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26 10:59:31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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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
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 일제강점기 및 미군정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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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서울特別市長
Mayor of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현직 <colbgcolor=#ffffff,#1f2023> 오세훈 / 제33·34·38·39대 (민선 4· 5· 7· 8기)
취임일 2021년 4월 8일
정당


1. 개요2. 특수성
2.1. 가장 강력한 독이 든 성배2.2. 서울특별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3. 법적 권한4. 상세5. 주요 인물6. 역대 시장 목록
6.1. 판한성부사6.2. 한성판윤6.3. 경성부윤6.4. 역대 서울특별자유시장6.5. 역대 서울특별시장
6.5.1. 관선 1차6.5.2. 민선 1차6.5.3. 관선 2차6.5.4. 민선 2차
7. 역대 선거 결과8. 역대 정당별 전적9. 역대 후보별 순위10. 창작물에서의 서울시장11. 관련 문서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 시장이다. 임기는 4년이며, 최대 3선까지 연임할 수 있다.[1] 중임에는 제한이 없으므로, 중간에 낙선하거나 중도 퇴임한 기록이 있으면 연속 재임 기록이 중단되고, 이후 다시 출마할 수 있다.[2]

2. 특수성

서울특별시 인구 규모만큼이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과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크며, 정치적 비중도 아주 크다.[3] 다른 광역자치단체 수장들이 차관급으로 대우받는 데 비하여, 서울특별시장은 유일하게 장관급으로 대우받는다.[4] 이는 조선시대에도 비슷했는데, 관찰사(지금의 도지사) 등은 참판(차관)급(종2품) 대우를 받았지만 한성부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은 판서(장관)급(정2품) 대우를 받았다.[5]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가 된 특성상 경성부윤이라고 불렸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경기도 인구가 서울특별시를 추월하기는 했지만, 서울특별시장의 위상이나 특별대우는 달라지지 않는다. 서울특별시장은 '수도의 시장'으로서 정치적 영향력 외에도 지방자치법 상 특례를 인정받아 지방자치법과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일부 특례를 적용받지만, 경기도지사는 다른 도지사와 같이 지방자치법만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다른 광역지자체의 경우 지방채 발행이나 자치사무의 감사를 행안부장관이 하지만 서울시는 행안부장관이 국무총리에게 보고해야 한다. 또한 국가공무원의 임용 및 징계 등은 해당 주무부처 장관에게 있으나 대통령령에 정하는 범위 내에서는 서울특별시장이 행사할 수 있다.[6]

다만 장관급의 대우를 받는다고 해서 명목상 서열까지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보다 높은 건 아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서울특별시장이라고 특별히 권한이 더 크지도 않으며, 발언권도 똑같이 받는다.

서울특별시가 설립하고 운영 중인 서울시립대학교의 운영위원장을 당연직으로 맡고있다. 이 운영위원장을 이사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서울시립대학교는 아직 법인화가 되지 않았으므로 이사장은 잘못된 표기이다.

2.1. 가장 강력한 독이 든 성배

특이하게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은 그걸 끝으로 아예 정계를 떠나거나, 정치생활을 연명하더라도 상승세가 확 꺾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보이는데, 다음은 그 목록이다. 위첨자 표시된 숫자(2, 3 등)는 서울시장 선거 순위이다. 당선자들 역시 고건 전 시장 이후로 계속 끝이 안 좋다.
선거 낙선자 비고
1
('95)
박찬종2 <colbgcolor=#ffffff,#1f2023>계속된 낙선 후 정계 은퇴
정원식3 낙선 후 정계 은퇴, 참패 여파로 김대중의 정계 복귀
2
('98)
최병렬2 노무현 탄핵 소추 제출 후 가결, 이후 정계 은퇴
3
('02)
김민석2 지선 패배 후 정몽준 캠프 이적, 이후 새천년민주당 복당, 원내 복귀까지 18년 소요[7]
4
('06)
강금실2 18대 총선 불출마 선언, 사실상 정계 은퇴
박주선3 이후 광주 동구로 지역구 옮김, 본인의 소속 정당인 민생당의 몰락과 3위 낙선
5
('10)
한명숙2 이후 민주통합당 대표 역임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참패, 불법정치자금수수혐의로 복역, 사실상 정계 은퇴
노회찬3 이후 정의당 원내대표, 2018년 드루킹 금품수수 관련 수사중 투신 자살
지상욱4 본인의 소속 정당인 자유선진당의 몰락, 새누리당으로 흡수 합당[8], 21대 총선에서 낙선
'11 나경원2 1억 피부과 의혹, 이후 동작 을 보궐선거 승리로 3선 의원으로 재기 성공, 연이어 4선 성공 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내다가 21대 총선에서 낙선, 2021년 재보선 서울시장 경선 패배,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패배
6
('14)
정몽준2 버스비 70원, 정몽주니어 미개 논란, 정계 은퇴
7
('18)
김문수2 강성 친박으로 전향[9], 박근혜 석방 집회 참석과 전광훈과의 커넥션으로 인한 비호감 이미지 고착화와 사실상 제도권 정계에서의 축출
안철수3 막스 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로 연수 후 정계 복귀, 차기 대선 지지율 급락[10]
'21 박영선2 정치적 입지 좁아짐[11]
8
('22)
송영길2 정치적 입지 좁아짐[12] #

다만 위에서 거론된 사례들을 비교해 보면 각 낙선자의 사례간에 차이가 커서 일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고, 특이한 징크스라기보다는 그냥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직위 자체의 특수성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일단 서울특별시장 자체가 선출직 공무원 중에서는 수도이자 인구 천만 명 도시의 특수성 때문에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정치적 위상이 높은 자리[13]이고, 정치적으로도 대선을 비롯한 주요 선거마다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표밭으로 여겨지는 서울(수도권)의 지지를 얻어야 당선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수도권 거주자는 서울시장이 누군지 알지만, 수도권 거주자는 충청도나 전라도, 강원도 쪽 도지사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정작 (민선)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에 이른 인물은 이명박 딱 한 명뿐인데, 이는 6공 이후 한국의 정치 제도 특징상 서울시장은 국내의 선출직 공무원 중에서는 사실상 2인자로서 소통령이라고 불릴 정도지만 실제 업무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중앙 정계와는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 이르는 정치적 경력을 착착 밟아나가고 있는 유력 대권후보급 주요 정치인의 입장에서 보면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 서울시장에 도전하기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등 중앙 정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더 매력적이고 안정적인 선택지로 여겨질 가능성도 충분히 높은 것.

실제로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한 주요 정치인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성공적인 경력(대표적으로 국회의원 당선)을 이어가고 있는 도중 서울시장선거에 도전한 사례보다는[14], 일시적인 정치 활동 중단이나 낙선 등으로 인해 기존 경력이 중단된 상태에서 다시 정치 무대에 복귀하기 위한 토대로써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역대 서울시장 중 가장 성공적인 정치적 경력인 대통령을 거친 이명박의 경우를 보더라도 15대 총선 당시의 불법 선거 운동으로 의원직을 상실 당할 위기에 쳐하자 자진 사퇴한 후 결국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가 사면 복권된 후 서울시장 도전으로 정계 복귀를 시도한 뒤 성공한 케이스다. 16대 국회의원이었던 오세훈 시장 역시 17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계와 거리를 두고 있다가,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에 복귀한 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케이스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은 그것을 끝으로 정치를 떠나거나 정치 생활을 연명하더라도 상승세가 확 꺾이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서울시장 자체가 선출직 공무원 중 사실상 2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정치인이 정치적 상승세를 보이려면 대권주자급이 되어야 한다. 즉 서울시장 후보급에서 경력이 상승할 길[15] 자체가 워낙 좁으니 그 좁은 길로 들어가지 못하면 상승세가 확 꺾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서울시장 후보급 경력의 정치인 정도면 이미 정치 경력 자체가 상당히 긴 원로급 정치인일 가능성이 높고, 나이 역시 적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 선거에서 패배하면 재기와 재도전을 하지 못하고 정계 은퇴 수순을 밟게 되더라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장인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정치인 중 중앙 정계에서의 경력이 단절되어 지방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하려는 이들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도 생각하면 정계 복귀에 실패하면 정치적 은퇴 수순을 밟게 되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닌 셈.

