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2 14:34:14

문맥을 무시한 인용

1. 개요2. 설명3. 예시
3.1. 종교3.2. 문학3.3. 영화/드라마/광고3.4. 과학 및 유사과학3.5. 역사학3.6. 정치
3.6.1. 투표독려
3.7. 철학3.8. 인터넷3.9. 기타
4. 관련 문서

1. 개요

Incivile est nisi tota lege perspecta una aliqua particula eius proposita iudicare vel respondere.[1]
(법률 전체를 통관하지 아니한 채 그것의 어떤 특정한 규정만으로써 판정하거나 해답하는 것은 야만이다.)
켈수스(Celsus)[2]
위 문장은 로마법 대전에 나오는 법해석에 관한 금언이지만, '문맥을 무시한 인용'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 영어)quoting out of context; quote mining; contextomy

어떤 문장이 쓰인 문맥과 맥락을 무시하고 인용하는 논리적 오류. 어떤 문장이라도 앞뒤의 문맥을 따라 읽어야 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하여 이루어지는 오류이다. 다음 두 가지 오류와 관련이 깊다.
  •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논박하고자 하는 상대의 주장을 좀 더 공격하기 쉽게 왜곡하는 효과가 있다.
  •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권위자나 유명한 사람 역시 토론하는 사람을 지지한다고 왜곡하는 효과가 있다.

한자성어로는 '단장취의(斷章取義: 끊을 단, 글 장, 취할 취, 뜻 의)'라고 한다. 본래 글[章]의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필요한 부분만을 잘라[斷] 스스로가 의도한 뜻[義]을 얻는다[取]는 의미.

2. 설명

서로 다른 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서로 다른 양의 빛을 받아들이고, 구면수차와 색수차를 보정하는, 모방할 수 없는 경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눈이 자연선택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고백하건대 전혀 터무니없어 보인다. - 찰스 다윈, 1872년

이 예문을 보면 마치 찰스 다윈이 자신이 주장한 자연선택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생략된 문장들을 보면 다윈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뒤의 몇 문장을 생략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맨 맨 먼저 태양이 제 자리에 있으며,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인간의 상식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철학자가 알듯, 민심이 천심이라는 옛말은 과학에 통하지 않는다. 이성은 내게 말한다. 단순하고 불완전한 눈에서 복잡하고 완벽한 눈으로 가는 수많은 계층이 존재하며, 뒤에 있는 것이 앞선 것보다 생존에 유용하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면 어떨까? 확실히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눈이 계속 변화하며 변이가 유전될 수 있다면?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 변이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떤 동물에게도 유용하다면, 자연선택으로 복잡하고 완벽한 눈이 진화하는 것의 어려움으로 이론을 전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3. 예시

