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5-20 23:55:03

PDA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SEGA의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내용은 하츠네 미쿠 Project DIVA Arcade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PDA의 역사
2.1. 전자수첩 시기2.2. 초창기2.3. 전성기2.4. 스마트폰 출시 이후
3. PDA의 특성
3.1. 개인용으로서의 PDA3.2. 기업용으로서의 PDA
4. 관련 문서

1. 개요

Personal Digital Assistant(개인용 디지털 단말기). 터치 스크린을 주 입력장치로 사용하는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고 가벼운 컴퓨터이다. 그래서 팜톱(Palmtop)이라고도 한다.

2. PDA의 역사

노트북 태블릿 PC 문서와 같이 보면 좋다.

2.1. 전자수첩 시기

최초의 전자수첩은 영국 Psion사의 사이언 오거나이저(1984)여다. 이 모델은 단색 LCD에 4KB 롬과 2KB 램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후 QWERTY 키보드를 달고 소형화된 PC의 외양을 처음으로 갖춘 모델은 아타리 포트폴리오(Atari Portolio)였다. 해당 모델은 Psion의 전직원에 의해 개발되어 아타리에 라이선스했다. 기술적으로는 16비트 IBM PC 호환기종을 소형화시킨 수준이었다. 터미네이터 2에서 존 코너가 ATM과 사이버다인사의 금고를 해킹할 때 쓴 컴퓨터가 이 모델이다. 이것은 MS-DOS를 구동하는 IBM PC 호환기종이라는 특성 상 랩톱(무릎 위에 올라가는 PC)[1]보다 작은 팜탑(손바닥 위에 올라가는 PC)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팜 컴퓨팅의 팜탑, 올리베티의 AA 배터리 사용 제품들, HP의 95LX, 200LX가 이 계열이다. 그 뒤를 잇는 HP 조나다 계열은 Windows CE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핸드헬드 PC(H/PC)/PDA로 취급된다.

일반적으로 PDA라고 부르는 것들은 터치스크린을 사용한 주머니에 들어갈 크기의 기기를 말한다. 이것의 시초는 Apple Newton MessagePad(1993)였다. PDA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이 1992년 Apple의 CEO 존 스컬리였기 때문이다. 그 해 1월 7일 CES에서 Newton MessagePad를 가리켜 지식 탐색기 PDA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다.

2.2. 초창기

그 이후 Microsoft가 1996년 후반 Windows CE 1.0을 개발하면서 1997년에 4MB 롬과 2MB 램을 갖춘 NEC Mobilepro 200, CASIO Cassiopeia A-10, HP 300LX 등의 핸드헬드 PC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PDA라는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1996년에 출시된 의 PDA, 파일럿 1000이다. 회사에서 자신의 제품을 PDA라고 부르는 곳은 팜 뿐이다. 때문에 지금도 PDA를 생각하면 이 용어를 처음 만든 Apple 따위는 기억의 막차에도 오르지 못하고 팜이 떠오르는 것은 이 이유이다.

팜의 초기 PDA들은 Windows CE 계열보다 기능이 훨씬 떨어지는(128KB 램을 주 저장소로 쓰며 모토로라 68000을 기반으로 한 저전력 프로세서인 모토로라 드래곤볼 프로세서 16MHz CPU를 사용하는 등) 하드웨어를 사용했지만 기기가 작아 휴대하기 편했고 배터리도 오래갔을 뿐 아니라,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었고 간단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팜이 MP3 재생도 안 되고 겨우 전자책이나 보고 있을 때 윈도 CE 계열은 놀랍게도 동영상까지 지원할 정도로 사양이 훨씬 뛰어났는데도 상술한 이유 때문에 팜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또 1997~2002년에는 핸드헬드 PC, 포켓 PC 등 서로 호환성이 없는 다양한 플랫폼이 출시되어 사용자를 환장하게 했던 점도 있었다.[2] 게다가 백업 배터리 문제도 Windows CE 계열 사용자들을 좌불안석으로 떨게 했다. Windows Mobile 2003 세컨드 에디션이 나오기 전에는 백업 배터리까지 전부 방전되면 모든 데이터가 소실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3][4] 이 문제는 Palm OS 계열 PDA도 마찬가지였으나 m100등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배터리 수명이 길어 어지간해서는 배터리를 완전히 잃기 전에 교체가 가능했고, 백업 배터리가 없는 기종은 내장 콘덴서로 배터리 교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이 배터리 방전 문제는 팜과 셀빅 시대 일반인이 PDA를 쓰기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단점이었다.[5]