뿐만 아니라 이명박 이후 서울시장을 거친 이들은 어째 말년이 안 좋다. 이명박 전 시장의 경우 임기를 무사히 마쳤고 대통령까지 당선되었으나 각종 범죄 사실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다. 오세훈 시장은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2기 임기 시작 1년 만에 사임했다가 서울시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10년을 야인으로 지내야 했으며, 박원순 전 시장은 여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피고소된 후 자살했다.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를 한 초대 민선 시장 조순 전 시장을 제외하면 초선 기준으로는 모두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이명박, 고건 전 시장을 제외하면 재선까지 포함했을 때 임기를 무사히 마치지 못했다.

2.2. 서울특별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1987년 민주화 이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서울특별시장 선거는 총 9번을 진행하였다. 지방선거 7번, 재보선 2번.

서울은 자치구가 25개 있는데, 25개 자치구 중 9번의 서울시장 선거를 정확히 예측한 100% 적중 지역, 즉 구 개표 결과 1위와 서울특별시장 당선자가 일치한 지역은 딱 4개 구가 있다.나머지 지역은 거의 대부분 2010년 지선에서 한명숙 후보를 더 많이 지지하여 떨어졌다.
서울특별시장 선거 적중지역 결과
연도 당선자 중구 영등포구 양천구 강동구
1995년 조순
(42.4%)
조순
(44.1%)
조순
(41.7%)
조순
(41.8%)
조순
(39.8%)
1998년 고건
(53.5%)
고건
(54.9%)
고건
(53.9%)
고건
(54.5%)
고건
(52.1%)
2002년 이명박
(52.3%)
이명박
(50.1%)
이명박
(52.6%)
이명박
(50.9%)
이명박
(55.1%)
2006년 오세훈
(61.1%)
오세훈
(59.6%)
오세훈
(61.5%)
오세훈
(60.8%)
오세훈
(64.6%)
2010년 오세훈
(47.4%)
오세훈
(47.6%)
오세훈
(47.5%)
오세훈
(47.5%)
오세훈
(50.0%)
2011년 박원순
(53.4%)
박원순
(52.0%)
박원순
(53.6%)
박원순
(53.5%)
박원순
(51.6%)
2014년 박원순
(56.1%)
박원순
(55.3%)
박원순
(56.3%)
박원순
(57.6%)
박원순
(54.5%)
2018년 박원순
(52.8%)
박원순
(52.3%)
박원순
(52.1%)
박원순
(53.2%)
박원순
(52.7%)
2021년 오세훈
(57.5%)
오세훈
(56.8%)
오세훈
(58.4%)
오세훈
(57.5%)
오세훈
(59.2%)
2022년 오세훈
(59.0%)
오세훈
(58.4%)
오세훈
(60.0%)
오세훈
(58.7%)
오세훈
(60.5%)

중구와 영등포구는 대표적인 상업지구로 지역 주민보다 외지인들이 더 많은 곳이고, 목동이 있는 양천구와 둔촌동이 있는 강동구는 주거지역이다. 중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3곳 모두 한강 이남에 있다. 서울시장 선거와 득표율까지 가장 가까이 맞히는 지역은 바로 영등포구. 그러다가 2006년 이후로는 2010년, 2014년을 제외하면 양천구가 더 전체 득표율에 가깝게 맞춘다. 특히 2021년의 경우에는 소수점 단위까지 일치하여 득표율까지 동률이 되었다. 아래는 서울 전체 득표율과 해당 구의 득표율 차이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득표율 차이(%p) 2006 2010 2011 2014 2018 2021 2022
영등포구 0.4 0.1 0.2 0.2 0.7 0.9 1.0
양천구 0.3 0.1 0.1 1.5 0.4 0.0 0.3

3. 법적 권한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제4조(일반행정 운영상의 특례)
⑤ 서울특별시 소속 국가공무원의 임용 등에 관한 「국가공무원법」 제32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 제78조제1항ㆍ제4항 및 제82조에 따른 소속 장관 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권한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서울특별시장이 행사하며,[16] 이와 관련된 행정소송의 피고는 같은 법 제16조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된다. <개정 2011. 5. 30.>
⑦ 서울특별시 소속 공무원 등에 대한 서훈(敍勳)의 추천은 「상훈법」 제5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장이 한다. <개정 2011. 5. 30.>
국무회의 규정
제7조(대리 출석) 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에 출석하지 못할 때에는 각 부의 차관(행정안전부의 재난안전관리사무에 관하여는 이를 담당하는 본부장을 포함한다)이 대리하여 출석한다.
② 대리 출석한 차관은 관계 의안에 관하여 발언할 수 있으나 표결에는 참가할 수 없다.
제8조(배석 등) 국무회의에는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 국가보훈처장, 인사혁신처장, 법제처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금융위원회위원장,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통상교섭본부장 및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 다만,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을 배석하게 할 수 있다.
②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인 청(廳)의 장으로 하여금 소관 사무와 관련하여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하게 하거나 관계 전문가를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서울시장은 국무회의에 배석할 권리 혹은 의무(과거)가 있다. 이는 대한민국 출범 후 노무현 정부 시기를 제외하고 서울시장에게 주어진 의무 혹은 권리였다. 단 노무현 정부는 서울시장(당시 32대 한나라당 이명박, 33대 한나라당 오세훈)을 국무회의 참여를 금지했다.[17]

4. 상세

임명직 시장 시절부터 현행 선출직 시장까지 국무회의에도 참석이 가능하며, 발언권은 있지만 의결권은 없다. 실제로 박원순 전 시장도 의결권이 없다는 것을 발언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국무회의에서 발언권과 표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무위원들은 모두 국무회의 부의장의 제청에 따라 국무회의 의장이 임명한 자들이고 그 외의 다른 배석 인원들은 모두 국무회의 의장이 직접 임명한 자들이다. 또한 모든 국무회의 안건들은 의장이나 부의장, 그리고 국무위원들에 의해서 제의되기 때문에 국무회의를 이끄는 주류에 반대 입장을 내는 참석자는 야당 소속 서울특별시장 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씩 반대 의견이 나오면 이런 이유에서다.

장면 내각 시절에는 민선 서울시장도 각의(현재의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다. 이때 민선 서울시장이 김상돈 한 명뿐이고 임기도 몇 달 못 갔다는게 함정이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지방자치제도가 폐지되고 난 관선제 시절에는 당연히 서울시장도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고, 1995년에 민선 서울시장이 들어오면서 다시 권리로 약화된 것이다. 그래도 초대 민선 시장인 조순 전 시장과 2대 민선 시장인 고건 전 시장은 다른 일정이 없는 한 화요일 정례 국무회의에 매주 참석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이 되면서 정무부시장을 대타로 보내는 등 조금씩 출석율이 떨어졌다. 그 후 오세훈 시장(2006-2011) 때는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회의 모두에 꽤 자주 참석했다. 3개월에 1회는 정례적으로 참석(보통 예산 문제다)하고, 보통은 정무부시장을 배석시켰다. 그러나 박원순 전 시장 들어서 정무부시장도 보내지 않아 국무회의 참석율이 10% 아래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지금은 정말로 예산시즌 아니면 아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찾아가질 않지만 정권이 교체되었고, 오세훈 시장은 이전부터 국무회의에 잘 참석했으므로 추이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규정은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이지 배석할 수 있다아니다. 즉 현재까지도 서울시장은 의무적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해야하는 존재이다. 서울시장한테 출석 의무를 달아놓은 규정은 2008년 2월 29일에 생겼다. 이렇게 대통령령 개정으로 서울시장에게 국무회의 출석 의무를 지워놓은 인물은 바로 서울시장 출신 이명박이다.

