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1970~90년대 KBS를 상징하는 간판 스포츠 아나운서 중 한 명이었다.2. 생애
1942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6년 KBS에 입사했다.1972 AFC 아시안컵 태국을 시작으로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이 참가한 거의 모든 국제대회 중계에 참가했다. 1984 LA 올림픽,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모두 중계진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를 KBS가 단독으로 중계했을 때 멕시코 현지에 파견되어 중계했다. 한국이 8강에서 우루과이와 연장 접전 끝에 신연호의 결승골로 FIFA 주관 축구대회 역사상 최초 4강으로 향하는 명장면에 그의 목소리가 남아있다.
1988년에는 한국아나운서연합회 초대 회장을 맡았고 1998년 퇴직했다.
2024년 8월 1일,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3. 일화 및 여담
- 1971년 12월 24일 성탄절 자정 미사를 중계하던 중 김수환 추기경이 박정희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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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에서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의 축구 경기를 중계하다가 "
전두환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라는 멘트를 5차례나 반복하는 대형 사고를 쳤다. 당시 방송본부장은 "당분간 회사에 나오지 마라. 어쩌면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
과 이순자 여사의 선처(?)로 무사했다고. - 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당시 4강을 앞두고 대회조직위원회가 마이크와 부스 사용료 명목으로 추가 경비 3만 달러를 요구한 탓에 100여 분간 국제전화로 중계해야 했다.
-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중계한 국제 경기에서 승률이 높다는 인식이 있어 '승리를 부르는 캐스터'로 불렸다고 한다.
- 배우자는 박신자와 함께 국가대표 농구선수로 활약했던 김영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