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7:28:40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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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후추서
*B: 공화국 원수였으나 계급 개편으로 인한 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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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김정일
金正日
[1] | Kim Jong Il
[2]
파일:김정일.jpg
<colbgcolor=#ED1C27><colcolor=#fff> 본명 김정일(金正日, Юрий Ирсенович Ким[3])
Kim Jong-il[4] (b. Yuri Irsenovich Kim)
출생 1941년 2월 16일[5]
소련 러시아 SFSR 프리모리예 지방 보로실로프시
(現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 프리모리예 지방 우수리스크)[6]
사망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경[7]
(향년 70세)
평양시 룡성구역[추정]
묘소 금수산태양궁전
서명 파일:김정일 서명_수정본.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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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4FA2><colcolor=#fff> 본관 전주 김씨[9][10]
종교 무종교 ( 무신론)
학력 평양 제4인민학교 (졸업)
평양 남산고급중학교 (졸업)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 학사)
직업 정치인
최종 당적

주요 서훈 김일성훈장 (4회)
공화국영웅 (4회)
건국 50돐 기념훈장
건국 60돐 기념훈장
공로훈장 (2회)
국기훈장 1등급
국기훈장 2등급
로력영웅 (3회)
자유독립훈장 1등급 (2회)
자유독립훈장 2등급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 기념훈장[PL]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 기념훈장[PL]
신체 160cm[13], 83[14]~ 85kg[15], A형[16]
계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17]
(1992년 ~ 201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18]
( 2012년 추서)
호칭 당중앙, 위대한 령도자, 인민의 어버이,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부모 아버지 김일성 (1912년 ~ 1994년)
어머니 김정숙 (1917년 ~ 1949년)
형제 남동생 김만일 (1944년 ~ 1947년)
여동생 김경희 (1946년생)
이복여동생 김경숙 (1951년생)
이복여동생 김경진 (1952년생)
이복남동생 김평일 (1954년생)
이복남동생 김영일 (1955년 ~ 2000년)
이복남동생 김현 (1971년 ~ 불명)
이복여동생 김백연 (1987년생)
배우자 일처(정식 부인) 홍일천 (1942년생)
이처(내연녀) 성혜림 (1937년 ~ 2002년)
삼처(정식 부인) 김영숙 (1947년생)
사처(내연녀) 고용희 (1952년 ~ 2004년)
오처(정식 부인) 김옥 (1964년생)
자녀 장남(서장남) 김정남 (1971년 ~ 2017년)
장녀 김설송 (1974년생)
차녀 김춘송 (1975년생)
차남(적장남) 김정철 (1981년생)
삼남(적차남) 김정은 (1984년생)
삼녀 김여정 (1988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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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정일_초상화_2_고화질.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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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

1. 개요2. 생애3. 가계4. 평가5. 여담6. 대중매체에서의 모습7. 호칭 및 별명8. 어록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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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제2대 최고지도자이자 독재자.

북한 초대 최고지도자 김일성 장남이자 현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아버지. 1972년 김일성에 의해 후계자로 낙점되며 정치 일선에 등장하였다. 1970년대부터 이미 김정일은 실권자이자 2인자로 군림했다. 1991년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자리에 올랐으며 1994년 김일성 사후 제2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라 17년 동안 북한을 통치하였다.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3년간 ‘김일성의 유언대로 북한을 통치한다.’를 기조로 삼은 유훈통치를 했으며, 1998년이 되자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을 내세우고 자신은 그 뒤에서 실권을 잡은 채로 그림자 권력을 행사 했다.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북한 최악의 기근과 각종 대북제재로 흔들리던 북한 체제를 심화조 사건 선군정치를 위시로 한 공포정치로 유지시켰으며, 외교적으론 미국을 직접 상대하며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으려고 했다. 이러한 외교 기조는 김정은 시대에도 변함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통해 대북지원을 계속 받으려고 했다.

