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2:48

무소속(정치)

1. 개요2. 대한민국 정치에서의 무소속
2.1. 무소속 정치인이 발생하는 이유
2.1.1. 국회의장2.1.2. 국회사무총장2.1.3. 탈당자2.1.4. 교육감2.1.5. 순수 행정가 출신2.1.6. 행정시장과 행정구청장2.1.7. 그 외
2.2. 공직선거법 규정
2.2.1. 선거권자의 후보자 추천2.2.2. 후보자 등록2.2.3. 등록무효2.2.4. 무소속후보자의 정당표방제한2.2.5. 투표용지의 게재순위 등
2.3. 역대 선거에서의 무소속
2.3.1. 대통령 선거2.3.2. 국회의원 선거2.3.3. 지방선거
2.4. 무소속 정치인 목록
2.4.1. 대통령2.4.2. 국회의원2.4.3. 민선 광역자치단체장2.4.4. 역대 지방자치단체장
3. 외국에서의 무소속

1. 개요

무소속
무소속을 뜻하는 회색 (#808080).
선거에서 말하는 무소속이란, 그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은 정치인[1][2]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자면 정치판 프리랜서. 당연하지만, 정당이 하나도 없거나 금지된 국가의 정치인들은 모두 무소속이다. 물론 사적인 라인이나 파벌은 있다.[3]

2. 대한민국 정치에서의 무소속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정당의 공천장으로 등록하는 정당추천후보자와는 달리 무소속 후보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추천장을 교부받아 선거구민으로부터 일정 수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등록할 수 있다. 정당의 당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면 후보자 등록 전날까지 정당을 탈당하여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후보등록이 무효화된다.

무소속 정치인마다 입지는 천차만별인데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부터 군소 후보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2.1. 무소속 정치인이 발생하는 이유

2.1.1. 국회의장

국회의장은 원내 다수당 의원 중에서 5선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중진을 선출하는 것이 관례인데 현행법상 국회의장은 공정성과 중립성을 위하여 당적을 가질 수 없으므로 취임하고 다음 날에 탈당하여 무소속이 된다. 이러한 규정이 적용된 최초의 국회의장은 제16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이만섭. 제14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박준규도 잠시 당적을 두지 않았으나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기 위한 탈당이 아니라 김영삼의 외압으로 탈당한 것이다. 그리고 원래 이만섭은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후로도 새천년민주당에 소속되었다. 2002년 3월에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것이다. 물론 국회의장은 법에 마련된 조항을 지키고자 형식적으로 탈당하는 것이고 임기를 마치면 원래 소속된 정당으로 복당하는 게 일반적이다. 국회부의장은 그러한 조항이 없어서 당적을 보유할 수 있다. 탈당시 의원직을 잃는 비례대표 국회의원도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어 탈당해야 하는 경우에는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위에서 언급된 이만섭 의원이 이런 경우이다.[4][5]

2.1.2. 국회사무총장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원내대표)과의 협의를 거친 후 본회의 가결로 임명하는 정무직공무원이라 당적을 가질 수 없어 취임 당일부터 탈당해야 한다.

2.1.3. 탈당자

정당에 속해 있다가 모종의 사유로 탈당한 무소속 의원들도 많다.[6] 인지도가 높은 데도, 당 내부의 경선에서 밀려서 공천받지 못했을 때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도전하는데, 이때 무소속 출마자는 당선되면 자신을 내친 그 당으로 바로 복귀할 것을 선언하고, 당은 당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으니 설사 당선돼도 받아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다만, 보통 세 대결이라거나 모종의 이유로 당선자가 다시 필요해질 때쯤 복당을 받아주는 흐름으로 나갈 때가 많다. 낙선하면 정치 생명은 끝이지만,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복귀하여 활발히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20대 총선 새누리당 탈당 후 무소속 당선자 7명은 당에 일괄 복귀[7]했고, 더불어민주당 탈당 후 무소속 당선자 2명인 이해찬 홍의락 모두 복당하였다. 조금 다른 경우로 원래 있던 정당에서 공천을 받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나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원소속 정당에 대해 지역 내 여론이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8], 아무래도 유권자들이 지역 여론에 반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기에는 부담스러워하는 심리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무소속은 그런 점에서는 어느 정도는 자유롭고, 거기에 양당 혐오자 일부의 표도 흡수가 가능하니 당선 가능성만 따지면 경우에 따라서는 합리적일 수 있다[9]. 이런 케이스는 애초에 원소속 정당과 척 지고 떠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당선 후 복당하는 데에도 큰 지장은 없다. 오히려 당선 가능성 때문에 (행보는 원소속 정당과 같이 하더라도) 당적 자체는 무소속으로 계속 남아있는 경우도 있는 편이다.

