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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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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민족3. 편견
3.1. 아프가니스탄인들은 호전적이며 여성혐오적이다3.2. 부르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특징이다3.3.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아랍인이다
4. 한국 내 아프가니스탄인5. 해당 인물6. 관련 문서

1. 개요

아프가니스탄인 혹은 아프간인은 아프가니스탄 영토에 거주하거나 기원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아프가니스탄은 기본적으로 다민족국가로 이슬람 공화국 국가에서도 언급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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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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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파슈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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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슈토어를 쓰는 주류 민족인 파슈툰인이 대략 전체 인구의 40~45% 정도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다수 민족이지만 이웃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북부 산악지대에 사는 비주류 민족 대우를 받고 있다.[2] 파슈툰인 거주지역의 정가운데가 영국이 만든 인위적인 국경으로 분단된 꼴이다.[3]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주로 이슬람 수니파 계열의 하나피파를 믿지만 일반적인 하나피파와는 교리와 문화가 좀 다르다. 파슈툰인들에게는 이슬람 도래 이전부터 전해져 온 민족 규율인 파슈툰왈리(پښتونولي, Pashtunwali)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파슈툰인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외에 인도에도 살며 두라니 왕조 시기의 파슈툰인들이 이동하면서 인도 서북부 카슈미르에도 일정수 이상이 거주한다. 그리고 난민이 된 사람들이 인도 대도시인 뭄바이 등에 정착하기도 했다. 수르 제국 등을 포함한 인도 북부의 이슬람 왕조 상당수가 파슈툰계 왕조이지만 해당 왕족 후손들은 오늘날 다른 인도인들에게 동화된 상황이다.

아프간이라는 말 자체가 페르시아어로 파슈툰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 외에도 두라니 왕조를 세운 파슈툰인들은 아프간이라 불리기 이전에는 아브달리(ابدالي, 에프탈)로 불렸다고 한다.

타지키스탄과 중국,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4개국의 국경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파미르인( 사리콜인, 와키인, 슈그니족 등등)의 경우 언어는 파슈툰어와 비슷하지만 종파와 문화가 다르다 한다.
파일:TDLLfIav.jpg
  • 근연 관계의 파미르인만큼은 아니지만 이들 중에서도 벽안 혹은 녹안을 지닌 경우도 꽤 있다.

2.2. 타지크인

파일:1280px-Amrullah_Saleh.jpg
  • 백인과 구별 불가능한 외모를 가진 암룰라 살레 부통령 및 대통령 권한대행(사진 왼쪽)

그 다음으로 다리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타지크인이 대략 30~35%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은 그냥 이란인과 동계다. 다만 오늘날 이란인들이 근세 사파비 제국의 영향으로 시아파가 주류가 된 것과 다르게, 타지크인은 수니파가 주류이다. 타지크인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민족을 타지크라고 간주하기보단 수니파 페르시아인이라는 표현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들을 타지크로 부르는 것이 종족명(Ethnonym)이 아닌 동인이명(Heteronym)이기 때문이다. 타지크라는 단어 자체는 튀르크인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는 일반적으로 파슈툰인들이 페르시아인들을 부를 때 사용된다.

파슈툰인이 아프가니스탄의 주류민족이지만 절대인구는 파키스탄에 더 많듯이, 타지크인도 타지키스탄의 주류민족이지만 아프가니스탄에 절대인구가 더 많다.

반탈레반 통일전선이었던 북부 동맹의 주요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대표적인 타지크계 아프가니스탄인이다. 타지크인들은 전반적으로 과거 구소련 영토였던 타지키스탄의 영향도 있고, 탈레반의 영향도 적게 받은 편이라 근본주의 성향이 덜한 편이다.[4]

그 다음으로는 하자라인, 아이마크인, 튀르크멘인과 같은 튀르크계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다만 민족에 따라서 도시화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난다.

