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26 00:56:47

파이드로스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
3.1. 뤼시아스의 글과 소크라테스의 1차 연설 : 에로스가 훌륭하지 않은 이유3.2. 소크라테스의 2차 연설('다시 부르는 노래') : 에로스 찬미3.3. 훌륭한 연설이란? : 진정한 수사학 기술3.4. 문자 비판과 결말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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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이드로스는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이다. 부제는 ' 에로스에 관하여'[1]

2.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파이드로스[2]
뤼시아스[3]

3. 줄거리

3.1. 뤼시아스의 글과 소크라테스의 1차 연설 : 에로스가 훌륭하지 않은 이유

소크라테스는 길을 가다가 파이드로스를 만나 반가워하며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파이드로스는 방금 에피크라테스의 집에서 머무르고 있는 뤼시아스의 가르침을 받고 오는 길인데 그가 추천한대로 성 밖 교외로 나가 산책하려 했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뤼시아스가 유혹받는 소년[4]에 관한 연설을 했는데 그 내용인 즉슨 사랑하는 사람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욱 잘 대해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뤼시아스의 주장에 흥미를 느끼고 같이 따라다니며 듣겠다고 한다. 파이드로스는 자신이 뤼시아스의 주장을 제대로 소화했는지 의문이라고 뜸을 들이나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의 성격상 분명 뤼시아스에게 감명받다 못해 질문을 던지다가 연설 내용이 담긴 책 한권을 받아서 탐독했을 것이 뻔하다고 하며 얘기해달라고 조른다. 파이드로스는 자기 화술이 그 연설을 재현할 수 있을 지 의심이 간다고 하나 소크라테스는 니 품 속에 책 있는거 다 알고있으니까 자신을 상대로 연설 연습을 할 생각 말고 뤼시아스의 견해를 알려달라고 한다. 파이드로스는 역시 소크라테스를 속이기는 무리였다고 하며 일리소스 강을 걸으며 앉아서 책을 읽을만한 괜찮은 곳을 찾자고 한다.

파이드로스는 아름다운 일리소스 강에 발을 첨벙대고 걸으며 그러고보니 여기가 북풍의 신 보레아스가 오레이튀이아를 납치했다는 신화의 장소 아니냐고 소크라테스한테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이 근방은 맞는데 2~3 스타디온 정도 남쪽이고 그곳에 보레아스 제단이 하나 있다고 답한다. 파이드로스가 이 신화가 사실이라고 믿냐고 묻지만 소크라테스는 오레이튀이아가 북풍에 떠밀려 절벽에서 추락사했다는 식으로 신화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이는 영리하고 고되지만 운없는 시도라고 평하며 그런 이들에겐 고르곤, 켄타우로스, 페가수스 같이 설명해야 할 것이 쌓여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자기 자신을 알아내는 데에도 바빠 신화의 진위를 알아낼 시도를 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5]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는 강가에 있는 플라타너스 밑에 앉아 책을 읽어보기로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찬미하고 파이드로스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 답지 않게 모든 것을 처음 본 외지인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나무들을 구경하는 것보단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성벽 밖으로 많이 안나와봤다고 하며 어서 책을 읽어보라고 재촉한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사랑하는 이는 욕구가 식으면 돌변할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 이는 한결같다. 사랑하는 이는 자신이 해준 것으로 보상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이는 그럴 일이 없다. 사랑하는 이는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남들에게 함부로 떠벌리지만 사랑하지 않는 이는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이는 다른 이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받는 이를 버릴 수 있고 심지어 필요하면 미워할 수 있지만 우정은 그렇게 져버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는 질투로 인해 사랑받는 이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에 훼방을 놓지만 사랑하지 않고 친애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이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장려한다. 사랑하는 이는 욕망에 잠식된 상태이기 때문에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판단력을 되찾으면 사랑받는 이를 버릴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잘 대해주는 것은 걸인에게 음식을 주는 것과 같다. 자기 욕망에 충실해 은혜를 원한으로 갚을 수 있는 걸인보다는 진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이에게 베푸는 것이 좋다.[6][7]

