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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시니코프 기관총을 발사하는 타지키스탄군 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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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
1992년 5월 5일 ~ 1997년 6월 27일 | |||
원인 | |||
이념-사상 대립, 지역갈등, 종족 갈등, 종교적 내부 사상의 분쟁 | |||
장소 | |||
타지키스탄 | |||
교전 국가 및 세력 | |||
타지키스탄 공산당, 인민 전선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우즈베키스탄| ]][[틀:국기| ]][[틀:국기| ]] [[키르기스스탄| ]][[틀:국기| ]][[틀:국기| ]] [[카자흐스탄| ]][[틀:국기| ]][[틀: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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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키스탄 야당 연합[1] 탈레반 알 카에다 북부동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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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국가 및 세력 | |||
[[벨라루스| ]][[틀:국기| ]][[틀:국기| ]] |
[[알 카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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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라흐몬 나비예프 아크바르쇼흐 이스칸다로프 에모말리 라흐몬 보리스 옐친 이슬람 카리모프 아스카르 아카예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
사이드 압둘라 누리 모하메드 샤리프 히마자데 샤드만 유소프 이븐 알 카타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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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타지키스탄군 42,000~45,000명 러시아군 5,000~15,000명 우즈베키스탄군 20,600명 카자흐스탄군 10,300명 키르기스스탄군 278명 |
60,000~70,000명 추산 | ||
피해 | |||
2만~15만 명 사망, 120만 명 이주[2] | |||
결과 | |||
평화 협정으로 무승부 종전 | |||
영향 | |||
에모말리 라흐몬의 독재 장기화, 타지키스탄에 러시아 영향력 확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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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5년간 타지키스탄에서 일어났던 내전으로, 타지크 내전이라고도 부른다.2. 상세
1991년 타지키스탄은 소련 해체 이후 독립이 되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해 이미 타지키스탄에서 정치적 대립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나중에 종교적 내부 성향[3]의 대립은 곧 내전으로 변질되었으며,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내전에 휩싸였다.내전의 원인은 1991년 당선된 후잔트파의 공산당이었던 라흐몬 나비예프의 통치에 불만을 가진 동부 지역의 지역주의 세력 및 이슬람주의 세력들의 무장 반란 때문이었다. 지역 감정도 어느 정도 있었는데, 타지키스탄 서부는 그래도 소도시들, 그리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거주했던 농촌들이 있었던데 비해 동부 지역은 상당히 낙후된 곳이기도 했고, 서부보다 덜 발전되었던 등 상당히 못사는 동네였다.
이러한 지역적 특색은 정치적으로도 동부보다 서부에 더 유리하기도 해서 정치인들 다수가 서부 출신들이었고 우위를 가지다보니 정치적 대립으로도 변했다. 또한 문화적으로도 서부에 많이 살았던 타지크인들에 비해 동부 파미르 지역 사람들은 오히려 파미르어군 언어를 썼고, 아프가니스탄 파슈툰과 더 비슷했다. 이런 이유로 인종 분쟁도 나타났었다. 또한 같은 타지크인이더라도 정치적 성향이 다른 지역 출신 주민들과의 분쟁도 있었다. 여기서 파미르인들과 가름인[4]들도 학살을 당했다.[5]
주로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서부의 인민전선[6]과 탈레반 통치 하의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7]을 비롯한 동부의 야당, 파미르 지역의 이슬람 근본주의 군벌 세력들과의 분쟁이었으며, 라흐몬 나비예프를 비롯한 에모말리 라흐모노프와 아크바르쇼흐 이스칸다로프는 같이 이슬람 반군을 토벌하기도 했다.
그러나 훗날 인민전선에서는 쿠데타로 라흐몬 나비예프를 축출했고, 나비예프는 건강이 안 좋기도 해서 라흐모노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고 사퇴했다. 후잔트파의 정치인들은 쿨롭파에게 정권을 이양했고, 이 쿨롭파에서 에모말리 라흐모노프[8]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도 아프가니스탄 못지 않게 내전으로 인해 고생한 나라 중 하나이다. 타지키스탄 주변 국가들인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구소련권의 러시아와 친러 국가였던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뿐 아니라 유엔 여러나라들의 군인들조차 파병했고, 무려 5년간의 내전과 그걸로 인한 아편 등 마약 불법판매들이 판을 친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1997년에 유엔 주도 하의 평화 협정으로 겨우 내전이 끝났었다. 현재는 에모말리 라흐몬의 통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2010년부터 2012년, 그리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타지키스탄 동부 파미르 지역에서 내전들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3. 내전 종료 후
내전의 후유증은 비단 경제붕괴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쳤는데, 언급했듯이 라흐몬의 일당 독재가 더 강해졌고, 민주파는 세력을 잃어버려 거의 없거나 이슬람주의 또는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차지하는데다가 이들도 자칭에 가깝다.4. 여담
구 공산주의 세속성향 정부군과 극단주의 이슬람 반군단체의 내전양상 때문에 흔히들 아프간 내전과 비교되기도 한다. 다만 타지크 내전은 파미르인(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 종족주의 문제, 소련 지배 기간 동안 정치적 주요 요직을 차지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간갈등, 반군 안에서도 근본이슬람주의를 추종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이슬람과 무관하게 순전히 민주주의와 구 공산시스템에 대한 개혁 요구 목소리가 존재했던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아프간 내전과 비교되기는 어렵다.심지어 극단주의 이슬람 성향 안에서 조차도 '우리는 이란과는 시스템을 다르게, 타지크식대로 할 것이다' 라고[9] 생각하는 무리도 많았다.
[1]
타지크 통합야당, 타지키스탄 이슬람 저항당, 타지키스탄 민주당, 자미아티 이슬라미 등
[2]
1997년 타지키스탄 인구가 611.7만 명에 불과했다. 인구의 무려 20% 이상이 난민이 된 셈.
[3]
이슬람주의(또는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 중에서도 온건파, 광신적으로 변한 극단주의자들끼리 뜻이 달라서 서로 싸우기도 했다), 서구식 민주주의, 구 공산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서로 마찰을 빚었다.
[4]
타지키스탄 가름 시 출신 사람들.
[5]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 참조.
[6]
서남부의 쿨롭 지역과 서북부의 후잔트 지역으로 구성.
[7]
다만 북부동맹은 탈레반과도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워낙 사이가 나빴고,
알 카에다의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 동의까지 하진 않았기 때문에 온건파 성향의 일부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야당, 민주파만 도왔다.
[8]
에모말리 라흐몬의 옛 이름.
[9]
어떤 의미에서는 세속주의를 좀 더 표용할 생각었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