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17:02:23

갈족

흉노匈奴 선비鮮卑

1. 개요2. 기원과 중국 정착3. 흥기와 전성기4. 몰락5. 언어6. 갈족 관련 인물

1. 개요



중세 중국에서 활동했던 북방 종족으로, 위진남북조 시대 5부족인 오호의 일종이었으며, 흉노에 속해 있었다. '갈호'(羯胡)라고도 일컫는다.

2. 기원과 중국 정착

갈족은 본래 흉노족의 지배를 받던 피지배 종족의 하나로써 흉노의 일파로 여겨졌다. 원래 갈족의 (羯)은 '거세한 양'을 뜻하지만, '갈'(羯)은 중고한어캿(kiat) 정도로 재구성된다. 고대 튀르크어로 ‘khes’ 또는 ‘kit’는 돌을 뜻하며, 예니세이어족의 남예니세이어파에 속한 아린-품포콜어에서도 돌을 'kes' 또는 'kit'라고 하므로[1], 후조 황족의 성씨가 돌을 뜻하는 석(石)씨라는 점과 연결지어서, 민족명인 '갈'은 돌을 뜻하는 단어에서 기원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민족명에 쓰인 한자 '갈'(羯)은 당시 중국인들이 그들을 멸시하는 뜻으로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2]

코가 크며 눈 색깔이 푸르거나 수염이 붉고 많다고 기록되어 있어 중앙아시아에 살던 스키타이 아리아인의 후손인 소그드인 혹은 강거(민족), 월지 등과 연관이 있다고 여겨지는 토하라인으로 추측하는 학설이 있다. 또는 갈족의 정체를 예니세이계 민족으로 추측하는 설도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동북아 계통이지만 고대 아파나시에보 문화권[3]의 영향으로 이들도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 이전에 이미 혼혈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마지막 남은 후손인 케트족들은 벽안을 지닌 이들이 간간히 보이는 등 외모가 이국적인데, 중국 기록상에서 언급되는 갈족의 외모와 어느 정도 유사하다. # # # # 다만, 알렉산더 보빈을 포함한 언어학자들이 단편적으로 남은 갈족의 언어로 된 문장을 재구한 결과에 의하면, 케트족보다는 이들과 같은 예니세이어족 계통의 민족인 아린-품포콜족[4]과 가까운 민족일 가능성이 더 크다.

종교적으로 후조의 황실에서는 호천(胡天), 호천상제(胡天上帝)란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리아인과 연관짓는 학자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주신 아후라 마즈다로 추정하고, 튀르크 예니세이어족 계열로 보는 측은 텡그리로 추정한다. 옥황상제 항목에 나오는 호천상제와는 다르다. 대체로 이란으로 대표되는 페르시아권에서는 전자를, 몽골· 튀르키예· 헝가리 우랄 알타이 제어권의 범투란주의 진영에서는 후자를 정설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중국 측 기록에는 갈족이 식인을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고대 시베리아 원주민들 일부는 잉여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유 때문에 전쟁 포로를 바로 죽이거나 종종 잡아먹는 풍습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 노르드인들의 역사 기록에도 한대 지방 민족들의 식인 풍습이 종종 언급된다. 호밀, 귀리 같은 추운 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 보급되고 모피와 식량을 교환하는 무역이 성립되면서 식인 문화가 사라진 듯하다. 비슷한 이유로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아메리카에는 중세 때 이주해 와 정착한 바이킹들의 후손들이 없다. 이누이트들에게 전쟁 포로로 잡히는 즉시 다 죽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갈족의 식인 행위에 대한 기록은 이와 같은 원인이 있는 듯하다.

서기 1~3세기경 흉노가 동서남북으로 유린당하자, 흉노의 지배를 받던 갈족과 남흉노 및 동호가 중국으로 남하하여 후한 삼국시대 위나라에 종속되었다. 이들이 주로 정착한 곳은 중국의 최북단 지역 병주 유주로, 그 바로 위에 선비족이나 오환족 등과 같이 북방 종족들의 영역과는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당시 중국 고위층 사이에선 갈족 여자들이 미인으로 유명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어느 관리건 병주 유주의 자사로 부임한다고 하면 그 관리에게 갈족 여자를 구해다 달라고 청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인기가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남북조시대 동진 명제 선비족 혹은 갈족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수염이 갈색이었다고 한다.

3. 흥기와 전성기

5호 16국이 개막하면서 유연의 휘하에 있던 갈족 부하 석륵[5]은 자립하여 후조를 세운 후 유연의 조카 유요를 죽이고 전조를 멸망시켰다. 석륵과 석호 시대에 갈족의 후조는 중국의 화북 대부분을 제패하여 전성기를 이루었다.

4. 몰락

석호의 폭정으로 후조가 피폐해지고, 석호 사후 후계자 분쟁으로 어부지리를 얻은 염민 염위를 세우고 갈족을 비롯한 여러 호족(胡族)들이 따르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대량 학살하였다. 특히 갈족은 석호의 자손을 비롯해 남녀노소 20여만 명이 죽어 시체가 산더미를 이뤘다고 한다.

