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4:33:04

마우리시오 몰리나

마우리시오 몰리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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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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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2013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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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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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4281.jpg
<colbgcolor=#eeeeee> 이름 마우리시오 몰리나
Mauricio Molina
본명 마우리시오 알레한드로 몰리나 우리베
Mauricio Alejandro Molina Uribe
K리그 등록명 몰리나
출생 1980년 4월 30일 ([age(1980-04-30)]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63px-Flag_of_Medell%C3%ADn.svg.png 안티오키아주 메데진
국적
[[콜롬비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 체중 75kg
직업 축구선수 ( 미드필더[1]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 선수 엔비가도 FC (1997~1998 / 유스)
엔비가도 FC (1998~2001)
인데펜디엔테 산타페 (2001~2002)
인데펜디엔테 메데인 (2002~2003)
모나르카스 모렐리아 (2003~2004)
알 아인 FC (2004)
인데펜디엔테 메데인 (2005~2007)
CA 산 로렌소 (2006 / 임대)
클루브 올림피아 (2007 / 임대)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2007)
산투스 FC (2008~2009)
성남 일화 천마 (2009~2010)
FC 서울 (2011~2015)
인데펜디엔테 메데인 (2016~2017)
국가대표 12경기 1골 ( 콜롬비아 / 2001~2003)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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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 별명 몰느님, 몰레기, 몰기옥, 스텟귀신, 꼴린말
번호 성남 일화 - 11번
FC 서울 - 1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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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콜롬비아 출신의 前 축구선수. K리그 등록명은 몰리나였다.

'몰느님'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K리그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 선수였으며 데얀 다먀노비치와의 데몰리션 듀오로 유명하다.

2. 경력

2.1. K리그 입성 이전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상당한 저니맨이다. 남미와 중동, 동유럽까지 각지를 전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몰리나는 2001년 콜롬비아 국가대표팀이 코파 아메리카를 무실점 전승으로 우승할 당시의 우승멤버였다. 이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3경기 1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8년 브라질의 명문 클럽 산투스에 입단하였고 여기서 등번호 10번을 달았지만 활약은 기복이 있었다.[2] 이러한 활약상을 눈여겨본 성남 일화 천마에서 영입을 시도하였고, 2009 시즌 하반기부터 성남에서 뛰게 된다.[3]

2.2. K리그

2.2.1. 성남 일화 천마

2.2.1.1. 2009 시즌
K리그 데뷔전이었던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주목을 받더니 그 이후로도 계속 꾸준한 활약을 한 결과 2009년 하반기부터 17경기만 뛰고서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최고의 선수로 꼽히게 된다. 정규 시즌 종료 후 플레이오프에서 그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했다. 6강 플레이오프와 준플레이오프에서 모두 경기 MVP로 선정되었고 준플레이오프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결승골까지 기록하였다. 포항 스틸러스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기록하며 성남의 1:0 승리를 이끌어내었다. 비록 팀은 결승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에게 패배하였지만 정규시즌 4위를 기록하였던 성남이 플레이오프에서 승승장구하며 준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연 몰리나의 활약이었다.
2.2.1.2. 2010 시즌
다음 시즌에도 몰리나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시즌을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리그 33경기 12득점 8도움[4]의 순도 높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9경기 7득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이 아시아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는데 1등 공신이 된다. 이어진 FIFA 클럽 월드컵에서도 3골과 대회 4위를 기록하며 대회 최다 득점자가 된다.[5] [6]

이처럼 명실상부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우뚝 솟은 몰리나를 많은 팀들이 탐냈고, 통일교의 후계자 다툼 및 기타 내부 사정으로 지원이 많이 끊겨 예전만큼의 자금력이 없었던 성남은 몰리나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2011 시즌을 앞두고 FC 서울로 전격 이적하게 된다.