군사적으론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탄도 미사일, 잠수정, 사이버전, 화생방과 같은 비대칭전력에 집중 투자했다. 재래식 군사력은 남한이 추월했기에[19] 김정일은 비대칭 전력으로 불리한 군사적 판도를 다시 뒤집어 보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래서 남한은 김정일의 군사노선 변화에 대응해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 전략을 수립하고 그동안 투자가 미비했던 공군과 해군 그리고 미사일과 정보정찰 자산에 집중 투자를 하게 되었다.

대남정책은 화전양면전술을 유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과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으며 남북화해무드를 이용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으로 외화를 유치했다. 그와 동시에 대남 도발을 통해 남한을 위협하고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으며, 그가 일으킨 대남 도발에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이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경제적으론 제한적으로나마 개방 정책을 취하기도 했고 그 덕에 신의주 라선시가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전면적인 개혁개방이 북한 체제를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근본적으론 폐쇄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대북제재를 우회해 불법적인 루트로 입수한 검은 돈을 사치품이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김정일의 통치자금은 국가 경제를 회복시키거나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먹여살릴 식량을 구매하는데에는 거의 투자되지 않았다.

많은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김정일과 이 자신들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배급제에 의존하지 않고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지배기간 동안 북한 경제의 시장화가 촉진되었다. 김정은은 북한 경제의 시장화 움직임을 막기 위해 2009년 화폐개혁을 실시하고 연장 차원에서 장마당을 금지시켰으나 대실패로 막을 내려 북한의 내수 경제를 완전히 파탄 상태로 몰고 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김일성 최만년부터 최빈국 수준이었던 북한의 경제는 김정일 시기에 재기불능의 극빈국 수준으로 떨어졌다.[20]

또한, 김정일의 지배기간 동안 외부 문물들이 북한 내부에 유입되면서 한국 영화, K-POP, 한국 드라마와 같은 남한의 대중매체들이 북한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외부 문물을 접한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북한 당국의 선전을 믿지 않게 되었으며, 북한 당국의 각종 억압적 단속 정책에도 외부 문물들은 북한 주민 사회에 계속 유입이 되었다. 이는 현재의 김정은 시대에도 변함이 없다.

생전 조선로동당 총비서,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등의 직책을 겸임했고, 2011년에 사망하며 삼남 김정은이 권력을 이어받았다.

김정일의 시신은 자신의 아버지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금수산태양궁전 엠버밍되어 안치되었으며, 사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 계급이 추서되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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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m Jong-il 1990.png
파일:Kim Jong-il 2011.png
1990년 (당시 49세) 2011년 (당시 70세)

2.1.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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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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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김정숙의 2남 1녀 중 장남. 정식 부인만 3명[21]이고 성혜림, 고용희 등 비공식 애인들도 있었다. 때문에 백두혈통 일가 중에서 가장 부정확한 가계를 자랑한다.
===# 가계도 #===
한성희
홍일천
김혜경


2
신정희
(리씨)
김혜순
리혜경
김솔희
홍영숙
서영라
김이순
장길선
김영숙
김춘송
(자녀)
(부인)
(장남)

3
(셋째)
(아들)
(남편)
(딸)
(딸)
김경진
김인강
(부인)
김은송
김성강
(부인)
(자녀)
제갈순복
김송죽
김백연
김형록
김영성
(부인)
(부인)
김정현
(부인)
김원주
김구일녀
김형실
김형복

4. 평가

독립운동가로서의 이력에 더해, 정권 수립 초반기에는 외부에 대한 치밀하고, 대담한 기만공작으로[22] 스탈린 마오쩌둥을 당황시키기도 했을 정도로 외교에 있어 지능적이었던 아버지 김일성에 비해 투명하게 비판을 받았다. 집권 기간 굉장히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통치를 했으며 자행한 일들의 잔혹성과 악랄함도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20세기 최악의 대기근 중 하나[23]로 꼽히는 고난의 행군의 최종 책임자이기도 하다.[24][25] 종합적으로 전문가든 대중이든 막론하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26] 악랄한 독재자가 비교적 드물었던[27] 냉전 붕괴 이후 독재자 중에서는 명실상부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된다.[28]