파이드로스는 연설에 진심으로 매료되어 책 내용을 환희에 차 읊는다. 소크라테스도 듣기 좋은 글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내용도 훌륭하다는 파이드로스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못한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는 같은 주제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반복할 뿐 내용의 깊이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사랑에 관한 일화가 있는데 사포나 아켈로오스 같은 서정시인[8]이었는지 아니면 산문작가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이드로스에 맞장구치며 이 뤼시아스의 연설을 훌륭하다고 인정해버리면 자신에게 그 일화를 알려준 이를 져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이드로스는 그렇다면 뤼시아스보다 더 나은, 소크라테스가 아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나 소크라테스는 말을 안해주려는 듯 내빼며 파이드로스가 마치 자기 소년 애인이 모욕당한 것처럼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힐난한다. 이에 파이드로스가 말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소크라테스와 이야기를 안하겠다고 협박하자 사람들을 쑤시며 검토하길 즐기는 소크라테스는 두손두발 다 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에 어떤 소년 티를 갓 벗어가는 청년이 있었다. 어떤 이가 그 청년을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 하며 접근하며 말했다. 사랑이 이로운지 그른지 따져보려는 이들은 많지만 이를 근본부터 따지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이고 사랑하지 않는 이들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같다고. 그런데 사람에게는 선천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본성과 후천적으로 길러진 올바름을 추구하는 의지가 함께 존재한다. 즐거움의 추구가 앞서면 이를 방종이라고 부르고 올바름 추구가 강하면 이를 절제라고 부른다. 식욕의 방종이 폭식이듯이 에로스는 아름다움 추구의 방종이 아니냐고 그는 말한다.[9]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잠시 뜸을 들이며 파이드로스에게 지금 문학적으로 잘 말하고 있냐고 묻고 파이드로스는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화자는 소년에게 그럼 사랑의 정의를 알아봤으니 그것이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따져보자고 한다. 사랑하는 이는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약한 이를 상대하는 것은 즐겁지만 대등하거나 강한 이는 적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는 사랑받는 이를 최대한 약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정신적으로는 소년애인이 지혜추구를 하는 것을 막고 멍청하게 만들고, 육체적으로는 나약하게 만들어 험한 상황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 사랑받는 이가 친구와 가족들과 소통하는 것을 틀어막고 사치를 제공하며 탐욕에 빠트린다.

또한 아첨꾼과 기생이 나쁘대지만 즐거움을 주는 면이 섞여있어서 치명적인데 사랑하는 이는 늙은 얼굴을 들이밀 뿐 아니라 불쾌한 일을 강요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없다. 사랑받는 이는 사랑하는 이의 사회적 후견을 목표로 이를 감내하지만[10] 그때가 되면 사랑하는 이는 이성과 분별을 되찾고 뻔뻔하게 오히려 옛 애인에게 자신이 준 것의 보상을 요구하거나 그만큼 뻔뻔하지는 않아서 채무자가 된 것 마냥 후견을 거부하고 도망다닌다. 이렇기 때문에 자기 욕구에 휩싸인 사랑하는 이 보다는 이성을 유지하는 사랑하지 않는 이를 더더욱 대접해주라고 그는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상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파이드로스는 잘 들었지만 이야기가 중간에 끊긴 것 같다면서, 비슷한 길이로 사랑하지 않는 이의 이로움도 논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너무 시적 열정에 빠져버린 것 같다면서 사랑하지 않는 자의 장점은 사랑하는 자의 단점의 정반대이니 넘어가자고 한다. 파이드로스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하며 아직 해가 중천에 떠 한낮이니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하고 해가 좀 기울면 돌아가자고 조른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가 이야기를 끌어내는 재능이 탁월하다면서 툴툴거린다.

3.2. 소크라테스의 2차 연설('다시 부르는 노래') : 에로스 찬미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갑자기 다이몬[11]이 사랑을 안좋게 평가한 방금의 이야기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했다고 한다. 에로스라면 아프로디테의 아들인데 그런 에로스 신을 모독한 것 같고 또한 자신의 이야기와 뤼시아스의 주장은 모두 훌륭한 사랑을 하는 이가 듣기엔 사랑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이가 하는 말로 들릴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히메라의 시인 스테시코로스가 헬레네를 비방했다가 눈이 머는 저주에 걸리자 '다시 부르는 노래'로 신들께 용서를 구하고 시력을 회복했다는 이야기처럼 자신도 에로스를 옹호하는 연설을 펴서 신의 저주를 피해가겠다고 한다.

방금의 모든 이야기는 광기가 나쁜 것일 때에는 옳다. 하지만 광기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증거로는, 첫째로 예언가들은 광기에 의존해 유용한 예언을 펼친다. 만물에 이름을 붙인 옛 사람들도 이를 알고 광기를 의미하는 '마니아'를 변형시킨 '마니케'라는 단어로 예언을 지칭했다. 단지 후대인들이 그런 깊은 뜻을 잊어버리고 t를 집어넣어 '만티케'라고 잘못 부를 뿐이다. 점술을 의미하는 오이오니스티케라는 단어는 어원을 분석하면 생각을 분별한다는 의미인데 만티케를 오이오니스티케보다 더욱 고급 기술로 치는 것으로 보아 옛 사람들도 분별보다는 광기를 더욱 소중히 여겼다.[12] 둘째로 신들에게 미움받을 때 광기에 기반한 예언이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13] 셋째로 사람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교육시키는 시와 문학작품은 광기 없이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14]

