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셰그라드 그룹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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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셰그라드 그룹 | |
약칭 | V4 |
설립 | 1991년 2월 15일 |
회원국 |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4개국[1] |
의장국 | 체코 공화국(2019-2020) |
정책 연구소 | Think Vsegrad |
공식 사이트 | 홈페이지 |
SNS | |
언어별 명칭 | |
체코어 | Visegrádská skupina / Visegrádská čtyřka |
슬로바키아어 | Vyšehradská skupina / Vyšehradská štvorka |
폴란드어 | Grupa Wyszeradzka / Trójkąt Wyszeradzki |
헝가리어 | Visegrádi Együttműködés / visegrádi országok, visegrádi négy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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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4개국간의 지역협력기구. 이들 나라들은 독일어권을 제외한 중부유럽 지역 내 EU[2] 나라들이며 냉전 종결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도입의 체제전환을 경험하였다. 비셰그라드 4개국 또는 간단히 V4라고도 한다.[3] 비셰그라드 그룹 국가들은 2004년 EU에 가입한 이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유럽의 신흥공업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설립은 1991년 동유럽의 탈 공산주의화 진행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비셰그라드 국가들은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는 구별되는 중부유럽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웠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을 거치며 사장되었던 중부 유럽이라는 경제, 문화 권역을 부활시킴으로써 유럽 사회로의 복귀와 합류를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로, 비셰그라드 그룹의 설립으로 말미암아 중유럽이 실체를 가진 유효한 지역 구분으로 복귀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회원국들의 나토 및 유럽연합 가입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비셰그라드 그룹은 2004년 EU 가입 이후 기존의 경제, 정치 협력에서부터 대외 및 안보, 에너지 정책 등 협력분야를 다각화하는 확대과정을 거치면서 회원국 간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EU 내에서 비셰그라드 그룹은 회원국의 공동 관심사와 이익을 관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여러 사안에 있어 비셰그라드 국가들과 의견을 같이하는 다른 개별 국가 또는 베네룩스, 북유럽 협의회 및 발트3국 등 다른 지역협력기구와도 V4+[4]라는 다자간 협력이라는 형태로 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셰그라드 그룹은 EU 내의 새로운 주요 행위자로 부상하여 EU의 경제, 내무 및 대외 정책 결정에 상당한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 명칭 및 상징
비셰그라드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5]로 중세 중반에는 헝가리 왕국의 수도 이전지로 계획되기도 했다. 14세기 중반 1355년 비셰그라드에서는 중유럽 4개국의 국왕들인 헝가리-크로아티아의 카로이 1세, 보헤미아의 얀 루쳄부르스키, 폴란드의 카지미에시 3세가 회담을 가져 분쟁 해결과 통상 협력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 이는 독일왕으로 선출되어 신성 로마 제국과 동유럽에서 급격히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오스트리아 공국의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공동대응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이렇듯 비셰그라드는 3개국 협력의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장소였다. 이러한 연유로 중세 시대의 회담으로부터 630여년이 지난 1991년, 비셰그라드 그룹 3개국의 탈사회주의화와 새로운 지역협력의 논의장소로 선정되었다.
비셰그라드 그룹의 로고 |
3. 회원국
개별현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국 문서 참고자세한 내용은 체코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슬로바키아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헝가리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폴란드 문서 참고하십시오.
비셰그라드 그룹은 더이상 회원국 확대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신 V4+[6]라는 다자간 협력방식을 통해 유럽 역내외의 다른 개별 국가, 지역협력기구 등과 연대하고 있다.
비셰그라드 그룹 개황[7] | ||||
<rowcolor=white> 국가 |
체코 |
슬로바키아 |
헝가리 |
폴란드 |
수도 | 프라하 | 브라티슬라바 | 부다페스트 | 바르샤바 |
인구 | 1,063만명 | 549만명 | 985만명 | 3,852만명 |
면적 | 78,864km2 | 49,035km2 | 93,030km2 | 311,889km2 |
정부형태 | 의원내각제 | 의원내각제 | 의원내각제 | 이원집정부제 |
명목 GDP[1993년] | 406억$ | 165억$ | 401억$ | 960억$ |
명목 GDP[2016년] | 1950억$ | 898억$ | 1260억$ | 4,710억$ |
1인당 GDP[10] | 23,214$ | 20,155$ | 17,463$ | 14,902$ |
경제성장률 | 4.4% | 3.2% | 2.7% | 3.6% |
실업률 | 6.2% | 11.2% | 6.9% | 10.1% |
주요 산업 |
자동차 석유화학 |
자동차 및 부품 기계 |
서비스 제조 금융 |
서비스 기계 IT |
IMF 분류 | 선진국 | 선진국 | 개발도상국 | 개발도상국 |
World Bank에 의하면 1993년에서 2016년의 기간 동안 체코는 4.6배, 헝가리 3.2배, 폴란드 4.9배, 슬로바키아는 5.4배 성장했다. 같은 기간 EU 15개국[11]의 평균 GDP 성장은 약 2배 정도로 V4 국가들은 이를 상회하는 GDP 성장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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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셰그라드 그룹이 하나의 국가라면? |
비셰그라드 그룹 단일권역 개황 | |
면적 | 533,615km2 |
인구 | 63,845,789명[2019년] |
GDP(ppp) | 2조226억 $[13위][출처1] |
명목 GDP | 1조1180억 $[2019년][출처1] |
1인당 GDP | 17,511 $[2019년] |
면적과 인구는 스페인, 이탈리아보다 규모가 크며 프랑스[14]보다 약간 작은 수준이다. V4 4개국의 인구는 EU 총인구의 약 12.7%를 차지하고 있다. 명목 GDP의 합계는 멕시코,[15위][15] 인도네시아[16위][16] 네덜란드[17위][17]와 비슷한 수준이다.
