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21:44:08

정략결혼

정략혼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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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적 정략결혼3. 21세기 이후4. 금슬5. 대중매체6. 예시
6.1. 실존 인물6.2. 가공 인물
7.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
7.1. 실존 인물7.2. 가공 인물
8. 혼동
8.1.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
9. 같이보기

1. 개요



가장이나 친권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시키는 결혼이다. 정략혼이라고도 한다. 스케일이 커지면 집안이 아닌 나라 사이에 왕실 공주 왕자가 결혼하여 나라 간의 동맹 등을 이루기도 한다. 나라간의 결혼으로 동맹을 강화한 역사적 사례로 나제동맹이 있다. 좋게 보면 가문 사이의 우애를 강화시켜 주는 풍습이지만, 나쁘게 보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족(자식)을 팔아먹는 악습이다.

2. 역사적 정략결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행위며, 평민보다는 주로 높은 계급의 귀족이나 왕족들이 많이 해온 풍습이다. 특히 권력있고 재력있는 전통적 집안들에서 정략결혼은 꽤나 흔한 경우였고, 정략결혼을 통해서 서로간에 가족 관계를 맺어서 이득을 취하는 일도 역시 많았다. 군주들은 이것으로 나라 및 국내 간 평화를 이루는데 많이 써먹었다. 대개는 약소 국가에서 힘 있는 강대국에게 왕이 자신의 인 공주를 강대국의 왕족에게 시집 보냄으로써 사돈 관계도 맺고, 동맹국으로 만들어 전쟁의 피해를 줄여보고자 하거나 권력층 간에 정략혼인으로 왕권강화, 신권강화에 쓰이는 경우가 상당했다.

그렇다고 정략결혼에서 사랑이 싹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민왕 노국대장공주의 금슬은 굉장히 유명한데, 노국대장공주의 죽음으로 인해 공민왕이 비탄에 빠져 고려 멸망을 초래했다는 학설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 다만 정략결혼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반원 정책의 완벽한 지지자였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와의 결혼은 원 간섭기 고려를 원나라의 종속국으로 묶어두기 위한 몽골 제국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실패해버린 정략결혼이다.(...) 서양에서는 카스티야 왕국 이사벨라 1세 아라곤 왕국 페르난도 2세 부부, 그리고 폴란드 왕국 야드비가 리투아니아 대공국로리콘 요가일라[1]의 금슬이 유명하다.

근세나 근대 이후로는 정략결혼이라도 무조건 가문에서 점찍은 후보와 시키는 게 아니라, 조건이 동등한 여러 명의 후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도록 선택권을 주기도 했다.[2] 애초에 모든 결혼은 가문의 결합이고 신분제가 존재하던 시기에는 일종의 을 맞추는게 예법이었으므로 왕족의 배필은 왕족이나 공작 이상의 상급 귀족일 수밖에 없다. 신분이나 정치당략을 초월한 말그대로의 연애결혼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3]

서양에서의 수많은 정략결혼 중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합스부르크 제국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왕국 루이 16세의 결혼이다. 유럽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전통의 강국들인 프랑스 왕국 합스부르크 제국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프로이센 왕국 동맹의 역전으로 견제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정략결혼이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강대국에서 다른 나라로 가서 결혼한 여성이 그 나라에서 영 좋지 못한 대접을 받거나 홀대를 당한다는 소식이 강대국에 전해졌을 때,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간에 대립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략혼인이 파탄나는 비극도 있었다. 529년 대가야 왕자가 신라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드디어 아이를 낳았고 잘 살고 있었으나 신라가 결혼 동맹을 취소했다. 가야는 " 부부가 되었고 자식이 있는데 어떻게 떨어질 수 있겠냐"며 신라에 사정사정했지만 신라는 이미 혼인 동맹을 깨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고, 부인은 결국 신라로 돌아갔다. 또 다른 비극으로 정략결혼이 사실상 자식 하나를 희생해 상대 나라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함정카드였던 경우가 있다. 553년 백제 성왕은 신라 진흥왕에게 딸 소비 부여씨를 시집 보내는 정략결혼을 맺었다. 그러나 일본 측 기록인 일본서기에 의하면 바로 이때부터 성왕은 동맹국 일본과 함께 신라와의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불과 1년 뒤 관산성 전투로 폭발한다. 이후 신라의 장군 도도가 성왕의 목을 벨 때 성왕의 죄로 '맹세를 어긴 것'을 드는데, 이것이 혼인 동맹을 뒤집고 기습 공격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고 있다. 진흥왕에게 시집 간 성왕의 딸 소비 부여씨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허가 받지 않은 다이묘끼리의 정략결혼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명목상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죽자마자 바로 자식과 손주를 정략결혼시켰고, 히데요시의 충신들에게 크게 비난 받았다. 하지만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에 대적할 다이묘가 없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히데요시 세력을 멸망시켜버렸기 때문에 유명무실해졌다. 그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인도 다이묘들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정략결혼을 금지시켰지만, 정작 도쿠가와가도 정략혼을 하였길래 결국 다이묘들 간에 정략결혼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3. 21세기 이후

여러나라의 기업 재벌, 정치가 등 고위 계층들은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지금도 정략결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 가치관도 바뀌고 이는 상류층도 마찬가지인지라 정략결혼을 미사여구로 포장한 인신매매 취급하며[4] 영 좋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요즘은 재벌들도 일반인들과 결혼하는 사례도 늘어났다.[5] 물론 그래도 상대방의 집안을 보기는 하지만 이거는 애초에 결혼의 기본이니까 당연한 거다.