김정일이 집권한 1990년대 소련 붕괴의 영향으로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 위기에 처해있던 상황이었는데,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통한 내부 단속에만 공들여 5년간의 장기적인 기근으로 공식 수치로만 30~40만 명 가량의[29] 북한 주민들을 아사하게 만든 장본인이며 심지어 '인민이 배가 부르면 다른 마음을 먹는다.'며 기아 상황을 유도했다는 의혹도 있다. 일단 외부에서 성심성의껏 주민들을 위해 지원해 주거나 주민들이 농사지은 식량들을 군량미 명목으로 걷어간 후 제대로 분배하지 않고 '대체식료품'을 먹을 것을 조장해 기근 피해를 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은 '쪽잠에 줴기밥' '외국이 의도적으로 조선에 대한 원조를 막고 있다' 같은 온갖 거짓말들로 북한 주민들을 속여가면서 실제로는 온갖 산해진미와 취미 생활을 즐기며 대단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기쁨조라는 전용 위안부[30] 집단까지 만들 정도로 여색을 탐닉하던 그야말로 폭군의 전형이었다.[31] 대외적으로 수많은 대남 도발 정치범수용소, 특히 핵무기 개발로 전 세계에 악명을 떨쳤다.

개인적인 성격은 매우 심약하고 의심이 많은 편이라 심화조 사건을 위시한 잦은 숙청을 벌였고, 암살에 대한 공포와 고소공포증 때문에 항공기 탑승을 극히 꺼려 전용 열차 태양호에만 의지해 외교 활동을 수행했다. 김정일이 북한 정상으로서 직접 방문한 나라는 중국 러시아밖에 없으며, 남북정상회담도 평양에서 단 2회만 가졌을 뿐이라 은둔의 독재자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 본인 역시 이걸 의식했는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난 과거에 중국도 갔고 인도네시아도 갔고 외국에 비공개로도 많이 갔는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다더라. 그런데 김(김대중)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며 농담을 했는데, 이는 공식 석상이라서 고스란히 영상 자료가 남아있다.[32]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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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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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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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호칭 및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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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어록

