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시즌에 대한 내용은 홍원기/지도자 경력/202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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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
'''72
김창현 · 73
오윤 · 74
문찬종 · 78
홍원기 [[틀:키움 히어로즈 감독| ★ ]] · 88 이승호 · 89 박도현 · 90 박정음 · # 정찬헌 · # 김준완''' |
|
2군 | |
'''70
김동우 · 71
박준태 · 81
설종진 [[틀:고양 히어로즈 감독| ★ ]] · 82
김태완· 86 오주원 · # 장영석''' |
|
잔류군 | |
77 이병규 · 83 노병오 | |
프런트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
홍원기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23번 | ||||
박승윤 (1995) |
→ |
<colcolor=#FFFFFF> 홍원기 (1996~1999. 5. 14.) |
→ |
김경원 (1999. 5. 15.~1999)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13번 | |||||
캐세레스 (1998) |
→ |
<colbgcolor=#FFD700> 홍원기 (1999. 5. 15.~1999) |
→ |
손시헌 (2003~2006)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5번 | |||||
김정규 (1998~1999) |
→ |
홍원기 (2000~2005) |
→ |
장교성 (2006) |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번 | |||||
장교성 (2005) |
→ |
홍원기 (2006~2007) |
→ | 팀 해체 | |
서울/
넥센/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8번
|
|||||
김정수 (2008) |
→ |
홍원기 (2009~) |
→ | 현역 |
|
|||
<colbgcolor=#570514><colcolor=#FFFFFF> 키움 히어로즈 No.78 [[감독#s-1.1| ★ ]]
|
|||
홍원기 洪源基 | Hong Wonki |
|||
출생 | 1973년 6월 5일 ([age(1973-06-05)]세) | ||
충청남도 공주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공주중동초등학교 (졸업) 공주중학교 (졸업) 공주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 학사) |
||
신체 | 187cm | 92kg | ||
포지션 | 3루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 1996년 1차 지명 ( 한화) | ||
소속팀 |
한화 이글스 (1996~1999) 두산 베어스 (1999~2005) 현대 유니콘스 (2006~2007) |
||
지도자 |
서울-넥센 히어로즈 1군 주루코치 (2009~2010) 넥센-키움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 (2011~2019) 키움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20) 키움 히어로즈 감독 (2021~) |
||
프런트 | 우리-서울 히어로즈 전력분석원 (2008) | ||
계약 | 2023 - 2025 / 14억원[계약내용] | ||
연봉 | 2024 / 4억원 | ||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570514><colcolor=#ffffff> 가족 |
아내 이혜숙[2],
딸 홍수아[3] 형 홍헌기 |
|
본관 | 남양 홍씨 당홍계[4] | ||
상훈 | 체육훈장 백마장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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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인. 現 키움 히어로즈 감독.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를 거쳐서 현대 유니콘스에 은퇴한 내야수로 주로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활동했다.2. 선수 경력
2.1. 한화 이글스
|
한화 이글스 선수시절 |
박찬호, 박재홍, 정민철, 조성민, 임선동, 염종석, 송지만, 이영우, 박종호. 차명주, 김종국, 최기문, 손혁 등과 함께 한국 야구 최고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전설의 92학번 중 한 명이었다.
박찬호, 손혁과 공주고 동기생으로[5] 고려대학교를 거쳐서[6], 1996년 1차 지명으로 계약금 2억원과 함께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한화의 주전 유격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3루수로 뛰게 되었다. 하지만 파워 포지션인 3루수치고는 거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3할 타자도 아니고 그저 2할 6푼 ~ 2할 7푼 정도의 어중간한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라서 확실하게 주전을 꿰차지는 못했다.
하지만 클러치 능력은 어느 정도 있어서 강석천을 대신하여 3루수 포지션을 반 고정으로 맡았으며[7] 타선은 주로 하위타선에 기용되었다. 선발 출장을 하지 않을 때에는 대타로도 종종 기용되었다. 화끈한 타격과 세밀한 주루플레이로 한화의 주축으로 떠오른 입단 동기인 이영우와 송지만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2.2. 두산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선수시절 |
1999년 5월 15일 전상렬과 묶여서 김경원과의 2:1 맞트레이드를 통해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8] 그러나 3루에는 김동주, 2루에는 안경현이 버티고 있는 두산의 내야진에선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1999년엔 박정태의 31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끝낸 다이빙 캐치를 선보이기도 하였다.[9] 당시 마지막 타석 영상
200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3연패를 당해 팀 분위기가 어두웠지만 선취점을 얻는 안타를 쳤고 그 후 팀은 3연승을 거두어 7차전까지 이끌고 갔다. 2001년 포스트시즌에선 주전 유격수인 김민호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그 자리를 메우면서 수비 면에서는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공격면에서 맹활약하면서[10] 2001년 준플레이오프 MVP에 오르는 등[11], 2000년과 2001년 두산에서 나름대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데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활약하면서 '가을 사나이' 이미지도 쌓았고,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도 하나 꼈다. 그 이후에도 기복이 제법 심하기는 했지만, 내야 유틸리티로[12] 2005년까지 1군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였다.