3.1. 종교

  • 성경의 구절 하나인 "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기독교 신자들은 물론이고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표현이며, 흔히 번창이나 성공을 기원하는 구절 정도로 여겨져 창업이나 개업 등에서 해당 문구가 쓰인 액자를 벽에 걸어두는 경우가 간혹 있다. 하지만 원래 이 구절이 나오는 욥기에서 이 구절은 여러모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였으며, 원래의 문맥을 생각하면 현재 쓰이는 축복과는 반대의 표현이다. 쉽게 생각하면 '의로운 척 하기는. 네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거겠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여 주시겠지만...' 정도이다. 이 욥은 당시에 자신의 잘못이 아닌 마귀의 시험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었다![3] 결정적으로 이 말은 신(하나님)이 아니라 욥의 친구가 한 말이다. 재미있게도 의미가 거의 유사한 사자성어인 " 대기만성" 역시 문맥을 무시한 인용 사례이다.
  •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 본래는 사도 파울로스가 일을 하지 않고 사건사고나 일으키는 기독교도들을 꾸짖은 표현인데, 이것을 공산주의자들이 불로소득(자본이익)을 부정하고 노동만이 이윤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변용했다. 즉, 건물주를 비롯한 자본가들 보고 굶으라는 소리다. 이것을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파업 권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또 변용했다.
  • 신약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가난한 과부가 동전 몇푼을 헌금으로 내는 모습을 보고 예수가 '저 과부가 가장 많은 헌금을 냈다. 저 과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헌금으로 바쳤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걸 가지고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꼭 헌금을 내야 천국에 간다.'라는 식으로 억지를 부릴 때가 있다. 하지만 예수의 의도는 없는 형편에도 예물을 바치려 하는 그 과부의 신앙을 칭찬함과 동시에, 그런 과부를 돕지는 않고 자기들 배불리기에만 바쁜 고위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걸 현대로 가져와서 생각해보면, 십일조와 헌금을 강요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 더러웠던 유대교 성직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의 천지 창조에 의심하는 부류에 대해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냐고 묻는 놈들을 벌할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라고 쓴 것을 두고 일부 기독교인들이 '그러니 창세기 내용을 의심하지 마라'라고 주장할 때가 있다. 하지만 원문(고백록 11권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구절을 명백히 농담이라고 말하며, 천지창조에 대해 이런식으로 농담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원래 질문에 대해 그가 내놓은 답은, 시간 자체가 천지 창조의 한 부분이므로 창조 이전에는 시간 또한 없었다는 내용.[4] 더 아이러니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을 이미 호되게 깠다는 점이다.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이란 글에서 직접적으로 '성경을 어설프게 읽고 이성과 과학에 대해 허튼 소리를 하는 자들은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짓거리'라고 비판한다. 아예 대놓고 진리를 영접했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연과학에 대해 븅신 같은 소리만 하면 누가 우리 복음을 진지하게 들어주겠냐라고 일갈하기도. 그리스도교의 자연과학에 대한 이러한 유보적인 태도는 의외로 교부 시절부터 종교개혁 시절까지 꾸준한 것이었기도 하다.[5] 애초에 아구스티누스 정도 레벨이면 웬만한 철학자 과학자 붙여놔도 맞짱 뜨는 데, 이걸 활용하는 사람들은 영...
  • 그 외에도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하는 것은 악마가 광야에서 예수를 유혹할 때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 "도박하는 모든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에 돈을 건다."라는 블레즈 파스칼의 말은 도박의 해악을 경계하는 명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이 종교 문단인 이 문단에 있는 까닭은 이 말의 실제 의미가 파스칼의 내기와 관련된 것으로, 모든 도박은 어차피 불확실한 것이며, 한마디로 믿어서 손해볼 건 없고, 안 믿고 있다가 만에 하나 진짜 있으면 X되니 걍 믿는 게 이득[6] 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교황 프란치스코의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발언은 사실 동성애자와 이혼자, 낙태한 여성에 대한 자비를 강조한 것이며, 현재까지도 교리상 낙태에 절대 반대하고 있으나 조국수석이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에 대한 청원에 대해 해당 발언을 인용했다가 국내 가톨릭계의 큰 반발을 샀다.

3.2. 문학

  • 셰익스피어 - "과거는 미래의 서막이다.": 이 말은 사실 희곡 폭풍우에서 형을 쫓아낸 협잡꾼 안토니오가 또 다시 동료를 배신하려 하며 내뱉는 말이다. 즉, 과거에 형을 쫓아냈듯 동료를 쫓아내겠다는 뜻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인용인 셈.
  •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흔히 운동을 통한 신체 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하는 문구이지만, 실제 내용은 다르다. 로마 제정기에 유베날리스가 자신의 풍자시 10편에서 사용한 문구로서, 로마인들이 신체의 강건함만을 추구하고 정신적인 단련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말. 그 완전한 문장은 “Orandum est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로, 번역하면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다.”이다. 앞뒤 문맥을 볼 때 이는 신체와 정신에서 어느 한쪽의 발전만 치우치지 말고 균형있게 추구하라는 주장이다. 운동을 권장하는 경구가 아니다.
  • "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 -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에서의 발언. 아무리 셰익스피어의 위상이 크다고 해도 인도라는 거대 문화권의 가치를 일개 문학가보다도 낮게 취급하는 서구 우월주의적 발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문맥을 무시한 것으로, 본래 칼라일의 발언은 '영국에게 인도는 없어도 상관없지만 셰익스피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였다. 즉 인도가 상징하는 경제적 가치보다 셰익스피어가 상징하는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주요 무역국이었다. 즉 인도와 무역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은 포기하더라도 문화적 정신은 포기할 수 없음을 주장하기 위한 것뿐이다.