"왜 우리 영환 맨날 나오는 것이 반복하는게 많고 도식적으로 영화 이야깃거리가 새것으로 나가자고 하는, 지향하는 것이 전혀 없단 말입니다. 도대체 왜 장면 장면마다 자꾸 초상난 집처럼 우는 것만 찍게 만드나! 우리 영화 안 우는 영화 안되겠나! 상가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만드나? 그쪽은 대학생 수준인데 우린 이제 유치원인데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새로운 걸 바라지도 않아. 완고하다고."[33]
"내부에 있는 동무들이 특히 이번에 작전을 한 동무들이 특히 조직을 지휘하는데 총력을 다했습니다. 내 스스로 후회가 되는 건 내가 하려는 일을 구체적으로 애들한테 말을 안 해가지고 당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저와 협력하려는지를 말입니다. '두 분이 꼭 필요하니까 데려와라.' 죄수처럼 맞죠? 죄수처럼 취급해가지고 그래서 서로 오해도 생기고..."
"내가 그런 걸 바탕으로 해가지고 우리 거하고 합쳐가지고 영화로 서양을 진출해야겠다. 우리는 그러니까 돈을 여기다 하겠다! 그래서 내가 신 감독에 대한 기대가 그래서 크다는 겁니다."
" 그놈들이 부러워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지리 스웨리예 그 다음에는 제네바...말하자면 중립국가를 표방한 나라를 댕기면서, 그렇게 구라파 댕기면서 이름을 알려야지..."
최은희가 몰래 녹취한 김정일의 발언. 신상옥에게 한 말이다. 김정일은 신상옥에게는 예의바른 태도를 지녔으며 항상 존댓말을 사용했다. #
"야이 새끼야, 네 눈에는 수령만 보이고 나는 안 보이더냐?!
김길선의 증언. 김정일이 당중앙 위원회에서 아버지 김일성과 같이 올라가려고 승강기 앞에 섰는데, 위에 볼일이 있던 수리공이 먼저 타 있었고, 그가 김일성에게만 깍듯이 인사를 하자, 극대노한 김정일이 김일성이 내린 다음 수리공에게 욕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고 한다. 마침 승강기를 타려던 중앙당 간부들도 이 광경을 지켜봤다고.
"날 좋아하나?"
(후지모토 겐지 : "좋아합니다!")
"그럼, 내 볼에 뽀뽀하라!"
“( 기쁨조와) 춤을 추는 것은 돼. 만지지는 말아. 만지면 도둑이야.”[34]
"병들고 노동력이 없는 인민들은 빨리 없어지는 게 내게는 편하다. 철통같이 뭉친 군대와 당원 3백만 명만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공화국은 건재하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
“너희들 그거 물개 자지인데 먹고 나서 집에 가서 몇 번 했는지 소감을 발표하라.“
이한영의 증언.
“네가 뭔데 내 흉내를 내느냐. 이 땅에서 세도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1978년, 장성택이 독자적으로 기쁨조를 선발하고 비밀 연회를 연 것이 발각되자 격분한 김정일이 장성택에게 한 발언. 이 때문에 장성택은 잠시 숙청당해 2년 동안 강선제강소 작업반장으로 쫒겨났다가 복권되었다.[35][36]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교수대에 매달려야 한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처형장면을 본 뒤 한 발언. #
''죽은 자만이 비밀을 지킨다."
974 경비부대 출신 "강진"의 증언. 김정일 자신이 기거하는 특각의 비밀이 외부로 새어 나갈것을 우려해, 경비대에게 그곳을 넘어 오려는 낌새가 보이는 자는 짐승일지라도 즉각 사살하라고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
1992년 4월 25일 열병식 당시 연설.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된 김정일의 거의 유일한 육성 녹음이다.[37]
“영감!”
오진우같은 늙은 측근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38]
"제가 무슨 큰 존재라고, 아마 적들은 외신들, 그 다음에 저 구라파 사람들이 자꾸 뭐라고 말하냐면, "왜 은둔 생활을 하나? 은둔 생활하는 사람이 처음 나타났다." 난, 세상에 뭐 과거에 중국도 갔댔고 인도네시아도 갔댔고 외국에도 비공개로 갔댔고 헌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데? 그래서 김대통령이 오셔서 내가 이제 은둔에서 해방됐다. 하도 모르게 했으니까요."[39]
2000 남북정상회담 도중 발언. #
"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2009년 12월 19일에 남긴 말. 김정일이 IT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한다.
" 신념과 의지가 굳세지 못하고 배짱이 없으면 온갖 풍파를 헤치며 나가야 하는 혁명을 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수령님을 잃은 다음 내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피눈물의 언덕을 넘으며 가슴에 새긴 철의 진리입니다."
" 자강도 고난의 행군시기 나에게 정든 고장입니다."
" 줴기밥은 (만드는 데 필요한 음식)감도 특별한 것이 필요 없고, 만드는 데 품도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급히 길을 떠나야 할 때 준비하기 쉬워서 좋고, 가다가 아무데서나 펼쳐놓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도 얼마 떼우지 않고, 현지 일군들이나 주민들에게 폐도 끼치지 않아서 좋습니다. 줴기밥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도중식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배고픈 줄 알아야 배부른 줄 안다.