여하간 정치적 위치와 상징성 때문에 서울특별시장은 사실상 차기 대권주자로 보내기에 딱 좋은 위치이어서 뭇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정치에 관심 많은 전국의 시민들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도 다음 차기 대선후보를 점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라서 그런 것이다. 이 테크가 아니어도 전·현직 시장이 가지는 정치적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전/현직 서울특별시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정치계에선 당연한 일로 자리를 잡았다. 아래 주요 서울특별시장만 봐도 한국 정치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윤보선,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지낸 뒤에 대통령이 되었고, 허정 고건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특이한 점으로 서울시장 출신 총리는 허정, 고건 둘밖에 없어서 서울시장 출신 총리 =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것이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전임시장(이원종)의 경질 이후, 후임 시장에 취임했던 우명규는 취임하자마자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그러나 성수대교 건설 당시 서울시 건설부시장으로서 실무 총책임자였다는 게 밝혀져 근 열흘 만에 자진사퇴[18] 하고 최병렬이 시장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최병렬 시장도 퇴임 전날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 조순 시장은 취임식하자마자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서 상황을 살피고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역대 최연소 서울시장은 경성부윤 취임 당시 39세였던 김형민 초대 시장이며 그 다음은 40세였던 김현옥 제14대 시장이다.

시장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된다. 위치는 혜화동에서 삼청동 공관촌 인근인 가회동 서울재동초등학교 인근으로 이전하였다. 기존의 공관은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로 리모델링되었다.

참고로 민선 구청장 및 시의원 출신은 아직 없는게 특징이다. 구청장 출신은 시장은 물론 주요 정당의 시장 후보로조차 선출되는 일이 없다시피한데, 구청장의 권한이 동급인 자치시장보다 확연히 적고 반대로 서울특별시장은 동격인 광역시장이나 도지사에 비해서도 위상이 높다 보니 구청장 정도로는 서울시장을 노리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시내의 구청장만 해도 25명이나 되다 보니 서울 전체에서 단 1명뿐인 서울특별시장을 노리기에는 정치적 관심도나 언론 노출 빈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시의원은 시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7대 권수정 시의원이 유일하게 출마하였다.

호남 출향민 비중이 높은 서울로 비록 초대 서울시장이 호남 출신이지만 민선 서울시장 중 호남 출신은 아직까지는 고건[19] 한 명뿐이다. 다만 호남 출향민들을 의식해서인지 박원순 시장은 임기 중 서울 부시장 3인을 호남 출신으로 기용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20] 또한 역대 민선 서울시장 중 위의 고건의 경우를 제외하면, 순수 서울 출신은 오세훈 한 명 뿐이다.

역대 서울시장 선거에서 적중률 100%의 승패 판독기 역할을 한 자치구는 중구, 양천구, 영등포구, 강동구다. # 이 4개의 자치구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2021년 재보궐선거까지 각 선거의 서울시장 당선자들이 모두 승리한 지역이다. 다시말해 해당 지역에서 승리한 후보들은 모두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는 의미다. 이 중에서 특히 양천구 영등포구는 각 후보의 해당 지역에서의 득표율과 서울 전체 득표율이 비슷하게 나온 적이 많아 서울시장 선거 때 특히 주목을 받는다. #

그 외에도 송파구가 서울시장 선거의 판독기 역할을 했는데, 이는 송파구의 인구가 많은 것도 있지만[21] 다른 지역에서 인구가 많이 유입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접전 끝에 패배한 한명숙은 25개 지역구 가운데 17곳에서 승리하고도 오세훈에 패배했는데 오세훈이 승리한 지역 8곳 중 하나가 송파구였다. # 하지만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당시에는 당선자인 박원순이 아닌 나경원이 송파구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적중률 100%의 족집게 지역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재보궐선거를 제외한 정식 선거에서의 승자는 모두 맞혔기 때문에, 위의 4개 자치구와 함께 족집게 지역으로 종종 거론된다.

5. 주요 인물

  • 김형민: 초대 시장. 시작은 경성부윤이었다가 서울특별자유시장으로 직함명이 바뀌었다. 후임자가 대통령까지 해서 워낙 유명해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묻혔으나 우남시가 될 뻔한 현 서울시 지명을 지켜내었고 그 외 다수의 일제 잔재 지명을 바꾸는 데에 기여한 인물이다.
  • 허정: 제8대 시장. 4.19 혁명 후 수석국무위원 겸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겸 외무부장관으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과도내각의 수반이 되었다.
  • 김상돈: 제11대 시장, 최초의 민선 서울특별시장이다. 그러나 취임 1년도 안되어 5.16 군사정변으로 시정이 붕괴됐다.
  • 김현옥: 제14대 시장.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제12대 경상남도 부산시장에 임명되었으며 부산시를 직할시로 승격시키고자 부산과 중앙을 새벽 열차로 왕래하면서 직할시 승격 필요성을 역설한 끝에 중앙의 승인을 획득하여 직할시 승격에 성공하고[22] 첫 직할시장(대수로는 13대)이 되었다가 몇 년 뒤 이 자리로 이임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의 원조가 되는 인물로, 파리의 오스만 시장에 버금가는 서울 대개조 사업을 벌였다. 이는 비단 서울시장 시절뿐만 아니라 부산시장 재임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60년대 말 서울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판잣집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개발 정책을 주도했고, 서울전차 폐선[23] 서울 지하철 기본 계획 수립도 이 사람이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를 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너무 개발 정책에만 목을 맨 나머지 대형 참사를 일으키고 사임하였다. 나중에 내무부장관으로 영전한다.
  • 염보현: 제20대 시장.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 출신이다. 재임 기간 서울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했고, 한강종합개발을 추진했으며,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개장, 목동신시가지 건설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경희궁, 보라매, 종묘공원, 석촌호수 공원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도 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은 실질적으로 염보현의 공적이라 보는 사람이 많다. 부임 중에 이규동 대한노인회장 등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과 연루된 비리로 인해 1988년 구속되었다.
  • 박세직: 제23대 시장. 1990년 12월 임명되었으나 2달도 못 되어 수서 비리 사건으로 경질되었다.
  • 조순: 제30대 시장. 최초이자 6공 이전의 유일한 민선 서울시장이었던 제11대 김상돈 전 시장( 2공)의 뒤를 잇는 민선 서울시장인 동시에 6공 최초의 민선 서울시장이다. 안타깝게도 시장에 당선된지 2일 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시장에 취임식도 대폭 축소하여 간소하게 치르고 바로 사고 현장부터 가서 상황을 살핌으로써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하였다.
  • 이명박: 제32대 시장. 재임기간 동안 청계천 복원, 서울광장 개장, 서울 대중교통 체계 개선 등의 성과가 크게 부각되어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 오세훈: 제33·34·38·39대 시장.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민선 시장이다. 뚜렷한 행정 성과, 반듯한 이미지와 외모로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됐지만 재선 때 승리 아닌 승리를 거두며[26]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로 사임하였다. 그러나 중도 사임 후 10년 간의 공백기를 보낸 뒤 2021년 재보궐선거로 서울시장에 다시 당선되어 박원순에 이은 헌정사상 두 번째 3선 서울시장이 되었고, 2021년 4월 8일 제38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취임하여 시정을 이끌고 있다. 2022년 6월 2일, 헌정 사상 최초의 민선 4선 광역자치단체장, 최초의 4선 서울특별시장 자리에 올랐다.
  • 박원순: 제35-37대 시장. 위의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로 열린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그 이후 재선에 성공하였다. 첫 출마 당시 아름다운가게 참여연대 설립에 참여한 인권변호사 이력에 비해 인지도가 높지 못해 5% 정도의 인기 없는 후보였으나 안철수 후보의 양보 및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하여 극적으로 시장에 당선되었다. 2011년 10월에 취임하여[27] 2014년 재선에 성공하였고 재선 임기 3년차에 들어서면서 조선 건국 이래 최장기간을 재임하는 서울의 책임자(한성판윤과 경성부윤 포함)였으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연속 3선에 성공한 서울시장이다. 그러나 재임 중 여비서를 성추행한 사건으로 피고소된 후 2020년 7월 9일 밤 북악산 부근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자세한 것은 박원순 성추행 사건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을 참고.

6. 역대 시장 목록

역대 시장의 사진과 주요 업적에 대해서는 서울시 홈페이지의 이 문서를 참고. 서울시 측에서는 초대 시장을 김형민으로 삼고 있다.

조선시대의 판한성부사 -> 한성부윤을 거쳐간 인물 2016명의 명단 중 일부는 이 곳에서 볼 수 있다.[28] 다른 자료로 서울특별시 조직변천사I(1987)의 부록[29] 있는데, 이 자료에서는 총 인원이 현재 시장인 38대 오세훈 시장까지 포함해도 1430명 밖에 되지 않는다. 위의 2000여명에 달하는 명단보다는 이 목록이 조금 더 현실성있는 것 같다.