상류층 집안들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자식들을 그들만의 무리에서 활동하게 만들어서 연애결혼 동시에 정략결혼적 성격을 띠게 만들기도 한다.

4. 금슬

현대에는 '권력/재산/가문의 이익 등을 위해 본인의 의지나 사랑과는 무관한 결혼을 한다'는 점 때문에 비극적이거나 불행한 결혼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은 역사상 이루어진 정략결혼 중에 당사자들의 감정이 나빴던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행복이란 주변 사람들과 비교되는 상대적이라는 면을 고려해야 하며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만족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일단 정략결혼을 했다는 건 결혼 당사자들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란 건데, 동서를 막론하고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이성을 만나고 로맨스를 찍을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따라서 '원치 않는 정략결혼 때문에 사랑하는 상대와 헤어지는' 경우 자체가 발생하기 힘들었는데 보통은 어린 나이 때부터 풀이 좁은 상류층 집안끼리 교류를 하고 얼굴을 익히면서 알고 지내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어린 시절부터 집안끼리 교류를 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대부분이었고 '아버지 친구의 ', ' 어머니 친구의 아들', '옆집에 사는 누나', ' 사촌 누이의 친구' 같은 소꿉친구 사이처럼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 일단 부모의 입장에서도 자식의 배우자가 되는 사람의 얼굴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사위나 며느리로 대하면서 결혼을 시키는 것도 껄끄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 자체에 작게는 가문끼리, 크게는 국가끼리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으므로 상대의 첫인상이 안 좋았다고 해도 대놓고 파토낼 수 없어서 상대를 어느 정도 배려하면서 살아야 했다. 부부라는 공적 관계로 얽혀서 서로 배려해 가며 붙어 살다 보니 뒤늦게 애정이 싹트기도 했고, 연인으로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진 않는 대신 인생의 동반자로서 서로 존중하고 의지하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물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진 않다 보니 정말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도저히 서로를 좋아할 수가 없던 경우도 많았다.

만약에 한 쪽이 외모나 성격 등의 이유로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명색이 결혼한 사이이면서도 서로 얼굴조차 자주 마주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고, 배우자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면서 애도 낳고 별 탈 없이 살지만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적어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허구한 날 눈물로 베개를 적신다든지, 서로를 증오해서 물고 뜯고 싸운다든지 하는 일은 그렇게까지 흔하지가 않았다.

정략결혼을 한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원만하게 지내더라도 상대를 연인으로서 원하지는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지만, 역시 일반화할 수 없다. 웬만해선 양가 어른들이 먼저 만나서 원만한 결혼 생활이 가능하겠는지를 미리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거쳤고, 집안끼리 동질혼도 커서,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경우도 많아 부부 사이가 흔히들 상상하는 것만큼 극악했던 경우는 오히려 적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10대 중후반 ~ 20대 정도의 한창 나이의 남녀를 한 집에 놔뒀으니 애정이 없었다가도 서로 마음이 끌리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6]

물론 연인으로서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이나 정부를 따로 두는 경우도 많았다. 전근대에선 일부다처제의 첩이나 정부를 두는 건 당연하게 여겼고 정략결혼을 할 정도면 그럴 재력이나 권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남자 같은 경우, 매춘 문화가 활발하여 어떻게든 코르티잔 등 성적요구를 채울 수 있었고, 여자들 같은 경우 사교모임, 파티, 사치, 동성애, 간음(...)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간혹 한쪽이나 둘 다 결혼 전이나 후에 사생아를 낳았어도 대부분은 알면서도 모른 척해 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정략결혼이 어디까지나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지 금슬이 연애결혼보다 반드시 좋다는 말이 아니다. 결론은 Case by case다.

5. 대중매체

대중매체에서는 재벌, 명문가 같은 높으신 분들 속성이 있는 집안 출신 캐릭터가 으레 안고 있는 클리셰 가운데 하나다. 즉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클리셰 중에서 사랑하던 연인 중 다른 1명이 정략결혼으로 곁을 떠나고 서로간에 그리워한다는 사랑 이야기는 정말로 주변에서 흔하디 흔한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혹 집안에서 정해준 훌륭한 미래의 배우자가 존재하고 재색겸비의 상대방도 상당한 호의를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정략결혼에는 관심 없고 상대방에게 연애적인 감정이 일말도 들지 않는 상황에서 평범하디 평범한 주인공과 이런저런 일로 엮여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고...이런 식. 막장 드라마에서도 꽤나 보이는 클리셰다.