2012년 기준 V4 GDP 총합은 EU 전체 GDP의 5.42%(9030억 달러)에 이른다. 1995년 GDP 비중인 약 2%에서 크게 증가하였다.
4. 역사
비셰그라드 그룹 설립 이후 V4의 협력 목표는 시기별로 상이했다. 크게 2004년 EU 가입과 이후로 구분이 가능하며 각 단계별로 협력 수준의 정도가 상이하다. 회원국 국내 정치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한때 존속 위기를 겪기도하였지만 오늘날까지도 EU내의 지역협력기구로 활동하고 있다.4.1. 주요 연표
주요연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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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white> 연도 | 내용 | 비고[18] | ||
1991-02-15 | *결성 | ||||
1991-12 | *크라쿠프 조약, 중부유럽FTA(CEFTA) 체결 | *FTA 체결로 V4 국가간 역내 경제교류 촉진[19] | |||
1992-12-31 | *체코슬로바키아 해체 |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정권 교체로 V4 협력이 난항을 격음 | |||
1994-01 | *프라하 NATO 정상회담 |
*평화동반자관계(PfP) 천명-V4의 기존 목표[20]와 정면 배치 *체코 총리 클라우스가 체코의 독자적 행보 강조 *1월7일 예정되어 있던 V4 국방장관 회담에 체코측 불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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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난 각료회담 | *체코측에서 V4와 CEFTA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21], V4의 협력,조율에서 나머지 국가들과 이견차 | ||||
1995-05 | *V4 국방장관 회담 | *종전까지 불참한 체코의 재참여, NATO 공동가입을 위한 논의 전개 | |||
1997-07-08 | *나토, 헝가리,체코 폴란드 초청 | 초청 직후 다섯차례에 걸쳐 3국[22] 대통령, 총리, 외무 및 국방장관 회담이 연이어 개최 | |||
1998 | *체코와 슬로바키아 정권 교체 |
*해당 국가에서 V4에 회의적인 정권이 호의적인 정권으로 교체 *비셰그라드 그룹의 협력 분야 확대[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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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 *브라티슬라바 회담 |
*슬로바키아의 V4복귀 나토에 가입한 V4국가들[24]이 슬로바키아의 NATO 및 EU 가입 협력의사 표명 *V4 협력의 공식화, 상설화[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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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 *비셰그라드 펀드(IVF[26]) 조성 |
*연간 800만 유로 규모 *민간수준의 협력 및 V4 홍보 목적 *실질적 역내 협력 사업 시행, 공동발전 추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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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슬로바키아 나토 멤버십 가입 | ||||
2004 |
*슬로바키아 나토 정식 가입 *V4국가들의 EU 가입 |
*V4의 1차적 목표 달성 *V4의 중부유럽FTA 탈퇴[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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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므네쥐즈[28] 정상회의 | *신-비셰그라드 선언[29] | ||||
2008-09 | * 대침체[30] | ||||
2008-10 | *헝가리 IMF에 구제금융 신청 | *251억 달러 규모, EU회원국 중 최초 사례 | |||
2009-01-01 | *슬로바키아 유로존 가입 | *V4중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 | |||
2009-04-14 | *폴란드 IMF에 구제금융 신청 | *200억 달러 규모 | |||
2011-02 | *V4 정상회의 |
*V4가 EU의 통합과 안정, 안보, 경제적 측면에서 기여할 것임을 천명 *EU 내에서 경제위기 절정, 유로존 유지가 불투명한 상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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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 | *V4 정상회의 | *국제관계에서 V4의 역할 강화, 중부유럽의 내적 결속력 강화 합의 | |||
2014 | * 우크라이나 사태 | ||||
2016-06 | * 브렉시트 |
4.2. 1기:비셰그라드 선언과 설립(1991~1998)
1989년 독일의 통일과 더불어 동구권이 해체되었다. 동유럽 혁명 직후 해당 국가들에서는 공산정권이 붕괴하거나 실각했고 당원의 수가 감소하여 영향력을 상실했다.여기에 1989년 12월 지중해 몰타에서 미 소 양국 정상이 공식으로 냉전의 종언을 선언함[31]에 따라 동구권 국가들은 서둘러 탈공산주의와 체제전환을 진행했다. 1990년 4월 브라티슬라바에서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의 중부 유럽 3개국은 정상회의를 통해 동유럽 국가 간의 협력 필요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비셰그라드 선언문 조인식[32] |
3국 정상들은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 이후 안보의 진공 상태에 놓인 구동구권에서 V4의 지역협력이 회원국과 더 나아가 유럽 전체의 안보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셰그라드 그룹이 설립 초기 내세운 주요 목표는 탈사회주의와 서구권 합류, 즉 EU 가입라는 두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비셰그라드 그룹이 창립 초기에 당면한 단기 목표는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던 소비에트 체제인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코메콘[33]의 완전한 해체를 비롯한 사회주의, 전체주의 잔재의 청산이었다. 특히 정권을 잡은 해당 국가들의 시민단체와 민주화 인사들은 사회주의 체재 하에서부터 서로 교류와 협력을 해왔기 때문에 사회주의 잔재 청산에 서로 협조하였다. 이는 비셰그라드 그룹 설립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V4에서는 탈사회주의화와 의회민주주의, 시장경제 도입과 같은 체제전환이 동유럽의 다른 체제 전환국들에 비해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구 소련 구성국들은 소련 해체 과정에서 쿠데타를 비롯하여 극심한 혼란을 겪었고 서부 발칸의 구 유고 연방 구성국이나 루마니아의 경우는 내전이나 혁명과 같은 심각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러한 이유로 V4를 제외한 유럽의 다른 탈사회주의 국가들은 체제붕괴의 여파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고 이를 극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정치적으로도 탈공산주의적 권위주의[34]으로 이행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의 경우는 70년대 이후부터 공산체제 하에서부터 지속적인 개혁정치가 조심스레 추진되었고 동구권 붕괴 이후 시민사회가 신속하게 활성화되었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일당독재체제는 시민사회를 근절시켜 자발성을 박탈하고 개별 시민을 감시, 통제해야 존속할 수 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의 경우는 사회주의 체재하에서 탄압을 받으면서도 이미 시민사회나 민주화운동세력이 어느 정도 활성화[35] 되어있는 상태였다.