6.1. 판한성부사

조선 태조 시대인 1395년부터 세조 시대의 1466년까지 106인이 판한성부사를 거쳐갔다.

6.2. 한성판윤

예종 시대의 1467년부터 명종 시대의 1567년까지의 194인이 한성판윤을 거쳐갔다.

선조 시대의 1568년부터 대한제국 순종 시대의 1910년까지 1716인이 한성판윤을 거쳐갔다.

6.3. 경성부윤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윤[30]
<rowcolor=white> 대수 이름 임기 당적[31] 또는 정부 비고
초대 오바 간이치 (大庭寛一) 1910년 10월 01일 ~ 1912년 03월 31일 조선총독부 [32]
2대 가나야 미쓰루 (金谷充) 1912년 04월 01일 ~ 1919년 12월 03일 [33]
3대 사이토 레이조 (斎藤礼三) 1919년 12월 04일 ~ 1921년 08월 04일 [34]
4대 요시마쓰 노리오 (吉松憲郎) 1921년 08월 05일 ~ 1923년 02월 23일 [35]
5대 다니 다키마 (谷多喜磨) 1923년 02월 24일 ~ 1925년 06월 14일 [36]
6대 마노 세이이치 (馬野精一) 1925년 06월 15일 ~ 1929년 01월 20일 [37]
7대 마쓰이 후사지로 (松井房治郎) 1929년 01월 21일 ~ 1929년 12월 10일 [38]
8대 세키미즈 다케시 (関水武) 1929년 12월 11일 ~ 1930년 12월 11일 [39]
9대 안도 게사이치 (安藤袈裟一) 1930년 12월 12일 ~ 1931년 09월 22일 [40]
10대 이노우에 기요시 (井上清) 1931년 09월 23일 ~ 1933년 12월 04일 [41]
11대 다테 요쓰오 (伊達四雄) 1933년 12월 05일 ~ 1936년 05월 20일 [42]
12대 간자 요시쿠니 (甘蔗義邦) 1936년 05월 21일 ~ 1937년 07월 02일 [43]
13대 사에키 아키라 (佐伯顕) 1937년 07월 03일 ~ 1938년 11월 08일 [44]
14대 다카하시 사토시 (高橋敏) 1938년 11월 09일 ~ 1941년 01월 23일 [45]
15대 야노 모모로 (矢野桃郎) 1941년 01월 24일 ~ 1942년 05월 21일 [46]
16대 후루이치 스스무 (古市進) 1942년 05월 22일 ~ 1945년 05월 01일 [47]
17대 이쿠타 세이자부로 (生田清三郎) 1945년 05월 02일 ~ 1945년 06월 15일 [48]
18대 쓰지 게이고 (辻桂五) 1945년 06월 16일 ~ 1945년 08월 15일[49] [50]
미군정 조선 경기도 경성부 민정부윤[51][52]
초대 이범승 (李範昇) 1945년 10월 27일[53] ~ 1946년 05월 09일[54] 미군정
존 리드 하지 사령관
대행 김성환 (金聖煥) 1946년 05월 10일 ~ 1946년 06월 29일 총무부장
2대 김형민 (金炯敏) 1946년 06월 30일[55] ~ 1946년 09월 27일
미군정 조선 경기도 경성부 군정부윤
초대 제임스 킬러프 (James S. Killough) 1945년 9월 9일 ~ 1945년 11월 16일 미군정
존 리드 하지 사령관
[56]
2대 제임스 윌슨 (James Willson) 1945년 11월 17일 ~ 1946년 9월 27일 [57]

6.4. 역대 서울특별자유시장

관선 서울특별자유시장
<rowcolor=white> 대수 사진 이름 임기 당적[58] 또는 정부 비고
초대 파일:1대김형민.png 김형민 (金炯敏) 1946년 09월 28일 ~ 1948년 12월 14일 미군정
안재홍 민정장관
[59]
2대 파일:2대윤보선.png 윤보선 (尹潽善) 1948년 12월 15일 ~ 1949년 06월 05일 제1공화국
이승만 정부
[60]
3대 파일:3대이기붕.png 이기붕 (李起鵬) 1949년 06월 06일 ~ 1949년 08월 14일 [61]

6.5. 역대 서울특별시장

6.5.1. 관선 1차

관선 서울특별시장
<rowcolor=white> 대수 사진 이름 임기 임명 주체 비고
4대 파일:3대이기붕.png 이기붕 (李起鵬) 1949년 8월 15일 ~ 1951년 5월 8일 이승만 정부 [62][63]
5대 파일:5대김태선.png 김태선 (金泰善) 1951년 6월 27일 ~ 1952년 7월 24일 [64]
6대 1952년 8월 29일 ~ 1956년 7월 5일 [65][66]
7대 파일:7대고재봉.png 고재봉 (高在鳳) 1956년 7월 6일 ~ 1957년 12월 13일 [67]
8대 파일:8대허정.png 허정 (許政) 1957년 12월 14일 ~ 1959년 6월 11일 [68]
9대 파일:9대임흥순.png 임흥순 (任興淳) 1959년 6월 12일 ~ 1960년 4월 30일 [69]
10대 파일:10대장기영.png 장기영 (張基永) 1960년 5월 2일 ~ 1960년 12월 30일 허정 과도내각 [70]

6.5.2. 민선 1차

민선 서울특별시장[71][72]
<rowcolor=white> 대수 사진 이름 임기 당적[73] 비고
11대 파일:11대김상돈.png 김상돈 (金相敦) 1960년 12월 30일 ~ 1961년 5월 18일

[74]

6.5.3. 관선 2차

관선 서울특별시장
<rowcolor=white> 대수 사진 이름 임기 임명 주체 비고
12대 파일:12대윤태일.png 윤태일 (尹泰日) 1961년 5월 20일 ~ 1963년 12월 16일 국가재건최고회의 [75]
13대 파일:13대윤치영.png 윤치영 (尹致暎) 1963년 12월 17일 ~ 1966년 3월 30일 박정희 정부 [76]
14대 파일:14대김현옥.png 김현옥 (金玄玉) 1966년 3월 31일 ~ 1970년 4월 15일 [77]
15대 파일:15대양택식.png 양택식 (梁鐸植) 1970년 4월 16일 ~ 1974년 9월 1일 [78]
16대 파일:16대구자춘.png 구자춘 (具滋春) 1974년 9월 2일 ~ 1978년 12월 21일 [79]
17대 파일:17대정상천.png 정상천 (鄭相千) 1978년 12월 22일 ~ 1980년 9월 1일 [80]
18대 파일:18대박영수.png 박영수 (朴英秀) 1980년 9월 2일 ~ 1982년 4월 27일 전두환 정부 [81]
19대 파일:19대김성배.png 김성배 (金聖培) 1982년 4월 28일 ~ 1983년 10월 14일 [82]
20대 파일:20대염보현.png 염보현 (廉普鉉) 1983년 10월 15일 ~ 1987년 12월 29일 [83]
21대 파일:21대김용래.png 김용래 (金庸來) 1987년 12월 30일 ~ 1988년 12월 4일 [84]
22대 파일:22대고건.png 고건 (高建)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2월 26일 노태우 정부 [85]
23대 파일:23대박세직.png 박세직 (朴世直) 1990년 12월 27일 ~ 1991년 2월 18일 [86]
24대 파일:24대이해원.png 이해원 (李海元) 1991년 2월 19일 ~ 1992년 6월 25일 [87]
25대 파일:25대이상배.png 이상배 (李相培) 1992년 6월 26일 ~ 1993년 2월 25일 [88]
26대 파일:26대김상철.png 김상철 (金尙哲) 1993년 2월 26일 ~ 1993년 3월 4일 김영삼 정부 [89]
27대 파일:27대이원종.png 이원종 (李元鐘) 1993년 3월 8일 ~ 1994년 10월 21일 [90]
28대 파일:28대우명규.png 우명규 (禹命奎) 1994년 10월 22일 ~ 1994년 11월 2일 [91]
29대 파일:29대최병렬.png 최병렬 (崔炳烈) 1994년 11월 3일 ~ 1995년 6월 30일 [92]