3.3. 영화/드라마/광고

  • 평론가 마이크 라이언은 매거진 베니티 페어(Vanity Fair)에서 드라마 LOST에 대해 "비록 꽤나 중독성 있고 대단하지만, 사상 최고로 혼란스럽고,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드라마"(the most confusing, asinine, ridiculous —yet somehow addictively awesome — television show of all time.)라고 썼다. 이것은 제작진들에게 "사상 최고로 중독성 있고 대단한 드라마"(The most addictively awesome television show of all time)로 인용되었다.
  • 심형래 뉴욕 타임스에서 D-WAR를 "재미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고 호평했다고 주장했지만 심형래 문서에도 있듯, 그 평은 반어법을 사용한 혹평이다. 쉽게 말하면, "재미없을 장면조차 없을 정도로 구린 영화"라는 것이다.
  • 클레멘타인을 본 어느 영화팬은 너무나도 감동받아서 암이 나았다고 한다.
  • 부당거래에서 나온 "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는 상당히 자주 인용되는 말인데, 사실 작중에서 류승범이 이 대사를 한 것은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려 하는 것을 호의로 과장하며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강짜를 부린 것인 데다, 작중 상황도 개인 대 개인도 아니고 공공기관 대 공공기관이므로 절대 호의 같은 게 오간다고 볼 수 없어 이 말은 절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대사가 아니었다.
  • 스티븐 스필버그 - ' 슈퍼히어로 영화 서부극 영화처럼 몰락할 것이다': 이 구절만 보면 마치 스필버그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서부극이 몰락한 것처럼 곧 망할 장르라고 폄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행이 지나면 언젠가는 쇠퇴하는 건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이다. 서부극이 영원히 흥행하지 않고 쇠퇴한 것처럼, 슈퍼 히어로 영화도 예외가 아니며 이를 완전히 피할 수 없다.'라는 평범한 주장이다.

3.4. 과학 및 유사과학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모든 진실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비웃음을 당한다. 둘째, 거친 반대에 부딪힌다.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를 인용.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대한 과학자의 새로운 발견이 비웃음을 당할 수는 있지만 비웃음을 당한다고 그것이 위대한 과학자의 새로운 발견인 것은 아니다.
  • 한국의 반동성애 단체들에서 CDC 보고서를 비롯, 에이즈(HIV)와 남성간 항문성교에 대해 다룬 다양한 논문과 보고서의 허리 부분만 발췌하여, '남성과 남성 간의 항문성교는 에이즈 감염률을 높이니, 동성애를 금지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CDC 보고서 및 다른 논문의 결론은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채로운 방안을 강구해야 하며, 동성애를 탄압하거나 반동성애 법을 제정하는 것은 오히려 에이즈 감염률을 높인다'인 것이 아이러니.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는 내용이 자주 인용된다. 이 구절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많은 사람들에게(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책 내용을 잘못 이해한 과학자들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도킨스는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며, 책 내에서 이를 여러 번 강조한다.
  • 토머스 에디슨의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구절은 문맥을 무시한 인용의 사례로 역 인용되는 다소 특이한 사례이다. 처음에 이 구절은 노력을 강조하는 말로 쓰였으나 어느 순간 누군가가 이거 아님. 앞뒤 문맥 보면 오히려 영감 없으면 노력이 쓸모 없다는 의미임. 이라고 주장했으나 오히려 앞뒤 문맥을 보면 노력을 강조하는 말이 맞는다. 자세한 건 토머스 에디슨 본인 항목을 참조하자.