폴란드의 경우는 바웬사에 의해 사회주의 국가 최초의 자유노조가 설립되어 사회 각계각층[36]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왔다. 1981년에 공산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유노조를 불법화시켜 탄압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노조는 지지를 받고 있었고 1988년에는 공산정권으로부터 불완전하지만 자유선거 실시를 이끌어내어 선거에서 압승하였다.
헝가리는 반소혁명 이후 1968년 카다르의 실용주의적 경제정책인 신경제메커니즘을 통해 제한적인 시장경제 요소가 도입되었다. 이는 시민사회의 각성과 조직화에 기여했다. 특히 80년대 이후 경기가 후퇴하자 공산정권 내의 개혁파가 실권을 잡게되었고 1989년 2월에는 헝가리의 사회주의 집권당인 헝가리사회노동당이 완전한 자유선거에 합의했다.[37]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우는 프라하의 봄사건 이후 공산정권이 체제개혁 시도를 체재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완강히 거부해왔다. 하지만 본디 역사적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시민사회의 전통이 강했고 77헌장과 같은 인권운동과 사미즈다트 활동이 존재했다. 77헌장의 경우는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지식인과 청년계층 위주로 국한되어 동유럽 혁명 이전까지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면서 노동자와 대중이 77헌장의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고 개혁과 자유선거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공산정권은 소련의 지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과 타협에 나섰고 12월 말 77헌장의 지도자인 하벨은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38]
이렇듯 중동부유럽 3개국에서는 공산정권 붕괴 이후 종전부터 활동하던 시민사회가 즉각적으로 부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V4 국가들에서는 정체가 공산주의적 권위주의로부터 다원주의로 진행되었다. 이는 다른 탈사회주의국가들과 달리 V4 국가들에 민주화가 비교적 순조롭게 이행되는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4.2.1. 체코슬로바키아 해체와 존속위기
탈사회주의라는 당면목표가 달성되고 1992년 12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해체가 결정되었다. 문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이후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은 비셰그라드 협력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V4의 협력 동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체코의 클라우스 총리는 V4는 가난한 개발도상국 모임에 불과하며 다른 국가들에 비해 가장 발전하고 산업화되어 있는 체코에게 어울리지 않다는 체코 우월주의를 견지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V4 협력이 체코의 EU 가입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1994년 1월 프라하 NATO 정상회담에서는 평화동반자관계(PfP)가 천명되었다. 이는 V4의 기존 목표인 NATO 가입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에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는 V4 그룹의 협력과 조율을 강조했지만, 체코는 V4협력이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여겼고 1월7일에 예정되어있던 V4 국방장관 회담에 불참을 선언했다. 더구나 체코는 비셰그라드 그룹의 협력이 경제교류관계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부유럽FTA가 체결되자 체코는 V4가 더이상 불필요하다고 선언했다.
한편 슬로바키아의 메치아르(V. Meciar) 총리는 V4 협력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적이었고 친러시아적인 인사였다. 메치아르는 굳이 서구권의 이해에 슬로바키아가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슬로바키아는 점차 서구권과의 거리가 멀어져갔다. 결국 메치아르 집권시기에 슬로바키아는 EU가입과 NATO 확장 논의에서 배제됐다.
이에 따라 비셰그라드 그룹은 점차 해체 수순을 밟는 듯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회원국 정부간 관계는 계속 유지됐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비셰그라드 협력의 부활과 EU,나토 가입에 개별적인 접근보다는 하나의 단위로써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1995년 5월 비셰그라드 국방장관 회담에는 체코가 복귀하여 NATO 공동가입을 위한 논의가 재개되었다. 1997년에는 슬로바키아를 제외한 비셰그라드 그룹 3개국은 NATO의 공식 초청을 받았다.
