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23 20:30:25

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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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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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빌 게이츠(은퇴) · 폴 앨런(은퇴) · 스티브 발머(퇴사) · 게이브 뉴웰(퇴사) · 사티아 나델라 · 필 스펜서
기타
Microsoft의 제니맥스 미디어 인수 · Microsoft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 빌 게이츠의 굴욕
관련 틀
365 제품군 · 하드웨어 제품군 · Surface 제품군 · Windows 제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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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타임지 로고 화이트.svg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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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100: The Most Important People of the Century
건설자들 & 거인들 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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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 로더 헨리 포드 루이스 B. 메이어 아마데오 지아니니 데이비드 사르노프
찰스 메릴 스티븐 벡텔 월트 디즈니 후안 트립 러키 루치아노
윌리엄 레빗 윌터 루서 레오 버넷 토머스 왓슨 주니어 레이 크록
윌리스 캐리어 피트 로젤 모리타 아키오 샘 월튼 빌 게이츠
같이 보기: 지도자 & 혁명가 부문, 과학자 & 사상가 부문, 예술가 & 연예인 부문, 영웅 & 아이콘 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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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재단 스미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개척자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머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주니어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L. 론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제국-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널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출처 }}}}}}}}}

{{{#!wiki style="margin: -12px 0px;" <tablebgcolor=#e90606><tablebordercolor=#e90606> 파일:타임지 로고 화이트.svg 올해의 인물 (2000년대)
Time Person of the Year 20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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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time_2000.jpg 파일:attachment/Time2001.jpg 파일:attachment/time_2002.jpg 파일:attachment/time_2003.jpg 파일:attachment/time_2004.jpg
2000
조지 W. 부시
2001
루돌프 줄리아니
2002
내부고발자
2003
미군
2004
조지 W. 부시
파일:attachment/time2005.jpg 파일:attachment/time_2006.jpg 파일:attachment/time_2007.jpg 파일:attachment/time_2008.jpg 파일:attachment/time_2009.jpg
2005
착한 사마리아인
2006
당신
2007
블라디미르 푸틴
2008
버락 오바마
2009
벤 버냉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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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AOL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가장 위대한 미국인’ 명단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로널드 레이건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6위 7위 8위 9위 10위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엘비스 프레슬리 오프라 윈프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빌리 그레이엄 토머스 제퍼슨 월트 디즈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토머스 에디슨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존 F. 케네디 밥 호프 빌 게이츠 엘리너 루스벨트 랜스 암스트롱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무하마드 알리 로자 파크스 라이트 형제 헨리 포드 닐 암스트롱
영문 위키 참고.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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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 창업주 겸 초대 CEO
윌리엄 헨리 "빌" 게이츠 3세
William Henry "Bill" Gates III[1]
KBE[2]
파일:external/aib.edu.au/bill-gates-jpg.jpg
<colbgcolor=#00001b>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생 1955년 10월 28일 ([age(1955-10-28)]세)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학력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졸업) (1969~1973)
하버드 대학교[3] (중퇴) (1973~1974)
하버드 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2007)
재산 1,520억 달러 (한화 약 184조 400억원)[4][5]
종교 천주교 (세례명: 굴리엘모)[6]
직업 기업인, 소프트웨어 개발자, 프로그래머, 자선가, 유튜버, 작가
현직 Microsoft 기술 고문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의장
테라파워 회장
경력 Microsoft 회장
Microsoft CEO
Microsoft 이사회 의장
Microsoft 명예회장
Microsoft 공동 창업자
신체 177cm[7]
부모 아버지 윌리엄 헨리 게이츠 시니어(1925~2020)
어머니 메리 맥스웰 게이츠(1929~1994)
형제 누나 크리스티앤 게이츠(1953~)[8]
여동생 리비 게이츠(1964~)[9]
배우자 멜린다 게이츠(1994년 — 2021년; 이혼)[10]
자녀 장녀 제니퍼 캐서린 게이츠(1996년 4월 26일생)
장남 로리 존 게이츠(1999년 5월 23일생)
차녀 피비 아델 게이츠(2002년 9월 14일생)
서명 파일:빌 게이츠 서명.svg
링크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레딧 아이콘.svg | 파일:LinkedIn 아이콘.svg

1. 개요2. 경력3. 생애
3.1. 은퇴3.2. 복귀와 완전 은퇴3.3. 사내 불륜 및 성희롱 논란과 이혼
4. 기부와 선행5. 기타 정보6. 여담7. 어록
7.1. 가짜 명언7.2. 농담거리
8. 대중 문화에서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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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기업인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프로그래머, 자선가, 유튜버이며 세계부호의 대명사이다. 2021년 11월 현재 전 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의 무려 74.28%를 점유[11]하고 있는 Windows의 개발사 Microsoft의 창업주.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MS-DOS Windows로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갔다. 80~90년대는 물론 지금도 IT 업계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넘는 세월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인 Windows Office를 소유한 덕분에 아주 오랫동안 세계 제1의 부호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12] 2010년대 초에는 몇 년 동안 멕시코의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에게 밀리기도 했다.[13] 그 후 다시 1위 자리를 회복했는데 2017년이후 아마존닷컴 제프 베이조스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어 다시 세계 갑부 1위에서 내려오게 되었다.[14]

그는 현직에 있을 때만 해도 부의 제국, 어둠의 군주,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 등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되곤 했다.[15][16] 은퇴 후 파격적인 자선사업으로 그간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큰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녀들에게는 본인 재산의 0.1% 미만[17]만을 물려준다는 선언도 화제가 되었다.

2. 경력

실제 그는 사회에 모난 것 없이 무난하게 지나가는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맨손으로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야심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한창 고생하던 시절에는 "그냥 의사나 할까"라고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근데 아래 서술한 것이나 실제 행보들을 보면 은근히 반항아 기질이 있다.[18] 대학생 때 음주운전을 저질러 경찰에 붙잡혔다.[19]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경쟁사 제품을 쓰면 Windows를 납품하지 않겠다고 협박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래선 반드시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복돌이 대책 겸 해서 " OS 없는 PC의 출시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신들이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건 그건 당신들 자유지만 Microsoft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거나, OS 내에 경쟁사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코드를 몰래 집어넣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 정도는 웬만한 대기업들도 많이 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사람이 정직하고 깨끗하게 부를 축적했다고 하는 말은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 아니, 오히려 한때의 별명이 '실리콘 밸리의 악마(Demon of Silicon Valley)' 였을 정도로 악랄한 장사수완을 자랑했다.

2000년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스티브 발머에게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이후 회장직과 더불어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Chief Software Architect) 직책을 신설하여 맡았다. 2006년 최고소프트웨어 아키텍트(CSA) 직책을 레이 오지에게 넘겨주면서 사실상 은퇴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2008년 6월 27일부로 Microsoft 회장직에서 은퇴했다. 이것으로 Microsoft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래도 이사회 의장직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즉 회장 연봉은 안 받지만 앞으로도 Microsoft 덕분에 왕창 벌 거라는 이야기다.

2007년까지 600억 달러의 개인재산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허나 최근 주식 가치 등의 변화로 빌 게이츠의 '세계 최고의 부자' 타이틀이 위협받았다. 멕시코의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에게 "세계 최고의 부자" 타이틀을 넘겨주고 자신은 "미국 최고의 부자"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2013년 5월을 기점으로 블룸버그에서 집계하는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카를로스 슬림을 제치고 다시 1위로 등극했다. 이후 다시 Forbes에서 2위로 떨어졌다가 2015년엔 다시 1위로 등극하면서 계속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중. 2017년 11월 현재는 아마존닷컴 제프 베이조스가 세계 최고 갑부로 등극했다. 어쨌든 순위가 계속 바뀌고 카를로스 슬림, 아만시오 오르테가, 워렌 버핏,[20] 제프 베이조스에 의해 2위로 밀리기까지 했어도 빌 게이츠라는 이름은 갑부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2010년대에 접어든 이후 포브스 최고 부자 순위를 보면 빌 게이츠 말고도 엄청난 억만장자들이 많지만 카를로스 슬림을 비롯해 아만시오 오르테가, 래리 엘리슨, 마이클 블룸버그 등 몇몇 부자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빛이 많이 바랬고 제프 베이조스 마크 주커버그, 일론 머스크 등은 부자가 된지 얼마 안 된 신흥부자 느낌이다. 당장 지금은 한화 200조원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빌 게이츠를 제치고 있는 제프 베이조스도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10위 안에도 들지 못 했고 2017년에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십 년째 꾸준히 최고의 부자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은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정도이며 빌 게이츠가 갑부의 대명사로 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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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리즈 시절 2013년 만 58세 당시
확실히 고생을 많이 하기는 했는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절 사이에 무척 늙었다. 사실 2004년에 빌 게이츠가 상당히 동안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고생이 얼굴에 드러나 보인다.

부유층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21] 아버지는 시애틀 최고 법률 회사를 운영하던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미국의 은행인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뱅크시스템과 비영리 단체 유나이티드 웨이의 이사회 임원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가족으로는 1살 위의 누나와 아홉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으며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여동생과 동갑(1964년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나와 여동생은 둘 다 Microsoft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신동 기질도 타고나서, 성당 신부님이 박람회에 데려가는 조건으로 내건 성경의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에서 7장에 해당하는 내용이다)을 완벽하게 외운다든지 수학적으로 재능을 보여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또 엄청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식탁에서도 책을 놓지 않아 부모가 늘 나무랐다고. 타고난 천재성으로 학교에선 늘 우등생이었고 경영과 프로그래밍을 금방 익혔다고 한다.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컴퓨터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언젠가는 폴 앨런과 함께 학교단말기에 연결되어 있던 중앙컴퓨터를 해킹하여, 학교가 지고 있던 빚을 회계장부에서 지워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참고로 폴 앨런은 게이츠의 친구이자, Microsoft를 차릴 때의 동업자이기도 하다.

어떻게 위기를 넘기고 나서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주로 컴퓨터과학과의 전신인 응용수학(Applied Math) 과목을 수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모아 악동 짓을 하거나 프로그램 개발을 하거나 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알고리즘 논문을 하나 써서 이산수학 학술지에 실었다. 내용은 팬케이크 소팅 #이라는 문제에 대한 알고리즘을 제시한 것으로, 더 좋은 알고리즘은 30년 뒤에야 나왔다.[22]

흔히 IT 분야에 젊은 사업가가 나타나면 제2의 빌 게이츠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중에 게이츠처럼 학문적인 성취를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대학원에 진학해도 게이츠의 논문만큼 중요한 논문을 못 쓰고 박사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박사를 받을 정도면 다른 연구 업적을 쌓았겠지만.