2.3. 하자라인

파일:Hazara_people_from_central_Afghanistan.jpg

하자라인은 이 지역에 파병군으로 정착한 몽골- 튀르크계의 후손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정확한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하플로그룹 조사 결과 위구르, 우즈베크 등 차가타이계 튀르크와 흡사하지만, 아프리카 흑인에게만 나타나는 부계 유전자를 가진 경우가 꽤 있었다 한다.[5]

하자라인은 타 소수민족에 비해 도시화 비율이 높고 주류 사회에 섞여 살아가기 위해 페르시아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하자라인들이 쓰는 페르시아어 방언인 하자라어는 파슈토어나 다리어와는 차이가 매우 커서 의사소통이 그다지 원활하지 않다. 또한 대다수의 소수민족은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데 비해, 하자라인은 시아파 계열의 12이맘파 이슬람을 믿는다.[6] 또한 눈에 잘 띄는 외모까지 섞여서 아프가니스탄 내에선 가장 심한 배척을 받고 있는 민족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들어선 이후로는 어차피 그 실상은 무슬림이라 해도 탈레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온갖 박해를 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자라인과 투르크멘, 우즈베크 등의 튀르크인들이 모두 연합하여 북부 동맹군을 구성, 중앙의 탈레반과 대적하기도 했다. 초창기 탈레반이 인기를 얻은 이유가 하자라인에 대한 집단 학살과 탄압을 내세운 점도 있었는데, 아프가니스탄 내 하자라인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자라인들 중에는 이러한 처지가 싫어서 이란, 파키스탄으로 망명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란에서도 몽골에 대한 혐오 감정이 워낙 강한 관계로 주류 종파가 같은 이란 내에서조차 길거리에서 구타를 당한다든지 같은 차별이 많고, 생활수준도 크게 낮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인 인정을 받거나 먹고살길을 찾아 이란군 외인부대로 입대하는 경우도 많다. 파키스탄 내에서는 주로 발루치스탄 퀘타에 많이 거주한다고 한다.

2.4. 우즈베크인

파일:1629360000757.jpg
우즈베크인은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7~10%를 구성하며,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인구 수가 네 번째로 많은 민족이다. 근세 티무르 왕조 시절부터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역사를 상당부분 공유해왔다. 재밌는 것은 티무르 왕조 시절에도 우즈베키스탄 일대는 비교적 온건하고 세속적인 형태의 이슬람을 믿었고, 아프가니스탄 일대는 엄격하고 교조적인 분위기의 이슬람 문화가 있었다 한다. 무굴 제국을 건설한 바부르도 어떻게 보면 우즈베크계 아프가니스탄인이다.

우즈베크인들이 파슈툰 국가에 통제를 받게 된 역사는 19세기 바라크자이 왕조 때부터이고, 그 이전에는 독자적인 우즈베크계 칸국들의 주민이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 제국의 투르키스탄 병합 이후 우즈베크 칸국들이 무너지며 더 이상 국가를 경영할 수 없게 된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우즈베크인들이 바라크자이 왕조 아래에 합병한 것이다.

2.5. 아이마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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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약 3~4%를 차지한다. 몽골제국의 약탈 이후 사막화가 심해진 아프가니스탄 서부에는 타지크인 농민들이 농업을 포기하고 튀르크화하여 유목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이마크인이 되었다. 때문에 문화적으로는 튀르크에 가깝지만 언어는 다리어의 방언을 사용한다. 또한 몽골의 문화도 일정 부분 섞여있다.

여러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부족마다 자신들의 기원을 다르게 설명하는 점이 특징이나 기본적으로 원래 타지크인들이었으며 페르시아어(다리어)를 쓴다는 공통점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통계를 내거나 조사를 할 때 타지크인으로 묶여서 계산되는 경우가 많다. 종교적으로 보면 아이마크인은 친적인 타지크인들처럼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이나 시아파 무슬림( 이스마일파)도 소수 존재한다.

2.6. 누리스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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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누리스탄 주 일대에 거주하는 인도유럽어족 누리스탄어군에 속하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로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약 1~2%를 차지한다. 이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19세기 말 무렵이며 그 이전에는 국경너머 이웃한 칼라쉬인들처럼 초기 형태의 인도유럽어족 토속 신앙을 믿고 있었다 한다.

