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09:33:23

고대 그리스/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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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제우스와 그의 연인 가니메데.[1]

1. 개요2. 상세3.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3.1. 연인설에 대한 반박
4. 여성 간의 동성애5. 기독교 전래 이후6. 관련 문헌 및 번역
6.1. 신들의 대화6.2. 사티리콘 : 페르가몬의 소년6.3. 소 카토의 일대기6.4. 플라톤의 향연 :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6.4.1. 플라톤과 동성애 논쟁
6.5. 학생 알키비아데스6.6. 소포클레스의 이야기6.7.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6.8. 엘라가발루스의 연대기

1. 개요

여자와의 사랑은 번식이라는 본능에서 나오는 불순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번식이 불가능한 미소년과의 사랑이야말로 본능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이다.

- 플라톤[2]
행복하여라, 나체로 운동을 한 후 집에 가서 아름다운 소년과 온종일 잠을 자는 사람이여

- 메가라의 테오그니스
고대 그리스만큼 동성애를 대놓고 즐겼던 문명권은 전무후무하다. 중근세 일본이나 중동에서 와카슈도 높으신 분들이 소년들을 대상으로 남색을 즐기는 경우는 있었지만 고대 그리스처럼 시민 구성원 대부분에게 퍼져 있을 정도로 일반적이진 않았다. 반면 고대 그리스의 경우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동성애가 일반적인 풍습에 가까웠는데, 일부 철학자들은 심지어 동성애가 진정한 사랑이라고 예찬할 정도였다.

그리스인들이 동성애를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는 증거가 그리스 로마 신화다. 제우스가 사랑한 미소년 가니메데, 아폴론이 사랑한 미소년 히아킨토스 등 신들조차도 동성애를 했을 정도로 당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가 보편적이었다. 신들 뿐만 아니라 영웅들도 동성 연인들이 많았다. 아킬레우스는 동성 연인 파트로클로스를 두었고[3]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동성 연인들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신화에까지 동성애 요소를 집어넣은 문명권은 그리스 문명이 유일하다.[4]

'고대 그리스가 게이들의 천국이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플라토닉 러브 문서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당시 고대 그리스의 동성연애는 현대의 자유로운 동성연애와는 살짝 결이 다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완벽한 사랑은 남성들끼리만 할 수 있는 거라 여겼다. 성적 접촉이 존재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육체적 욕망에만 탐닉하는 건 좋게 보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단순한 자유연애가 아니라 성인들이 소년들을 교육시키며 사회적 진출을 곁에서 도와주는 스승-제자의 관계이자 후견인의 관계이기도 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동성 간의 정신적인 사랑을 더 중요시했다.[5]

아무리 고대 그리스식 동성애가 플라토닉 러브였다지만 정신적인 사랑에는 육체적인 사랑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소년 가니메데가 물을 마시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서 옷 사이로 하얀 허벅지가 드러나자, 제우스가 그 뽀얀 살결을 보고 반해서 그를 납치했다는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와 육욕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다만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육체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데에도 절제가 중요시되었다. 항문 성교보다는 허벅지 성교가 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항문성교를 행하면 당하는 대상이 지나치게 여성스러워질까봐였다. 펠라치오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치게 경망스럽고 음란한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성기가 작은 사람이나 음모가 없는 사람을 이상적으로 여겼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야만인으로 여겨졌는데, 남성기가 크거나 음모가 있으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원숭이 같은 인간일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6] 또한 음모가 있는것도 짐승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음모가 없거나 음모를 제모한 것을 이상적으로 여겼다. 고대 그리스인 조각상을 보면 국부에 털이 없는것도 그 이유.

고대 그리스의 소년애 관습은 동성애 성향이 존중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우선 (평생을 함께한 동성 커플이나 신성부대 등의 사례가 있듯이 남성 동성애자가 차별받는 분위기와 거리가 멀기는 했지만) 소년애를 행하던 사람 중 다수가 나이를 먹고 여자와 결혼을 해 자손을 잇는 경우가 많았고 보통은 남성 전반이 아니라 미성년자 소년만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 소년애를 동성애라 볼 수 없고 그저 고대에 존재했던 독특한 성 관습이거나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는 시야에선) 아프가니스탄의 미성년자 남창 문제 처럼 성학대에 가깝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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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킨토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폴론[7]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게 대접받지 못했고, 따라서 여성과 나누는 사랑은 불완전하고 그저 번식을 위한 행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진짜 사랑은 완벽한 존재인 남성들끼리 이루어진다'라고 믿었기에 동성애가 유난히 유행했던 것이다. 동성애의 목적 자체가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으니 당연히 육체적인 쾌락보다는 정신적인 성숙과 만족에 초점이 맞춰졌다. 아예 육체적 접촉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인 관계에 더 집중했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동성애를 제 짝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미화했다. 플라톤 < 향연>에서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입을 빌려 신화가 하나 나오는데, 옛날 인간에겐 3종의 성별이 있었다. 남자와 남자가 붙어 있는 성, 여자와 여자가 붙어 있는 성, 남자와 여자가 붙어 있는 성. 그러나 제우스는 신의 제사에 점점 게을러지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 둘씩 붙어 있었던 것을 절반으로 잘라 현재와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인간은 각각 자기의 반쪽을 항상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스스로가 남성에게 끌리는 것을 제 잃어버린 반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욕구라고 믿었다. 결국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하는 사랑이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8]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바른 청년이 될 수 있는가?.... 앉을 때 가랑이가 보이지 않게 앉으며, 앉기 전 모래바닥을 쓸어 깨끗이 한 다음 엉덩이가 드러나지 않게 앉아야 한다. 아름다운 소년은 곧 선한 소년이다. 소년들은 사랑을 통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본받고 닮으려 노력해야 한다. 경륜있는 남자들이라면 소년의 미(美)에 이끌려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줄 것이다....

-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중에서.[9]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동성애는 소년애다. 수염이 나지 않은 뽀송뽀송한 사춘기 소년과 나이 든 성인 남성[10] 사이에서의 동성 관계가 주류였는데, 이 관계를 고대 그리스어로 '페데라스티아(παιδερᾰστίᾱ)'라고 부른다. 당시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페데라스티아를 사회적 덕목(...)으로 여길 정도로 당연한 풍습들 중 하나로 여겼다. 어린 미소년을 '에로메노스(ἐρώμενος)'라고 불렀고[11] 나이든 성인을 '에라스테스(ἐραστής)'라고 불렀는데, 에라스테스는 에로메노스가 수염이 다 자라 성인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에로메노스를 1:1로 교육하고 후원해줄 책임이 있었다.

에로메노스의 나이는 최소 10대였다. 그 이하는 지나치게 어리다고 취급을 안했다.[12] 에로메노스의 나이는 최소 13세부터 17세까지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씩 2, 30대까지도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짐작했겠지만 나이가 더 많은 에라스테스가 '능동적'인 남자 역할을 맡았고 어린 에로메노스가 '수동적'인 여자 역할을 맡았다. 기타 문명권에서는 동성애 관계에서 여자 역할을 맡는 사람들을 열등하게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지금의 에로메노스는 곧 미래의 에라스테스였고, 동성애 관계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다고 해서 그걸 치욕스럽거나 열등하다는 걸로 여기지는 않았다.

고대 아테네에선 소년들이 아직 적정 연령이 되기 전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가정 노예 '페다고구에스'라고 따로 소년들을 감시할 노예를 두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아버지들이 '우리 아들이 잘 커서 뭇 남성들의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소년들이 장성해서 사춘기가 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소년의 짝을 찾기 시작했는데, 주로 나이 많은 에라스테스 쪽에서 구혼을 하면 소년들이 마음에 드는 짝을 고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소년들이 짝을 맞아들이는 시기는 13 ~ 15세 정도로 소녀들이 결혼하는 연령대와 거의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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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묘사한 도자기.[13] 이탈리아의 식민도시 파에스툼에서 발견된 무덤 벽화.
소년들이 에라스테스를 고르면 그때부터는 에로메노스의 신분으로 함께 연애를 하게 된다. 에라스테스는 자신의 사회경험과 인맥, 그리고 필수적인 소양들과 품위를 가르쳐줬고 에로메노스는 그 대가로 에라스테스의 연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소년애가 단순한 육체적 욕망관계가 아니라 사회진출의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에로메노스가 밖에서 사고를 치면 에라스테스가 이를 책임지는 경우도 종종 벌어졌다. 일종의 보호자 역할과 스승 역할을 동시에 했던 셈이다.

참고로 당연히 성관계 비슷한 행위도 이루어졌다.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 사이에서는 페데라스티아 관계가 끝난 이후에도 성관계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걸 딱히 지탄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은 오히려 '송아지를 들면 황소도 들 수 있다'라고 부르며 옹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발적인 관계가 아니라 돈을 받고 몸을 파는 매춘 행위는 오히려 싫어했는데, 이는 제 이익을 위해서 제 몸을 판 사람은 나중에 공공의 이익도 얼마든지 팔아넘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아무나와 관계를 갖는 인간을 크게 경멸했다는 좋은 예시가 고대 아테네 출신의 티마르쿠스다. 티마르쿠스는 상당한 미소년이었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워낙에 성생활이 문란하고 수많은 남자들에게 돈을 받고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아에스키네스[14]에게 기소당했다. 차라리 남자 역할을 맡았으면 몰랐겠지만 더 큰 문제는 티마르쿠스가 바텀 쪽이었다는 것. 아에스키네스는 티마르쿠스를 매춘부라고 힐난했고 결국 티마르쿠스는 민회 연설권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15]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아무에게나 다리를 벌리는 남성을 보고 '엉덩이가 넓은 자'라는 뜻의 '유로프로크토스(europroktos)'라고 조롱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다 에로메노스가 나이가 들고 수염, 털이 나면 이 페데라스티아 관계가 끝났다. 아무리 길어봤자 30세 정도면 여자와 결혼하고 가정을 따로 꾸릴 나이였기에 30세 이전에는 거의 페데라스티아가 끝나는 게 보통이었다. 다만 페데라스티아가 끝난 이후에도 에로메노스와 에라스테스는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떤 경우에는 죽을 때까지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상당해서 재력이 많은 에라스테스가 에로메노스를 버리고 새로운 에로메노스를 구하는 일도 빈번했다. 상황이 안좋은 경우 성인이 되기도 전에 에로메노스를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아무래도 약자에 가까웠던 에로메노스가 헤어지기 싫다고 울며불며 매달렸으나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한다.[16]

동성애를 묘사한 그리스 도자기들을 보면 대부분이 에로메노스 쪽이 딱딱하고 경직된 자세로 표현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주도적인 쪽은 에라스테스고 에로메노스는 더 감정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학자들은 이걸 토대로 에로메노스가 에라스테스에 대한 과도한 애정을 표현하는 게 사회적 금기였다고 추정한다. 플라톤의 '향연'에도 나오는 말인데, '에로메노스가 지나치게 에라스테스를 닮고 싶어해 그와 키스하거나 동침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즉 에로메노스가 에라스테스에 대한 집착을 하거나 과도한 사랑을 요구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는 뜻. 하지만 이런 욕구는 소위 '여성적'이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져서 사회적으로 고운 시선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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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메노스의 모습.[17] 히아킨토스 제피로스[18] 기원전 5세기 도기그릇 장식
많은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점이 있는데 고대 그리스 동성 연인들은 항문 성교를 좋게 보지 않았다. 아무리 연인들 사이라도 항문 성교를 하면 자칫 여성스럽게 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에로메노스가 나중에 성장해서 에라스테스의 역할을 해야하는데, 항문성교를 해버리면 나중에 에라스테스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성교와 비슷한 행위를 한다고 해도 기껏 해봐야 사타구니 허벅지 정도로 하는 사타구니 성교에 그쳤다. 물론 인간 사는 세상이 다 그렇듯이 아예 항문성교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고 암암리에 하긴 했다.[19] 하지만 이 짓을 했을 경우 뚫린 사람을 '키나이도스'라고 여성스러운 멸칭으로 부르면서 놀렸다.[20]

동성 연인들 간에 펠라치오 역시 썩 좋은 취급은 못받았다. 사회적 인식은 이 것도 항문성교나 다를 바가 없어서 지나치게 경망스럽고 욕정적인 행위라고 봤던 것이다. 그래서 항문성교, 구강성교는 오직 노예나 매춘부들이나 주로 하는 일이었고 자유시민들끼리는 많이 안했다.[21] 그래서 동성애를 묘사한 고대 그리스 유물들을 봐도 키스처럼 성적 행위들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항문성교나 구강성교를 묘사하는 작품은 그 양이 훨씬 적다.[22]

참고로 그리스에서도 지방마다 동성애 풍습이 다 달랐다. 도리아 지방에서는 오직 에라스테스 한 명이 에로메노스 한 명만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리스 동부 지방에서는 에라스테스 한 명이 에로메노스 여러 명을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그리스 문화의 본고장이었던 크레타 섬에서는 독특한 '납치 문화'가 있었다. 구전에 따르면 어떤 소년에게 반해서 연인으로 구애하고 싶다면 미리 3일 전에 해당 소년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통보해야한다. 그러면 그 통보를 받은 소년 측에서는 반드시 통보장에 써놓은 장소로 나와야 하는데, 만약 통보를 받았음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는 연인이 되기 싫다는 뜻이므로 대단한 모욕이었다. 소년이 그 장소로 나오면 기다리던 '유괴범'이 나타나 소년을 납치하려 시도했다. 소년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유괴범의 정체를 보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괜찮다 싶으면 소년을 데려가는 걸 허가해주었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시 소년을 집으로 데려갔다. 소년 쪽에서 구애자를 마음에 들어해 함께 따라가면, 구애자 쪽에서는 소년을 약 2달 동안 한 건물 안에 가두어놓고 서로 즐겼다.[23] 두 달 이상 소년을 붙잡아두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이후 볼일을 다 보고나면 납치범 쪽에서는 소년에게 군용품, 소, 술잔 등 선물을 푸짐하게 줬고, 소년은 그제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스파르타의 경우 동성애가 이루어졌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조금씩 갈린다. 동성애가 사회 전반에 넓게 퍼져있었다는 의견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스파르타인들이 동성애를 크게 즐겼다고 주장한다. 당시 스파르타에서는 스파르타식 교육이라고도 불리는 '아고게(ἀγωγά)'를 실시했다. 어린 소년들을 7세부터 합숙하도록 만들어 기숙사에서 함께 먹고자며 훈련을 받았는데, 이 소년들이 자라 한창 성욕에 눈을 뜰 나이에 남자들끼리 갇혀 있었으니 자연스레 동성애 관계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훈련생이 일정 나이가 되면 베테랑 전사가 1:1로 붙어서 전투 기술, 생존법, 사회 기술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이 베테랑 전사들이 가르쳐주는 내용에는 싸우는 법 뿐만 아니라 성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아 성경험이 없었던 소년 전사들에게 사회선배로서 성경험을 시켜줬다고 한다.
라케다이몬[24]의 소년들에게 애인이 없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라케다이몬인은 젊은이들의 사랑에서 불명예스러운 것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나 허용하는데, 그들이 제외하는 것을 실로 낮은 벽으로 나누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망토를 가운데에 놓은 상태에서는 껴안고 함께 자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 키케로. 국가론 4권 중에서.
당시 스파르타를 방문했던 키케로가 위와 같은 기록을 남겼을 정도이니 스파르타에서도 동성애가 이루어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껴안고 함께 자다'라는 뜻은 당시에도 성교를 한다는 것과 다름없는 표현이었다. 다만 인터넷에 괴담 수준으로 떠도는, 스파르타에서 소년 전사들에게 전사의 기를 물려준다는 의미로 고참 전사의 정액을 먹였다느니 하는 말들은 근거가 없는 말들이다. 물론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 비슷한 행위가 일어났을 가능성은 있다.

