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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칭더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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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95><colcolor=#fff> 출생 | 1959년 10월 6일 ([age(1959-10-06)]세) | ||
타이완성
타이베이현 완리향 (現 신베이시 완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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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제15대 부총통 | ||
2020년 5월 20일 ~ 2024년 5월 20일 | |||
제16대 총통 | |||
2024년 5월 20일 ~ 현직 | |||
서명 | |||
링크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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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95><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라이차오진, 어머니 라이퉁하오 | |
배우자 | 우메이루 (吳玫如, Wu Mei-ju) (1986년 결혼) | ||
자녀 | 2남 | ||
학력 |
타이베이현 완리향 완리 초등학교 (
졸업) 타이베이현 만리중학교 (졸업) 타이페이시립 젠궈 고등학교 (졸업) 국립타이완대학 의학원 (복건학계 / B.S.) 국립성공대학 의학원 ( 학사후의학계 / M.D.) 하버드 대학교 (공공위생학 / 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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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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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 4 | ||
의원 대수 | 4, 5, 6, 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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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의 제16대 총통. 대만 헌정 사상 처음으로 행정원장, 부총통, 총통을 모두 지낸 인물이다.의사 출신으로 민주진보당을 창립한 메이리다오 사건 이후의 세대이다.[3] 민진당 내에서도 대만 민족주의 기조에 적극 찬동하는 신조류계(新潮流系, 참조)의 대표 주자에 해당한다.[4]
2024년 1월 13일 치러진 제16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에서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2024년 5월 20일부로 취임하여 2028년까지[5] 16대 대만 총통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2. 약력
- 1996. 5. 20. ~ 1999. 1. 중화민국 국민대회 대표
- 1999. 2. 1. ~ 2002. 1. 제4대 입법위원 (타이난시 / 민주진보당)
- 2002. 2. ~ 2005. 1. 제5대 입법위원 (타이난시 / 민주진보당)
- 2005. 2. ~ 2008. 1. 제6대 입법위원 (타이난시 / 민주진보당)
- 2008. 2. ~ 2010. 12. 제7대 입법위원 (타이난시 제1선거구 / 민주진보당)[6]
- 2010. 12. ~ 2017. 9. 제1-2대 타이난 시장
- 2017. 9. ~ 2019. 1. 제29대 행정원장
- 2020. 5. 20. ~ 2024. 5. 19. 제15대 대만 부총통
- 2023. 1. ~ 제18대 민주진보당 주석
- 2024. 5. 20. ~ 현직 제16대 대만 총통
3. 생애
3.1. 초기
타이베이현 완리향(현 신베이시 완리구)의 가난한 광부 집안에서 태어나 지룽시 북부 해안가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 라이차오진(賴朝金)은 완리에서 태어나 루이팡에서 광부로 일했으나 라이칭더가 2살 때 탄광 폭발 사고로 사망하여, 라이칭더의 모친이 홀로 여섯 자녀를 키웠다고 한다.라이칭더는 완리초등학교(萬里國民小學), 완리중학교(萬里國民中學)을 나와 대만의 최고 명문고인 타이베이시립 젠궈고등학교(建國高級中學)에 입학했다. 중국국민당의 총통 후보였던 주리룬과 고등학교 동기라고 한다.
건국고등중학을 졸업하고 1978년 국립대만대학 의학원 재활학과(復健學系)[7] 입학, 1982년 졸업 후 진먼현에서 군의관으로 군생활을 마치고 런지의원(仁濟醫院)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1986년 국립성공대학 의대(醫學院) 학사후의학과(學士後醫學系)[8]에 진학해 1991년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이후 1994년까지 3년간 국립성공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수련을 받고 신장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신러우병원(新樓醫院)과 성대병원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보건대학원(Havard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수학하여 2003년 공공보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역대 행정원장 소개 및 성공대학 동문소식 참조.
3.2. 입법위원
1994년 타이완성 성장 선거에 민주진보당 후보로 출마한 천딩난의 선대위에서 '전국의사후원회' 회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도운 것을 계기로 정치에 뜻을 갖게 되었다.1994년 타이난시장 선거 후보로 출마하려고 민주진보당에 입당하였으나, 타이난 시장 후보로 지명받지 못했다. 1996년 국민대회(제3대) 선거에서 타이난 지역구 국민대표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8년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 타이난시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고, 2001년, 2004년, 2008년까지 모두 당선되어 4선을 하였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미국 소의 6개 위험 부위를 수입 금지한 식품위생관리법을 개정한 후 "식품법 개정은 국민의 승리"라고 밝힌 바 있다. 상술한대로 하버드 공공보건학 석사라서 의문이 들수 있는데, 그 당시엔 연구와 정보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의 백신 부작용 공포처럼 광우병 공포가 있어서 미국산 소고기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
3.3. 타이난 시장
2010년 대만 지방선거인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에 타이난 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60%의 득표율로 중국국민당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2014년에는 홍콩 우산 시위의 여파로 반중 성향을 지닌 시민들의 표가 몰리면서 72%까지 득표율이 더 높아졌다.타이난 시장 재직 초기인 2011년 마잉주 당시 중화민국 총통의 한어병음 사용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에 따라 타이난시에서는 모든 지명 표기법이 통용병음이나 우정식 병음,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을 사용하도록 조례로 정했다. 이 때문에 타이난은 일반철도 역을 제외한 모든 역이나 버스정류소, 도로 이름이 전부 통용병음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자매결연도시인 광주광역시에서 이름을 딴 광주로(光州路)의 영문 명칭이 통용병음을 따라 "Guangjhou Road"로 바뀌었다. 지금은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을 따라 "Gwangju Road"로 영문명칭이 또 바뀐 상태.
