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한 실패한 감독으로 평가가 떨어져버렸다.

펩 과르디올라 위르겐 클롭과 같은 초일류 감독은 아니지만, 2010년대 중반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와는 비교불가이고 당시 일본 대표팀 감독인 바히드 할릴호지치와 비슷한 감독이다.[21]

케이로스는 최근 주로 활동하는 국대팀에서 비교적 높은 몸값과 명성에 비해 각 대륙컵, 월드컵 등 국대팀들의 주 목표와 성과물인 토너먼트 컵에서 성과가 저조하기에 가성비가 좋은 감독은 아니나 팀을 탄탄하고 쉽게 지지 않는 팀으로 잘 만들어놓고 약팀들을 도맡아서 밑바닥부터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에는 능한 감독이기에 좋지 않은 가성비 감독임에도 대륙 중하위권의 많은 국가대표팀들에게 인기가 많은 감독이다.

그는 선수 시절 무명이었기 때문에 후광을 등에 업지 못해서 3류 유소년 팀부터 커리어를 시작했고, 그런 곳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계속 몸값을 높였다. 루이스 피구로 대표되는 포르투갈의 골든 제네레이션을 키워냈고, 스포르팅과 포르투갈 U-20 대표팀 감독 시절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알렉스 퍼거슨의 수석코치로서 그에게 귀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축구 강국인 포르투갈 감독을 역임했으며,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을 맡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퍼거슨이 그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겠는가? 그는 유소년 유망주 발굴과 육성에 우수한 수완을 발휘했고 전술가로서의 역량도 뛰어났다. 그런 점에서 그는 확실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그는 빅클럽이나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이 포진한 강한 국가대표팀을 맡기에는 리더십이 모자라다. 물론 선수로서는 거의 무명이었던 점도 영향이 있는 듯 하나[22] 이는 케이로스가 '조언자'를 넘어 '리더'가 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무명 선수 출신이었음에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팀을 사로잡는 주제 무리뉴 혹은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선수들의 신뢰를 얻는 아르센 벵거와 같이 축구계의 명장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로서의 역량은 물론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대단히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을 통제하고 그들이 자신의 지시에 순순히 따르게 만드는 능력이 없었고, 이 점은 레알 마드리드, 2010년 포르투갈 대표팀 등과 같은 실패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자존감이 강한 스타 선수들을 자신의 뜻에 맞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순순히 따르게 하려면 그들이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확실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케이로스는 이런 면에서 부족했고, 유럽 빅리그와 축구 강국들에서 인정받는 일류 감독이 되지는 못했다.[23]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자 하메스 로드리게스와 불화설이 뜨는 등 스타 선수들을 향한 리더십에서는 낙제점을 보이고 있다.

결국 그가 맡았던 팀들의 네임밸류로 본다면 1류 감독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만, 맡았던 팀들의 실적을 생각하면 1류가 되기에는 부족한 레벨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 한정으로는 주먹감자 사건 및 이란 대표팀의 침대축구 등으로 한국에선 역대급 어그로 밉상 감독으로 낙인이 찍혀서 "전술은 침대축구밖에 모르고 실력도 없으면서 인성 개차반인 막장감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사실 한국 내에서 케이로스에 대한 평가는 감정이 섞인 과도한 폄하그에 대한 반감에 기인한 지나친 고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한국을 워낙 잘 잡아서 우리도 저런 외국인 감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평도 많다.[24]

