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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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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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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1997 | 2009 |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
2002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코치 |
2017 |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코치) |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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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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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차영화 해태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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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선 삼미 슈퍼스타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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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쌍방울 레이더스 |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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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홍 KIA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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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
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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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역대 도루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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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김일권 해태 타이거즈 / 53도루 |
김일권 해태 타이거즈 / 48도루 |
김일권 해태 타이거즈 / 41도루 |
김재박 MBC 청룡 / 50도루 |
서정환 해태 타이거즈 / 43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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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이해창 청보 핀토스 / 54도루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58도루 |
김일권 태평양 돌핀스 / 62도루 |
김일권 태평양 돌핀스 / 48도루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56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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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44도루 |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 75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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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 69도루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57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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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64도루 |
정수근 OB 베어스 / 44도루 |
정수근 두산 베어스 / 57도루 |
정수근 두산 베어스 / 47도루 |
정수근 두산 베어스 / 52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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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김종국 KIA 타이거즈 / 50도루 |
이종범 KIA 타이거즈 / 50도루 |
전준호 현대 유니콘스 / 53도루 |
박용택 LG 트윈스 / 43도루 |
이종욱 두산 베어스 / 51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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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이대형 LG 트윈스 / 53도루 |
이대형 LG 트윈스 / 63도루 |
이대형 LG 트윈스 / 64도루 |
이대형 LG 트윈스 / 66도루 |
오재원 두산 베어스 / 46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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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이용규 KIA 타이거즈 / 44도루 |
김종호 NC 다이노스 / 50도루 |
김상수 삼성 라이온즈 / 53도루 |
박해민 삼성 라이온즈 / 60도루 |
박해민 삼성 라이온즈 / 52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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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박해민 삼성 라이온즈 / 40도루 |
박해민 삼성 라이온즈 / 36도루 |
박찬호 KIA 타이거즈 / 39도루 |
심우준 kt wiz / 35도루 |
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 46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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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박찬호 KIA 타이거즈 / 42도루 |
정수빈 두산 베어스 / 39도루 |
조수행 두산 베어스 / 64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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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홈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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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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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
500도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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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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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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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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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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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KIA 타이거즈 등번호 1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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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1990~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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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91231><colcolor=#fff> 김종국 (1996~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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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걸 (2011~2012.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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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등번호 83번 | ||||||||||||||||||||||||||||||||||||||||||||||||||||||||||||||||||||||||||||||||||||||||||||||||||||||||||||||
정인교 (2006~2007) |