재선된 이후인 2016년 타이난 시 공용어에 영어를 추가하였다.
3.4. 행정원장
2017년에 린취안 행정원장( 국무총리 격)이 경제지표 부진과 대만 정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차이잉원 총통은 2017년 9월 8일에 라이칭더를 행정원의 행정원장으로 임명하여 시장직을 사퇴하고 중앙정부로 이동하였다. 2018년 7월에 라이칭더 주도로 2019년 1월 2일부터 대만의 공용어로 영어를 추가하는 영어공용화법을 통과시켰다.2018년 10월에는 낮은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차이잉원 총통 대신 2020년 대만 정부총통 선거에 민주진보당 총통 후보로 지명될 수 있는 잠재 대권주자로 평가받은 바 있다.
2018년 11월 24일의 대만 지방공직인원(지방정부) 선거에서 민진당이 6개 주요 단체장 가운데 2곳만 당선되며 패배하자 사의를 표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이를 즉각 반려했지만, 약 2주가 지난 12월 초에 "적당한 시기에 사퇴할 것"임을 밝혀 행정원장을 그만둘 것임을 재확인했다. 새해 예산안의 처리를 전후로, 타 부처 부장(장관)들과 함께 내각을 떠날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예상대로 2019년 새해 예산안의 통과 직후인 1월 11일 행정원장 사퇴를 발표했다. 이후 차이잉원의 간곡한 만류로 사퇴가 반려되는 듯 했으나 3월 결국 사임하면서 총통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3.5. 총통 후보 경선
행정원장직을 떠난 후에는 개헌과 타이완 독립운동을 주장하며 민진당과 독립 진영의 지지를 호소하는 행보를 보였다. # 다만 차이잉원 계파가 장악한 민주진보당에서는 라이칭더 前 행정원장의 개헌 발언이 즉각적인 개헌안 발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3월 18일 민진당 총통선거 후보 경선에 출마할 것임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재선에 도전하는 차이잉원 현 총통과 치열한 당내 경쟁을 치르게 되었다. 대만에서는 민주화 정착 이래 총통이 연임 의사가 있다면 대체로 당에서도 그 의사를 존중해 경선을 치르지 않고 바로 후보로 올리므로, 라이칭더의 경선 출마는 2018년 지방선거 참패로 인해 당 내부에서도 차이잉원은 끝났다고 평가받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또한 차이잉원의 소위 화독, 두 개의 중국에 가까운 성향과 온건한 양안관계 현상유지 정책에 타이완 독립운동 성향을 가진 당 원로들이 불만을 가지고 차이잉원보다 강경한 독립 성향으로 평가되는 라이칭더를 밀어주었다고 한다. 참조
5월에 들어 여론조사에서 차이잉원 현 총통을 앞서는 것은 물론,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비롯한 국민당 측 후보들과도 격차를 좁히며 민진당 내 후보 경선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총통이 되더라도 대만 독립을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며 급진 이미지를 누그러 뜨리려는 것으로 평가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라이칭더(賴清德) 전 대만 행정원장(사진 오른쪽·59)이 내년 있을 대만 총통선거에서 국민당 후보에 맞설 민진당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후보들과의 격차를 좁히면서다.
지난 14일 대만 빈과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뎬퉁(典通)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라이 전 원장은 한 시장과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39.7%의 지지율을 얻어 40.1%의 지지를 받은 한 시장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 연초부터 여러 매체에서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해왔지만 소숫점대 접전을 벌인 것은 처음이다. 같은 조건의 가상대결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사진 왼쪽)이 민진당 후보로 나설 경우 37.4%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면서 한 시장보다 5%포인트가량 뒤쳐진 것과 대조적이다. 대만 현지 언론들은 “국민당 후보들의 지나친 친중(親中) 행보에 불안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차이 총통의 대안으로 라이 전 원장을 지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민진당의 공천을 받을 후보 적합도 지지도 조사에서도 라이 전 원장은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30.7%의 지지율을 얻어 25.3%의 차이 총통을 앞질렀다. 6월 이후로 예정된 당내 경선에서도 차이 총통을 누르고 민진당 총통후보로 지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만 트럼프'에 맞설 적임자…라이칭더(賴清德)는 누구?
지난 14일 대만 빈과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뎬퉁(典通)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라이 전 원장은 한 시장과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39.7%의 지지율을 얻어 40.1%의 지지를 받은 한 시장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 연초부터 여러 매체에서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해왔지만 소숫점대 접전을 벌인 것은 처음이다. 같은 조건의 가상대결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사진 왼쪽)이 민진당 후보로 나설 경우 37.4%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면서 한 시장보다 5%포인트가량 뒤쳐진 것과 대조적이다. 대만 현지 언론들은 “국민당 후보들의 지나친 친중(親中) 행보에 불안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차이 총통의 대안으로 라이 전 원장을 지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민진당의 공천을 받을 후보 적합도 지지도 조사에서도 라이 전 원장은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30.7%의 지지율을 얻어 25.3%의 차이 총통을 앞질렀다. 6월 이후로 예정된 당내 경선에서도 차이 총통을 누르고 민진당 총통후보로 지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만 트럼프'에 맞설 적임자…라이칭더(賴清德)는 누구?
그러나 라이칭더가 차이잉원을 계속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오자, 차이잉원의 파벌이 장악하고 있던 민진당 지도부는 4월 15~17일로 예정되어있던 총통후보 경선을 뚜렷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5월 22일 이후로 미루었다. 참조. 6월 초에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던 경선을 위해 차이잉원이 원하는 대로 경선룰을 거의 다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잉원측에서 부정선거 시도를 벌인다는 소문이 돌자 라이칭더도 분노하고 말았다. 참조.