하버드 재학시절 Honeywell이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친구인 폴 앨런과 함께 근무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름에 잠깐 근무한 것으로 보아, 여름 인턴으로 잠시 근무한 듯. Microsoft 창업을 위해서 결국 하버드 대학을 중퇴했다. 나중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 졸업증을 주긴 했다. 사람들은 그가 패기있게 자퇴한 것으로 아는데 사실 그는 당시 사업이 결국에 안 풀리면 학교로 돌아올 생각으로 휴학을 했다고 한다. #

초기 Microsoft는 알테어용 베이직 인터프리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23]

파일:1723b7171e849376f.jpg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작성한 GW-베이직 소스 코드[24]

그러다 몇 년 뒤, IBM 사에서 처음으로 PC를 출시할 때였다. Microsoft는 IBM에 PC용 운영체제를 공급하기로 계약한다. 그래서 시애틀 컴퓨터의 Q-DOS의 판권과 소스 코드, 그리고 Q-DOS의 원작자이자 개발자 팀 패터슨을 영입해서 이름도 MS-DOS로 바꾼 뒤[25] 팔아서 떼돈을 벌었다.

어쨌거나 그가 IBM과 맺은 계약은 컴퓨터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계약이라고 불린다. 결국 IBM은 Microsoft에게 돈만 퍼준 꼴이 되고 만다. 이후 Windows 시리즈를 통해 완전히 OS 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 IBM과의 IBM-PC 운영체제 계약도 매우 운이 따랐는데, IBM에서 최초로 계약을 하려 한 곳은 Microsoft였지만, 당시 Microsoft는 자체 운영체제가 없었다. 그래서 게이츠는 당시 많이 쓰이던 CP/M을 만들던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를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그 쪽은 왠지 IBM과의 계약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에 게이츠는 다시 한 번 양쪽을 중재해 보았지만, 그 때도 디지털 리서치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고 계약은 결렬되었다. 그래서 PC 출시가 늦어질까 걱정한 IBM과 PC가 안 나와서 BASIC이 안 팔릴까 걱정한 Microsoft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 이때 게리 킬달이 바로 정신을 차렸으면 Microsoft가 지금처럼 성공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MS-DOS를 살펴본 킬달은 MS-DOS가 자사의 CP/M-86과 외형이나 기술적으로나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IBM을 위협하여 자사의 운영체제도 공식 운영체제로 만들었다. 그래서 IBM PC에는 운영체제가 포함되지 않은 채로 판매되었고, 운영체제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디지털 리서치는 CP/M-86의 기술적 우수성을 과신한 나머지 무려 240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았다. 반면 MS-DOS는 약 40달러에 판매되었다. 결국 CP/M-86은 곧 망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정신을 차려서 DR-DOS도 내놓기도 했지만 시장은 이미 Microsft에게 완전히 넘어간 이후였다. 그리고 이미 윈도우로 넘어가는 중이기도 했다. 결국 디지털 리서치는 서서히 망하게 되었고, 이들이 PC 초기에 보여준 일련의 바보짓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게리 킬달은 자서전에서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위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빌 게이츠를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킬달의 빌게이츠에 대한 평가는 "He is divisive. He is manipulative. He is a user. He has taken much from me and the industry."(그는 분열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고 교활하게 이득을 취했다. 그는 나와 업계로부터 많은 것을 빼앗았다.)

원래 세계 최초의 GUI 탑재 컴퓨터는 1981년에 탄생한 제록스 스타(Xerox Star)이다. 여기서의 제록스는 그 복사기 제조업체로 유명한 제록스 맞다. PARC에서는 태블릿 PC, 내부 네트워크를 이용한 이메일 등 시대를 수십년 앞질러가는 기술들이 있었다! Apple의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스타의 GUI 시스템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고 사내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PARC 팀을 스카웃해 1984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GUI 방식 PC ' Apple Lisa'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26]
파일:bill_gates_windows.jpg
1985년, Windows 1.0 디스켓과 함께.

특히 잡스 퇴출 이후의 Apple을 상대로 재정적으로 압박하면서 실리콘 밸리의 악마로서 무자비한 사업일화를 많이 만들어냈다. Microsoft는 Apple에게 GUI 특허 사용권을 받아 Windows 1.0을 1985년에 탄생시켰고 완성도와는 별개로 GUI 방식 컴퓨팅을 전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는 빌 게이츠가 1~2년 안에 쓸모없어질 ( Apple II의) Apple 소프트 계약 갱신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1985년 11월에 매킨토시 GUI의 영구적인 라이선스를 존 스컬리로부터 얻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확히는 Microsoft는 Apple 소프트 개발을 위해 GUI에 대한 사용권을 받았는데, 해당 라이선스의 만료일이 기입되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Microsoft의 OS를 만드는 데에 가져다 쓴 것. Apple 측은 해당 라이선스가 1회용임을 주장했지만, Microsoft는 만료일이 기입되지 않았으므로 영구적인 라이선스를 넘겨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Apple은 Microsoft에게 1988년 저작권 소송을 걸었지만, 판사는 Apple이 '부주의하게' Microsoft에게 1985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권한을 영구적으로 넘긴 것으로 판결내렸다.

또한 Apple은 제록스로부터 GUI와 GUI를 위한 기술들에 대한 사용권을 구매했으며,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GUI 요소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토대로 Microsoft에게 GUI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걸자, 빌 게이츠는 제록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변호사들이 제록스가 가진 GUI 원천 특허를 발견하게 한다.[27] 결국 Apple 고유의 GUI 특허들 또한 제록스의 원천 GUI 특허 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정되어 Apple의 GUI 특허를 무효화시켜버린 일이 있다.

이외에도 MacBASIC을 묻어버린 일이 있다. Apple의 돈 데먼이 개발 중이던 MacBASIC이 Microsoft에서 제작중인 베이직 인터프리터보다 뛰어나다는 걸 알자, Apple 소프트 계약을 빌미로 MacBASIC을 포기하도록 요구하고선, MacBASIC을 1달러에 사서는 무기한 보류시킨 다음 소스 코드와 복사본을 전량 폐기시켜버린 일이 있다.

위에서 알 수 있듯 프로그래머로서의 재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업가로서의 재능 또한 매우 뛰어났던 것이 성공의 원인으로 꼽히는 인물. 사실 MS의 경쟁자들은 왠지 삽질을 저질러서 망한 경우가 많지만… 실수를 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원래 전쟁은 잘 싸우는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이기게 마련이다.

사실 상기의 업적들을 뛰어넘는 빌 게이츠의 가장 큰 업적은 소프트웨어(= 손에 잡히지 않는 순수 디지털 콘텐츠)를 그 자체만으로 판매될 수 있도록 한 것 혹은 그런 패러다임을 만든 것이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돈 받고 팔겠다고 나서기 전까지, 모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결합된 형태 혹은 종합적인 컴퓨팅 서비스의 일부로서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즉 저작권 대국 미국에서도 그 이전까지는 무형의 코드 다발 자체로는 팔고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다가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배타적 재산권을 주장하고 이의 판매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 덕분에 현재 전세계의 무수한 상용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Apple과 비교해봐도 극명하게 차이나는 부분. Apple은 바로 지금까지도 자사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한 상태로 판매한다. 이는 전 시대의 IBM이 그랬고 그 외의 유닉스 기반 기업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의 (어떤 의미에선 구세대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세대적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서서 소프트웨어, 즉 무형의 디지털 콘텐츠를 그 자체로 독립적인 상품으로 판매하는 새로운 모델을 세운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인 것.

3.1. 은퇴


2008년 CES 마지막 기조연설을 했다. 기조연설 중 빌 게이츠의 Microsoft 출근 마지막날이라는 비디오를 틀어줘,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비디오는 당시 미국에서 방영 중인 인기 시트콤 오피스와 클린턴 대통령 임기 종료 파티에서 상영된 코미디 영상을 패러디한 것이다. 클린턴 항목에 해당 영상의 링크가 있으니 비교해서 보면 좋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인터뷰로 뒷담화 까는게 똑같다.

내용은 대략 게이츠가 Microsoft 퇴사 후 할 일을 찾는 것인데, 그 중 빌 게이츠가 차기 대통령 민주당 후보로 유력했던 2명 중 한 명이었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부통령감으로 좋은 사람이 있는데, 제가 해먹으면 안될까요?" 힐러리 왈 "당신이 정치에 어울릴지 모르겠군요"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다음 장면에는 버락 오바마 앨 고어도 나온다.

그 밖에도 U2 보노 JAY-Z, 조지 클루니, 스티븐 스필버그, 존 스튜어트 등 유명인들이 기꺼이 출연하여 여러모로 대박이다. 유머도 있고, 센스도 있는 사람. 특히 본인의 샌님스러운 면모를 철저히 반영하여 사람을 웃긴다.


건즈 앤 로지스 & 前 벨벳 리볼버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기타 연주와 함께 무대에서 퇴장했다.

3.2. 복귀와 완전 은퇴

빌 게이츠는 경영선에서 은퇴한 지 오래이지만, 크리스 카포셀라는 2013년 6월 Windows 공식 블로그와의 인터뷰에서 최고마케팅경영자(CMO)로 소개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2014년 2월 4일 사티아 나델라 신임 최고경영자의 취임을 발표하는 동시에 33년간 재직해 오던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창립자 겸 기술 고문'이라는 새 직책을 맡게 된다고 한다. 이는 은퇴 5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하는 것.