고대 중앙아시아에 유입된 아리아인의 후손으로 상당히 폐쇄적인 문화를 지닌 이유로 외부인과의 통혼이 극히 드물었으며, 이로 인해 오늘날에도 누리스탄인들 중에는 금발 벽안이 많은 편이다. 국내 아프가니스탄 유학생 중에서도 누리스탄 출신들이 일부 있는데,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 사람인데 금발이라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듯 하다. 이목구비도 서유럽, 동유럽인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에 심지어 모스크에서 이들이 예배하러 오면 같은 무슬림들조차 인사를 나누기 전에는 서구권 백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경우로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2.7. 파미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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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인이나 누리스탄인의 경우 서유럽 백인과 구분이 힘든 수준의 외모로 금발벽안 인구도 많고 대체적으로 피부색이 밝은 편인데, 고대 청동기시대 인도유럽어족의 중앙아시아 이주 정착 과정에서 척박하고 고립된 산악지대에 잔류한 인원들의 후손이 외부인들과 통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이어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000년경 팽창기 당시의 원시 인도유럽인들은 부족원들이 마차를 타고 다니며 농사가 가능한 땅에 종자를 뿌리고 농사를 지은 후 인구가 늘어나서 농경지가 부족하면 부족원 상당수가 다시 마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반농반목 문화였다.

인도이란어파에 속하며 사실상 파슈툰인과 근연 관계의 방언을 사용하지만 이스마일파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서로 문화나 정체성이 상당히 다른 편이다. 고립된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이유로 각 하위 그룹마다 문화나 방언도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인데 와키인, 슈그니족 등 다양한 민족 집단으로 분류된다.

타지키스탄 내전 당시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들이 타지키스탄 동부의 파미르인들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파미르인 인구는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사이 외칸 회랑 일대에 거주한다. 즉 향후 중국-아프가니스탄 관계의 진행에 따라 이들의 운명도 크게 바뀔 수 있다. 소수종파와 소수민족에게 잔학무도하기로 악명높은 탈레반도 이들에게는 아직 함부로 못하고 눈치를 보는 상황인데, 파미르인들이 특별히 군사력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와칸 회랑이 워낙 해발고도가 높고 교통이 불편한 이유로 파미르인들이 무장 투쟁을 벌이면 탈레반 입장에서도 골치아프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중국에서 타지크족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정체가 바로 파미르인들이다.( 사리콜인 문서 참조)

2.8. 파샤이인

카불에 인접해있는 아프가니스탄 동북부 지역인 카피사주, 라그만주, 낭가르하르주에서 주로 거주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약 0.5~1%를 차지한다.

2.9. 러시아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러시아계 아프가니스탄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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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아프간 전쟁 당시에 소련군에서 탈영하거나, 혹은 포로로 붙잡혔는데 무슬림이라서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정착한 러시아인이 1천여 명 내외라고 한다. 특히, 아프간내 일부 러시아인들중에는 탈레반 정권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이슬람교로 개종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에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아프간인이 된 경우가 있었다. #1 #2

다만 저기 보이는 포로로 붙잡혔는데 무슬림이라서 살해당하지 않고 정착한 경우 중 다수는 애초에 아프간 내에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인 우즈벡인 출신이거나 투르크멘, 키르기스계 같은 중앙아시아계 무슬림 출신[7]으로 탈영 또는 포로로 정착한 소련군 1천여명이 죄다 흔히 생각하는 슬라브계 러시아인인것이 아니다

2.10. 그 외

투르크멘, 카자흐, 키르기스,[8] 발루치족, 펀자브인[9], 브라후이족, 구자르인, 아랍인등이 있다.

몽골 제국 시대 정착한 몽골 군인들의 직계 후손에 해당하며 현재도 몽골어족 모골어를 사용하는 모골인들도 있다. 이들의 경우 하자라인과 다르게 수니파를 믿으며 아프가니스탄 현지인들과 통혼이 있던 관계로 외양이 하자라인보다는 남아시아인과 흡사하다.
극소수의 아제르바이잔인의 지파인 아프샤르족들이 있기도 하다. 나디르 샤가 아프가니스탄의 호타키 왕조를 정복하면서 정착한 사람들인데, 같은 시대 키질바시 수피 교단에 소속된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하기도 했으나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영국 편을 들었다가 분노한 파슈툰족들에게 때죽음을 당하고 대부분 오늘날 파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추방당했다.

