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02:06:24

박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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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희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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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628000031647.jpg
<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두산 베어스 수석 스카우트
박장희
朴將熙 | Park Jang-Heu
출생 1976년 4월 23일 ([age(1976-04-23)]세)
경기도 안산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안산관산초 - 안산중앙중 - 부천고 - 영남대[1]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 입단 1999년 1차 지명 (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9~2007)
우리- 서울 히어로즈 (2008)
프런트 두산 베어스 스카우트팀 수석 스카우트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연도별 성적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현대 유니콘스, 우리 히어로즈의 투수이자 現 두산 베어스의 수석 스카우트.

2. 선수 경력

부천고 시절에는 팀의 유일한 전국대회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나 동기 최동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려 있었다. 부천고 졸업 후 영남대로 진학해 기량이 급성장해 1999년 연고 팀 현대 유니콘스 1999년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2] 첫 시즌은 54경기[3] 117이닝 6승 7패 5세이브 4.91로 평범한 계투[4] 정도였다.
2000년부터 5선발이 되어 ERA 3.90 9승 3패로 조웅천의 뒤를 잇는 최고의 잠수함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다만 당시 현대 투수진이 엄청 쟁쟁한데다가 당시 개막 7연승을 달리며 파란을 일으키다가 어깨 통증으로 선발진에서 빠져 두 자릿수 승수에 실패했고, 10월에 다시 확대 엔트리로 1군에 복귀했지만 SK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SK 대타 장용대가 친 직선타구에 코뼈를 직격당하며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이렇게 박장희가 선발에서 이탈하면서 현대 선발진이 꽤 타격을 많이 받았는데, 정민태-임선동-김수경의 과부하가 심해진 것이다. 다승 트리오의 공동 18승 기록에 묻혀서 그렇지 제 몫을 해주던 박장희의 이탈은 치명적이였다. 현대는 앞선 세 명의 뒤를 이을 확실한 4,5선발이 없다 보니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정규 시즌 피로가 누적된 세 명만 계속 돌렸고, 이것이 물오른 두산과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01 시즌에 하락세가 오면서 부진했다.

2002 시즌은 13경기 0승 0패 방어율 6.14를 기록했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1군 커리어였다.

그 뒤, 교통사고로 재활 중에 있다가,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이 터지자 김민우와 같이 구속되었다. 원래는 도주로 인한 소환불응 상태였으나, 지인들의 설득으로 소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였으므로 구속자 명단에 올려졌다고 한다.

수감 생활[5]과 군복무 모두 치르느라 2008년에 복귀했지만, 이미 나이가 33세로 많은 편이었기에 1군에 한번도 올라오지 못하고 2008 시즌 후 팀에서 방출되었고, 곧바로 은퇴하였다.

통산 성적은 123경기 방어율 4.86, 19승 15패 5세이브 1홀드.

3. 은퇴 후

현재 두산 베어스의 스카우터팀에서 수석 스카우터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6]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1999 현대 54 117⅓ 6 7 5 - 4.91 142 11 30 16 70 1.47
2000 24 99⅓ 9 3 0 0 3.90 107 8 30 5 57 1.38
2001 32 94⅓ 4 5 0 1 5.53 107 14 30 11 41 1.45
2002 13 22 0 0 0 0 6.14 28 3 6 1 17 1.55
2003 1군 기록 없음
2004 병역비리 연루로 인한 수감 생활 및 군복무
2005
2006
200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8 우리/서울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4시즌)
123 333 19 15 5 1 4.86 384 36 96 33 185 1.44

5. 관련 문서



[1] 1995학번 [2] 반면 한양대로 진학한 최동진은 대학에서 제대로 던지지 못한 채 어느 팀에도 지명을 받지 못했고 현대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방출되었다. [3] 선발 6경기 + 48경기 구원 등판 [4] 이때가 극심한 타고투저 여서 대졸 1년차를 감안하면 어느정도 괜찮은 수준 이였다. 거기다가 양대리그 라는 제도가 있었기에 99년도와 2000년도에는 타팀 투수들도 엄청나게 많이 맞았다. [5] 당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인 투수 정현욱 KIA 타이거즈 투수 유동훈도 같이 수감 생활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6] 과거 두산베어스 프런트 재직 중 운영1팀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