4.3. 2기:협력강화와 EU가입(1998~2004)
1998년 체코와 슬로바키아 총선 결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기존의 V4에 회의적인 정권이 호의적인 정권으로 교체됨에 따라 비셰그라드 그룹의 협력이 다시 활기를 띄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메치아르를 대신한 슬로바키아의 새로운 지도부를 신뢰하여 슬로바키아는 EU와 나토 가입 대상 지위를 회복했다. 이 시기 이후의 V4는 EU와 나토 가입을 진행하면서 가입과정에서 뒤쳐진 슬로바키아를 위해 정보, 경험 공유를 중시했다.동시에 정부간 협력에 머물렀던 V4 협력이 민간/사회 영역으로 확장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민간영역에서의 협력을 보완하고 협력사업을 실행할 목적으로 비셰그라드 펀드(IVF)가 설립됐다. 비셰그라드 펀드는 각국 정부에서 분리된 독립조직이자 독자적인 재정운용을 보장받은 상설 기구로써 시민사회 활동과 함께 각종 프로젝트[39] 지원을 통해 V4를 비롯한 유럽 각국 대중들에게 V4 협력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개별국가의 국내정치 상황의 변화가 V4 협력에 미치는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V4 고위급 회담이 정례화되어 비셰그라드 그룹의 협력이 공식화되었다.[40][41]
1999년 브라티슬라바 회담에서 이미 나토에 가입한 상태였던 V4 정상들은 슬로바키아의 복귀를 환영하며 슬로바키아의 나토 가입과 EU가입에 적극 협력할 것을 밝혔다. 이 회담에서 V4 국가들은 다른 동구권 국가와 차별성을 강조하며 NATO와 EU 가입을 공동의 목표로 내세웠다.
4.4. EU 가입 이후(2004~ )
유럽 연합은 1995년 이후 더이상 추가 회원국이 없었지만 2000년대 이후 구 동구권으로의 확장을 결정했다. 2004년에는 V4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이에 따라 비셰그라드 그룹 설립 당시 설정했던 목표가 모두 달성되었다.EU 가입이라는 최대목표를 달성한 이후 다시 4개국 협력의 동력이 약화되었다. 비셰그라드 그룹의 존치여부와 향후 활동방향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목적을 달성했으니 V4를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EU 내에서 V4협력을 지속시키는데 합의하였고 V4는 새로운 목표 설정과 함께 지속되었다.
2004년 5월 크로메르지시(Kroměříž) 정상회의에서 4개국 총리는 신-비셰그라드 선언을 발표하여 V4의 새로운 협력 방안을 설정했다. 이 선언문에서는 EU와 나토 회원국으로서 V4의 위상과 역할 증대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며 '중부유럽 정체성'을 구축하여 이를 바탕으로 EU내에서 지역협력의 지속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4개국은 V4 협력의 핵심 의제로 EU-동유럽 관계개선을 제시하였다.
경제적으로는 EU 가입 이후 V4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유럽 시장에 대한 수출기지로 각광받으면서 외국인의 자본투자가 크게 증가하였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의 행보는 이하 문단 참고.
5. 경제
개별현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국 문서 참고자세한 내용은 체코/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슬로바키아/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헝가리/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폴란드/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V4 국가들은 체제전환 이후 첫 10년 간은 경제적 혼란을 겪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는 경제가 침체되었으나 시장경제가 자리잡고 EU 가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경제는 점차 활기를 되찾아갔다.
V4의 경제는 EU 가입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EU에 가입함에 따라 V4는 유럽의 공동경제권에 편입하였고 독일을 비롯한 EU를 배후지로 둔 수출생산기지로 각광받아 다국적 기업과 외국자본의 투자가 크게 늘었다. 여기에 V4는 EU로부터 대규모 구조기금을 수여받았다. 이를 사회주의 시절 낙후된 인프라 개선에 활용하여 투자 유치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었다.
체제전환 이전에는 V4의 주요 교역대상국은 코메콘을 통한 동구권 국가들이었지만 EU 가입을 기점으로 주요 교역 대상국은 독일을 비롯한 EU의 서유럽 국가들로 바뀌었다.
V4의 경제발전 과정은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왔으나 국가 별로 산업구조와 주력산업, 경제발전과정 및 정책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회원국간 세부적인 경제상황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V4는 지리적 인접성과 더불어 전반적인 경제 발전 전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동질적인 시장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V4는 공통적으로 체제전환 이래 EU 가입을 기점으로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다른 동구권 체제전환국에 비해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할 수 있다.
특히 시장경제가 성공적으로 도입되면서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한 점이 두드러진다. V4는 체제전환 이후 20년간 제조업 중심의 교역과 투자유치를 통해 성장해왔다. 특히 자동차 관련 산업을 집중 육성함으로써 '유럽의 공장'으로 부상하였다.
V4의 교역대상국은 EU를 비롯하여 특히 독일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2008년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유럽 시장의 경기가 침체되자 V4 국가들이 직격탄를 맞았다는 점이다. V4 국가들은 미국 및 동아시아 등 EU 역외 지역과의 교역규모를 늘림으로써 교역대상국을 분산시키고 있다.
산업 구조 면에서는 과도한 제조업 의존도를 개선하는 다각화가 진행 중이다. V4국가들의 노동비용이 상승하고 다른 동유럽 국가들인 러시아와 세르비아 등 대안 투자처가 등장함에 따라 V4의 제조업 투자 조건이 악화됐다. 2008년 이후에는 V4에 대규모 제조업 투자 유치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V4는 고부가가치 산업과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 육성으로 발전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5.1. 외국인직접투자
FDI 유입이 유입국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아직까지도 주요한 논쟁거리로 널리 수용되는 일반 이론은 없다. 다만, 시장경제를 도입한 체제전환국인 V4에의 경우 축적된 국내자본이 빈약했기 때문에 FDI 유입이 생산성 증가 및 GDP 성장, 고용률 증가 및 R&D 분야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외국자본과 기업의 FDI 및 현지 생산기지 구축에 미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중 V4가 가지는 우위요인은 먼저 유럽 중심부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점으로 EU 내 최대 시장인 독일과 서유럽을 러시아, 동유럽과 잇고 있다. 따라서 제조업 및 물류산업 발전에 유리한 입지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V4 연대를 통해 EU 가입 이후 구조기금 수여를 통해 경제 발전과 산업 인프라를 정비하여 투자유치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됐다. 마지막으로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노동시장이다.