3. 편견

3.1. 아프가니스탄인들은 호전적이며 여성혐오적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중세 초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던 불교 승려들의 기록에 따르면 해당 지역 주민들이 부인의 말을 잘 따른다는 기록도 있긴 하다. 무슨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태생적으로 여성혐오적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웃한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런 문제가 없고 또 다른 이웃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권에서 가장 여성인권 의식이 진보적인 나라 중 하나이다.

이것은 아프간의 주류 민족인 파슈툰인들의 주된 문제다. 파슈툰인은 산악민족인데다 고립되어 항상 싸우는 쪽이었기 때문에 파슈툰왈리라는 자신들만의 정체성에 따라 행동하며, 이들의 정체성은 여타 호전적 산악민족들처럼 여성억압이 심한 편이었다.[10] 애초에 경제활동이란 걸 하기도 어렵고, 여기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개입해 세운 교육기관인 마드라사들이 여성혐오를 조장했던 것이 문제였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와중에 많은 전쟁 고아들이 발생했는데,[11] 마드라사들이 이들을 거두면서 아불 알라 마우두디 사이드 쿠틉의 영향을 받은 여성혐오 성향의 이슬람주의 신학을 주입한 것이 문제였다. 마드라사에서 어머니나 남매를 비롯한 여성들과 전혀 접촉이 없이 분리된 상태에서 자라난 소년들은[12] 후에 탈레반의 핵심 멤버가 돼서 여성의 노출을 미신적이다 싶을 정도[13]로 극도로 죄악시하는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비교하자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비밀 경찰들을 주로 고아 출신들을 데려다가 세뇌 교육을 시킨 것을 생각하면 된다.

미국은 냉전이 끝난 1992년 이후에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무장단체들의 악행을 방치했는데,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야 태도를 전환하여 조지 부시는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대한 명분의 근거를 찾기 위해 탈레반 정권 당시 활동했던 여성단체인 Revolutionary Association of the Women of Afghanistan가 2001년 8월 26일에 탈레반 경찰이 부르카 쓴 여성들에게 매질하는 것을 몰카한 것을 이용했다.

파키스탄 출신인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아프가니스탄의 주류 민족이기도 한 파슈툰인이 아프가니스탄인 중에서 여성 인권에 대해 보수적인 편이지만, 오늘날 파슈툰인 내에서도 개혁을 통한 편견 해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6년에 개봉된 파키스탄 영화인 Janaan이 이를 반박하고 있다. 말랄라가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호평했다.[14]

불행 중 다행히도 탈레반은 여성할례는 잘 시행하지 않는다. 물론 탈레반이 여성 할례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여성 인권을 고려해서는 아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할례 악습을 시행하는 집단이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보흐라파(Bohra; 보라파라고도 한다.)라는 시아파 내 소수종파이기 때문에, 이단적 풍습이라 생각해서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탈레반은 여성혐오적인 것은 맞는데 탈레반만으로 파슈툰족들을 포함한 모든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여성혐오적이라는 결론을 낼 수 없다. 파슈툰족을 예를 들어 봐도 파슈툰족 사회가 강한 가부장적 사회라서 여성에 대해서 좀 억압적인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혐오로 결부 되어 질 수 있을까? 그리고 애초에 탈레반은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여성혐오적이고 극단적이면서도 근본주의적인 사상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파슈툰왈리를 근간으로 삼고 있는 미친놈들이지 파슈툰족의 전통 사상인 파슈툰왈리를 제대로 따르고 있지 않는다. 파슈툰왈리의 나무스 항목에서는 여성에 대한 보호를 강조하고 있는데 탈레반은 여성의 보호는커녕 여성이라도 자기네들의 원칙과 사상을 안 지키면 닥치고 처형시켜 버리는 미친놈들이다.