러브 코미디, 로맨스 소설에서는 반대도 자주 나오는 콘셉트이다. 주인공들이 어릴 적, 심지어는 뱃속에 있기도 전에 부모들끼리 당사자들 동의 없이 '니 딸과 내 아들 결혼시키자'라고 정략혼인 약속을 해서 평생 모르고 살다가, 철 들 때 쯤 주인공 앞에 갑툭튀해서 너희 부부! 하는 시추에이션이 잦다. 물론 처음부터 정략혼을 맞아들이는 전개는 거의 없으며, 처음엔 거부하고 서로 싫어하다가 좋아하게 돼서 부부로 잘 사는 게 클리셰. 정략혼 계약으로 시작하는 장르가 계약물이다. 동거물 속성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

혹은 주인공이 다른 연인이 있는데 가문 차원에서 정해놓은 혼처가 있으니 거기로 가서 결혼하라고 명령해 어쩔 수 없이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상대도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거나 해서 어찌어찌 가족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혼 후 각자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진다거나, 아니면 아예 상대 쪽 모르게 계속 간통 불륜을 저질러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사정을 전부 알고 있는 배우자가 관대하게 어차피 자기보다 먼저 사랑하던 사이였고, 애초에 결혼 자체가 부모의 강요로 이루어졌다는 등 등을 생각해 일단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형식적으로라도 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전제로 간통을 하든 말든 눈감아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정략혼 상대와 기존 연인까지 해서 양손의 꽃 전개로 가는 경우도 있다.

정략결혼과 관련되는 배신하는 딸이란 클리셰가 있다. 일단은 서로 정치적인 이익을 보고 결혼한 두 집안이 나중에 정치적인 이득 때문에 갈라설 때, 시집 간 딸이 본가와 시댁(남편) 가운데 어디를 선택하냐는 문제.

높으신 분들이 자주 등장하는 로맨스 판타지, 악역 영애물에서 쓰이는 기본소재다.

사랑의 불시착 7화에서 구승준이 서단에게 정략결혼의 폐해를 알려준다.

6. 예시

※ 금슬이 좋았던 경우(♡)
※ 금슬이 나빴던 경우(☓)
※ 남자 & 여자 식으로 기재한다.