2.3. 현대 유니콘스
|
현대 유니콘스 선수시절 |
2005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는 당시 장원진- 안경현- 손시헌- 김동주라는 준수한 내야진이 있었고, 홍원기는 준수한 백업이긴 하지만 기복이 심했고, 04~05시즌의 성적이 영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점차 나이가 들어 노쇠화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하고 홍원기와의 계약을 거절했다. 이로 인해 하마터면 FA 미아가 될 뻔도 했다. 당시 두산 김경문 감독이 은퇴 후 코치로 전업할 것을 권유하기도. 미아가 될 뻔하다 결국 두산과 재계약에 성공했다.
다행히 박종호와 박진만이 삼성으로 이탈하면서 채종국과 서한규가 센터라인을 보던 현대가 홍원기의 영입을 시도했다. 그래서 마감 직전 사인 앤드 트레이드의 형식으로 장교성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현대 유니콘스로 건너가게 된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이 둘에 비해 타격은 준수했지만 차화준과 더불어 백업으로 나왔고 2007년에는 젊은 김일경, 지석훈이 주전이 되면서 아예 자리조차 없었다.[13] 결국 자리가 아예 없어지면서 2008 시즌 초에 박노준 단장에게 전력분석원 제의를 받고 은퇴했다.
한편 현대 팬들과는 여러가지로 감정이 좋지 못했는데, 현대만 만나면 타이론 우즈, 장원진과 더불어 날아다녔을 정도였기 때문이다.[14] 더군다나 200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맹활약을 해서 현대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3. 연도별 성적
홍원기의 역대 KBO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1996 | 한화 | 123 | 382 | .262 | 100 | 20 | 0 | 9 | 47 | 46 | 5 | 42 | 75 | .347 | .385 | .732 | 112.0 | 2.89 |
1997 | 90 | 253 | .265 | 67 | 13 | 1 | 4 | 30 | 21 | 1 | 18 | 47 | .318 | .372 | .689 | 89.1 | 1.09 | |
1998 | 28 | 63 | .222 | 14 | 2 | 0 | 2 | 9 | 6 | 1 | 5 | 12 | .292 | .349 | .641 | 67.7 | 0.12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1999 | 한화/ 두산 | 98 | 118 | .161 | 19 | 6 | 0 | 4 | 13 | 14 | 0 | 11 | 30 | .242 | .314 | .556 | 31.6 | -0.44 |
2000 | 두산 | 113 | 221 | .271 | 60 | 8 | 2 | 5 | 30 | 31 | 2 | 25 | 54 | .360 | .394 | .753 | 99.0 | 1.32 |
2001 | 84 | 242 | .264 | 64 | 13 | 1 | 6 | 42 | 34 | 1 | 29 | 39 | .353 | .401 | .753 | 93.4 | 1.54 | |
2002 | 109 | 170 | .171 | 29 | 6 | 0 | 1 | 11 | 17 | 1 | 15 | 36 | .242 | .224 | .466 | 19.7 | -0.83 | |
2003 | 124 | 384 | .273 | 105 | 13 | 1 | 8 | 42 | 43 | 0 | 54 | 65 | .365 | .375 | .740 | 98.6 | 2.53 | |
2004 | 101 | 160 | .213 | 34 | 5 | 0 | 2 | 18 | 16 | 0 | 19 | 37 | .303 | .281 | .584 | 54.7 | -0.08 | |
2005 | 92 | 139 | .230 | 32 | 6 | 1 | 3 | 22 | 17 | 0 | 13 | 32 | .316 | .353 | .669 | 80.9 | 0.49 | |
<rowcolor=#FAB93D>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2006 | 현대 | 56 | 148 | .270 | 40 | 6 | 0 | 4 | 20 | 16 | 0 | 14 | 29 | .335 | .392 | .727 | 102.6 | 0.82 |