광기가 나쁘지 않다는 네번째 이유를 대기 전에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하고 형태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멸하고 다른 것이 움직이는 것은 그렇지 않다. 영혼은 몸을 움직이는 주체이므로 영혼의 조종을 받는 육체와는 대조적으로 불멸한다. 또한 영혼은 운동의 기원이다. 그런데 기원의 기원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영혼은 탄생도 소멸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멸성은 이렇게 증명하고, 영혼의 형태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과 닮은지를 댈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영혼은 날개달린 말이 끄는 마차에 비유하며 신화적인 설명을 시작한다. 신들의 영혼은 완벽한 말과 마부가 이끄는 마차이지만 인간의 영혼은 불완전해 운전과 말의 행동이 미숙하고 날개가 완전하지 않은 마차이다. 천계에서는 제우스를 필두로 헤스티아를 제외한 11명의 신들이 마차를 달리는데[15] 이를 통해 천계에 성스러움이 가득하고 신을 따르는 영혼들이 뒤를 따른다. 축제와 만찬의 날이 되면 신들은 천계를 떠받치는 궁륭으로 몰려든다. 궁륭은 빙글빙글 돌면서 천계 바깥을 보여주는데 그곳에는 사물의 완전한 본질이 있어 신들은 정의, 앎, 지혜 그 자체를 감상하며 만찬을 즐긴다.[16] 하지만 그곳은 완벽한 마차가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어 불완전한 영혼 중 일부는 이데아를 얼핏 보고 나머지는 만찬장에 들어가고 싶어 아둥바둥대지만 능력이 없어 궁륭 바깥에서 서로 부딪치며 서로에게 해를 가한다. 날개란 근본적으로 천상에 올라가는 힘이고 아름다움, 절제 등의 신적인 가치를 통해 자라나는 것이니 만큼 날개가 불완전하다는 건 영혼이 해로움과 악함 등의 나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17]

날개를 더이상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혼은 땅으로 떨어져 생명체의 육신에 깃들게 되는데 본질을 조금이라도 본 혼은 인간이 된다. 이데아를 가장 많이 본 혼은 지혜와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시가와 사랑을 따르는 이에게 깃들고, 두번째로 많이 본 혼은 명군이나 명장에게 깃든다. 세번째는 정치가나 유능한 가장, 사업가이고 네번째는 체육가나 의사와 같이 육체와 관련된 이이다. 다섯번째는 예언자 종교인, 여섯번째는 시나 혹은 다른 것을 모방하는 삶을 추구하는 이, 일곱번째는 장인이나 농부이다. 여덟번째는 소피스트나 선동꾼들이고 가장 이데아를 모르는 비천한 혼은 참주의 영혼이다. 영혼들은 1만년동안 환생을 거듭하며 천계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데 지혜를 사랑하고 올바른 소년애를 행하는 삶을 세번 한다면 3천년만에 영혼이 날개를 회복하고 천계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는 디케 여신의 심판을 받아 교도소에 갇히거나 다른 생명체로 환생한다. 이데아를 조금이라도 목격한 영혼만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데, 그 증거는 인간만이 사색과 상기를 통해 이데아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상기를 통해 이데아를 기억해내는 이는 인간의 영역에서 멀어지고 신의 영역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주변 인간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인데, 이것이 모든 광기중에 가장 훌륭한 광기이다. 이것이 광기가 나쁘지 않은 네번째 증거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즉 사랑을 하는 것도 이러한 훌륭한 광기의 일종이다. 절제와 훌륭함 같이 다른 이데아들은 사색을 통해서 겨우 잡아내야 하지만 아름다움은 인간 감각 중 가장 날카로운 시각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다른 좋은 것들보다 쉽게 매료된다. 아름다운 이를 본 자 중 저열한 이는 아름다움이라는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금수처럼 상대에게 달려들어 새끼를 치지만 분별있는 이는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알아보고 아름다운 이에게서 나오는 열망이라는 미덕을 온 눈으로 받아낸다.[18] 그 미덕은 영혼의 양식이 되어 망가진 날개를 다시 자라나게 한다. 날개가 자라면서 생기는 간질간질하고 때로는 아프기도 한 성장통이 사랑을 할때 생기는 여러 심정의 근원이다. 만일 그가 소년 애인과 떨어지면 날개가 자라나던 곳이 막히며 굉장히 괴로워지고 사랑받는 이와 만나게 되면 환희에 가득차 가족, 친구를 모두 생각하지 않고 애인만을 생각하게 된다. 영혼들은 천계를 날아다니던 시절에 무슨 신을 따라다녔는지에 따라 그 성품이 결정되는데, 철학자의 혼은 신들의 왕 제우스를 따르던 영혼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상대방 소년 애인이 지혜를 사랑하도록 부추긴다.