HP 조나다 등의 포켓 PC는 요즈음 쓰는 PDA로 진화하였으며, 삼성 이지프로, NEC 시그마리온 등의 핸드헬드 PC는 도태되었다. 윈도 CE를 사용하는 삼성전자 넥시오 등의 모델도 도태되었다. 아직 중국 계열에는 저가형 넷북 대안으로 윈도 CE 6.0을 사용한 비슷한 솔루션이 출시되고 있긴 하다.

이 외에 리눅스를 사용하는 요피나 자우루스, 자체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셀빅 등도 있었지만 모두 도태되었다.[6] 이 쪽은 리눅스를 쓰는 장점으로, 그리고 비교적 후기에 나와서 무선랜과 프로그램 사용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웠다. 특히 요피는 당시 기준으로 몇 년 전 리눅스 x86하고 비슷한 식으로 쓸 수 있었다.

2.3. 전성기

2003년 Windows Mobile 2003이 출시된 시기에 팜이 경쟁력을 잃었다. BeOS 기반의 Palm OS 6 Cobalt는 출시가 무기한 연기되었으며, 발전이 너무 지연된 탓에 세계적으로 팜 사용자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Windows Mobile PDA인 컴팩 iPAQ이 PDA의 대세가 된 미국, 유럽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Windows Mobile PDA가 대세가 되었다. 하드웨어의 성능이 좋아져 상술한 휴대성이나 배터리 문제점들이 해결됐고, 인터페이스가 친숙하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7]

이 시기 PDA폰이 꾸준히 발매되기 시작하였다. 삼성전자는 SCH-M400(2004), SCH-M420(2005), SCH-M600(2006.1), SCH-M450(2006.10), SPH-M8100(2007.4), 블랙잭(2007.7), SPH-M4650(2007.11), SCH-M470(2008.3), 삼성 미라지(2008.4) 그리고 이후 삼성 옴니아 시리즈를 출시했다. HP는 LG OEM으로 iPAQ RW6100(2004.8)를 출시했고, LG전자는 LG-SC8000(2004.10), LG-KC8100(2006), LG-KC1(2007), 인사이트(2009), 레일라(2010)를 출시했다. 그외 싸이버뱅크 poz x501 같은 폰이 있었다.

팜은 UMPC가 돌아다니는 요즘 세상에 노트북 크기의 Windows Mobile PDA를 내놓았다가 주주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별다른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물론 Palm OS를 사용한 팜 센트로를 내놓기도 했다. CES2009에서는 팜 pre라는 스마트폰을 선보였으며 webOS를 탑재했다. 그리고는 2010년 HP가 팜을 인수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8]

2.4. 스마트폰 출시 이후

이거 안되면 스마트폰 아니잖아요[9] 이후 PDA(PDA폰)은 도태되었다.

2009년 6월 9일 (11월 28일 한국 수입) 아이폰 3GS과, 2010년 6월 24일 갤럭시S가 출시되면서 2011~2012년 사이부터 점점 안드로이드, 아이폰이 대중화되었다. 과거 PDA에만 있던 최첨단 기능들은 2011년 이후엔 '전 국민이 구매한 스마트폰에 당연히 되는 기능'이 되었다. 이 이후부터는 스마트폰/역사로 넘어간다.