→ |
김종국 (2011~2012) |
→ |
홍우태 (2013~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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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등번호 77번 | ||||||||||||||||||||||||||||||||||||||||||||||||||||||||||||||||||||||||||||||||||||||||||||||||||||||||||||||
이강철 (2008~2012) |
→ |
김종국 (2013~2014) |
→ |
김기태 (2015~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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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등번호 74번 | ||||||||||||||||||||||||||||||||||||||||||||||||||||||||||||||||||||||||||||||||||||||||||||||||||||||||||||||
김실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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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 (2015~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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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 (2025~) |
A대표팀 참가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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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 金鍾國 | Kim Jong-kook[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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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3년 9월 14일 ([age(1973-09-14)]세) | ||
광주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광주서림초등학교 (졸업) 무등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 67회)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92 / 학사) |
||
포지션 | 2루수[2], 유격수[3]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 1996년 1차 지명 ( 해태) | ||
소속팀 | 해태- KIA 타이거즈 (1996~2010) | ||
지도자 |
KIA 타이거즈 2군 수비코치 (2011) KIA 타이거즈 2군 작전·주루코치 (2012)[4] KIA 타이거즈 1군 작전·주루코치 (2012~2021)[5]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21)[6] KIA 타이거즈 감독 (2022~2023)[7]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작전코치 (2019~2021) |
||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가족 | 아내 최세훈(1978년생), 아들, 딸 | |
응원가 | 함중아 - 내게도 사랑이[8][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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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내야수였다.[10]해태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서 나고 자라서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오로지 타이거즈 유니폼만 입고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도 단 한 번도 고향팀 타이거즈를 떠나지 않았던 원 클럽 맨 겸 프랜차이즈 스타 겸 로컬 보이다. 더구나 역대 타이거즈 감독 중에서는 사상 최초의 성골 순혈[11] 출신이었고 해태와 KIA 선수 시절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었기에 상징성이 남달랐다.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동명이인 연예인 김종국의 히트곡에서 따온 한 남자와 고글을 쓴 모습이 오리와 비슷하다는 데서 딴 고글 덕[12], 종국성[13]이 있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김종국(야구)/선수 경력 | |||||||||
1996~2005년 |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994년 | 2002년 | 2003년 | 2006년 | }}} |
3. 플레이 스타일
통산 타율이 .247에 시즌 최고 타율이 .287일 정도로 타격이 좋은 편이 아닌 전형적인 수비형 내야수였으나, 수비 실력이 워낙 뛰어나 기본기가 확실히 잡혀있었으면서도 안타가 될 법한 공을 신기에 가깝도록 쉽게 잡아내는 빼어난 수비를 보여준 2루수였다. 아마 시절부터 수비력 좋은 유격수로 유명했고, 프로에서도 무리없는 실력이었으나 해태 시절엔 이종범이 있었고, 이종범이 떠나고 유격수에 도전했으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가 부상에서 복귀했을 땐, 신예 홍세완[14]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수비에 있어서는 워낙 안정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15] 국제용 2루수라는 별명도 붙었고 실제로도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그 뿐 아니라 작전 수행능력과 도루 능력만 보면 당시 리그에서 손꼽힐 정도였으며, 커리어 하이였던 2002년에는 도루 50개로 1위를 기록하면서 정수근, 이종범, 전준호와의 경쟁에서 타이틀을 거머쥔 적도 있었다.[16] 통산 도루 성공률도 79.4%로 높은 편이다. 이종범과 함께 2000년대 초반 KIA 타이거즈의 테이블 세터를 이뤘으며[17], 2000년대 KIA 타이거즈의 센터라인을 굳건히 지켜주었다.4. 지도자 경력
김종국의 지도자 경력 | ||
통합 지도자 경력: 김종국(야구)/지도자 경력 | ||
2011~2021년 | 2022년 | 2023년 |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병역비리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 금메달리스트 자격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해태 타이거즈 선수 시절 병역 브로커에게 뇌물을 건넨 뒤 병역판정검사 내용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8] #[19] #[20]이 사실도 원래 알려지기는 1999년에 발각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묻혀졌다가 2024년 배임수재 혐의가 드러나면서 병역비리 사실도 함께 드러난 것이다.[21]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당시에도 병역비리에 연루된 KIA 소속 선수 가운데 유동훈, 이현곤, 손지환 이상 3인만 연루되고 김종국의 이름은 없었는데 이미 1999년에 걸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5.2. 배임수재 혐의
2024년 1월 28일, 김종국 전 감독이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KIA 타이거즈 구단은 25일 이 사실을 확인한 뒤, 27일 김종국 전 감독과의 면담에서 이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김종국 전 감독에게 직무정지 조치를 내렸다. # 구단 담당기자 김여울은 김종국 전 감독이 금품 관련 내용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고 자신의 SNS에 남겼다. # KIA 구단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후 김종국 전 감독의 거취를 포함하여 결정을 내릴 예정이며, 일단 1군 스프링캠프는 진갑용 수석코치가 대신 지휘한다.이후 기자들의 후속취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금품수수' 의혹이 맞았으며, 이로 인해 현재 검찰 수사까지 받았고 이미 2024년 1월 24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중요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일규)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을 청구한 상황이라는 것. 구단은 이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가 제보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앞서 불거진 독립구단 입단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고 구단은 밝혔다. # 정황상 수사 당국이 2023년 뒷돈 수수 혐의로 불명예 퇴진한 장정석 전 단장 관련 압수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장정석이 챙겼던 돈 중 일부 금액이 김종국에게 흘러갔다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
후속 기사에 따르면 김종국 전 감독과 장정석 전 단장 모두 KIA 타이거즈 후원사로 나선 커피업체로부터[22] "타이거즈 후원사로 나서기 위해 장정석 전 단장과 김종국 전 감독이 힘써달라"는 취지로 건넨 금품을 여러 차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여기에 특정 선수 기용 대가로도 받았다는 기사도 나왔다. # 김종국 전 감독에게 금품을 건넨 것으로 추정되는 60대 커피업체 오너는 전북특별자치도 출신으로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의 오랜 팬이었고 특히 김종국이 현역 선수 시절일 때부터 팬이었으며 팬과 선수 간의 관계로서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을 정도라고 한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종국 전 감독은 1억원대, 장정석 전 단장은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았다고 한다.