인민들과 똑같이 생활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민들이 조밥(좁쌀로 지은 밥)을 먹을 때에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수령님의 뜻이고 인민들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어야 우리도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당의 뜻이 아닙니까.
이제는 집에 오면 여관에 온 것 같고 열차에 올라야 집처럼 마음이 편해진다. 인민생활문제가 풀리기 전에는 언제 한번 집에 들어가 발편잠을 잘 것 같지 못하다.[40]
"나는 정확한 것을 좋아한다. 독일의 칼렌부룬너[41](나치스 독일의 제국안전 총국장. 살인마로 악명 높은 SS성원이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히틀러에게 보고할 때는 항상 간단명료하고 정확하게 사태의 진상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히믈러(독일 부총통)[42]가 어떤 때 거짓을 보고하면 바로 그 앞에서 <그것은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배짱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이러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고영환, <평양 25시>, 130쪽. 명색이 공산주의 지도자란 작자가 나치의 전범을 칭송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 것이다.
혁명의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그들에게 코카콜라를 먹일 것이 아니라 백두산 들쭉 단물을 먹여야 한다.
1992년 김정일이 남긴 발언[43] #
평양 시민들에게 남새(채소)와 과일도 신선한 것을 늘 떨구지 말고 공급하여야 합니다.[44]
"당내에 끼어든 망나니들입니다. 법대로 처리하십시오."
1995년 강원도당 간부들이 부화방탕하게 산다는 것을 보위부가 보고하자 김정일이 내린 지시. 결국 사건에 연루된 간부들은 모두 총살당했다.
"이라크 반미 세력들이 자폭공격으로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시키고 있다. 우리의 경보병 부대와 저격부대도 이라크처럼 자폭공격으로 적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2004년에 특수부대를 시찰하면서 한 교시[45]
“미제에게 경고한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깨여 버려야 한다는 우리의 배짱맛이 진짜 어떤것인가를 그렇게도 맛 보고 싶으면 지금보다 더한 별의별 미친짓을 다해도 좋다. 우리는 악의 제국, 전쟁과 불행의 원흉인 미국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세계의 정의와 영원한 평화의 긍지 높은 전리품으로 만들어 버릴것이다. 하여 이 증오의 심판으로 조국통일의 만세소리도 높이 울리고 미국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울것인가라고 한 인류의 소원도 성취해 주고야 말것이다.”
2006년 3월 13일 로동신문 사설 중
인민에 대한 최대의 사랑은 인민에게 건전한 사상정신적량식을 주는것이며 인민에 대한 최대의 죄악은 인민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사상적으로 타락시키는것이다.
2006년 6월 8일 로동신문 기사 《인민에 대한 사랑은 우리 당 선군정치의 핵이다》중
"나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높이 발양되고있는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육탄정신, 자폭정신을 혁명적 군인정신이라고 하였으며 전당과 온 사회가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도록 하였습니다. 전당과 온 사회에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는 기풍이 높이 발양되고 인민군대의 위력이 더욱 강화되였을 때 우리의 령도는 선군령도이고 우리의 정치는 선군정치라고 하였습니다."
"당신들의 아들딸과 손자들이 다 군대에 나가 있는데 당신들이 군량미를 보내주지 않으면 누가 보내주겠는가. 군량미를 보내주지 않으면 미국놈들이 쳐들어와도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러면 당신들도 다시 노예가 되고 당신들의 아들, 딸, 손자들도 노예가 된다. (중략) 우리 사람들에게 식량이 모자라기 때문에 하루에 4백50g만 먹고 나머지 식량을 군량미로 바치라고 하면 다 바칠 거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7년 현지지도 중 비밀리에 한 말. # 고난의 행군의 피해를 가중시킨 요인이 외부 원조와 내부 식량을 군량미 명분으로 걷어갔다는 것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옥에는 티가 있을 수 있어도 공산주의자에게는 티가 있을 수 없다."
김정일 노작 <<영화예술론>> 중
"부르죠아어용학자들은 립법권과 행정권, 사법권을 분립시키는것이 민주주의의 징표인듯이 묘사하지만 사실상 3권분립은 봉건전제주의를 반대하여 부르죠아지가 들고나온 주장의 하나입니다."[46]
"제국주의자들과 그 대변자들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여러가지 사상이 있게 되는 현상을 놓고 사상의 <자유>라고 떠벌이면서 그것이 마치 <자유세계>의 자랑인듯이 광고하고 있다."[47]
"자본의 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사상의 자유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