인간의 영혼을 좀 더 정확히 비유하자면 날개달린 말 두대가 끌고다니는 마차이다. 말들이 모두 완벽한 신의 영혼과는 달리 인간의 혼이 지닌 말은 한 마리는 훌륭하지만 한 마리는 나쁘기 때문에[19] 신들의 만찬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만일 그러한 영혼을 지닌 인간이 아름다운 소년을 목격하면 나쁜 쪽 말이 폭주하며 그 소년에게로 돌진한다. 마부와 훌륭한 말은 아름다운 소년이 발휘하는 아름다움에 깜짝 놀라 고삐를 잡아당겨 나쁜 말을 제압한다. 하지만 나쁜 말은 마부와 훌륭한 말이 잠에 든 틈을 타 다시 한번 소년에게 더욱 맹렬하게 달려든다. 마부는 멋도 모르고 끌려가다가 아름다움에 더더욱 깜짝 놀라 고삐를 더더욱 강하게 잡아당기고 결국 나쁜 말을 주저앉히는 데에 성공한다.[20] 즉 시행착오를 거쳐 절제를 갖춰나가야 진정 훌륭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봤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겪어본 이가 사랑을 하지 않는 이 보다 더더욱 분별력있고 소년애인에게 이롭다.

사랑을 하는 이가 주는 미덕과 훌륭함 덕분에 소년 애인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서도 사랑을 하는 이처럼 상대방과 떨어지면 어쩔 줄 몰라하고 같이 있으면 날개가 자라면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갈구하는 것이 훌륭한 사랑이다. 이러한 훌륭한 사랑에도 물론 육체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이 경우, 사랑하는 이의 나쁜 말은 분별력에 의해 참고있는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보상을 즐기고 소년 애인은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흥분하고 상대방을 원한다. 지혜를 추구하는 이의 사랑은 결국 영혼에 이로움을 더해 결국 망가졌던 날개를 부활시켜 앞에서 말한 대로 세 번의 훌륭한 삶을 거친 후 3천년만에 영혼이 천계로 돌아가게 된다. 이보다는 좀 더 세속적인 이의 사랑은 나쁜 말들끼리 친분을 맺는 것인데[21] 마부와 훌륭한 말의 절제력 만큼은 아니어도 그들의 우정 역시 훌륭하기 때문에 사후에 보상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년 애인은 사랑하지 않는 이가 더욱 이롭다는 주변의 권고를 무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편이 훨씬 좋은 삶을 사는 길일 것이다. 에로스를 찬미하는 모든 이야기를 마치며 소크라테스는 에로스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읊으며 말을 마친다.

3.3. 훌륭한 연설이란? : 진정한 수사학 기술

파이드로스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뤼시아스의 글보다 훨씬 아름답고 좋았다고 칭찬하며, 뤼시아스가 그를 이기기 위해 다시 책을 써낼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지금도 연설 대필가[22]라는 비난을 듣는다면서 자기 명예를 생각해 반박하는 글을 펴내기보단 아예 글쓰기를 그만둘 것 같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친구가 참 바보같은 소리를 한다면서 뤼시아스가 그렇게 소심하다고 생각하냐며 그런 걱정은 집어치우라고 한다. 하지만 파이드로스는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잘난척하는 소피스트 취급을 받기 싫어 글쓰기를 꺼린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런 비난을 하는 정치가들과 선동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글쓰기와 연설, 그리고 찬동자들이 거기에 따르는 것[23]이라고 주장하며 글쓰기 자체를 좋게 보지 않는 건 결국 제 얼굴에 침뱉기이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파이드로스는 듣고보니 그럴 것 같다고 납득한다.