6.1. 실존 인물

  • 티베리우스 & 대 율리아 (X)
    대 율리아는 아우구스투스의 친딸, 티베리우스는 양자[7]로 본래 이 둘은 의남매이다. 두 사람은 아우구스투스의 조카로 율리아의 첫 남편 마르켈루스가 요절할 당시, 결혼 직전까지 갔다. 그렇지만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인 마이케나스가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의 장녀 빕사니아 아그리피나가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티베리우스와 약혼한 까닭에, 아그리파에게 원한을 살 수 있고, 이 결혼이 진행되면 벌어질 황실 내 여러 변수를 상기시켰다. 그래서 율리아는 본인의 대부였던 아버지의 친구 아그리파와 재혼했다. 이후 티베리우스는 로마에서 당시 드문 연애결혼으로 빕사니아 아그리피나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래서 이들은 의남매이면서도, 법적으로는 장모와 사위 관계가 됐는데, 기원전 12년 아그리파가 급사한다. 이런 가운데에서 티베리우스의 친동생으로, 아우구스투스의 또 다른 양자이자 조카사위인 대 드루수스가 사실상 게르마니아 일대 중 엘베 강 서안을 사실상 편입하고, 판노니아와 일리리쿰 일대를 로마 영토로 흡수하는 공을 세운다. 이는 아그리파 생전부터 아내의 차남으로 본인의 양자 중 출생부터 친아들처럼 키운 드루수스를 정식으로 입양하고, 율리아의 어린 두 아들 가이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카이사르의 보호자까지 구축하려는 아우구스투스에게 정략혼 필요성이 강화된 이유가 됐다. 이 당시 율리아는 과부, 티베리우스는 유부남이었고 심지어 연애결혼에 자식[8]까지 있는데다 금슬 좋기로 유명했다. 따라서 기원전 12년, 아우구스투스는 명을 내려 티베리우스를 급히 귀국시킨 다음, 아버지이자 황제로서 강제 이혼을 명령하고, 율리아와의 재혼을 곧바로 명령했다. 티베리우스는 울고 불며 부모에게 명령을 거두어 달라 부탁했지만 둘은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고, 아우구스투스의 결정을 직접 뒤집을 수 있는 리비아와 소 옥타비아 모두 티베리우스의 동생 드루수스가 황제가 되기 위해선 티베리우스가 이 결혼 후 책임을 져야 된다고 믿어, 티베리우스의 호소를 외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비아가 티베리우스에게 남편 아우구스투스가 이미 가정 문제가 아닌 정치 문제로 이를 끌고 감을 인식시킨다. 결국 티베리우스는 율리아와 결혼했다. 그러나 율리아는 여러 남성들과 간통을 즐기는 문란한 사생활로 유명한 색녀였고, 결혼에서 얻은 아들 티베릴루스가 요절하고 임신 중인 둘째 아이마저 율리아의 화려한 생활 때문에 유산되면서, 결혼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더군다나 율리아의 행실 문제로 아우구스투스, 리비아가 이를 지적하고, 율리아가 남편은 가만히 있는데 왜 가정일에 끼어드냐고 맞대응한다. 이런 이유로 티베리우스와 율리아는 서로를 냉대했는데, 티베리우스는 고된 업무에 자진하면서 최대한 버틴다. 그렇지만 기원전 9년 동생 드루수스가 개선식을 앞두고 낙마사고로 요절하고, 아내 율리아가 아그리파와의 사이에서 얻은 두 아들 가이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카이사르를 위한다며 정치파벌을 꾸리자, 티베리우스는 완전히 지쳐버린다. 그 결과, 그는 공동황제 자리까지 올랐음에도, 번아웃이 온 나머지 가출한 다음, 스스로 야인이 되어 로도스 섬에서 7년 동안 은둔생활을 한다. 권력 구조를 위한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에 티베리우스가 법대로 율리아를 고발하기도 뭐한 상황이었고, 정작 로마에는 티베리우스가 권력욕 때문에 누구나 불륜 사실을 아는 율리아를 고발하지 않았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결국 율리아의 문란한 불륜을 보다 못한 아우구스투스가 부재 중인 티베리우스를 대리해, 직접 티베리우스와 울리아를 이혼시키고, 율리아를 간통죄로 추방했다. 그렇지만 티베리우스는 이후 독신으로 지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소 파우스티나 (♡)
    전형적인 로마 제국 황족이나 귀족의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부부로 근친혼이다. 근친혼이고 정략결혼임에도 두 사람은 약혼 당시부터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30년 결혼생활 동안 총 14명의 자녀를 뒀다. 소 파우스티나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와 대 파우스티나 황후의 막내딸이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대 파우스티나 남동생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의 아들이다. 즉, 이들은 혈연상 고종사촌남매인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할머니 루필리아 파우스티나 언니의 남편인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고모부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입양할 때 입양 조건으로 고모와 고모부의 양자로 입적돼, 의남매 사이도 된다. 본래 두 사람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결정으로 따로 배우자가 정략결혼 아래 결정된 상태였다. 마르쿠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입양손녀 케이오니아 파비아와 정혼했고, 소 파우스티나는 케이오니아 파비아의 동생으로 마르쿠스의 의동생이 될 루키우스 베루스와 정혼했다. 그렇지만 이 결정은 신부 측 부모가 황제, 황후가 될 예정이고, 일찌감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고모부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양자가 되면서 다음 황제로 결정된 상황에서 좋은 결정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황제가 되고, 대 파우스티나가 아우구스타로 등극한 직후, 현실적인 이유 아래 모두 파기됐다. 대신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법적 조카인 케이오니아 파비아를 로마귀족청년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와 결혼시켰고, 자신의 친딸 소 파우스티나를 처조카이자 양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결혼시키면서, 어린이에 불과했던 루키우스 베루스의 신부로는 마르쿠스와 소 파우스티나 사이에서 태어난 루킬라로 선정했다.
  • 합스부르크 가문