이렇게 민진당은 계속 시간을 끌며 차이잉원의 치적 홍보에 열을 올렸고, 특히 6월 9일부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지면서 정세가 불안해지자 국정 안정론에 힘입어 현직 총통인 차이잉원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경선에서 차이잉원은 "개혁은 절반만 완성했다"며 정책 지속성을 위해 자신의 재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중국에 대한 정책에서는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은 채 국제사회의 지지를 넓혀나가도록 하겠다"고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반면에 라이칭더는 강경한 대만 독립파를 지지 기반으로 해서 대만이 제2의 홍콩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으로 맞섰다. 차이잉원 무색케하는 '초강경파' 라이칭더, 차기 대만 대권주자 급부상
6월 13일 한궈위 중국국민당 후보, 커원저 대만민중당 후보와의 3자 대결 여론조사 방식으로 실시된 경선 결과에서 27% 대 35%로 차이잉원 총통에 8%p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양자 대결이 아닌, 차이잉원 측의 주장대로 3자 대결을 가정하자 라이칭더의 강경한 대만독립 입장에 대해 중국의 위협을 염려하는 유권자들이 커원저로 넘어가면서 차이잉원 대비 라이칭더의 상대적으로 지지세가 낮아졌다고 한다. 참조. 그러나 결국 총통 선거에 커원저는 출마하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 잡음이 많았지만, 경선 패배 후에는 결과에 승복하여 민진당 내부의 단결을 주창했다. 총통 선거에서는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를 호소하며 선거 운동에 나섰고, 11월 17일에 차이잉원은 그를 부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 그리고 2020년 총통 선거 결과 민진당이 승리하면서, 부총통에 당선되었다.
3.6. 대만 부총통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대만의 2인자이자 차이잉원의 뒤를 잇는 민진당의 차기 대권주자로서 확고히 떠올랐다.미국의 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만의 부총통에겐 별다른 권력이 없고, 존재감도 없어서 부총통이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인 행정원장이 자타공인 넘버2로 여겨진다. 즉, 라이칭더는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총통 차이잉원의 대권을 방해한 인물로 찍혀서 총통 선거 승리에 크게 공헌했음에도 불구하고 견제당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당시 시점에서 역대 부총통 중 장징궈가 후계자로 점찍어놓았던 리덩후이를 제외하면 롄잔은 부총통을 지낸 후 대권 도전에 실패하고 말았고 이외에는 부총통이 총통 후보가 된 적도 없다. 라이칭더의 전임 부총통(차이잉원 1기)인 천젠런은 코로나 19 사태 이후 대만 방역의 우수성을 알리는 인물로 세계 언론을 탔으나, 천젠런 개인은 본래 정치인이 아니었고 그를 뒷받침해줄 정치 세력도 없었다.
다만 당내에서는 차이잉원이 천수이볜 정권 시절보다 독립에 소극적인 것에 불만을 품은 원로들이 강경 대만독립파인 라이칭더를 총통으로 밀었고, 심지어 당내 경선에 불복해 독자후보를 내겠다고 했을 만큼 민진당 내부에서도 反차이잉원 기류가 강하게 존재하고, 차이잉원 입장에서는 이들 강경 대만 독립파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라이칭더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만큼 라이칭더 부총통이 이를 세력 기반으로 재기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총통 선거가 치러진 지 약 3주 후인 2월 초에 미국을 방문했다. 차이잉원의 재선 취임 선서가 거행된 5월 20일부터 정식으로 부총통 직무를 시작했다.
부총통직의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 판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차이잉원파(英派)에서는 라이칭더 부총통을 견제하며 차이잉원의 후계자로 밀었던 정원찬 타오위안시장이 타오위안의 방역 실패로 지지율이 급전직하한 데 반해서, 하버드대 석사를 나온 의사 출신 라이칭더 부총통은 전문성을 과시하며 여론조사 결과 과반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
신조류파의 대표로서 대만 독립에 대한 찬동 의사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며 지지자들의 지지를 결집시키고 있고, 취임 초부터 미국 방문에 이어 2022년 1월 27일에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회동하면서 1979년 미국-중화민국 단교 후 최초로 양국 최고위급(부통령) 대면 대화를 성사시켰다. # 그리고 특히 대일관계에서는 정계 입문 이후부터 계속해서 대만-일본의 연대를 강조해왔고,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할 정도로( 대만 부총통, 아베 조문 위해 일본행…단교 이후 최고위급 방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점차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022년 11월 26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이 대패하면서 차이잉원 총통이 당 주석을 사퇴하자, 한 달만에 주석 선거 출마를 선언하였다. 1월 15일에 실시된 당 주석 선거 결과, 99.65%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1월 18일에 새 민주진보당 주석에 취임했다.
2022년 시점에서는 차기 총통으로 중국국민당의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2023년 3월 4일에 국민당 쉬슈화(許淑華)의 난터우현장 취임으로 인한 사퇴로 치러진 난터우현 제2선거구 입법위원 보궐선거에서, 민진당 차이페이후이(蔡培慧) 후보가 접전 끝에 국민당 린밍전(林明溱) 전 현장을 꺾고 승리하였다.[9] 이 선거구는 2008년 분구한 이래로 국민당이 한 번도 뺏기지 않은 선거구라서 그 의미가 크다. 일단 당 주석 취임 후 첫 발걸음은 아주 완벽하게 디딘 셈.