V4의 시간당 노동비용은 EU평균의 약 32-44% 수준이며 최저임금에서는 프랑스의 27~30% 수준[42] 미만에 불과하다. 낮은 노동임금은 제조업 상품의 비용절감에 유리하다. 이러한 여건과 더불어 V4 각국 정부는 FDI를 자국에 유치하기위해 적극적인 투자혜택정책을 시행하여 FDI 유입을 촉진시켰다. [43]
V4의 EU가입이 확정되자 상술한 입지조건에 EU 공동시장에 편입되었다는 이점이 더해져 2004년 이후 FDI 유입이 크게 증가했다. V4에 유입되고 있는 FDI는 주로 서유럽 선진국[44]의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1990년대 시장경제 도입과 체제전환 이래 V4 각 구성국들에서 FDI 유입은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체제전환 초기의 증가추세, 그리고 2004년 EU 가입 이후부터 2008-2009년 세계경제위기 도래 직전까지 FDI 유입 실적은 최고점에 이르렀다.
유럽재정위기 이후에는 FDI 유입이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2014년 무렵 재정위기가 어느정도 진정되고 다소간 회복세로 다시 전환하였다.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유입되는 FDI의 내용은 종전과 달리 변화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제조업 분야 FDI가 줄어들고 서비스를 비롯한 3차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EU 가입 이전부터 V4 각국 정부는 FDI 유입을 위해 다양한 투자혜택 정책을 시행하였다. V4의 FDI 유입과 효과는 대체로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각국별로 정책의 차이, 경제-산업구조의 특성에 따라 FDI 유입의 구체적인 현황과 각국에 미친 영향에서 몇 가지 특징점을 찾아볼 수 있다.
폴란드의 경우 2010년까지 FDI 유입 누계에서 다른 V4 3개 국가보다 월등하다. 제조업 분야가 여전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서비스 업종의 유입 비중이 제조업을 점차 능가해가고 있다. 2009년 FDI 유입실적에서 서비스 부문이 전체의 65%, 제조업 부문은 32%를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금융서비스가 19%, 유통서비스가 16% 통신업을 비롯한 기타 비즈니스 서비스가 10%로 뒤를 잇고 있다. 이는 외국계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가 폴란드의 금융과 소매유통업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45]
이는 폴란드에 유입되는 FDI가 수출생산기지를 위한 설비투자 뿐 아니라 폴란드의 내수시장 역시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2000년대 후반 이후로 FDI 유형은 주로 인수합병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체코 및 슬로바키아의 경우 1998년 이전까지는 자국내 FDI 유치에 소극적이었고 체제전환 이후 10년 가량 FDI 유치실적이 헝가리나 폴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하지만 양국에서 정권교체 이후 투자혜택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외국인에 대한 투자시장을 본격적으로 개방한 2000년대 이후 초기의 부진을 크게 만회하였다.
양국 모두 FDI 유입이 크게 증가하였고 2012년 통계에 의하면 1인당 FDI 금액은 체코 1만3천달러, 슬로바키아 1만달러로 헝가리 7천400달러, 폴란드 5처600달러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산업 투자가 크게 늘어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1인당 자동차 생산량이 각각 세계 2위와 1위에 달하고 있다.
성공적인 FDI 유치에 힘입어 양국 모두 빠르게 서구권[46]의 경제 수준과의 차이를 좁혀나가고 있다.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경우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13-14년 이내에 EU 평균 수준의 경제력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체코와 슬로바키아 둘다 국제신용평가기관에서 안정적인 신용상태를 유지하고있기 때문에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로 평가받고 있다.
체코 역시 유입 FDI 구성에 있어 2007년 이전까지 유입된 FDI는 자동차 산업을 포함한 기계, 장비분야 등 제조업 투자의 비중이 높았다. 이는 외국 기업들이 유럽시장을 목표로 생산기지를 위한 제조업 투자가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2007년 이후부터는 금융 및 IT를 비롯한 첨단 서비스 분야에 FDI가 집중되고 있다. 체코 정부와 투자청은 2008년경부터 추진해 온 고부가가치 산업투자유치를 비롯한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의 결과로 평가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또한 체코와 마찬가지로 투자시장개방 이후 FDI가 급증했다. 유입 FDI를 업종별로 보면 서비스업보다는 제조업 비중이 높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자동차 산업, 기계류 업종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밖에 슬로바키아는 2009년에 V4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유로존에 가입하였다.
유로화를 통용함에 따라 슬로바키아는 유로존 내 교역과 투자유치 등에 있어 추가적인 비용 발생을 상당부분 줄였고 경제위기 이후에도 투자처로 각광받으며 폴란드와 함께 V4 경제성장의 선두그룹을 이루고 있다.
헝가리는 다른 V4보다 먼저 민영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한 국가로 EU 가입 이전에는 V4 중 FDI 유치분야의 선두권 국가였다. 2000년대 초 이후 체코와 슬로바키아 등 다른 경쟁국이 FDI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다른 3개국에 비해 유입 규모가 갈수록 뒤쳐지고 있다.
투자유치 업종을 보면 역시 제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그 비중이 서비스 부문의 증가추세와 달리 줄어들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다양한 업종에 걸쳐 외국계기업이 헝가리 경제에 차지하는 역할이 상당하다.