스마트폰이 게임이나 멀티미디어에 특화된 것과 대비하여 PDA는 비즈니스용으로 명맥을 이어갈까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분야도 스마트폰으로 대체되었다. (이 분야의 끝판왕이었던 블랙베리도 쇠퇴하였다.)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업무용 PDA를 따로 지급하지 않고, 다들 갖고 있는 개인 스마트폰에 자사 앱을 설치하도록 지시하는 방식으로 대체하였다. 기존에 쓰던 PDA를 아직도 쓰고 있는 일부 기관을 제외하면 이제는 PDA를 지급하는 경우는 없다. 마지막까지 PDA가 사용되었던 곳은 산업용(공장용). 특히 우편/물류/택배 분야에서 오래 쓰였다. PDA가 딱히 이점이 있다기보다는 싸고, 재생제품을 만들기 용이하고, 충격에 강하고,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기 어려운 B2B 시장에다가, 제품 수명주기가 길어서 오래 쓰였던 듯 하다.

3. PDA의 특성

3.1. 개인용으로서의 PDA

요즘은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전화, MP3, 동영상 시청, GPS, 디지털 카메라, 스타일러스 메모, Microsoft Office 파일 열람, 이메일 열람, 이미지 편집, 전자사전, 텍스트 읽기, 음성 녹음, 슈퍼 패미컴(SFC) 및 게임보이 어드밴스(GBA) 에뮬레이터, 공학용 계산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휴대폰을 통해 음성 인식으로 전화를 걸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997년이었다. 4년 후인 2001년에는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16화음이 등장한다. 2002년에는 컬러 화면이 등장했다. 2003년에는 휴대폰에 카메라가 달리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나 DRM 걸린 파일에 한정되었고, 제조사 이어폰을 팔아 주기 위해 당시에도 일반적이었던 3.5mm 규격의 표준적인 이어폰을 쓰지 못하고 2.5mm 규격 제조사 자체 제작 이어폰만 써야 했다. 2009년 말에야 DRM 없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휴대폰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그 전에는 MP3 플레이어를 써야 했다. Wi-Fi나 MP3는 훨씬 빨리 일반인에게 제공될 수 있었으나 데이터 요금제 같은 이동통신사 수익을 위해 일부러 못 쓰게 막았다.

그 덕분에 한국의 이동통신사들이 Windows Mobile을 탑재한 날고 기는 외산 스마트폰을 가능한 한 도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 한국에 iPhone 3GS가 출시되었다.[10] 이후에도 구글 안드로이드가 시장의 반 이상을 잠식하기 전까지는 Windows Mobile 정도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대적할 자가 없었다.

여하튼 이런 이유 때문에 PDA를 사용하는 계층은 일부 얼리 어답터 및 지식 정보 기술에 밝은 일류 기업의 회사원들 뿐이었다.

당시 기술은 처참했다. 배터리 기술력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벽돌과 다름없는 무거운 기계를 들고 다녀야 했다. 기술력의 부족으로 비슷한 무게라 하더라도 배터리 용량이 절반밖에 안 되었다. 그리고 아직 저전력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모바일용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 기술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서 2010년 이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기능을 구동하는 동안 전력 소모가 극심했다. 사전을 찾고 책을 읽는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Wi-Fi 블루투스, 동영상, 전화 같은 걸 쓰면 정말 배터리가 눈 녹듯 사라졌다. 과거의 PDA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배터리 2개에, 건전지로 쓰는 간이 충전기에, 충전 케이블까지 두루두루 지참하고 다녀야 했다.