6.5.4. 민선 2차

민선 서울특별시장
<rowcolor=white> 대수 사진 이름 임기 당적[93] 비고
30대 파일:30대조순.png 조순 (趙淳) 1995년 7월 1일 ~ 1997년 9월 9일

[94]
권한대행 파일:대행강덕기.png 강덕기 (姜德基) 1997년 9월 10일 ~ 1998년 6월 30일 행정부시장 [95]
31대 파일:22대고건.png 고건 (高建)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96]
32대 파일:32대이명박.png 이명박 (李明博)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97]
33대 파일:33대오세훈.png 오세훈 (吳世勳)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98][99]
34대 2010년 7월 1일 ~ 2011년 8월 26일 [100]
권한대행 권영규 (權寧奎) 2011년 8월 27일 ~ 2011년 10월 26일 행정1부시장 [101]
35대 파일:35대박원순.png 박원순 (朴元淳) 2011년 10월 27일 ~ 2014년 6월 30일

[[무소속|
무소속
]]
[102][103]
36대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104][105]
37대 2018년 7월 1일 ~ 2020년 7월 9일

[106]
권한대행 서정협 (徐正協) 2020년 7월 10일 ~ 2021년 4월 7일 행정1부시장 [107][108]
38대 파일:38대오세훈.jpg 오세훈 (吳世勳) 2021년 4월 8일 ~ 2022년 6월 30일(예정)

[109][110]
39대 2022년 7월 1일 ~ (예정) [111]

7. 역대 선거 결과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역대 민선 서울특별시장
1960 1995 1998 2002 2006
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한나라당
한나라당
김상돈 조순 고건 이명박 오세훈
2010 2011 2014 2018 2021
한나라당
무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오세훈 박원순 박원순 박원순 오세훈
2022
국민의힘
오세훈

7.1. 1960년

파일:구 서울특별시 휘장(백색).pn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계성범(桂性範) 388 7위


[[무소속|
무소속
]]
0.85% 낙선
2 안학순(安鶴淳) 266 10위


[[무소속|
무소속
]]
0.36% 낙선
3 최주열(崔柱烈) 301 9위


[[무소속|
무소속
]]
0.58% 낙선
4 정인해(鄭寅海) 180 13위


[[무소속|
무소속
]]
0.09% 낙선
5 송태희(宋泰熙) 124 15위


[[무소속|
무소속
]]
0.05% 낙선
6 이석점(李錫漸) 374 8위


[[무소속|
무소속
]]
0.73% 낙선
7 오인환(吳仁煥) 341 8위


[[무소속|
무소속
]]
0.64% 낙선
8 문용채(文容彩) 456 5위

삼민당
1.01% 낙선
9 김상돈(金相敦) 217,475 1위


60.25% 당선
10 백준관(白陖寬) 181 12위


[[무소속|
무소속
]]
0.16% 낙선
11 김수룡(金水龍) 사퇴


[[무소속|
무소속
]]
12 이희운(李熙雲) 228 11위


[[무소속|
무소속
]]
0.20% 낙선
13 임병기(林炳亓) 등록무효

14 김헌(金憲) 2,088 4위

한국실업자협회
2.68% 낙선
15 장기영(張基榮) 117,145 2위


[[무소속|
무소속
]]
32.35% 낙선
16 김득조(金得照) 150 14위

조국봉찬회
0.12% 낙선
17 정준(鄭濬) 22,794 3위


[[무소속|
무소속
]]
6.30% 낙선
선거인 수 1,226,079 투표율
35.70%
투표 수 401.338
무효표 수 -

7.2. 1995년

파일:구 서울특별시 휘장(백색).pn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정원식(鄭元植) 1,001,446 3위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20.67% 낙선
2 조순(趙淳) 2,051,441 1위


42.35% 당선
3 박홍래(朴弘來) 25,054 5위

파일:한국친민당.png
0.51% 낙선
4 고순복(高順福) 10,488 7위

파일:통일한국당1995.png
0.21% 낙선
5 김명호(金明豪) 9,992 8위


[[무소속|
무소속
]]
0.20% 낙선
6 김옥선(金鈺仙) 17,728 6위


[[무소속|
무소속
]]
0.36% 낙선
7 박찬종(朴燦鍾) 1,623,356 2위


[[무소속|
무소속
]]
33.51% 낙선
8 정기용(鄭基用) 6,156 9위


[[무소속|
무소속
]]
0.12% 낙선
9 황산성(黃山城) 97,709 4위


[[무소속|
무소속
]]
2.01% 낙선
선거인 수 7,438,025 투표율
66.18%
투표 수 4,922,210
무효표 수 78,840

7.3. 1998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최병렬(崔秉烈) 1,512,854 2위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43.99% 낙선
2 고건(高建) 1,838,348 1위
[include(틀:새정치국민회의)] 53.46% 당선
4 이병호(李丙昊) 87,495 3위
[include(틀:무소속)] 2.54% 낙선
선거인 수 7,377,751 투표율
47.13%
투표 수 3,477,105
무효표 수 38,408

7.4. 2002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이명박(李明博) 1,819,057 1위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52.28% 당선
2 김민석(金民錫) 1,496,754 2위
[include(틀:새천년민주당)] 43.02% 낙선
3 임삼진(林三鎭) 28,034 5위
[include(틀:녹색평화당)] 0.80% 낙선
4 이문옥(李文玉) 87,965 3위
[include(틀:민주노동당)] 2.52% 낙선
5 원용수(元容秀) 12,982 6위
[include(틀:사회당(1998년))] 0.37% 낙선
6 이경희(李京熹) 34,313 4위
[include(틀:무소속)] 0.98% 낙선
선거인 수 7,665,343 투표율
45.80%
투표 수 3,510,898
무효표 수 31,793

7.5. 2006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강금실(康錦實) 1,077,890 2위
[include(틀:열린우리당)] 27.31% 낙선
2 오세훈(吳世勳) 2,409,760 1위
[include(틀:한나라당)] 61.05% 당선
3 박주선(朴柱宣) 304,565 3위
[include(틀:민주당(2005년))] 7.71% 낙선
4 김종철(金鍾哲) 117,421 4위
[include(틀:민주노동당)] 2.97% 낙선
5 임웅균(任雄均) 14,111 5위
[include(틀:국민중심당)] 0.35% 낙선
6 이귀선(李貴仙) 4,790 7위
[include(틀:시민당(2006년))] 0.12% 낙선
7 이태희(李泰熙) 4,481 8위
[include(틀:한국의미래를준비하는당)] 0.11% 낙선
8 백승원(白承元) 13,808 6위
[include(틀:무소속)] 0.34% 낙선
선거인 수 7,983,648 투표율
49.82%
투표 수 3,977,842
무효표 수 31,016

7.6. 2010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오세훈(吳世勳) 2,086,127 1위
[include(틀:한나라당)] 47.43% 당선
2 한명숙(韓明淑) 2,059,715 2위
[include(틀:민주당(2008년))] 46.83% 낙선
3 지상욱(池尙昱) 90,032 4위
[include(틀:자유선진당)] 2.04% 낙선
7 노회찬(魯會燦) 143,459 3위
[include(틀:진보신당)] 3.26% 낙선
8 석종현(石琮顯) 18,339 5위
[include(틀:미래연합)] 0.41% 낙선
선거인 수 8,211,461 투표율
53.90%
투표 수 4,426,182
무효표 수 28,510

7.7. 2011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나경원(羅卿瑗) 1,867,880 2위
[include(틀:한나라당)] 46.21% 낙선
8 김충립(金忠立) 등록무효

[[기독자유민주당|
파일:기독자유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9 배일도(裵一道) 15,408 3위
[include(틀:무소속)] 0.38% 낙선
10 박원순(朴元淳) 2,158,476 1위
[include(틀:무소속)] 53.40% 당선
선거인 수 8,374,067 투표율
48.56%
투표 수 4,066,557
무효표 수 24,793

7.8. 2014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정몽준(鄭夢準) 2,109,869 2위
[include(틀:새누리당(2012년))] 43.02% 낙선
2 박원순(朴元淳) 2,752,171 1위
[include(틀:새정치민주연합)] 56.12% 당선
3 정태흥(鄭泰興) 23,638 3위
[include(틀:통합진보당)] 0.48% 낙선
4 홍정식(洪貞植) 17,603 4위
[include(틀:새정치국민의당)] 0.35% 낙선
선거인 수 8,441,594 투표율
58.63%
투표 수 4,948,897
무효표 수 45,616