    이 가문의 모토가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일 정도로, 철저한 정략 결혼을 통해 일개 지방 영주에서 유럽 최고 명문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과도한 정략+ 근친혼의 폐해도 주걱턱을 통해 가장 많이 보여준 가문.
  • 고시라카와 덴노 & 타이라노 시게코 (♡)
  • 공민왕 & 노국대장공주 (♡)
    원나라 공주였지만 공민왕을 사랑하여 그의 반원 정책을 후원했다. 심지어 반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군이 공민왕을 죽이려 하자 자신이 직접 가로막았다. 보통 같으면 노국대장공주도 끔살행이었지만, 그 반란이 친원 세력이 일으킨 거라 반란군은 노국대장공주를 죽일 수 없었다. 물론 노국대장공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와 사별한 공민왕이 피폐해져 고려의 개혁을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 아사히히메 (☓)
    도요토미 히데요시 항복하게 만들기 엄청나게 어려운 난적인 이에야스를 굴복시키기 위해 엄청난 무리수를 많이 뒀다. 이미 유부녀(!)였던 자기 여동생인 아사히히메를 강제로 이혼시켜 버린 뒤 이에야스에게 정략결혼으로 시집보내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생모를 이에야스에게 인질로 내줬다. 이러고서야 이에야스에게 항복을 받아냈다. 이 때문에 억지로 결혼한 이에야스도 아사히히메를 인격적으로는 굉장히 존중하였으나 결코 여자로, 아내로 대우하지는 않았다. 아사히히메 역시 알콩달콩 잘만 살다가 강제로 이혼당한 뒤 억지로 한 결혼이었는지라 옛 남편을 생각하느라 이에야스와의 관계가 영 좋지 못했다. 둘 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를 싫어하는 사이는 아니었으나 근본적으로 결혼에 이른 과정에 무리가 많았기에 금슬이 좋아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 네부카드네자르 2세 & 아미티스 (♡)
    신바빌로니아가 신 아시리아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메디아와 동맹을 맺을 때 둘의 정략결혼이 성사되었다. 그 유명한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지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다스리던 바빌로니아는 고도가 낮은 평지에 가까웠는데, 아미티스의 고향인 메디아는 해발고도가 높은 산지에 둘러싸여 있었다.
  • 다이쇼 덴노 & 데이메이 황후 (♡)
  • 무함마드 & 아이샤
    아이샤가 6살 때 결혼했고, 그것도 첫째 아내인 카디자가 죽자마자 한 결혼이었기에 현재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슬람권의 악습으로 꼽히는 조혼을 정당화하려는 극단주의자들이 무함마드와 아이샤의 사례를 근거로 들이밀기 때문이다. 아이샤의 아버지는 무함마드가 천사 지브릴에게서 알라의 계시를 받아온 직후에 개종해 무슬림이 된 인물이자 무함마드 사후 초대 정통 칼리파로써 움마( 무슬림 공동체)를 이끌게 되는 아부 바크르인데, 이슬람의 전파에 그의 재력과 인맥이 크게 도움이 되었던, 무함마드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당시 무함마드로써는 자신을 가장 가까이서 지지하던 아내와 부족장 삼촌이 이틀 간격으로 죽고, 새로 부족장이 된 사람은 사이가 안 좋아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이 된 무함마드로서는 현실적으로도 기댈 데가 아부 바크르밖에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 미나모토노 요시타카(源義高) & 오오히메(大姫)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이는 같은 미나모토( 겐지) 씨를 쓰고 사촌지간이지만, 요시나카 입장에선 겐지 동족(요리토모)에게 부모를 잃는 등 요시카타는 형 요시토모 집안과 영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후 겐페이 전쟁 때 둘이 다이라에 대항해서 거병을 각각 일으켰는데 서로 라이벌이지만 요시나카가 세력이 요리토모에 비하면 약했다. 이후 여느 분쟁을 거쳐서 각각의 요시나카의 아들 요시타카와 요리모토의 딸 오오히메를 정략결혼을 시키는데[9] 요시타카가 11살이고 오오히메가 6살이었다. 이후 요시나카는 요리토모보다 먼저 교토로 상경했으나 폭주하는 군을 제어하지 못해 교토의 조정과 민심이 이반 이후 요리토모에게 대패해 죽는다. 요리모토 입장에선 요시타카 아들이 훗날 화근이 될까 죽이려고 했으나 오오히메는 요시타카를 가마쿠라에서 도망치게 만들었다.[10] 그러나 결국 요시타카는 요리토모가 보낸 병사들에게 붙잡혀 죽게 되었다. 크게 상심한 오오히메는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 진흥왕 & 소비 부여씨
    백제 신라간의 정략결혼이 있었으나, 이 결혼 자체가 관산성 전투의 전쟁 준비를 위한 백제 측의 시간 벌기였다. 실제로 백제를 지원한 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결혼 시점에 이미 백제는 뒤에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 프란츠 1세 & 마리아 테레지아 (♡)
    사실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 모두 서로 첫눈에 반했던지라, 정략결혼을 가장한 흔치 않은 사실상 연애결혼이었다. 슬하에 자식만 16명이나[11] 낳을 정도로 부부 금슬도 좋았다.[12] 프란츠 1세는 차남 레오폴트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갔다가 인스브루크에서 뇌졸중으로 급사했다. 이후 아내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남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해 궁전에 그를 위한 방을 만들었고, 내내 상복만 입으며 남은 평생을 남편을 애도하며 지냈다.
  • 루이 13세 & 안 도트리슈 (☓)
  • 루이 14세 &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
  • 루이 16세 & 마리 앙투아네트 (♡)
    서양사에서 가장 유명한 정략결혼. 루이 16세는 이전의 프랑스 왕국 국왕과는 달리 그 흔한 정부도 두지 않았고 사생아도 없이 오로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 충실했다. 하지만 이게 당시 프랑스 대중들이 생각하기엔 매우 '왕답지 못한' 모습이라서, 두 사람에게 '못난 남편과 그걸 등쳐먹는 못된 아내'라는 루머가 생겼다.
  • 유비 & 손부인 (☓)
    삼국지연의에서는 두 사람을 금슬 좋은 부부처럼 그려놨지만, 실제로 두 사람은 사이가 매우 나빴다. 손부인은 침소에서까지 무장한 시녀들을 대동하고 있었으며, 손오에서 데려온 관리와 장수들을 거느리고 규율을 위반하며 위세를 부렸다고 한다. 즉, 자신은 유비를 존중하는 시늉도 안 할 것이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침소에서 유비를 암살할 수도 있다고 무력시위를 벌인 셈이다. 이에 유비는 손부인이 변고를 일으킬까 봐 항상 꺼렸고, 내실에 들어갈 때마다 두려워했다고 한다. 오래 못 가 둘은 별거에 들어갔으며, 급기야 손부인이 유비의 아들 유선을 납치해 손오로 데려가려다가 실패하고[13] 본인과 본인 세력만 손오로 귀환하면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만 2년도 못 채우고 완전히 파탄났다.