소크라테스는 글쓰기와 연설을 하냐 안하냐보다는 그 내용이 훌륭한가가 더 중요하지 않냐면서 마침 시간도 넉넉하니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한다. 파이드로스는 이를 매우 환영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며 매미들이 울고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매미에 관련된 전설을 이야기 한다. 옛날에 무사[24]들을 처음으로 영접한 인간 중 예술에 너무 심취하여 굶어 죽은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매미로 환생해서 사람들의 연설과 시, 노래를 듣고 무사들에게 추천해준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에로스 찬미가 무사와 매미들에게 만족스러웠기를 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좋은 연설과 글쓰기에는 참과 올바름이 담겨 있어야 되지 않냐고 묻는다. 파이드로스는 혹자는 비록 그 내용이 롤바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설득하는 기술만으로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존재한다고 반문한다. 소크라테스는 만일 누군가가 말을 몰아 적을 물리치라고 윽박지르는데 말이 무엇인지 자기도 모르고 당나귀가 훌륭한 말인 줄 알면 얼마나 우습겠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진실이 담겨 있지 않은 연설이 무언가를 이룩할 수 있겠냐고 묻자 파이드로스는 분명 형편없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 한다. 소크라테스는 수사학(혹은 연설술)이 자신은 설득을 도와줄 뿐 참된 앎을 가진 채로 올바르게 써야 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자기변호를 할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수사학이 기술[25]일 때의 얘기이지 자기 생각에 수사학은 기술 없는 숙달[26]에 불과하다고[27] 하면서 이를 증명하고자 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게 수사학이란 민회 연설, 법정같은 공적인 연설, 그리고 1대1 대화에서 통용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파이드로스는 자신은 수사학 하면 법정과 민회만 생각하지 일상 대화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귀류법적 반박술의 창시자 엘레아의 제논 같은 이들은 같은 것을 비슷한 것으로도, 비슷하지 않은 것으로도 보이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는 1대1 대화에서도 이용 가능하지 않냐고 한다. 파이드로스가 동의하자, 이번에는 그렇다면 이러한 기술은 (만약 기술이라면) 닮은 것을 들이밀며 같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속임수인데 속임수는 진실을 세세히 알아야 잘 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즉 진실을 모르고 이용하는 수사학은 기술이라 부를 수 없는 종류의 조잡한 것이란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어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방금까지 했던 에로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예시로 들어가며 논의를 더 해보자고 한다. 파이드로스는 이를 환영하며 이야기를 재촉한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뤼시아스 책의 첫 머리를 읽어달라 부탁한다. 파이드로스가 낭독을 시작하자 소크라테스는 갑자기 파이드로스를 멈추며 글의 문제점이 보인다고 한다. 돌이나 나무처럼 모두가 그 단어가 무엇인지 동의하는 것도 있지만 절제와 정의처럼 사람마다 해석에 이견이 갈리는 개념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랑은 명백히 후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주장하기 이전에 사랑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는게 필수 아니냐고 하며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게 아까 읽은 부분을 다시 읽어달라고 한다.[28] 파이드로스가 다시 낭독을 하자 소크라테스는 뤼시아스의 글이 사랑에 대한 정의를 건너뛰고 결론부터 적어놓은 것만 같다며 혹평한다. 그리고 논리의 구성과 순서가 짜임새 있지 않은게 미다스 왕릉의 비문이랑 비슷하다고 한다. 파이드로스가 뤼시아스가 모욕당하는 것 같다며 기분나빠하자 소크라테스는 더 할말 많지만 일단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번엔 자신이 했던 두 이야기를 논하며 사랑이란 광기의 일종이고 광기를 예언술, 비의술, 창작술, 사랑이라는 네 부류로 나눠 그 중 최고의 광기를 사랑이라고 논하지 않았냐고 한다. 파이드로스가 매우 남자답고 훌륭하게 논했다고 답하자 소크라테스는 모음과 나눔이라는 도구를 통해 개념을 다뤘기 때문에 정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랑의 여러 특징과 사례를 모아 광기의 일종으로 정의내리고 광기라는 개념을 다시 세세히 나눠 사랑을 구해낸 뒤 한 번은 비판거리를 찾고 한 번은 칭송할 거리를 찾아냈다는 것이다.[29] 그리고 파이드로스에게 이러한 모음과 나눔을 제외한 연설을 위한 기술이 더 있나고 묻는다. 파이드로스는 많은 소피스트 들이 이를 다룬다며 매우 많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 히피아스 등이 주장한 여러 연설과 관련된 잡기술들(적당한 길이로 논해라, 서론 - 본론 - 주장 - 근거 순으로 배열해라...)을 논하며 자기 눈에는 날실의 틈이 벌어진 것처럼 짜임새 없는 것들 투성이인데 보이지 않냐고 묻는다. 파이드로스가 그냥 설명해달라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예시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한다. 만일 파이드로스의 친구 에뤽시마코스[30]에게 어떤 이가 찾아와 자신이 사람의 몸 상태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어떤 원리냐고 묻자 그건 모르고 아무튼 자기 말은 사실이며 자신에게 배운 이들 모두가 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하겠냐고 묻는다. 파이드로스는 분명 의술을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약을 구해와서 설치던가 아니면 미친 이가 책만 읽고 난동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할거라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어서 누군가가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에게 시와 비극을 쓸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것이 전체의 짜임새를 조정하는 것과는 관련없는 것 뿐이라도 마찬가지 일 거라고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진짜 전문가들은 그가 미쳤다고 말하지 않고 부드럽게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 이전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라고 답할거라고 한다. 마치 악기의 고음과 저음을 낼 줄 아는 이가 그것을 가지고 화성학을 마스터했다고 으스댄다면 화성학 전문가들이 말할 법한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페리클레스같은 위대한 연설가들에게 소피스트들의 저작들을 들이밀어도 비슷한 답이 올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파이드로스가 그렇다면 연설과 글에 필요한 진짜 기술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절대 아니고 수다와 자연에 관한 고상한 지식들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페리클레스 자연철학 아낙사고라스에게 이러한 것들을 배우고서야 훌륭한 연설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것들은 의술과 비슷하다고 비유한다. 몸에 관한 것을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의술이라면 혼에 관한 것을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연설에 필요한 기술이고 의사들이 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훌륭한 이야기와 자연에의 영감을 처방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게 전체를 알아야 부분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냐고 묻고 파이드로스는 히포크라테스에 동의하는 이라면 동의 안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답한다.[31]