2024년 1월 2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중요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일규)는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1월 24일, 김종국과 장정석 전 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김종국은 공무원이 아니라 사인(私人)이기 때문에 혐의는 뇌물수수죄가 아닌 배임수재죄가 된다. 영장실질심사는 KIA 타이거즈의 스프링캠프 출국일인 2024년 1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오전 10시 30분에 이뤄질 예정이다. # 담당 판사는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
구속영장 신청 소식이 알려진 직후 KIA 구단은 김종국 전 감독의 수뢰 사실을 "품위손상행위"로 판단한 뒤 감독직에서 경질하기로 결정했다. # 다음은 KIA 구단 사과문 전문. #
팬 여러분께 사과 드립니다
KIA 타이거즈는 김종국 감독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로 KIA 타이거즈 팬과 KBO리그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야구 팬, 그리고 KBO리그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쳤습니다. 깊은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구단은 해당 사실을 인지한 즉시 김종국 감독과 면담을 통해 즉시 사실 관계를 빠르게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수사 결과와 관계 없이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된 이상 정상적인 시즌 운영이 불가하다고 판단해 직무정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KIA 타이거즈는 이번 사안에 대해 큰 책임을 통감하며 과오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감독 및 코칭스태프 인선 프로세스 개선, 구단 구성원들의 준법 교육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또한, 향후 구단 운영이 빠르게 정상화 될 수 있도록 후속적인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프로야구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팬 여러분께 불미스러운 일을 전해드리게 되어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KIA 타이거즈는 최근 불거진 장정석 단장의 품위 손상 행위에 대해 KIA 타이거즈 팬 여러분은 물론, 프로야구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팬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KIA 타이거즈는 김종국 감독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로 KIA 타이거즈 팬과 KBO리그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야구 팬, 그리고 KBO리그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쳤습니다. 깊은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구단은 해당 사실을 인지한 즉시 김종국 감독과 면담을 통해 즉시 사실 관계를 빠르게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수사 결과와 관계 없이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된 이상 정상적인 시즌 운영이 불가하다고 판단해 직무정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KIA 타이거즈는 이번 사안에 대해 큰 책임을 통감하며 과오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감독 및 코칭스태프 인선 프로세스 개선, 구단 구성원들의 준법 교육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또한, 향후 구단 운영이 빠르게 정상화 될 수 있도록 후속적인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프로야구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팬 여러분께 불미스러운 일을 전해드리게 되어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KIA 타이거즈는 최근 불거진 장정석 단장의 품위 손상 행위에 대해 KIA 타이거즈 팬 여러분은 물론, 프로야구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팬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navertv(46458727)] |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 김종국 전 감독과 장정석 전 단장 |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 김종국 전 감독 |
검찰에 따르면 김종국은 2022년 7월 인천 문학구장에서 업체 회장을 만나 100만원권 수표 60장을 받았는데, 검찰은 이 과정에서 해당 업체가 구단 유니폼 견장 광고 계약 체결 및 편의를 부탁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4]
30일 오후 12시 경, 영장실질심사 후 장정석 전 단장과 함께 서울구치소로 이동해서 대기하였고, 오후 10시 경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석방됐다.
2024년 3월 7일 장정석과 함께 불구속 기소되었다.
5.2.1. 재판
- 사건번호:
- 재판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
- 10월 4일, 법원은 "피고인들이 뭐 하나 잘한 게 없다. 연봉협상을 담당하는 단장으로서 KIA 타이거즈를 위해 일한다는 임무에 반해 뒷돈을 챙기려고 했던 점이 있고, 커피 광고 계약과 관련해서는 돈을 받아야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점이 있다"면서도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아야 할 상황이란 점은 다 인정하고 있지만, 형사적 문제가 됐을 때 그 죄가 성립된다는 것과 직결되진 않는다"며 장정석, 김종국, 후원업체 사장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
6. 여담
- 타이거즈 역대 감독 중 타이거즈 선수 출신으로는 김성한, 서정환, 선동열에 이어 4번째 감독인데 현역 시절 해태 타이거즈와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모두 입어 본 최초의 감독이다. 특히 해태 시절에는 해태라는 팀명 체제로 치른 마지막 경기인 2001년 7월 29일 광주 삼성전의 선발 베스트 10으로 출전했는데 당시 1번타자 2루수[25]였다.
- 이외에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선수 출신 중 처음으로 프로 팀 감독을 달았다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26]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전 2루수였기 때문. 감독 선임 직후 시점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으나, 2022 시즌 후 같이 WBC 엔트리에 있었던 이승엽과 박진만이 각각 두산과 삼성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유일한 사례는 아니게 됐다.