2.2.2. FC 서울

파일:200549174.jpg
2.2.2.1. 2011 시즌
2011 시즌, 서울은 몰리나를 영입하며 데얀, 몰리나, 아디, 제파로프의 외국인 선수 라인업을 구성하게 되었다. 네임밸류로 보나 실제 활약상으로 보나 K리그 역대 최강의 외인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판타스틱 4로 불리며 시즌 시작 전부터 팬들의 엄청난 기대를 불러모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들의 경기력은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쳤는데, 가장 큰 문제는 몰리나와 제파로프의 스타일과 동선이 겹쳐 둘을 동시에 기용하면 경기력이 급감한다는 점이었다. 둘이 동시에 기용된 경기는 언제나 폭망했고 둘 중 하나만 나오면 다시 살아나는 패턴이 계속 반복됐다. 결국 개막 4개월만에 제파로프가 알 샤밥 FC로 이적하게 된다.

이후 몰리나는 점차 경기력이 살아나며 예전 성남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데얀과의 호흡이 잘 맞아들어가며 데몰리션으로 불리는 이 둘의 콤비 플레이는 타 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8월 27일 강원 FC와의 경기에서는 한 경기 3골-3도움의 더블 해트트릭이라는 전인미답의 진기록마저 세우게 된다.[7]
2.2.2.2. 2012 시즌
단일 시즌 최다 도움 달성

2012 시즌에는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우선 13라운드 광주전에서 데얀의 선제골을 도우며 리그 역대 30번째 30-30 클럽에 가입했다. 에닝요의 기록을 10경기 앞당긴 무려 92경기만에 세운 기록이고 2021년 여전히 리그 최단 기간 기록이고,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기록을 세웠다. 또한 39라운드 울산과의 경기에서 아디의 선취골을 도우며 같은 시즌에 역대 13번째 40-40 클럽 마저 가입했다. 이미 30-30 클럽을 가입할 때 에닝요보다 10경기 앞섰다면, 40-40 클럽은 에닝요보다 19경기 먼저 세우며 역시 최소 경기 기록을 깨버렸다.

리그 41경기 18골 19도움이라는 전무후무한 스탯이 그의 활약상을 잘 말해준다. 단일시즌 20-20 달성이라는 대기록도 세울 수 있었던 그야말로 몬스터 시즌. 이 시즌 도움왕을 수상하였고 득점왕을 수상한 데얀과 함께 서울의 K리그 우승에 1등 공신이 된다. 물론 데얀도 대단한 선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FC 서울의 에이스가 누구냐는 물음에는 대다수 팬들이 몰리나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그의 실력과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일부 서울 팬들 사이에서는 몰리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서울은 데얀이나 몰리나가 빠지면 경기력이 급감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다른 팀들도 다 겪는 문제며 선수층이 얇은편인 K리그에서 에이스 플레이어가 빠지면 경기력 떨어지는건 어딜가나 다 똑같다.
2.2.2.3. 2013 시즌
2013 시즌, 팀이 전체적으로 부진하고 주포 데얀이 시즌 중반 부상당한 가운데 공격의 첨병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5월 26일, 제주전에서 고요한의 골을 도우며 K리그 역사상 최단기간인 131경기만에 50-50을 달성했다. 이 역시 에닝요의 기록을 깬건데, 무려 46경기를 앞당겼다. 7월 16일, 강원전에서 김진규의 골을 어시스트해 K리그 최초로 3년 연속 두 자리수 도움을 기록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에서 역대 ACL 최다 출전 타이 기록을 이루었다. 그러나 정작 이 의미있는 중요한 경기에서 몰리나는 공격전개가 전혀 안되고 오프사이드 조절도 안되고 프리킥이나 코너킥도 차기만 하면 다 라인 밖으로 벗어나는 등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최악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혹사로 노쇠화가 가속화되었는지 13시즌 후반기부터 폼이 완전히 죽어서 이후로 회복이 안되고 있다. 스피드나 피지컬은 물론 킥력까지 떨어져서 답이 안나오는 상황. 팬들 사이에선 팔라는 말이 많지만 K리그에서 가장 높은 연봉(대략 13억)을 받는 선수중 한명이라 내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2013년 11월 24일 상암에서 열리던 부산과의 대결 도중 전반 2분만에 수비수 김응진과 머리끼리 충돌하며 쓰러질때 머리부터 부딪히며 떨어졌다. 바로 데얀이 벤치쪽으로 응급상황임을 알렸고 이후 선수들과 응급구조팀이 빠른 대처를 하며 다행히 4분여만에 의식을 회복했다.[8] 이후 골라인에서 몇분 안정을 취하다 고요한과 교체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던 상황이라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당시 영상 관중석에서 관람하던 가족들도 초조한 모습을 보였으며 아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후반전 쯤에 병원으로 이동했고 CT촬영결과 이상이 없다고 한다. 이때 후진하며 천천히 들어오는 응급차와 그걸 비켜주지 않는 기자들은 팬들에게 까였다. 오죽하면 스포TV 중계진들도 한입 모아 목소리를 높였을 정도. 반면 재빠르게 기도를 확보한 김진규 선수와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구급차 빨리 들어오라고 메가폰을 이용해서 소리친 부산 서포터즈 등은 칭찬을 받았다. 이후, 리그 도움왕[9]을 차지한 몰리나는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최근 축구를 하다 경기장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 상을 축구를 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병마와 싸우는 선수들에게 바친다라는 감동적인 수상소감을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2013시즌 말미의 부진과 무릎 부상이 겹쳐 몰리나의 기량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2.2.2.4. 2014 시즌
결국 2014 시즌 초반에는 최용수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되어 아예 전력 외 수준으로 전락하였다. 연봉 규모와 선수 본인의 나이 탓에 이적 작업도 순탄치 않았고, 한때 2군 팀에서 훈련을 하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절치부심한 끝에 2014년 후반기에 재기에 성공, 복귀전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리그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올리는 등 전성기만은 못하지만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5년 시즌에도 FC 서울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2.2.2.5. 2015 시즌
2015년 5월 2일 성남과의 경기에서 전반 4분 김현성의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K리그 통산 최단기간(182경기) 60-60 클럽 기록을 경신하였다. 기존 기록은 역시 에닝요의 207경기였다. 5월 5일에는 반드시 이겨야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AFC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최종전 가시마 앤틀러스전에서 2:2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넣으며 FC 서울을 16강으로 이끌었다.[10]