소크라테스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것인지 아니면 복잡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것이라면 이것의 원리는 무엇인지, 복잡한 것이라면 거기에 더해 요소들 간의 짜임새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설의 기술에서 그 대상은 영혼이고, 또 기술의 목적은 혼을 설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기술이라면 영혼의 구조와 작용, 그리고 어떤 영혼을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지[32]를 다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이러한 요소들이 들어있지 않다면 그러한 수사학은 진정한 기술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의 수사학 기술 중에 이를 다루는 경우가 있었냐고 묻자 파이드로스는 없었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에 더해 늑대들의 주장도 들어봐야 한다면서 소피스트들의 예상되는 변론을 언급해 논박하고자 한다. 테이시아스 같은 소피스트들 말로는, 이렇게 깊게 원리적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고 법정 등지에서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그럴듯 함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아까 논했던 속임수란 진실을 알아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를 반박한다. 이렇게 참된 수사학에 관한 논의를 마치고 글쓰기란 적절한 기술인지, 어느 때에 적절한 기술인지를 논의해보자고 한다.

3.4. 문자 비판과 결말

소크라테스는 이집트 신화를 들어 논의를 시작한다. 옛날, 토트[33] 신이 수학, 천문학, 놀이, 문자 등을 발명했다. 토트는 테베에서 상이집트를 다스리던 타무스 왕에게 자신이 발명한 이런저런 기술들을 소개하며 이집트인들에게 널리 퍼트리라고 했다. 타무스가 그 기술들의 장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토트는 이를 상세히 설명했고 타무스는 자신이 생각한 장단점을 이야기했다. 그러던 어느날, 토트가 문자를 가져와서 이를 잘 이용하면 사람들의 기역을 돕고 지혜를 향상시킬 수 있을거라며 지혜와 기억의 약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소개했다. 하지만 타무스는 사람들이 문자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기억력을 기르는 것을 게을리 해 오히려 암기력이 떨어질 거라며, 기억의 약이 아닌 기억 환기의 약일 뿐이라고 비판했다.[34] 또, 문자는 진리가 아닌 지혜로워 보이게 하는 의견만을 담고 있기 때문에 문자로 공부한 이 자신이 지혜로운 줄 알 뿐이고 가까이 하기에 좋지 않다고도 한다. 그리고 글에서 기억 환기 이상의 무언가 가르침을 기대하면 효과가 없다며 뤼시아스의 글을 은근히 비판한다.[35]

파이드로스는 타무스 왕이 틀린말을 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글이란 그림과 같아서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대화를 걸면 답을 못하고, 새로운 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이미 아는 것을 환기시킬 따름이라고 한다.[36] 때문에 사람들이 오독하던가 논쟁 거리가 있으면 글이 직접 답변하지 못하고 그 글을 쓴 이가 나서야 한다고도 한다. 이에 대비해 사람들의 혼에 기록하는 것, 즉 구술은 직접 사람들을 일깨우고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구술은 성실히 일년내내 힘을 기울이는 농사와 같고, 글쓰기는 아도니스 기념 축제를 하는 여인들처럼[37] 진지하기 보단 놀이나 축제에 가까운 가벼운 일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 훌륭한 것을 가르치는 이라면 구술로 깨우쳐야 하고 글쓰기는 기억을 잃어가는 말년에 심심풀이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드로스가 그래도 글쓰기는 다른 놀이들보다 훨씬 훌륭한 놀이 아니냐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앞에서 논의한, 진실을 담고 변증술을 적절히 써 영혼을 이해해 설득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하다고 동의한다. 그러면서 뤼시아스의 글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또 비판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이라면 무릇 글을 쓰더라도 훌륭한 내용을 담아서 쓰고, 그럼에도 그것이 천성적으로 가볍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게 뤼시아스한테 간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꼭 하라고 한다.