- 국내 선수들은 물론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광주일고 시절과 해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KIA 인수 초창기에는 군기반장이었으며[27] 주장을 한 적도 있다. 광주일고 후배인 이호준은[28]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특히 김종국에게 많이 맞았다고 털어놓았다.[29][30] 선수 생활 말년에도 그 기질이 있었는지 말년에 잠깐 선수 생활을 함께했던 최경환도 박명환의 유튜브 채널인 박명환야구TV에 나와 관련 이야기를 풀었는데, 당시에도 김종국이 후배들의 기강을 굉장히 잘 잡았다라고 회상했다. 출처 본인이 갸티비에서 말하길 자신은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프로 선수면 프로 선수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기강을 잡았다고 밝혔다.
- 별명으로는 동명이인 가수 김종국이 부른 노래 제목에서 유래한 '한남자'가 있으며 잘할 때는 '한남신'으로 업그레이드 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플레이가 달라졌다고 해서 '딴남자'라고도 불렸는데, 타격 센스가 나아졌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크지만, 바로 전년도에 1년에 에러 2개[31] 밖에 안 냈던 선수가 한 경기에서 에러 2개를 저질러 악마와 거래를 해서 타격과 수비를 바꿨다는 말이 나온데서 나온 별명이다. 이외에도 트레이드 마크인 돌출된 입과 고글 때문에 '제트오리', '고글덕' 등의 별명도 있었으며, 국제전에서 특히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국제용 2루수'로도 불렸다. 이래저래 야구에서 지명타자도 있듯이 지명수비 제도가 있었다면 이종열, 김재걸과 더불어 주가가 더 높았을 선수였다.
- 원래는 안경을 쓰고 플레이했으나, 은퇴 후 코치가 된 뒤로는 김종국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안경이 사라졌다. 라식 수술을 받은 뒤로 안경과 작별했다고. 다만 감독 취임 이후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고 마스크까지 같이 착용해서 경기 중에는 아예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리고 있다.
- 김종국의 선수 시절 등번호였던 16번은 김종국의 은퇴 후, 김희걸이 가져갔으나[32] 2012년 시즌 중반에 삼성과 이뤄진 트레이드로 이적하면서 온 조영훈이 16번을 달게 되었다. 조영훈이 안경을 쓰고 16번을 단 모습이 김종국과 유사해 일부 KIA팬들은 흥분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을 같이 세우고 보니 좀 닮았다. 물론
조영훈은 왼손잡이
좌투좌타, 김종국은 오른손잡이
우투우타이기 때문에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조영훈이 2012 시즌 후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으로 이적하면서 이러한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 앞서 나왔던 것처럼 곱상했던 20대 시절엔 해태 시절이나 KIA나 아저씨 팬 비중이 높은 타이거즈 선수치고 여성 팬이 많은 편이었다. 은퇴한 후에도 종국 코치를 연호하는 여성 팬들이 보이는 편이다. 홍세완이 김종국의 여성 팬과 결혼했고 본인도 이것을 뿌듯하게 생각한 듯. 여기
- 마구마구에서는 3슬롯에 하이점프캐치를 단 준수한 레전드 카드로, 타이거즈 계열 세트덱에서는 필수 카드였"지만" 1999 홍현우 엘리트 카드 베테랑이 가능해지면서 290만 거니를 호가하던 카드에서 50~60만 거니 선에 거래되는 쩌리로 전락했다. 물론 지금도 간간히 쓰고 있기는 하지만...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성한이 언급하기를, 수비력은 최고였으나 타력이 좋지 않아 본인이 타격코치 시절 열정적으로 가르쳐서 2할 1푼대의 타율은 2할 7푼대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김성한이 나가자마자 타율이 원상복귀되었다는 게 함정.
- LG 트윈스의 류지현과 함께 역대 프로야구를 통틀어서 순혈성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지역 최고 명문 야구부인 광주일고를 나왔으며,[34] 대학 졸업 후, 제2의 이종범으로 기대를 받으며 최고 명문팀이던 해태 타이거즈에 1차지명되었고, 구단 역대 최고 명장인 김응용 감독의 지도 하에 두 번의 우승에 기여하며 왕조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힘을 더했다. 이후 모기업이 KIA로 바뀐 후에도 우승을 경험하였고, 2010년 은퇴 후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쉼 없이 코치 생활을 하였으며, 2017년엔 코치로도 우승을 경험한다. 그리고 2022년에는 팀의 감독에 취임한다. 정리하자면 선수 시절에 팀에 기여한 바가 큰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모기업이 바뀌기 전후의 우승을 모두 경험하였고, 팀의 왕조의 막바지를 함께하였으며, 코치 시절에도 우승을 경험하였다. 더불어 코치 시절까지 이적은 물론 휴식기도 없는 완전한 원클럽맨에다 연고지역 출생에 지역 최고 명문 출신의 로컬 보이까지 해당한다.