반면 정반대로 스파르타가 다른 그리스권 도시들만큼 동성애가 유행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의 주요 근거는 크세노폰의 기록인데, 크세노폰은 스파르타 전사들의 '교육'에는 동성애적 요소가 없었다는 말을 남겼다. 크세노폰은 제 저술에 전사들 사이의 관계는 '이상적인 우정'으로만 맺어졌고 여기에 성적 요소가 들어가는 건 옳은 일이 아니라고 글을 썼다.[25] 이 크세노폰의 기록을 토대로 스파르타에서 생각만큼 동성애가 보편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파르타에서 동성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근거는 다음과 같다. 스파르타는 정말 극도의 순혈주의를 추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인구가 자연스레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26] 그랬기에 스파르타는 항상 전사들이 부족했고 오히려 출산과 이성 간의 연애를 장려하면 장려했지 아이를 낳을 수도 없는 동성 연애를 좋게 여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이 많은 전사가 소년 전사를 1:1로 데리고 다니며 기술을 가르쳐주었다는 것도 지나치게 확대해석해서 동성 연인 관계로 비약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연구가 지속됨에 따라 이 관계가 단순한 스승-제자 관계라기보다는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관계였다는 게 점점 드러나면서 이런 주장들은 힘을 잃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스파르타의 성문화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유별났다. 보통 20대 중반에는 대부분 여자와 부부 생활을 시작했고 20대가 넘어갈 때까지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별종이나 이상한 인간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이 결혼 풍습마저도 굉장히 독특했는데, 결혼할 신부가 남자처럼 머리를 빡빡 밀고 소년처럼 옷을 입은 채로 외가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신랑이 집으로 찾아와 신부를 '납치'해갔다.[27] 신랑은 신부를 업고 그의 막사로 돌아가 첫날밤을 보냈고, 아침이 밝으면 신부는 다시 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 신랑과 신부는 오직 밤에만 몰래 만나는 게 가능했다. 떨어져 있다가 밤에만 만나면 더 성욕이 더 왕성해질거라 생각했기 때문. 그러다가 신부가 아이를 잉태하면 그때서야 한집살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 식사는 여전히 동료들과 단체식당에서 같이 했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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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한 채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알키비아데스. 왼쪽에 사람들에게 기대있는 사람이 알키비아데스고 그림 중앙의 금빛 월계관을 쓴 인물은 아가톤이다.[29]
동성 연애가 일어나는 가장 흔한 장소는 목욕탕이나 체육관 '짐나시움(γυμνάσιον)'이었다. 신체의 노출이 많은 장소였으니 당연히 동성애가 많이 일어났다. 당시 고대 그리스에는 팡크라티온이나 레슬링처럼 살을 맞대고 하는 스포츠가 유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충동적으로 성관계를 맺거나 동성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도 체육관에서 이런 일들이 빈번하자 일부 도시에서는 체육관 출입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자유 시민이 체육관에서 노예를 강간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 노예는 아예 체육관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였고, 40세 이상이면 어린 소년들이 있는 체육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군대에서 아예 동성 관계를 공식화해서 사기를 끌어올리는 데 써먹기도 했다. 테베 신성부대가 좋은 예시다.[30] 이 신성부대는 게이 커플 150쌍으로 총 3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인-사제 관계에 있었던 이들로만 편성된 까닭은 전장에서 연인이 죽지 않도록, 그리고 애인끼리 스승은 제자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또 제자는 스승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싸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사랑이라는 심리를 이용해서 엄청난 전투력을 잠재하는 병력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신성부대의 능력은 상당히 뛰어났고 단순한 우정이나 전우애를 초월하는 관계였던 덕에 함부로 후퇴하거나 동료를 버리는 일도 훨씬 드물었다고 한다. 신성부대 자체는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군대에게 대패하면서 사라진다.[31]

동성애가 일반적인 풍습이었던 건 맞지만 아예 동성끼리 사실혼, 결혼 관계처럼 가정을 차리고 한 집에서 사는 건 욕먹을만한 행위였다. 제아무리 동성애에 관대한 고대 그리스에서도 결혼과 부부관계는 남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었지, 동성끼리 할 건 아니라고 봤다. 남성 둘이 한살림을 차려서 살면 이건 손가락질받았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여자와 결혼하고 실제로는 동성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편법을 썼다. 당연히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던 여성은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남성의 지위가 압도적이었던 고대 그리스에서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랑에 크게 3단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 1단계가 가장 어리고 젊을때 에로메노스로서의 사랑이고, 2단계가 어느 정도 성숙한 남성이 되었을때 에라스테스로서의 사랑이며 마지막 3단계가 늙고 노년기에 접어든 남성이 일반적인 여성과 가정생활을 누리는 것이었다. 애초에 여성과의 결혼생활이나 가정생활은 맨 마지막으로 우선순위가 밀려있을 정도로 여성에 대한 대우가 영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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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년이 그려진 도기그릇 파편 도자기에 묘사된 동성애 기원전 4세기 경 제작된 그리스 도기그릇[32]
동성 연인 관계를 묘사하는 대부분의 자료들은 항아리나 화병에 새겨진 그림들이다. 20세기 초 존 비즐리(John Beazley)는 '페데라스티아', 즉 동성애를 묘사하는 화병을 총 3가지로 구분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대부분의 화병들은 아래의 3가지 분류에 들어간다. 다만 그리스 보이오티아 지방에서 만든 화병에는 제4의 분류, 즉 에라스테스가 발기된 상태로 앉아있으면 무릎꿇은 에로메노스가 그의 무릎에 다가가거나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외에도 서로 운동하는 모습,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 입을 맞추는 모습 등 세세하게 따지면 이 3가지 분류에 포함되지 않는 작품들은 더더욱 많아진다. 즉 아래 3가지 분류는 가장 종류가 많고 일반적인 것일 뿐, 모든 화병들이 이 3가지 분류에 다 포함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가 서로 마주보고 선 자세. 무릎을 구부린 에라스테스가 한 손으로 에로메노스의 턱을 움켜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에로메노스의 성기를 애무한다.
  • 에라스테스가 에로메노스에게 작은 선물, 때로는 동물 등을 선물한다.[33]
  • 마주서 있는 자세의 연인들이 서로 허벅지 성교를 한다.[34]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의 미인상은 다음과 같다. 곧은 어깨, 큰 가슴, 근육, 말벌의 허리, 튀어나온 엉덩이, 큰 허벅지, 긴 종아리. 남자의 이마는 너무 높아서는 안 되며 코는 곧아야 하며 아랫입술이 돌출되어 있고 턱이 동그랗고 매의 눈과 사자 같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성 성기가 작은 게 이상적이었다. 큰 성기를 가진 남자는 욕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원숭이 야만인 같다고 싫어했다.

그리스의 동성애 문화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했다. 동성 연인 관계가 정말 앞에서 말한대로 정신적인 교류와 고귀한 이상을 추구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이 동성연애 관계 사이에서도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스에서는 에라스테스가 에로메노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었다. 처음에는 토끼나 사냥감들을 주는 등 단순히 마음을 담은 선물에서 시작했지만 갈수록 이게 변질되어버렸다. 에로메노스들이 서로 에라스테스에게 받은 선물들을 과시하고 자랑하는가 하면, 돈을 매개로 늙은 남자들이 어린 소년들을 육체적으로 탐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갈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면이 심해졌다. 결국 고졸기 말에는 늙은 남자들이 돈을 제시하면 어린 소년들이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지경까지 가버렸다.

결국 아테네의 솔론이 고졸기 말에 소년에 대한 애정행위를 규제하는 법령을 만들었고, 아리스토파네스를 비롯한 고전 작가들도 '정신의 고취'라는 고귀한 이상 아래 숨겨진 동성애의 물질적인 면과 반작용을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조롱했다. 하지만 이후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로마 제국이 들어선 이후 오히려 동성 간 육체적 쾌락을 강조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고, 이런 문제는 기원후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까지도 해결되지 못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주로 성인 남성과 소년과의 관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향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된 스파르타의 사례처럼 소년들 간의 동성애도 존재했다. 소년들 간의 사랑이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기도 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강조해서 말할 때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듯이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 주장을 강조한다는 의미로 고환에 손을 얹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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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노우스의 석상. 하드리아누스와 그의 연인 안티노우스[35]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문화는 훗날 고대 로마 시대까지 전해져 내려간다. 하지만 정신적인 교류와 동등한 파트너십을 중시하던 고대 그리스와 달리 로마인들은 그저 육체적인 쾌락 그자체에 더 집중했다. 고대 로마의 동성애와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약간 느낌이 다르다. 참고로 로마에서는 동성 관계 자체는 용인되었지만 로마 시민이라면 박을지언정 박혀서는 안되었다. 로마식 동성애에서 바텀 비천한 노예들만이 맡아야 했다. 오현제들 중 하나인 하드리아누스가 동성 연애를 즐겼지만 별 말이 없었던 것과 달리 또다른 황제 엘라가발루스가 있는대로 욕을 처먹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하드리아누스는 탑이었지만 엘라가발루스는 바텀이었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고대 로마/성문화 문서 참조.

3.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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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킬레우스
Ὣς φάτο, τὸν δ’ ἄχεος νεφέλη ἐκάλυψε μέλαινα·
ἀμφοτέρῃσι δὲ χερσὶν ἑλὼν κόνιν αἰθαλόεσσαν
χεύατο κὰκ κεφαλῆς, χαρίεν δ’ ᾔσχυνε πρόσωπον·
νεκταρέῳ δὲ χιτῶνι μέλαιν’ ἀμφίζανε τέφρη.
αὐτὸς δ’ ἐν κονίῃσι μέγας μεγαλωστὶ τανυσθεὶς
κεῖτο, φίλῃσι δὲ χερσὶ κόμην ᾔσχυνε δαΐζων.


이렇게 말하자 슬픔의 먹구름이 그를 덮었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은 먼지를 움켜쥐더니
머리에 뿌려 고운 얼굴을 더럽혔고,
그의 향기로운 옷에도 검은 재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신은 먼지 속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호메로스, <일리아드> 18권 25~27. 천병희 역. 파트로클로스의 비보를 들은 아킬레우스에 대한 묘사.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고대 그리스 최고의 전사로 꼽히는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라는 절친이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어린 시절 여장을 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워 인기가 많았지만,[36] 그 미모가 무색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냉담하고 오만하게 굴었는데 유일하게 파트로클로스에게만 다정하게 굴었다.

그래서 이 둘이 단순한 친구 관계인지, 아니면 연인 관계인지를 두고, 호메로스로부터 수백년 후의 고전기 사람들에게는 큰 논쟁거리였다. 일리아스의 저자 호메로스는 둘이 연인 관계라고 단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으나 후대 그리스인들은 대부분 이미 둘이 연인이라고 생각했고 플라톤, 아이스퀼로스, 아이스키네스 등은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를 연인 관계로 묘사한 작품들을 여럿 출판했다.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다. 파트로클로스는 주사위 놀이 도중 언쟁을 벌이다가 실수로 제 친구를 죽여버렸고, 죽은 친구 쪽 가문의 복수를 두려워한 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 메노이티오스는 아들을 데리고 프티아로 향했다.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제 아들 아킬레우스와 함께 자라도록 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금세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둘은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함께 수업을 받았으며 어딜가나 같이다니며 떨어져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사이로 발전했다.

일리아스의 내용은 이렇다. 아킬레우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와 함께 트로이 전쟁에 그리스 연합군 편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애초에 참여한 것도 반강제적이었고[37] 총사령관 아가멤논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싸움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고 있었다. 그리스 연합군에게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아가멤논은 별수없이 아킬레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나마 그와 사이가 좋던 오디세우스 아이아스를 보내 설득하도록 시켰다. 당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와 한 천막을 쓰면서 그와 함께 노래부르고 리라를 켜고 있었는데,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의 방문에 깜짝 놀랐지만 끝내 설득당하지 않고 정중히 돌려보냈다.

하지만 전세는 갈수록 그리스 연합군에게 불리해졌다. 연합군은 함대 정박지까지 쫒겨났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아킬레우스는 전세를 알아보기 위해 파트로클로스를 대신 보내 현황을 확인토록 했는데, 이때 네스토르가 시찰나온 파트로클로스에게 '지금 온 연합군이 죽어나가고 있다'며 간곡히 호소한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보다 연장자임을 상기시키며 아킬레우스가 옳지 못한 결정을 할지라도 나이 많은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설득했던 것이다. 네스토르는 아킬레우스가 정녕 나오지 않는다면 대신 파트로클로스라도 나와 싸우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네스토르의 설득에 넘어간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자신이 대신 나가 싸우겠다고 간청했다. 아킬레우스는 당연히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파트로클로스가 울고불며 애원하자 결국 자신의 갑옷을 파트로클로스에게 빌려주고 축복을 빌어주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아킬레우스인 척 눈속임하며 전장을 누볐다. 뛰어난 무예의 소유자 파트로클로스는 전선을 다시 트로이 성벽 아래까지 밀어붙였고 심지어 제우스의 아들 사르페돈을 죽이기까지 했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아킬레우스의 충고를 까먹고 지나치게 분전하다가 헥토르에게 목숨을 잃었다.

파트로클로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킬레우스는 경악했다. 깊은 슬픔에 빠져 반쯤 이성을 잃은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어루만지며 애도했고 를 몸에 뒤집어쓰며 식음을 전폐했다. 아킬레우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제 유해를 파트로클로스의 것과 함께 섞어 안치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38]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장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어머니 테티스에게 부탁해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갑옷[39]를 갖춰입고 싸웠다. 파트로클로스가 죽기 전까지는 사람이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던 아킬레우스였지만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에는 심지어 안면이 있던 트로이 병사들까지 죄다 쳐죽였다고. 결국 그는 헥토르를 죽이는 데 성공했고,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울분을 풀기위해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 뒤에 매달아놓고 이리저리 끌고다녔다. 이 것이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에게 얽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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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로클로스를 애도하는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앞에 헥토르의 시체를 끌고 온 아킬레우스 복수를 다짐하는 아킬레우스
정작 이 작품을 쓴 호메로스 본인은 두 사람을 연인 관계라고 언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호메로스 시대와 동떨어진 대부분의 후대 그리스인들은 두 사람을 연인 관계로 여겼다. 그런데 이 중 논란이 된 주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누가 이고 누가 바텀이냐라는 다소 어이없는 논쟁이었다. 플라톤, 아이스퀼로스, 핀다르, 아이스키네스 등이 이 주제에 대해 다양한 주장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아이스퀼로스 : 아킬레우스가 탑이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서는 제 목숨을 걸어야한다는 신탁을 받았음에도 나가싸워 그의 원수를 갚았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파트로클로스를 '지켜주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지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남성의 역할이었다. 남아있는 연극 단편에 의하면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허벅지를 찬미했고[40]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끈질길 정도로 수많은 입맞춤을 귀찮아했다.
  • 플라톤 : 파트로클로스가 탑이다. 아킬레우스는 어릴적부터 뛰어난 미모로 유명했고 파트로클로스보다도 젊고 아름다웠다.[41] 아름다움은 곧 여성적인 특성, 보호받는 자 '에로메노스'의 특징이다. 아이스퀼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탑으로 주장한 것에는 오류가 있다. 그의 저서 '파이드로스'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는 탑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탑을 사랑해서 목숨까지 걸었던 대담한 '바텀'이였던 것이다.
  • 아이스키네스 : 둘이 연인이라는 게 중요하지 누가 탑인지 바텀인지는 중요치 않다. 기원전 345년 재판의 연설을 보면, 아이스키네스는 호메로스가 둘 사이의 관계를 명시하지 않았으나 지식인이라면 그가 숨겨놓은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메로스가 일부러 둘 사이의 사랑을 숨기고 우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꺼렸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그들의 사랑이 유난히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말이다. 테오크리토스, 플루타르코스, 마르티알리스, 루키아노스 등 고대 작가들은 대부분 이 입장을 따랐다.
  • 크세노폰 : 둘은 그저 순수한 우정 관계일 뿐이다. 크세노폰은 심포지엄에서 둘은 그저 순결하고 고귀한 친구 사이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성적 관계라기보다는 순수한 남자들끼리의 우정이라고 보았던 것. 하지만 이 주장은 별로 지지받지 못했다.

19세기와 20세기, 동성애가 천하에 지탄받을 행동으로 추락하면서 유럽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가 성적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도 둘을 연인 관계로 묘사하는 비극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를 써냈고, 결정적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트로이를 통과할 때 자신의 연인 헤파이스티온을 끌고 함께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에게 경배했다. 당시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헤파이스티온이 명확한 동성 연인 관계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미 고대인들은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를 명확한 연인 사이로 보고 있었다는 의미다.

참고로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는 꽤 나이 차이가 났다. 트로이 전쟁 도중 아킬레우스의 나이는 23세, 파트로클로스의 나이는 29세였다. 또한 아킬레우스의 미모가 지나치게 강조돼서 그렇지, 파트로클로스 역시 한 미모하는 미남이었다. 회색빛 눈동자에 부드럽고 현명한데다가 의지할 수 있는, 잘생긴 외모의 젊은이였다고 한다.

3.1. 연인설에 대한 반박

이 두 남자의 각별한 우정을 두고 호사가들은 동성애 관계였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호메로스 안에서는 그런 암시조차 없다. 반대로 서로 다른 여인들과 잠자리에 드는 장면은 보인다.(9.664-668)
일리아스, 이준석[42] 번역, 아카넷, 2023, p.805
사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설은 상당히 논란이 많은 주제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를 연인으로 생각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허나 일리아스를 연구하는 고전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둘의 관계가 연인 관계라는 주장이 고전기 그리스인들이 과거의 호메로스 텍스트를 동성애가 유행하던 당대 그리스 고전기의 문화적 환경에 끼워맞춰 오독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학계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43]