2020년 3월 Microsoft의 이사직과 투자회사의 직책까지 모두 내려놓으면서, 완전히 은퇴하고 교육 및 자선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 하지만 Microsoft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는 것은 아니며 회사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돕겠다고 했으며, 현 Microsoft CEO 사티아 나델라 역시 기술 지도부와 빌 게이츠는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사로서의 기본적인 영향력까지 모두 내려놓고 기술 지원만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Xbox Game Studios의 부사장 필 스펜서는 일년에 2~3번 빌 게이츠로부터 게임 사업을 검토받는다고 한다. 이유는 빌 게이츠가 아끼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3.3. 사내 불륜 및 성희롱 논란과 이혼

2021년 멜린다와의 이혼 덕분에 드러난 은퇴의 진짜 이유가 사내 불륜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 빌 게이츠도 이를 인정했다. ##

게이츠 재단의 전 관계자를 정보원으로하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후속보도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 혐의로 수감, 옥중에서 자살한 부호 제프리 엡스타인과 빌 게이츠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친분을 이어왔는데, 이 당시에는 이미 제프리 엡스타인이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어서[28] 멜린다가 빌 게이츠에게 지속적으로 이를 지적했음에도 그가 교류를 지속해 왔고, 결국 엡스타인이 감옥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29][30] # 아내와 함께 만든 재단에서도 여성들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고 한다.

추가로 2000년대 초 빌이 20년전 다른 여자랑 불륜 관계였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전부터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지 않았나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여기엔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빌은 멜린다와 만나기 전에 5살 연상의 앤 윈블래드와 연애하다 헤어진 적이 있었으며 헤어진 후에도 줄곧 소울메이트마냥 깊은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31] 심지어 결혼하기 전에 빌은 멜린다에게 자기는 일년에 몇번은 앤하고 단 둘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놨으며(!) 멜린다도 알겠다고 동의해줬다(…) 빌은 앤에게도 자신의 부인이 될 멜린다를 소개해줬는데, 앤은 멜린다에게 지적이고 똑똑해서 빌하고 잘 어울린다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빌이 앤하고 단 둘이 지낼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 아니라 순 과학이나 수학 외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줄창했다고...[32]

최근에는 빌 게이츠의 불륜과 성희롱 의혹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결혼전부터 나체파티를 즐기는 등 문란한 성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4. 기부와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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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부 규모에 대한 빠르고 쉬운 이해. 1달러=1,040원으로 가정하면, 350억 달러는 36.4조이다.

전성기 악착같이 돈을 벌어 실리콘 밸리 악마(Demon of Silicon Valley)라는 표현까지 들었던 그가 은퇴 후 보여준 행보를 보면 마치 기부를 위해 돈을 악착같이 벌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아프리카나 저개발국가를 위한 그의 노력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매번 노벨상의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과거에는 ' 독과점' 같은 다소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강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티가 상당수 떨어져 나갔다.[33] 하지만, 기부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다.[34]
  • 한때 독과점으로 인한 비난을 희석하기 위해 기부를 한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아내의 영향이 컸다.[35] 멀린다 게이츠는 처녀 시절부터 자선활동을 자주 하는 편이라 결혼 후 빌 게이츠가 그녀로부터 영향을 받기 시작했으며, 실제로 대부분의 기부금을 아내를 통하여 기부하였다. 자기 재산의 90%는 죽기 전에 기부하겠다고 선언, 워런 버핏도 그것에 동참했다. 부인과 자신의 이름을 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에이즈 치료제 개발 등에 돈을 기부하고 있다.
    기부하는 금액부터가 보통 군상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막고 있는 방파제는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거의 전담하고 있다. 만약에, 이 재단이 아프리카를 뜬다면 대책이 없다. 그야말로 아프리카의 수호자. 또 기부금 운용이 투명해서 신뢰할 만한 기부 재단으로 꼽힌다. 버핏도 이 점을 보고 기부를 했을 정도. 여러모로 귀감이 될 만한 일이다.
  • 자기가 죽은 뒤에는 현재 3명 있는 자식 제니퍼, 로리, 피비에게 유산의 0.02%만 물려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재산의 0.02%도 1,000만 달러(한화로 약 110억원)에 달한다. 2011년 6월경 자식들에게 주는 재산이 현 재산의 0.018%로 줄었지만 금액은 동일하다.
  •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2007년 이후 그의 기부액은 280억 달러에 달하고, 블룸버그에서 억만장자 조사를 했을 때 그의 재산이 2012년 기준으로 70억 달러가 늘었다라고. 즉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마를 리 없는 샘인 셈. 게다가 지금 있는 자선재단의 현재액도 362억 달러이므로, 이 정도면 아프리카 질병-개발 관련 자선사업에 충분히 남는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빌이 직접 투자한 회사들에서 나온 주식 차액에서 나온 돈으로 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 또한 게이츠는 테라파워라는 벤처기업의 주요 투자자인데, 이 회사는 작고 안전하고 깨끗한 고속증식로를 개발하고 있다. 일단 개발목적은 증식로의 좋은 목적을 사용하기 위해서 라고 적어 두고는 있다. 현재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DOE도 찔러보고, 한국 원자력 연구원도 찔러보고, 도시바도 찔러보는 중. 이 회사에서 개발하는 고속증식로는 일단 값싸면서 연료보충 없이 50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여튼 연료가 타는 방식이 이동파 같아서 Traveling Wave Reactor라고 불린다. 회사 대주주로 있는 것도 아프리카에 값싸고 효율적인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 모기로 고생하는 저개발국가에 레이저를 이용해 초당 100마리 이상의 모기를 죽이는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를 지원하였다. 실제로 TED에 시연 영상이 올라와 있다. 영상 링크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들어가보면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라고 쓰여있다.[36]
  • 너무 비싸서 일반인은 보지도 못하는 다빈치의 노트, 파인만의 강의를 자기가 샀다. 그리고서는 주석을 달아서 일반에 거의 공짜로 공개했다.
  • 골프를 하러 갔는데, 어느 대학생이 캐디로 할당이 되었었다. 빌은 그 캐디의 신상을 샅샅이 캐물어 보며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팁은 안 주고 그냥 갔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의 대학 학자금 융자를 갚아 줘 버렸다고 한다.
  • 에이즈 예방을 위해 성관계를 할 때 쾌락을 느끼는 만족감이 큰 콘돔을 개발하는 연구비에 거금을 내놓았다. 쓸데없이 고퀄리티냐며 웃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임신이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콘돔을 못 챙겨서'를 능가하는 미사용 이유가 '느낌이 안 좋아서'다. 그게 해결되면 에이즈 전파 경로 중 하나인 성적 전달이 억제되기에 에이즈 퇴치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에이즈가 아니라도 남자들이 콘돔을 기피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앞서 말했듯이 느낌이 안 좋아서인데 여자 입장에서는 임신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기에 쾌락을 느끼는 만족감이 큰 콘돔은 여러가지로 이득이다.
  •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수 정화 장치를 이용하여 정화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지구촌 물부족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이런 물에 대한 나쁜 인식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차세대 화장실 개발에 투자를 하는 중인데, 이 화장실은 현대의 수세식 화장실에 대한 대안으로 개발 중이다. 수세식 화장실은 배설물을 하수로 보내기 위하여 대량의 물을 낭비하게 되는데, 이는 가난하거나 물이 부족한 나라에는 적합하지 않다.[37] 차세대 화장실은 이렇게 낭비되는 물을 줄이고, 대신 배설물은 '버리는 것'이 아닌 퇴비나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한다.
  • 지구온난화, 즉 21세기 들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떠오른 지구의 기후변화에 관해 알리고자, 비단 방송이나 강연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에서도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인류는 지구온난화뿐만 아니라 언젠가 닥쳐올지 모를 범유행성 전염병을 대비해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특히 미국은 국방에 쏟아붓는 지원을 이런 백신 및 치료제 연구에 써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터지면서 그의 발언은 재평가되고 있다. 2015년 한 강연에서 "앞으로 뭔가 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인다면, 그건 전쟁이 아니라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 빌&멜린다 재단을 통해서 백신연구에 관한 투자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
    • 그리고 코로나-19가 진행중인 상황에도 이에 대한 향후 전망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
    • 치료제 개발 지원을 위해서 재단을 통해 1,500억원의 돈을 기부하였다. #
백신 개발뿐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 에이즈 예방과 확산을 막는 활동, 오염된 물을 간단한 방식으로 깨끗한 식수를 만드는 사업 등 과학기술을 통한 질병 퇴치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시스템 및 대응 방법에 대해서 연일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한국이 모범이 되고 있다'는 등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2020년 4월 1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 전화를 하여 백신 개발에 협력하겠다는 의견까지 내비치고 있다. # 2020년 7월에는 청와대에 서한을 보내서 한국의 방역 대응과 백신 개발이 선두에 서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 정부와 게이츠 재단의 협력을 강화하고 코로나 및 여타 글로벌 보건과제 대응 과정에 있어 문 대통령과 같이 일할 수 있길 희망한다'라고 밝히고, 한국 정부와 게이츠 재단이 공동으로 조성한 라이트 펀드에 게이츠 재단의 출자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
  • 2020년 4월, 백신 반대 운동을 하는 페이스북의 한 유저로부터 시작된, "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인도를 포함해 약 개도국 77,000명의 여아들에게 임상시험을 통해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후원했는데 부작용으로 인해 많은 수가 사망하였고 때문에 인도 당국에서는 재단을 고소할 계획이다."라는 허위 루머 SNS에서 16,000회 이상 공유되며 논란을 일으켰다. # #. 그러나 본 루머를 유일하게 뒷받침하는 증거가 백신을 접종 받은 인도 여아들 중 7명이 사망했다는 SAMA라는 인도 시민 단체의 의혹 제시와 이미 거짓으로 밝혀진 이로인해 빌 게이츠 재단이 인도에서 퇴출당했다는 2009년 루머인데, 이후 인도 당국의 조사 결과 7명 중 2명은 농약을 통한 자살, 1명은 우물에 빠져 익사, 1명은 독뱀에 물려서, 그리고 1명은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 사인이 백신과 관련 없음이 증명되었다. 그 외 극한 발열로 사망한 1명과 뇌출혈로 사망한 1명에 대해 의혹 제기 여론이 끝까지 백신으로 인한 가능성을 추궁하였으나 전혀 연관성을 찾지 못하고 이외의 이유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오히려 조사에서 일부 피시험자들로부터 제대로 허가를 받지 않는 등의 부실한 시험 체계가 큰 비판을 받았다. # # 당연한 얘기지만 인도 역시 빌게이츠 재단을 고소할 계획이 전혀 없다. 그러나 분개한 많은 인도 국민들이 본 루머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일부에게 만악의 근원 취급까지 받는 등 인도인들 사이에서 빌 게이츠의 이미지가 급락하고 백신에 대한 불신이 급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등지에서도 특히 백신 반대 운동가들이 신나하며 본 루머를 열심히 퍼나르고 있으나 당연히 대다수에게 무시당하고 있다.
  • 빈곤국에 코로나19 백신이 회당 3달러(약 3,500원) 미만에 공급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
  • 코로나19의 백신에 대한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자, 빌 게이츠 본인도 2021년 1월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정신나간 악의적인 음모론', '사람들이 이런 걸 정말 믿겠느냐'라고 조금 강하게 표현하며 이런 음모론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2021년 2월 15일(현지시간)에는 빌 게이츠의 딸인 제니퍼 게이츠가 이런 음모론을 조롱했다. 제니퍼는 의과대학 학생인데, 코로나 백신을 접종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슬프게도 그 백신이 천재 아빠를 내 뇌에 이식하지 않았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가 그런 능력이 있었더라면…!"라는 글을 올렸다. 즉 코로나 백신이 사실은 빌 게이츠가 인간들을 조종하기 위한 내용의 음모론을 비꼰 것. #