3.2. 부르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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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야(bushiyyah)[15]를 입은 하레디 여성 아프가니스탄 전통 의상을 입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이 아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에 거주하는 고대, 중세 문화를 보존하는 파미르인들의 경우 히잡으로 머리카락만 가리지, 부르카를 쓰지 않는다.[16]

고대 로마의 지리학자 스트라보에 따르면 이란 서북부의 해당하는 메디아의 일부 여성들이 베일로 안면을 가렸다는 기록이 나와있으며, 서기 3세기 초 로마 제국 동부의 기독교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기록에 따르면 토속신앙을 믿는 아랍인들이 처녀에게 머리 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를 베일로 가리게 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다만 고대의 니캅은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의 그것과는 용도나 의미가 달랐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슬람 이전 시대 아랍 시들을 보면 가젤처럼 날씬하고 피부가 뽀얀 여성을 찬양하는 시가 많이 나오는데, 원래 니캅 같은 얼굴을 가리는 형태의 복식 및 아바야 등은 자외선으로부터 피부가 타지 않게(피부미용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외선 과다노출은 피부 노화를 촉진한다.)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추정되고 있다. 즉 원래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의 풍습이 아닌 아라비아 반도 지역의 풍습이었다.

근세 이후로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파란자라 해서 결혼식날 신부가 옷으로 얼굴을 덮어서 결혼식 초반에 얼굴을 가리던 풍습이 있었는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와중에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지원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를 비롯한 걸프 산유국들이 니캅을 미풍양속이라고 권장하면서, 탈레반 측에서 타지크인들이 결혼식날 등에 입던 파란자를 좀 더 저렴하게 변경한 후 민간에 입도록 강제한 게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부르카이다.[17]

아프가니스탄 북부 타지키스탄의 경우 러시아 제국 내에서 타지크인 중에서 일부 상인 가문들이 여성들에게 평소에도 파란자를 입고 다녔는데,[18] 스탈린 정권 당시 다 때려잡았다.

3.3.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아랍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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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이 사우디, 예멘같은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과 똑같이 사막이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흑발갈안에다 터번을 쓰고 이슬람을 내세우기 때문에 같은 민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20]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은신했던 것이 대중매체에 알려지면서 이런 오해가 더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대부분 민족들은 셈족이 아니라 이란계 아리아인이고 아랍인은 소수민족이다.

7세기 우마이야 왕조가 중앙아시아를 정복하던 당시 아프가니스탄 서부 호라산 지역에 상당수의 아랍인들이 정착한 적도 있었으나, 중세 초 압바스 왕조의 발흥 이후 대부분 현지인들과 동화하였고, 호라산 아랍어라는 특유의 방언을 사용하는 아랍인 상인 인구가 유대인 인구 수준으로 극소수 남아있었으나 19세기 중앙아시아 무역이 무굴 제국의 약화로 급격히 쇠퇴했다.[21] 물론 이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는 있고 전체 인구수는 수만명 이상에 달하기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랍어를 모어로 쓰는 경우는 많지는 않고, 주로 종교나 교육목적[22]으로 아랍어를 배워서 제2언어로 쓰는 수준이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인 중 아랍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은 대다수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시절 무자헤딘으로 참여했던 아랍인이다.

4. 한국 내 아프가니스탄인

상당수가 유학생 혹은 무역상이며 난민 인구는 생각보다 적다. 국내에 유학을 온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 유학생들은 같은 나라 남성 유학생들과 한국 생활 과정에서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부러 여대 입학을 선호한다.[23] 특히 이화여자대학교가 해당국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물론 여대 다니는 아프가니스탄인 여학생이라고 해서 한국인들의 의심이나 차별로부터 마냥 자유롭지는 않은 듯 하다. 링크한 사례 이외에도 모델로 알려진 비다 모하마드 역시 한국에서 다른 아프가니스탄 출신들과 상당히 거리를 두는 편이라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주류 민족 파슈툰인/타지크인 외에도 하자라인 유학생들도 있다. 하자라인들의 경우 상술한 것처럼 아프가니스탄 기준으로 소수 종파 시아파에 속하는데다 중세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켰던 몽골계 후손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는 민족이다. 파키스탄인들하고 같이 일했던 한국인에 의하면, 한 번은 국내 하자라족 출신 유학생이 알바 자리를 찾길래 도와줬다가 다른 인도/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들한테 왜 하필 하자라족을 도와주냐고 핀잔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으로 비자가 잘 나오지는 않지만 아프가니스탄인이 아랍에미레이트에서 귀화하고 다시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가니스탄 국적자보다는 외려 파슈툰인으로 넓혀서 보면 파슈툰계 파키스탄인이 한국에서 사업차 혹은 유학생 아니면 이주노동자로 와서 일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편이다.