  • 페르난도 2세 & 이사벨 1세 (♡)
  • 오다 노부나가 & 노히메
  • 아이신기오로 푸제 & 사가 히로 (♡)
  • 아자이 나가마사 & 오이치 (♡)
  • 앙리 2세 & 카트린 드 메디시스 (☓)
    카트린은 평생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며 많은 자녀들을 낳고 발루아 왕조에 헌신했지만, 앙리 2세는 디안 드 푸아티에라는 로얄 미스트리스를 사랑하느라 내내 카트린을 냉대했다. 결국 디안은 앙리 2세의 사후 카트린의 명령으로 앙리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까지 금지당하고, 그에게 선물받은 수많은 왕가의 보석과 성까지 반환당하는 보복을 받고 남은 평생을 조용히 살아야 했다.
  • 도요토미 히데요리 & 센히메 (♡)
  • 도쿠가와 이에사다 & 텐쇼인 (♡)
  • 도쿠가와 이에모치 & 카즈노미야 치카코 내친왕 (♡)
  • 영친왕 & 이방자
  •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 세츠코 비 (♡)
  • 소 다케유키 & 덕혜옹주
    끝이 좋지 않았던 것은 덕혜옹주 조현병 때문이었는데, 병의 원인은 적어도 부부 사이의 불화는 아니다. 이미 10대 중후반부터 정신 질환의 증세가 있었기 때문. 덕혜옹주의 증세가 호전되는 듯하자 일본은 서둘러 그녀를 다케유키와 결혼시켜 버렸다. 아이를 낳고 잘 사는 듯 했으나 재발했다. 특히 조현병은 여성 환자는 아이를 낳고 살 무렵인 20대 후반~30대 전반에 본격적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 조지 4세 & 브라운슈바이크의 캐롤라인 (☓)
    원래 조지 4세는 자신의 애인이였던 마리아 피츠허버트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가톨릭 신자에 "이혼녀"라는 것이 발목잡혀 무산되었고 사촌인 캐롤라인과 결혼했다. 때문에 조지 4세와 캐롤라인은 신혼부터 바로 별거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특히 조지 4세는 외동딸 샬럿 공주의 양육권을 친모인 캐롤라인에게서 빼앗거나, 그녀에게 불륜 누명을 씌워가면서 이혼까지 하려는 등, 아내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다. 조지 4세가 아내를 얼마나 증오했는지 보여준 일화가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사망하자, 신하가 조지 4세에게 "폐하의 원수가 드디어 죽었습니다" 라고 전하자 조지 4세는 "그 여자(캐롤라인)가 죽었다고?"라며 받아쳤다고 한다.
  • 쇼와 덴노 & 고준 황후 (♡)
  • 충렬왕 & 제국대장공주 (☓)
  • 충선왕 & 계국대장공주 (☓)
  • 충숙왕 & 복국장공주 (☓)
  • 충숙왕 & 조국장공주
  • 충숙왕 & 경화공주
  • 충혜왕 & 덕녕공주
  • 카를로스 3세 & 마리아 아말리아(작센)(♡)
  • 헨리 8세 & 아라곤의 캐서린 (☓)
    사실 처음에는 정략혼과는 별개로 서로 사랑하던 관계였다. 사실 캐서린은 헨리 8세의 친형 웨일스 공 아서와 먼저 혼인했지만, 아서가 결혼 1년 만에 병사하면서 과부가 되었다. 이후 형의 뒤를 이어 왕세자가 되고 아버지 헨리 7세가 승하하면서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즉위한 헨리 8세가 홀로 남은 캐서린에게 청혼하며 결혼했다. 당시 헨리 8세에겐 캐서린보다 더 좋은 조건의 정략결혼 상대도 많았음을 생각하면 역사학자들도 이때만큼은 헨리 8세가 캐서린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헨리 8세의 마음이 떠나 버렸다. 이후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눈이 맞아 그녀와 재혼해서 아들을 얻기 위해 캐서린과의 혼인을 무효화하려고 했는데, 캐서린은 여전히 남편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동딸 메리 사생아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여 이혼을 거부했다. 캐서린이 혼인무효를 거부하며 순순히 이혼해주지 않자 헨리 8세는 화가 폭발했고, 이후로도 여전히 캐서린이 고집을 굽히지 않자 종국엔 아예 그녀를 증오하게 되었다. 이후 헨리 8세는 캐서린을 딸 메리와 만나지 못하게 하거나, 강제로 캐서린의 거처를 옮기게 하거나, 캐서린이 갖고 있던 보석들도 빼앗는 등, 여러 가지 치졸한 수로 캐서린을 압박했다. 심지어 헨리 8세는 끝내 캐서린과의 이혼에 성공한 뒤에도 그녀에게 생활비조차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아, 결국 캐서린은 일국의 왕녀 신분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수녀원에 들어가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특히 캐서린은 임종 직전에 헨리와 화해를 시도했지만 헨리 8세는 끝까지 그녀를 거부했고, 캐서린이 사망했을 때 아예 축하를 뜻하는 노란색 옷을 공식 석상에 입고 나와서 죽은 그녀를 고인모독했다.
  • 헨리 8세 & 클레베의 앤 (☓)
    정치적 이유로 결혼이 성사됐지만, 앤의 용모와 성격 등이 헨리의 취향이 아니었다. 이에 헨리는 앤을 두고 인격의 바닥이 보이는 폭언을 지껄이며 모욕하는 등, 공공연히 박대했다. 안 그래도 이 결혼은 오래 못 가서 정치적/외교적 가치를 상실한 터라, 헨리 8세는 반 년만에 혼인무효화를 결심했다. 앤은 이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몹시 충격을 받아 혼인무효화를 거부하려 했지만, 캐서린의 전례로 그래봤자 손해만 보게 된다는 것을 파악해 결국 위자료를 받고 이혼에 동의했다. 지켜야 할 딸( 메리 1세)이 있던 아라곤의 캐서린과는 달리 앤은 자식이 없었으므로, 헨리 8세와의 결혼을 유지해야 할 절박한 이유는 없던 게 한몫했을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헨리 8세와 앤의 관계는 이혼 후에 더 좋아졌는데, 다소 기분파인 면모가 있던 헨리 8세가 어쨌든 빠르게 이혼에 동의해준 앤에게 기분이 좋아져 이것저것 지원을 많이 해준 덕이다. 결혼 당시에는 앤을 그토록 싫어했던 헨리 8세는 정작 이혼 후에는 위자료로 성 3채와 막대한 연금, 그리고 자신의 누이에 준하는 지위를 주어 왕실 일원으로 대우하는 호의를 베풀었고 교류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그래도 끝내 이성으로는 보이지 않았는지, 앤 다음 왕비였던 캐서린 하워드가 참수당한 뒤 재결합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헨리가 일축해버렸다.
  • 세도정치
  • 빌럼 3세 & 조피 프리데리케 마틸데 (×)
  • 주제 1세 & 마리아나 빅토리아