거기다가 Windows CE 4.0까지는 전원이 나가면 초기화된다! 그래서 주변 기기 장착을 위한 슬롯이 있는 경우에는 아에 그 공간에 배터리를 장착하는 개조를 하기도 했다. 구형 Palm OS 기기 같은 경우 한 번 충전지를 교체해서 주 단위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이는 해당 PDA들이 무선 전화 및 인터넷 기능도 없었고, 단색 LCD에 저전력이었지만 느린 CPU를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3.2. 기업용으로서의 PDA

개인용 휴대기기 시장에서는 망했을 지라도 기업용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인기가 많았다. PDA만의 장점 덕분이었다. 또한 위에 언급된 단점들은 기업들의 작업 환경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기업에서 필요하는 수준의 하드웨어 기능은 이미 기존 PDA 체계에 적용되어 있어 관련 제품을 쉽게 장착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은 새로 개발해야 할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바코드 스캐너, 열전사 프린터, 카드 결제 모듈와 같은 경우 스마트폰에 하드웨어 모듈을 붙이기에는 좀 규모가 큰 기능이었기 때문에 PDA로 해당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PDA 산업 자체가 쇠퇴하고, 저가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하면서 기존 기업용 PDA도 저가 스마트폰으로 대체되고 있다. 보안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업체라면 직원의 개인 스마트폰에 자사 앱을 설치하도록 지시하고, 보안에 신경쓰거나 각종 모듈을 부착해야 하는 업체는 저가 스마트폰을 구매-개조하여 지급한다. 기존 PDA 모듈을 생산하던 업체들도 스마트폰에 부착할 수 있는 모듈 및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부착하기엔 너무 커다랗다고 여겨졌던 카드 결제 리더, 프린터, 바코드 스캐너도 스마트폰에 부착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PDA 산업 자체가 스마트폰 산업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4. 관련 문서


[1] 데스크톱 랩톱 사이에 포터블 PC라는 분류도 있었다. 이것은 진짜 서류 가방 만하게 생겼거나 손잡이가 있어 옮기기 쉬운 디스플레이 일체형. 199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IBM PC 호환기종은 단색 디스플레이에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가 대중이었고 맥은 사무용 시장에선 맥을 추지 못 했고, PS/2는 비싸고 소프트웨어는 별개였기 때문에, 컬러 디스플레이와 인쇄기를 넣어 전문 사무 자동화 기기를 표방한 독자 기계가 여럿 나왔다. 그리고 노트북. 체급을 분류하는 다른 이름도 그랬듯이, "노트북"이란 말도 원래는 도시바 브랜드 이름이었다. [2] 사실 이건 포켓 PC 2002의 삽질이 매우 큰 역할을 했는데, 인텔의 새 모바일 CPU XScale를 포켓 PC 2002에서 사용하려면 오히려 StrongARM보다 더 나쁜 성능을 기록했다. 이 문제는 후속 운영 체제인 Windows Mobile 2003에서 해결되었다. [3] 특히 일반 PDA가 아닌 전화 기능이 결합된 모델의 경우엔 끔찍한 문제가 된다. 저장된 모든 연락처와 문자메시지가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자. [4] 이문제에 대해선 나름대로 대비책은 있었는데 저장된 전화번호는 PIMS에서 백업파일을 생성해서 SD카드에 저장후 다시금 램에다가 불러들이면된다 문자메세지도 PIMS를 이용해서 따로 백업해두어야한다. [5] 일례로 TOEIC 시험을 볼 때 배터리를 분리하고 시험을 보고나면, PDA가 초기화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6] 요피와 셀빅은 자체적으로 한국어를 지원했다. [7] 물론 예외도 있는데, 초고가 기종을 제외한 Palm OS PDA 중 조디악을 따라올 것은 없다. 동영상 가속 면에서는 LG전자 KC1보다도 훨씬 나은 화질을 보여준다. Palm OS라는 특성도 있고, ATI사의 그래픽 칩셋이 탑재되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8] HP가 필요한건 webOS였기 때문이다. [9] KT 아이폰 3GS에 대항하여 12월 런칭된 SKT 옴니아 II(2009.10출시)와의 비교광고이자 무리수. [10] iPhone 3GS는 그 당시로써는 세계 최고의 모바일 AP였던 삼성전자 허밍버드(엑시노스 3110)에서 메모리만 잘라내고 사용한 데다가 과거의 심비안급의 최적화를 보여주면서 그야말로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당시로써도 HTC HD2 정도를 제외하면 대적이 불가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