- 비슷한 시기에 단장으로 함께 부임한 장정석과는 1973년생 동갑이며 1996년 프로 데뷔 동기이기도 하다. 2002년 장정석이 현대에서 KIA로 트레이드된 후 3시즌간 KIA에서 두 사람이 한솥밥을 먹었다. 장정석은 김종국을 차기 감독으로 낙점하며 " 선수 시절 3년 동안 함께 해보니 결단력도 있고, 잘못하면 따끔하게 혼내는데도 후배들이 진심으로 따르는 모습을 보았다. 실질적인 리더였다"고 회상했다.[35] 그리고 배임수재혐의로 나란히 검찰에 출두하여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 감독 생활 중 선수 기용에 아쉬움을 보이며 KIA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고, 이 때문에 트위터같은 곳에서는 김종국을 욕하는 트윗이 도배될 때 마다 동명이인 가수의 팬들이 억울하게 고통받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36]
- 광주일고 동기 박재홍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으나 둘의 사이는 세간의 평과 달리 좋은 편이다. 이태일 기자 블로그 스톡킹에 박재홍이 출연할 당시 박재홍은 김종국의 수비력이 탄탄했다고 칭찬했고 반대로 김종국은 '박재홍은 공,수,주 3면 모두 완벽했고 그야말로 야구천재'였다고 밝혔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진이 보도됐다. 2022년 창원NC파크 2023년 인천 SSG랜더스필드
- KBS 9시 뉴스 기사에서 배임수재 혐의에 대해 "돈 받은 건 맞지만 감독이 후원업체 선정에 개입 못해 문제될 행동 하지 않았다"라는 망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
-
김종국이 경질되자
또무한도전에서 이를 예견한 듯한 짤이 나왔다. #
7. 관련 문서
[1]
WBSC 공식 등록명.
[2]
1359경기 중 1024경기 출전하였으며, 커리어하이였던 2002년엔 골든글러브 수상과 국가대표 발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주 포지션은 2루수였지만,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한 적도 있으며, 1루수와 3루수로 출전한 적도 있다. 주로 키스톤 콤비의 역할을 맡았지만,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했다.
[3]
아마 시절 유격수로 유명했으며, 프로에서도
이종범이 떠난 유격수 자리에 정착할 뻔했지만 부상으로 무산되었고, 부상에서 복귀했을 땐, 신예
홍세완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다시 2루로 정착하였다.
홍세완이 부상으로 이탈이 잦아진 2004년부터 유격수 출전이 늘어났고, 2007년까지 2루수 못지않게 유격수로 출전하였다. 통산 284경기 출전.
[4]
~6월 11일.
[5]
2012년 6월 12일~2021년 5월 19일
[6]
5월 20일~.
[7]
2024년 1월 29일, 품위손상행위로 경질.
[8]
KIA의 김종국~ 오오오오오오오~ KIA의 김종국~ 당신뿐이라오~.
[9]
이 응원가는 후배
안치홍이 물려 받았으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아 별로 쓰이진 않았다.
[10]
주 포지션은 2루수이고 유격수도 가끔씩 봤었다.
[11]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광주광역시에서 학교를 나와서 광주광역시 연고팀에서만 선수와 코치를 지낸 사람은 역대 10명의 감독 중 김종국이 유일했다. 3대 타이거즈 감독인
김성한도 타이거즈 연고지 출신으로 연고지 내 학교를 나와서 타이거즈에서만 선수와 코치를 지낸 뒤 타이거즈 감독을 지냈으나 광주광역시가 아닌 군산시 출신이다.
[12]
엉덩이가 커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
[13]
수비력이 좋아 2루 자리에 성벽이 있는 것 같다는 의미의 '종국성', 이 별명은
형의
서남 방언인 '성'과 발음이 같아 종국이 형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한다.
[14]
매해 두자릿수 홈런에 유격수 최초 100타점을 기록할 정도로 전도유망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아쉽게 활약 기간이 짧았다.
[15]
총 14시즌 동안 통산 실책이 단 112개.
[16]
경쟁자였던 저 3명이 모두 KBO 역사에 남을 대도임을 기억하자.