3.7. 대만 총통 당선인
3.7.1. 총통 선거 당선
총통 선거가 다가오며 자연스럽게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사실상 당내에서는 경쟁 후보군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실제로 민주진보당 대선 경선 후보 등록 기간 동안 등록한 후보가 라이칭더 한 명밖에 없어 경선 없이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당초 대항마를 낼 것으로 보였던 차이잉원계에서 정원찬이나 천젠런을 부총통 후보로 밀어 계파의 안정 도모와 차차기를 노리는 전략을 쓴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라이칭더 못지않은 독립 지지자로 알려진 샤오메이친이 부총통 후보로 지명되면서 빗나갔다.
이전부터 국민당의 허우유이, 민중당의 커원저와의 3자 구도 여론조사에서 그 격차의 늘어나고 줄어듦은 있었지만, 쭉 1위를 유지해 왔으며, 끝내 단일화가 무산되어 허우유이와 커원저가 각각 대선을 치르게 된 효과를 톡톡히 봐서 당시부터 차기 총통으로 유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도 선거전 후반에는 허우유이 지지율이 상당히 올라오면서 여론조사 오차범위 내까지 따라붙으면서 누가 이기더라도 총통 선거가 접전이 될 것이란 분석이 대만 내부는 물론 외국에서도[10] 많았다.
2024년 1월 13일 20시 55분을 기하여 개표율 90퍼센트를 돌파한 상황에서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를 당초 예측보다 큰 90만표 이상으로 여유있게 이기면서, 제16대 총통 당선을 확정했다. 이로써 대만에서 민주화 이래 최초로 집권 여당이 선거를 통해 3기에 걸쳐, 8년 이상의 장기 집권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11] 그리고 처음으로 현직 부총통이 차기 총통 선거에서 당선되는 사례가 되었다.[12]
같은날 치러진 제11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민진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13] 20년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된 상태라 민진당 단독으로 정국을 끌어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관위로부터 받는 선거보조금 1억 6천만 대만 달러(약 68억원)를 자선단체 기부 등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
취임을 한달 정도 앞둔 4월 11일, 1차 내각 인선을 발표했다. # 24일에는 2차로 안보 분야 인선을 발표하였다. #
5월 2일. 전기요금 인상 두고 야권이 낸 법안을 통과되면서 임기 시작 전 정국 이끌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
5월 20일로 예정된 취임식 때 51개국 대표단, 외빈 508명이 참석할 것으로 집계됐다. 대만과 수교한 12개국 가운데 마셜제도와 팔라우, 파라과이 등 8개국이 정상급 대표단을 파견한다. 한국은 한국-대만 의원친선협회장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 이은호 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 대표가 대만 정부 초청을 받아 참석한다.
3.7.2. 입법원장 선출 파행
입법원 다수 장악에 실패한 탓인지 임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야당 측에서는 차기 입법원이 개원한 이후에 총통이 직접 입법원에 출석해 국회 대정부질문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차이잉원 1기에서 행정원장을 지낸 바 있기 때문에 라이칭더가 대정부질문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어 라이 당선인은 이에 반대하지는 않으나 헌법 위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라이칭더의 총통 임기 4년을 함께할 제11계 입법원장 2차선거에서 민중당 측 입법위원은 전부 기권하고 집권당 민진당 소속 현임 입법원장인 유시쿤[14]이 51표, 야당 국민당 소속인 한궈위가 54표를 얻어 입법원장직을 야당 국민당에서 가져가게 되었다. 반중 총통과 친중 국회의장이 정면충돌하게 된 것. 이를 두고 라이칭더 총통과 민진당 정부의 향후 집권 4년이 험로가 될 것을 예고하는 전망이 강해졌다. 한궈위가 이끄는 입법원에서 감찰원장 등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주지 않거나, 행정원장 불신임안까지 통과될 수도 있으며, 이럴 경우 라이칭더가 입법원을 해산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일단 중화민국 헌법 하에서 총통이 입법원을 해산한 적은 아직 없다.
이후 민진당과 민중당 사이에 서로 싸움이 붙어 법정 다툼까지 가게 되었다. # 전개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민중당 측이 입법원장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자당 명의 Facebook에 자신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저버리고 타 당과 권력을 나눠갖는 일은 결코 없을거라면서 민진당 측의 누군가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자신들에게 연락해와 “민진당 입법위원들은 입법원장 선거에서 민중당 황산산 후보를 지지할테니, 입법원 부원장 선거에서 민중당 입법위원들이 민진당 차이치창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2) 이에 민진당 측 대변인은 민중당 측 입장이 전해진 이후 자신의 Facebook에 민중당 측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민진당이 모 인사를 통해 오히려 커원저 측으로부터 “민진당 측이 입법원장 선거에서 민중당 황산산 후보를 지지해주면, 민중당 입법위원들은 입법원 부원장 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치창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제안을 비공식적으로 받았다며, 민진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유시쿤 제10계 입법원장이 계속 11계 입법원에서도 연임하는 것이라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3) 이후 국민당 측 후보가 입법원장-입법원 부원장직을 전부 차지하자, 위 공방이 더욱 정치적인 논란을 빚으면서 민중당 측은 민진당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사자인 커원저는 기자들과 직접 인터뷰를 하고, 이런 헛소문이 퍼지는 걸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며, 민진당 측과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들을 허위사실 유포로 법원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공언했다.