후조 멸망 후 세력이 크게 꺾여 오호십육국, 남북조시대 중기까지 잔존하기는 했으나 결국 한족, 선비족 등에 동화되었다. 북위 말의 패권자 이주영(爾朱榮)의 이주씨 일족, 소량(蕭梁)의 반란자 후경(侯景) 등이 선비족에 동화된 갈족이다. 이후 완전히 동화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오호 종족 중에서 인지도가 제일 떨어진다. 흉노는 대표적인 유목종족으로 잘 알려졌고 선비족 역시 북위 때문에 나름대로 유명하며, 저족 강족은 하다못해 삼국지에서라도 나와서 그나마 인지도가 있건만 갈족은 그런 것도 없다. 종종 말갈[6]과 같은 종족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다만 말갈을 중심으로 일부 갈족들과 선비족이 혼혈되고 이들이 퉁구스화되면서 여진족이 되었다고 한다.

5. 언어

진서에 "秀支替戾岡 僕谷劬禿當"이라는 갈족 언어로 된 문장이 딱 하나 등장한다. 여기서 '수지'(秀支/si̯u-ci̯e)는 군(軍)을, '체려강'(替戾岡/tʰei-let, lei-kɑŋ)은 나오다(出)를, '복곡'(僕谷/bok, buk-kuk, yok)은 유요의 오랑캐 직위 이름(劉曜胡位)을, 그리고 '구독당'(劬禿當/ɡi̯u̯o-tʰuk-tɑŋ)은 붙잡다(捉)를 일컫는다는 해설이 있다.

여러 학자들이 이 문장을 튀르크어족[7][8] 내지는 예니세이어족[9]에 속하는 언어로 보아 재구성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혹은 아리아인과 연관지어 고대 영어 혹은 고대 노르드어를 참고해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문장인 "Fylki dragan, Prōcūrātor clūs tūr takan(군대가 나오면 프로쿠라토르[10]를 잡아 탑에 가두리라)"으로 재구성한 시도도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부족한 상황. #

시베리아 중부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케트족과 연관성을 찾는 학자들이 늘어났다. 케트어 예니세이어족[11]에 속하는데, '갈'(羯)의 중고한어 발음 'Kiat'과 '케트'(Ket)의 발음이 유사한 점, 갈어의 동사 어미 -ŋ이 예니세이어족의 일반적인 동사 어미와 동일한 점, 갈어 단어 '구독당'(劬禿當)의 재구 발음 "kot-o-kt-aŋ"이 케트어 문장 "d-kas-a-qos-n"(그들이 잡을 것이다)과 유사한 점을 근거로 한다. 다만 "kot-o-kt-aŋ"의 /t/ 발음이 케트어 발음 /s/에 해당되는 품포콜어 발음 /t/의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동아시아 제어 연구의 권위자인 알렉산더 보빈은 갈족이 몽골 북부에 거주했던 예니세이어족 계통의 민족인 품포콜족 친연관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품포콜어의 형제격 언어인 아린어에서 싸움을 'Kel'이라고 하는데, 이는 재구된 갈어에서 군대를 의미하는 'Suke'의 두번째 음절과 부분적으로 일치하나 연관성이 의심되어 보빈은 이를 흉노어에서 온 차용어라고 제시했다.

6. 갈족 관련 인물

갈족이 세운 국가 또는 서진 이후의 갈족 소속 부족 계열은 제외.

[1] 사족으로, 현대 튀르키예어로는 Taş. [2] 실제로 이민족을 가리키는 한자명 중 좋은 뜻을 가진 글자는 별로 없다. [3] 기원전 2300년 무렵부터 기원전 1000년 즈음까지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예니세이 강 유역에서 생긴 인도유럽어족 계통 문화권으로,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일대의 선주민인 토하라인의 직계 조상이다. [4] 17세기까지 오늘날의 몽골 북부에 살았던 예니세이어족 계통 민족이다. [5] 석륵은 흙수저를 넘어 노예 출신이다. [6] 이쪽은 후손인 여진족 만주족이 각각 금나라 청나라를 세운 민족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갈족과는 인지도가 천지차이다. 한국에서도 옛날부터 지지고 볶고 하던 이웃 민족으로 엄청 유명하고. [7] 1922년 핀란드의 외교관이자 언어학자인 구스타프 J. 램스테트가 재구한 문장으로 Sükä talıqın bügüg tutun!(전쟁에 나가 복곡을 잡아라!). [8] 1948년에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루이스 바쟁이 재구한 문장으로 Süg tägti ıdqaŋ boquγıγ tutqaŋ!(군대를 보내어 공격하고, 지휘관을 잡아라!). [9] 미국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이 재구성한 문장으로 suke t-i-r-ek-ang bok-kok k-o-t-o-kt-ang(군대가 나갔으니 복곡을 잡아올 것이다). [10] 고대 로마에서는 황제 속주의 행정관을 뜻했다. [11] 이 어족을 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 및 유전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아 알래스카 캐나다 서부의 원주민 어족인 나데네어족과 묶는 데네예니세이어족이라는 가상의 어족 학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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