3.5. 역사학

  • 김현구 임나일본부학자설
  • 김대중 직선제 반대발언 모함사건
  • 5.18 민주화운동/왜곡 세력은 김영택전 기자 겸 박사의 증언을 교묘하게 편집해서 폭동설이나 북한간첩설로 조작하기도 한다.
  • 필사즉생행생즉사 -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병법서 오자병법의 구절이자, 충무공 이순신 명량 해전 직전에 부하들에게 훈시하면서 사용해서 유명해진 표현. 흔히 이 표현을 무작정 죽기로 싸우면 된다는 정신력이나 의지드립으로 오용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엄연히 병법, 즉 현실적인 군사 전략전술의 내용이다. 오자병법에서는 이 구절의 바로 다음 내용에서 '군사의 가장 큰 병폐는 주저함이며, 군을 재앙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구심을 갖는 것에서 비롯한다.'(用兵之害 猶豫最大 三軍之災 生於孤疑)라고 말한다. 이 필사즉생행생즉사의 올바른 해석은 무작정 목숨 걸고 싸우라는 뜻이 아니라, '일단 작전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로 결정했으면 우물쭈물 주저하지 말고 즉시 실행해야 한다.'라는 내용에 가깝다. 이순신 장군이 이를 인용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혹자는 이순신 장군의 이 훈시를 '죽고자 하면 (내가) 살(려줄 것이)고, 살고자 하면 (내 손에) 죽는다'로 해석하면 된다고 카더라

3.6. 정치

특히 정치인이 특정인의 발언을 문맥과 상관없이 인용할 때가 많다.
  • 맹자 천하무적(天下無敵) - 원래는 왕도를 강조하는 말로써 어진 정치를 하면 자연스레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어진다는 뉘앙스였으나 오늘날에는 아무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세상에서 대등한 자를 찾아볼 수 없는 압도적인 힘, 능력을 표현할 때 쓰인다.
  • 노자 대기만성은 원래 큰 그릇은 채워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 정조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덕일을 비롯한 노론 음모론자들은 이 발언이 "정조는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고, 노론을 자신의 원수로 규정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내가 비록 사도세자의 아들이긴 하지만 영조께서 효장세자의 아들로 만들어 놓았으니 그것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라는 원칙론에 가까운 주장이었다. 실제로 일부 인사들이 즉위 직후 사도세자의 신원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정조는 오히려 이들을 아첨하는 부류로 규정하고 처벌했다.
  • 커티스 르메이의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 '석기시대' 드립과 더불어 르메이의 가장 유명한 발언. 이 때문에 르메이는 잔혹한 전쟁광이란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르메이의 의도는 '민간인이고 뭐고 적대국 소속이면 죽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민간인 또한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총력전이란 개념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다. 특히 당시 일본 제국은 더더욱 그러했다.
  • 이승만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모함설 - "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가 모함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승만 본인이 입으로 직접 "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서울은 안전합니다"라고 대놓고 발언한 것은 아니라는 자료들을 인용한다. 하지만 정확히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방송 자료를 여러 개 걸쳐서 확인해보면 이승만 정부가 계속 기만방송과 서울사수를 의미하는 발언으로 돌려서 말한 것은 사실이다. 이들 중 일부만 잘라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맥을 무시한 인용이다.