6.2. 가공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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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

7.1. 실존 인물

  • 원술의 아들 & 여포의 딸
    여포와의 정략결혼으로 동맹을 맺어 원소, 조조를 견제하려 했다. 진궁 등 호족들도 긍정적으로 봤지만, 진규의 방해와 여포의 뒤끝 때문에 결국 다 성사될 뻔했던 것이 파토가 나 버렸다. 그런데 여포의 뒤끝이란 게 원술이 자기를 쫓아내서였는데, 그 이유도 결국 여포의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원인이라 자업자득이었던 셈이다.
  • 손권의 아들 & 관우의 딸
    손오에서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에게 정략결혼을 권했으나, 관우가 손오의 사자를 모욕하며 쫓아냈다. 삼국지연의에선 여기에 좀 더 각색해서 "호랑이의 새끼를 개의 새끼에게 줄 수 있겠냐"고 대놓고 까댔다. 관계는 좋진 않아도 어쨌던 동맹 세력의 군주를 일개 장수가 모욕을 주는 셈이어서 인격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매우 큰 결례를 범한 셈이었다.
물론 관우가 형주 사령관이었던 만큼 이것은 단순한 정략결혼이 아닌 주군인 유비의 허락과 합의가 있어야 하는 중대사이다. 하지만 손권의 이런 직접적인 처사는 자신의 주군 유비를 무시하는 노골적인 행동일 뿐더러, 어찌 보면 자신에게 유비의 반역을 부추기는 행위나 진배없기 때문. 관우의 최선책은 이 일을 손권에게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유비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이 외에 손권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미 손권의 동생이자 유비의 아내였던 손부인이 다른 사람도 아닌 유비의 장자인 유선을 납치하려다 실패한 사례도 있었다. 아버지로서도 이런 작자에게 딸을 믿고 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18]
그런데 그랬으면 정치적으로 정중하게 대응했어야지 이렇게 무례하게 군 것이 더 문제다. 왜냐하면 손권은 유비와 동일선상에 놓인 군주이다. 관우는 오나라로 따지자면 태사자 정도 위치에 불과한 인물이기 때문인 데다가, 관우는 안 일으켜도 되는 마찰을 굳이 일으킨 것이 되기 때문이다.[19]
  • 루이 15세 & 마리아나 빅토리아
    둘 다 아주 어렸을 때 프랑스 스페인 왕국의 평화협정을 위해 약혼했다. 당시 마리아나 빅토리아는 3살도 채 안됐기에 프랑스에서 데려다 키우다가 결혼시키려 했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파혼당하고 마리아나 빅토리아는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7.2. 가공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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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혼동

현대에 들어와서는 애정 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가 어떤 일[22] 때문에 법적 관계를 맺어서 사회적 위상과 보호를 얻기 위해 사무적으로 결혼하는 것 역시 서로의 자의로 했어도 정략결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정확히는 돈만 보고 한 결혼은 정략결혼이 아니라 혼테크라 불러야 하며, 사전적 의미로는 정말 사회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한 결혼만이 정략결혼이라는 말에 어울린다. 혼테크 문서 참조.