정당이 특정 선거에 공천을 아예 거부하는 '무공천'을 할 경우, 해당 정당 소속 출마 희망자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어떤 정당 출신 선출직이 잘못을 저질러서 직을 상실하거나 사직할 때(귀책사유를 발생시켰다고 일컫는다), 그로 인해 열리는 재보궐선거에서 해당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무공천을 선언하는 경우가 많다. 무공천은 법으로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고 각 당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귀책사유를 발생시킨 당이더라도 공천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무공천을 하는 다른 사례로는, 후보등록을 하기 이전에 미리 단일화를 협의하여 특정 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다른 한 정당의 후보를 지지할 때 무공천이 일어난다.

2.1.4. 교육감

피선거권 조항에 1년 이상 당적을 가지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한 특성 때문에 선거 기호가 없고 투표용지에 적히는 이름 순서도 선거구마다 다르다. 지방선거 초창기에는 기호가 있었는데 유권자들에게 교육감 선거가 정당과 연관된 것처럼 보인다는 염려가 발생하여 기호가 폐지되었다.

2.1.5. 순수 행정가 출신

대한민국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경우는 공천에서 배제되어 탈당했다가 당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과 당적이 중요한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시장/군수 선거에서는 정치 성향보다는 지역발전이 우선시되기에 정당 가입 이력이 없는 사람이 지방 행정가나 이장 등으로 시작해서 인지도를 쌓아 당선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간혹 있다.[10]

2.1.6. 행정시장과 행정구청장

행정시 행정구는 기초자치단체가 아닌 제주특별자치도와 인구 50만명 이상[11] 자치시의 하위기관이다. 행정시가 행정구보다 권한이 많지만 그게 전부이다. 행정시장과 행정구청장은 특별자치도지사 자치시장이 임명하는 공무원이므로 당적을 보유할 수 없다.

2.1.7. 그 외

정당 공천을 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독자적으로 창당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렇게만 보면 정당에도 못 들어간 무명 정치인이 혼자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소속이라 함은 어느 정도 입지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당의 지원을 받지 않고 무소속으로 당선 및 활동할만한 능력이 되니까 활동하는 것. 지역구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당선될 정도면 역으로 정당 타이틀이 없어도 의석을 따올 정도로 지지층이나 인지도가 굳건하다는 뜻이므로[12] 어느 정당이나 탐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은 앞에 있는 번호만 뽑지 말라는 말과 당보다 인물이 중요하다는, 소위 "인물론"을 자주 얘기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 없다.[13] 정당에 소속되어 출마한 다른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낮고 정당의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적을 가졌다 탈당한 경우를 빼면 "그런 사람도 있었어?"라고 할 정도로 낮은 지명도를 가진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무소속으로 성공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14], 그래서인지 각 정당은 의외로 무소속 출신 인물을 포섭하는 데에 애를 쓰고 있다. 타 정당에서 포섭해 오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그런 철새 같은 인물에 대한 시선이 좋을 리도 없고, 신뢰도도 약간 떨어진다. 또한 타 정당에서 영입한 인물의 경우 정당의 이념과 다소 간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일부 유권자들이 "왜 저런 사람을 데려왔느냐" 면서 비토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그 유명한 2008년 재보궐선거 고성군수 1표차 당선자와 낙선자도 모두 무소속이었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 무소속으로 7선에 성공한 지방의회의원들이 주목받기도 한다. 기사.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무소속 정치인들이 다 이럴 수 있는 건 아니다. 똑같이 방송 출연하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누구는 아침마당이나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이나 출연하는 무명 혹은 한물간 리포터이고, 누구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 출연하는 네임드 연예인이듯이 대부분의 무소속 정치인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잊혀지는 게 보통이다. 이 때문에 실제 정치적 이념은 다소 달라도 유명 정당의 인지도를 이용해서 일단 정계에 진출해 나중을 도모하는 진출자들도 있는데, 상기한 대로 유명 정당에 입당할 수 있을 정도면 인지도는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이래저래 복잡미묘하다. 2016년 미국 대선 주자인 버니 샌더스는 무소속임에도 힐러리 클린턴, 젭 부시, 도널드 트럼프, 벤 카슨과 같은 유력 주자들에 뒤지지 않는 지지율을 얻었다. 정치 세력이 공화당 민주당으로 양분되어 있고, 무소속 후보는 ( 로스 페로의 예처럼) 이 두 개 당 중 한 쪽으로부터 표를 빼앗아서 다른 쪽 당을 유리하게 하는 들러리 수준으로 취급되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끝내 힐러리 클린턴과 통합한 이후 클린턴을 싫어하면서 샌더스를 지지하던 다수의 젊은 층을 잃었고, 결국 트럼프가 최종적으로 당선자가 되었다.