  • 존 F. 케네디 취임 연설문 중 "미국민 여러분은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하십시오.". 한국의 보수우익 세력은 이를 "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말고 시키면 군말없이 따라라"로 받아들이고, 들먹였지만, 사실 저 발언은 미국인들의 정치참여를 독려하는 발언이었다. 한국의 보수우익은 케네디의 발언을 정 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애당초 이 사람은 국가주의와 거리가 먼 리버럴인데, 한국에서는 이 말이 국가주의의 표본으로 왜곡되어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 또 이 사람.. 존 F. 케네디가 인용한 단테의 신곡 문장 - 평소 케네디는 연설에서 단테의 신곡을 인용하며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time of moral crisis preserve their neutrality."(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라는 문장을 즐겨 인용했는데 정치적 중립이나 양비론을 비난할 때 자주 쓰인다. 그러나 이는 오역으로, 중립을 지킨 자들은 지옥의 가장 특별한 곳으로 즉, 가장 나은 곳에 간다는 뜻인데, 이를 누군가 가장 낮은 곳으로 오역했다. 문제는 단테의 지옥은 낮은 층으로 갈수록 중죄라는 것으로 이것이 가장 나쁜 곳으로 오역이 됐다. 신곡 항목 참조.
  • 1998년 최장집 교수에 대한 월간조선의 사상검증 논란 - 최장집의 글 중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한국전쟁은 북한이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란 문구를 가지고 최장집이 북한의 남침을 찬양했다고 몰아갔다.
  • 노무현 제가 뭐 경제 살리겠다고 말이나 했습니까 - 경제 살리겠다고 안 했으니 경제를 안 살려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제를 살린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로 발언한 것이지만 반대파들 사이에서는 노무현의 망언 수준으로 여긴다. 참고로, 뒤의 대사는 "말 안 했지만은, 살려야지요."이다.
  • 이명박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 자신에게 쏟아진 의혹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말이지만 듣기에 따라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같은 느낌으로 들리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 버락 오바마 You didn't build that - 사건 당시에도 오바마의 지지자들은 이 어구가 문맥에 상관없이 인용되었다고 주장했다. 롬니를 비롯한 공화당 측에서는 잡스나 포드가 각각 애플이나 포드 자동차를 스스로 창립 못 한거냐고 비판을 날렸다. 즉 공화당 측은 기업가들이나 혁신가들의 역량을 무시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반면 오바마나 민주당 측에서는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낸 것이라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공화당 측은 개인의 역량을 무시한 발언으로 보는 반면, 민주당 측은 기존 인프라와 사람들 사이 협동의 역량으로 보는 발언이다.
  • 박근혜 고추로 맨든 가루 굉장히 귀하네요 - 앞 장면을 보면 고춧가루를 팔던 상인이 "다 국산 고추가루이다"라고 말하면서 박근혜가 "(중국산 고춧가루)에 비해 굉장히 귀하다"라는 뉘앙스로 표현한 것인데, 박근혜의 여러 구설수가 워낙 많은지라 애꿎은 이 장면까지 왜곡되어버렸다.국산 고춧가루가 중국산보다 귀한지는 모르겠지만

