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閔 升 鎬 暗 殺 事 件1875년에 조선의 수도 한성에서 민씨 척족의 수장인 민승호가 암살된 사건. 기록상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벌어진 폭탄 테러로 인한 암살 사건이자 미제사건이다. 현대의 우편폭탄과 매우 유사하지만 우정총국이 생기기도 전이라서 전근대적인 방식인 인편으로 배달되었다.
2. 상세
민승호는 본래 민치구[1]의 아들이며 그의 누이는 여흥부대부인으로 흥선대원군의 부인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민승호는 대원군에게는 처남이 되는 셈이다. 이후 당시 이미 고인이 된 민치록의 양아들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민치록의 딸이 바로 명성황후다. 그런데 이 양자 입적은 사실 명성황후 때문이었다. 비록 이미 정치적인 이유로 고종의 왕비로 명성황후가 내정되어 있기는 했으나 형식상의 간택에는 나가야 했는데 아버지 민치록을 여의어 보호자가 될 남자 혈육이 없어서 그녀의 보호자 명목으로 뒤늦게 민승호가 양자로 입적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입적을 통해 민승호는 고종의 외숙부에 그치던 위치에서 명성 황후의 오빠 / 고종의 처남 / 순종의 외숙부가 되었다.그래서인지 민승호는 과거에 급제한 후 승진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었으며 명성황후가 왕비가 되면서 이조 참의, 호조 참판을 거쳐 판서에까지 직위가 올랐다. 고종은 대원군에 맞서서 민씨 척족을 자신의 친위 세력으로 삼았는데 민승호는 명성황후의 오빠라는 위치인지라 민씨 척족의 수장이 될 수 있었고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후에는 사실상 정권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그러나 민승호의 천하는 오래가지 못했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뒤인 1875년 1월 5일[2] 민승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승려에게 지방의 한 수령이 바치는 것이라면서 특이하게 생긴 상자를 전해받았다. 승려는 "이 상자 안에는 복이 들어있으니 바깥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하도록 꼭 안에서 열어보십시오."라고 당부하고 떠났고, 이런 식으로 민승호에게 뇌물을 바치는 사람은 전부터 많았기 때문에 민승호는 딱히 수상하게 여기지 않고[3] 귀한 보물이라도 들었나 하는 생각으로 혼자 방 안에서 상자를 열었는데...
방이 통째로 날아갈 정도의 대 폭발이 일어났다. 이때 근처에 있던 민승호의 양어머니이자 명성황후의 친모인 감고당 한산 이씨와 민승호의 아들이 함께 사망했다. 폭발에 직격당한 민승호는 온몸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죽어가면서 운현궁 쪽을 두세 번 가리켰다고 한다.
3. 기묘한 사건 조사
민씨 척족의 수장과 왕비의 어머니가 숨지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하자 조정은 물론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지만 그런 것치고는 고종의 태도는 상당히 미적지근했다. 고종실록에서도 이 엄청난 테러 사건을 범상한 사건처럼 취급하기 때문에 상당한 의혹을 안겨주었다.세간의 이목은 대원군에게로 쏠렸다. 민승호가 죽어가면서 말도 못한 채 운현궁 쪽을 가리켰다는 건 사건의 배후로 대원군을 지목한 셈이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도 없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그해 봄 민승호의 집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사건이 발생했으며 민승호가 암살되고 나서 얼마 후에 흥인군[4]의 집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민승호와 흥인군은 모두 대원군과 가까웠던 사이였으나 대원군의 실각 과정에서 고종의 편에 섰고 대원군은 이들이 자신을 배신했다 여겨서 이런 사건들을 일으켜 죽이려 한게 아니냐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고종은 대원군을 수사하거나 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흥인군의 집 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한 장씨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대원군과 가까운 신철균이라는 사람의 문객이었다.
같은 해인 1875년 다시 흥인군의 집에서 화재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고종은 다시금 사건의 범인으로 장씨를 체포했으며 그 배후로 신철균도 잡아들였다. 장씨는 민승호 암살과 흥인군 집 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처형되었지만 신철균은 조정의 고위직을 지냈던 데다 뚜렷한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방면되었다. 그러나 신철균은 1876년에 화적떼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 체포되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신철균의 장모가 "내가 점을 쳐보니 모월 모일에 흥인군 집에 불이 날 것이다"라고 말했고 진짜로 장모가 말한 그 날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결국 신철균은 민승호 테러와 흥인군의 집에 두번 방화를 했다는 혐의로 능지처참에 처해졌으며 삼족이 멸족당하는 결말을 맞이하는 걸로 사건은 일단락지어졌다.
4. 사건의 배후는 흥선대원군인가
사건의 범인으로 신철균이 책임을 지고 능지처참을 당했으나 객관적으로 신철균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신철균은 직접적으로 폭탄 테러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관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로 죄를 받아 처형된 것이었다. 신철균이 죽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장모의 흥인군 집 화재 예언의 경우도, 과연 그런 말이 있었는지의 여부조차 정확하지 않다.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사건의 진짜 배후는 대원군일 가능성이 있다.