선거방송 등에서 무소속 후보의 정당 표시 부분은 대개 흰 배경에 검은색 글자로 "무소속"이라고 쓰는데, 일부 정치 무관심/저관심층들의 경우 이것을 잘못 알아서 "정말 무소속이란 정당이 존재하나 보다."라고 착각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무소속전국연합이라는 이름의 정당 등록을 신청했으나, 단순 무소속 후보들과 혼동될 우려가 있음을 이유로 거절 당한 적이 있다. 이후 이름을 약간 바꾸어 무당파국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총선에 참가하였으나 결국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며 이후 당시의 정당법[15]에 따라 해산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외에 무정파전국연합이라는 정당도 있었는데, 무정파전국연합은 신민당 자유민주연합과 흡수될 때, 이에 반대한 임춘원 의원이 독자적으로 재창당한 신민당에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무당파국민연합과 달리 아예 총선에 불참하였다. 일본에는 '지지정당 없음(支持政党なし)'이라는 당명의 정당이 존재하는데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64만 표를 득표했고 이후로도 10만 표 정도가 꾸준히 나와 일본의 정치적 무관심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2.2. 공직선거법 규정

2.2.1. 선거권자의 후보자 추천

관할선거구 안에 주민등록이 된 선거권자는 각 선거(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및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선거 제외)별로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를 당해 선거구의 후보자("무소속 후보자")로 추천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 제48조 제1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이는 정당추천후보자의 공천에 대응한다.

무소속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관할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등록신청개시일전 5일(대통령의 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에서는 후보자등록신청개시일 30일,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 등에서는 그 사유가 확정된 후 3일)부터 검인하여 교부하는 추천장을 사용하여 다음 각호에 의하여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공직선거법 제48조 제2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 대통령 선거 : 3,500인~6,000인( 광역자치단체별로 700인 이상)
  • 지역구국회의원선거 및 자치구·시·군의 장 선거 : 300인~500인
  • 지역구시·도의원선거 : 100인 이상 200인 이하
  • 시·도지사선거, 교육감선거 : 1,000인~2,000인( 기초자치단체별로 50인 이상)
  • 지역구자치구·시·군의원선거 : 50인~100인(다만, 인구 1천인 미만의 선거구는 30인~50인)
이 경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공직선거법 제48조 제3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 검인되지 아니한 추천장에 의하여 추천을 받는 행위
  • 추천선거권자수의 상한수를 넘어 추천을 받는 행위
  • 추천선거권자의 서명이나 인영을 위조·변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허위의 추천을 받는 행위
이를 위반하여, 검인되지 아니한 추천장에 의하여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거나 받게 한 사람, 선거운동을 위하여 추천선거권자수의 상한수를 넘어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거나 받게 한 사람, 허위의 추천을 받거나 받게 한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공직선거법 제256조 제5항 제1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추천장 검인·교부신청은 공휴일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할 수 있다(공직선거법 제48조 제2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선거권자의 추천장의 서식·교부신청 및 교부 기타 필요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으로 정한다(공직선거법 제48조 제5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2.2.2. 후보자 등록

무소속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위와 같이 선거권자가 기명하고 날인(무인을 허용하지 아니한다)하거나 서명한 추천장(단기單記 또는 연기連記로 하며 간인間印을 요하지 아니한다)을 등록신청서에 첨부하여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49조 제1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이는 정당추천후보자의 경우에 추천정당의 추천서를 첨부하여야 하는 것에 대응한다.