다른 V4 국가들이나 신규 EU 가입국과 비교하여도 헝가리는 GDP 대비 FDI 비중이 가장 높은 편이다. 외국계 기업은 헝가리 내 비즈니스 R&D의 80%, 수출의 약 80%, 총부가가치의 약 50%를 담당한다. 사실상 헝가리 상위 10대 수출기업의 대부분을 외국계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5.1.1. 경제위기 이후 FDI 구성 변화
대략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FDI 유입에서 업종별 비중이 변화하고 있다. V4 각국 정부는 제조업 분야의 투자혜택 정책을 축소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유입되는 FDI도 제조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첨단기술, 금융 및 유통을 비롯한 서비스업, R&D에 대한 투자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47]이는 제조업에 대한 과중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각국 정부의 의중이 실린결과로 평가받고 있다. V4 내부적으로도 경제체질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유럽 제조업 시장 또한 포화 상태이기도 하다. 여기에 러시아, 세르비아 등 경쟁국이 등장함으로써 V4의 제조업 분야 투자 유치 경쟁력은 약화되고 있다.[48]
따라서 V4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제조업 FDI 유치는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V4 각국에서 새로운 분야의 FDI 유치 노력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5.2. 자동차 산업
체제전환과 EU 가입을 거치면서 V4는 경제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 자동차 산업분야이다.2004년 이후 유럽에 소재한 다국적 자동차 기업들이 서유럽에서 V4로 생산지를 이전하는 양상을 보이며 EU의 산업구조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V4에서는 다국적 기업에 의한 자동차 생산이 크게 증가한데 반해 기존 주요 자동차 생산국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자동차 생산이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2016년 중동부 유럽 국가별 자동차 기업 진출 현황 |
EU 회원 가입 이전에는 체코 정도를 제외하면 V4 국가들의 자동차 산업은 빈약했다. 체코는 19세기 말부터 자동차산업이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지녀 관련 제반산업과 전문인력이 잘 갖춰졌고 스코다와 같은 우수한 자동차 기업을 배출하기도 했다. 다른 V4 국가들은 자동차 산업이 존재해도 소련제 차량을 면허 생산하는 수준에 그쳤다.
EU 회원 가입 이후 V4의 자동차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2009년 기준으로 V4의 자동차산업의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은 폴란드 6.2%, 헝가리 10%, 체코 7.4%, 슬로바키아 23%에 이른다. 같은 기간 자동차 수출규모가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폴란드 18.5%, 헝가리 20%, 체코 15%, 슬로바키아 30%를 기록했다.
이들 국가들에는 피아트, 르노, 현대-기아차, GM, PSA, 토요타, 폭스바겐 등의 자동차 기업들이 진출하여 생산공장을 운영중이다. 또한 V4는 인접한 자동차 생산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와 함께 자동차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협력하고 있다.
V4 국가들에서 자동차 생산이 크게 증가했지만 이 역시 회원국 별 편차가 존재한다. 이 중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자동차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두 국가는 2012년에 각각 117만대와 9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이는 1인당 자동차 생산량으로는 세계 1,2위에 해당한다.[49]
2012년의 생산량을 체제전환 초기인 1995년의 생산량과 비교해보면 체코는 37만 대를 생산하여 2012년에는 생산 규모가 3배로 이상 증가했고 슬로바키아는 12만 대를 생산하여 2012년에는 생산 규모가 7배로 증가했다.
슬로바키아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 산업에서 양적인 생산이 크게 늘었다면 체코는 오랜 자동차 산업 역사로 축적된 기술과 자체적인 R&D 역량을 보유하여 질적인 면에서 V4의 자동차 공업을 주도하고 있다 할 수 있다.
5.3. 유로존
현재 유럽연합 가입국 27개국 중 20개국이 유로존에 참여하고 있다. 비유로존 국가 9개국은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 스웨덴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인 체코,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있다. 북유럽과 더불어 비셰그라드 그룹은 EU내 주요 비유로존 국가로 V4 중에서 슬로바키아만이 2009년 1월을 기점으로 유로존을 도입했다.비셰그라드 그룹이 유로존 통화정책에 중요한 이유는 첫째로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은 북유럽 국가와는 달리 비셰그라드 그룹은 중진국 내지는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EU 국가 중 솅겐 조약 서명국[50]들과는 다르게 V4 국가에서는 EU 시장 내에서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략) 상품 및 서비스 생산시장 자체가 비유로존을 포괄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들은 공동화폐를 사용하지 않지만 자본과 노동의 이동의 자유로운 지역으로 닫힌 통화동맹이 누려야할 편익을 나눠 가진다.[발췌1]
(전략)... 이러한 까닭에 그렇지 않아도 환율할인을 선택할 수 없는 유로존 내 위기 국가들은 고통스런 과정에 직면하게 되나 이러한 과정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하겠다.[발췌1]
달리 말하자면 V4를 비롯한 비유로존 국가들이 EU의 경제통합에는 참여하면서도 비유로존에 남아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수혜[53]를 누리고 있으며 EU 내에 유로존과 비유로존 국가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 EU의 경제 침체 극복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5년에는 유로존 위기가 최악의 시기를 지나 어느정도 안정세를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하지만 수출 무역 규모를 보면 독일[54]을 비롯하여 네덜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소폭의 흑자/성장에 그쳤다. 즉 유로존 내 소규모 경제권 국가들은 수출시장에서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V4는 수출무역규모에서 체코 8.4%, 헝가리 6.8%, 폴란드가 7.8%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이러한 원인은 EU 시장의 전체적인 침체에도 불구하고 비유로존인 V4 국가들은 정부의 주도적인 통화정책을 이용할 수 있는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도 2012년 말부터 헝가리와 폴란드는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고 있다.