가장 근본적인 비판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두 사람의 연인 관계가 전혀 암시조차 없다는 점이다. 둘의 로맨틱한 관계를 묘사한 모든 저술은 호메로스와 몇 백여년은 동떨어진 그리스 고전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고, 호메로스는 둘 사이의 동성애를 언급조차 한 적이 없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유별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것을 연인의 감정으로 보는 것은 확대해석에 가깝다. 실제로 기원전 200년 경 사모트라케의 아리스타르쿠스 역시 둘 사이의 연인설을 정면으로 부정했고 호메로스는 둘을 연인으로 묘사할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플롯상으로도 파트로클로스의 기본적인 역할은 아킬레우스의 '가족이자 친우'이지 아킬레우스의 '연인'이 아니다.[44] 오히려 파트로클로스는 어릴 때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펠레우스에게로 피난하여, 아킬레우스와 함께 자란 의형제에 가깝다. 아킬레우스의 슬픔은 어릴 때부터 동고동락한 의형제의 죽음에 절규한 것일 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일리아스 플롯상 파트로클로스의 역할을 자세히 보면, 파트로클로스는 헥토르의 평행 인물에 가깝다. 즉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관계'는 '헥토르와 프리아모스의 관계'에 대응한다. 그렇기에, 헥토르가 모든 트로이아인에게 특별히 사랑받고, 모든 트로이아인이 유난히 헥토르의 죽음에 감정적으로 반응했고, 모든 트로이아인이 오직 헥토르만을 위해서 개인 장례식을 열듯이, 파트로클로스는 모든 아카이아인에게 특별히 사랑받고, 모든 아카이아인이 유난히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감정적으로 반응했고, 모든 아카이아인이 오직 파르토클로스만을 위해서 개인 장례식을 연다. 그리고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를 잃은 프리아모스가 화해를 함으로써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호메로스가 파트로클로스-아킬레우스와 헥토르-프리아모스를 얼마나 평행하게 그리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설펴보자:
파트로클로스를 장사 지내며 통곡하는 아킬레우스를 그리는 직유를 보자. 그는 새신랑이 되어 죽은 자식의 뼈를 태우는 참담한 아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23.222이하). 이 직유는 독자들을 헥토르와 안드로마케가 귀여운 아기를 안고 마지막 짧은 행복을 누리던 장면으로 이끈 다음(6,466이하), 헥토르를 잃고 프리아모스가 절규하는 장면으로 돌려놓는다.(22.408이하). 아킬레우스는, 최소한 시인의 눈에는, 프리아모스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한편,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탄원하는 프리아모스에게는 맹목에 휩싸여 고향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타향의 어느 부잣집으로 도피한 사람 같다는 직유가 붙는다.(24.480이하). 우리는 이런 사람을 하나 안다. 어릴 적 실수로 놀이 친구를 죽이는 바람에, 고향을 떠나 아킬레우스의 집으로 피신한 사람, 파트로클로스다(23.85이하). 이렇게 각자 서로의 가장 뼈아픈 상실을 품은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에서 목 놓아 통곡한다. 이제, 아킬레우스가 지금껏 사로잡혔던 격렬한 자기 연민과 분노의 자리에는 원수와 그 아버지에 대한 동정심이 깃든다.
일리아스, 이준석 번역, 아카넷, 2023, pp.795
즉 일리아스는 아예 직유까지 써가면서,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관계를 헥토르와 프리아모스의 관계에 대응시키고 있다. 그런데 만약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를 연인 관계로 해석한다면, 헥토르의 시체를 찾기 위해 호메로스가 선택해야 할 트로이아인은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아니라 아내 안드로마케일 것이다. '배우자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안드로마케'에게서 '연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기 자신'을 아킬레우스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메로스가 '굳이' 안드로마케를 놔두고 프리아모스를 선택한 것에서,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관계가 연인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고전학자들 뿐만 아니라 특히 일리아스를 연구하는 현대 문헌학자들을 중심으로도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흔히 생각하는 연인 관계가 아니라는 주장이 많다. 일리아스에는 둘을 연인 관계로 묘사하는 어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도 후대인들이 자꾸 둘을 연인으로 미화시켜 일리아스를 오독한다는 비판이다. 폭스 교수는 둘의 관계를 연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부풀리는 모습이 마치 음모론자와 같다고 비판했다.[45]
There is certainly no evidence in the text of the Iliad that Achilles and Patroclus were lovers. [...] Those contemporary critics who see all literary instances of male affection for males as proof of "repressed homosexuality" have the same problem as other conspiracy theorists
분명히 말하자면 일리아스 본문에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가 애인이었다는 증거가 없다. [...]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는 모든 문자적 상황들을 '억압된 동성애'로 보는 현대 비평가들은 다른 음모론자들과 똑같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Robin Lane Fox, 『 The Tribal Imagination: Civilization and the Savage Mind』,. Harvard University Press, p.223

요약하자면 호메로스는 둘을 연인 관계라고 단 한 번도 묘사하지 않았고,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한 기록만을 토대로 삼는 고전 연구에서는 본문상 아무 근거가 없는 설을 회의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물론 유일하게 진실을 밝혀줄 호메로스는 이미 수 천년 전에 죽어버렸기에 그의 본뜻이 무엇이었는지 확언하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호메로스의 저서에는 연인 관계라는 말이 단 한 줄조차 없고 둘 사이를 공인하지도 않은만큼, 둘의 관계를 대놓고 연인 사이라고 못박는 것은 지양해야할 것이다.

4. 여성 간의 동성애

위의 문서에서는 남성 간의 동성애만 설명해놨지만 고대 그리스에는 레즈비언도 있었다.[46] 허나 고대 그리스 특유의 여성차별적인 분위기[47] 때문에 제대로 대접받지는 못했고 알려진 것도 거의 없다. 그나마 여류 시인 ' 사포'가 남긴 시에 여성 간 동성애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기는 한데 이마저도 대부분이 소실되어 이를 제외하면 거의 남아있는 사료가 없는 수준이다. 학자들이 연구해본 결과 사포는 소녀들에게 여자 간 동성애를 가르치려고 시도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워낙 남은 자료가 없는 터라 사포를 연구할 때 아무래도 연구자들의 주관이 깊게 들어갈 수 밖에 없어서 현대에 통일된 학설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참고로 고대 그리스에선 귀부인들이 미소녀들에게 관심을 표하고 고백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48]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사포는 서양 세계 최초의 여류 시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어찌나 능력이 뛰어났던지 플라톤이 그녀를 보고 '열 번째 뮤즈'라고 찬사했을 정도였다. 기원전 630년 경 레스보스 섬에서 부유한 가정의 딸로 태어났고 3명의 오빠동생이 있었다. 안드로스 섬의 케르킬라스(Kerkylas)와 결혼했다고는 하는데, 이 이름이 '남자섬의 고추남'[49]이라는 기괴한 뜻인걸 보면 남편이 누구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알수없는 이유로 기원전 600년 경 레스보스에서 추방당했고 시칠리아로 망명했다고 한다.[50] 이후 잘생긴 젊은 뱃사공 파론을 연모하다가 레프카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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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세계 최초의 여류시인 사포의 모습.
사포는 무려 10,000행이 넘는 시행들을 집필한 대작가였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그녀의 작품들을 정리해놓은 몇 권에 달하는 작품집이 있었고 고대 아테네에서도 그녀의 작품을 출간하는 등 인기도 많았다. 솔론이 그의 조카가 사포의 시를 흥얼거리는 걸 보고 자기도 그 시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플라톤은 아예 '10번째 뮤즈'라고 칭송했다. 심지어 레스보스 섬의 두 마을이 서로 사포의 출생지라고 주장하면서 다투기까지 했다고 한다. 여성 인권이 높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에서 이 정도였다는 건 당대 사포의 인기가 정말 엄청났다는 뜻.

그녀의 시는 로마 시대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인기가 있었지만, 이후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잊혀졌다. 여기에 대해 중세 교회에서 의도적으로 훼손시켰단 설도 있지만, 최초 언급이 16세기에나 나타난 낭설로,[52] 그 범인도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329-390)라는 둥,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1015-1085)라는 둥 서로 맞지 다른 버전의 이야기만 돌아다닌다. 실제론 의도적인 훼손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수요가 없어서 잊혀진 것이다.[53]

그녀의 수많은 작품들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시들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 아프로디테 찬가' 하나만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고, 대략 650여 개 정도의 인용절 정도가 남아있다. 그녀의 시들의 주 특징은 명료한 단어들, 직설적인 감정 표현, 과감한 직유법의 활용을 통해 즉각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대부분이 정열적인 사랑, 제 연정에 대한 욕구 등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아래에 번역된 시는 31번 단편으로, 사랑하는 소녀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을 보고 그 남자를 부러워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 내용 일부가 소실되었지만 예술성은 상당히 높다고 평가받는다.
나에게는 그가 신과 같이 부럽구나

누구든지 너의 맞은편에 앉아 그토록 가까이에서 너의 달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너의 그 요염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오 겁에 질린 내 가슴 설레게만 하는구나

너를 보는 순간 나는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게되고

혀에는 재갈이 물리며 미열이 일제히 피부 아래에 들끓는구나. 내 눈이 더이상 내 앞을 볼 수 없고 귀에는 가슴 두근거리는 소리만 나는구나

땀구슬이 내 몸을 타고 떨어지며 내 몸이 스스로 떨리니, 나는 풀보다도 더 푸르고 죽기 직전인 것만 같구나.

그러나 아무리 갈구하는 자라도 모든 걸 참아야만 하리....

- 사포. 31번 단편 모음집.
참고로 사포가 동성애자인지, 아니면 그냥 이성애자인데 여성과의 사랑을 묘사하기 좋아했던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로마 시대부터 논란이 있어왔다. 1세기 경 중반 네로의 가정교사이자 저명한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어떤 그리스 학자가 사포가 매춘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문을 하나 통째로 쓰는 걸 보며 한심하다고 불평했다고 하며, 빅토리아 시대에도 그녀의 성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에는 일부러 사포를 '여학생들에게 교양을 가르치는 여선생' 정도로 미화하기도 했다. 교양과 철학에 대해 토론하는 엄숙한 여교장 같은 느낌으로 미화하고 당대 여성들의 교본으로 삼으려 했던 것.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단순한 사제 관계보다는 성적인 관계가 더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본다.

5. 기독교 전래 이후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 하면서 배척되다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동성애를 공식 비난하며 남창을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동성애자를 화형에 처할것을 명하는 등 동성애자를 강력하게 탄압하는 정책들이 연이어 나오면서 종언을 맞았다.

기독교는 동성애 자체를 죄악시했기에 아예 동성 연애 자체를 사회에서 매장해버렸고, 그리스도 그 영향으로 근대기까지는 동성애에 대해서 꺼리는 인식 자체가 지배적이었다.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동성애가 무슬림 사이에서 그리 금기시 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좋았던것은 아니었다. 비록 남성 동성애는 1951년에 비 범죄화되었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 자체는 그 이후로도 상당기간 시궁창이기는 매한가지였다. 그야말로 대격변.

이후 그리스도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타 유럽국가들처럼 성해방 바람이 불고 정교회의 영향력이 쇠락해져가는 과정을 거치며, 동성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관대해졌고, 2015년에 동성커플 파트너십 제도가 통과되고 2018년에 유텁 사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그리스 본토에서 동성결혼을 하지 않아도 EU권 국가에서 동성결혼한 부부는 그리스에서도 부부로 인정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사실상 동성결혼 합법화가 진행되었다.

6. 관련 문헌 및 번역

6.1. 신들의 대화

시모사타 출신의 아시리아인 작가이자 수사학자였던 루키아노스는 AD 175 ~ 165년에 왕성하게 활동한 인물이었다. 고대 아테네에서 10년 동안 체류하며 수많은 작품들을 써냈는데, 주로 미신을 조롱하기 위해 풍자적인 내용을 그득 담은 책들을 주로 집필했다. 당연히 그리스 로마 신화도 그의 조롱을 피해갈 수 없었다. 루키아노스는 호메로스와 그리스 신들을 조롱하기 위해 일부러 25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진 '신들의 대화(Θεῶν Διάλογοι)'을 출판했는데, 여기에 가니메데와 관련된 글이 있다. 첫 번째는 제우스가 가니메데를 납치, 올림포스 산에 도착한 직후 제우스와 가니메데 사이의 대화, 두 번째는 제우스가 가니메데만 싸고돌자 이에 불만을 품은 헤라와 제우스 사이의 언쟁이다. 당대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니메데를 어떤 존재로 생각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아래 해석은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MD MacLeod가 Loeb Classical Library volume CCCCXXXI 판에서 번역한 내용을 따른다.

1. 제우스와 가니메데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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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 자 가니메데, 우리가 산에 도착했으니 나에게 입맞춤을 해다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새의 형상을 하고 있었을 때와는 달리 구부러진 부리나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날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니메데 : 이름없는 분이여, 당신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독수리가 아니었나요? 당신이 내 양떼 사이에 있던 나를 들어올려 이 곳까지 데려오지 않으셨나요? 언제 그 많던 깃털들을 언제 다 없어지게 하셨나요? 지금 당신의 모습은 방금 직전과는 많이 변했군요.

제우스 : 네 앞에 있는 자는 한낱 이름없는 인간이 아니요 한낱 독수리도 아니다. 나는 신들의 왕이지만 잠깐 내 형상을 바꾸었을 뿐이다.

가니메데 : 그게 무엇인가요? 혹시 당신은 위대한 신 이신가요? 그렇다면, 하지만 당신은 뿔도 파이프도 성기고 비틀린 다리도 가지고 있지 않으시군요.

제우스 : 판이 너의 유일한 신인가?

가니메데 : 그렇답니다. 우리는 가장 좋은 양을 골라 그의 신상이 세워진 그의 동굴로 끌고가 제물로 바친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저 납치범일 뿐이군요,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에요.

제우스 : 말해보아라, 제우스의 이름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인가? 가르가론 산[54]에 세워진 그의 신전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단 말인가? 비와 천둥, 번개를 보내는 자를 정녕 모른단 말인가?

가니메데 : 세상에나, 당신이 전날 우리에게 그 많은 우박을 쏟아부은 사람이란 말인가요? 사람들이 그 위에서 온갖 소음을 만들어낸다고 찬양하는 분, 내 아버지가 숫양을 바치던 그 분이란 말인가요? 신들의 왕이시여, 제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나요? 제가 이 곳까지 납치되어 오는 바람에 제 양들을 보호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늑대들이 제 양들을 덮칠지도 몰라요.

제우스 : 뭐라고? 설마 아직도 네 양을 걱정하느냐? 너는 이제 불멸의 몸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 것이란 말이다.

가니메데 : 그게 무슨 말인가요? 설마 오늘 안으로 저를 이다로 돌려보내지 않을 셈이신가요?

제우스 : 당연히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리한다면 내가 무엇하러 독수리로 모습까지 바꾸었겠느냐?

가니메데 : 제 아버지가 온 세상을 뒤져 저를 찾으려 드실텐데요. 그리고 저를 찾으시면 양떼를 놔두고 도망간 죄로 저를 심하게 벌주실 거에요.

제우스 : 어떻게? 그가 어떻게 너를 찾는단 말이냐?

가니메데 : 제발 이리 하지 말아주세요. 벌써부터 제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저를 되돌려놓아주신다면 제 아버지께 말해 제 몸값으로 거대한 숫양을 바치게 할 거라고 약속할게요. 그중에서도 특별히 목초지에서 양들을 이끄는, 거대한 3년짜리 숫양을 골라 바칠게요.

제우스 : 이 아이는 어찌나도 단순한지, 어찌나도 이렇게 순진하단 말인가? 아직도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구나! 여길 보아라 가니메데. 너는 이제 그 모든 것들에 작별인사를 하고 네 양떼와 이다에 관한 모든 걸 잊어버려라. 너는 이제 천상계의 일원들 중 하나이며 여기서 네 아버지와 네 나라를 도우면 되는 것이다. 치즈와 우유 대신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먹고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아름다운 손으로 우리에게 넥타르를 따라다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너는 더이상 인간이 아닌 불사신이 될 것이고 내가 너만의 별, 즉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만들어 너가 완벽한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점이다.

가니메데 : 하지만 제가 놀고 싶다면 어떻게 하나요? 누가 저와 놀아준단 말인가요? 이다에는 제 또래 친구들이 많았는데요.

제우스 : 여기에도 너와 놀아줄 사람들이 많다. 저기에 에로스가 있고 아름다운 미소년들도 많다. 오직 너만이 기운을 차리고 지상세계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멈추면 되는 일이다.

가니메데 : 하지만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도움이 될까요? 여기서도 양떼들을 돌봐야 하나요?

제우스 : 아니다. 너는 우리의 술잔에 포도주를 따르고 과일을 건네주며 식탁에서 우리들을 돌보게 될 것이다.

가니메데 : 아주 간단한 일이네요. 저는 우유를 따르는 법을 알고 우유를 담은 잔을 사람들에게 돌리는 법을 알아요.

제우스 : 또 이러는구나. 언제까지 그 하찮은 우유 타령을 하고 있을 셈이냐? 아직도 네가 인간계에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똑똑히 말해주자면 이 곳은 천상계 곧 신성한 올림포스다. 그리고 이 곳에서 마시는 음료는 우유가 아니라 신들의 음식 넥타르다.

가니메데 : 그게 우유보다 맛있나요?

제우스 : 얼마 안가서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넥타르를 한번 맛보고 나면, 더이상 네 우유 따위는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가니메데 : 밤에는 어디서 자야하죠? 제 친구인 에로스와 함께 자면 되나요?

제우스 : 아니다. 그게 내가 너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이유지. 나는 네가 나와 함께 자기를 원한다.

가니메데 : 혼자 주무실 수는 없나요? 저와 함께 잠자리에 함께 드는 걸 원하신다고요?

제우스 : 그렇다. 너같이 아름다운 소년일 경우에는 말이지.

가니메데 : 하지만 제가 아름답다고 해도 어떻게 당신이 더 잘 주무실 수 있다는 말인가요?

제우스 : 아름다운 소년은 달콤하고 부드럽지. 그리고 잠도 더 푹 잘 수 있게 해주느니라.

가니메데 : 하지만 제 아버지는 저와 함께 잘때마다 제가 이리저리 뒤척인다고 불평하셨는걸요. 저와 함께 자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가 너무 뒤척여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짜증을 내셨어요. 그래서 보통 저를 어머니에게 보내 둘이서 함께 자게 했답니다. 만약 그 것이 당신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라면, 아마 저를 지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더 나으실 거에요. 저는 밤 내내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당신이 잠못들게 할지도 몰라요.

제우스 :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너는 계속 깨어있는 채로 나에게 입맞춤하고 포옹해주면 된다.

가니메데 : 당신이 스스로 알게 될 일이겠죠. 함께 자고 키스하는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어요.

제우스 : 그 시간이 오면 알아서 다 잘 될 것이다. 헤르메스, 그를 데려가 불멸자로 만들라. 그가 잔을 제대로 따르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가 능숙해졌을때 우리에게 포도주를 따라줄 수 있도록 다시 데려오너라.

2. 제우스와 헤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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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 당신이 그 이다에서 태어난 프리지아인 아이를 이 곳으로 데려온 이후부터, 당신은 나에게 지나치게 소홀하군요.

제우스 : 뭐라고 헤라? 벌써부터 그 소년을 질투한단 말인가? 그 소년이 그렇게도 단순하고 무해한데도 말이오? 나는 당신이 그 소년을 그저 내 수많은 여자친구들 중 하나 정도로 취급할 거라 생각했는데.

헤라 : 만유를 주재하는 당신이 당신의 정당한 아내인 나를 버리고 지상으로 내려가 사티로스나 황소로 변해 간음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보통 바람을 피워도 여자들은 땅에 남겨놓고 올라오더니, 이 소년은 아예 이다에서 붙잡아와 올림포스까지 데리고 올라왔군요. 나의 훌륭한 새들의 왕이시여, 그리고 당신은 그를 아예 불멸의 신으로 만들고 포도주 따르는 직책을 맡겨 우리의 식탁으로 데려왔네요? 우리에게 굳이 새 포도주 따르는 시종이 필요했나요? 기존에 포도주를 따라주던 헤파이스토스 헤베가 자리를 비우거나 파업이라도 했나요?