2007 | 25 | 28 | .071 | 2 | 0 | 0 | 0 | 0 | 2 | 0 | 3 | 12 | .161 | .071 | .233 | -40.8 | -0.45 | |
KBO 통산 (12시즌) |
<rowcolor=#191919> 1043 | 2308 | .245 | 566 | 98 | 6 | 48 | 284 | 261 | 11 | 248 | 468 | .326 | .355 | .682 | 83.3 | 8.99 |
4. 지도자 경력
자세한 내용은 홍원기/지도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5. 비판
투수교체는 결과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좋은 투수를 썼다면'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 2021년 10월 27일, 전날 치러진 두산전에서 김성진을 올린 이유에 대하여[15]
자세한 내용은
홍원기/비판 문서 참고하십시오.- 2021년 10월 27일, 전날 치러진 두산전에서 김성진을 올린 이유에 대하여[15]
6. 기타
-
홍원기보다 2년 선배인
이숭용은 워낙 선수로서 오래 활동했고, 홍원기는 일찍 은퇴했기 때문에[17] 이숭용은 선수 말년에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홍원기 코치에게 절대 "코치님"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인지 이숭용이 1루로 출루하고 홍원기 코치가 이숭용의 장비를 받아줄 때 농담 섞인 욕설도 자주 했다고. 뭐 그래도 둘이 친하니 그랬겠지만. 그 예로 2009년 어느 날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 이숭용이 출루한 후 홍원기 코치와 나누었다던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숭용: "야, 장비."
홍원기 코치: ….
이숭용: "안 받고 뭐해~ X바~"
홍원기 코치: "아 형, X바가 뭐에요…. 그래도 명색이 제가 코치인데…."
이숭용: (수비하는 김주찬을 힐끗 보며) "야, 니가 듣는 건 안 괜찮고, 뒤에 주찬이가 듣는 건 괜찮냐?"
-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팀이 역전패를 당하거나 반대로 역전승을 거둘 때도 무표정으로 일관한다.[18]
- 선수 시절 때부터 별명이 원기옥이었다. 처음엔 이 별명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서 좋아하지 않았지만, 동료들과 팬들이 오랫동안 그렇게 부르면서 세월이 지나고 나서는 익숙해졌다고 한다.
- 특이한 기록으로는 한 경기에서 무려 3개의 포지션을 소화한 적이 있다. 두산 소속이던 2001년 4월 6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잠실 경기에서 1루수, 2루수, 3루수로 모두 투입되어 소화한 것.[19]
- '넥센 팬이 선수에게 준 초콜릿을 선수 몰래 빼돌려서 딸에게 선물했고 아내가 그걸 SNS에 인증했다'라는 오해가 있었다. 당시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를 비롯한 넥센 팬덤에서 들고 일어났었는데, 이후 딸의 SNS에 이는 사실이 아니고 그냥 한 투수가 조공받은 물품을 두고 갔고 그걸 가져왔다는 말로 해명했다.
-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학창 시절 동기인 박찬호와 절친한 사이다. 박찬호가 자신의 비공개 결혼식에 지인 30명만 초대했을 당시 노모 히데오와 함께 초대받은 단 2명의 야구인 중 한명이었다. 내 덕에 찬호 ML 갔죠 박찬호, '공주고 합숙소 이탈사건' 15년만에 '폭탄주 화해'
- 퀴즈 대한민국 107회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 형인 홍헌기도 야구선수였다. 1988년 홍익대 야구부 창단멤버였지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뒤 실업야구 포스콘 야구단에 입단해 활동했다.
- 팀이 연승을 하면 사복을 갈아입지 않는 루틴이 있다.
- 지도자 시절 내내 히어로즈에서만 활동했으며, 등번호도 78번만 사용해왔다.