정당의 당원인 자는 무소속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으며, 후보자등록기간중(후보자등록신청시 포함)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2 이상의 당적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당해 선거에 후보자로 등록될 수 없다(공직선거법 제49조 제6항 전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소속정당의 해산이나 그 등록의 취소 또는 중앙당의 시·도당창당승인취소로 인하여 당원자격이 상실된 경우에도 또한 같다(공직선거법 제49조 제6항 후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2.2.3. 등록무효

무소속후보 특유의 등록무효 사유로서, 후보자등록 후에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때에는 그 후보자의 등록은 무효로 한다( 공직선거법 제52조 제1항 제4호, 제7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16].
  • 무소속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는 자가 무소속으로 등록된 것이 발견된 때
  • 무소속 후보자가 정당의 당원이 된 때

2.2.4. 무소속후보자의 정당표방제한

무소속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 제84조 본문).[17]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같은 조 단서).
  • 정당의 당원경력을 표시하는 행위
  •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 정당이 무소속후보자를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경우 그 사실을 표방하는 행위

2.2.5. 투표용지의 게재순위 등

투표용지에는 무소속 후보자는 후보자의 정당추천후보자의 소속정당명의 란에 "무소속"으로 표시하여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150조 제1항 단서 전단).[18]

후보자의 게재순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후보자등록 마감일 현재 국회에서 의석을 갖고 있는 정당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 국회에서 의석을 갖고 있지 아니한 정당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 무소속 후보자의 순으로 한다(같은 조 제3항 전단)[19].

이에 따라 무소속 후보자의 게재순위를 정함에는 관할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추첨하여 결정하는 순에 따른다(같은 조 제5항 제3호).

2.3. 역대 선거에서의 무소속

파일:대한민국 정당별 득표율.png

파일:대한민국국회정당별의석20180716.png

파일:대한민국지방선거정당별당선직20180716.png

2.3.1. 대통령 선거

후보자 기호 연도 대수 득표수 득표율 결과
안재홍 - 1948년 1대[20] 2 1.02% 3위
조봉암 1 1952년 2대 797,504 11.35% 2위
이시영 3 764,715 10.89% 3위
신흥우 4 219,696 3.12% 4위
조봉암 1 1956년 3대 2,163,808 30.01% 2위
최규하 1 1979년 10대[A] 2,465 96.29% 당선
전두환 1 1980년 11대[A] 2,524 99.37% 당선
백기완 8 1987년 13대 - - 사퇴
김옥선 7 1992년 14대 86,292 0.36% 6위
백기완 8 238,648 0.99% 5위
장세동 7 2002년 16대 - - 사퇴
이회창 12 2007년 17대 3,559,963 15.07% 3위
박종선 4 2012년 18대 12,854 0.04% 6위
김소연 5 16,687 0.05% 5위
강지원 6 53,303 0.17% 3위
김순자 7 46,017 0.15% 4위
김민찬 15 2017년 19대 33,990 0.1% 7위

2.3.2. 국회의원 선거

연도 국회 총 의석
1948년 제헌 85 / 200
1950년 제2대 126 / 210
1954년 제3대 67 / 210
1958년 제4대 26 / 233
1960년 초대 참의원 20 / 58
제5대 민의원 49 / 233
1973년 제9대 19 / 219
1978년 제10대 22 / 231
1981년 제11대 11 / 276
1985년 제12대 4 / 276
1988년 제13대 9 / 299
1992년 제14대 21 / 299
1996년 제15대 16 / 299
2000년 제16대 5 / 273
2004년 제17대 2 / 299
2008년 제18대 25 / 299
2012년 제19대 3 / 300
2016년 제20대 11 / 300
2020년 제21대 5 / 300
2024년 제22대 0 / 300

제6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제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정당공천이 의무여서 무소속 출마가 차단되어 있었다. 이후로는 적게는 2석, 많게는 20석 넘게 무소속 후보들이 당선되었는데, 2024년 시행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2.3.3. 지방선거