그 소년이 당신에게 술을 따라줄 때마다 당신은 그에게 입을 맞추죠. 그 것도 우리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이에요. 그리고 그 소년의 입맞춤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굳이 목이 마르지 않아도 그와 입을 맞추기 위해 계속 술을 따르라고 요구하잖아요? 가끔은 그가 채운 술잔을 한 모금만 마신 채 다시 그에게 되돌려주죠. 그 소년이 그 술잔을 마시고 나면 그의 입술이 닿은 쪽으로 다시 술잔을 마시죠. 취한 소년을 옆에 끼고 만지작거리면서 동시에 키스와 술마시는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게다가 다른 날에는 왕이자 만물의 아버지이신 당신이 만사를 제쳐둔 채로 그와 함께 고작 주사위 놀이를 하고 계시더군요? 나는 그 헛짓거리들을 다 보고있어요! 나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제우스 : 내 사랑, 내가 술을 마시면서 아름다운 소년에게 입맞춤하고 그와 맛있는 포도주를 동시에 즐기는 일이 뭐 그리 잘못됐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그 소년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입맞춤을 받아본다면, 당신은 내가 왜 꿀보다도 그와의 입맞춤을 더 좋아하는지 알게 될거라오.

헤라 : 소년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리 말할지도 모르지요. 내가 그 프리지아 소년에게 입을 내밀어서 확인하려 들 정도로 나를 화나게 만들려 하지 말아요. 오 이 여자보다도 못한 자여!

제우스 : 고귀한 헤라여, 내 작은 소년을 괴롭히지 말아주시오. 이 여자 같은 이방인, 이 소년의 부드러움은 끝도 없지만 이 부드러움을 말하다가 당신을 화나게 할까봐 차마 말하지 않겠소.

헤라 : 글쎄요, 그리도 그 소년이 좋으시다면 아예 결혼하지 그러세요? 하지만 최소한 그 술따르는 소년 하나 때문에 당신이 저를 방치한 채로 학대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알고 계셨으면 좋겠군요.

제우스 : 말도 안되는 소리! 그렇다면 그 헤파이스토스가 이전에 하던대로 술잔을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그는 풀무질을 하고 망치질을 하느라 술잔을 따를 때에도 손가락이 그을음에 더러워져 있어. 내가 그의 더러운 손가락에서 내 술잔을 빼내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실때마다 그에게 입맞춤을 해야한다는 말인가? 심지어 그의 어머니인 당신마저도 그을음으로 온통 새까매진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싶어하지 않잖아? 그게 더 좋지, 안그런가? 이래도 헤파이스토스가 훨씬 더 적합한 술잔 시종이고 가니메데는 원래 고향인 이다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그는 너무나도 깨끗할 뿐더러 장밋빛 손가락을 움직여 서투르지 않은 자세로 술을 따라주지. 무엇보다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그저 그의 입맞춤이 과실보다도 달콤하다는 것 뿐이야!

헤라 : 하, 그래서 이제는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고 그의 손가락은 고귀하신 당신의 술잔을 따라주기에 걸맞지 않으며 그의 그을음을 보기만 해도 역겹다 이건가요? 당신은 이다에서 이 장발의 소년이 태어난 이후에서야 그걸 알아차리셨군요? 예전에는 불꽃과 대장장이의 신이 당신에게 술을 따라주어도 뭐라하지 않으셨잖아요!

제우스 : 내 사랑, 당신은 질투함으로써 당신 스스로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내가 오히려 그 소년을 더더욱 좋아하게 만들고 있어. 사랑스러운 소년이 당신의 술잔을 채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니메데 대신 잘난 당신 아들이 술잔을 채우도록 해! 그리고 나는 가니메데를 옆에 끼고 그가 술잔을 따라줄 때마다 그에게 두 번씩 입맞춤을 해주지. 그가 내 술잔을 가득 채워 나에게 넘겨줄 때 한번, 그리고 내가 술잔을 비우고 다시 돌려줄 때 한번 이렇게 말이야. 하, 설마 당신 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진 마시오. 당신을 상처입히는 자는 누구든 내가 혼내줄테니! 인성파탄

6.2. 사티리콘 : 페르가몬의 소년

사티리콘은 서기 1세기 경의 작품으로, 현존하는 고대 로마의 소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손꼽힌다. 작가는 네로 황제 시대의 작가인 페트로니우스. 당시 로마 사회를 풍자하는 성격이 강하며, 때문에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관찰하는데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장르적으로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원형이라고도 불릴만큼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당대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어 동성애에 관련된 이야기도 굉장히 많은 편. 아래의 내용은 유창한 늙은 시인 에우몰포스가 주인공 엔콜피우스에게 들려준 그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 '페르가몬의 소년'이다.[55]

참고로 사티리콘은 문학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상당한 가치를 지닌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동안 유럽 사회에서 냉대를 받아온 작품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들의 행보를 보면 도무지 도덕성이나 고상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가감없이 표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래의 내용을 읽어만 봐도 알겠지만 사티리콘은 이게 야설인지 고전 문학 작품인지 구분이 잘 안될 정도의 수위를 자랑한다.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죄악으로 취급되던 남색을 워낙 구체적으로 묘사한 탓에 19~20세기 들어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고,[56] 이후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어 세계 각지에 소개되었다.

아래의 해석본은 K. F. C Rose가 1962년 출간한 'The Classical Quarterly, Vol. 12, No. 1' 판본의 번역을 따른다. 노골적이거나 성적인 내용이 있으므로 열람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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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은 시절 아시아에 총독의 참모로 봉사하러 갔을 때 나는 페르가몬에서 손님 대접을 받으며 머물렀었지. 숙소가 우아했을 뿐만 아니라 집주인의 아들이 굉장히 아름다워서 거기에 머물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집주인과 그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게 계획을 세웠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남자들의 성적 매력을 암시하는 대화가 오고갈때마다 처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가장 가혹한 어조로 말을 끊어버렸다네. 그랬더니 집주인과 그 아내는 나를 진정한 철학자로 여기더군! 집주인 부부는 나에게 제 아들의 교육을 맡겼고 나는 그를 체육관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네. 나는 그의 가정교사였고 그에게 위험한 자들을 집으로 들여보내주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지...

어느날 나는 그 소년과 지나치게 오래 놀다가 지친 나머지 집 안으로 들어가기도 귀찮아 식당 주변에 퍼질러 누워있었네. 어느새 해가 저물었고 나는 그 소년이 잠에 들지 않은 채 누운 상태로 깨어있다는 걸 알아차렸지. 그래서 나는 그가 들을 수 있게 일부러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기도했다네. '천상에서 노니는 베누스여, 내가 만약 저 아이에게 들키지 않고 키스할 수 있다면 내일 그에게 2마리의 비둘기를 선물하겠습니다'라고 말일세. 그 소년은 내 기도를 듣자마자 바로 코를 골며 잠든 척을 하더군. 나는 이 귀여운 사기꾼 위로 몸을 숙여 입술을 훔쳤지. 이 일로 신이 났던 나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그에게 비둘기 한 쌍을 사주고 내 약속을 지켰다네.

그 다음날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지. 나는 기도문의 내용을 살짝 바꿔 '만약 그가 잠든 상태에서 제가 이 두 손으로 그를 마음껏 애무하게 해주신다면 내일 아침 그 대가로 소년에게 2마리의 활달한 투계를 선물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네. 그러자 그 기도문을 들은 소년은 잠자는 체도 하지 않고 아예 내 앞으로 다가오더군! 아마 내가 말만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랬던 것 아닐까 싶네. 나는 그 소년을 안심시켰고 밤새 그의 몸 전부를 탐했지. 물론 절정 바로 직전에 멈추었고 말일세. 다음날 아침 나는 약속대로 그에게 2마리의 투계를 선물했고 그 소년은 매우 기뻐했다네.

세 번째 날에는 아예 잠에 든 척하는 소년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지. '불멸의 신들이시여, 만일 제가 이 소년이 깨지 않은 상태로 원하는대로 마음껏 그의 몸을 탐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그 대가로 내일 아침 그에게 마케도니아산 서러브레드[57]를 선물하겠습니다!'라고 말일세. 소년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예 대놓고 퍼질러 자는 척을 하더군. 처음에는 소년의 가슴을 움켜쥐어 내 손아귀에 가득 채웠고, 나중에는 입을 맞추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마침내 내 모든 욕망을 그에게 모두 풀어버렸다네.

다음 날 아침 그 소년은 역시나 문가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 하지만 자네도 알지 않나. 값싼 비둘기와 투계 따위를 사주는 거야 쉽지만 그 비싼 종마를 어찌 그리 쉽게 사준단 말인가? 게다가 내가 그 비싼 동물을 선물해준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다가 어쩔 수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왔지. 내가 아무 것도 없이 돌아오자 소년은 나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뒤를 돌아보더니 '내 말은 어디있죠?'라고 묻더군.

내가 약속을 어겼다는 걸 깨닫자마자 소년은 내 앞에서 바람 소리를 내며 문을 쾅 닫아버렸네. 며칠 뒤 다시 저번과 비슷한 상황이 찾아왔고 소년의 아버지는 옆방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네. 소년의 아비가 자는 틈을 타 소년에게 화해하고 다시 저번처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했네. 원래 꼬인 것들도 한 번에 풀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은가? 하지만 소년은 아직도 나에게 화가 나있었고 '지금 당장 잠이나 자지 않으면 아버지를 깨울 거에요'라고 쏘아붙였네.

하지만 친구, 부지런하기만 하다면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소년이 아버지를 깨우겠다고 계속 협박했지만 나는 그의 성의없는 저항을 물리친 채 그를 팔로 감싸고 내 욕망을 채웠지. 소년도 내가 기습한 것에 대해 딱히 싫어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더군. 소년은 내가 그를 속인 것에 대해 불평했네. 자신이 친구들에게 내 부와 지위에 대해 자랑했고 선물로 받을 말에 대해서도 자랑했는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친구들에게 놀림받았다고 말일세. 하지만 소년도 결국 '하지만 나는 당신처럼 되지 않을 거에요. 만약 당신이 하고 싶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말하더군.

그래서 나는 일단 내 잘못은 제쳐두고 그가 원하는 대로 격렬히 사랑을 나누었지. 그리고 그의 호의를 누린 채로 다시 잠이 들었다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 소년은 한창 쾌락에 무르익을 나이였고 한창 복종하기를 열망하는 나이 아니었던가? 소년은 '더 원하는 게 없나요?'라고 캐물으며 나를 다시 깨웠지. 나도 그때는 딱히 부담되지 않아서 다시 일어나 다시 그와 사랑을 나누었네. 그가 만족할 때까지 헐떡이고 땀을 흘리고 쾅쾅거리며 박아댄 뒤, 기쁨에 지친 채로 다시 잠들었네. 그러나 소년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나를 손으로 때려 깨우고는 또 하자고 요구했네. 이런 일이 수 차례 반복되자, 나는 그가 나를 지나치게 여러 번 깨우는 것에 화가 나서 '지금 당장 잠이나 자지 않으면 아버지를 깨울거야'라고 협박했다네!

6.3. 소 카토의 일대기

소 카토는 로마 시대의 유명한 웅변가이자 정치가로, 엄격한 스토아 학파의 규율을 따르는 대단히 각잡힌 인물이었다. 그가 어찌나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었던지 소년 시절부터 사람들이 그의 성품에 혀를 내둘렀다고 하는데, 아래의 내용은 소 카토의 성품을 보여주는 일화들 중 하나다. 아래의 번역본은 기원후 2세기 경 쓰여진 플루타르크의 저서에 등장하는 부분이다.

아래의 해석본은 Bernadotte Perrin가 1919년 출간한 'Loeb Classical Library volume C' 판본의 번역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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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카토의 친척들 중 하나가 카토와 다른 소년들을 생일 잔치에 초대했다네. 저녁을 먹은 카토와 친구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한데 어울려서 감옥 놀이를 하고 있었지. 감옥 놀이는 법정처럼 무대를 꾸며놓고 변호와 재판을 치른 뒤 유죄가 선고된 아이들을 감옥으로 정한 방에 가두는 놀이였다네.

이렇게 한창 놀이를 하던 와중, 어떤 나이 많은 소년들 중 하나가 다른 유난히 아름다운 소년에게 눈독을 들였다네. 나이 많은 소년은 아름다운 소년을 감옥으로 끌고 들어가 덮치려 했지. 그 소년은 당연히 기겁했고 크게 소리를 질러 소 카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깨달은 소 카토는 재빨리 감옥 방 앞으로 뛰어가 그 앞을 막던 소년들을 쫒아내고 아름다운 소년을 구해냈네. 소년을 구한 소 카토는 다른 소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제 집으로 돌아갔다네. 다른 소년들도 모두 소 카토의 뒤를 따랐네.

6.4. 플라톤의 향연 :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일부에서는 대화편을 근거로 플라톤에게서 동성애 요소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실제로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를 동성애 소재로 다룬 건 사실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알키비아데스의 동성애를 소재로 삼은 플라톤의 대화편 『 향연』은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서 《 파이돈》에 이어 써졌다고 추측된다. 이 글은 말하자면 플라톤의 '연애론'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기원전 416년 아테네의 비극 작가 아가톤이 비극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자, 이 자리에 파이드로스, 아리스토파네스, 소크라테스, 알키비아데스 등 총 8명이 모여 그를 축하하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논한다. 처음에는 소크라테스가 옛날 현녀(賢女) 디오티마에게서 배웠던 일을 그녀와의 대화 형식으로 연설하며 진정한 미(美)와 에로스에 관하여 논하고, 후반부에 술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해 애지(愛知)에 살고 있는 소크라테스야말로 정신의 미 속에서 생산하고 미 자체를 직감하는 진정한 사랑의 구현자라고 소크라테스를 찬미한다.[58]

아래의 번역본은 향연 후반부 알키비아데스의 대사 부분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소크라테스를 향한 알키비아데스의 눈물나는 구애 쇼(...)를 볼 수 있다. 그 안의 철학적 사상을 제외하고 줄거리만 요약하자면, 첫 문단은 술에 취한 알키비아데스가 연회장으로 쳐들어와 아가톤과 함께 앉아있는 소크라테스를 보고 질투한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문단은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에게 푹 빠져서 체육관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해보고 아예 집으로 초대해 잠자리에서 덮치려 시도까지 했으나 결국 소크라테스의 완강한 거부에 밀려 실패한다는 내용이다. 당대 손꼽히던 미소년인 알키비아데스가 아예 같은 침대에 누워서 이불 안까지 파고들었는데도 완강히 차여버렸다는, 어찌보면 슬픈(?) 이야기.[59]

아래의 해석본은 하버드 대학교의 Harold N. Fowler가 1925년 출간한 영어 판본의 번역을 따른다. 하지만 당대 사회 통념상 동성애에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상당히 희석된 번역에 속한다.

소크라테스 곁에 앉은 아가톤을 질투하는 알키비아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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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정원에서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시끄럽게 소리지르는 알키비아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아가톤이 어디 있는지 찾고 있었고 시종들에게 자신을 아가톤에게 데려가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플루트를 연주하는 소녀의 부축을 받아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고, 문 앞에 선 채로 연회장 안의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아이비와 월계수로 만든 월계관을 쓰고 머리에는 리본들을 두른 상태였다.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요 친구들!" "술취한 자에게 이 연회의 술을 마실 수 있게 해줄텐가요? 아니면 아가톤에게 화환을 얹어주고 바로 떠날까요? 아가톤이여, 사정이 있어 어제 너를 방문하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 왔고, 내 머리에 달린 리본들을 풀어 연회장에서 가장 잘생기고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묶어줄 생각이에요. 내가 말하자면 - 하! 여기 좀 봐요! 내가 술취했다고 나를 놀리는건가요?"

"웃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어요. 말해주세요. 내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갈까요 말까요? 나와 함께 잔을 들텐가요 들지 않을텐가요?" 이쯤되자 연회장 안에 있던 모두가 그를 맞아들이려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알키비아데스에게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고 아가톤도 그를 맞았다. 그는 주위 부축을 받아 아가톤 쪽으로 움직이면서 제 머리카락에 달고 온 리본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술 취한 채 리본을 푸느라 아가톤 곁에 앉아있던 소크라테스를 눈치채지 못한 채 그대로 아가톤 옆에 앉았다.

알키비아데스가 바로 곁에 앉아 난감해진 소크라테스는 옆으로 이동했다. 알키비아데스가 아가톤 곁에 낑겨앉아 제 머리카락을 풀자 아가톤은 시종들에게 "그의 신발을 풀어주어라. 그리하면 알키비아데스가 우리 둘과 함께 앉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명령했다. 그 말을 들은 알키비아데스는 "아니 이 침상에 3명이나 있단 말인가요?"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데 앉아있던 소크라테스의 존재를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알키비아데스는 외쳤다. "아니 소크라테스님, 왜 당신이 이 곳에 계시나요? 내가 가장 예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나타나는 그 오랜 습관을 아직도 못고쳤단 말인가요? 아리스토파네스나 다른 못생긴 사람들이 아니라 왜 하필이면 이 연회장에서 가장 잘생긴 아가톤의 곁에 앉아 계신 건가요? 왜 하필 아가톤 곁에 앉아계셨던 건가요?"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아가톤, 나를 지켜다오. 이 친구의 나를 향한 사랑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걸 안다네. 내가 알키비아데스를 사랑하고 난 이후부터는 단 한번도 아름다운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거나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네. 내가 잘생긴 사람과 대화하거나 쳐다보기만 해도 이 친구는 악의적인 질투심에 사로잡혀 나를 괴물처럼 대했고, 나에게 띠를 묶고 그의 손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네. 그러므로 그가 혹여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게 해주게. 그가 완력을 사용하려 하면 나를 보호하고 중재해주게. 나는 그의 지나칠 정도로 열광적인 사랑에 놀라 몸서리칠 정도라네."라고 말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니에요. 당신과 나 사이에 중재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 할 복수는 다음에 하도록 하죠. 지금은, 아가톤, 방금 네게 준 리본을 좀 돌려주세요. 내가 이 아름다운 머리에 리본을 둘러줄 수 있게 말이에요.[60]"라고 맞받았다. 그렇게 알키비아데스는 리본 몇 개를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둘러준 다음 그때서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중략) - 알키비아데스는 다들 정신이 멀쩡한 것 같다고 자기가 분위기를 주도할테니 어서 마시자고 재촉한다. 그러자 에뤽시마코스[61]가 알키비아데스에게 아무 것도 안하고 노래만 하겠냐고 물어왔고 알키비아데스는 에뤽시마코스에게 인사한 후 훌륭한 의사양반인 자네가 시키는 것을 하겠다고 한다. 에뤽시마코스는 지금까지 잔치 참석자들이 차례대로 에로스 찬미 연설을 했다면서, 연설을 한 다음 소크라테스에게 시키고 싶은 것을 하나 명령하고 소크라테스는 또 다음사람에게 명령하고 그렇게 순서대로 하는건 어떻냐고 제안한다.