3.6.1. 투표독려

  • 플라톤의 "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사람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는 일반 대중의 정치 참여를 독려한다기보다는 사회 엘리트 계층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것에 가까웠다. 쉽게 말해서, " 너희들 같은 고급진 사람들이 정치를 외면하다간 너희보다 덜 고급진 사람들이 정치를 맡게 되니까 정치에 꼭 참여하라." 정도의 뉘앙스. 실제로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고 여겨왔으며, 소수의 철학자가 통치하는 철인정치를 주장한 사람이다.
  • 프랭클린 애덤스의 "선거 투표는 누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누가 싫어서 하는 투표에 그 승패가 결정된다" 는 흔히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자는 의미로 선거철에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후보를 찍어주지 못하는 선거 시스템상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다. 다수당 둘과 소수당 몇몇이 있는 상황에서 소수당 지지자가 모 다수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반대파 다수당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정확하다.

3.7. 철학

  • 파스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 일단 파스칼은 수학자나 철학자로서 유명하지만 사실은 철학자라기보다는 당대의 저명한 신학자였다. 파스칼은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팡세에 써진 해당 글의 원문부터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말을 축약한 말이다. 애초에 해당 문장이 써진 파스칼의 팡세부터가 철학을 다룬 작품이 전혀 아니고, 인간의 지성을 칭찬하는 글도 아니며, 오히려 시대적 상황에 맞은 매우 종교적인 작품으로, 실제 의도는 종교에 대해서 비판하는 당대의 철학자들, 합리주의 철학자인 데카르트, 몽테뉴들에게 너네가 생각할 줄 알아봐야 갈대에 불과하니까 하나님을 따르라는 글이고, 이렇게 당대의 인간들을 비판한 작품이다. 이 문장의 경우 생각하는이 강조되어 있는데, 생각을 할 수 있는갈대에 불과하다.라는 부분이 사실 중심내용.
  •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 개인의 이기심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식의 자본만능주의를 상징하는 너무 유명해진 관용구이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유명한 자유주의 경제학자[7] 밀턴 프리드먼 등은 실제로도 그런 식으로 인용하지만, 실제의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자이자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윤리철학자였으며, 윤리학을 다룬 도덕감정론 등을 저술하였다. 실제 '보이지 않는 손' 발언도 도덕감정론 같은 아담 스미스의 사상 전체를 따져서 해석하면 어디까지나 "누구든지 정의의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신중과 정의의 범위 안에서 자기이익 추구는 비난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다."라는 발언 아래에 합법적인 행동+정의로운 행동+신중한 행동이라는 윤리학을 기본으로 깔아두고서 해석해야 하는 것으로, 단순히 '자본주의가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발언이 아니다.[8] 특히 스탠퍼드 경영학 교수이자 2010년 이후로 가장 유명한 경영학자인 제프리 페퍼 등은 실제 아담 스미스를 비롯해서 고전 경제학은 윤리학과 함께 발전했는데 현대 경제학은 윤리와는 괴리되어 있다며 비판하기도 하였다.[9]
  •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은 신학의 시녀이다' - ' 시녀'라는 개념과 중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철학은 신학 따까리나 하는 격이 낮은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녀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시녀는 결코 천한 개념이 아니었다. 아퀴나스의 이 표현은 물론 신학이 철학보다 더 중요하긴 하지만, 철학은 그 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아퀴나스는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정치학과 군사학의 관계에 빗대어서 설명을 하였는데, 군사학이 중세 시대 매우 중요한 학문이었듯, 철학 역시도 그러하였다. 군사학 없이 무슬림과 싸운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흠좀무하다.
  • 흔히 연장자에게 복종하라는 의미로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많이 들먹인다. 장유유서는 삼강오륜(三綱五倫) 가운데 오륜의 하나로서, '오륜(五倫)'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倫]에서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五] 원칙을 말한다. 오륜은 유교의 오상(五常)과 서로 호응하는데, 오상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에서 '예'가 장유유서에 대응한다. '예'란 위와 아래의 구별이 있고, (가족 간의 나이, 항렬 같은) 서열에 따른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어 세상이 무질서에 빠지고 혼란해진 것은 여러 제후국들[幼]이 주나라[長]를 존중하지 않고 서열관계를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춘추시대 당시의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예(禮)'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그 '예'로, 개인의 욕심을 억제하고 '예', 즉 위아래 서열에 따른 '질서'[序]를 회복하자는 뜻이다. 이를 보아 알 수 있듯이, '장유유서'는 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말과 행동에 무조건 정당성이 부여되고 나이 적은 사람이 이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지위ㆍ서열ㆍ가족 간의 항렬 등의 위아래와 높고 낮음을 구별하고 행동할 때 '차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유유서'에는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이를 존중ㆍ배려하라는 뜻은 있어도 '복종'하라는 뜻은 없다.
  • 신은 죽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 - 일단 니체 마르크스가 종교에 매우 비판적이었던건 사실이나, 문맥 자체는 종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보다는 그 종교에 의지하게 만드는 사회를 비판하는 것에 더 가깝다. 무신론자들도 이 비판에서 예외가 아니다
  • 말은 날아가고 글은 남는다 - 일반적으로 말의 휘발성과 글의 불멸성을 뜻하는데 사용하지만 실상은 정반대. 말은 움직여 의미를 전하지만 글은 고정되어 멈춘다는 뜻이다. 이는 문맹률이 높은 시대적 상황에 기인한다. 글은 읽을 수 없으니 버려지지만 말은 다른 이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
  • 예술은 폭발이다 - 일본의 화가인 오카모토 타로가 한 말로, 본래의 의미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간마다 폭발하듯이 치열하게 사는 방식 자체가 예술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루토 데이다라를 비롯해서 일본산 창작물에서는 이를 마치 '폭발이 곧 예술'이라는 폭탄마들의 주장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3.8. 인터넷