연도 횟수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1952년 1952년 -[23] 85 / 306 7469 / 17544
1956년 1956년 -[24] 267 / 580 83 / 437 4852 / 16954
1960년 1960년 1 / 10 1110 / 1467 216 / 486 13688 / 16851
1991년 1991년 -[25] 115 / 866 -[26]
1995년 1회 2 / 15 53 / 230 152 / 875
1998년 2회 0 / 16 44 / 232 39 / 616
2002년 3회 0 / 16 30 / 232 26 / 682
2006년 4회 1 / 16 29 / 230 14 / 733 228 / 2888
2010년 5회 2 / 16 36 / 228 36 / 761 305 / 2888
2014년 6회 0 / 17 29 / 226 20 / 789 277 / 2898
2018년 7회 1 / 17 17 / 226 16 / 824 171 / 2927
2022년 8회 0 / 17 17 / 226 5 / 872 144 / 2988

2.4. 무소속 정치인 목록

2.4.1. 대통령

대한민국 대통령
파일:대한민국 대통령 문장.svg
이름 임기 선출 방법
취임일 퇴임일
4 파일:최규하대통령초상화.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최규하
(1919 ~ 2006)
10 1979년 12월 6일[27] 1980년 8월 16일 1979년 대선
간선 96.3%
5 파일:전두환대통령초상화.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전두환
(1931 ~ 2021)
11 1980년 8월 27일[28] 1981년 2월 25일 1980년 대선
간선 99.4%
  • 직선제 적용 상황에서 무소속 신분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은 없다.
  • 임기 중 소속 정당을 탈당해서 무소속 상태로 재임했던 대통령은 총 5명이다.

2.4.2. 국회의원

무소속 제12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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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제17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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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환 최인기 }}}}}}
무소속 제18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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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부 강운태 김광림 김무성 김세연
김영록 김태환 박지원 성윤환 송훈석
유기준 유성엽 유재중 이경재 이무영
이윤석 이인기 이인제 이진복 이해봉
정해걸 최구식 최연희 최욱철 한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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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제19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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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표 박주선 유성엽 }}}}}}
무소속 제20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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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부 김종훈 안상수 유승민 윤상현
윤종오 이철규 이해찬 장제원 주호영
홍의락 }}}}}}
무소속 제21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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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김태호 윤상현 이용호 홍준표 }}}}}}

22대 총선의 경우 무소속 출마가 금지되었던 6, 7, 8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헌정 사상 최초로 무소속 당선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2.4.2.1. 제22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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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우원식 }}}}}}}}}
  • 2024년 9월 1일 기준 (2명).
이름 지역구 탈당/제명일 탈당/제명 사유 탈당/제명 전
소속 정당
우원식 서울 노원구 갑 2024년 6월 5일 국회의장 선출에 따른 탈당
김종민 세종특별자치시 갑 2024년 9월 1일 당내 노선 차이로 탈당

2024년 6월 5일,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에 선출되면서 국회법에 따라 탈당을 하여 무소속이 되었다.

2024년 9월 1일,  김종민 의원이 새로운미래를 탈당하면서 무소속이 되었다.

2.4.3. 민선 광역자치단체장[35]

2.4.4. 역대 지방자치단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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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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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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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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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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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호 권영세 김문오 김성제 김영만
김종규 박우섭 심규언 심민 안병호
안상수 오규석 오영호 원경희 유두석
이상복 이용부 이정백 이현준 임광원
임우진 정현복 조길형 최수일 최명희
최양식 하계열 한규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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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오 송귀근 심민 엄태항 오규석
유기상 이정훈 정종순 정현복 최기문
최종환 황인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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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수 김진하 김희수 노관규
박홍률 박희영 심민 최기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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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국에서의 무소속

몇몇 국가에서는 고위공직자가 당적을 보유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 당선 시 탈당하기도 한다.

3.1.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법적으로 당적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당선 시 탈당해야 한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여당'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탈당을 했다고 해서 그 정당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사실상의 여당으로서 함께한다.
대수 이름 임기 대통령 당선 이전 정당 비고
6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Володимир Зеленський) 2019년 5월 20일 ~ 현직 인민의 종

3.2.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다르게 헌법상 대통령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관례상 대통령이 되면 탈당한다. 무소속이었다가 통합 러시아에 입당한 제3대 대통령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빼면 초대부터 현재까지 무소속이거나 당원이었다가 대통령이 된 직후 탈당하여 무소속이 되었다.

3.3. 미국

미국은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워싱턴[42] 이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없다. 상하원 또한 양당제가 고착화되어 상원에서는 키어스틴 시네마, 버니 샌더스, 앵거스 킹, 조 맨친 만이 무소속이고[43] 하원에서는 무소속 정치인이 없다.