7.9. 2018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원순(朴元淳) 2,619,497 1위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52.79% 당선
2 김문수(金文洙) 1,158,487 2위
[include(틀:자유한국당)] 23.34% 낙선
3 안철수(安哲秀) 970,374 3위
[include(틀:바른미래당)] 19.55% 낙선
5 김종민(金鍾珉) 81,664 5위
[include(틀:정의당)] 1.64% 낙선
6 김진숙(金眞淑) 22,134 6위
[include(틀:민중당)] 0.44% 낙선
7 인지연(印志涓) 11,222 8위
[include(틀:대한애국당)] 0.22% 낙선
8 신지예(申智藝) 82,874 4위
[include(틀:녹색당)] 1.67% 낙선
9 우인철(禹仁喆) 11,599 7위
[include(틀:우리미래)] 0.23% 낙선
10 최태현(崔泰賢) 4,021 9위
[include(틀:친박연대)] 0.08% 낙선
선거인 수 8,380,947 투표율
59.89%
투표 수 5,019,098
무효표 수 57,226

7.10. 2021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rowcolor=#373a3c,#dddddd>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rowcolor=#373a3c,#dddddd>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영선(朴映宣) 1,907,336 2위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39.18% 낙선
2 오세훈(吳世勳) 2,798,788 1위
[include(틀:국민의힘)] 57.50% 당선
4 안철수(安哲秀) 사퇴[112]
[include(틀:국민의당)]
6 신지혜(申智惠) 23,628 5위
[include(틀:기본소득당)] 0.48% 낙선
7 허경영(許京寧) 52,107 3위
[include(틀:국가혁명당)] 1.07% 낙선
8 오태양(吳太陽) 6,483 9위
[include(틀:미래당)] 0.13% 낙선
9 이수봉(李守峯) 11,196 8위
[include(틀:민생당)] 0.23% 낙선
10 배영규(裵永奎) 634 12위
[include(틀:신자유민주연합)] 0.01% 낙선
11 김진아(金珍芽) 33,421 4위
[include(틀:여성의당)] 0.68% 낙선
12 송명숙(宋名淑) 12,272 7위
[include(틀:진보당(2020년))] 0.25% 낙선
13 정동희(鄭東熙) 1,874 10위
[include(틀:무소속)] 0.03% 낙선
14 이도엽(李度燁) 1,664 11위
[include(틀:무소속)] 0.03% 낙선
15 신지예(申智藝) 18,039 6위
[include(틀:무소속)] 0.37% 낙선
<rowcolor=#373a3c,#dddddd> 선거인 수 8,425,869 투표율
58.19%
<rowcolor=#373a3c,#dddddd>투표 수 4,867,442
<rowcolor=#373a3c,#dddddd>무효표 수 35,188

7.11. 2022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송영길(宋永吉) 1,733,183 2위


39.23% 낙선
2 오세훈(吳世勳) 2,608,277 1위


59.05% 당선
3 권수정(權秀靜) 53,840 3위


[[정의당|
파일:정의당 로고타입.svg
]]
1.21% 낙선
4 신지혜(申智惠) 12,619 4위


[[기본소득당|
파일:기본소득당 흰색 로고타입.svg
]]
0.28% 낙선
5 김광종(金光宗) 9,000 5위
[include(틀:무소속)] 0.20% 낙선
선거인 수 8,378,339 투표율
53.17%
투표 수 4,455,161
무효표 수 38,242

8. 역대 정당별 전적

민주당계 정당 보수정당 제3후보[113]
1회 조순 정원식 박찬종[114]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무소속|
무소속
]]
당선 42.35% 낙선 20.67% 낙선 33.51%
2회 고건 최병렬 -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당선 53.46% 낙선 43.99%
3회 김민석 이명박 -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낙선 43.02% 당선 52.28%
4회 강금실 오세훈 박주선[115]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민주당(2005년)|
파일: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타입.svg
]]
낙선 27.31% 당선 61.05% 낙선 7.71%
5회 한명숙 오세훈 노회찬[116]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진보신당|
파일:진보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낙선 46.83% 당선 47.43% 낙선 3.26%
재보선 - 나경원 박원순[117]




[[무소속|
무소속
]]
낙선 46.21% 당선 53.40%
6회 박원순 정몽준 -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당선 56.12% 낙선 43.02%
7회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118]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바른미래당|
파일:바른미래당 흰색 로고타입.svg
]]
당선 52.79% 낙선 23.34% 낙선 19.55%
재보선 박영선 오세훈 -




낙선 39.18% 당선 57.50%
8회 송영길 오세훈 -




낙선 39.23% 당선 59.05%

9. 역대 후보별 순위

  • 사퇴, 사망, 등록무효 후보 제외.
1위 2위 3위 4위 5위 6위 7위 8위 9위 10위 11위 12위
1회 조순 박찬종 정원식 황산성 박홍래 김옥선 고순복 김명호 정기용
2회 고건 최병렬 이병호
3회 이명박 김민석 이문옥 이경희 임삼진 원용수
4회 오세훈 강금실 박주선 김종철 임웅균 백승원 이귀선 이태희
5회 오세훈 한명숙 노회찬 지상욱 석종현
재보선 박원순 나경원 배일도
6회 박원순 정몽준 정태흥 홍정식
7회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 신지예 김종민 김진숙 우인철 인지연 최태현
재보선 오세훈 박영선 허경영 김진아 신지혜 신지예 송명숙 이수봉 오태양 정동희 이도엽 배영규
8회 오세훈 송영길 권수정 신지혜 김광종

10. 창작물에서의 서울시장

11. 관련 문서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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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의장 파일:대한민국 대통령 문장.svg 대통령
윤석열
부의장 파일:대한민국 국무총리 문장.svg 국무총리
한덕수
파일:정부상징.svg 국무위원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추경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공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이종호 외교부장관 박진
통일부장관 권영세 법무부장관 한동훈
국방부장관 이종섭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이창양 보건복지부장관 공석
환경부장관 한화진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
여성가족부장관 김현숙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
해양수산부장관 조승환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이영
파일:정부상징.svg 정부위원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주영창 통상교섭본부장 안덕근
파일:대한민국 대통령기.svg 대통령 보좌기관·소속기관
국가안보실장 김성한 대통령비서실장 김대기
- - 파일:정부상징.svg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한상혁
파일:대한민국 국무총리 문장.svg 국무총리 보좌기관·소속기관
국무조정실장 방문규 국가보훈처장 박민식
인사혁신처장 김승호 법제처장 이완규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오유경 금융위원회 위원장 고승범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조성욱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유국희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장 오세훈
기타 기관 장*
법원행정처장 김상환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박종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송두환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김진욱
기타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배석시키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
* 국무회의 규정 외의 법률에 의거하여 국무회의 출석, 발언권 등이 있음
}}}}}}}}}}}}}}} ||

파일:대한민국 국장.svg 대한민국의 행정계통별 대표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국가 대한민국
대통령
광역자치단체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특별자치도
특별시장 광역시장 특별자치시장 도지사 특별자치도지사
기초자치단체 자치구
시장 군수 구청장
일반구 행정시
구청장 시장
읍장 면장 동장
통장 이장
반장
}}}}}}}}} ||