영어의 marriage of convenience(편의결혼)과 정략결혼의 의미 차이로 혼동이 되기도 한다.

8.1.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

9. 같이보기



[1] 요가일라 대공이 야드비가 여왕이 결혼했을때 각각 34세와 13세로, 무려 21살 차이였다(...). 그래도 야드비가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자 요가일라가 애통해하며 한동안 식음을 전폐했을 정도로,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았다고한다. [2] 이사벨 1세 역시 혼담이 오갈 때 여러 나라에서 구혼이 들어왔고 그 중 유력 후보는 이사벨의 이복오빠 엔리케 4세의 마음을 잡은 포르투갈 왕국, 당사자인 이사벨의 마음을 잡은 아라곤 왕국이었다. 그리고 이사벨이 선수를 쳐서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결혼한 것. [3] 특히 유럽 대륙은 귀천상혼이라고 하여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과 결혼하면 상속권 박탈 등의 불이익을 주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같은 신분끼리만 맺어지게 되는데, 특히 왕족 같은 경우 합스부르크 가문처럼 같은 나라 같은 가문의 근친혼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신랑과 신부가 각각 국적이 달라 결혼을 앞두기 전까지 서로에 대해 많이 알기는 힘들었으며, 당연하겠지만 이런 식의 혼인은 대개 정략결혼이었다. [4] 1957년에 나온 영화 시집가는 날에서 정략결혼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인식이 나타나 있다. [5] 대표적인 사례가 다름아닌 범현대가다. [6] 사실 '양가의 이해관계'가 영향을 끼쳤다고 해서 '정략결혼'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따지고 보면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조건에 맞는 상대를 주선받아 혼인한다는 점은 흔한 중매결혼이나 현대의 결혼정보회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일반적인 연애결혼에 비해 사전에 조율해야 하는 부분들이 상당수 정리된 상태에서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7] 정확히는 아우구스투스가 3번째로 재혼해 평생을 함께한 아내인 리비아 드루실라 황후가 전남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사이에서 낳은 큰아들이다. [8] 소 드루수스. [9] 세력이 약한 요시타카가 인질로 보냈다. [10] 시녀들을 통해 이 일을 알게 된 오오히메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교묘한 계략을 꾸몄다. 우선 요시타카를 시녀로 변장시킨 뒤 시녀들로 둘러싸 저택을 빠져나가게 한 뒤, 미리 다른 곳에 준비해 둔 말에 태우고 말발굽에는 솜을 완충재로 감아 소리가 나지 않게 해 도망친 것이다. 그런 후 요시타카와 늘 놀던 시종이 요시타카 흉내를 내게 해 하루 동안 도주한 것을 은폐했다 [11] 이 두 사람의 막내딸이 바로 아래에도 서술된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 [12] 사실 프란츠 1세도 바람을 숱하게 많이 피웠으나, 자존심 강한 마리아 테레지아가 남편의 내연녀들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13] 연의에선 손권이 오국태의 병을 빌미로 유선을 납치 하라고 사주했다는 식으로 나왔지만 손부인의 독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납치가 성공하면 관우는 조위 번성을 공격하는 게 아닌 손오로 진격했을 것이다. 정사 삼국지에서도 "손부인의 납치 미수 때문에 관우가 위험한 행동을 했다"고 저술되어 있다. [14] 글래디스가 혼전에 사생아를 임신했는데, 두 사람은 초야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사생아라는 것이 바로 들통났다. 아들을 낳자마자 이혼당했다. [15] 항목 예시에 있는 두 부부 중 아내들이 서로 이부자매들인데 둘 다 친모 샬롯 링링과 사이가 매우 나빠서 그런지 정략결혼으로 결혼했음에도 남편과 금슬이 매우 좋다. 그리고 둘 다 어머니를 암살하려는 남편의 계획에(정확히는 시폰의 남편인 벳지가 주도했고 프랄리네의 남편 알라딘은 그 계획에 협조를 해주었다) 적극적으로 동참하기까지 한다.(...) [16] 그런 줄 알았으나 이 사람은 이미 몇 년 전 현재 주단태와 신분이 바뀐 백준기의 아버지였다. [17] 그러나 사실 주단태에게 살해당한 것은 이미 심수련으로 인해 진실을 다 알고 찾아온, 그가 사랑하던 나애교였다. [18] 때문에 이 점을 들어 반대했다면 손권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19] 이 부분은 관우의 성격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연의에서는 이를 부각시키고자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 갈 때 다섯 관문 장수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고 서술한다. 그 빚이 남아 이후 적벽대전에서 만신창이로 퇴각하는 조조를 눈앞에 두고도 놓아줘야만 했다. [20] 동화 속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스토리브룩)에서는 이미 결혼한 사이였다. [21] 틀린 말은 아니다. 진짜 로만이 자살한 이유가 안토니의 수작질 때문이었으니. [22] 주로 돈에 관계된 일. 돈을 서로 배분할 일이 생겼는데, 서로 배분을 못하는데 빨리 처리해야 하는 경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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