5. 해당 인물

6. 관련 문서



[1] 이 경우는 주로 파슈툰인만 의미한다. [2] 그런데 파슈툰인의 절대 인구는 아프가니스탄보다 파키스탄에 더 많다. [3] 반대로 파키스탄의 주민족인 펀자브인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 걸쳐 존재한다. 물론 파키스탄 펀자브 지대와 인도 펀자브 지대는 주민들이 주로 믿는 종교가 다르다. [4] 타지키스탄의 타지크인 같은 경우는 기독교로 개종한 친척과 아무렇지도 않게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이는데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인에게는 상상도 못하는 경우이다. [5] 아프가니스탄의 이웃국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주민들 중에서 조상이 흑인인 경우가 꽤 된다. [6] 아프가니스탄 내 시아파들은 하자라족을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주로 이스마일파 보라파이다. [7] 소련 시절에는 당연하고 현 러시아 연방에도 중앙아시아계 무슬림 민족들이 주류인 공화국들이 상당수 된다. [8] 아프가니스탄 최동단 지역의 와칸 회랑에 거의 고립된 상태로 거주한다. 지나치게 고립되고 외진 동네인지라 이 지역은 전쟁의 여파도 별로 미치지 않았을 정도였다. [9] 1980년대까지만 해도 카불에는 약 20만여 명 정도의 시크교도들이 거주하였으나 1992년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이 무너진 이후 대부분 다시 인도 등으로 탈출하였다. 2020년 기준 두 가구만 남아있다. [10] 그래서 예전부터 칸다하르는 주변 국가에 양귀비와 동성애의 도시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믿기 힘들겠지만, 파슈툰인의 폐쇄성과 잦은 전쟁으로 인해 남자들만 밖에 나가서 싸우는 역사가 길어지면서 그렇게 된 것. 바차 바지 항목 참조. [11] 탈레반이 집권하던 2001년 기준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여성 중 4분의 1이 전쟁과부였다. [12] # [13] 대표적으로 탈레반 정권 시절 한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부르카를 입은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실수로 팔이 약간 노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분노한 광신도에게 구타당해 맞아죽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례가 있다. # [14] Malala Wishes Team Janaan! [15] 걸프 지역에서 유래된 안면베일이다. 머리 자체를 가린다는 점에서 부르카와 비슷하다. [16] 파미르인 상당수가 이스마일파를 믿는데 근자에 이스마일파에서 여성 인권 운동에 힘을 좀 쓰는 관계로 히잡 대신 (머리카락이 좀 더 노출되는) 원통형 모자로 대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17] 청렴한 살라프파 학자로 유명했던 셰이크 알 알바니 니캅이 이슬람 고유 의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게 찍혀서 시리아와 요르단을 전전했듯이, 살라프파 내에서도 부르카는 무슬리마 복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근본주의자들은 이를 무시하는 편이다. 부르카를 강요하는 것은 탈레반, 다에시 이렇게 두 집단이다. [18] 이 경우는 조선시대 말 장옷처럼 나는 일 안하고 하인 두고 산다고 부를 과시하는 경우였다. [19] 출처 - 아프가니스탄인이 한국와서 충격받은 이유 TOP4(유튜브) [20] 아프가니스탄의 사막은 이라크, 시리아와 달리 고도가 높기 때문에 8월이라도 기온이 낮으며 산에서 눈을 자주 볼 수가 있다. [21] 호라산 방언을 사용하던 중앙아시아 아랍인들은 우즈베키스탄에 소수 남아있었는데 그마저도 소련 시절에 탄압을 받아, 오늘날 기준으로는 노년층 이하는 해당 아랍어 방언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에 중국산 차(茶)를 수출하던 무역이 유지는 되었기에 아프가니스탄과 다르게 유대인 및 아랍인 인구가 어느정도 보존되었던 경우이다. [22] 주로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 걸프만 산유국으로 파견근로를 가는 경우가 많다. [23] 이 부분은 파키스탄이나 인도 출신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인데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의 경우 이런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