파이드로스는 소크라테스에게도 비슷한 친구 이소크라테스[38]가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는 훌륭한 철학의 자질이 보인다고, 아직 젊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옳은 길로 들거라 말하지만 그건 그렇고 이 이야기를 말해주긴 할거라고 한다. 파이드로스는 수긍한 후 해도 기울었으니 이제 슬슬 떠나자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헤르메스의 아들 에게[39] 자신과 파이드로스가 진정한 수사학 기술을 갖추고 지혜를 사랑하는 이가 되기를 비는 기도를 드리며 이야기를 마친다.

4. 여담

< 프로타고라스>, < 향연>과 함께 플라톤 대화편 중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대화편으로 여겨진다. 일리소스 강변의 풍경 묘사와 단어 선택 등에서 서정시의 영향이 두드러지고, 사랑을 신화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굉장히 아름답다고 칭송받는다.

후반부에서 올바른 연설과 글의 수사학을 다루며 앞뒤가 들어맞는 글의 짜임새와 순서 등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앞부분의 에로스 논의와 초반의 배경 설명 등에서 플라톤의 의도를 찾는 연구가 활발하다. 대부분의 플라톤 대화편에서 진행되는 연구이지만 파이드로스는 특히 본편 내에서 효과적인 설득을 위한 짜임새있는 글쓰기 방법을 주장하기 때문에 더더욱 강하다.

같은 중기 대화편인 향연에서 이미 다룬 에로스라는 주제를 왜 또 다뤘나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다.[40] 글의 짜임새를 보여주기에 사랑이라는 주제가 가장 적당했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와는 별개로, 향연과 파이드로스의 에로스관을 비교 대조하는 연구도 많이 진행중이다. 한편 후반부 수사학에 관한 논의는 <고르기아스> 전반부와도 겹친다.