- 박찬호와 오랜 절친으로 유명하지만, 손혁과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친분을 잇고 있다. 같은 공주시 출신으로 초/중/고 동기인데다가 대학교도 똑같이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즉 초/중/고에 대학교까지 쭉 함께 다닌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키움 히어로즈에서 감독과 코치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으며 손혁이 감독직에서 물러나자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 홍원기 감독이 마운드 미팅을 하게 되면 투포수 뿐만 아니라 외야수를 제외한 야수들도 다 모이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이적생이였던 최주환이 이 룰을 몰라서 멀뚱거리자 김혜성이 감독이 올라온 이유를 설명해준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마운드 미팅에서 별 작전지시는 없는데 일단 올라오면 기묘하게 위기상황을 막고 팀이 승리하는 패턴이 잦다. 이게 다같이 모여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 같다며, 팬들에게 제사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
- 2023년, 여러 악재[20]가 겹쳐 당분간 탱킹을 선언한 키움 히어로즈를 계속해서 이끌어나가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래서인지 다음년도인 2024시즌부터 겆갤에서는 탱킹에 미쳐버린 감독으로 이미지가 변해버렸다. 결승타를 친 선수를 팬다거나... 이겼는데 표정이 썩었거나... 아예 9위팀과 협상을 시도한다.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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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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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역대 1차 지명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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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85년 |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
<rowcolor=#ffffff> 1990년 | 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
지화동 김성한 |
양용모 | 지연규 | 구대성 | 길배진 | |
<rowcolor=#ffffff> 1995년 |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
<rowcolor=#f7000d> 신재웅 | 홍원기 | 이성갑 | 김민규 |
박정진
|
|
<rowcolor=#ffffff> 2000년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
조규수 | 김태균 | 신주영 | 안영명 | 김창훈 | |
<rowcolor=#ffffff>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
윤근영 | 유원상 |
최진호 |
박상규 | 김회성 | |
<rowcolor=#ffffff>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
김용주 (2) | 유창식 (2) | 하주석 (2) | 조지훈 (2) | 황영국 | |
<rowcolor=#ffffff>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
김범수 | 김주현 | 김병현 | 성시헌 | 변우혁 | |
<rowcolor=#ffffff> 2020년 | 2021년 | 2022년 | 2023년 | 2024년 | |
신지후 | 정민규 | 문동주 | 김서현 (2) | 황준서 (2) | |
<rowcolor=#ffffff> 2025년 | 2026년 | ||||
정우주 (2) | |||||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전면 드래프트 시행 년도 1R 지명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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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기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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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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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준플레이오프 역대 MV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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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1997 | 1998 | 2000 | 2001 |
김인호 현대 유니콘스 / 내야수 |
김상엽 삼성 라이온즈 / 투수 |
김재현 LG 트윈스 / 외야수 |
가르시아 삼성 라이온즈 / 투수 |
홍원기 두산 베어스 / 내야수 |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최동수 LG 트윈스 / 내야수 |
김원형 SK 와이번스 / 투수 |
홍성흔 두산 베어스 / 포수 |
최영필 한화 이글스 / 투수 |
고동진 한화 이글스 / 외야수 |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류현진 한화 이글스 / 투수 |
진갑용 삼성 라이온즈 / 포수 |
김동주 두산 베어스 / 내야수 |
용덕한 두산 베어스 / 포수 |
정근우 SK 와이번스 / 내야수 |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정대현 롯데 자이언츠 / 투수 |
최준석 두산 베어스 / 내야수 |
최경철 LG 트윈스 / 포수 |
이현승 두산 베어스 / 투수 |
오지환 LG 트윈스 / 내야수 |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해커 NC 다이노스 / 투수 |
임병욱 넥센 히어로즈 / 외야수 |
박병호 키움 히어로즈 / 내야수 |
오재원 두산 베어스 / 내야수 |
정수빈 두산 베어스 / 내야수 |
|
2022 | 2023 | 2024 | |||
안우진 키움 히어로즈 / 투수 |
김영규 NC 다이노스 / 투수 |
임찬규 LG 트윈스 / 투수 |
|||
* 준플레이오프는 1989년에 시작했지만, MVP는 1995년부터 수상하기 시작했다. 1999년은 양대리그제로 준플레이오프 미개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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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 역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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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대 | 2대 | 3대 | |
이광환
(2008) |
김시진
(2009~2012) |
감독대행 김성갑 (2012) |
염경엽
(2013~2016) ☆ |
|
<rowcolor=#ffffff> 4대 | 5대 | 6대 | ||
장정석
(2017~2019) ☆ |
손혁
(2020) |
감독대행 김창현 (2020) |
홍원기
(2021~) ☆ |
}}} ||
[계약내용]
계약금 2억원 / 연봉 총액 12억원
[2]
기사 1~2살 연상이다.
[3]
배우
홍수아와는 다른 사람이다.
[4]
남양 홍씨 당홍계 36세손 '基'자 항렬,
성우
홍범기의 친척뻘에 해당된다.