[17]
데뷔하고 몇년간은 주로 9번타자로 나섰으나 부상을 털어내고 기량이 오른 후, 01년에 복귀한 이종범을 받쳐주는 당시 유행하던 작전 수행과 빠른 발 스타일의 2번타자 역할을 수행해냈다. 특히 2002년도엔 그의 실력이 정점에 올라 50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의 타이틀을 얻게 되고, 그해 2루수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18]
이 당시 함께 적발된 사람 중에는 당시
LG 트윈스 선수였던
서용빈도 있었다. 병무청 직원에게 2500만원 상당의 술 접대를 하는 조건으로 병역 면탈을 시도했던 사실이 이 때의 사건이었다. 다만 병역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뇌물공여죄가 인정돼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했다.
[19]
부친을 통한 병역면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0]
해당 커뮤니티를 통해 김종국의 병역비리가 밝혀졌다.
[21]
사실 대중화된 IT 기기가 없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당시 병역비리 사실을 알고 있던 야구팬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22]
'인크커피'라는 커피업체로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 2024년 초대형 매장을 입점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23]
양승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고려대학교 야구부 감독 시절 억대의 금품을 받고 입시 부정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된 적은 있으나 롯데 감독에서 물러난 뒤의 일이었다.
[24]
시기상 2022년 7월 1일 ~ 2022년 7월 3일 문학 SSG전 도중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KIA는 문학 SSG 3연전을 연달아 1점차 패배로 스윕당해 7연패의 수렁에 빠지고
소크라테스 브리토가 코뼈 부상을 당하는 등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못 한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감독이라는 작자가 팀을 추스르지는 못 할 망정 뒷돈 받는데만 급급했다며 분개하는 팬들이 많다.
[25]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라인업은 1번 김종국-2번
최익성-3번
장성호-4번
산토스-5번
신동주-6번
이동수-7번
김창희-8번
김상훈-9번
홍세완이었다.
[26]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 출신 감독은
김한수가, 올림픽 대표팀 선수 출신 감독은
김기태가 최초다.
[27]
해태 시절까지 포함하면
김일권,
김성한,
이순철,
송유석,
이호성 순으로 군기반장 계보가 이어진다.
[28]
고교 기수로 보면 이호준이 2년 후배지만 해태 입단 연번으로 치면 1994년에 입단한 이호준이 1996년에 입단한 김종국보다 더 먼저다. 이호준은 고졸로 입단했고 김종국은 대졸로 입단했기 때문. 그러나 프로 경력이 아닌 나이로 선후배를 가르는 야구계 특성 때문에 이호준은 김종국을 깍듯이 선배로 모셨다고 한다.
[29]
이 때 이호준이 한 말은 "내가 1학년 때였는데 3학년 형들은 타격감이 떨어질 때면 여지없이 1학년 후배들을 인간 타이어로 삼아서 방망이로 때렸다. 참고로 그때 3학년이 재홍이 형이었다. 펀치력이 셌던 재홍이 형에게 맞을 때는 엉덩이가 들썩거렸다"고 하니까 옆에서 스윙 연습하던
박재홍이 갑자기 째려보며 "야! 누가 그러면 진짜 내가 때린 줄 알잖아~"하고 푸념섞인 원망을 했다. 그러자 당황한 이호준이 타겟을 바꿔 "재홍이 형한테는 한 대도 안 맞았다"면서 "종국이 형한테는 많이 맞았지"라고 말을 바꾼다.
[30]
하지만 프로에 와서는 성격을 바꾼 듯, 점잖은 학구파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2009년 한국시리즈 때 사람들이 놀란 것이다.
[31]
참고로 이 기록은 역대 2루수 1시즌 최소 실책 타이기록이다.
[32]
참고로 이 번호를 탐내던 또 다른 KIA 선수는
짐짝.
[33]
옛 광역 연고권인
전라도 전체로 역대 타이거즈 감독의 출신지 범위를 넓히면 해태 원년 멤버였던 전북 군산 출신
김성한 전 감독도 포함된다.
[34]
대학교의 경우, 당시 연고지에 야구 명문 대학은 물론 야구부가 있는 대학교 자체가 없었기에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나 구단 최고 레전드인
선동열의 모교이자 후에 소속 구단의 모기업 회장이 되는
정의선 회장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였다.
[35]
08~09년간 같이 선수생활을 하던 최경환에 따르면, 평소엔 조용하나 분위기를 잡을 땐 확실히 하는 스타일의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36]
이는 야구 관계자들과 동명이인의 연예인이 있을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