헝가리의 경우는 2012년 8월, 2년 6개월 만의 첫 기준금리 인하 조치가 이루어진 이래 13개월 연속 매달 0.25%씩 연속 인하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시행했다. 2013년 7월에는 금리가 3.8%까지 내려갔다. 이는 민주화 이후 헝가리 사상 최저 수준이다. #
폴란드 역시 2012년 11월 4.75%였던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하하여 2013년 7월에는 역시 사상 최저치인 2.5%까지 금리를 인하했다. #
물론 당시 유로존 통화정책을 관리하는 유럽중앙은행에서도 금리를 조정하여 종전의 0.75%에서 0.25%를 조정했다. 그러나 유로존 자체가 원래 저금리 지역[55]이라 이러한 금리조정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 경제권 내에 유로존 국가와 비유로존 국가가 상존하는 상황 때문에 유럽연합의 경기침체가 극복이 지연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통화동맹인 유로존의 존속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기에 슬로바키아를 제외한 V4의 책임이 상당히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V4를 비롯한 비유로존 국가들이 통화동맹에 합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지만, 유로화 도입은 초기에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V4 국가들은 원래 유로존 가입을 긍정적으로 추진했으나 EU의 경제침체가 만연해지고 있기 때문에 V4를 비롯한 비유로존 국가들이 통화동맹에 가입할 가능성이 더더욱 요원한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는 특히 이 나라들의 정치적 우경화를 부추긴 상황이다. 동유럽이 그렇듯이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제 성장 시기도, 속도도 매우 늦었다. 그나마 체코 정도가 공업국이기는 했지만 독일 등과 비교하면 부족한 면이 많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일원이자 소련, 동독에 인접해 각종 공산품을 공급하던 소련의 공장 역할을 했고, 소련 붕괴 후에는 미국, 한국, 일본, 대만 등 EU 역외 제조업 강국들의 유럽 수출기지로, EU 가입 후에는 EU의 공장역할을 하던 지역으로,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에만 크게 의존하던 경제구조를 바꾸지 못하고 쇠락 중이다.
거기에 2014년 이후 터진 시리아 난민 무차별 유입문제로 자국에 난민이 몰려오는 공포와 자기들이 서유럽에서 준난민 혹은 2등시민취급을 받아왔다는 의식이 반난민, 반EU를 부추겨 우파 혹은 극우 정권[56]이 득세하게 되었다. 이 나라들은 EU 어딜가도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57]받았고, 그 때문에 소비력도 떨어져 EU 내 지위가 당분간 개선되기도 어렵다.[58]
6. 기타
- 비셰그라드 그룹에 속하는 동유럽 나라들은 한국과 경제적으로 상당히 엮여 있으면서 투자도 많이 받는 밀접한 국가들이다. 주변국인 일본과 동남아시아, 중국과 아프리카가 경제적으로 투자가 밀접하듯이, 한국의 경우 동유럽과 중앙아시아가 그러한 포지션이다.[59] 기본적으로는 동유럽 국가들은 한국의 글로벌 기업의 유럽 부문의 생산 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 한국과 비셰그라드 그룹의 전기차배터리 협력 체계가 더욱 공고해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비셰그라드 그룹과의 공동 연구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 #
- 비셰그라드 그룹 중 폴란드와 체코는 중립국감독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한 적이 있다. 두 나라 모두 북한이 지정한 나라였는데, 폴란드는 북한이 추방한 이후 한국의 도움으로 형식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체코는 북한이 거부하여 복귀를 못하고 있다.
- 고속철도 문서에 나오듯 회원국을 잇는 국제노선을 추진하고 있다. 참고로 폴란드와 체코는 이미 운영하고 있다.
- 2010년대 이후 네 나라들에서 권위주의, 포퓰리즘, 반EU 성향의 정치인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나마 체코는 밀로시 제만의 퇴임 이후 포퓰리즘 노선이 약해졌지만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는 여전히 포퓰리즘이 건재하며 민주주의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러시아와 역사적 악연이 깊은 폴란드를 제외하면[60] 전부 친러 성향인지라 EU에서도 대차게 까이고 있다.
7. 참고자료
- "중부유럽 4개국의 경제산업구조 변화와 입지 경쟁력 분석", 전략지역심층연구 14-07
8. 관련 문서
[1]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 슬로바키아로 분리되며 회원국 지위를 계승하여 3개국에서 4개국이 되었다.
[2]
냉전 시기에는
동유럽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다.
[3]
The Visegrad Group (also known as the "Visegrad Four" or simply "V4")
[4]
비셰그라드 플러스로 읽는다. 플러스 뒤에 협력국가/지역의 이름을 붙여 V4+이베리아, V4+베네룩스 등으로 부른다. 유럽 지역 국가와만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서 V4+한국 등의 용례로도 사용한다.
[5]
슬라브어 어원의 지명으로 '위쪽에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원래 슬라브어이기 때문에
체코나
슬로바키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이르기까지 주변 슬라브 국가들에도 비슷한 지명이 있다.
헝가리 왕국 자체가
마자르족이
판노니아 분지를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하여 이미 살고 있던 슬라브족 등 이민족을 동화한 것이기 때문에 헝가리에는 슬라브어 어원의 지명이 많다.
[6]
비셰그라드 플러스라 읽는다.