마지막 국면에서 당대엔 신기술이었던 문자와 기록을 비판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현대의 바보상자, 디지털 치매 등의 신기술 관련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플라톤 대화편 속 등장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 소크라테스는 저작을 남기지 않았는데, 파이드로스에 등장한 문자 비판이 플라톤의 발상이 아닌 실제 소크라테스의 사상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플라톤 또한 대화편이라는 저작을 남겼지만 산문이 아닌 대화편의 형식을 취하고, 특히 초기 대화편에서 아포리아를 통해 결론 없이 끝낸 이유가 여기서 지목된 기록의 단점을 최대한 줄여보고자 하는 의도가 존재한다 여겨지기도 한다. 그저 지식을 받아들일 뿐이 아니라 대화편을 읽고 독자가 직접 생각해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1] 고대 그리스에서 에로스라는 단어는 신화 속 신 뿐만이 아닌 성애라는 개념 자체를 일컬었다. 개념이 의인화되며 다신교 신격으로 숭배받은 경우이다. [2] 사랑이라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향연에서 첫번째 연설을 행한 이로 등장한다. 프로타고라스에서는 히피아스 추종자로 짤막하게 등장한다. 실존인물 파이드로스는 알키비아데스 스파르타 망명을 초래한 신성모독 혐의 사건때 연루되어 망명을 떠나나 30인 과두정이 무너지고 복귀한 민주정이 내린 대사면령으로 아테네로 돌아온다. 대화편 내에서는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 열광하고 의술과 신화, 수사학에 관심이 많은 이로 묘사된다. [3] 당대의 유명한 연설가이자 연설문 대필가. 형이 30인 과두정에게 처형당하나 민주파 트라시불로스를 지원해 과두정과 크리티아스를 몰아낸 후 복수를 위해 고발 연설을 진행하였다. 후대에 아티카 10대 웅변가로 불린다. 대화편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의 저작과 거기 담긴 주장이 주제를 이끌어간다. 플라톤은 뤼시아스의 수사 기법 중 과장술을 비판하고자 이 대화편에서 그를 비판 거리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4] 고대 그리스에서는 성인 남성과 어린 소년간의 소년애가 보편적이었고 이성애보다 더욱 고귀하게 취급받기도 하였다. [5]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가 신화에 관심이 많음을 눈치채고 에로스에 관한 두번째 이야기에서 신화적인 설명을 동원한다. 후반부에 훌륭한 수사학을 논하며 설득하고자 하는 혼의 성질을 파악해 이에 걸맞는 설득술을 써야 한다는 점을 든 것으로 보아 소크라테스를 훌륭한 연설가로 묘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6] 당대에 성행한 소년애를 다루긴 했으나, 현대에도 자주 이야기 되는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연애관과도 맥이 닿는다. 소피스트들의 현실주의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을 묘사한 장면이다. 이 대화편은 소크라테스의 두번째 연설에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이러한 현실적이고 냉정한 에로스관을 비판한다. [7] 실제 뤼시아스의 저작이라는 근거는 없고 플라톤의 창작일 가능성도 충분해 이에 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8] 이 대화편 내에 전반적인 표현이나 아름다운 자연 풍광 묘사, 신화적인 설명 등에서 서정시의 영향이 짙게 드러난다. [9]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마치 중후반부에서 갑자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뤼시아스의 글과는 달리 옛 이야기의 도입부처럼 시작한다. 후반부에 연설과 글에는 올바른 순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뤼시아스를 폄하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는 플라톤이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10] 고대 그리스의 소년애 관습은 소년애인이 18세가 되면 성적인 관계를 끝맺고 사회적 후견인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11]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자기 마음속에 다이몬이라는 신령이 있어 잘못된 행동을 할때마다 가로막는다고 주장한다. [12] 이 대목에서 보이는 어원 분석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으나 참신하다. 다른 대화편 크라튈로스가 이러한 언어 분석을 주요 주제로 삼는다. [13] 실제로 그리스 신화의 설화중에는 이러한 주제의 이야기가 많다. [14] 광기를 예언술, 비의술, 창작술, 그리고 후술될 사랑으로 나눈다. [15] 헤스티아는 올림포스에서 신들의 거처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같이 달리지 않는다. [16] 플라톤 중기대화편의 핵심 요소인 이데아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이다. [17] 비슷한 시기의 대화편 향연에서도 사랑(에로스)를 신화적으로 찬미한다. 다만 영혼을 마부와 말들로 나누어 비유하는 파이드로스와는 달리 향연에서는 혼을 나누어 묘사하지 않는다. [18] 참고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번식이 목적인 결혼을 통한 이성애보다는 사랑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성인 남성 - 미소년 간의 소년애를 더욱 숭고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존재했다. [19] 훌륭한 말은 인간이 지닌 선과 미덕을, 나쁜 말은 인간이 지닌 악덕을 의미한다. 즉 영혼을 마부, 훌륭한 말, 나쁜 말로 나눈 것인데 국가에서 비슷하게 영혼을 셋으로 나누어 지혜(= 마부), 기개(= 훌륭한 말), 욕망(= 나쁜 말)으로 구성되었다고 설명한다. [20] 사랑을 거듭하면서 성숙해지는 과정을 비유한 것이다. [21] 철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 사이의, 좀 더 육체적인 관계와 쾌락이 중시되는 관계를 의미한다. [22] 당대에 실제로 흔했던, 자기 연설을 나서서 못하고 대필로 벌어먹고 산다는 비난이다. [23]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찬동자가 따르는 정치 연설을 비극 경연대회에 비유하며 아테네 민주주의를 은근히 비꼰다. [24] 영어로는 뮤즈. [25] 그리스어 테크네(techne) [26] 테크네가 아닌 모방에 불과한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플라톤 철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27] < 고르기아스> 전반부가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28] 대상의 정의를 모호하게 하여 논의를 의도대로 왜곡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29] 모음(synagoge)과 나눔(diairesis)은 플라톤적 변증술(dialetike)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이다. 이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적 대화법을 발전시켜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며 국가에서 이데아에 닿기 위한 교육법으로 이러한 변증술이 제시된다. [30] 파이드로스의 의사인 친구로 < 향연>에서 사랑을 의술에 비유하는 연설을 펼친다. 파이드로스는 대화편 초반부터 의술과 건강에 관심을 드러내는데 신화적인 설명을 동원한 것처럼 의술 비유 또한 청자의 성향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31] 역시 의술에 대한 파이드로스의 관심을 드러내고 소크라테스가 이를 고려한 비유를 하는 장면이다. [32] 즉, 상대방의 수준과 관심사에 맞춰 말을 해야 함 [33] 본문에선 그리스식으로 변용된 테우트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34] 문자와 책이 지성의 상징이 된 현대에 보기엔 생뚱맞을 수 있으나 실제로 문화인류학계에서 원시부족을 조사한 결과 문자 의존으로 인한 뇌의 기억력 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현대의 전화번호 망각 현상, 디지털 치매 등도 더욱 강력한 기록 수단이 나옴으로 인한 비슷한 현상이다. [35] 글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르치려 든 뤼시아스를 비판하는 것이다. [36] 책이 보편화된 현대에도 교강사 없는 독학에는 한계가 존재하고 책을 활용하는 수업 등이 교육 방식으로 널리 활용된다. [37] 키프로스에서 여름에 열리는 아도니스 기념제에서는 여드레 동안 여러 농작물을 기르는 의식을 진행한다. [38] 당대의 유명 소피스트이지만 주요 비판 대상이었던 다른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플라톤이 언급을 꺼려 대화편에 자주 언급되지 않는다. 플라톤이 이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어찌 여겼는지도 연구거리이다. [39] 소크라테스는 일리소스 강변에 온 이래로 자기가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판과 님프들에게 신들린 영감을 받아 했노라고 둘러댔다. [40] 이 대화편을 이끄는 주요 등장인물 파이드로스는 향연에서도 논의의 발제자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