그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팀이자 가장 오랜 기간을 역임한 이란에서의 실적을 뜯어보면 2014년 월드컵에서 1무 2패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나이지리아전 0-0 무, 아르헨티나전 0-1 패, 보스니아전 1-3 패.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극단적인 수비축구로 봉쇄하며 승점을 챙겨갈 뻔 했으나 아쉽게도 로스타임에 메시에게 극장골을 먹고 패했다. 메시도 경기 후 이란의 수비를 극찬할 정도였다. 다만 이 때 너무 힘을 뺀 탓인지 역대 전적에서도 앞섰던 한 수 아래의 상대로 여겨진 이미 탈락이 확정되었던 첫 출전국인 보스니아에게 힘도 못 쓰고 완패했다. 사실 그 전에 16강 진출을 위해선 무조건 이기고 봐야 했던 나이지리아전에서 수비위주로 나서다 지루한 경기 끝에 비긴 것부터 패착이었다. 1무 2패로 탈락한 한국의 홍명보 감독[25]에 비해 대회 준비기간도 3년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이 성적은 이견의 여지 없는 실패였고 3년 동안 준비하고도 1무 2패로 탈락한 일본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과 마찬가지로 본인도 감독직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관대한 이란 축구협회가 제시한 연장계약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4년 뒤인 러시아 월드컵까지 이란 대표팀을 맡았고 결과는 1승 1무 1패 대회 18위로 아쉽게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상대는 한 팀만 빼면 한국의 F조보다 더 지옥같다는 스페인-포르투갈이 함께하는 죽음의 조. 그런 상황에서 저 정도 성적이라도 거둔 것은 준수한 성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시아 국가에선 이례적으로 한 팀을 7년씩이나 맡았음에도 거둔 성과 치고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 1승을 거둔 모로코전도 상대 자책골로 겨우 이긴 것에 불과하다.[26] 특히 그의 그 동안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다 못해 아시안컵에서조차 이라크에게 생각외로 제대로 말려든 측면이 있다지만 8강에서 탈락한 점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이란 대표팀에서 8년여 간 감독을 맡았음에도 성과는 월드컵 1승이 전부이며 2014, 2018 월드컵 모두 16강 진출에 실패했고, 아시안컵 우승에도 실패하였다. 이후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극적으로 이란 감독으로 복귀하여 조별리그에서 1승을 하는데 성공했지만 잉글랜드와 미국에게 패배하며 끝내 또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27][28]

어쨌든 언플이 자극적이고 매너가 나쁘지만, 능력 있는 감독이며 특히 수비조직력 강화에 장점이 있는 감독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밑의 수상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맡은 팀의 경력만 놓고 보면 엄청난 커리어지만, 감독으로서 거둔 성과가 뛰어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란 대표팀 시절도 한국에게는 악연이지만 그렇다고 이란 대표팀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없다. 예선통과 1위에 조별리그에서만 선전하는 정도고 아시안컵은 우승은커녕 결승조차 진출하지 못했는데[29], 한국이나 이란 정도 커리어의 팀에서 그럭저럭 잘하는 건 맞지만, 외국인 감독에게 거액을 주고 선임하면서 걸었던 기대보다 결과가 썩 좋지는 않다. 즉 커리어만 보고서 엄청난 감독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는 것.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이후 케이로스가 계약을 연장하자 한국에서는 그가 좋은 감독이고 이란으로서는 당연히 붙잡을 만하다, 우리는 왜 내국인만 쓰려고 하느냐 등의 평이 나왔다. 물론 이란의 대진표가 한국보다 빡셌으면 빡셌지 덜한 수준은 절대 아니며 성적 역시 승점 4점 1승 1무 1패 대회 18위로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나 한국은 약 11개월의 신태용호로 준비 기간이 훨씬 짧았던데다 비록 독일이 방심했다고는 하나 어쨌건 이기는 성과를 올리며 1승 2패 대회 19위를 기록한 신태용 감독에 대한 반응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대조적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보듯이 케이로스는 분명 성과가 있는 감독이지만 한국을 잘 잡아서인지 유독 한국에서 커리어보다 더 고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후 자신이 맡았던 팀들인 이집트, 이란도 연달아 탈락하는 바람에 기록상으로는 매우 굴욕적인 상황에 놓였다. 이란이라도 16강에 진출시켰더라면 그걸로 어떻게든 만회할 수 있었고, 늘 하던대로 두 줄 수비+선수비 후역습 스타일을 고수했으나, 이번엔 감독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전력차 때문에 탈락했다. 잉글랜드와 1차전은 경기 전 선수단의 흔들린 멘탈과 전력차로 인해 6실점의 굴욕을 맛봤고, 그래도 잉글랜드보다는 한 수 아래인 미국과 최종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갈 수 있었지만, 패배했다. 어떻게 미국한테도 무재배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냐는 비난이 있었다만, 이건 미국의 지긋지긋하게 겪는 저평가 때문이고 실제로 미국은 이란이 단 한 번도 못해본 2라운드 진출의 단골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잘 통하는 웅크리기가 엄연히 이란보다 상위 전력인 미국의 주력에 정신없이 털렸고, 이마저도 미국의 결정력이 대회내내 극악수준으로 나빠서 1대0으로 그쳤다. 라인을 내리면 가볍게 수비가 털리고,[30] 라인을 올리면 전방에서부터 정신없이 달려들어 공을 간수하기도 힘들어 했는데, 이란이 동점골을 넣어야하는 후반전에도 라인을 내리기는 커녕 끊임없이 경기장을 넓게 쓰는 미국의 과감함에 속수무책이었다.[31] 즉, 공격을 해도 수비를 해도 둘 다 탈탈 털리는 상황에서(...) 케이로스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32] 그나마 64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복귀한 웨일스를 상대로 월드컵 경험 차이와 골키퍼 퇴장 호재를 앞세워 1승이라도 거두고 왔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