5.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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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그샷. 1977년 12월 13일
  • 교통법규 위반으로 머그샷. 1977년에 면허 없이 과속으로 포르쉐를 몰다가 체포되어서 기록 사진이 남았다. 이 에피소드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경쟁을 주제로 한 실리콘 밸리의 해적들에도 나온다.
  • 자동차를 굉장히 좋아하는 듯하다. 포르쉐의 광팬이며 특히 포르쉐 959를 상당히 좋아하는 듯. 유명한 이야기로 포르쉐 959 미국 배기가스 기준을 통과시키지 못해 정식 인증이 나오지 않자, 뒷마당에 수영장을 엎고 전용 서킷을 지으려고 했다가 아내의 극렬한 반대로 포기하기도 했다. 얼마나 극렬했냐 하면, 이혼도 불사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어?
  • 젊은 시절엔 일부러 늦게 출발하여,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게 과속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덕분에 회의에 많이 늦었으며, 멀린다 게이츠와 사귄 계기도 자신만큼 회의에 늦게 온 멀린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라고 한다.
  • 같은 년도에 태어난 스티브 잡스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라이벌이다. 빌 게이츠는 부유하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며, 가톨릭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는 부유하지 않고, 고등 교육을 받은 적 없으며, 불교 승려가 되려고 하였지만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빌 게이츠는 다양한 하드웨어에 호환가능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며, 라이선스를 여러 제조사들에게 판매하면서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상품을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엔드투엔드를 고집하며 소프트웨어의 라이선스를 다른 제조사에게 넘기지 않았으며 기업이 아닌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을 만들었다. 전공한 학문이 문/이과로 다른 만큼 경영도 상이했는데, 개발자 출신의 게이츠와 달리 잡스는 아이디어나 경영 쪽을 맡았으며, 후에 게이츠가 경영으로 완전히 전환한 뒤에도 추상적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스타일의 잡스와 달리 직접 소스 코드와 함수를 보면서 개발자들을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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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장 시절 스티브 잡스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고 잡스는 그 편지를 곁에 두고 시간날 때마다 보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사이가 안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실제로는 선의의 경쟁자 비슷한 관계였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마이크로소프트가 Apple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할 당시 빌 게이츠는 Macintosh를 밀어줬으나 잡스는 Apple Lisa를 주력으로 생각하며 지원했다.[38] 단, 초창기 Macintosh의 GUI 시스템을 윈도우가 라이선스를 받아 사용했는데, 사용 허가 버전을 명시하지 않아 생긴 법정 다툼에서 원래 GUI 특허가 Apple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39]을 밝혀내 Apple의 GUI 특허를 무력화시킨 이후에는 서로 죽일 듯이 증오했다고 한다. 그리고 잡스가 NeXT를 설립해 첫 NeXT 데스크탑을 출시했을 때도 게이츠는 공개적으로 그 하드웨어를 욕하고 Microsoft가 NeXT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게이츠의 이런 태도 때문에 NeXT가 몰락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잡스의 감정을 긁어놓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물론 그 이후에는 다시 원만한 경쟁자로 돌아왔지만... 잡스가 죽기 전에 빌 게이츠의 기부 사업을 부러워하면서 죽은 것도 유명하다. 잡스는 투병생활로 인해서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또 다른 비교 대상으로 오픈 소스 계열의 아이돌 리누스 토르발스가 있다. 다만 토르발스는 빌 게이츠는 단순히 경영자일 뿐이라 자신과 비교할 수 없다고 깐다. 위에 빌 게이츠 경력을 보면 게이츠도 개발자로서 경력은 상당하기 때문에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토르발스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90년대 업계에 등장해서 지금까지도 개발자 업무를 지속하고 있는데, 게이츠는 토르발스가 업계에 등장하는 딱 그 시기부터 개발자를 그만두고[40] 경영자로 완전히 전환했기 때문에 토르발스 입장에서는 게이츠를 그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토르발스 입장에선 게이츠는 수학(개발업무)이 힘들다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한 사람인 격.
  • 마이크로소프트와 Apple 사이에 한창 소송을 할 무렵인 1997년에 법정 합의 결과로 Apple 주식을 많이 사긴 했는데, 의결권은 없어서 대주주라고 하기엔 무리. 게다가 2001년에 지분을 거의 팔아서 예전도 지금도 대주주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
    사실 빌 게이츠가 그깟 Apple 주식 열배 뛰었다고 아쉬워했을지는 의문이다. Apple 주식을 사는 것으로 합의해 Apple을 살렸고, 대신 그것으로 Microsoft가 반독점법으로 박살날 위기를 면했으니, 고작 현 Apple 주식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 Apple이 폭풍성장을 하는 게 달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자식들이 iPhone 같은 Apple 제품을 원하면 어떻게 할 거냐"라는 질문에 우리 Microsoft 사도 같은 물건이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의 Windows Phone은 iPhone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 오픈 소스를 신나게 까대면서, 사유 소프트웨어의 시대를 만든 주역이다. 뭐 프로그래머로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자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분 덕에 저렴했던 유닉스도 겁나 비싸지기 시작하면서, 지금 같은 폐쇄적인 운영체제가 되었다. 그에 빡친 리처드 스톨먼 GNU 재단을 만들었다. 빌 게이츠의 노력 덕분에 소프트웨어도 정당한 가격으로 팔 수 있게 되었으므로 현재 거대한 소프트웨어 시장 형성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그 여파로 오픈 소스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리처드 스톨먼, 그리고 Linux 커널 최초 배포자 리누스 토르발스 덕분에 오픈 소스는 살아남았고 현재 Microsoft는 오픈 소스 친화쪽으로 정책을 변경했다.
  • 인생에서의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Google 안드로이드 OS를 출시할 기회를 줘버린 것이라고 답했다. 정확히는 스마트폰 OS 시장은 철저한 승자독식의 세계이기 때문에 Apple이 이미 한 축을 점유한 상태에서 오직 하나의 회사만이 Apple의 반대편에 온전히 설 수 있었고, 본인의 최대 실수는 Microsoft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데 실패하게 내버려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Microsoft가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면 Microsoft는 유일한 선두주자가 되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PDA 같은 모바일 업계 1위는 Windows CE였으나 안드로이드의 등장 이후 점유율이 곤두박질쳐서 현재는 안드로이드는 커녕 IOS나 기타 대기업들이 만드는 커스텀 리눅스 OS 점유율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야심차게 내놓은 Windows Phone OS는 성공을 가정하기에는 가장 중요한 기간 동안에 벌여놨던 치명적 실수들이 너무나 많았다.[41]

* 1995년 후반을 기점으로 셰어웨어는 마케팅에만 수억 달러를 쏟아 부은 Microsoft Windows 95보다 더 많은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었으며,[42] 이러한 유명세는 빌 게이츠로 하여금 이드 소프트웨어의 인수까지 고려하게끔 하였다. 비록 이는 실현되지 않았으나, 그 대신 은 윈도우 95를 게임 플랫폼으로서 홍보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43] Windows 95의 홍보영상 중에는 둠을 배경으로 빌 게이츠가 직접 등장하여 좀비맨과 임프를 샷건으로 날려버리는 영상이 있다. 그리고 25년 뒤, 빌의 후임자들은 기어코 제니맥스 미디어를 인수, 제니맥스에 인수된 이드 소프트웨어 역시 Microsoft 소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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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때문에 게임산업에 대해 관심이 높았으며, Xbox에도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초대 Xbox의 런칭 행사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물론,[44] Xbox 360의 출시 이전에는 타임지의 커버를 장식함과 동시에 장문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이후 헤일로 3의 발매일 당시 직접 소매점에서 헤일로 3를 판매하면서[45] '예술로서의 비디오 게임이 세운 중요한 이정표'라고 찬사의 코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Xbox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Xbox의 시작 자체가 PlayStation에 거실을 점령당하지 않을까 생각한 빌 게이츠의 위기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니 당연한 일일 듯. 한 인터뷰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Xbox를 단순한 게임기를 넘어 Windows와 연결되는 거실의 미디어 허브로 자리잡게 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4년의 인터뷰에 의하면 만약 야마우치 히로시만 찬성한다면 닌텐도를 바로 인수할 계획이었다고.[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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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히어로 게임을 하는 빌 게이츠
  • 어릴 때부터 퍼즐 등의 게임을 좋아했으며, 1995년에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PC 게임 『 미스트 시리즈』의 열렬한 팬인 것도 유명한 사실. 그의 큰딸은 제니퍼 『 비바 피냐타』를 즐겨하지만 1시간 이상 못하게 하는 것도 유명하다(2011년 기준 12살로 자식을 늦게 얻은 편이다). 현재는 위의 행적들과는 별개로 2014년의 레딧 질의응답에 의하면 본인은 열성적인 게이머가 아니라고 하며, 게임 중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키넥트 스포츠를 가장 많이 플레이했다고 한다.
  • 빌 게이츠가 1995년 본인의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21세기의 생활에 대해서 예언했는데, 영화를 장소와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다던가( 넷플릭스, 유튜브), TV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때에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VOD), 디지털 화폐가 들어있는 PC지갑( 비트코인), 카메라가 달린 납작한 휴대폰의 대중화 등을 예언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소름끼치게 높은 적중률을 보여주고 있다. #[47]
  • 워렌 버핏의 영향을 받았는지 1995년에 'Cascade Investment'란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IT의 대가인 그는 투자에 대해서는 버핏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농기계 회사, 철도회사, 카펫회사, 코카콜라-멕시코, 자동차 소매, 조선소, 제약사, 호텔, 광산, 발전소, 제철, 쓰레기 처리 회사, 멕시코 언론사 같은 따분한 업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현재 일반인들에게는 각종 기부 및 선행들과 더불어 특유의 온화해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사실 90년대까지 즉 Microsoft를 한창 키우던 20대~30대 시절에는 상당히 악독한 보스였고 독재자스러운 이미지로 유명했다.[49] 사원들의 차 번호를 외우고 주말에 회사에 나와서는 주차장을 체크해서 누가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나 보는 진상짓을 하기도 하고, 미팅 중에 사원들의 높낮이를 안가리고 대놓고 소리 지르고 욕 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한때 엑셀 개발자였던 조엘 스폴스키의 일화에는[50] 빌 게이츠가 참석한 회의에서 엑셀의 날짜 함수에 관해 제대로 대답을 하고 회의를 끝내니, 회의 참석자들이 빌에게서 F 워드가 4번밖에 안 나온 신기록을 달성한 날이라며 빌이 나이가 들어서(이 때가 빌이 36살 때다) 물러진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그런 악랄한 사장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 중 끝까지 참고 버틴 인간들을 전부 부자로 만들어줬다.
  • 그의 악랄한 돈벌이 행위는 동업자 폴 앨런의 증언에서도 나온다. 폴 앨런이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려 회사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와 쑥덕거리며, 폴 앨런의 지분을 빼올려고 뒷작업을 하다가 걸렸다. 결국 화가 난 폴 앨런은 퇴사하고 자신의 자서전에 돈 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라고 게이츠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6. 여담