"매우 좋은 생각이군요, 에뤽시마코스." "하지만 이렇게 술에 취해버린 나의 연설을 멀쩡한 다른 사람들의 연설과 같은 수준으로 맞추는 건 공평하지 않아요." 그리고 알키비아데스는 연달아 말했다. "그리고, 내 친구여, 방금 전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가 말한 건 사실과 오히려 반대되는 이야기에요. 정작 내가 그 앞에서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손을 가만히 두지 않은 사람은 소크라테스였어요." 그러자 이를 조용히 듣고 있던 소크라테스는 "자,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네."라고 이야기를 중단하려 들었다. 그러자 에뤽시마코스는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를 대신 예찬해보는 건 어떤가?"라고 제의했다.

"진심이신가요? 에뤽시마코스?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소크라테스를 찬미하고 그에게 복수해도 괜찮으신가요?" 알키비아데스가 이렇게 말하자 놀란 소크라테스는 "그만하게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나를 예찬하는 척하면서 조롱하려는 게 아닌가?"라고 제지했다. 그러자 알키비아데스는 "저는 오직 진실만을 말할 거에요. 그런다면 허락해 주실건가요?"라고 물었고, 그러자 별 수 없어진 소크라테스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진실만을 말한다는 조건 하에 원하는 대로 하게."라고 허락했다. "좋아요. 제 마음대로 할게요. 만약 제 말에 거짓이 있다면 바로 중간에 제지하고 거짓이라고 밝혀 주세요."

- 알키비아데스의 연설은 바로 아래쪽에 이어진다.

알키비아데스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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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크라테스가 연설을 마친 직후, 다른 연회에서 술을 퍼마시고 취할대로 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알키비아데스에게 연설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알키비아데스는 이를 수락한 뒤, 그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소크라테스를 사티로스에 비견하면서 연설을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내 영혼의 갈망을 등한시하고 아테네 사람들의 일에 몰두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만 하지 말아야 한다고 고백하게 만드시지요. 그러기에 나는 마치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것처럼 내 귀를 막고 온 힘을 다해 내 자신을 그 분에게서 떼어낸답니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내 평생을 그 분의 발치에 앉아 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나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든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내가 천성상 절대 그러지 못할거라 생각하시지만 그 분을 제외하면 내게 부끄럼을 느끼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내 스스로가 그 분의 주장에 감히 토를 달거나 그 분이 시키는 것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나는 그 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 앞에서 달아나고, 그 후에는 내가 그 분에 대한 감정을 은연중에 인정했다는 것에 또다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나는 심지어 그 분이 차라리 죽기를 바란 적도 있지만 그 분이 돌아가신다면 내가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슬퍼할 것이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이 것이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저 사티로스의 플루트 연주 때문에 겪었던 일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 분의 형상이 얼마나 뚜렷하고 그 분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관해 예찬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그 분을 알지만 이 자리에서 다시한번 그 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한 번 시작했으니 계속할 수 밖에 없군요. 소크라테스가 아름다운 것들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아십니까? 그 분은 겉으로 봐서는 아름다운 이들에게 쉽게 홀리고 가까이 하려 하기도 하고, 모든 것에 무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걸로 보이지만 - 이 분의 얼굴이야말로 정녕 실레노스의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그 분의 얼굴은 실레노스의 조각을 붙여놓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술취한 나의 친구들이여, 그 분이 입을 열었을 때 그 분의 마음 안에 얼마나 많은 절제심이 들어있는지 아십니까! 그 분은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아름다움과 부와 명예 따위에 관심이 없으며 아예 멸시를 하십니다. 그에게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분은 평생동안 모든 것을 조롱하고 또 조롱하며 보내오셨습니다.

하지만 내가 처음 그 분을 보았을 때, 내가 처음 그 분의 진지한 목적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그에게서 너무나도 아름답고 신성한 황금빛 이미지를 보았기에 그 분이 시키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실행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보지 못했을지 몰라도 나 자신만큼은 제 욕구를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그 분이 제 젊음의 아름다움을 진지하게 사랑하신다고 생각했고, 내가 그 분 곁에서 그 분을 만족시켜드릴 수 있는 운을 잡은 것에 대해 환희했습니다. 나는 내 젊고 아름다운 외모에 대하여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 분 곁에서 그 분이 아는 모든 것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세운 계획을 실행하려 시도했습니다. 내가 어느 날 소크라테스에게 갔을 때, 나는 항상 동행하던 시종을 저멀리 보냈습니다.(소크라테스여, 저는 여기서 모든 진실을 말하려 합니다. 만약 제 말에 거짓이 있다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이제 그와 저는 단 둘이만 남았습니다. 나는 그 분이 나에게 마치 사랑하는 소년에게 하듯이, 연인들이 사랑하는 제 짝에게 하곤 하는 그런 말들을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 분은 평소처럼 대화하셨고 하루를 나와 함께 보낸 다음 그냥 가버리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저는 그 분을 체육관으로 초대한 뒤 그 분과 함께 운동을 했습니다. 나는 옆에 아무도 없을 때 그 분과 몇 번 씨름을 하기도 했고, 잠깐동안은 잘하면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실패한 만큼 더 과감한 유혹책을 만들고 처음처럼 포기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그 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마치 그 분이 사랑하는 소년 연인처럼 행동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분은 호락호락 넘어오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저녁 식사 초대마저 꺼리는 눈치셨지만 결국 수락하셨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그 분은 바로 돌아가려 하셨고 나는 차마 그 분을 붙잡을 명분이 없었습니다. 나는 또다시 그 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나는 내 계획에 따라 식사를 마치고 늦은 밤까지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밤이 늦고 그 분이 돌아가고 싶어하시자, 나는 시간이 늦었으니 차라리 여기 계속 머무르시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결국 그 분은 내가 누워있던 소파 바로 옆 소파에 누우셨습니다. 방 안에는 우리 둘이 누워있는 걸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등불이 꺼지고 곁의 노예들이 모두 떠나가자, 나는 더이상 모호하게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분을 살짝 찔러 "소크라테스님, 혹시 자고 계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아니다"라고 대답하시더군요. " 제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아시나요?", 그러자 그 분은 "뭘 생각하고 있느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제 생각에, 제가 만났던 모든 연인들 중에서도 저를 가질 수 있는 분은 오직 소크라테스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소크라테스님은 부끄러움이 많아 직접 이야기하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이제 저는 이 방법, 혹은 내 재산이나 내 친구 등 그 어떠한 방법으로든 당신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져요. 저에게는 제 완벽함의 성취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리고 당신보다 저를 더 성장시켜주실 수 있는 분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당신에게 제 몸을 주는 것에 대하여 대다수의 바보 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히려 제가 당신께 제 몸을 바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일부 현명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해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 분은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 대답하셨습니다. "알키비아데스야, 네가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사실이고 네가 성장할 힘이 정말로 내 안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너는 바보가 아니다. 너는 내 안에서 네 육체의 아름다움 따위가 아니라 그보다 더 무한히 높은 종류의 희귀한 아름다움을 보아야만 한다.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이어야만 네가 진정으로 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갈 것이고 동등한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을 함께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네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내가 가진 아름다움이 너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비해 더 월등한데 왜 내가 이득 없는 거래를 하겠느냐?[62] 너는 황금과 청동을 바꾸려 하는구나. 하지만 축복받은 이여, 다시한번 생각해보거라. 네가 알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나는 무가치하다. 육체적인 갈망이 사라지면 마음 속에는 의심이 자라날 것이고 네가 늙기에는 아직도 오랜 세월이 남아있지 않느냐?"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말했습니다. "저는 이 방법이 저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제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 제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게 없어요. 당신과 저에게 어떤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지 고려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 분은 "알겠다."고 말씀하시더니 "우리는 나중에 이 문제와 다른 문제들에 대해 최선의 방법으로 숙고하고 행동해 보자꾸나."라고 답하시더군요.

나는 이 말을 듣고 그 분이 제 말에 감동하신 줄 알았습니다. 제가 화살처럼 쏘아보낸 말들이 그 분의 마음을 다치고 흔들리게 한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분이 그 말씀을 하시자마자 대답도 듣지 않고 일어나 제 겉옷을 벗어 그 분 위에 둘러준 다음, 그 진정으로 악마적이고 놀라운 존재를 내 팔 안에 안은 채 밤새도록 누워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소크라테스님, 당신은 이걸 부정하지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나보다도 더하시더군요. 그 분은 내 아름다움과 젊음을 경멸하고 조소하셨습니다. 소크라테스여, 모든 신들과 여신들이 내 증인이 되게 하소서! 저는 그날 밤 내내 소크라테스와 함께 누워 껴안고 밤을 보냈지만, 더이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연인은커녕 아버지나 형제의 침상에서 일어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후의 내 감정은 어땠겠습니까? 나는 내가 불명예를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 분의 정신력과 자제력, 성품에 감탄했습니다. 그 정도의 지혜와 인내를 가진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나는 차마 그 분께 화를 내서 그와의 우정을 끊을 수조차 없었고, 더이상은 그 분을 육체적으로 끌어들이리라 희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쇠로 상처를 입지 않는다면 금으로도 상처를 입을 수 없겠죠. 게다가 내가 그 분을 덫에 빠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제정신이 아닌 채로 실제 노예가 된 것보다도 더 절망적으로 그 분의 노예가 되어 방황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그 분과 내가 포티다이아로 원정을 떠나기 전 일어난 일입니다.

이후 알키비아데스는 포티다이아에서 소크라테스의 영웅적 행동과 그의 훌륭한 성격을 예찬한다.

"여러분, 이 것이 내가 소크라테스에게 올리는 찬사입니다. 물론 이야기 도중 약간 내가 가진 불만을 섞어 말하고 그 분의 실수를 부각하기는 했지만, - 그 분이 내게 분노했던 일을 언급한 것과 같이 - 말입니다. 다만 이 것만큼은 말하고 싶군요. 나는 그 분이 이런 식으로 대한 유일한 소년이 아닙니다. 글라우콘의 아들 카르미데스, 디오클레스의 아들 에우티데모스, 그리고 그분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기만하고는 그 분을 사랑하게 만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분은 사랑하기보다는 사랑을 받는 쪽이시지요."

6.4.1. 플라톤과 동성애 논쟁

어쨌든, 플라톤의 생애에는 어머니나 자매를 제외하고 여성이라곤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에게는 크산티페와 테오도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피튀아스와 헤르퓌리스라는 여성이 이야기되곤 하지만 평생을 독신으로 산 플라톤에게는 그런 사람은 물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유명인사에게 늘 따라다니는 여성 스캔들 관련 일화조차 없다. 게다가 그는 예상과 달리 동성애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면모를 보였다.(GG. Field(1967) p.28) 아마도 그는 그의 철학이 갖는 엄격함만큼, 마치 수도승처럼 경건하고도 금욕적인 태도로 평생을 살아간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의 《편지들》, 정암학당(강철웅, 김주일, 이정호 옮김, 이제이북스,2009, pp.274-275
가장 큰 오해가 플라톤이 소년애를 이상적인 사랑으로 여겼다는 주장이다. 기본적으로 플라톤 자신부터가 대화편에서 자기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학자이기에 텍스트를 오독하기 쉽지만, 흔한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플라톤은 굳이 따지자면 동성애에 대하여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

플라톤이 동성애를 소재로 대화편의 이야기를 쓴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유로 "플라톤적 사랑은 곧 동성애다"고 하는 것은, 일부 텍스트를 대화편 전체의 문맥으로부터 고립시켜서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다. 플라톤이 강조한 것은 저급한 육체적 욕망에 얽매이지 않는 '더 이상적이고 높은 격의 사랑'이었고 그 과정에서 동성애를 예시로 든 것 뿐이었다. 이를 보고 '플라톤의 사랑 = 동성애'라고 단정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가령 대화편 < 향연>에서 본격 동성애적 구애를 하는 건 알키비아데스이지 소크라테스가 아니다. 이 둘의 관계가 '연인'을 소재로 묘사된 것은 맞지만, 향연의 소크라테스에게 '연인'이란 알키비아데스가 바라는 육체적 관계가 아니며, 그렇다고 육체관계만 없는 정신적 동성애도 아니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남녀 부부에 대응되는 남남 커플을 성행위 없이 구현하자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이 책을 통해 플라톤은 과거의 귀족적 가치(소년에 대한 사랑을 통한 아레테 성취)를 높게 평가하는 한편, 동성애에 담긴 부정적 요인을 제거하고 새로운 에로스의 이상(진정한 사랑으로의 승화)를 모색했던 것이다.
놀이로 삼아서든 진지하게든 그러한 것들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출산을 위해 여성과 남성이 교합관계에 이르게 될 때 그들에게는 그런 일과 관련한 쾌락이 자연적으로 주어지지만, 남성이 남성을 상대로 혹은 여성이 여성을 상대로 해서는 자연에 어긋나게 쾌락이 주어지는 것 같으며, '처음으로 그렇게 한 사람들'의 대담성은 쾌락에 대한 무절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플라톤, 『법률』Νόμοι 636c, 정암학당(김남두, 강철웅, 김인곤, 김주일, 이기백, 이창우) 번역
자, 지금 우리가 남성과 남성의 사랑을 아름답고 전혀 추하지 않은 것이라고 법으로 정한다고 해봅시다. 이 법이 덕을 위해서 우리에게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설득된 자의 혼 속에 용감한 성품이 생겨 자리잡게 될까요? 혹은 설득한 자의 혼 속에 절제 있는 성향의 부류가 생겨나 자리를 잡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것에 설득되는 일이 없고, 오히려 모든 것이 이와 반대일까요? 그래서 쾌락에 굴복하고 버텨 내지 못하는 사람의 나약함을 다들 비난하는 한편, 여자 역할을 하는 쪽이 흉내 내는 모습이 여자를 닮았다고 해서 비난하지 않겠습니까? 상황이 이런데 어느 누가 이것을 법으로 제정하겠습니까? 아마 진정한 법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자라면 누구도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것이 참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옳게 하고자 한다면, 우애와 욕구의 본성뿐만 아니라 이른바 사랑의 본성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플라톤, 『법률』Νόμοι 836d, 정암학당(김남두, 강철웅, 김인곤, 김주일, 이기백, 이창우) 번역
즉, 누구도 결혼한 자신의 부인 말고는 자유인 신분의 양갓집 여인들을 감히 건드리지 않는 한편, 축복받지 못한 서출의 씨를 첩들에게 감히 뿌리지 않으며, 자연을 거슬러 결실 없는 씨를 남자들에게 감히 뿌리지 않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플라톤, 『법률』Νόμοι 841d, 정암학당(김남두, 강철웅, 김인곤, 김주일, 이기백, 이창우) 번역
위는 플라톤이 말년에 집필한 저서 『법률』의 내용이다. 이를 보았을 때 플라톤이 최소한 말년에 이르러서는 동성애를 반대했다는 것에는 별다른 반박의 여지가 없다. 이견의 여지가 있는 것은 이 견해가 '수정된' 견해인지이며, 설령 '수정론'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사랑은 이성애가 아니라 동성애다'라는 식의 주장을 플라톤이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차라리 플라톤은 사랑의 대상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구분치 않고 '정신적이고 더 높은 격의 사랑'을 추구했다고 보는 편이 더 맞는 해석일 것이다.

6.5. 학생 알키비아데스

본 작품 '학생 알키비아데스(L'Alcibiade fanciullo a scola)'는 1630년대 베네치아에서 집필된 작품이다. 원래 이탈리아어로 처음 출판되었다가 나중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자체의 주인공은 고대 아테네의 장군이자 미소년으로 유명했던 알키비아데스지만 작품 내용은 소년애에 대한 고찰이나 소설에 더 가깝다. 즉 실제 역사 속의 알키비아데스[63]와는 큰 상관이 없는 허구의 작품이라는 것. 주 내용은 알키비아데스의 미에 반한 선생이 그를 꼬시기 위해 밀당을 반복하며 온갖 감언이설로 알키비아데스를 설득한다는 내용이다. 고대 그리스판 BL 소설

아래의 해석본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JC Rawnsley가 2000년 출간한 영어 판본의 번역을 따른다. 노골적이거나 성적인 내용이 있으므로 열람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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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키비아데스는 한창 자연이 인간을 놀리던 그런 풋풋한 나이의 소년이었다. 그를 보는 사람들은 알키비아데스의 부드러운 윤곽, 투명한 피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보고 소년인지 소녀인지 당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실로 독수리의 모습으로 변한 제우스가 하늘에서 내려와 낚아챈 다음 올림포스로 돌아가 제 술을 따르게 한 가니메데의 모습 그 자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의 얼굴과 그의 입술, 그의 눈동자는 인간이 욕망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을 합쳐놓은 듯 하였으니, 그의 입술은 어린 소녀의 숨결을 모아 만든 듯 했고 그의 눈동자는 현명하고 예의바른 소년의 것들을 모아 만든 듯 하였다.