[7]
2015년 현재
[1993년]
[2016년]
[10]
IMF 2019 통계
[11]
창립 이후 1995년 사이에 가입한 15개국
[출처1]
IMF 2019년도 4월 통계치
[출처1]
[14]
면적 55만km2, 인구 약 6천500만명
[15]
1조 2741억$, IMF 2019년 통계
[16]
1조1117억$, IMF 2019년 통계
[17]
9023억$, IMF 2019년 통계
[18]
편의상 비셰그라드 그룹이 V4라 불리지 않은 시기도 V4라 호칭하고 있음
[19]
중부유럽 FTA는 2004년 V4가, 2007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EU에 가입한 이후 해당국가들이 탈퇴하였다. 이후에는 서부발칸의 구 유고연방 구성국과 알바니아만이 가입하여 유명무실해졌다.
[20]
NATO가입
[21]
사실상 비셰그라드의 존속을 거부한 셈이다.
[22]
슬로바키아 제외
[23]
외교,내무,교육,문화,사회 방면 등등
[24]
슬로바키아를 제외한 폴란드, 체코, 헝가리
[25]
연례 정기 회담과 각료 협력 공식화, 순회 의장국 제도 설립
[26]
International Visegrad Fund
[27]
경제교류부문이 EU가입과 중복되었다는 판단에서 진행되었다.. V4 그룹이 탈퇴함에 따라 CEFTA는 유명무실화되었다.
[28]
Kromeriz,체코
[29]
EU 내에서 V4의 위상과 역할 증대 방안 제시, 협력강화와 지속 강조
[30]
V4 국가들은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타격을 입어 한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겪었다. 역설적으로 이는 V4 국가들이 유럽시장과 세계경제체제에 안착했다는 반증이라는 평가도 있다.
[31]
1989년의 선언은 어디까지나 냉전의 종전을 '선언'한 것이지, 냉전이 완전히 종식된 건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된 이후이다.
[32]
좌에서 우로 체코슬로바키아의 하벨, 헝가리의 언털, 폴란드의 바웬사
[33]
공산주의 국가간 경제원조상호회의
[34]
Post-Communist Authoritarianism
[35]
정확히는 재활성화
[36]
대중, 교회, 노동자, 지식인
[37]
이로 인해 헝가리의 혁명을 협상혁명(Negotiated revolution)이라고도 부른다.
[38]
고르바초프는 이미 동독의 체제붕괴와 독일의 재통일을 사실상 용인한 상황이었다.
[39]
교육, 예술/문화, 과학 등
[40]
총리 및 외무장관 연례회담 2차례 이상, 관련 장관회담 및 대사, 대통령, 의회대표단 회담의 보장과 비셰그라드 코디네이터 임명 등
[41]
어디까지나 정부각료간의 비공식적이었던 협력이 공식화된 것이지, 비셰그라드 그룹의 제도적 지위가 강화된 것은 아님에 유의
[42]
물론 프랑스는 세금을 왕창 떼어가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반면 V4의 GDP 대비 정부지출은 EU 내에서도 낮은 편이다.
[43]
여담으로 다른 동유럽 국가들은 이보다 노동비용이 더 낮다. 대신 러시아 정도를 제외하면 산업 기반은 V4가 더 잘 갖춰져있어 V4는 노동인력의 수준이 양호하다.
[44]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45]
폴란드 유통서비스 분야의 상위 5대 기업이 외국계 기업이고 금융서비스 분야 5대 기업 중 4개가 역시 외국계 기업이다. 폴란드 최대 통신사인 텔레코뮤니카치야 폴스카 역시 프랑스의 텔레콤 프랑스를 모기업으로 두고 있다.
[46]
EU 15개국, 2004년 이전 EU 가입국
[47]
물론 과거에 비해 의존도를 줄이려하고 있다고는 해도 제조업은 여전히 V4의 수출에 중요한 분야이고 투자인센티브가 줄었다고는 해도 대규모 제조업 FDI가 전보다는 줄어들었어도 아예 단절되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제위기 이후에도 타이어나 엔진을 생산하는 한국 자동차관련 기업들이 V4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48]
주로 인건비 상승 문제로 인해
[49]
체코 112대, 슬로바키아 167대
[50]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발췌1]
"유로존 위기를 통해 본 이중 속도 유럽에 관한 논의", 유럽연구,제34권 3호(2016년 가을) pp.218
[발췌1]
[53]
통화정책을 개별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점 등
[54]
6.5% 성장
[55]
디플레이션 방지 목적
[56]
친러,
친중 극우 정치인인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가 이 때 득세한 것이다.
[57]
그렇지만 이들이
영국처럼 탈퇴하기 힘든 이유는 경제 규모도 크지 않지만
EU 회원국이라는 이유로
서유럽 국가들의 자본에 의존한 것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이 탈퇴하다가는
EU 회원국이라는 이유로 얻은 혜택들이 사라지고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쌓아놓은 자본도 많고 이들보다 산업 구조가 탄탄하며
무역통화를 보유한
영국도 브렉시트 이후
경제가 녹록지는 않지만, 이들이 탈퇴하다가는
그리스 경제위기보다 더 심한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58]
브렉시트의 원인은
영국이
EU 소속
서유럽 국가들보다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왕국들에 더 가까운
국제관에 기반한 것도 맞지만,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동유럽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인한 것이 크다. 영국의 노동자 계급들은 동유럽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앗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짜로 나간
2021년 세계 물류 대란에 영국을 비롯한
EU 전체에 심각한 물류난을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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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은 이렇게 딱 잘라 떨어지지는 않고, 그 외 국가들도 나름 영향력은 있다. 한국도 동남아/아프리카 국가에 많은 이권을 확보 중이며 일본도 동유럽에 어느정도 이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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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보수 성향일수록
반러 성향이 강하며 강력한
친미 정책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