  • 어린 시절 병원 진료 후 대기하던 중 책 한 권을 빼서 보려다가 의사가 아끼는 꽃병을 깨는 등 난장판을 만든 적이 있다.
  • 정치 성향은 민주당 쪽으로 워렌 버핏과 함께 부자 감세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며, 심지어 자기 같은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야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그리고 2013년 1월 2일부로 그가 워렌 버핏과 같이 주장한 대로, 재정 절벽 방지를 위한 부자 증세안이 상-하원에서 동시 통과되었다. 은퇴 영상에는 아예 민주당쪽 대선 후보들이 나온다. 그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MSNBC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친 민주당 성향의 언론사이기도 하다.
  • 빌 게이츠는 11세 시절이었던 1966년부터 부모님과 빈번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방 정리나 저녁 식사 시간 지키기는 물론 연필 깨물기 금지라는 어머니의 요구가 불화의 근원이 돼 말다툼으로 번졌던 것이다.
  • 빌 게이츠의 아버지의 자서전에 따르면, 12세 시절이였던 1967년 어느 날, 저녁 식사 도중 빌 게이츠가 어머니에게 대들자 아버지[51]가 반성을 시키기 위해 컵에 있는 찬물을 빌 게이츠의 얼굴에 힘껏 뿌렸는데, 이때 빌 게이츠가 주눅들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샤워를 시켜줘서 고맙네요."라며 빈정거렸다고 한다. 결국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심리상담가에게 데려갔는데, 그 심리상담가는 독특한 성격을 존중해주라는 충고를 했다. 결국 이 충고를 받아들인 아버지는 빌 게이츠를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 스쿨이라는 학교에 보냈다. 후에 이것이 빌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출처: 1대100 134회 후반전 6단계>
  • 하버드 대학에 재학할 당시,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은 등록만 하고 출석을 안 하고 다른 과목 수업을 청강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 수학과 신입생들이 약 80명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1등은 딱 1명일테고 자신은 그 1명이 아니란 것을 직감하고 아예 안 가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수학과보다 응용수학과 학생들이 더 재밌는 교양 과목을 많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바로 응용수학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 자퇴할 때 그의 부모님은 사업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1~2년 뒤에 복학해서 졸업하겠거니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어차피 1년만 더 있으면 졸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말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 현재는 이혼을 한 아내 멜린다 게이츠는 결혼 이전에는 Microsoft의 선임 프로그래머 중 하나였다. 비서였다고 흔히 잘못 알고 있는데, 이 사람은 한때 Microsoft Publisher 프로그램 개발 책임자기도 했다. 누가 세계 최강 프로그래머 중 하나 아니랄까봐, 프러포즈 방법이 대박이었던 걸로 유명하다. 당시 선임 프로그래머였던 멀린다에게 "이 게임 재미있다는데 한번 해봐요"라면서 게임을 줬는데,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자신의 취향에도 맞았기 때문에 게임에 몰입하여 클리어했다. 그런데 클리어 화면에 "결혼해줘요. -빌"이라 떴다고 카더라. 결혼 후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의장으로서 재단의 방향성과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미국 내 여성과 가족들의 사회적 진출을 지원하는 투자 및 인큐베이션 기업 피보탈벤처스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인류 최고의 목표는 평등이 아니라 연결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서 <누구도 멈출 수 없다>에서 밝혔다. 아내인 멀린다 게이츠와의 사이에서 슬하 1남 2녀를 두었다.
  • 실제 비서와 일화도 있지만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빌 게이츠는 30대가 될 때까지 잘 씻지도 않고 옷도 평범하게 입는데다가 상당히 동안이라 사장실에 웬 10대 소년이 들어온줄 알고 비서가 나가라고 소리쳤지만 빌 게이츠가 회사 오너도 못 알아보냐고 쌍욕을 퍼부은 적이 있다.
  •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멜린다와 결혼생활을 하던 중 불륜을 하기도 했다. 돈 많은 남자는 언제나 인기가 많다.
  • 결혼식에 몰려드는 취재인파를 피하기 위해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버리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취재진들의 접근을 최소화하고자 주변의 헬기들을 다 예약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 빌 게이츠는 결혼 전에는 전형적인 사업밖에 모르는 비즈니스맨이었고 지금의 기부천사로 바뀌게 된 건 아내인 멀린다 게이츠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빌 본인으로서도 잘한 결혼이라고 볼 수 있다. 빌 게이츠가 마누라의 등쌀에 못 이겨 만든 것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다.
  • 스피드광인 성격답게 승부욕도 강하다.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경쟁자를 제거하는 능력은 절대 선택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 재미가 없어져서라고 한다. #
  • 1976년 베이식 인터프리터를 마구잡이로 복제해서 돌려쓰던 복돌이들을 겨냥해서 쓴 '취미가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편지가 유명하다. '님들이 계속 불법복제하면 우리 같이 소프트웨어 만드는 사람은 다 거지가 될 거고 그럼 좋은 소프트웨어도 못 나올 거에요.'라는 내용으로, 저작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했을만한 울분을 시원하게 터트려줘 많은 사람이 찬양하나 반대로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에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 마이클 샌델이, 빌 게이츠는 하루 16시간을 일했다고 쳐도 초당 140불을 벌었기 때문에, 길거리에 100불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허리 굽히느라 멈춰서는 시간이 아까워서 줍지 않고 지나갈 것이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이후 어느 연설회장에서 질문 시간에 누가 정말 그럴 거냐고 물어 본 적이 있는데, 빌이 우물쭈물 하자 옆에 있던 워런 버핏이, "빌은 모르겠지만, 나는 빌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줍겠다"라고 답해 청중을 웃긴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2014년에 복귀하고 나서 다시 한번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이번에는 줍겠다고 했는데, 그걸 자기가 쓰는 게 아니라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하였다. #
  • '워싱턴주 로컬 버거 Dick’s'에서 햄버거를 살 때 줄을 서는 등 소탈한 모습이 동네사람들에게 종종 찍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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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인 스스로도 부자지만 유년기부터 부족함 없는 부유층 가정에서 자라와서 그런지 실 생활용품 물가에 대해 다소 무지한 편이다. 1달러짜리 인스턴트 쌀밥 하나를 5달러로 예상했는데, 사람들이 야유하자 자기는 이걸 5달러에 사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
  • 하지만 게이츠 집에 피자를 배달했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의외로 은 딱 20% 정도만 줬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예의라고 하는 15% 보다는 많지만, 이것으로 그의 씀씀이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애초에 부자라고 팁을 퍼줘야 한다는 시각이 더 편파적인 것이다.
  • 이래서 언제나 프리메이슨이나 백신 등과 엮여서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는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빌&멜린다 재단만 해도 닭전염성 기관지염의 이 시국 전후에 특허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빌 게이츠가 오히려 질병을 통한 계획적 인구감소 음모를 진행하는 일원이라고 음모론자들이 까대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무료 배포 백신에 Microsoft사 칩이 내장되어 있다는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 한국에서는 극우 유튜버 안정권이 이를 주장하고 있다. 하다못해 2020년대 들어서는 마이크로칩이나 백신 음모론을 소재로 한 각종 개드립도 등장하고 있다.
  • 가톨릭 신자이다. 기사 세례명은 굴리엘모다. 빌 게이츠의 족보를 보나 종교를 보나 유대인이 아닌데 미국 경제지에도 종종 유대인이라고 나온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독일- 영국계 미국인 핏줄이 약간 섞인 전형적인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며, 빌 게이츠의 가족은 가톨릭 집안이었으므로 유대인과는 상관이 없다. 결혼 전에는 불가지론적인 발언을 심심찮게 했다. 결혼 후에는 아무래도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멜린다의 영향으로 보인다. 결혼 후 자선사업에 많이 참여하는 것도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가톨릭 신자임에도 리처드 도킨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아직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화를 만들어서라도 모르는 걸 설명하려고 한다고 인터뷰했다.
  • 성 범죄자 제프리 엡스틴과 친분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빌 게이츠는 부인했다. 그는 단지 사업적 목적으로 제프리 엡스틴을 만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 스팸메일이나 악성코드에 대한 증오심이 남다르다. 요즘 Windows에 내장되는 악성코드 제거 프로그램 초기작은 그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52] 늘어나는 스팸메일과 악성코드에 견디다 못하여 직접 나섰고, 은근히 효과가 있자 아예 개발부서를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하루에 오는 스팸메일이 수십만 통에 달하다 보니, 아예 스팸메일을 처리하는 부서가 있었다고 한다.[53]
  • 2010년경에는 기어코 한국에 위인전까지 출시되었다.다만 유아용 위인전은 그 전에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왔다.
  • 173cm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172cm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신장은 175cm 정도로 추정된다. 젊었을 때 쓴 이력서 기준으로 5피트 10인치, 177.8cm이다. 유명한 그 악수 비교 사진과 달리 어느 쪽이든 한 손으로 편한 자세로 악수를 했다. 미국 백인이기는 하지만 수치 자체가 그리 작은 키는 아닌데[54] 아버지가 2미터가 넘는 거구에 어머니[55]옆에 함께 있는 것을 봤을 때 최소한 작은 키가 아님에도 그를 감안하면 다소 작다고 느껴지는데 어렸을 때부터 너무 독서와 컴퓨터와 사색, 연구 등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수면이 다소 부족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 위 문단에서 보듯 의외로 대한민국의 IT 산업 정책에 영향을 알게 모르게 끼친 인물이다. 한국에서 정보고속도로 자체는 1980년대부터 추진되고 있었지만( 교육용 PC 사업 참조) 인터넷PC를 보급하는 등 본격적인 정보고속도로 인프라 사업은 IMF를 겪은 후인 1998~99년부터 성장했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가 1990년대 중반 펴낸 자서전 '미래로 가는 길'에서 한국의 정보화산업 비전에 대해 짧게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김대중, 이명박 전 대통령 등과 회동하며 한국의 정보화 정책에 여러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빌 게이츠는 책을 여러 권 냈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한국의 인터넷 역량에 대해 점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 관련해서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도 이런 신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주장한 정보고속도로 개념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실현해버린 국가다.[56]
  • 2003년 4월 1일, 한 네티즌이 CNN 홈페이지를 모방한 낚시 사이트를 만들어 빌 게이츠가 피살됐다는 가짜뉴스를 게재했는데, 4일 오전 9시 38분 MBC[57]를 시초로 YTN, SBS, 인터넷 뉴스사이트 등지 언론에서 해당 사이트를 잘못 인용해 빌 게이츠 사망 오보를 내는 사고가 있었다.[58] ( 한겨레, 한국경제신문)
    파일:빌게이츠 사망 관련 짤.jpg
    가끔 몇몇 네티즌들이 위 속보 사진을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편집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실제로 MBC에서 방영된 사진이다.
  • 2007년에 가전박람회 CES(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의 기조 연설에서 한국의 가전제품 기업 모뉴엘을 극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소식은 한국 언론사들의 뉴스에만 적혀있고 다른 국가의 뉴스에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그나마 있는 영문 기사들도 사이트 주소를 보면 알 수 있는 한국 언론사 사이트의 영문판에 불과하다) 루머인듯 하다. 관련기사 무엇보다 모뉴엘은 시원하게 망했다.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모뉴엘이 CES에서 온갖 상을 받아온것도 사실인 만큼 사실일 가능성도 있긴 하다.
  • 레딧에서 유저들에게 라이브로 다양한 질문을 받고 직접 답하는 AmA(Ask me Anything)를 자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9년까지 7번씩이나 했다.
  • 2009년경에 어느 미국 매체가 계산해본 결과, 당시 빌 게이츠의 전 재산을 모조리 1달러 지폐로 바꾸면 지구에서 달까지 약 153바퀴를 돌 정도의 양이 나온다고 추측했다.
  • 컨트리 가수 존 덴버와 외모가 언뜻 보면 흡사해서 아주 적긴 하지만 기타치는 드립이 있다.
  • AOL 넷스케이프는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빌 게이츠에게서 "너네 자꾸 그렇게 신경 건드리면 회사 확 사버린다" 라는 발언을 들은 적 있다.[59]
  • 레이크사이드 스쿨 재학 시절, 학교가 의뢰한 수강신청 프로그램을 코딩할 때 자기 반을 여학생들로 구성했다.
  • 2019년 9월 20일 넷플릭스에서 만든 빌 게이츠 다큐멘터리 <Inside Bill's Brain: Decoding Bill Gates>가 공개됐다. 아래는 그 예고편 여러 장면들 중 이 시대 가장 훌륭한 기업가라는 캡처가 회자됐다.
  • 리히텐슈타인 의회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공작 한스 아담 2세의 장남 섭정 알로이스 공자가 보수 귀족인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지 "나라를 빌 게이츠에게 팔고 국명도 마이크로소프트로 바꾼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본가로 돌아가겠다"[60]고 위협했다. 리히텐슈타인은 공작가의 가산으로 유지되는 나라라 결국 의회는 알로이스 공작에게 굴복, 법안을 거부했다.
  • 세계적인 대부호들과 마찬가지로 음모론자들의 주요 타겟이 되는 일이 잦다. 사실 빌 게이츠가 일루미나티 회원이라는 둥, 일부러 부작용이 있는 백신을 배포하여 세계 인구를 5억으로 줄이려 한다는 둥. 관련 영상
  • 빌 게이츠의 저택 이름은 'XANADU 2.0'이다. 굉장히 빌 게이츠스러운 이름이다. 어원에 대해서는 제나두 시민 케인 문서 참조. 저택은 초호화인데 20개의 침실과 24개의 욕실을 가졌고 수영장 안에는 특수 음향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어 수영하면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 탑 15
  • 절친인 워렌 버핏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콜라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상술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면 앉아있을 때에 계속해서 콜라를 끼고 있고 냉장고에 어마어마한 양의 콜라를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연구를 할 때에는 콜라를 여러 캔 마신다. 그럼에도 비교적 건강해보이는데 워렌 버핏도 빌 게이츠도 둘 다 워낙 머리를 많이 쓰고 건강을 위한 자기관리를 열심히 해서 그 당분이 대부분 소모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확실한 정보는 아닌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게 의외로 인간의 열량을 가장 많이 소모하는 부분은 근육이나 장이 아니라 뇌와 간이며 워렌 버핏이 그렇게 먹고도 90살이 넘도록 건강한 이유로 추정되는 가설 중 하나가 두뇌 풀가동인만큼 빌 게이츠도 콜라로 섭취한 당이 머리를 쓰면서 소모되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은 오히려 콜라 등으로 보충을 해주지 않으면 당이 부족하다는 신호가 올 것이다. 워렌 버핏과는 달리 코카콜라보다는 다른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아보인다. 다만 거침없이 당분을 섭취하는 버핏과 달리 빌 게이츠가 다큐멘터리에서 마신 콜라는 전부 다이어트 콜라로 당분은 거의 없는 콜라이다.
  • 워런 버핏과 절친으로 버핏의 90세 생일 선물로 오레오 케이크를 직접 만들기도 했으며, 해당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
  • 부인과 나이 차이가 비교적 많이 나다보니 나이가 70을 바라보는 현재는 아내와 기력 차이가 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61] 부부 둘이서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서 가는데 빌 게이츠는 힘들어서 멈추고 멜린다는 계속 젓고 있는 것을 웃픈 장면을 보이기도 했다.
  • 첫째 딸 제니퍼 게이츠는 2021년에 나옐 나사르와 결혼했다. 그는 이집트계 미국인인 프로 승마 선수로,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다. 제니퍼 역시 한때 승마 선수로 활동했으며 둘은 2020년 1월 약혼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
  •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갤럭시 Z 폴드 3라고 한다. # 아이폰은 트랜드 파악용으로 보유하고 있으나 위 문단에서 나오듯 애플과의 악연과 MS와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부문에서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안드로이드와 윈도우즈의 호환성이 좋은 점도 한몫했다.