[1] 3선 연임 단체장이 나오는 다른 광역자치단체장과 달리 서울특별시장은 12년 연속으로 재임한 사람이 없다. 사상 최초로 3선 서울특별시장이 된 박원순 2011년 재보궐선거로 당선되어 초선 임기를 시작했고, 3선 임기 중에 자살했기 때문이다. [2] 현 시장인 오세훈이 예시. 민선 4·5기 서울시장직을 수행하다가 민선 5기 출범 1년이 약간 지난 후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33.3% 밑으로 뜨자 시장직을 사퇴한 이후, 10년만에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선 7기 시장으로 돌아온 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되어서 4선 서울시장에 올랐다. [3] 선출직 공무원으로 보면 대통령 바로 다음의 위상으로 정치권의 별칭이 소통령(小統領)일 정도. 경기도지사가 급증한 인구를 기반으로 위상에 도전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며, 이쪽은 분도의 문제가 남아있다. # [4] 일반적으로 위상에 있어 정치적 권력이나 실권 측면은 그 이상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어찌 됐든 지방직이라, 국가직 위주의 국가의전서열 목록에는 없다. 서울특별시장이 국가의전서열에서 제외당한 것은 2005년 참여정부 때이다. 그 이전까지는 서울시장도 국가의전서열에 있었는데, 장관급 인사 중에서 제일 마지막 순번이었다. [5] 한성판윤 또는 그냥 판윤으로도 불렸으며, 조선초에는 한성부윤이 정식 명칭이었으므로 한성부윤 혹은 부윤으로도 불렸다. [6] 서울특별시의 행정부시장 2인과 기조실장의 경우 서울시장이 국무총리를 경유하여 대통령에게 임명안을 상신하여 대통령 명의의 임명장을 받게 된다. 서울시 소속 공무원의 상훈 수여도 타 시·도에서는 행안부 장관을 경유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서울특별시장은 대통령에게 다이렉트로 상신할 수 있다. [7] 現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2002년에 영등포구 을 지역구 의원을 사퇴하고 출마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후 18년 만인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등포구 을 지역구에 출마, 당선되었다. 선거에서 당선된 것은 20년 만이다. [8] 이후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을 거쳐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이다. [9] 박근혜 정권 이전에는 철저한 비박 정치인이었다. [10] 2021년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며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도 40%대로 다시 급상승하긴 했으나 오세훈과의 범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패하여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자신이 단일화로 양보해준 오세훈이 당선되어 야권에서 생명의 은인으로 감사를 받고 있고 오세훈도 안철수와의 협치를 약속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윈윈이 되었으며 명예로운 패배가 되어 향후 정치 전망이 다시 밝아졌으며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후 지지율이 한때 15%까지 급상승했으나 이후 상승세가 꺾였고 대선 막판에 과정이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윤석열과 단일화하고 윤석열이 당선된 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2022년 6월 보궐선거 성남시 분당구 갑에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적 입지가 넓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11]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을 사퇴하고 출마한 선거에서 패배하였기에 정치 경력이 끊어졌다. 또한 이 낙선은 박영선 개인에게는 첫 낙선이며, 특히 3선을 한 자신의 정치적 고향과 같은 구로구에서도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기에 필연적으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것이다. 거기다가 이듬해 실시된 대선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상대로 패배하여 당 전체가 다운된 상황이라 박영선의 정치적 입지가 되살아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2] 본인이 5선 의원을 하면서 다져온 계양구 을 지역구를 버려가면서 출마를 강행했으나 대패하여 뱃지만 잃었다. 세간에서는 향후 정치적 행보가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13] 국무총리 및 장관직은 임명직이니 선출직의 위상을 가질 수 없고, 국회의원의 경우 정수만 300석에 이르는 데 비해 서울특별시장은 단 1석뿐이다. 물론 다른 광역자치시도의 시장이나 도지사까지 합치면 17석이 되긴 하지만, 차관급인 타 광역지자체장에 비해 장관급인 서울시장의 위상이 명백히 높다. 그리고 차관급인 타 광역지자체장도 장관직에 비하면 권한이 매우 강한 편이다. 대표적인 예가 경기도지사. [14] 지자체장과 국회의원은 겸임이 불가능하므로 시장 선거에 도전하려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즉, 국회의원 재직 중이라면 일단 의원 경력을 포기해야 지방선거에 도전할 수 있다. 반면 장관직의 경우 국회의원과 겸임이 가능하므로 장관+국회의원 경력을 유지한다면 그 위상은 서울시장에 비해 좀 떨어진다 해도 일단 탄탄한 중앙 정계 경력을 지속하고 있는 셈이 된다. 물론, 2002년 김민석, 2011년 나경원, 2014년 정몽준 처럼 의원직을 포기하고 서울시장에 출마한 사례도 적지 않고 2021년의 박영선도 출마 당시 의원이 아니었을 뿐이지 그 직전까지 정치적 휴식기 없이 4선 의원과 장관직을 역임했기에 성공적인 정치 커리어를 쌓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의 경우 제각기 특수성이 있는데, 일단 11년 나경원/21년 박영선의 사례는 개인의 정치적 커리어 이전에 소속 정당의 서울시장이 자폭하여 열린 보궐선거라는 특수성이 있다. 즉 개인의 경력을 위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소속 정당의 입장에서 서울시장이라는 핵심요직을 상대 당에게 빼앗기는 상황, 특히 처참한 격차로 패배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단 그 상황에서 경쟁력있는 정치인에게 '당이 위험하니 험지로 나가달라'고 요청한 성격이 강하다. 즉, 해당 정당 차원에서 커리어상 적절한 정치인을 찾아 공천할만한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고, 어설픈 카드를 내밀었다가는 처참한 패배로 정당 자체가 큰 정치적 타격을 입게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두 정치인이 자신의 희생 가능성을 감수하고 구원투수로 등판한 격이다. 또한 14년 정몽준의 사례는 02년의 전성기를 놓친 이후 장기간의 침체기에 빠져있던 정몽준이 상황 타개를 위해 던진 승부수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14년 지선 당시 정몽준이 '성공적인 정치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기에는 단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을 이어가고 있을 뿐, 여야를 불문하고 한손에 꼽히는 주요 대권주자 중 하나이자 사실상 무소속이나 다름없는 일인정당으로 거대정당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전성기의 위세에 비하면 퇴조가 명확했다. [15] 서울시장까지 지낸 정치인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더 윗급의 자리는 대통령 하나 뿐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비슷한 위상의 자리라고 해도 국무총리, 거대양당 당대표 정도 밖에 없다. [16] 이 조항에 따라서 서울특별시청에 들어가는 국가직공무원인 행정부시장 2인과 기획조정실장에 대한 인사권 역시 서울특별시장이 사실상 행사하며, 실제로는 시장의 임명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17] 현안 관련 공무원을 국무회의에 참석시킬 수 있는 규정을 통해 청계천 복원사업 질의와 관련하여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국무회의에 출석시킨 적은 있다. [18] 문민정부 출범 초기 7일 만에 자진사퇴한 김상철 전 서울시장에 이어 두번째로 단명한 서울시장으로 남았다. [19] 그나마도 본적이 호남이어서 호남 출신으로 분류된 케이스이며, 고건 본인은 서울 출신이다. 윤석열이 충남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충청 출신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 [20] 단, 박원순의 마지막 부시장들이었던 서정협(행정1부시장), 김학진(행정2부시장), 김우영(정무부시장)은 모두 비호남 출신이었다. 서정협은 울산광역시, 김학진은 경주시, 김우영은 강릉시 출신 [21] 인구가 춘천시, 강릉시, 속초시, 동해시를 합한 것보다 많고 중구보다 5배 많아 총선에서도 개표속도가 가장 늦다. [22] 다만 당시에는 정식으로 '부산직할시'의 이름은 얻지 못하고 '경상남도'만 빠져서 시장 직함명 역시 1981년 부산직할시 정식 개칭 전까지는 그냥 '부산시장'이었던지라 근래에는 이 시기를 '(정부 직할) 부산시(장)'으로 표기한다. [23] 부산전차도 이때 동시에 폐선되었는데, 부산전차 폐선 계획을 최초로 수립한 사람 역시 김현옥 시장이었다. 다만 임기 내에는 실행하지 않고 후임 김대만 시장이 실행한 것. [24] 더 엄청난 것은 2호선 계획에서 영등포역 예정지 공사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해서 신도림으로 위치가 바뀐 것을 빼면 난공사라 할 것이 없었다. [25] 비슷한 사례로 서울시장은 아니지만 관선 1번+ 민선 3번으로 4번 도지사를 했던 심대평 충남지사의 사례, 제25대 부산직할시장(관선)과 제31~32대 부산광역시장(민선)을 지낸 안상영 부산시장이 있다. [26] 본인부터가 여론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매우 아슬아슬하게 이겼고, 서울시의원 선거에서도 당이 크게 패배하며 팔다리가 잘렸다. [27] 이 때 박원순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깨고 올라간 상대가 다름아닌 나경원이었다. [28] 왜 이렇게 많냐면, 조선 시대의 한성부윤은 임기가 반년도 채 안 됐다. [29] 571p.~606p. [30] 주임관 3~5등으로 보했다. 이는 현재의 2~5급 공무원과 비슷한 지위이며 당시 일본군의 영관급 장교에 맞먹었다. 즉, 일반 시장, 군수와 같거나 위고 도지사보다는 아래인 셈. [31] 선거 당시 당적 [32] 1년 183일. 에히메 현 현지사 등을 역임했다. # [33] 7년 247일. 판한성부사부터 서울시장까지 통틀어 최장 기간 역임자였으나 2019년 박원순이 이 기록을 깼다. 마산부윤 등을 역임했다. [34] 1년 244일. 함경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35] 1년 203일. 인천부윤 등을 역임했다. # [36] 2년 112일. 평안북도지사, 경상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37] 3년 220일. 함경남도지사, 전라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38] 325일. 함경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39] 1년. 함경남도지사, 경상남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40] 285일. 함경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41] 2년 72일. 총독부 체신국장 등을 역임했다. # [42] 2년 167일. 경상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43] 1년 43일. 직속상관인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44] 1년 129일. 경기도 경찰부장, 내무부장 등을 역임했다. # [45] 2년 76일. 경상북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46] 1년 118일. 평앙부윤, 부산부윤 등을 역임했다. # [47] 2년 344일. 대구부윤 등을 역임했다. # [48] 44일. 마지막 일제강점기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 [49] 공식적으로 미군정에 사표를 제출한 날짜는 1945년 9월 15일이다. [50] 60일. 주로 총독부 본청에서 근무했으며 광복과 동시에 직무이탈했다. [51] 미군정부윤(military mayor)과 한국인 민정부윤으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1945년 9월 9일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면서 제임스 킬러프(James S. Killough) 소령이 군정부윤으로 시정을 맡았고 1945년 11월 17일 제40 군정중대가 경성부의 행정권을 인수하면서 제임스 윌슨(James E. Wilson) 중령이 맡았다. [52] 광복 당시 경성부윤이었던 일본인 쓰지 게이고(辻桂五)가 업무를 놓으면서 김창영(金昌永)이 추대되어 사무를 인계받아 경성부 행정을 담당했다. 김창영은 이후 미군정이 주둔하면서 경성부 부부윤(부시장) 겸 기획실장으로 임명되어 실무를 담당했다. 김창영을 초대 부윤으로 언급하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부윤으로 임명되거나 권한이 위임된 것은 아니다. 일본인 경성부윤과 부서장들은 미군정이 들어오고 나서 1945년 9월 15일에 사표를 제출했다. [53] 서울특별시史에는 10월 25일로 되어 있으나 날짜별로 기록된 미군정 문서 원문에는 10월 26일 임명되어 10월 27일부터 업무를 맡았으며 첫 번째 공식 행사는 10월 27일 대회의실에 집결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연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54] 신병을 사유로 1946년 5월 9일 사표를 제출하여 수리됨. [55] 서울특별시史 해방후 시정편의 기록이다. 동아일보 1946년 7월 7일 기사에서는 7월 1일 오후 2시에 취임식을 거행했다고 나온다. [56] 미 육군 소령. [57] 미 육군 중령. [58] 선거 당시 당적 [59] 2년 78일. 해방 이후 초대 서울시장. 서울(특별자유시)이라는 명칭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경성부윤이었으나 곧 '서울시장'으로 개칭되었다. 여담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미국의 워싱턴 D.C.처럼 서울시를 우남시로 만들고 싶어했다. [60] 172일 [61] 69일 [62] 1년 266일. [63] 후임 김태선 전 시장 취임까지 전예용 서울특별시 부시장이 권한대행. [64] 1년 27일. [65] 3년 337일. [66] 김태선 전 시장이 내무부장관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복귀할 때까지 이익흥 전 부시장이 권한대행. [67] 1년 160일. [68] 1년 179일. [69] 323일. [70] 242일. [71] 장면 내각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선거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다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서울시장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통령 임명직으로 회귀했다. [72] 이 당시의 지방선거는 시장, 도지사, 군수, 읍장, 면장, 시/도의원, 시/읍/면의원을 선출하였다. 현재의 전국동시지방선거와는 조금 다르다. [73] 선거 당시 당적. [74] 139일. 4.19 혁명으로 장면 내각 정부가 들어서면서 선거를 통해 최초의 민선시장이 되었다. 날짜를 보면 예상되지만, 이듬해 일어난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임기를 반 년도 못 채우고 경질된다. [75] 2년 210일. [76] 2년 104일. [77] 4년 1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으로 서울시장에 임명되어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서울 대개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78] 4년 139일. 임명직 시장 중 최장기간 재임. 그러나 육영수 저격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79] 4년 111일. [80] 1년 254일. [81] 1년 237일. [82] 1년 169일. [83] 4년 76일.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의 주역. 재임기간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하였다. [84] 340일. [85] 2년 21일,