다만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휴스턴, 댈러스, 내슈빌, 클리블랜드 등 몇몇 도시에서는 시장 선거를 정당 공천 없이 치르는 무당파적(Non-partisan) 선거를 실시하고 있다.[44] 무소속은 아니지만,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정당 예비선거 없이 "정글 프라이머리"를 해서 과반득표를 달성한 후보가 없으면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1, 2위가 같은 정당 소속이여도 결선투표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당적이 없는 상태로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45]

3.4. 브라질

브라질은 무소속이 정치 활동을 하기가 극히 어렵게 되어 있다. 헌법에서 공직 선거 출마 자격으로 당적을 가질 것을 규정했기 때문.

3.5. 유럽 의회

제10대 유럽의회
(2024 - 2029)
무소속 / 비교섭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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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8080> 국가 정당
의석수
그리스 그리스 공산당
2 / 21
민주애국운동-승리
1 / 21
자유의 길
1 / 21
독일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
6 / 96
2 / 96
진보당
1 / 96
독일을 위한 대안[46]
1 / 96
루마니아 S.O.S 루마니아
2 / 33
스페인 축제는 끝났다
3 / 61
슬로바키아 방향-사회민주주의
5 / 15
목소리-사회민주주의
1 / 15
공화국 운동
1 / 11
체코 보헤미아 모라바 공산당
1 / 21
통합 민주 - 무소속 연합
1 / 21
키프로스 피디아스 파나요투,(개인),
1 / 6
폴란드 국민운동
2 / 53
폴란드 왕관 연대
1 / 53
총계
32 / 720
}}}}}}}}} ||