15시즌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전성기만한 스피드나 킥력은 없지만 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싱력과 축구센스는 아직 살아있어 새로 영입된 다카하기, 아드리아노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10월 31일 FA컵 결승전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코너킥을 그대로 골로 연결하는 진귀한 장면[11] 을 보여주며 팀의 3:1 승리와 우승을 이끌었다.

2015 시즌 종료 후, FC 서울이 데얀 다미아노비치와 계약하면서 외국인 쿼터가 꽉 차버렸고, 재계약을 하지 않음으로써 7시즌간의 한국생활을 청산했다. 7시즌 동안 209경기에 출전해 무려 68골 69도움을 기록했다. 아마 한시즌만 뛰었더라도 70-70 클럽을 넘어 80-80까지도 기록할 수 있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격포인트를 생산해내던 선수로 평가받는다.

2.3. K리그 이후

이후 고국 콜롬비아로 돌아가 본인의 프로 초창기를 함께 했던 인디펜디엔테 메데인과 계약을 맺었다. 간간히 서울 팬들에 의해 올라오는 콜롬비아 리그에서의 활약상을 보면, 코너킥으로 어시스트를 하고 직접 프리킥 득점도 하는 등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날카로운 왼발은 아직 건재한 것 같다. 그리고 한국 시간으로 2017년 10월 14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19년이라는 긴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

