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마리아 (Maria) |
출생 | 미상 |
사망 | 407년 |
아버지 |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
어머니 | 세레나 |
남편 | 호노리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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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의 황후.2. 생애
서로마 제국을 최후까지 수호한 플라비우스 스틸리코와 테오도시우스 1세의 조카인 세레나의 딸이다. 남동생으로 에우케리우스, 여동생으로 테르만티아가 있었다. 394년 임종을 눈앞에 둔 테오도시우스 1세는 스틸리코의 딸과 자신의 맏아들 호노리우스를 약혼시키고 스틸리코에게 섭정으로서 아들과 제국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395년 1월 17일 테오도시우스 1세가 붕어한 뒤, 스틸리코는 서로마 제국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결혼은 398년에 집행되었다. 스틸리코의 후원을 받던 시인 클라우디아누스는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송가를 지었다.비록 아가씨가 왕실과 어떠한 혈연도 맺지 않았지만, 아가씨의 아름다움은 아가씨를 왕국의 보물이 되게 할 겁니다. 어떤 얼굴이 홀을 쥘 수 있겠습니까? 어떤 얼굴이 궁전을 더 잘 꾸미겠습니까? 장미도 아가씨의 입술처럼 붉지 않고, 어떤 목덜미도 아가씨보다 하얗지 않으며, 어떤 앵초도 아가씨의 머리카락보다 노랗지 않고, 어떤 불도 아가씨의 눈보다 밝지 않습니다. 섬세한 눈썹이 아가씨의 이마에서 얼마나 멋진 간격으로 만나는지! 당신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보조개가 너무 많은 붉은 색과 섞이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조화입니까! 손가락은
아우로라보다 가늘고
디아나보다 어깨가 단단하며, 심지어
비너스도 당신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아리아드네의 연인인
바커스가 애인의 화환을 별자리로 바꿀 수 있었는데, 어째서 더 아름다운 아가씨에게는 별 왕관이 없습니까?
그 후 호노리우스가 라벤나 궁정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녀는 형제들과 함께 로마에 거주했다. 404년 초 호노리우스가 다섯 번째 집정관 서임식을 수행하기 위해 로마에 잠시 방문했지만, 그녀와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았고 라벤나로 돌아갈 때도 데려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호노리우스의 측근들이 '반야만족' 취급받던 스틸리코가 마리아가 호노리우스의 아이를 낳으면 너무 강력한 권세를 누릴 것을 우려해 호노리우스에게 아내를 가까이 하지 않도록 권고했으리라 추정한다.
407년 호노리우스가 로마에 또다시 들려서 6번째 집정관을 역임했지만, 마리아는 그해 2월에 죽었다. 조시무스에 따르면, 그녀는 처녀인 상태로 죽었다고 한다. 호노리우스는 아내가 죽자 아내의 여동생인 테르만티아와 재혼했다.
마리아의 유해는 콘스탄티누스 대성당으로도 알려진 옛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자리잡은 호노리우스 영묘에 안장되었다. 1544년 그녀의 무덤이 발굴되었고, 호노리우스가 마리아에게 준 펜던트 등 여러 보물이 발견되었다. 현재 이 보물들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