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17:24:55

아퀼리아 세베라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4A3800; margin: -5px 0px"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리비아 드루실라 소(小) 안토니아 리비아 오레스틸라 롤리아 파울리나 밀로니아 카이소니아 메살리나 소(小) 아그리피나 클라우디아 옥타비아 포파이아 사비나 클라우디아 아우구스타 스타틸리아 메살리나
네 황제의 해 갈레리아 푼다나
플라비우스 왕조 소 도미틸라 도미티아 롱기나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폼페이아 플로티나 울피아 마르키아나 살로니아 마티디아 비비아 사비나 대(大) 파우스티나 소(小) 파우스티나 루킬라 브루티아 크리스피나
다섯 황제의 해 플라비아 티티아나 만리아 스칸틸라 디디아 클라라
세베루스 왕조 율리아 돔나 풀비아 플라우틸라
마크리누스 노니아 켈사
세베루스 왕조 율리아 코르넬리아 파울라 아퀼리아 세베라 안니아 파우스티나 율리아 마이사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율리아 아비타 마마이아 살루스티아 오르비아나
군인 황제 시대 카이킬리아 파울리나 파비아 오레스틸라 안토니아 고르디아나 트란퀼리나 마르키아 오타킬리아 세베라 헤레니아 에트루킬라 코르넬리아 수페라 에그나티아 마리니아나 코르넬리아 갈로니아 코르넬리아 살로니나 술피키아 드리안틸라 빅토리아 제노비아 울피아 세베리나 마그니아 우르비카
사두정치 아우렐리아 프리스카 에우트로피아 갈레리아 발레리아 발레리아 막시밀리아
콘스탄티누스 왕조 플라비아 막시미아나 테오도라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 미네르비나 플라비아 막시마 파우스타 플라비아 발레리아 콘스탄티나 플라비아 율리아 콘스탄티아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의 딸 플라비아 에우세비아 파우스티나 헬레나
요비아누스 차리토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마리나 세베라 유스티나 알비아 돔니카 플라비아 막시마 콘스탄티아 레타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일리아 플라킬리아 플라비아 갈라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마리아 테르만티아 아일리아 풀케리아 갈라 플라키디아 아일리아 에우도키아 유스타 그라타 호노리아 리키니아 에우독시아
레오 왕조 아일리아 마르키아 에우페미아 플라키디아 율리우스 네포스의 아내 아일리아 베리나 아일리아 아리아드네 아일리아 제노니스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에우페미아 테오도라 아일리아 소피아 아일리아 아나스타시아 콘스탄티나
포카스 레온티아
이라클리오스 왕조 파비아 에우도키아 마르티나 아우구스티나 아나스타시아 그레고리아 파우스타 아나스타시아 에우도키아 하자르의 테오도라
아나스타시오스 2세 이리니
이사브리아 왕조 마리아 안나 하자르의 이리니 마리아 에우도키아 이리니 암니아의 마리아 테오도테
니키포로스 왕조 테오파노 프로코피아
레온 5세 테오도시아
아모리아 왕조 테클라 에우프로시나 테오도라 에우도키아 데카폴리티사 테클라 안나 아나스타시아
마케도니아 왕조 에우도키아 잉게리나 테오파노 마르티나키아 조이 자우치나 에우도키아 베아나 조이 카르보노프시나 테오도라 엘레니 레카피니 소피아 안나 가발라 엘레니 테오파노 마마스 베르타 테오파노 테오도라 엘레니 알리피아 조이 테오도라
콤니노스 왕조 불가리아의 예카테리나
두카스 왕조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 알라니아의 마리아
콤니노스 왕조 안나 달라시니 이리니 두케나 헝가리의 이리니 키예프의 도브로데이아 줄츠바흐의 베르타 안티오키아의 마리아 프랑스의 아녜스
앙겔로스 왕조 헝가리의 머르기트 에우프로시나 두케나 카마테리나 에우도키아 앙겔리나
라스카리스 왕조 안나 앙겔리나 아르메니아의 필리파 마리 드 쿠르트네 이리니 라스카리나 호엔슈타우펜의 안나 불가리아의 엘레나 아세니나
팔레올로고스 왕조 테오도라 팔레올로기나 헝가리의 언너 몬페라토의 이리니 아르메니아의 마리아 브라운슈바이크의 이리니 사보이아의 안나 이리니 아사니나 엘레니 칸타쿠지니 이리니 팔레올로기나 불가리아의 케라차 마리아 엘레니 드라가시 이리니 가틸루시오 안나 바실리예브나 몬페라토의 소피아 트라페준타의 마리아 }}}}}}}}}}}}
<colbgcolor=#8B0000><colcolor=#FECD21>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타
율리아 아퀼리아 세베라
Julia Aquilia Severa
파일:아퀼리아 세베라.jpg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아버지 퀸투스 아퀼리우스 사비누스
남편 엘라가발루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황후.