3. 기록

3.1. 대회 기록

4. 여담

  • K리그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FC 서울에서 뛰던 당시 인스타그램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장면, 팀 동료와 장난치는 장면 등 팀 관련 게시물을 자주 올렸으며, 아예 한국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글과 함께 태극기 사진을 게시한 적도 있다.
  • 국가대표로써는 20대 초중반 이후 경력이 끊겼으나 21살의 나이 2001 코파 아메리카 콜롬비아 대회 최종엔트리에 들어 콜롬비아 축구 대표팀 사상 유일무이한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되었다. 당시 같이 뛰었던 대표팀 멤버로 이반 코르도바, 마리오 예페스, 빅토르 아리스티사발 등이 있다. 그가 콜롬비아에서 주목받던 특급 유망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경력. 그냥 벤치멤버도 아니었고 결승전 포함, 무려 4경기나 교체출전으로 뛰었다.
  • 한국에 온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구단까지 출근을 하다가 여자 초등학생이 혼자서 길을 걷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아이가 유괴라도 당할까봐 위험하다고 판단한 몰리나는 이 여자아이가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옆에서 호위하듯이 함께 걸어갔다. 그리고, 학교 근처에 다다르자 수많은 아이들이 다들 알아서 자기들끼리 어울려 학교로 등교하는 광경을 바라보고 충격을 받아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일화가 있다. 결국, 첫 날 지각을 한 몰리나는 자신이 "혼자서 등교하는 여자아이를 지켜주려다가 지각을 했다." 라고 해명했고 구단에서는 "한국의 치안은 콜롬비아와 다르게 아이들이 혼자서 등교해도 안전하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납득을 했다고 한다. 훗날 몰리나는 인터뷰에서 이 때를 상기하면서, "콜롬비아에서는 아이를 학교에 홀로 등교를 시키는 것은 사실상 그 아이를 버리는 행위라고 보면 된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남미권의 치안이 얼마나 개판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몰리나의 선한 인성을 볼 수 있는 사례다.
  • 2023년 10월 24일 친정팀 FC 서울의 창단 40주년 영상을 찍었다.

  • 2024년 2월 8일 서울이 제시 린가드영입 인스타 게시물을 올렸을때 댓글 이모티콘을 올렸다.
  • 2024년 4월 13일 k리그1 7라운드에서 경기 종료 후 고요한의 은퇴식에 영상 편지를 보냈다. 아디도 함께 보내왔다. 몰리나는 18분 45초부터, 아디는 20분부터 보면 된다.

5. 관련 문서



[1]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2] 여담으로, 이 무렵 산투스에 데뷔한 선수가 바로 당시 17세의 유망주였던 네이마르이다. 네이마르는 프로 데뷔전에도 몰리나와의 교체로 투입되었고, 몰리나가 팀을 떠나자 그의 등번호 10번(2009년 당시엔 몰리나의 등번호가 11번이었지만)을 물려받고 맹활약하여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난다. # [3] 1년 전에도 영입하려했지만, 몸값이 너무 비싸 영입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몰리나를 다시 영입하려고 할 때 김두현도 성남에 컴백하려고 했다. 하지만 둘 다 잡을 돈이 없었던 성남은 몰리나만 영입하였고, 김두현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갔다가 2014년부터 시민구단으로 재탄생한 성남 FC 체제에서 다시 돌아왔다. [4] 리그컵 포함. [5] 단 클럽 월드컵은 공식적으로 득점왕을 시상하지는 않는다. [6] UAE팀 알 와다를 상대로 1골, 남미 챔피언인 브라질의 SC 인테르나시오나우를 상대로 2골을 넣었다. [7] 강원과 할 때는 항상 스탯을 적립하는, 강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역귀. 강원의 팬이라는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의 인터뷰에서 강원에 영입하고 싶은 선수가 누가 있느냐는 물음에 몰리나라고 답했을 정도다. [8] 뇌진탕으로 인한 기절 시 목구멍으로 말려들어가는 혀를 끄집어내서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상황을 막아야 하는데, 팀 동료 김진규가 아주 잘 대처했다. [9] 2년 연속 도움상 수상 [10] 하필 이때 위성장애로 중계신호가 끊긴 탓에 중계진들은 2:2 스코어 그대로 경기가 끝난줄 알았는데, 다시 현장 신호가 잡혔을 때 나타난 장면에서 최용수 감독과 서울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 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11] 사실 골 포스트 쪽에 있던 인천 윤상호의 머리를 스치고 들어갔으나, 킥의 궤적 자체가 워낙 예리했고, 경기 기록 상으로도 몰리나의 골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