7. 어록

저는 "아빠, 나는 언젠간 학교에 돌아갈 것이고 졸업장을 받을 거라고 항상 말했었잖아요."라는 이 말을 하기 위해 30년 이상을 기다려왔습니다.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일주일에 몇 시간 혹은 한 달에 몇 달러를 어딘가 기부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당신이 그 시간이나 돈이 어딘가에서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곳에 사용되기 원한다면 그곳은 어디일까요? 아직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불평등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잡성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방법들은 이제 나온 것들이며 그 방법들은 우리가 우리의 관심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앞으로의 미래는 과거와는 다를 것입니다.
- 2007년 6월 7일, 자신이 중퇴했던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자리에서의 졸업축사 내용 중에 몇 마디.
소프트웨어 개발비용은 비쌉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돈을 주지 않는다면, 뛰어난 소프트웨어는 결코 개발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결정하시죠. 소프트웨어를 쓰실 겁니까, 아닙니까(돈을 주시렵니까)?
-1980년에 데니스 배터리키츠와의 인터뷰에서.
위 이야기는 불법복제가 횡행하던 당시의 이야기였다. 현재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게 씁쓸하지만…
저희는 경쟁자들처럼 비행기를 사서 노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을 회사에 처박혀서 진행했습니다.
- 1981년, IBM PC 발표회 당시 기자들에게 게리 킬달을 은근히 까면서.[62]
킬달이 IBM과의 계약을 놓치자 그 기회가 게이츠 일행에게 굴러들어온 상황이었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 위해선 약간 다른 것 이상의 무언가, 즉 새로우면서도 사람들의 상상을 정말로 사로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Macintosh야말로 제가 이제껏 본 컴퓨터들 중 유일하게 그 기준을 만든 제품입니다.
- 1984년, Macintosh 시연회에서
참고로 당시 스티브 잡스는 Macintosh가 아니라 Apple Lisa를 밀었다가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 후 스티브 잡스는 Macintosh으로,, 빌 게이츠는 자사의 Windows로 지지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2015년 예언자가 되었다!
누군가가 차고에서 전혀 새로운 뭔가를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두렵군요.
1998년, 한 기자의 질문, 당신이 제일 두려워 하는 장애물이 뭔가요? 에 대한 대답. 그의 통찰은 정확했다. 그 해에 나온 것이 다름아닌 구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구글이 상장되어 화려한 전성기를 시작한 2004년, 페이스북이 탄생했다.
30년 뒤에 사람들이 컴퓨터로 이루어낼 놀라운 일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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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측 아래 명언과 달리 그가 실제로 했던 말이고 30년뒤 사람들이 컴퓨터로 하는 쓸데 없는 일 때문에 합성되어 조리돌림 당하고 있다.