2. 생애

출생 당시의 이름은 아퀼리아 세베라이며, 엘라가발루스와 결혼한 이후 이름에 시리아 에메사 왕가의 성씨 율리우스를 여성화 시킨 이름 율리아를 덧붙였다.

카라칼라 황제 시대인 서기 214년과 216년에 집정관을 역임한 퀸투스 아퀼리우스 사비누스의 딸로, 엘라가발루스 황제가 집권했을 당시에 베스타 여사제를 맡고 있었다. 이 당시 나이는 보통 베스타 여사제의 선정 작업, 교육 훈련, 사제 활동 등을 생각하면 대략 35~40세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베스타 여사제는 순결을 지킬 의무가 있었으나, 엘라가발루스는 220년 하순경 저명한 귀족가문의 여식이었던 율리아 코르넬리아 파울라 황후와 이혼하고 그녀를 새 황후로 들였다. 디오 카시우스는 엘라가발루스가 이런 일을 벌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는 이리 함으로써 폰티펙스 막시무스와 베스타 막시움의 자녀를 낳고자 했다.

엘라가발루스와 아퀼리아 세베라의 결혼은 로마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원로원은 로마 전통과 로마법을 조롱한 황제의 발언과 태도에 큰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는 신부가 된 아퀼리아 세베라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녀는 이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 고대 기록들은 16세의 엘라가발루스가 스스로를 엘라가발의 대리인을 자처한 뒤, 베스타 여사제 중 훌륭한 가문을 둔 가임기의 아퀼리아 세베라를 점찍고 강간 후 강제로 결혼했다고 말한다. 즉, 종교적인 이유로 이 결혼을 강행했다는 이야기인데, 일부 고대기록들에 엘라가발루스를 폄하한 주장이 여럿 있어, 이를 연구한 학자들은 엘라가발루스가 베스타 여사제를 강간하는 미친 짓까지는 안 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반발은 심했고, 아퀼리우스 사비누스는 자신과 딸, 가문, 로마 제국의 정체성까지 능욕한 엘라가발루스의 태도에 불쾌감을 표현했다. 이는 원로원 의원들도 비슷해, 여러 의원들은 황제의 행동이 로마의 정신을 훼손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엘라가발루스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결혼에 반대하는 입장이던 신부의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명령을 받은 장교는 황제가 사용하는 시리아어(혹은 시리아 방언이 섞인 그리스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죽이라는 명령을 추방하라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퀸투스 아퀼리우스 사비누스는 목숨은 건진 채 이탈리아를 떠났다. 율리아 마이사는 이대로 가다가는 민중이 봉기하거나 야심가가 반란을 일으켜 겨우 복구한 왕조가 또다시 무너지고, 자신과 가문의 입지마저 위태로워질 것임을 직감했다. 이에 엘라가발루스에게 아퀼리아 세베라와 이혼할 것을 설득하였고, 엘라가발루스는 이에 따라 아퀼리아 세베라와 이혼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니아 파우스티나와 약혼했다.

그러나 마이사의 요청에 따라 카이사르로 삼은 알렉산데르 세베루스에게 민심이 급격하게 쏠리자, 엘라가발루스는 자기가 속았다고 여기고 221년 12월 안니아 파우스티나와 이혼하고 아퀼리아 세베라와 재혼했다. 여러 고대 기록들의 직간접적 증언에 따르면, 재결합 이후에는 그녀의 의지로 엘라가발루스와 함께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알렉산데르를 제거하려 했으나 222년 3월 12일 어머니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총신 히에로클레스와 함께 근위대에게 피살되었다.

222년 이후의 아퀼리아 세베라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녀가 살해됐다거나 처벌을 받았다는 말이 없고, 의지와 상관없이 반강제로 결혼하면서 베스타 여사제 직을 포기한 점, 엘라가발루스 몰락 후 울피아누스, 파울루스 등과 함께 그녀의 아버지 역시 명예회복을 하고 이탈리아로 귀국한 점을 생각해보면, 아퀼리아 세베라 역시 조용히 여생을 보낸 듯 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