[5]
박찬호와
손혁, 홍원기 세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같이한 죽마고우이다. 참고로 공주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박찬호가 3루수, 홍원기가 투수였으나 박찬호가 투수로 전향하자 홍원기가
박찬호 대신 3루수를 보게 돼서 홍원기가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당시에
박찬호의 투수 전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투수들의 학부모의 반대가 더욱 심했는데, 더군다나 홍원기는 당시 공주중학교의 에이스였다. 홍원기 본인이나 부모로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게된 셈이라 시끄러운 게 당연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세 사람의 졸업 이후 감독은 경질되고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
[6]
고교 동기인
손혁과 함께 진학했으며
조성민,
김종국과 같은 92학번이다.
[7]
강석천은 홍원기 입단 후 포지션을 중견수로 옮긴 뒤
이영우 -
강석천 -
송지만으로 이어지는 외야진을 구성했다. 홍원기가 두산으로 떠나고
제이 데이비스가 영입되면서 다시 본래 포지션인 3루수로 되돌아 온 것.
[8]
당초
한화 이글스가 투수진 보강을 위해 홍원기를 트레이드 카드로 쓰려고 했는데, 원래는
현대 유니콘스가
조웅천과의 트레이드를 제안했으나 결렬됐고, 곧바로
두산 베어스가
김경원 카드를 제안해
전상렬과 묶여 트레이드된 것. 결론만 보면 김경원이 한화에서 불만 지르다가 2001년에 은퇴한 반면 홍원기와 전상렬은 두산에서 쏠쏠하게 활약하면서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
[9]
정작 홍원기는 아웃을 시키고 벙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홍원기는 직후 롯데 팬들에게 걸쭉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마산아재 문서 참조. 하지만 당시 박정태 본인은 오히려 홍원기 때문에 자신의 기록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면서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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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타수 4안타 1홈런(투런) 3타점. 심지어 상대는 자기 고향팀
한화 이글스.
[11]
KBS N SPORTS 더 레전드 "믿음으로 이룬다 국민감독
김인식" 편을 보면 자세히 나온다. 다만 이때는 배경이
2001년 플레이오프. 1차전 1:1 동점 상황에서 8회말에 결정적인 알까기 실책으로 분위기를
현대 유니콘스에 내어준 후 5:1로 경기가 종료된 후 홍원기는 메일로 욕을 수십 통 받고 새벽 4~5시까지 못 자고 있었는데, 그 다음 날 자신도 모르게 '아 오늘 선발 라인업에 안 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인식은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발휘, 그냥 유격수 9번타자로 넣었다고 한다. 그에 감명받아서 무엇인가라도 보답할 생각이었나 연습경기에서 홈런을 계속 때렸다고.
김인식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잘 보여준 사례로 나온다.
[12]
특히 2003년에는
김동주를 지명타자로 돌린 뒤 홍원기가 주전 3루수로 투입되며 무려 124경기나 나왔다. 그 외에도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김동주를 지명타자로 돌리고 홍원기를 3루수로 출장시킨 적이 많았다.
[13]
차화준은 수비가 영 시원찮은 선수였고, 채종국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면서 잉여 전력으로 판단되어 SK에
조중근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 서한규와 홍원기는 얼마 나오지 못 하고 둘 다 시즌 끝나고 은퇴했다.
[14]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했다면 MVP는 홍원기가 받았을 것이 유력했다.
[15]
해당 경기는 두산의 베테랑
김태형 감독의 기가 막힌 투수 교체가 빛난 경기였다. 이후
김태형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발 투수를 일찍 내린 이유에 대해 "이기려고 뺐다"며 "뒤에 좌타자들의 타이밍이 워낙 좋았고 거기서 점수가 나면 끌려가는 상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홍원기 감독은 줄 점수를 다 내준 다음에야 투수를 교체하는 등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며, 덕분에 키움은
이정후와
김혜성의 노력에도 2:7로 대패했다. 선수 탓을 일삼는 수준 미달의 감독이 팀을 어디까지 나락으로 이끌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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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로 시범경기를 뛰기에 사회인 야구 수준인
정준하의 실력이 많이 모자란 것도 있었겠으나 사실
이숭용과 홍원기는 절친한 선후배 사이로, 평소 선배
이숭용이 후배지만 코치였던 홍원기에게 장난스러운 행동을 하던 터라 일종의 앙갚음식으로 했던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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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기는 07년 은퇴, 이숭용은 그보다 4년 후인 11년도 은퇴.
[18]
경기 중에만 그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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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당시 주전 1루수는 우즈, 2루수는 안경현, 3루수는 김동주였다. 이들의 대수비 등올 계속 자리를 옮겨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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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부상, 최원태 트레이드, 안우진 시즌아웃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