- 1. 민승호의 집에 처음 불이 난 시점은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던 시점이었는데 민승호는 이때 고종의 편에 서서 흥선대원군과 대적했다. 대원군의 입장에서는 부인의 친동생인 민승호가 자신을 배신한 걸로 여겨 괘씸했을 것이고 며느리인 명성황후가 민승호의 뒤에 있다고 여겨 민승호를 더욱 증오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마찬가지로 대원군과 적대하던 흥인군의 집에 두 번이나 화재가 일어난 건 대원군의 격노로 인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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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원군은 고성능 폭탄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 극소수의 인물이었다. 현재야 인터넷이나 공학, 화학서적만 잘 찾아보면 시판 물품들만으로도 얼마든지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시대지만, 전근대시기였던 당시에는 도처에 화학물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시설도 없었고, 폭탄과 공학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도 매우 드물었다. 당시 사회에서 폭탄 테러라는 사건 자체가 매우 희귀했던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끽해야 독약을 제조해서[5] 암살을 시도하는 정도지 이렇게 위력적인 규모의 폭탄을 만들어 테러에 사용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대원군은 집권 기간 서양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갖가지 신무기 개발에 열중했다. 특히 청나라에서 들여온 해국도지는 큰 역할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개발된 폭탄이 바로 '수뢰포(水雷砲)'였다. 신헌의 주도로 개발된 이 수뢰포의 위력은 작은 배 한 척을 박살내고 물기둥이 크게 솟구칠 정도의 위력이었다. 이 정도 위력의 폭탄을 만들 기술이라면 대원군의 배경 하에서 충분히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 있는 폭탄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수뢰포까지 안 가더라도 애초에 대원군은 10년 가까이 섭정을 하며 사실상 '조선의 군주' 역할을 도맡아 했으므로 화약 정돈 충분히 동원할 능력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건 당시 민승호에게 뇌물을 위장한 폭탄을 전달한 사람이 방 안에서 열어볼 것을 권했다는 것은 폐쇄된 공간에서 폭발의 위력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당시가 막 개항을 시작한 시점이라 외국에서 폭탄을 들여올 수도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 정도의 고성능 폭탄을 만들고 동원할 수 있는 건 대원군 정도의 배경이 아니면 안 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대원군이 이런 테러를 지시했다면 과연 얻는 실익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민승호와 흥인군을 제거한다고 해서 곧바로 대원군이 다시 권좌에 복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원군 주도설에서 조금 물러서, 대원군의 수하들이 대원군 실각에 분노해 민승호와 흥인군에 대한 테러를 모의하고 실행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설령 수하들이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대원군이 최소한 이 사건을 알고도 묵인했을 개연성도 있다.
고종은 민승호와 명성황후의 모친까지 살해된 이 사건으로 충분히 대원군을 범인으로 지목해 공격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대원군 추종 세력의 반란을 우려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대원군은 내버려두고 대원군의 이전 측근이자 가까운 인사인 신철균을 배후로 지목해서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는 대원군에게 더 이상의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는 고종의 경고 메시지였다는 추측도 있다.
5. 이모저모
당시 외국 대사들도 "명성황후의 친오라버니[6]를 흥선대원군이 죽였다"고 알고 있었다.1892년에 운현궁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는데 명성황후의 보복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후에 대종교 측에서 을사오적을 암살하고자 폭탄을 보냈으나 바로 민승호가 이렇게 죽은 걸 기억해 폭탄이 든 상자를 꺼내지 않아 실패한 바 있다.
6. 미디어에서
한국사상 전대미문의 폭탄 테러 암살 사건임에도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다. 그래도 한국 사극에서 다루기는 많이 다뤘다.1990년에 방영됐던 MBC 조선왕조 오백년 시즌 11 '대원군'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1996년에 방영됐던 찬란한 여명 37회 후반에서 이 사건을 다뤘는데 스님 역을 박용식이 맡았다.
2001년에 방영됐던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에서 38~39화의 주요 사건으로 다뤘다. 38화에서는 마지막 장면 때 역사대로 민승호가 상자를 열자마자[7] 집이 폭발하고 민승호는 즉사했으며 그 곁에 있던 중전의 친정어머니인 감고당 한산 이씨는 중상을 입는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살아와 어머니를 각별히 생각하고 있던 명성황후( 이미연 분)는 사고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다. 그러나 이씨는 폭발 때문에 사지 일부가 절단되고 심한 화상을 입어서 말 그대로 즉사만 면한 중한 상태였기 때문에 불려온 의원들과 간호하던 사람들도 보고 고개를 저을 지경이었다. 결국 이씨는 그날 밤을 못 넘기고 딸의 곁에서 임종을 맞으며 어머니마저 잃은 명성황후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해당 사건과 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명성 황후( 수애 분)의 모습이 나온다.
MBC에서 방영한 수사 드라마 별순검(시즌3 9화)에서 이 사건이 간접적인 배경으로 등장한다. 본문에 나온 장씨가 처형된 뒤 그의 아들이 장씨의 동료들에게 원한을 품고 폭탄 테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웹툰 왕 그리고 황제에서는 고종에 빙의한 태종이 민승호를 체포하려 군사를 보냈을 때 폭탄이 터져 사상자가 더 늘어났으며 대원군이 배후로 나온다.
2019년 10월 1일자 천일야사에서도 조선 최초 폭탄테러 사건이라는 주제로 다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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