4) 이에 대해 민진당 측은 당 공식 명의로 민중당 입법위원의 2차투표 기권의 결과로 국민당의 친중파 한궈위 후보가 입법원장에 선출되어 국민들이 불안해한다고 커원저를 비난하며, 진실은 명확하다면서 해당 모 인사도 법정에 증언을 서주기로 했고, 커원저 측이 법원에 자신들을 고소해서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릴수 있게 된 점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민진당은 모 인사를 통해 민중당 커원저 측으로부터 민중당 입법원장-민진당 입법원 부원장 선출 로비를 받은 건 분명 사실이라는 점을 재주장하는 브리핑자료를 내었다. #
민진당 측 주장에 따르면 커원저 측의 민중당 입법원장 지지 요청 로비를 전했다고 한 해당 모 인사는 자신이 1월 31일경 커원저에게 전화를 받아 민진당 측에 전한 건 사실이라는 민진당 측 주장을 확인해주는 입장문을 언론에 내었다. #
이 사건으로 집권여당 민진당 측과 중도야당 민중당 측이 정치적 충돌을 빚게 되어 라이칭더 총통은 임기 4년이 시작하기도 전에 정부시책에서의 여소야대 입법원 협조를 전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민진당 라이칭더 총통의 정부가 여소야대 입법원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국민당보다는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인 민중당과 소연정을 꾸려 입법원의 협조를 얻을 복안을 꾸리고 있을 거라는 전망이 대다수 나오고 있는데, 국민당은 원래 민진당과 정반대 성향의 당이고, 이 사건으로 민중당마저 반(反)민진당으로 돌아서면 여당 민진당, 야당 중국국민당· 대만민중당 외에 대만 제11대 입법원에 원내진출한 정당은 없으므로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총통의 정부는 입법원에서 명백한 소수로서 과반 이상 의석을 확보한 두 야당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3.8. 대만 총통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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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칭더 총통 취임 연설 |
2024년 5월 20일 취임식을 열고 중화민국의 제16대 총통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했다. #[15] 취임 연설에서 차이잉원 전임 총통이 제시한 양안관계 "4대 원칙의 견지"(四個堅持)를 계승하고,[16] 자신의 독자적인 외교안보 노선으로서 "평화를 위한 4개 기둥"(和平四大支柱行動方案)을 제시하였다.[17] 본인의 탈중국, 대만 민족주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취임식에서는 중화민국 국가의 첫 구절인 "삼민주의 오당소종"을 불렀다.( 2시 6분 1초부터)[18]
취임 다음날 입법원에서는 정부 권한 견제 및 입법원 권한 확대를 골자로 한 5대 개혁안을 두고 소수여당 민진당과 국민당-민중당 연합이 팻말을 휘두르며 격렬한 언쟁을 펼치는 '동물 국회'가 펼쳐졌다. #
라이칭더가 총통으로 취임한 직후, 중국은 대만 해협 중앙선을 넘어 폭격기와 군함들을 배치해 이틀 간 대규모 훈련을 벌였다. #
5월 28일, 총통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의회개혁법안이 중국국민당, 대만민중당에 의해 통과되었다. #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 시위 35주년을 맞아 "권위주의 팽창에 용기 있게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6월 11일 대만 중앙통신에 따르면 궈야후이 총통부 대변인은 “라이 총통이 이날 ‘의회개혁법’ 이른바 ‘국회직권수정법(國會職權修法)' 수정 요구를 재가했다”면서 “관련 사안을 이날 오전 행정원과 입법원(의회)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 "평화 안정을 수호하고 지역 번영을 구축하고 세계 평화를 진전시키는 책임을 공동으로 짊어지자"고 제안했다. #
6월 16일, 황포군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위해, 군 통수권자로서 가오슝의 육군군관학교를 방문했다. 과거 국민당의 '공산당 퇴치' 역사를 부각하고 항일 역사의 맥락은 제거하는 등 반공주의를 강조했다. 또한 그는 "지난 100년 동안 역사와 상황이 바뀌었더라도 중화민국이 있는 곳엔 ‘황포 정신’이 있었다. 중화민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싸우는 것이 진정한 육군사관학교"라고 발언했다. #[19]
7월 19일, 대만 입법원(의회)의 총통견제법(의회개혁법)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결정이 나왔다. #
8월 30일, 사법원장(대법원장)에 처음으로 여성인 장원전 국립대만대 법학원 특별초빙 교수를 지명했다. #
9월 25일, 신뢰하지 못할 중국의 평화협정에 반대하면서, 동맹국 네트워크와 자주국방을 활용한 '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다. #
취임 100일 여론조사에서 50%대에 긍정적으로 표시했다. #
10월 5일, 쌍십절 관련 행사에서 "중화민국은 113살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75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조국론'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20] 이에 대해 야당 국민당은 양안 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고 비판하였다. .
10월 10일, 쌍십절 행사에서 중국이 대만을 대표할 권리가 없다며 주권 수호 결심이 불변하다고 말했다. # 그로부터 4일 후인 10월 14일, 중국은 하루 동안 대만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다시 실시했다.