알키비아데스가 생전 처음으로 학교에 갔을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그의 교사가 되어줄 사람은 '필로티메스'라는 잘생긴 미청년으로, 이제 막 성숙한 나이가 되어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다. 정신과 영혼의 균형에 대하여 예리하게 꿰뚫어보았으며 제 직업을 충실히 이행할 그러한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아테네의 가장 위대한 가문들은 앞을 다투어 필로티메스에게 제 자녀들을 맡겨 가르침을 받도록 하였다. 이들 모두가 필로티메스가 그들의 자녀를 잘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었고 진정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과거에 필로티메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아테네 청년을 찾아보기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갓 학교에 입학한 알키비아데스도 바로 이 필로티메스에게 수업을 받았다. 알키비아데스가 입학한 반은 당시 아테네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이들로 이루어진 반이었다. 하지만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이 뜨면 별과 달은 그 빛을 잃고 마노니, 다이애나는 그 빛을 잃고 떨었으며 그녀를 모시던 님프들조차 흐린 눈으로 그저 알키비아데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신성한 세레스가 제 집으로 들어갈때조차 알키비아데스보다도 더 우아하고 화려하지는 못했다. 알키비아데스가 그를 바라볼 영광을 얻은 수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데 실패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금발 머리카락은 기적의 꽃처럼 그의 머리에서 솟아나며 그의 어깨에 천 개의 고리 모양으로 굴러 떨어졌으니, 황금마저도 그의 금발 아래 힘을 잃고 물러났다. 긴 속눈썹에 가려진 그의 눈, 왕실 시종들이 왕을 숨기는 것처럼 눈꺼풀로 반쯤 가려진 그의 눈은 부드러움과 우아함으로 가득 찬 하늘빛처럼 파랗게 빛났고,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을 똑바로 심장에 쏘는 것 같았다. 그의 이마는 봄 아침처럼 맑고 깨끗했다.

완벽한 타원형의 얼굴에 자리잡은 그의 뺨에는 장밋빛과 백합빛이 미친 듯이 뒤섞여 템피 정원의 즐거움을 능가했다. 사랑의 잔혹한 힘이여! 장미 한 떨기처럼 아름다운 그의 신성한 입술이 대리석으로 깎은 갈라테아 석상의 입술에 닿는다면 그녀가 즉시 생기를 얻어 살아 움직였을텐데! 그리고 완벽한 순서로 배열된 하얀 동방 진주가 그의 신성한 입 안에서 반짝거렸고, 그의 섬세한 혀가 그 진주들에 닿았을 때, 벌들이 꿀을 모으기 위해 그의 입을 찾아왔고, 아니면 신들이 그들의 하늘 연회를 위해 그의 입 속에서 암브로시아를 모으려 찾아왔다. 아, 별들도 그런 광채에 비하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힐 텐데!

그 사랑스러운 눈 사이에 절묘하게 위치한 달콤한 코는 다른 보물과 숨겨진 보물을 상징하지만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두 개의 섬세한 콧구멍이 완벽한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윗입술을 가리는 가늘고 부드러운 콧방울조차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관찰자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비교할 수조차 없는 형태의 목은 그의 신체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완벽했다. 정교하게 둥글고, 분홍색이며, 우아하고,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아서 위의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위한 받침대 역할을 하기에 훌륭하게 적합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손과 마찬가지로 손은 날렵함과 민첩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손가락은 이미 군인들이 전쟁의 무기를 다루는 것처럼 능숙하게 사랑의 무기를 다룰 수 있었다. 이 소년의 나머지 몸은 질투심 많게도 하늘거리는 옷으로 덮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은밀한 부위를 상상케 하고 환상보다는 관능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그의 이마는 그의 가슴을, 그의 아름다운 뺨은 그의 작은 엉덩이, 그리고 그의 매끈한 코조차도 그에 상응하여 모두 하나 안에서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늘씬한 팔은 그의 넓적다리와 닮았고, 그의 입은 음문을 닮았고, 그의 배꼽은 보조개를 닮았으며 그의 얼굴의 둥근 모양은 곧 그의 배의 둥근 모양이매 그의 발은 곧 그의 손과 닮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소년의 가장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은 곧 그의 천사 같은 목소리였다. 그는 각 단어에 적절한 하모니를 제공하도록 세련된 톤으로 말했고,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음악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여 사랑스러운 세이렌처럼 청중의 마음을 도취시키는 달콤함으로 채웠다. 다만 세이렌과는 반대로 그들을 죽음으로 유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고통 속에서 살게 했던 것이다. 그가 하늘의 입술을 열 때마다 그의 교사들은 놀라움과 기쁨, 심지어 황홀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들을수록 더 잘 듣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옛 우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와 암피온의 노래에 깃들어 있던 것처럼 들짐승을 길들일 수 있는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낙원 천사의 모습을 한 소년이 그의 새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기 위해 그의 앞에 가서 섰을 때, 필로티메스는 그를 가장 부드럽고 친절하게 옆으로 데려가 가장 큰 애정과 따뜻함을 눈에 담은 채 그를 바라보며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고귀한 모습과 신성한 은총, 사랑스러운 소년의 모습이 전례없는 숭배와 겸손의 감정으로 나를 채우는구나. 네 이익과 열정이 나의 소원과 함께 일치한다면 나는 그 결과가 가장 좋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단다. 우리 둘의 만남은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보상을 줄 것이다. 내 너에게 어떤 아버지보다 더 많은 애정을, 다른 어떤 스승보다 더 많은 헌신을 줄 것을 약속하며 내 너가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을 초월하는 그러한 지식의 영역, 그와 같은 경이로움을 소개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학교의 신입생들에게 으레 하듯이 너를 그렇게 엄격하게 대하고 싶지 않구나. 우리의 첫 만남은 신뢰와 가장 따뜻한 우정으로 가득 차게 될 거다. 그러므로 나의 애정과 우리의 평등의 표시로 이 입맞춤을 먼저 받거라.'

잔혹함은 어린 소년의 영혼을 격퇴시키는 것처럼 친절함은 그들을 끌어당겨 배움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선생님의 따뜻한 환대를 받은 알키비아데스 내면의 영혼은 그제서야 선생님 앞에서 완전히 자연스러워졌다.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소년의 두려움은 모두 사라졌고, 그 대신에 열심, 자신감, 선생님에 대한 애정만이 남았다. 필로티메스는 그에게 모든 헌신을 쏟아 그를 가르쳤고 알키비아데스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학문을 배우는 것으로 그에게 응답했다.

필로티메스는 별도의 교실에서 그를 개별적으로 가르쳤다. 사랑스러운 소년은 선생님의 모든 계획, 관심, 열정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리고 에로스의 손에 의해 선생님의 마음에 꽂힌 불덩이는 비할 데 없는 열망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필로티메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알키비아데스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닿거나 그렇지 않을 시 죽음을 택할 각오를 다졌다. 알키비아데스가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학업에 불성실할 때마다 필로티메스는 그를 욕하거나 때리는 대신 수많은 키스를 퍼부었다. 필로티메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타일렀다. "다른 선생들은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가혹하게 때리고 구타하지. 하지만 적어도 너 앞에서만큼은 구타마저도 네 아름다움에 의해 사랑스러운 애무로 변하는구나. 그러므로 내 작은 아들아, 이 애정의 증표를 받거라. 그리고 네가 어디에서나 가지고 다니는 고귀함을 결코 더럽히지 말라. 부끄러운 의심과 애정 결핍이나 배은망덕으로 너의 영혼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그러니 내 사랑하는 소년이여, 이제는 네가 나에게 입을 맞추어다오!”

알키비아데스는 언제나 제 선생님을 기쁘게 하고 싶었다. 소년은 예의바르게 입술을 앞으로 모으고 그의 선생님에게 입을 가볍게 맞추었다... 하지만 이는 필로티메스의 심장을 오직 차갑게만 만들 뿐이었다... "이건 사랑하는 자들이나 친한 친구들 사이의 키스가 아니라 적들이나 낯선 사람에게나 하는 키스다. 방금 너의 키스는 입술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구나. 이와 같은 키스는 오랜 친구와 같지 않으며 집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사랑의 입맞춤의 악센트를 사용하는 입맞춤은 받는 사람의 입술에서 주는 사람의 입술로 되돌려져야 한다. 그러한 올바른 입맞춤은 한 번 주고나면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러니 나를 행복하게 해다오, 나의 사랑하는 소년아, 사랑의 진정한 언어로 나에게 대답해다오."

필로티메스가 다그치자 알키비아데스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진 채로 떨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필로티메스는 소년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정한 목소리로 "내 작은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입술의 언어는 해를 끼치지 못하며, 대담하고 무례할 때만 상처를 준다. 너는 내가 가르칠 때마다 주의를 기울이고, 내 수업에 모든 정성을 기울이지만, 만일 네가 내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에게 줄 헌신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손은 손을 잡아야 하고, 정신은 정신을 도와야 하고, 언어는 언어를 울려야 한다. 내게 오거라, 나의 보물이여, 내게 오거라." 필로티메스는 소년을 품에 안은 채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필로티메스의 소원은 키스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입맞춤이란 사랑의 전령에 불과했으며, 길의 끝에 있을 더욱 영광스러운 모험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나팔이었다. 그는 잔치에 초대받은 굶주린 사람과 같았으나 배고픔을 채워주지 못하는 사람, 단지 그 앞에 펼쳐져 있는 고급 요리를 잠깐 맛보는 것이 허락된 것 뿐이었다. 이제 그는 잔치에 참여하기를 갈망했다. 점차 필로티메스에게 다른 것은 관심이 없었고,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낮 동안 그의 제자들에게 - 학생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로 은밀한 암시와 비유를 통해서였지만 - 이 은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알키비아데스에 대한 생각이 밤새 그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알키비아데스의 사랑을 얻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어 보였다. 그를 취하려 하는 모든 시도는 위험할 것이며, 그 시도를 실행에 옮기려 하기만 해도 위험과 스캔들과 불명예가 그 뒤를 따라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고통에 비하면 별 의미가 없었다.

필로티메스의 욕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의 영혼은 마치 구덩이에 빠진 악마처럼 분노하기 시작했다. 결국 필로티메스는 제 욕구를 해소할 가장 적절한 기회를 찾아 기다렸다. 필로티메스는 알키비아데스를 훈육한다는 핑계로 소년을 수시로 껴안고 입을 맞추었고, 알키비아데스는 선생님의 호의에 기뻐하며 그럴 때마다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어느날, 복도에서 알키비아데스를 기다리던 필로티메스는 소년이 나오자마자 매보다도 능숙하고 번갯불보다도 빠르게 그를 껴안고 가슴 깊이 안았다.

알키비이데스는 처음에 그를 화나고 경멸을 담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되려 욕망을 강화하고 식욕을 더욱 강력하게 자극하는 역할을 하는 종류의 저항이었다. 그리고 결국 알키비아데스는 주인이 벨벳 껍질의 포도 같은 그의 피부를, 부드러운 멜론과도 같은 그의 엉덩이와 같이 그가 가진 모든 절묘한 과일을 마음대로 애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필로티메스는 아직도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그의 궁극적인 욕망을 충족시킬 것을 미리 맛보았다.

필로티메스의 욕망은 여기서 그칠 줄 몰랐다. 그 열정적인 선생은 사랑이 약속한 아름다운 꽃을 모으는 그의 압도적인 열망을 이루기 위해 오직 한 가지 소원만을 열망했다. 제 선생님을 기꺼이 기쁘게 해주려는 사랑스러운 소년은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제 필로티메스는 알키비아데스를 부드러운 책략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는 알키비아데스에게 매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와서 그에게 '추가 공부'를 하도록 시켰다. 항상 유순한 알키비아데스는 동의했다. 그리고 필로티메스는 항상 아침마다 학교에서 알키비아데스를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발코니 앞에 앉아 인기척이 들릴 때마다 누구냐고 물어보았고, 알키비아데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 아는 순간 희망을 잃은 눈빛으로 어두운 표정으로 죽을 상을 하고 다녔다.

알키비아데스를 가르치는 다른 선생님들은 그가 학업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열정을 보이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그 나이 또래의 소년이 학업 때문에 식사를 하는 것조차 잊어버린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교사들은 그의 스승 필로티메스를 하늘에 대고 찬양하였다. 그들은 소년이 놀라운 수준의 학업 능력을 보이는 것에 대해 필로티메스를 칭찬하였다. 필로티메스의 열정을 다른 동기로 돌리는 짖궃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필로티메스의 명망이 너무 높아 함부로 그 생각을 입에 올리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침마다 학교에 일찍 갔고,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조바심으로 죽어가던 필로티메스의 손을 잡고 그의 방으로 데려간 후 그를 최대한의 기쁨으로 덮었다. 필로티메스는 그에게 이전과 같이 키스를 퍼부었고, 알키비아데스는 그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필로티메스의 욕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필로티메스의 떨리는 손은 이미 그의 사랑이 숨어 있는 곳, 그의 욕망의 초점이 머무는 곳, 바로 그의 영혼을 희생할 제단을 손으로 잡아쥔 참이었다. 필로티메스가 그저 가벼운 애무만 하고 지나가는 한, 소년은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내 필로티메스가 자신의 웅대한 계획을 완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장전된 뾰족한 대포가 요새를 무너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소년의 얼굴은 혈색이 바뀌었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서 이렇게 외쳤다.

"저는 선생님께서 여기까지 가실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런 천박한 일을 할 수 있나요? 당신의 그 온 몸에 숨쉬는 존엄성을 가지고, 어떻게 당신에게 맡겨진 선량한 집안의 소년들, 당신의 후견에 복종한 소년들의 순수함을 감히 더럽힐 수 있단 말인가요? 당신의 손에 우리를 맡긴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나요, 우리를 교양 있고 교육받은 사람이 되고, 덕이 있고, 존귀하며, 악덕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아니었나요? 이게 정녕 선생님이 우리를 가르칠 방법인가요? 진실로, 선생님의 나이 또래의 당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러한 잘못을 저지를 권리가 있다면, 당신의 행동에 의해 고무된 젊고 열혈 소년들이 어떤 과잉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다른 애들한테도 이러나요?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요컨대, 저는 더 이상 나아가는 데 동의하지 않을 거에요!"

알키비아데스가 이렇게 소리치긴 했지만 필로티메스는 여전히 소년의 눈에서 존경심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존경심이 알키비아데스가 그의 품에서 몸부림쳐서 빠져나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필로티메스는 곧바로 목소리 음색을 바꾸어 다정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재빨리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소년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내 사랑하는 아들 알키비아데스야, 너를 그토록 사랑하는 주인의 열심을 사하여라. 너를 숭배하는 영혼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다오. 너에게 가장 부드러운 입맞춤을 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너를 숭배하는 남자는 너의 거절을 받을 자격이 없고, 너의 미움을 받을 가치가 없단다. 내가 너를 본 첫날부터 너의 이미지를 내 마음에 이 불 줄기로 각인시켰고, 그것들은 빠르고 불같이 너 자신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너의 마음은 여전히 너무 차가워서 내 안에서 그토록 강하게 타오르는 불을 느끼기조차 어려운 듯 하구나. 그러나 내가 당신의 아름다운 정원의 시원한 샘에서 그것을 끌 수 없다면, 너는 네 불쌍한 선생님이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친애하는 알키비아데스여, 너는 곧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남자와 아버지처럼 너를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불행한 존재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테니 말이다."

(중략)

그의 말을 들은 사랑스러운 소년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선생님을 만족시키고 싶은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 앞에서 헐떡거리고 있는 선생님을 만족시켜주려 들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저는 선생님의 뜻에 저 자신을 바칠게요."라고 말했다. 뒤이어 "보세요, 저는 지금 선생님을 위해 준비되어 있어요."라고 덧붙이며 겉옷을 들추어올리고 엉덩이를 높이 들어올려 그에 걸맞는 자세를 취했다.

알키비아데스가 겉옷을 들어올리는 것을 도와주던 필로티메스는 곧 하늘과 모든 별이 수치로 붉어지는 것과 같이 영광스러운 사랑의 보화를 보았다. 천상의 찬란함에 휩싸인 태양조차도 제 얼굴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작은 낙원에 펼쳐진 놀라운 경이를 누가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을까? 따뜻한 분홍색으로 물든 천구를 닮은 두 개의 둥근 엉덩이, 백합과 수선화가 심겨진 정원과도 같았다. 그의 엉덩이에 손이 조금만 닿으면 그곳에서 수천 개의 루비가 흔들리는 듯 했고 우윳빛과 핑크빛 색들이 물결쳤다. 모든 것이 꽃이 만발한 정원, 하얀 빛, 반짝이는 별이었다. 이 영광스러운 아이가 취하는 규칙적이고 사랑스러운 움직임은 대리석 조각상마저도 세우게 했을 것이다.

오, 백색과 보라색이 사방에서 함께 경쟁하는 수천 가지 색상의 작은 꽃인 양, 갓 태어난 장미처럼 섬세하고 팽팽한 주름이 있는 그의 구멍은 얼마나 장엄하고 마치 왕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는지! 그런 숭고한 경이를 생각하면 필로티메스가 환희에 차서 기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갑자기 선생 앞으로 돌아와서 무릎을 꿇었다. 그의 혀는 비록 아직 감정에는 벙어리나 다름없었으나 그의 우상에게 처음으로 열렬한 공물을 바쳤다. 알키비아데스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욕망의 자리로 향했다. 소년은 미친듯이 뛰어들어가 간호사의 젖을 빠는 아이보다 더 열성적으로 핥고, 빨고, 마시고, 맛있는 암브로시아 술을 가득 삼켰다. 곧 엄청난 기쁨에 넘쳐 더 높은 일을 할 준비가 된 주인은 기쁨의 찬사를 내뱉었다.