확실한 것은 케이로스가 3번의 월드컵에서 한 팀을 3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킨 감독, 한 대회에서 세 팀(콜롬비아, 이집트, 이란)을 지역예선~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킨 감독이라는 굉장히 안 좋은 타이틀을 얻고 말았다는 것이다.

5. 특징 및 일화

  • 대부분 나이든 축구감독들은 SNS에 무관심한 반면 케이로스는 페이스북을 활발히 한다. 사진을 올릴 때 no comments 라는 멘트를 덧붙이는 희한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 한국인들에게는 케이로스만 비호감 감독으로 찍힌 면이 있지만, 포르투갈인 감독들 중에 케이로스처럼 상대팀을 두고 독설이나 막말이나 어그로를 일삼는 감독들이 많다. 무리뉴 안드레 빌라스보아스가 그 예다.
  • 모터스포츠 광이다. 2010년 없어진 국가대항별 모터스포츠대회인 A1 Gran Prix 의 한 팀의 공동 오너였다고 하며 오너중 한 명은 루이스 피구다.
  • 패션 센스가 뛰어난 편이며 항상 정장 차림에 원색 넥타이를 고수하는 패션광이다.
  • 2022년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기자회견에서 한 영국기자가, 최근의 이란의 시위사태에 대해 할말은 없는가라고 물었는데, # 케이로스는 "우리는 축구를 하러 이곳에 왔고, 축구에 관련된 질문만 받겠다"고 거부하면서, "잉글랜드 감독에게 아프간 철수에 대한 견해를 물은 적 있나"고 반문했다. 어찌보면 영국 기자가 위험한 질문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33], 케이로스는 정치적 파장을 피하려는 대답을 했다.
  • 마찬가지로 월드컵에서 SNS에서 FIFA 기술위의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란팀은 심판을 조종한다"고 말하고, "케이로스는 이란팀에 맞는 감독"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케이로스에게 조롱조로 들렸는지, 케이로스는 자기 SNS에서 클린스만을 반박하고, 클린스만은 피파 기술위에서 사퇴해야한다고 직격했다. #
  • 카타르 월드컵까지 결국 3대회 연속 이란을 지휘하였지만, 이란의 숙적 미국에게 패배해 끝내 월드컵 16강에는 3연속 실패하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 위에 서술했듯이 이란 대표팀 커리어는 실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무 2패 탈락, 2018년 러시아 월드컵 1승 1무 1패 탈락, 2022년 카타르 월드컵 1승 2패 탈락으로 9경기 2승 2무 5패이다.[34] 무려 이란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세번이나 부임했음에도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한 이상 케이로스의 입지는 매우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헌데 뜻밖에도 2022년 12월 이란 대표팀 감독에서 내려오고 이란 대표팀 기술이사로 부임한다는 소리가 있다.[35] 그리고 이후 카타르 대표팀 감독직에 부임하면서 없던 얘기가 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국내 한정 마냥 핫바지는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11년 케이로스 부임 전 이란 대표팀의 월드컵 출전은 78, 98, 06년으로 띄엄띄엄 출전하며 매번 월드컵에 진출 하는 전력의 팀이 아니었다.
    심지어 부임 직전 월드컵인 2010 월드컵에서는 최종예선 B조 5개팀중 4위를 기록하며 월드컵 플레이오프에도 못나갔던 팀으로 그냥 중동의 강호 정도인 팀이었다.
    이런 팀을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로 5전 4승 1무 0실점으로 찍어눌렀으며[36] 최종예선에서 매번 압도적으로 1위로 통과하는 팀으로 체급 자체를 올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때문에.