10월 25일. 사법원이 국민당 등 야권의 주도로 통과된 입법원(의회)의 총통견제법(의회개혁법)에서 대부분의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 이로써 여소야대 구도에도 불구하고, 라이칭더 총통과 집권 민진당은 내치에서 어느 정도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21]
11월 30일부터 마셜제도·투발루·팔라우를 방문하는 6박7일 간의 '번영하는 남쪽 섬, 지혜의 영속' 순방에 나서며 이 기간 하와이와 괌을 들른다. # 먼저 하와이에서 대만 커뮤니티 관계자들 앞에서 한 연설에서 그는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하와이 싱크탱크 '동서센터'(EWC)에서 비공개로 열린 정책 좌담회에서 "중국의 위협이 대만의 최대 도전"이라고 밝혔다. #
4. 정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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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독'과 대조적으로 '대독'이라고도 한다. | }}}}}}}}} |
라이칭더는 천수이볜 이래 가장 적극적인 대만 독립 성향 총통으로 알려져 있었다. 과거에는 아예 개헌을 통해 중화민국이 아닌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으며, 2017년에도 스스로를 "대만의 독립을 위한 실용적인 일꾼"(務實台獨工作者)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22] 그러나 2020년대 들어서는 대만은 이미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의 독립 국가이기에 별도의 독립 선언이 필요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는데[23] 이는 중화민국 체제를 끝내고 완전히 탈중국적인 '대만공화국'으로 전환하려고 시도하면 탈중국화와 대만독립에 반대하는 중국이 양안전쟁을 일으킬 것이 사실상 확정적이기 때문에 기존의 급진적인 독립 노선을 완화한 것. 실질적으로는 (양안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경우) 차이잉원 시대보다 더욱 대만 정체성을 강조하되 국체는 중화민국을 유지해 중화민국을 대만화하는 포지션으로 가닥을 잡을 듯하다.[24] 이 때문에 대만 독립 강경파는 라이칭더를 껍데기만 있고 속은 빈 사람이라고 실망하고 있다.
중국은 진작부터 라이칭더를 '분열주의자', '트러블 메이커'(troublemaker. 말썽꾼) 등으로 험담하며 적대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25] 이미 라이칭더를 2008년부터 중국 대륙 전체에 입국 금지 시킨 상태이며,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과 마카오 정부에서 라이칭더를 입국 금지시킨 것도 그의 탈중국 노선에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26] 따라서 그의 집권 후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관계가 지난 차이잉원 정부의 8년 이상으로 험난해질 가능성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차이잉원은 적어도 " 현상유지"를 하는 선이었고 역사적으로 민주진보당 내에서도 주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라이칭더는 민진당의 주류 인사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탈중국, 독립 노선을 옹호하는 인물이다. 정작 라이칭더는 입국 금지 조치에 별다른 반응이 없거나 상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라이칭더는 이미 한어병음 전면 폐지를 대선 공약에 넣었고, 천수이볜 시절의 통용병음으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라이칭더 본인이 타이난시 시장 시절 한어병음 전면 거부를 시행하여 타이난시 일대는 모조리 통용병음만 쓰고 있는데, 본인이 총통에 당선됐으므로 이제 대만 전역에서 통용병음을 실시[27]하여 탈중국 노선의 상징적 조치로 삼을 전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기조를 마음대로 시행할 수 없는 것이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국민당 + 민중당 + 국민당계 무소속이 도합 62석으로 전체 113석 중 과반을 넘게 점유하고 있어 정부 출범부터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구도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캐스팅보트인 민중당 8석을 제외하고도 범람연맹만 해도 54석으로 민진당 51석보다 많다. 또 국가원수 자리는 지역 정치인이나 정당 대표급과도 완전히 다르기에 자기 원하는대로 전부 할 수 없음을 금방 깨닫고 유연한 행보를 보이기 마련이다. 라이칭더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선거 기간부터 차이잉원의 '현상유지' 기조를 승계할 것임을 강조하며 그동안의 '급진 독립' 이미지에서 탈피하려 애쓰고 있다.[28]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자유 민주진영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 #[29]
5. 어록
중국이 대만을 침범하는 이유는 실상 영토를 온전하게 회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영토 회복이 목적이라면 왜
아이훈 조약 체결로 현재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토지는 돌려받으려 하지 않는가?
바로 지금이 러시아가 가장 약해진 상황이 아닌가? 대만을 침략하는 목적은 진정 무엇인가?
규칙에 기초한 세계 질서를 바꾸려는 의도이다. 서태평양에서, 아니면 국제적으로 패권을 이루려는 의도다.
취임 100일 기념 대담에서
취임 100일 기념 대담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국가를
중화민국인지,
대만인지, 아니면
중화민국 대만인지 어떻게 기쁘게 부르는지를 막론하고,
모두 공통된 신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국가주권을 보위하려는 결심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만해협의 평화롭고 안정된 현상을 수호하려는 노력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의 양안의 대등한 존엄과 건강하고 질서 있는 대화와 교류를 희망한다는 약속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대손손 민주자유의 생활방식을 수호하겠다는 견지는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대만 2천 3백만 인민의 공통된 꿈이자, 대만 사회와 국제 사회의 공통된 이상이라고 믿습니다.
2024년 쌍십절 연설에서
2024년 쌍십절 연설에서
최근 우리의 이웃인 중화인민공화국이 막 75세의 생일을 지냈습니다. 며칠 있으면 중화민국은 113세 생일을 맞이합니다. 따라서 나이를 놓고 보면, 중화인민공화국은 절대로 중화민국 인민의 조국(
祖
國)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중화민국은 도리어 중화인민공화국의 75세 이상 되시는 인민의 조국이 될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 맞나요, 틀리나요? 중화민국이 대만과 그 부속 도서[30]에 뿌리내린 지가 벌써 75년이나 되었으므로 우리는 다시 이러한 관계를 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생일을 축하하려면 특별히 정확하게 축사를 써야 할 것입니다. 절대로 ‘조국’이라는 두 글자를 써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맞나요, 틀리나요?
대만의 친중 성향 연예인들이 건국 75주년을 기념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조국이라 지칭해 논란이 일어난 것에 대한 발언. 중화민국의 역사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보다 훨씬 길다는 점에 착안한 언어유희로 대만 내 친중파를 비판했다.