[[민주자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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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86] 53일. [87] 1년 127일. [88] 244일. 새 대통령 취임일에 맞춰 퇴임했다. [89] 7일. 당시 매우 유명했던 인권변호사 출신에 40대라는 젊은 나이로 참신한 이미지까지 갖추고 있어, 당시 최초의 민주세력 정부였던 김영삼 정권의 주요 인사로 내세울 만했다. 하지만 시장 취임 후 곧바로 서울근교에 위치한 수려한 본인 소유의 전원주택이 그린벨트를 무단 훼손해서 건축된 사실이 언론보도로 드러남으로써 1주일 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여담으로 김대중 정권 출범 후에는 보수세력으로 변신하였다. 역대 최단기간 재임. [90] 1년 227일.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난 그날 오후 7시에 문책성으로 경질되었다. 후에 민선 충북지사를 지냈다.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소속.
[91] 11일. 경상북도지사를 하던 중에 이원종 전 시장의 경질로 급히 신임 시장에 임명되었지만 11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92] 239일. 마지막 관선 시장.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소속.
[93] 선거 당시 당적. [94]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 중도 사퇴. 2년 71일. [95] 293일. [96] 4년. [97] 4년. 임기만료로 퇴임 직후 바로 대선에 뛰어들어 당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민선 서울특별시장 출신 첫 대통령. 임명직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으로는 2대 시장인 윤보선이 있다. [98] 4년. 민선 기준 최초의 재선 서울특별시장. [99] 재선 출마에 따른 직무 정지로 나진구 행정1부시장이 직무대행 ( 2010년 5월 7일 ~ 6월 2일). [100] 1년 56일. 무상급식 전면확대 논란 당시 투표율이 33.3%에 못 미치자 사퇴했다. [101] 60일. [102] 2년 247일.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사실상 야권의 단일후보였다. 재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후보를 꺾었고, 시장 취임 후 에 입당한다. [103] 재선 출마에 따른 직무 정지로 김상범 행정1부시장이 직무대행 ( 2014년 5월 15일 ~ 6월 5일). [104] 4년. [105] 3선 출마에 따른 직무 정지로 윤준병 행정1부시장이 직무대행 ( 2018년 5월 14일 ~ 6월 13일). [106] 최초의 3선 서울특별시장. 역대 최장기간 재임(8년 256일). 재임 중 사망. [107]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인한 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 [108] 직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사실이 10일 0시(9일 자정)를 넘겨 확인되었기 때문에 실종 당일인 9일에는 임시로 직무대리를 맡았던 것. 주된 차이가 시장으로서 현직이 누구냐 정도이다. 결재권자가 현직 '시장'인데 임시로 현상유지의 범위 내에서 대결하는 자리가 직무대리이고 권한대행자가 바로 최종 결재권자가 되는 것이 권한대행이다. [109] 두번째 3선 서울시장이고 임기 이후 재출마하여 당선된 세 번째 광역단체장이다. 이전에는 염홍철 대전시장 우근민 제주지사가 임기 이후 재당선된 사례가 있다. [110] 4선 출마에 따른 직무 정지로 조인동 행정1부시장이 직무대행 ( 2022년 5월 13일 ~ 6월 1일). [111] 최초의 4선 서울특별시장.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칠 경우 역대 최장기간 재임 기록을 가져오게 된다. (통산 10년 139일) [112]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 [113] 3% 이상 득표자만 기재. [114] 중도 성향 후보. [115] 민주당계 정당 후보. [116] 진보정당 후보. [117] 진보·민주당계 성향 후보. [118] 제3지대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