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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사망 | 750년 |
동로마 제국 트라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 | |
아버지 | 비하르 |
남편 | 콘스탄티노스 5세 |
자녀 | 레온 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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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이사브리아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노스 5세의 황후. 최초의 유대계 황후다.2. 생애
별칭이 치차크(영어:Tzitzak, 그리스어: Τζιτζάκ)인데, '꽃'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설과 그녀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입은 의복을 묘사하는 단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732년, 동로마 황제 레온 3세는 아랍의 침략에 맞서 동맹을 맺기 위해 하자르족의 카간 비하르에게 사절을 보냈다. 두 사람은 의견을 교환한 끝에, 레온 3세의 아들이자 공동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5세와 비하르의 딸 이리니를 결혼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리니는 결혼을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내졌다. 그녀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된 뒤 아야 소피아에서 콘스탄티노스 5세와 결혼성사를 받았다. 이때 그녀가 입은 드레스가 매우 특이했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의복을 남성용으로 개조한 치차키아(tzitzakia)라는 예복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유행했다고 한다.테오파네스에 따르면, 이리니는 무척 경건했으며 성경의 말씀에 충실했다고 한다. 테오파네스가 성상 파괴 운동을 주도한 콘스탄티노스 5세를 증오했던 걸 미뤄볼 때, 이리니는 성상을 공경하는 입장을 취했기에 테오파네스의 찬사를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741년 6월 18일 레온 3세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노스 5세가 단독 황제가 되자, 그녀는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스의 처남 아르타바스도스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제국은 2년에 걸친 내전에 시달렸다. 이 당시 그녀가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750년 1월 25일, 콘스탄티노스 5세와 이리니 부부는 아들 레온 4세를 낳았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안 가 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콘스탄티노스는 마리아와 결혼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얼마 안가 사망하였고, 콘스탄티노스는 다시 에우도키아와 결혼하여 6명의 자식을 더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