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3 16:32:32

김영희(농구)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김영희
金英姬 | Kim Yeonghee
파일:김영희2016.jpg
출생 1963년 5월 17일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現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사망 2023년 1월 31일 (향년 59세)
경기도 부천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어머니[1], 남동생[2]
신체 205cm[3]
종교 불교[4]
포지션 센터
학력 숭의여자고등학교 (졸업)
소속 한국화장품 (1981~1987)

1. 개요2. 생애
2.1. 선수 시절2.2. 은퇴2.3. 사망

[clearfix]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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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역대 최장신 여자 농구 선수이기도 했다. 한국인 여성 중 최장신이라고 알려져 있다.[5] 한때 한국 거주 여성으로서는 공동 1위였던 적이 있는데 신장 205cm의 몽골인 유학생 여성이 있었기 때문. 거인증을 앓고 있는 김영희 선수와 달리 이 여성은 질병이 없이 그냥 키가 큰 것이었다.[6] 또한 북한의 농구 선수 박진아가 205cm이므로 한반도 공동 최장신이다.

2. 생애

2.1. 선수 시절

1982년 숭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화장품 여자 농구단에 입단해 활약한 선수로 1983년 겨울 스포츠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점보 시리즈 발전에 이바지했다. 당시 박찬숙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나름 한국화장품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이형숙과 함께 팀을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이후 국가대표에 선발 받아 1984 LA 올림픽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따는 데 기여했다. 당시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조승연(前 삼성생명 여자 농구단 감독[7], 前 서울 삼성 썬더스 단장 및 고문, 前 한국여자농구연맹 전무이사)의 회고에 의하면 상대 구단이 김영희 선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상대 감독은 장신에 대한 전략 구상,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장신과 겨루는 개인기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점보시리즈- 농구대잔치에서 한 경기에 52점을 기록하여 여자 농구 한 경기 역대 최다 득점을 기록하였고, 75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한 경기 역대 최다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그녀의 전성기는 8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2.2. 은퇴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 수술을 받게 됐고 은퇴식도 없이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말았다. 아직 최전성기로 활동할 너무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고 만 것이다. 여기에 1998년엔 어머니가, 2000년엔 아버지가 3차례의 암 수술을 받았는데도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 생겼다. 더구나 본인도 2002년에 거인병이라 불리는 말단비대증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으며 이로 인해 한때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술에 빠져 처참한 세월을 보냈다.[8] 그후 다행히 많은 농구인들의 도움을 받고 이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 특히 후배 농구 선수인 서장훈이 소리소문 없이 김영희의 계좌에 거액의 돈을 여러 번 송금했다. 허재도 많은 금전적 도움을 주었다며 그 둘이 겉으로 보기엔 아닐지 몰라도 속이 깊다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농구인뿐만 아니라 농구 스폰서 기업에서도 김영희를 도와주기도 했는데 모 스포츠 용품 기업에서 김영희의 운동화를 평생 공짜로 지원해 주기도 했다.

데뷔 과정과 플레이 스타일이 한기범과 유사했다. 참고로 한기범과는 신장도 205cm로 같고 나이도 1963년생으로 동갑이었다.


2021년 11월 1일 근황올림픽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근황을 알렸다. 같은 시기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에도 출연했다.

2.3. 사망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중[9] 2022년 10월경에 목을 다쳐 한동안 요양원에 머물렀지만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한 채 2023년 1월 31일 급성 호흡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경기도 부천 다니엘 장례식장 특실이었으며 2월 4일 오전 8시 30분에 경기도 부천 다니엘 장례식장에서 발인했고 장지인 경기도 화성시 함백산추모공원에서 영면에 들었다.[10]

부고 소식이 전해진 뒤 농구계는 추모에 나섰다. 2월 1일부터 2월 3일까지 진행된 한국여자프로농구 정규 리그 경기에서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경기 전에 묵념을 했다.


[1] 1940년생, 딸과 똑같은 향년 나이인 향년 59세의 나이로 1999년에 별세 [2] 본인과는 다르게 키가 작은 편이라고 한다. 결혼해 자녀까지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 사망 전까지 대한민국 최장신 여성이었다. [4] # 해당 영상 초반부에 김영희의 집 내부를 공개했는데 벽에 한자로 "부처 불(佛)"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5] 두 번째는 공식적으로 가장 큰 사람 누나다. [6] 부드 렌첸허를러라는 이름의 모델이며 서울시립대학교에 유학왔다가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로 이주했다. 한때 이 사람을 캡처한 사진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나돌며 키가 226cm라고 알려진 적이 있으나 실제로는 205cm이다. 2023년 1월 21일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 아이러니하게도 김영희도 2023년 1월 31일 사망하면서 한국 거주 공동 최장신 여성이었던 두 사람이 10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한 달 전인 2022년 12월에는 또 다른 장신 남복우가 사망했었다. [7]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8] 못된 중학생들이 집앞에 몰려와 '거인 나와라'라고 소리지르며 문을 두드리기도 했고 외출을 하면 남자들이 '저게 남자냐 여자냐'하며 대놓고 낄낄거리며 말했다고 한다. 국가대표 출신 최정상급 센터였지만 그런 걸 알 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시선을 받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느껴진다. [9] 위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2020년에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그런지 거동이 불편해져 작은 문턱조차 혼자 넘지 못했다. 2006년에 인간극장에 출연했을 당시엔 불편한데는 있었을지언정 걷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10] 사망, 발인 일자에 간극이 있는 이유는 당초 별도의 장례 절차 없이 발인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지인들이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2월 2일에 뒤늦게나마 빈소가 차려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