"이제부터 너는 내 생각의 중심이 될 것이다. 너는 내 방향의 원칙, 내 행동의 틀림없는 규칙, 내 기쁨과 행복의 목표이자 끝이다. 내 마음을 거룩하게 하는 일을 내 신에게 하듯이 바로 너에게 할 것이다.”필로티메스는 그렇게 말하며 달콤한 애무를 하면서 사랑스러운 아이와 계속 놀았다. 이후 알키비아데스는 제 구멍에 선생님의 남근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알지 못하는 몸이 되었고, 나중에는 선생님에게 격렬히 박히는 걸 제외하면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만한 황홀함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그들의 만남과 사랑스러운 애무를 계속했는지는 두 번째 책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64]

6.6. 소포클레스의 이야기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그리스 비극 3대 작가들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다. 주요 작품은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어릴 때부터 수려한 용모와 부와 건강, 위신을 모두 가진 그야말로 타고난 엄친아였다고 하는데, 이 인간도 동성애와 관련된 썰이 있다. 실제로 소포클레스가 살았던 고대 아테네에서는 한창 소년애가 유행하고 있을 시점이었는데, 소포클레스도 대단히 소년애를 즐겼던 모양. 소포클레스의 소년애 성향에 대해서 기록을 남긴 사람이 여러 명이나 되니 그가 살아생전 소년애를 좋아했던 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아래의 번역본에는 총 2개의 일화를 수록해놓았다. 하나는 소포클레스가 레스보스 원정 당시 한 미동을 데리고 다니며 수작질을 하던 일화를 적었고, 나머지 하나는 소포클레스가 한 소년과 동침하다가 옷을 도둑맞고 놀림당하는 이야기다.

아래의 해석본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사에서 출간한 Thomas K. Hubbard의 2003년 Homosexuality in Greece and Rome 판본의 번역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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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포클레스가 군사를 이끌고[65] 레스보스로 향하기 전에 그를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소포클레스는, 글쎄 술이 들어가면 유쾌한 사람이었고 노는 법도 알았으며 영리한 인간이었다. 당시 소포클레스는 헤르메실레오스라는 이름의 한 아테네 미동(美童)을 데리고 다니며 그의 시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동은 당연히도... 소년이었다. 그는 내 앞에서 헤르메실레오스더러 "아이야, 내가 너의 술시중에 만족하기를 바라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헤르메실레오스는 당연히 "네."라고 답했다.

그러자 소포클레스는 "그렇다면 나에게 술잔을 줄 때 천천히 넘겨주고, 내가 술잔을 비우면 가져갈 때도 최대한 천천히 가져가거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소년의 뺨은 갈수록 붉어졌다. 소년이 뺨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걸 본 소포클레스는 옆의 동료에게 "피리니코스가 말한 게 바로 이런 게 아니었겠는가! '그의 뺨이 사랑의 진홍색 빛으로 붉어지노라'라는 구절이 바로 여기에 들어맞는군!"이라 외치며 좋아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한 에리트레아 시인이 "자네는 탁월한 시인이네, 소포클레스. 하지만 피리니코스가 소년의 뺨이 '진홍색 빛'으로 붉어진다고 말한 건 좋지 못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하네. 화가가 소년의 뺨을 진홍색으로 덧칠하면 그 소년은 더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테니 말일세. 아름다운 것을 그렇지 못한 것과 비교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네."라고 답했다.

에리트레아 시인이 딴지를 걸자 소포클레스는 크게 웃어젖히며 "자네는 그렇다면 시모니데스의 시 구절도 좋아하지 않겠군? 시모니데스는 '진홍빛 입술로부터 처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네'라는 시를 썼으니 말이야! 하지만 자네와 달리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은 시모니데스의 시구절을 좋아한다는데 자네만 생각이 다른 것 같군!"이라 응수했다. 그리고 덧붙여 "만약 자네의 말이 옳다면 ' 아폴론의 황금빛 머리카락'이란 구절도 옳지 않은 표현이겠군. 화가가 검은색 머리카락을 황금색으로 칠하면[66] 더이상 아름답지 않을테니 말이야. '장밋빛 손가락'이라는 표현도 싫어하겠군? 제아무리 아름다운 손가락이라도 장밋빛 염료 안에 담궜다가 빼면 더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테니 말일세!"라고 말했다. 소포클레스가 이렇게 맞받아치자 좌중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에리트레아 시인은 웃으며 소포클레스에게 항복의 뜻을 표했다.

에리트레아 시인에게 응수한 소포클레스는 다시 소년에게 관심을 돌렸다. 헤르메실레오스는 막 술잔에 빠진 지푸라기 한 올을 건져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눈치챈 소포클레스는 "헤르메실레오스야, 저 지푸라기가 보이느냐?"라고 물었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렇다면 네 손가락을 술잔에 담그지는 말아라."고 명령했다. "대신 네 입으로 불어서 지푸라기를 술잔에서 빼내거라." 그러자 헤르메실레오스는 얼굴을 술잔에 가까이 대고 입김을 불어 지푸라기를 불어내려 시도했다. 소년이 술잔 가까이 얼굴을 대고 열심히 입김을 불어대고 있자 소포클레스는 손에 쥔 술잔을 자신의 입술 쪽으로 슬금슬금 옮겼고, 그렇게 조금씩조금씩 그와 헤르메실레오스의 얼굴이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맞닿을 직전까지 가자 소포클레스는 소년의 머리를 붙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소포클레스가 소년에게 입을 맞추자 주변에서 웃음갈채가 터져나왔다. 소포클레스는 소년을 놓아준 뒤 "나는 전략을 연습하는 거라네. 페리클레스는 나더러 시만 잘쓰지 좋은 전략가는 되지 못한다고 말했지. 하지만 이 정도면 나도 꽤나 괜찮은 전략가 아닌가?"라고 말했고, 사람들은 더 크게 웃어젖혔다. 나의 식견으로 보았을 때, 소포클레스는 분명 술자리나 시에서만큼은 놀랍도록 영리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에서만큼은, 다른 아테네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일반인이었다.

- 키오스 섬의 시인 이오스가 소포클레스에 관해 남긴 일화.

소포클레스는 잘생긴 소년 하나를 꾀어 성벽 밖으로 불러내었다. 성벽 밖에서 그와 관계를 맺을 생각이었다. 소년은 제 옷을 벗어 땅에 깔았고, 소포클레스의 옷을 벗긴 다음 둘 위로 덮어씌우고 그 안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정사가 끝난 직후, 소년은 소포클레스의 고급 옷을 낚아챈 다음 잽싸게 도망쳤다. 소포클레스는 땅바닥에 깔려있던 작고 더러워진 소년의 옷을 입고 도시 안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일은 도시 전체에 널리 퍼졌고 소포클레스는 아테네 전체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일을 듣고서는, '나도 그 아이와 교접한 적이 있는데, 나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네!'라며 대놓고 말하며 소포클레스를 놀렸다. 이에 앙심을 품은 소포클레스는 에우리피데스가 옛날에 불륜을 저질렀던 사건에 대해 시를 써서 남겼다. 바로 아래의 시가 그 시다.

'에우리피데스여, 자네가 다른 자의 아내와 입을 맞추고 있을 때 북풍이 불어와 그대를 덮쳤지.'
' 남의 밭에 씨를 뿌리는 자 주제에 에로스를 보고 도둑맞았다고 놀리는 건 현명치 못한 일이라네.'[67]

- 로도스 섬의 시인 히에로니모스가 소포클레스에 관해 남긴 일화.

6.7.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

구전으로 전해지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달리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실화다. 당시 아테네는 형제이자 독재자, 즉 참주였던 히피아스 히파르코스가 공동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개중 히파르코스가 하르모디오스를 탐내자, 하르모디오스의 동성 연인이었던 아리스토게이톤은 기회를 엿보다가 히파르코스를 칼로 찔러 죽이고야 만다. 이후 하르모디오스는 처형당했고 직후 도망쳤던 아리스토게이톤마저도 얼마 못가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히피아스와 히파르코스의 폭정에 시달리던 아테네인들이 본격적으로 히피아스에게 반발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결국 히피아스를 쫒아내고 민주정을 복원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은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동상까지 세워졌다. 고대 그리스 동성애 관련 일화들 중 가장 유명한 것들 중 하나다.

아래의 해석본은 Lord Frederick Kenyon가 1891년 런던에서 출간한 'The Constitution of the Athenians' 판본의 번역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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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죽고난 후 그의 아들들이었던 히피아스 히파르코스가 권력을 잡았다. 히피아스와 히파르코스는 서로 역할을 나누어 국정을 운영했으나, 개중 히피아스가 더 영리하고 지도자의 자질이 있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일들을 관장했다. 반면 히파르코스는 기질이 더 젊었으며 사랑이 많았고 문학을 좋아했다. 아나크레온, 시모니데스 등 여러 시인들을 아테네로 초대한 이도 바로 히파르코스였다.

모든 재앙은 바로 이 히파르코스에게서 비롯되었다. 당시 하르모디오스는 한창 젊음의 꽃을 피우고 있었고 중산층 시민이던 아리스토게이톤과 교제하고 있었는데, 히파르코스가 하필이면 이 아름다운 하르모디오스에게 반해버렸던 것이다. 히파르코스는 하르모디오스에게 끝없이 구애했지만 이미 연인이 있던 하르모디오스는 완강히 거부했다. 하르모디오스에게 실연당한 히파르코스는 그에게 앙심을 품고 뒤에서 은밀히 그를 모욕하거나 푸대접을 하는 등 그에게 악의를 가지게 되었다.

한편 히파르코스가 하르모디오스에게 구애한다는 사실을 들은 아리스토게이톤은 제 연인을 빼앗길까 두려워 대담한 음모를 세웠다. 아리스토게이톤은 분노의 광란 속에서 그 유명한 행동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당시 히파르코스는 파나테나이아 대축제[68]에서 행렬을 이끌고 행진하고 있었는데, 분노에 휩싸인 아리스토게이톤은 칼을 뽑아들고 히파르코스를 찔러 죽였다. 하르모디오스는 그 자리에서 호위병들에게 살해당했고 아리스토게이톤은 도망쳤지만 붙잡혀 오랫동안 고문당하다가 죽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고문당해 죽기 직전까지 히피아스에 협력한 명문가들과 그의 친인척들을 맹렬히 비난했다고 한다. 결국 참다못한 히피아스가 자제력을 잃고 단검으로 아리스토게이톤을 찔러 살해하였다.

이 사건 이후 히피아스의 폭정은 더욱 가혹해졌다. 아테네에서 제 위치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달은 히피아스는 형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추방했으며 불신과 분노에 가득 찬 위인이 되어버렸다. 히피아스는 히파르코스가 죽은 지 3년 쯤 되는 해에 아크로폴리스를 요새화하기 시작했지만, 이 작업이 끝나기도 전 스파르타의 왕 클레오메네스에게 추방당했고... (후략)

6.8. 엘라가발루스의 연대기

엘라가발루스는 어린 나이에 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인물이다. 하지만 온갖 기행을 펼치다가 결국 18세에 친위병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죽음을 맞고 기록말살형까지 당했다. 그가 유난히 로마인들에게 증오받았던 이유는 남성 간 동성애에서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역할을 맡았기 때문.[69] 박을지언정 박혀서는 안되는 로마 사회에서 엘라가발루스의 이런 취향은 극도로 불명예스럽게 여겨졌다. 아래의 내용은 아우구스타 연대기 17권의 내용으로, 고대 작가 아엘리우스 람피디우스가 콘스탄티누스 1세의 치세에 썼다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엘라가발루스의 치세에 대해 상세하게 적혀 있어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작품들 중 하나다.

아래의 해석본은 David Magie가 1924년 출간한 'Loeb Classical Library volume CXL' 판본의 번역을 따른다. 노골적이거나 성적인 내용이 있으므로 열람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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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가발루스가 니코메디아에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난잡하기 짝이없는 겨울을 보내고 있을 즈음, 병사들은 점점 마크리누스를 거역하고 엘라가발루스를 황제로 세운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이따위로 제 몸 모든 구멍으로 남자를 받아들이는 황제를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짐승조차 이리 하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로마에서도 그가 한 일은 고작 활력을 얻는답시고 대물을 가진 남자들을 찾아오라고 신하들을 파견한 것 밖에 없지 않은가?

그는 제 황궁에서 파리스의 공연을 하는 것을 즐겼다. 엘라가발루스는 공연에서 미의 여신 베누스의 역할을 맡았다. 공연 도중 갑자기 그가 걸치고 있던 옷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창피한 척 무릎을 꿇고 엎드려 한 손은 가슴을, 나머지 한 손은 제 치부를 가렸다. 그런 와중에 제 엉덩이를 길게 빼어 연극 상대가 있는 쪽으로 내밀었다. 그는 베누스 여신이 그림 속에서 할 법한 표정들을 따라하기 좋아했고 전신을 제모했다. 그는 제 몸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정욕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들기에 가장 적합하고 합당한 것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여겼다.

그는 직접 혹은 제 노예들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돈을 받고 명예와 온갖 관직들을 사람들에게 내다팔았다. 그는 나이, 부, 지위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오직 저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바쳤느냐에 따라서 원로원 의원들을 임명했다. 군대의 백부장과 호민관, 타국 사절과 장군의 직위를 팔았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황궁의 검찰관과 시종들의 직위도 마음대로 팔았다. 전차몰이꾼에 불과했던 프로토게네스와 코르디우스는 전차 경주에서 엘라가발루스를 만나 그의 호감을 얻어 황궁에 거주하는 특권을 누리며 출세했다. 그 외에도 경기장, 연극장, 투기 검투장 등 어디에서든 제 마음에 드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황궁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황궁에서 플로라 여신의 축제를 기념한다는 핑계로 그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등 차마 적지 못할 정도의 행각을 벌였다.

엘라가발루스는 황궁에 공공 목욕탕을 만들어 개방했고, 플라우티누스 목욕탕도 공공에게 개방했다. 엘라가발루스는 목욕탕에 들러 헐벗은 시민들 사이에서 큰 남근을 가진 자를 발견해 황궁으로 데려와 서로 즐기기를 좋아했다. 젊은 황제는 로마 전 시내에 시종들을 파견해 마치 당나귀처럼 덜렁거리는 남근을 가지고 있는 자들, 혹은 특별히 남성미가 뛰어난 자들을 잡아오도록 시켰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아우렐리우스 조티쿠스[70]는 거의 그의 남편처럼 행세하고 다녔다. 더욱이 이 조티쿠스라는 자는 황제의 총애를 남용할 줄 아는 자였다. 그는 거짓된 구실 아래 엘라가발루스의 이름으로 모든 약속과 호의를 팔고 다녔고, 황제의 비호 아래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협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약속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다 거짓이었다. 그는 황제를 한 번 만나고 올때마다 사람들에게 가서 '황제가 너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가 한 행동에 대하여 황제께서 이리 대응하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권력자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그 정보가 진실이든 아니든 제 마음 가는 대로 기밀들을 흘리고 다닌다. 정작 순진하기 짝이 없는 황제는 이 음모간계를 알지 못하고 제 주위를 떠도는 소문들에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황제는 이 조티쿠스와 혼인신고까지 올렸고, 그가 다른 여자들과 난교를 맺을 때 옆에서 즐거움을 선사한 조티쿠스에게 '요리사'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71] 황제는 이외에도 늙고 명망있는 철학자들을 불러놓고 그들에게 혹시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성적 흥분을 경험한 적 있냐고 아무 부끄럼 없이 물어보았다. 실로 그는 더러운 말을 삼가지 아니했고 손가락으로 음란한 말을 하였으며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백성이 들을 때에도 전혀 예의를 지키지 아니하였다.

그는 해방노예들을 속주의 총독과 특사, 영사와 장군으로 삼았고 천박한 이들을 임명해 모든 영예로운 공직에 불명예를 안겼다. 한 번은 궁정의 귀족들을 연회에 초대했고, 황제는 포도 바구니 곁에 앉아 개중 가장 위엄있는 이들에게 자신이 베누스를 닮았느냐고, 혹시 함께할 시간이 되냐고 물어보았다. 노인들이 얼굴을 붉혔음에도 불구하고 엘라가발루스는 아무 거리낌 없이 제 난잡한 사생활을 드러내었다. 장로들이 나이나 품위 면에서 그런 저급한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기에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황제는 이제 젊은이들에게 몸을 돌려 온갖 음란한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제 나이대에 맞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때서야 즐거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는 근위대장으로 로마의 무대에 올랐던 무용수를 임명했고 시계 장관으로는 코르디우스라는 이름의 전차꾼을, 곡물 공급 장관으로 클라우디우스라는 이발사를 임명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직책들에도 오직 남근의 크기만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임명했다. 유산에서 5%의 상속세를 징수하는 직책에는 노새꾼, 배달원, 요리사, 자물쇠 제조공 따위를 임명했다. 그는 정치 장소에 나서거나 원로원 회의장에 갈때마다 제 조모인 율리아 마이사를 데리고 갔다. 엘라가발루스는 마이사를 데리고 가면 자신에게는 전혀 없는 정치적 권위가 부여될 것이라 여겼다. 원로원 회의장에 여성이 감히 출입한 것도, 그리고 여성이 원로원 토의 도중 발언하며 끼어들었던 것도 엘라가발루스와 율리아 마이사 이전에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엘라가발루스는 연회에서 변태들과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을 즐겼으며 술을 마시며 그들을 만지거나 애무하기를 좋아했다. 그가 술을 마시려 할때마다 옆에서 한 명씩 남자를 지정하면 그 남자가 엘라가발루스에게 술을 따라주고 술잔을 건넸다. 그의 생애에 관한 수많은 추잡한 일화들이 있지만 기록할 가치가 없기에 오직 그의 사치스러움과만 관련된 일화들만 여기에 적는다.