대만의 친중 성향 연예인들이 건국 75주년을 기념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조국이라 지칭해 논란이 일어난 것에 대한 발언. 중화민국의 역사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보다 훨씬 길다는 점에 착안한 언어유희로 대만 내 친중파를 비판했다.
6.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 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6 | 제3대 국민대회 선거 | 타이난시 제1선거구 |
|
41,083 (21.63%) | 당선 (1위) | 초선 |
1998 | 제4대 입법위원 선거 | 타이난시 | 31,296 (10.60%) | 당선 (4위) | ||
2001 | 제5대 입법위원 선거 | 45,899 (13.98%) | 당선 (2위) | 재선 | ||
2004 | 제6대 입법위원 선거 | 45,997 (14.51%) | 당선 (3위) | 3선 | ||
2008 | 제7대 입법위원 선거 | 타이난시 제2선거구[31] | 88,172 (51.64%) | 당선 (1위) | 4선 | |
2010 | 5대 직할시 시장 선거 | 타이난시 | 619,897 (60.41%) | 초선 | ||
2014 | 6대 지방공직인원 선거 | 711,557 (72.90%) | 재선 | |||
2020 | 제15대 정부총통 선거 (부총통) | 중화민국 자유지구 | 8,170,231 (57.13%) | 초선 | ||
2024 | 제16대 정부총통 선거 (총통) | 5,586,019 (40.05%) |
7. 여담
2024년 타이베이 투표장 |
* 당연하지만 본토 중국인들은 독립 성향인 라이칭더를 매우 싫어한다. 이 기사에서는 "라이칭더는 심전 뇌씨이므로, 푸젠성 장저우시가 본적지인 중국인이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며,[32] 바이두 백과 라이칭더 문서는 비난 일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
- 2016년 자신이 시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남부 타이난 지역에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밑창이 떨어진 신발을 신고 나온 모습으로 현장에서 피해 대응, 복구를 지휘하여 화제가 됐다. #
- 라이칭더가 당선되어 대만대 법학과의 24년 동안의 총통 독식은 끝났으나, 전공만 다를 뿐 대만대 학벌의 독식은 그대로다.[33] 리덩후이의 총통 승계(1988)부터 라이칭더의 첫 임기가 끝날 때(2028)까지 하면 40년이다. 또한 라이칭더는 마잉주에 이어 두 번째 젠궈고등학교 출신 총통이다.
- 민주화 이후 역대 대만 총통이 재선하여 8년씩은 하였기 때문에, 취임 전부터 라이칭더 8년을 전제한 예측성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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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 **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아미르가 겸직하여 사실상 군주에 가깝다. *** 이란의 국가원수는 라흐바르이며, 대통령은 정부수반이다. **** 현직 장성급 장교들이 국회의원을 겸직하는 정당이라 사실상 미얀마군 소속에 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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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 대만 | 대한민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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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진보당| 민주진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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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국민의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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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 찬드라 파우델 (초선) | 라이칭더 (초선) | 윤석열 | ||||
동티모르 | 레바논* | 몰디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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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하무스오르타 (재선) | 나지브 미카티 (권한대행) | 모하메드 무이주 (초선) | ||||
몽골 | 미얀마*, **** | 방글라데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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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흐나깅 후렐수흐 | 민 아웅 흘라잉 (권한대행) | 모하메드 샤하부딘 (초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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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 (초선) | 공석 |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초선) | ||||
아랍에미리트** | 예멘 | 우즈베키스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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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샤드 알알리미 (대통령 지도 위원회 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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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라티프 라시드 (초선) | 마수드 페제시키안 (초선) | 이츠하크 헤르초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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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 ** 산마리노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 아닌 두 명의 집정관이다. *** 오스트리아와 포르투갈은 헌법상 이원집정부제이나 사실상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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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 남오세티야 | 독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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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암 스피테리 데보노 |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6선) |
데니스 베치로비치 (초선) 젤카 츠비야노비치 (초선) 젤코 콤시치 (4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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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케도니아* | 북키프로스 | 불가리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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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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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다나 실랴노프스카다프코바 (초선) | 에르신 타타르 (초선) | 루멘 라데프 (재선) | ||||
산마리노* ** | 세르비아* | 스위스* | ||||
[[산마리노 기독교민주당| 산마리노 기독교민주당 ]][[자유 산마리노| 자유 산마리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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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진보당| 세르비아 진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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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당| 중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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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민주학원 주임 | 린빙종 | 여론조사센터 주임 | 천보저우 | |
회계실 주임 | 쉬메이화 | |||
◀ 역대 주석 | }}}}}}}}}}}} |
[1]
한어병음: Lài Qīngdé, 화어
통용병음: Lài Cing-dé.
[2]
#
[3]
대한민국으로 치면 포스트 386의 입구에 들어간 세대. 다만 본인은 1959년 (민국 48년)생으로 386보다는 약간 나이가 많다.
[4]
신조류계는
대만 민족주의를 내세우기는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대독파는 아니다. 라이칭더와 같은 신조류계인
정원찬 행정원 부원장과
천쥐 감찰원장은 화독파다.
[5]
전임 총통과 마찬가지로 연임을 하게 될 경우 2032년까지가 된다.
[6]
타이난 시장 취임으로 인한 중도 사임.
[7]
1967년 국립대만대학 의학원 의사기술학과(醫事技術學系)에 증설된 물리치료 전공을 기원으로, 1970년 직업치료 전공이 증설되어 학과(복건학계)로 독립하였다.