[1] 국회의장, 장관, 국회의원 등. [2] 교육감의 경우 정당공천이 아니므로 당적이 없기에 모든 후보가 정당 기준에서는 무소속이다. [3] 정당이 있는 나라도 같은 당끼리 파벌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무소속도 예외가 없다. [4]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회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국회의장이 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국회의원 제도가 실시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현재의 비례대표제는 정치 신인들의 정계 입성 통로와 같은 역할로 기능하고 있기에 현 시점에서의 임기를 비례대표로 지내는 다선 국회의원이 나오기가 매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는 적어도 5선 이상은 지내야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데, 초선 국회의원, 특히 그 초선이 비례대표였다면 국회의장이 될 가능성은 그냥 없다고 보면 된다. 즉 지역구 당선도 안된 초선 의원이 의장을 한다는것을 의원들이 못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다선 국회의원을 지낸 중진급 정치인들이 전국구-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재입성하는 일이 자주 있었기에 비례대표 국회의장과 같은 상황이 종종 나올 수 있었지만 정치 신인들의 등용문이 된 21세기 한국 국회의 비례대표제에서 전직 다선 의원이 비례대표로서 다시 금뱃지를 달 가능성은 거의 없다. [5] 물론 김종인 전 대표가 전국구/비례로만 5선을 지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역구 4선을 지낸 후 19대 총선에서 비례로 당선된 적이 있으며 정운천 의원이 20대 총선에서 초선으로 지역구 의원에 당선된 후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배정되어 재선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박근혜는 그 당시 이미 대권주자이자 비대위원장으로서 일부러 당선권 밖의 비례순번을 자청했으나 예상치 못하게 당선된 케이스였고, 정운천의 경우 21대 비례대표들 중 기존에 의원을 했던 사람이 정운천 본인뿐이며 정운천이 전북에서 유일하게 영향력이 있는 보수 정치인으로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지역구가 새누리당에게는 사지인 전북이라는 특성상 정운천 없이는 미래통합당의 호남 정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지 당선 경력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자 보수당의 전북 정치인 배려를 위해서 비례대표가 된 특수한 케이스이므로 일반적인 비례 초선과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 전남의 이정현이 이때 왜 없냐면 이정현은 최순실 사태 때 새누리당 대표로서 책임을 지고 탈당해 있던 상황이라 당에서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6] 다만 지역구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의원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지 않은 정당은 무소속 후보자가 그 정당에서 지지받고 있음을 표명할 수 있다. [7]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이 되고, 유승민을 통해 친박을 견제하기 위한 비박계의 전격적인 제스처. 예외로 이 때 복귀했던 의원 중 한 명인 윤상현은 당시 친박이었다. [8] 소위 험지라고 불리는 지역들. 예를 들어 대구경북에서 민주당계 정당 당적으로 나가는 것이나 전라도에서 보수정당 소속으로 선거에 나가는 것을 들 수 있다. 진보정당 역시 같은 후보라도 당적 없이 출마할 때에 득표율이 더 나오는 경우가 있다. [9] 대신 이렇게 당선되는 경우 아무래도 후보자 입장에서 (당을 달고 당선되는 것 보다는) 당선의 가치가 조금 떨어져보일 수는 있기에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10] 민선 8기 기준 김희수 진도군수, 심민 임실군수가 이런 경우이다. [11] 시 면적 1000 제곱킬로미터 이상인 경우는 30만 명 이상 [12] 대표적인 케이스가 정몽준이다. 총 7번의 국회의원 당선 이력 중에서 5번은 울산 동구에서 당선됐고, 그 중 3번(13·15·16대)이나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는 아버지 정주영이 이끌던 통일국민당 당적으로 당선됐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통합21의 당적으로 당선됐는데, 국민통합21은 사실상 정몽준만의 1인 정당이어서 무소속 당선 때와 다름없다고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울산 동구는 정몽준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13] 실제로 18대 대선에서 4명의 군소후보는 모두 무소속이었는데, 이들이 얻은 득표율은 고작 0.41%. [14] 이 분야의 전문가가 대표적으로 박주선이다. 16대부터 21대까지 총선을 총 6번 출마하면서, 4선 의원을 바라보면서 당적을 가지고 출마한 적은 18, 20, 21 딱 세 번이다. 의외로 철새의 대명사로 취급받는 이인제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선거라고는 18대 총선 단 한 번밖에 없다. [15] 당시는 총선에서 2% 이상의 득표율을 얻지 못한 정당을 강제 해산할 수 있는 정당법 조항이 있었다. [16] 만약 등록 무효가 되었을 때가 등록기간 이내라면 재등록을 하면 되지만, 만약 등록기간이 지난 상태에서 등록 무효가 되었다면, 해당 선거에서는 더 이상 출마가 불가능하다. [17]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은 이 규정은 준용하고 있지 아니하다. [18]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은 이 규정은 준용하고 있지 아니하다. [19] 본래는 무소속 후보자가 한 선거구에 복수 출마할 경우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배정했으나 2010년 법 개정으로 현재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기호를 배정한다. [20] 국회 간선제 [A]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제 [A]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제 [23]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시행하지 않았다. [24]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를 시행하지 않았다. [25]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시행하지 않았다. [26] 3회 지선까지의 기초자치단체의회는 정당공천이 실시되지 않았다. 즉, 전원 무소속. [27] 취임식은 1979년 12월 21일. [28] 취임식은 1980년 9월 1일. [29] 대한민국 제2공화국은 의원내각제 형태였고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였다. 아울러 당시 헌법은 대통령의 당적 보유를 금하고 있어서 취임 직전 원 소속 정당이던 민주당을 탈당했다. [B] 임기 말 탈당 [B] [B] [33] 새천년민주당 구주류와의 갈등 끝에 탈당 후 무소속 상태에서 재임했다. 탄핵 소추 사태가 일단락된 2004년 5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B] [35] 당선 당시 무소속이었던 경우만 서술하도록 한다. [a] 임기 중 민주통합당 입당. [37] 임기 중 한나라당 복당. [a] [39] 임기 중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으나 경선에서 우근민에게 패배한 후 탈당. [40] 임기 중 새누리당 복당. [41] 임기 중 미래통합당 복당. [42] 조지 워싱턴은 정당을 만드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정당이 없었다. [43] 이마저도 시네마와 맨친은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가 노선 차이로 인해 탈당한 것이고 샌더스는 선거 시기마다 민주당 예비선거에 참여해 승리하는 방식으로 단일화를 한다. [44] 모든 도시가 무당파적 선거를 하는 것은 아니고 주 선거법에 따라 다르다. 가령 뉴욕시 필라델피아같이 평범하게 선거를 하는 곳도 있다. 이런 도시들에서는 대부분 민주당 예비선거가 본선보다 경쟁이 치열한 모습을 보인다. [45] 이로 인해 1991년 주지사 선거 당시 네오나치 성향의 데이비드 듀크가 본선에 올라간 바 있다. [46] 나치 옹호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막시밀리안 크라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주권 국가 유럽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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