그는 아내를 제외하고는 같은 여성과 두 번 이상 관계를 맺은 적이 없으며, 친구와 고객, 노예들을 위해 황궁에 매춘업소를 차렸다. 그는 경기장, 극장, 연설장 등에 창녀들을 모아놓고 마치 군인들에게 하는 것처럼 그 앞에서 일장연설을 펼쳤다. 황제는 창녀들을 '제군'이라 불렀으며 그 앞에서 온갖 음란한 자세를 취하며 방탕함을 논했다. 심지어 군인들에게 하는 것과 같이 연설이 끝난 후 자신을 위해 기도해줄 사람들을 찾기도 했다. 연설이 끝난 후에는 마찬가지로 음탕한 소년과 청년들을 가득 초대하여 연회를 열었다. 황제는 연회에서 여자 옷을 입고 가슴에 솜을 넣어 볼록하게 만든 채 등장했고, 마치 몸을 파는 소년과 같은 행동을 하며 수많은 남성들과 관계를 즐겼다.

황제는 재무관에게 명령하여 성벽 안에 있는 모든 창녀와 상인들에게 창녀의 일 년치 세금 납부액과 같은 양의 곡식을 나눠줬고 성 밖에 있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금액을 약속했다. 그는 심지어 황제가 아니었을 때조차 60대 미만의 마차로는 여행한 적이 없었고 조부모는 그가 제국의 재정을 파탄낼 것이라 우려했다. 황제에 즉위한 이후에는 이러한 기행이 날로 심해져 페르시아의 황제가 1만 마리의 낙타를, 네로가 마차 500대를 끌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고 주장하며 본인은 무려 600대의 마차를 끌고 유람을 즐겼다. 굳이 600대나 마차가 필요했던 이유는 온갖 종류의 창녀, 창남, 음녀 및 제 애인과 시종들을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그는 면도날을 들고 제 손으로 직접 애인들의 사타구니의 음모를 밀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노파를 방에 가두어놓고 제 친구들을 그 안에 밀어넣은 다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그 안에 있으니 마음껏 즐기라고 명령한 적도 있다. 아름다운 소년들도 이와 같은 기행에 예외는 아니었다. 필리포스의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불법이 아니었다.

[1] 크리스티안 그리펜켈(Christian Griepenkerl). 1884년 작(作). 참고로 뒤에서 불을 훔치는 사람은 그 유명한 프로메테우스다. [2]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와 관련하여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문장. 다만 이 말이 플라톤의 사상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는 말이라 보기엔 곤란하다. 해당 문장은 플라톤의 저술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대사이다. 플라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고 여성을 가까이하지않긴 하였으나 이는 플라톤이 동성애자라서라기보다는 금욕주의자에 가까워서 그렇다. 게다가 말년에 저술한 『법률』편에서는 아예 동성애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이 문장 하나만으로 플라톤을 동성애자로 오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3] 어린이 만화에서는 동성애를 노골적으로 다루기가 곤란해서 파트로클로스를 아킬레우스의 절친이라고 순화했다. [4] 이집트 신화에는 세트 호루스를 강간하려 시도했다는 내용, 호루스가 세트에게 제 정액을 먹였다는 내용은 있다. 하지만 이건 동성애라기보다는 정액을 먹임으로써 상대에게 치욕을 주고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더 강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집트 신화 문서 참조. [5] 말은 이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 관계보다는 육체적 관계를 추구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6] 현대의 연구 결과 성기 크기와 성욕은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 다만 음경의 크기에 대한 콤플렉스가 성적 자신감 결여로 이어져 성욕감소나 심인성발기부전을 일으킬 수는 있다. [7] 히아신스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다. [8] 이 이야기는 뮤지컬 헤드윅의 메인 테마 Origin of Love의 주제가 되는 등 여러 후대 문학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9] 참고로 이 아리스토파네스는 그리스 희곡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10]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중년이나 노년 남성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각이나 그림 등에 묘사된 걸 보면 파트너 사이의 나이차가 10살도 안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젊은 사람들끼리 짝을 짓는 경우도 흔했다는 이야기다. [11] 그리스어로 ' 성적으로 원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 성적 욕망을 갖는다 는 동사 eramai 의 과거분사다. [12] 소아성애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범죄이자 정신병 취급을 받았다. 노예나 어린아이와 성적으로 엮이는 건 남녀를 불문하고 치욕스러운 일이었고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다. [13]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4] 아테네 10대 연설가들 중 하나이자 유명한 정치인이었다. [15] 현대에 들어서는 이게 정치적 목적으로 이루어진 재판이라고 보고 있다. 재판정은 티마르쿠스가 돈을 받고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증인이나 증거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티마르쿠스가 앞서 아에스키네스의 위법행위들을 고발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아에스키네스가 티마르쿠스를 고소했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많은 남성들과 돈을 받고 관계를 맺는게 죄목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좋게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16] 이런 일은 주로 돈이 많은 고위 계급의 에라스테스들 사이에서 많이 일어났는데, 그때도 멀쩡한 에로메노스를 버리고 다른 에로메노스들을 찾아다니는 일은 극도로 천박한 인간으로 취급받았다. [17] 정확히는 가니메데의 모습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제작했고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상적인 에로메노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에로메노스가 음모나 수염이 없는 모습으로 그렸다. 에로메노스는 흔히 에라스테스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있거나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18] 허벅지 성교를 하는 모습. 날개달린 쪽이 서풍의 신 제피로스다. 기원전 480년 타르퀴니아에서 제작되었으며 현재는 보스턴 미술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미소년으로 유명한 히아킨토스를 묘사한 고대 그리스 작품들 중 몇 남지 않은 작품으로 그 사료적 가치가 높다. [19] 아무래도 인간 본성상 사타구니 성교보다는 항문 성교나 구강 성교에서 더 큰 쾌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도시 테라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남성의 항문을 장미 꽃잎과 황금에 비유하며 그 아름다움과 느낌을 찬미하는(...) 내용이 발견된 적도 있다. [20] 한심하다는 뜻의 'pathetic'이 '수동적'이라는 단어 '파테티코스(παθητικός)'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어로 파테티코스는 동성성교에서 성기를 받는 쪽을 가르키는 용어기도 했다. [21] 물론 아예 안 한건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대놓고 하기 꺼려지는 일이었고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22] 어디에나 예외는 있듯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건 공공 기물이 아니라 외설적인 내용을 묘사한 음란물에 더 가깝다. [23] 단순히 성적 욕구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수렵을 하거나 연회를 즐기거나 술을 마시거나 다양한 활동들을 했다고 한다. [24] 스파르타를 의미한다. 정확히는 흔히 스파르타라고 부르는 고대 도시국가의 원래 명칭이 라케다이몬이었으며, "스파르타인" 이라고 부르면 라케다이몬의 국민들 가운데에서도 노예가 아닌 시민들만 가리키는 것이었다. [25] '어떤 사람이 소년의 영혼을 동경하여 책망 없이 이상적인 친구로 삼고 그와 교제하려고 하면 소년은 이러한 훈련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믿어주었다. 그러나 그 매력이 소년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면 그는 그 연결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 금지하였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와 형제 자매간에 성행위를 삼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인들도 소년을 삼가도록 하였다.' - 크세노폰. [26] 고대 그리스 기록에는 스파르타를 도시도 아니고 '마을'로 묘사한 것도 있다. 웬만한 도시 수준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그 규모가 작았다는 것이다. 스파르타는 비슷한 영향력을 가진 테베 아테네에 비교하기도 민망할 수준으로 그 인구가 적었다. 그래서 얼마 안되는 인구를 정말 극한까지 단련시켜 그리스 최고의 전사들을 뽑아냈다. 양보다는 질을 추구했던 셈. [27] 물론 말이 납치였지 이미 다 신부 집안과 짜맞추어진 일이었다. [28]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이거나 아이가 기형아일 시에는 외가의 허락 하에 애인이나 을 들일 수 있었다. [29] 알키비아데스는 연회장 안으로 들어와 소크라테스가 또다른 미소년 아가톤 곁에 앉아있는 걸 보고 질투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플라톤의 향연 :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문단 참조. [30] 다만 이런 게이들로만 구성된 부대는 오직 테베 한정이었고 다른 폴리스들에서 이런 군부대를 따로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다. [31] 신성부대의 분전에 감격한 필리포스 2세는 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무덤을 세워 이들을 기렸다고 한다. [32]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의 모습을 묘사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대놓고 성관계를 묘사하는 상당한 수위의 고대 그리스 그림들이 수두룩하다. [33] 고대 그리스의 경우 산토끼 수탉, 사슴이나 고양이 등을 소년 연인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인에게 동물을 선물로 주는 것이 귀족적인 취향으로 여겨졌던 것.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했다. 다만 이는 남성 연인 한정이었고 여성 연인에게는 동물이 아니라 돈을 줬다. 사실상의 매춘 개념과도 비슷한 것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남성 연인에게 동물을 선물하는 화병들은 많지만 여성 연인에게 사랑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모습을 묘사한 화병은 아예 없다. [34] 위쪽에 있던 '히아킨토스와 제피로스' 화병이 대표작이다. [35] 왼쪽이 하드리아누스 황제이고 오른쪽이 안티노우스다. 박물관에 가면 하드리아누스의 흉상은 보통 안티노우스의 흉상과 함께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36] 아킬레우스의 미모는 유명하다.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자들 중 가장 아름다운 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이 군공을 세우고 명예를 얻으면 요절하리라는 예언을 받아 그를 트로이 전쟁에 참전시키지 않으려고 여장을 시켜서 스키로스 왕실의 공주들 사이에 숨겼는데, 그를 스카우트하러 온 오디세우스도 그냥 보기만 해서는 이 예쁘장한 미소년을 진짜 여자들과 분간할 도리가 없어 잔꾀를 써야 했을 정도였다. 그 방도가 무엇인고 하니 방물장수로 변장해서 온갖 장신구며 화장품 등을 늘어놓는데 그 사이에 칼을 하나 숨겨놓는 것. 장신구와 화장품은 거들떠도 안 보고 칼을 덥석 집어드는 '공주'가 있으면 그게 여장한 아킬레우스일 테니. [37]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여해 영광을 얻으면 죽는다는 예언이 있었다. 이를 불길하게 여긴 어머니 테티스는 일부러 아킬레우스를 여장시켜 스키로스의 리오메데스 왕의 딸들 사이에 숨겼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방물장수로 위장해 딸들을 방문했고, 구경하라고 내놓은 잡동사니들 중에 유일하게 칼에 관심을 가진 아킬레우스를 교묘하게 찾아내 반강제로 끌고갔다. [38] 실제로 아킬레우스는 죽은 이후 수습되어 파트로클로스의 유해와 함께 합장되어 묻혔다. [39] 그가 원래 입던 갑옷, 즉 파트로클로스에게 빌려줬던 갑옷은 헥토르가 뺏어갔다. 그리고 그 갑옷 역시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든 갑옷이었다. [40] 위에 나와있다시피 고대 그리스의 동성연인들은 허벅지 삽입 성교인 스마타를 즐겼다. [41] 아킬레우스는 당시 약 23세, 파트로클로스는 약 29세였다. 또한 아킬레우스에 가려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파트로클로스 역시 상당한 미남이었다. 회색빛 눈에 부드러운 인상을 가졌는데, 특히 현명하고 의지할만한 미청년이었다고 한다. 다만 아킬레우스가 워낙 사기적으로 잘생겨서 그 그림자에 가려졌을 뿐. [42]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호메로스 서사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43] 호메로스 시대에도 동성애는 있었으나, 이는 당연히 후대 고전기의 문화와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일리아스 본문의 행간을 '후대'인 고전기의 관점(이것을 했으면 동성애다)에 기반해서 해석한 것이다. [44] 설령 고전기 그리스의 감성으로 보더라도 '동성연인'은 부부가 아니다. [45] 특히 호메로스가 둘을 연인이라 적지 않았지만, 반대로 연인이 아니라고 확실히 명시하지도 않은 점을 악용해 반증이 불가능한 가설들을 마구 제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46] 애초에 '레즈비언'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에서 유래한 단어다. [47] 남성 동성애에 관대한 분위기도 여성 차별과 남성우월주의가 강해지다 못해 이루어진 결과(여자보다 남자가 우월하니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남자를 사랑하는 게 더욱 훌륭하다.)라 해석할 여지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여성들은 집에만 틀어박힌 채로 육아와 가사만 담당했다. 스파르타 정도가 예외인데, 용감한 군인이 될 튼튼한 아들을 낳기 위해 체육 활동을 권장하고 남성들을 모두 군대에 끌고가서 사회 활동을 여성들이 주도한 상황에 가깝기 때문에 레즈비언에게 관대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48] 뿐만 아니라 신전의 여자 합창단원들 사이에서는 서로 동성 관계를 맺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49] 안드로스(ἁνδρός)는 '남자'를 뜻하는 ἀνήρ 의 소유격이며, 거시기를 뜻하는 케르코스(κέρκος)라는 단어가 있다. [50] 그녀가 추방당한 이유에 대해선 밝혀진 게 없지만, 아마 그녀의 가문이 정치싸움에 휘말려 가문 통째로 추방당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51] 일부 학자들은 이게 빅토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조작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사포를 모범적인 귀족 여성으로 미화하려 시도했다. 그런데 '당대 기준으로 모범적인 여성'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사포가 동성애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안되니까 일부러 이런 이야기를 덧붙여 이성애자로 포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52] 참고. Reynolds, Margaret, ed. (2001). The Sappho Companion. London: Vintage. p.81 [53] 참고. Reynolds, Margaret, ed. (2001). The Sappho Companion. London: Vintage. p.18 [54] 가니메데가 태어난 이다에 있는 산의 정상 봉우리를 의미한다. [55] 요약하자면 에우몰포스가 젊었을 적에 손님으로 묵던 부잣집의 미소년 아들을 홀려서 성관계를 가진다는 이야기다. [56] 그래서 이 당시 라틴어 수업이 문학 작품의 작중에 등장할 경우 다른 라틴어 고전들과 함께 사티리콘이 수업교재로 언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문학 작품을 읽었지만 라틴어 작품들에는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나중에 사티리콘을 찾아보고 그저 충공깽... [57] 종마의 일종. 서러브레드종은 현재 경주마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오로지 경주마로서만 개량된 쿼터호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몸이 잘 발달된 세련된 품종이다. [58] 여기서 찬미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플라톤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플라톤의 에로스는 이데아의 사랑에 있어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것이 플라톤이 말하려 했던 참된 플라토닉 러브라고 본다. [59] 그래서 일부러 맨 마지막 부분에 소크라테스에게 차인 다른 소년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나에게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건 아니다'라고 변명하기까지 한다. [60] 즉 알키비아데스가 생각한 방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소크라테스라는 뜻이다. [61] 초반에 절주 분위기를 주도한 이들 중 하나이다. [62] 자신의 지적 아름다움이 알키비아데스의 육체적 아름다움보다 월등하다고 말하면서 그의 갑작스런 고백을 능청스럽게 받아넘기는 것에 더 가깝다. [63] 실존 인물 알키비아데스 소크라테스의 소년애인이자 제자였다. (플라톤의 창작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플라톤 대화편 < 향연>에서는 전술했듯 다른 미소년과 친밀하게 구는 소크라테스에게 질투를 하는 묘사와 소크라테스를 유혹하기 위해 침대에 난입해 덮치는 이야기 등이 등장한다. [64] 참고로 이 두 번째 책은 결코 출판되지 못했다. 남색을 쥐잡듯이 잡던 교황청에서 눈에 불을 켜고 해당 서적의 유통을 금지했기 때문. 애초에 첫 번째 책마저도 익명으로 출간했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저자가 밝혀졌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사제이자 작가, 철학자였던 안토니오 로코(Antonio Rocco)였다. [65] 당시 그는 군대를 이끄는 장군직을 맡고 있었다. [66] 실제로 그리스인 계통 민족들은 머리카락이 대부분 검은색이다. 금발 머리는 저멀리 게르만족이나 북유럽에서나 흔하게 나타나는 형질이다. [67] 즉 남의 밭에나 씨를 뿌리며 불륜을 저질른 에우리피데스가, 소년과 사랑을 나누던 자신을 도둑질당했다고 놀릴 자격은 안된다는 뜻이다. [68] 당시 아테네의 참주들이 유일하게 무기나 제대로 된 호위를 갖추지 않은 채 시민들과 대면하는 행사였다. [69] 수동적인 역할의 소년애인의 미를 숭상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만큼 성인 동성애자에게도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그리스에 비해 로마는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에 한해서는 후대 기독교 시대보다 관대했으나 가부장적이고 이성애를 숭상하는 경향이 강했다. [70] 이오니아의 그리스계 도시 스미르나(튀르키예의 이즈미르) 출신 운동선수. 아름다운 금발 머리와 잘생긴 머리, 탄탄한 육체 덕분에 엘라가발루스의 총애를 얻었다. [71] 당시 엘라가발루스는 히에로클레스라는 또다른 총애하는 남첩이 있었다. 그러나 황제는 은연중에 조티쿠스를 더 선호했고, 이를 안 히에로클레스는 황제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운 나머지 몰래 마약을 조티쿠스에게 먹였다. 그 결과, 약에 취해 황제의 요구를 받아주지 못한 조티쿠스는 완전히 총애를 잃어버렸다. 따라서 조티쿠스는 엘라발루스에게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모든 명예를 박탈당하고, 이탈리아에서 추방됐다. 이때가 서기 221년인데, 이는 반강제로 황제에게 끌려가 남자애인이 된 조티쿠스 본인에게 다행스러운 사건이 됐다. 따라서 디오는 잘생기고 좋은 몸을 가진 이유로 황제의 남색 대상이 된 조티쿠스가 추방된 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엘라가발루스와 히에로클레스가 모두 몰락할 때 면죄부를 받고 목숨을 구한 배경이 됐다고 한다. 하여 조티쿠스는 엘라가발루스에게 잠시 총애를 얻었을 당시 모은 막대한 재산, 엘라가발루스의 호의를 이용해 얻은 좋은 집안 출신의 미녀를 아내로 두고 살아남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