[8]
국립성공대학 의학원은 1983년 8월 한국의
의학전문대학원에 해당하는 학사후의학과, 약칭 後醫系로 대학을 졸업한 학사를 입학시켜 4년의 학과 과정과
인턴에 해당하는 1년의 실습 과정으로 이루어진 5년제 과정으로 출발했다. 이 학사후의학과는 1984년 2월 제1회 신입생이 입학했으므로 라이칭더는 성대 후의계 3기생이다. 참고로 성대 의대에 예과 과정을 포함한 7년제 의학사 과정은 1992년 설치되었다.
[9]
개표 내내 차이페이후이가 1000표 가량 앞서갔다.
[10]
미국-중국 패권 경쟁이 표면화된 이후 대만 문제에 대해 세계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관련한 분석도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
[11]
대만은 지난 1990년대의 민주화 이후로 모든 총통이 재선(4년 임기 기준)에 성공한 후 8년 주기로 야당에 정권을 넘겨줬으나, 라이 당선인은 같은 당 차이 총통의 재선 이후로도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12]
지난 2000년 선거에서 현직 부총통으로 선거에 출마한 국민당의
롄잔은 민진당
천수이볜에게 패하면서 대만 역사상 첫 정권교체의 희생양이 됐다.
[13]
민진당 51석, 국민당 52석, 민중당 8석, 범람연맹 계열 무소속 2석으로, 총원 113석 중 야권(국민당+민중당+무소속)이 62석으로 과반을 달성했다.
[14]
결국 입법원장 선거에서 패하자 비례대표 의원직을 전격 사퇴했다.
[15]
대만 남부 출신 답게 표준중국어 발음을 잘 들어보면 대만어 억양이 섞인 전형적인 대만 국어를 구사하고 있다.
[16]
'자유민주 체제의 유지', '중국과의 동등성', '주권 침탈의 불허', '대만인의 자결권 인정' 등을 포함한다. 차이잉원이 지난 2021년 10월의
쌍십절 기념사를 통해 제시하였다.
[17]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적 방위력의 강화', '경제안보 증진', '자유민주 진영과의 국제 연대 심화', '중국과의 양안 현상유지'로 나뉜다. 이들 내용은
총통 선거를 앞둔 2023년 7월 4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밝힌 것이다.
[18]
민진당 인사들은 국가의 해당 부분이 국민당을 연상시키기에 부르기를 꺼린다. 전임 차이잉원 총통도 1, 2기 모두 취임식 때 "오당"도 불렀는데, 그보다 대만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라이칭더가 부른 것은 의외라는 평.
[19]
계파적으로는 화독보다는 대독에 가까운 라이칭더지만 과거 천수이볜같이 중화민국을 탈피하려는 강경 대독 노선보다는 현 국체인 중화민국 정체성을 강조하는 등 화독 요소를 수용해 국민통합 및 (중공의 위협으로부터) 대만인의 단결을 이루려는 것으로 보인다.
[20]
반면 중국과 국민당 등 라이칭더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과거 리덩후이 전 총통이 내세운 '양국론'과 다름없다고 규정한다.
[21]
중국국민당과 대만민중당의 항소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22]
차이잉원 정부의 행정원장 시절인 지난 2017년의 발언으로
알려져 있다.
[23]
이를
화독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대독파인데 전쟁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독적인 요소도 수용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건 간에 과거의 순수한 대독 노선보다는 후퇴했다.
[24]
중화민국을 대만화한다는게 무슨 의미냐면 중화민국=대만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중화민국의 정체성의 중국 본토적 요소를 최대한 빼내고(소위 '탈중국화') 대만적인 요소를 최대한 강화하는 것.
[25]
그래서인지 중국은 라이칭더의 총통직 당선 직후 ‘주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 결과’라며 평가절하했다.
# 친중 성향인 국민당이 승리했던 지난 2018/2022년 대만 지방선거 당시에 환영 성명을 냈던 것과는 대조적인 반응.
[26]
중국과 밀착한
러시아나 북한도 라이칭더를 입국 금지 했을 가능성이 높다.
[27]
대만의
병음 표기 체계는 정부(행정원)의 권한이며, 입법원의 의결이나 감찰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다. 행정원장을 총통이 임명하니 원론적으로는 총통이 원하면 바꿀 수 있다. 다만 2000년대에 이 문제로 난리를 겪은 바 있어 뜻대로 될지는 의문.
[28]
대만에서 '현상유지'는 독립, 혹은 통일의 양극단과 거리를 두고 중국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다만 현상유지 자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만의 양대 정당인 국민당, 민진당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다. 국민당에서 추구하는 현상유지가 '중국과의 통일 지향'(즉, 대만의 분리독립 배제)을 전제로 하는 반면, 민진당이 내세우는 현상유지는 '중국과는 다른 독자 세력으로서 대만의 존속'을 뜻하기 때문이다.
[29]
그래서인지 그의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청천백일만지홍기와 함께
성조기,
일장기,
태극기를 걸어둔 것으로도 알려진다.
#
[30]
중화민국이 점유 중인
펑후,
진먼,
마쭈를 의미한다.
[31]
현재의
타이난시 제2선거구와는 이름만 같고 관할구역이 다르다. 당시의 타이난 2구는 현재 타이난시 제5선거구가 대부분 관할하고 있다.
[32]
사실이 아니다. 라이칭더의 선조가
명
청 시대에 이미 대만으로 이주했기에 라이칭더는
본성인이다.
[33]
중앙경찰학교 출신
허우유이가 총통에 당선되었다면 국민대만대학의 총통 독식 자체가 깨졌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