7.1. 가짜 명언

빌 게이츠가 했다고 잘못 알려진 말들이다.
가난하게 태어난 건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건 당신 잘못이다.
- 머니 : 새로운 부의 법칙, 롭 무어
인터넷에서 많이 떠도는 어록이다. 물론 이 어록에 대해서 검색을 하면 나오는 거라곤 빌 게이츠의 얼굴과 이 문장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이 어록에 대한 분명한 출처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1.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 현실에 대하여 불평할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2. 세상은 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세상이 너희들한테 기대하는 것은 네가 스스로 만족하다고 느끼기 전에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보여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3. 대학교육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연봉이 4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말라.
4. 학교선생님이 까다롭다고 생각되거든 사회 나와서 직장 상사의 진짜 까다로운 맛을 한번 느껴봐라.
5.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너희 할아버지는 그 일을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6. 네 인생을 네가 망치고 있으면서 부모 탓을 하지 마라. 불평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라.
7. 학교는 승자나 패자를 뚜렷이 가리지 않을 지 모른다. 어떤 학교에서는 낙제제도를 아예 없애고 쉽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사회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8. 인생은 학기처럼 구분되어 있지도 않고 여름 방학이란 것은 아예 있지도 않다. 네가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면 직장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9. TV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커피를 마셨으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
10. 공부 밖에 할줄 모르는 ˝바보˝ 한테 잘 보여라. 사회 나온 다음에는 아마 그 ˝바보˝ 밑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
이 어록은 빌 게이츠가 마운틴 휘트니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한 연설이었다고 그럴싸하게 알려지는 바람에 꽤 오랫동안 정말 빌 게이츠의 명언록인것처럼 잘못 알려져있었다. 하지만 정작 빌 게이츠는 이 학교에서 연설한 적이 없다. 실제로 이 발언은 당시 후버연구소의 연구원인 교육학자 찰스 사익스(Charles J. Sykes)의 저서 <Dumbing Down Our Kids: Why American Children Feel Good About Themselves But Can't Read, Write, Or Add>에 있는 이야기다. 2000년대 초반 빌 게이츠가 이런 말을 했다며 미국 인터넷에 거짓된 정보가 퍼졌는데 이 거짓정보가 한국까지도 번역돼서 잘못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기회의 불평등을 이야기한 빌 게이츠가 저렇게 자기계발서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 것도 있고.

"640KB이면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메모리 용량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근데 이것이 점점 유명해지다 보니 신경쓰였는지 공식석상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불쾌해 하기까지 했다. 더 자세한 것은 기본 메모리 문제 문서를 살펴보자.

7.2. 농담거리

떠도는 농담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는 그가 마법사라는 농담도 있다.
1. " Micro, Soft."
빌 게이츠가 국제적인 관심을 집중시키며 멀린다 게이츠와 결혼을 했는데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모여 있었다. 마침내 빌 게이츠와 멀린다가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한 기자가 멀린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청나게 큰 재산을 가진 남편의 첫날 밤이 어떠셨습니까?
멀린다는 한숨을 내쉬며 귀찮은 듯 짧게 대답하고 들어가버렸다.
Micro, Soft.
작고, 물렁했어요.
다른 기자가 빌에게도 첫날밤이 어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빌은 즐겁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Micro, Soft.
작고, 부드러웠어요.

2. 빌 게이츠와 별명
학창시절 빌 게이츠는 항상 몇 권의 책을 갖고 다녔고, 적어도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책벌레였다. 그 때문에 학교의 친구들에게「prn(인쇄물을 의미하는 print에서 따온 호칭→DOS/Unix콘솔창에서는 프린터를 의미한다)」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당했다. 이제는 어른이 된 게이츠지만 지금도 당시의 별명을 아주 싫어하는 듯, 그는 windows에서 새 폴더를 만들 때 prn이라는 이름은 붙일 수 없게 했다. #
사실 당연히 농담이다. prn은 도스 시절부터 존재한 시스템 예약어이기 때문.
파일:billPrn.png
3. 동창 엿먹이기
학창시절 빌 게이츠는 말썽꾸러기였다. 그와 같은 반이었던 탐(Tom)은 늘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빌 게이츠는 Microsoft를 세워서 부자가 되고 탐 로드니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이에 샘이 난 탐은 빌 게이츠가 예전에는 말썽꾸러기였다고 사람들에게 폭로했다. 빌 게이츠는 탐에게 복수하고자 Windows 한국판에 슬쩍 탐의 욕을 집어넣었다.
Windows 탐색기[63]
탐은 실존인물이 아니다.

4. 업데이트 굴욕설
빌 게이츠가 복귀할 때 뉴요커 잡지에서 "복귀하자마자 자신의 자리 Windows 8을 Windows 8.1로 업데이트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자 CEO인 사티아 나델라를 사무실로 불러서 설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CEO조차 Windows 8.1 업데이트에 실패하고 Windows 7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의 훼이크 기사를 실은 바 있다. 결국 이때문에 열받은 빌 게이츠가 차기 윈도우 버전에 대해 뭐라 하고 사티아 나델라가 Windows 10 개발에 박차를 가해서 현재의 Windows 10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역시 당연히 훼이크다. 근데 국내 몇몇 언론이 거기에 낚여 진짠 줄 알고 기사를 실은 적 있다.[64]
5. 신형 람보르기니 사는 법
파일:16de6e730bb4f09ec.jpg [65]

8. 대중 문화에서

  • 파일:external/img.csfd.cz/158870078_41e32b.jpg
    이미 전기 영화가 제작된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와는 달리, 아직 빌 게이츠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는 없다. 다만 1999년작 TV 영화 <실리콘 밸리의 해적들>(Pirates of Silicon Valley)에서 스티브 잡스와 함께 양대 주연으로 등장했다. 주연인 빌 게이츠를 연기한 배우는 앤서니 마이클 홀.[66] 디지털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각각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간판이 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두 회사의 애증 관계를 묘사한 작품.
  • 파일:external/m0vie.files.wordpress.com/antitrust2.jpg
    2001년 제작된 영화 <패스워드>(원제: Anti-trust)에 등장하는 거대 소프트웨어 업체 사장 게리 윈스턴( 팀 로빈스 분)이 빌 게이츠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제목부터가 WINDOWS 운영체계의 독점 논란을 빗댄 것.
  • 웨스트우드의 게임인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 유리의 복수에서는 그를 모티브로 한 단역 캐릭터가 등장한다. 유리의 복수 연합군의 3번째 미션을 하면, 시애틀에서 매시브소프트빌 회장이 구조 요청을 보낸다. 영상을 보면 매시브소프트의 회사 로고는 Microsoft의 그것과 판박이이며, '빌 회장'의 외모도 빌 게이츠와 매우 닮았다. 그런데 한가지 반전으로 빌 회장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사과 바구니가 있다. 물론 시애틀이 있는 워싱턴 주의 특산물이 사과인 영향도 있겠지만.
  • 더게임툰에선 실리콘 밸리의 악마 시절을 반영했는지 비슷한(?) 악덕 경영자인 번즈로 패러디되었다.