6. 수상

6.1. 클럽

6.2. 국가대표팀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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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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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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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년대 초반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해당 시즌 무관을 기록하며 경질되었고,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1경기를 제외하고 무득점에 그치는 등 괄목한 결과를 내진 못했다. 심지어,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에선 약 9년 간 장기 집권했으나, 2번의 월드컵 본선 중 2018월드컵에서 이란의 역대 월드컵 본선 최고승점 4점 1승 1무 1패로 월드컵 18위를 기록했으나, 아시안컵을 2번 모두 본선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데 실패했다. 최근엔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으나, 2022 카타르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1-6으로 완패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모하메드 살라가 활약 중인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세네갈에 밀려 탈락하는 수모를 겪으며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다시 이란을 이끌고 도전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 미국, 웨일스라는 비교적 무난한 조에 편성되고도 1승 2패 26위에 머물며 또 다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 우리나라로 치면 안드레( 대구), 모라이스( 전북), 감독 등 K리그1 외국인 감독 특집으로 꾸몄다고 보면 된다. [3] 이 때 수석코치로 자신과 절친한 사이인 넬루 빙가다(2010년 FC 서울 감독)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무산되었다. [4] 5연패를 기록하기 전까지 선두 발렌시아와 동일한 승점이었다. 2월까지 레알은 승점 8점차로 리가 선두를 독주하기도 했다. [5] 32개국 본선 진출. [6] 이란의 월드컵 첫 승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미국에 2:1로 이긴 경기. [7] 해당인물은 9번 아유브 엘 카비로 아프리칸 네이션스 챔피언십에서 9골을 득점해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현재 허베이 화샤 싱푸에서 뛰고 있다. [8] 이란도 23명 엔트리 중 10명이 유럽파. [9] 첫 24개국 본선 진출 대회 [10]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기준 28억원으로 전체 감독 중 7위, 아시아 감독 중에선 최고였다. [11] 평가에도 후술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하도 두들겨 맞다보니 이란이 아시아 최강자급이라는 인식이 유독 강하다. 그러나 결국 모든 국가대표팀의 목표는 메이저 대회에서의 성적이다. 그 측면에서 케이로스호는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게 맞고 이란 축구팬들로서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월드컵 지역예선만 잘 하자고 수십억원 연봉의 외국인 감독 데려오는 것은 아니다. [12] 당시 이란은 한국 팀에게 자갈 밭 수준의 훈련장을 제공했으며, 숙소 배치 역시 상식 이하의 모습을 먼저 보인 게 이란이다. 한국이 계속 클레임을 걸었음에도, 이란 측이 이를 쿨하게 씹었던 것이다. [13] K리그 팬 중 전북 안티가 많아서 그런거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란 사람들도 안 할 억지주장을 계속 펼쳤다. [14] 참고로 이란이 이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했더라면 우즈베키스탄이 사상 처음으로 진출을 할수가 있었다. [15] 공교롭게도 이 감독 또한 후에 월드컵 예선에서 또 이란전 패배를 당한 이후 발언이나 행동 등의 문제를 일으켰던 감독이였다. [16] 이는 두 가지 의미로 일본에 설욕한 기념비적 경기라 할 수 있는데, 우선 콜롬비아 대표팀으로서는 2018년 월드컵에서 일본에게 당한 1:2 패배를 설욕했고 또 케이로스 감독 본인으로서는 2019년 아시안컵에서 일본에게 당한 0:3 패배를 설욕했기 때문이다. [17] 매우 뛰어난 개인 축구 실력(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지형빨(에콰도르, 볼리비아)과 더불어 지극히 널럴한 반칙 기준으로 인해 남미에서 벌어지는 축구는 매우 악명 높다. [18]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2010),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2014, 2018, 2022). [19] 2006 FIFA 월드컵 독일 당시 실질적으로 최강팀이라 불리며 막강한 위용을 뽐냈던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 에르난 크레스포가 동시에 뛰는 그런 역대급으로 초강력한 팀이었다.) 