  • SNS 허세글, 명언집에 있는 명언 역시 이 오류를 저질렀을 수 있다.
  • 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 비디오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 - 이버트 본인은 게임에 대해 문외한도 아니고 꽉 막힌 보수 성향도 아니다. 이버트의 논지는 게임은 ' 예술'보다는 ' 스포츠'의 형태에 더 가깝다는 주장이다. 물론 게임의 분류에 대해선 게임과 예술 문서에서처럼 상당한 논의가 필요하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버트는 게임을 무시하지 않고 단지 방향과 성격에 대한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표현이 잘못 인용되어서 마치 이버트가 게임은 '열등'해서 예술이 될 자격이 없다고 비하한 것처럼 인터넷에 퍼지기도 했다. 이버트의 주장 원본

3.9. 기타

  • 손님은 왕이다 - 이 말을 들먹이며 손님은 항상 직원들 위에 있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해 진상을 부리는 작자들이 있으나, 실제로 저 말을 만든 세사르 리츠가 모시는 손님들은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왕족, 귀족들이었다.

4. 관련 문서




[1] Digesta 1.3.24. 테오도르 몸젠 편집. [2] Publius Juventius Celsus, 67 ~ 130, 고대 로마의 법학자. [3] 사탄이 야훼에게 "욥이 당신을 섬기는 것은 배부르고 등 덥게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다 뺏고 고통스럽게 하면 당신을 욕할 것이다."라고 하며 욥을 모함했다. 이에 여러 차례 고난을 줬음에도 야훼를 계속 섬기자 사탄이 "그의 뼈와 그의 살을 쳐 봐라"라고 해서 욥은 심한 부스럼을 얻었고, 그걸 위로하려 온 친구들이 한 말이 저것이다. [4] 재미있는 건 현대 물리학에서도 시간과 공간이 우주의 탄생과 함께 생겼다고 본다는 점이다. [5] 아우구스티누스만 해도 신플라톤주의와 마니교의 교리에 통달한 지식인이었고, 중세 스콜라 철학은 아랍에서 유입된 그리스 고전 철학자들의 자연철학을 중요하게 다뤘으며, 종교개혁의 본격적인 기수 역할을 했던 루터나 칼뱅 등의 종교개혁가들 역시 스콜라 철학과 르네상스 사상사의 영향을 받은 인문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신학이 다루는 영역과 경험, 관찰로 파악 가능한 자연과학적 영역을 구분하여 다루는 일에 능숙했다. 오히려 이 시기 이후 교파간의 대립, 교조화 등으로 한창 피어나는 자연과학에 딴지를 거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6] 이 말이 나온 앞뒤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도박하는 사람은 불확실하게 따기 위해서 확실하게 내기를 한다. 그는 불확실하게 유한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하게 유한한 것을 내기에 거는데 이는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내기에 거는 이 유한과 득의 불확실의 간격은 무한하지 않다. 그것은 거짓이다. 진실로 득의 확실과 잃음의 확실 사이에는 무한의 간격이 있다. 그러나 득과 실의 운의 비율에 따르면 득의 불확실은 우리가 내기에 거는 것의 확실에 비례한다. 그래서 양쪽의 운이 같다면, 승부는 동등하게 진행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내거는 것의 확실은 득의 불확실과 같은데, 그 간격이 무한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득과 실의 운이 같고, 따야 할 게 무한인 노름에서 유한을 걸어야 할 때 우리의 제안은 무한한 힘을 갖게 한다." [7] 그런데 프리드먼은 엄밀히 말하면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국내에서 흔히 고전학파=자유주의를 같은 의미로 쓰다보니 이런 오해가 나오는 것인데 프리드먼은 시장방임주의자가 아니며 오히려 엄격한 규칙에 의한 통화정책을 사용해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관점은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다. [8] 다만 이 발언의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상술한)도덕적 요소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간혹 보이곤 한다. [9] 배종석 저 인적자원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