9. 관련 문서



[1] 윌리엄(William)은 영어권 국가의 이름으로 애칭은 빌(Bill)이다. 실제 W 발음은 독일어 등 몇몇 유럽계 언어에서 ㅂ(V/B) 발음이다. 볼프강(Wolfgang)이 그 예시. [2] 빌 게이츠는 2005년 대영제국 훈장 명예 2등급(Honorary KBE)을 받았다. 이 수훈 사실을 나타내는 약자로 이름 뒤에 'KBE'를 붙였다. 영연방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에게는, 훈장의 등급이 1등급이거나 2등급이라도 영국 전통 양식에 따르는 기사 서임과 관계가 없는 명예 훈장을 준다. 이에 따라, 훈장의 등급은 2등급이지만 이름 앞에 Sir를 붙이지 않는다. [3] 전공으로 법학 예과(pre-law major)를 선택했지만 수학, 컴퓨터과학을 수강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교 컴퓨터과학과 동문 소개에는 빌 게이츠가 동문으로 소개되어 있다. [4] 2021년 8월 포브스 기준 [5]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에 이은 세계 부자 순위 4위. [6] 출처 [7] 참고로 빌 게이츠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 2세'는 1925년생으로 키가 201cm인 엄청난 장신이다. 2020년 9월 14일 별세. [8] 현재 회계사로 근무하고 있다. [9] 빌 게이츠와 9살이나 차이나는 여동생으로, 지금은 주부로 살고 있으며, Microsoft와는 관계가 거의 없다고 한다. [10] 1994년에 결혼했으며 2021년 5월 3일 27년 결혼 생활 끝에 합의 이혼했다고 밝혔다. [11] 출처. 예전에는 95%이상 이었는데 이것도 많이 줄어든 것이다. [12] 다만 Microsoft 주식만 보면 2014년을 기준으로 오히려 스티브 발머 회장이 빌 게이츠 회장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은 일정 부분의 Microsft 주식을 처분한 후 리스크를 분산해 투자를 잘했다. 물론 그렇다고 빌 게이츠가 가진 Microosft 주식이 결코 적은 양이라는 건 아니지만. [13] 카를로스 슬림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제프 베이조스처럼 이렇게 빌 게이츠를 앞섰으나 현재는 많이 떨어져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는데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14] 다만 물가상승을 고려해서 환산하면 전성기 시절 재산은 2020년 기준으로 1200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수준으로 이는 존 데이비슨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존 피어폰트 모건, 헨리 포드 등 미국 역사상 있어왔던 부자들 중 상위권을 고수하고 있다. 록펠러는 물론 카네기와 포드도 지금 가치로 환산했을 때 빌 게이츠보다 재산이 많았고 카네기는 록펠러와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거부였다. 록펠러의 전성기 시절 재산은 2019년 기준으로 4060억 달러로 한화로 486조 원이다. [15] 그가 CEO로 있던 시절 휴렛패커드, Dell 등의 PC 제조사들을 협박해 Internet Explorer를 끼워팔기도 했으며 그 결과 경쟁사였던 넷스케이프가 급격히 몰락함으로 인해 Microsoft가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적이 있다. [16] Microsoft가 한창 전성기였을 때는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스탠다드오일에 비유될 만큼 악명이 높았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자선사업에 힘쓰기 시작한 것도 서로 비슷한 부분. [17] 자녀 1인당 1천만 달러를 물려준다고 선언했다. 이것만으로도 대략 111억정도 되는 큰 금액이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부호가 자산 99.9%를 기부한다는 것은 정말 존경받을 행보임에 틀림없다. 현재 재산을 감안했을 때 여전히 자녀들에게 한화로 110억 원이 좀 넘는 수준의 1천만 달러를 물려줄 계획이라면 전체 재산의 0.1%가 아니라 0.01% 이하만 주겠다는 것이 된다. [18] 외국에서 술담배 정도 취급인 대마가 아닌 마약(LSD)을 빨기도 했었다. [19] 당장 머그샷 문서에 1977년 당시 촬영된 머그샷 사진이 있다. [20] 2008년에 잠깐 최고 부자가 된 적이 있다. [21]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 래리 엘리슨과 출신 성분부터 비교되기도 한다. [22] 많은 사람들이 빌 게이츠를 그저 돈 많은 사업가로 알고 있지만, 사실 빌 게이츠 자체가 수학 컴퓨터과학의 천재다. [23] 당시 빌 게이츠는 코드 압축의 황제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주요한 모듈은 폴 앨런이 작성하였다. [24] 이 소스 코드는 2020년 마이크로소프트의 GitHub에서 공개했다. [25] 그래서 MS DOS는 1.10 부터 시작한다 1.0은 Q-DOS이기 때문이다. [26] 하지만 1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 책정 때문에 팔리질 않았다. 현재 1만 달러라 해도 1천만원. 당시 물가를 고려해보면 엄청난 금액이다. 결국 잡스는 짤리게 된다. [27] 그전까지 제록스의 경영진들은 자신들이 GUI 원천 특허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28] 2008년에 유죄판결을 받았었다. [29] 멜린다는 재단을 통해 수십년동안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사회 활동들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 문제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증언들에 의하면 엡스타인은 어찌나 매너가 나빴는지, 그가 성범죄와 관련되었음을 몰랐던 사람들도 그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30] 한편 이 소식을 2019년에 처음 기사화한 뉴욕 타임스에 의하면, 게이츠와 엡스타인간의 관계는 2014년 이후부터 소원해진 걸로 보인다(단, 게이츠 재단의 인물 몇몇은 약 2017년까지 엡스타인과 계속 만났던 모양). 한번은 엡스타인이 왜 게이츠가 자기한테 연락을 안 하냐고 불평했었다고. # [31] 앤은 빌과 헤어진 후 오랫동안 독신이었으나 배우 케빈 클라인의 형인 알렉스 클라인과 2015년에 결혼했다. [32] 하지만 둘 사이에 성적인 것은 없고 아내가 동의해줬다고 해도(…) 유부남이 일년에 몇번씩 외딴 곳에서 미혼의 여사친이자 전여친하고 단 둘이서 지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국 불륜은 불륜. [33] 물론 그런 거 상관없이 예나 지금이나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은 빌 게이츠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은 편이다. [34] 재단의 안좋은 면이 폭로되고 빌 게이츠와 이혼하게 된 여파인지 멀린다는 최근 자신의 약정을 철회했다. [35] 결혼 전 게이츠를 보면 우리가 아는 돈 벌기에 급급한 이미지 딱 그렇게 행동한다. [36] 고생이라 간단히 써있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및 제 3세계에서 치명적인 질병의 감염원은 바로 모기이다.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도 인류를 많이 죽인 동물이 바로 모기인 것인간이 있는데? [37] 영화배우 크리스 락이 스탠딩 코미디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38] 이는 빌 게이츠가 옳았다. Apple Lisa는 높은 가격와 비래하는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Apple 사내에서도 Macintosh에게 밀려버린다. [39] 위에 서술되어 있듯이 GUI의 최초 개발사는 제록스였다. [40] 위에 베이직 소스 코드에 나와 있는 것처럼 게이츠가 개발자로 이름날리던 시절은 70~80년대였다. [41] Windows Phone의 완성도는 Google이 모바일 OS를 절대로 개발하지 않는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을 해도 휴렛팩커드 webOS나 삼성의 바다 운영체제조차 이기기 힘들었을 정도로 개발 진행이 엉망진창이었다. [42] 참고로 당시 Microsoft에서 일하던 게이브 뉴웰이 이를 보고 바로 퇴사하여 밸브 코퍼레이션을 세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게임 하나가 운영체제와 게임 소프트웨어의 판도에 큰 영향을 준 셈. [43] Microsoft의 입장에서는 둠만큼 Windows를 홍보할 수 있는 게임이 없었기에 의 윈도우 이식은 간절한 일이었다. 실제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드 소프트웨어에게 둠의 Windows 이식을 부탁했을 당시에 이드는 ' MS-DOS에서 잘 돌아가는 게임을 Windows로 이식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거절했는데 이에 대해 Microsoft는 '그럼 우리가 이식한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고 다시 제안했고 이드는 '그럼 문제 없다'고 답하면서 둠의 윈도우 이식이 성사되었다. [44] 이 때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던 사람이 바로 드웨인 존슨이었다. [45] 위의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46] 이미 엑스박스의 출시 이전 마이크로소프트는 250억 달러를 닌텐도에 인수가로 제시한 적이 있었으며, 미야모토 시게루를 영입하려던 시도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Xbox와 더 긴밀히 연관되었던 세가의 인수는 빌 게이츠 본인이 직접 거부했다. [47] 다만 딱히 예언이라고까지 하기는 힘든 게, 이미 8,90년대 초반부터 유비쿼터스, PDA, 사이버 머니 등의 개념들이 주목받는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었으며, 빌 게이츠는 이런 신기술들의 보편화를 설명한 것뿐이다. 당시 관련업계 최전선에 선 전문가의 예측 정도라고 보면 좋다. [48] 닌텐도의 Wii가 대히트를 치자, 위기감을 느낀 빌 게이츠는 대항할 만한 제품을 당장 만들어내라고 엑스박스 팀을 압박했다고 하며 그 결과 나온 제품이 다름아닌 키넥트라고 한다. [49] 윗 문단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내외적으로 오죽했으면 한때 빌 게이츠의 별명이 실리콘 밸리의 악마(Demon of Silicon Valley)라고 불릴 정도였다. [50] 현재는 Stack Overflow의 CEO이다. [51] 빌 게이츠 시니어. 키가 무려 201cm로 아들인 빌 게이츠보다 훨씬 크다. 2020년 9월 14일 별세. [52] 그 프로그램이 계속 발전한 것이 바로 MSE다. [53] Microsoft의 홈페이지 뉴스란에 자신도 빚을 질 것을 권유하거나 금방 빌 게이츠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메일을 많이 받아봤다고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를 한 기사가 올라와있다. [54] 미국은 다인종 국가여서 생각보다 키가 크지 않아 한국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백인이라고 해도 게르만 계열보다는 슬라브 계열이 키와 체구가 큰 편이다. 할리우드 배우들도 보면 남녀 모두 제법 아담한 경우가 꽤 많고 예상보다 남자는 180cm, 여자는 170cm가 넘는 큰 키인 경우는 많지 않다. [55] 어머니 또한 키가 178cm로 엄청나게 크다. [56] 첫 번째는 미국인데 지금 시점에선 많은 나라들이 달성하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미국이 인터넷 종주국임을 생각하면 빌 게이츠가 원하던 이상향에 가깝게 추진한 국가는 한국이 선도적이었다. [57] 이에 MBC는 오보 16분 후 빌 게이츠 피살이 사실무근이란 자막을 띄우고,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신경민 당시 국제부장의 명의로 사과문을 올렸다. 더불어 김장겸 국제부 차장에겐 구두경고, 오보를 낸 김모 정치부 기자에겐 징계를 각각 내렸다. 2013년 7월 22일 국민TV <민동기 김용민의 미디어 토크> 제13화를 통해 이 사건을 언급하며 김장겸을 오보 당사자라고 주장하자 MBC와 김장겸 당시 보도국장이 민동기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외 두 MC에게 허위 보도에 따른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2014년 민사재판 1심에서 MBC에 300만원, 김장겸에게 700만원을 배상토록 했지만 이듬해 항소심에서 200만원 가량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반면 빌 게이츠 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며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방송내용 중 MBC가 검찰 출입기자를 시용기자로 바꾼 건은 정정보도 대상이라고 일부 유죄 판결했으며 이 건은 2017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유지됐다. 2016년 형사재판 항소심도 같은 요지로 판결했다. [58] SBS, YTN 등은 오보 4분 뒤 정정자막을 올림. 참고로 이 오보가 뜨기 며칠 전인 4월 1일 홍콩의 배우 장국영이 사망했다. [59] AOL의 경우 AOL.COM에서 언급하고 있고, 넷스케이프는 회사가 거의 망한 후 실제로 Microsoft에 인수되었다. [60] 리히텐슈타인이란 이름은 원래 비엔나 근교 리히텐슈타인 성에서 유래했다. [61] 부인 멜린다 게이츠와는 9살 차이로 제법 많이 나는 편이다. [62] 게리 킬달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IBM이 방문했을 때 경비행기로 여행을 즐기던 중이었다는 것은 루머이다. 다만 빌 게이츠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당시 디지털 리서치는 이미 여유가 있던 회사이기 때문에 일정을 평범한 수준으로 제시한 반면, Microsoft는 당시 IBM PC 개발 시기에 IBM이 요구한 빡빡한 일정을 어떻게든 맞추기 위해 그야말로 엄청난 야근을 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지금도 별반 다를바 없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와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스타트업의 업무 강도 차이일 뿐이지만 어쨌든 디지털 리서치가 IBM과의 계약을 거부한 이유 중에는 이 빡빡한 일정으로 인한 것도 어느 정도 포함되기 때문에 아주 틀린 얘기라고 할 수는 없다. [63] 탐색기->탐새끼->탐 새끼 [64] 물론 사실 여부와는 상관 없이 Windows 8이 이런저런 문제점으로 욕을 먹은 건 사실이고 문제점을 개선했다는 Windows 8.1 또한 Windows 7에 비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대다수 사용자들이 Windows 7을 계속 쓰고 Windows 10으로 껑충 업그레이드했다. 아마 Windows 8과 Windows 8.1의 성능에 불만을 가진 일부 사용자들에 의해 생겨난 루머인 듯하다. [65] 이건 꽤나 과장되어 있다. 상술했듯이 하루 16시간씩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빌의 초당 수입은 140달러 정도로, 50만달러짜리 람보르기니를 사려면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66] 이 때는 꽤 샤프한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너무 달라져서 검색하면 빌 게이츠 연기를 할 당시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67] 히라이 카즈오 CEO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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