역시 8강 독일전에서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가 독일의 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부딪혀 골절상을 입고 들것에 실려갔는데, 그때부터 기량이 하락해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서 4강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20] 다만 이 성적이 무조건 좋은 성적으로 평가받지는 않았다. 당시 포르투갈은 코트디부아르와의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어진 2차전에서 북한을 상대로 7:0으로 압살하고, 최종전인 3차전에서 브라질과 0:0 무승부, 이후 16강 스페인전에서 0:1 패배로 4경기에서 3경기 무득점을 기록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세웠고 이마저도 당시 케이로스 감독의 전술이 크게 비판받으며 선수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렇게 올라간 16강에서 스페인에게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탈락하였다. 특히 전임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으로 유로 2004 준우승, 2006 독일 월드컵 4위의 좋은 성과를 기록한 데 비해 케이로스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이라는 아쉬운 성적과 더불어 유로 2012 예선에서의 부진으로 경질되며 전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21] 공통적으로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과 전술적인 능력에서 탁월함을 보이지만 매니저먼트 능력에서 스타 플레이어를 다루는 데에는 문제점이 있다는 점은 같지만 케이로스는 언론에서 선수 관계나 운영진과 소통 문제로 조금 논란이 터져나와도 할릴호지치 감독처럼 언론에서 운영진과 선수와의 관계 때문에 자주 크게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없었고 아쉬운 성적이지만 굵직굵직한 팀들을 맡아본 경험이 제법 있기에 케이로스가 한 수 앞선다. 할릴호지치와 메이저 경기 성과가 있는 전 한국국대 감독 파울루 벤투 그 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2] 비슷한 이유로 프로 선수경력이 없는 안드레 빌라스보아스도 다른 리그에서는 날면서도 EPL에서 두 번이나 실패했다. 특히 첼시 시절에는 선수들이 노골적으로 빌라스보아스를 무시했다는 후문이 있다. [23] 당장 그가 대표적으로 큰 실패를 겪었던 레알 마드리드 시절과 포르투갈 대표팀 2기 시절 같은 경우 팀들 자체가 강한 것도 있었지만 전임자들의 성과가 매우 뛰어났던 것도 케이로스 입장에서는 큰 문제였다. 레알에서의 전임 감독은 비센테 델보스케로 그는 재임 시기 동안 화려한 선수들로 구성된 갈락티코스 1기를 이끌면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라리가 우승 2회를 기록하였다. 포르투갈 대표팀 2기에서도 전임 감독은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로 그는 재임 시기 동안 1세대 황금 세대들이 대부분 은퇴하거나 노쇠화 돼서 그들에게 가려졌었던 그 이후 세대가 주전인 과도기적인 팀이었지만 유로 2004 준우승, 2006 독일 월드컵 4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케이로스는 레알에서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1회만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다른 트로피들은 아예 들어올리지 못했고, 포르투갈 대표팀 2기에서도 메이저 대회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델보스케와 스콜라리는 이전이나 이후에도 뛰어난 성과를 많이 올렸다. 델보스케는 이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화려한 선수들을 이끌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에서 메이저 대회 2연속 우승을 기록하고, 스콜라리도 당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멤버는 화려하지만 겨우 본선에 오른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전승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를 보면 델보스케와 스콜라리는 화려한 선수단을 이끌면서 뛰어난 장악력으로 큰 갈등 없이 우승이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케이로스는 델보스케, 스콜라리와는 다르게 감독으로서 뛰어난 카리스마나 선수단 장악력이 부족하여 빅클럽이나 축구 강국 대표팀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24] 이런저런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케이로스에 대해 고평가가 많은 것은 워낙에 한국전 성적이 좋은 감독이라서 그런 것도 크다. 케이로스가 이란을 맡은 2011년 이후 파울루 벤투가 감독을 맡고 2022년 2-0으로 승리하기 전까지 한국은 이란을 상대로 승리는커녕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있었다. 벤투가 지휘봉을 잡고 처음 이란을 상대한 2019년에는 무려 8년 만에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1:1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란 국대 시절 케이로스의 한국전 전적은 무려 4승 1무 4득점 무실점. [25] 다만 홍명보호가 양박쌍용 중에 박지성이 빠지고 박주영이 제몫을 못한 걸 제외하면 그럭저럭 전력이 유지된 반면 경기내용은 최악이라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진짜 전력이 없었던 대표팀은 신태용호. [26]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AFC 대표팀들의 감독들은 케이로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감독 재임기간이 1년 이하로 준비기간이 극히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일본, 사우디가 모두 1승씩을 거두며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고 특히 한국과 일본은 각각 독일과 콜롬비아라는 대어를 자력으로 낚았기에 더더욱 비교된다. [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로스의 이란 대표팀 커리어에 대한 옹호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케이로스가 이란 대표팀을 이끌고 냈던 성과가 역대 이란 축구 역사를 통틀어서 따져봐도 상위권의성과이기 때문이다. 케이로스가 2018년 월드컵에서 기록한 1승 1무 1패(승점 4점)는 이란의 역대 월드컵 역사에서 단일 대회 최다 승점 획득이고, 순위로 따져도 1978년 월드컵(14위)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 성적이다. 또한 2019년 아시안컵에서 기록한 4강 진출(4승 1무 1패)도 15년 만에 다시 이뤄낸 성과였으며, 이란이 1976년 대회(우승) 이후로는 결승 진출조차 단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에 아시안컵 3연속 우승 시절을 제외하면 제일 높은 성적에 해당한다. 한 마디로 이란 축구의 최전성기였던 팔레비 왕조 시절을 제외하면 케이로스의 이란이 이란 축구의 황금기에 가장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28] 다만 이란 대표팀 커리어 후반에 이러한 성과를 거뒀음에도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와 아시안컵 우승 실패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아시아 국가대표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일 정도로 거액의 연봉을 수령했던, 가성비가 매우 나쁜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2011년에 이란 대표팀과 처음 계약했을 당시의 추정 연봉만 해도 약 22억 원으로 2018년부터 대한민국 대표팀을 역임하던 파울루 벤투의 연봉을 상회하는 수준이었고, 이란 대표팀 말년에는 연봉으로 약 28억 원을 수령하였다. 이 정도의 돈을 받는 감독이 한 팀을 7년 넘게 맡았다면, 단순히 이란이 평균적으로 거둘 수 있는 성적을 넘어서 팀의 체급을 넘어서는 성과를 이뤄냈어야만 했다는 시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월드컵 16강 혹은 아시안컵 우승이 이란 입장에서 경험해본 적이 아예 없거나 너무 오래돼서 멀게 느껴질 뿐, 이변이 자주 발생하는 단기 토너먼트의 특성과 아시아 최상위권 전력인 2010년대 이란의 체급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성과였기 때문이다. [29] 이란도 대한민국 못지않게 아시안컵 우승에 목말라 있는 팀이다. 1976년 우승을 마지막으로 40년 넘게 우승이 없으며 그나마 결승 진출에는 몇 번 성공했던 대한민국과는 달리 이란은 이 기간 동안 결승 진출조차 없다. [30] 이란의 질식수비에 늘 고전하는 대한민국의 입장으로서는 "쟤네들이 저렇게 쉬웠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31] 맘편하게 공격을 전개할 틈을 주질 않았다. [32] 그나마 이란의 공격이 살아난 것은 미국이 추가골을 단념하고 지키기에 들어간 막판이었다. [33] 안그래도 시위대 지지의사를 밝힌 몇몇 이란 선수는 귀국하면 처벌 받을 수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케이로스도 시위 지지의사를 밝힌 아즈문을 선발하지 말라는 이란 축협의 압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34] 이 카타르 월드컵마저도 월드컵 본선이 확정된 상황에서 월드컵을 앞두고 얼마 안 있어 감독으로 다시 온 상황이라 케이로스의 공이 크다 할 수 도 없다. [35] 하지만 나이도 어느정도 많은 편이기에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6] 햇수로 9년간 케이로스의 이란만 만나면 숨도 못쉬고 쥐어터졌으니 담당일진 이미지가 붙는 것이 당연하다. 케이로스 제임 기간 스코어만 0:1이었지 내용 자체는 정말 압도적으로 찢어발겨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었다. [37] 당시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