1996년 2월,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의지를 드러내며. # 사실 1996년 이전에도 쓰인 말이라고 한다.[49]
한 작가의 사유의 총량은 그가 소유한 언어의 총량과 맞먹는다. 작가는 자기가 알고있는 언어량만큼 사색하고 표현한다. 언어는 작가에게 있어서 병사의 총과 같은 무기이다. 명문장을 떠나 풍부하고 세련된 묘사를 생각할수 없고 언어형상의 정확성, 참신성을 살리지 못하면 문학작품의 진실성, 독창성을 기대할수 없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한 문학작품에서 어느 한 대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알맞는 표현은 하나밖에 없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한 대상에 가장 알맞는 표현은 하나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대상, 현상을 명중할수 있는 그 유일한 말마디를 면바로 골라잡을줄 알아야 한다.
형상의 벗, 26쪽.
"현대전은 전자전이다. 현대전의 승리와 패배는 전자전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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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 10월의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 직후 金正一에서 金正日로 개명. [2]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으로는 Kim Chŏngil이 되나 북한의 자체적인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Kim Jŏng Il이다. 그러나 해당 표기법에서는 변별 기호를 생략할 수 있다고 해 두었으며, 실제로도 북한 당국은 Kim Jong Il이라는 표기만 일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3] 유리 이르세노비치 킴. 김 가의 일성의 아들 유리라는 뜻이다. [4] 또는 Kim Jong Il; IPA: /ˌkɪm dʒɒŋˈɪl/ [5] 1941년생이지만 북한에서는 1942년생이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한다. 김일성 생년과 정확히 30년 차이 나게 맞추려는 의도로 추정. [6] 북한의 공식적 주장으로는 ' 북한 량강도 삼지연시 백두산밀영동 백두산 밀영'(이북 5도 상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 포태리)이 출생지라고 한다. 때문에 백두혈통이라는 기괴 표현이 등장함 [7] 당시 조선중앙TV에서 보도한 내용 중 일부. [추정] 오전 8시 30분경에 자신이 자주 타고 다니던 태양호에서 심근경색과 심장성 쇼크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룡성역 인근으로 추정, 북에서는 과로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9] 이미 이전부터 암암리에 확인된 사안이긴 하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본인이 직접 확인해주었다. [10] 몇 세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일성의 사망일을 예언한 것으로 화제가 된 풍수지리사 손석우의 저서 『터: 육관 도사의 풍수·명당 이야기』에 따르면 33세손(또는 해석에 따라 34세손)이 된다. 그러나 현존하는 어떤 문헌에서도 교차검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PL] 사후 추서 [PL] [13] 키가 150cm가 안 되는 전 미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김정일을 만나본 뒤 자신과 키가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고 그로 인해 157cm 정도라는 설도 있었다. 반면 김일성은 당대 기준으로 엄청난 장신이었다. [14] 처조카 이한영의 증언. 이한영은 김정일과 아들 김정남 두 사람이 계단오르기를 하며 다이어트를 하는 것을 자기도 똑같이 하며 도와줬다고 밝혔다. 이한영이 1982년에 탈북했으니 못해도 1970년대 이전부터 쭉 비만이었던 것이다. [15] 최은희 씨의 증언. [16] 출처. [17] 국가원수(元首)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元帥)' 자체가 하나의 군 계급명이다. 북한의 일반 직업군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계급인 그냥 '원수'(인민군 원수)보다 높은 계급으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만을 위한 계급이다. 김일성은 6.25 전쟁 당시 이 계급이었다가 나중에 대원수로 격상되었고 현재는 김정은이 해당 계급에 있다. [18] 생전에 대원수 계급을 받은 자는 김일성이 유일하며, 추서된 자를 포함해도 김일성과 김정일 둘뿐이다. [19] 한국인들의 일반적 인식과 달리 서방 측에선 이미 1980년대 부터 남한의 재래식 군사력이 북한을 추월했다고 본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서는 1980년대 부터 남한의 국방비가 북한의 2배 이상 앞섰다고 지적했으며, 1999년에는 북한군 전투력보다 한국군 전투력이 2~3배 이상 상회한다고 분석했다. # [20] UN 통계 기준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1인당 GDP가 낮은 20개국 중 하나로 꼽히기 시작한 것이 2008년이다. [21] 이조차도 불확실하다. [22] 8월 종파 사건 등으로 중국과 소련에서 김일성이 자신을 배반하는 것을 직접 겪어보아도 손을 제대로 못쓸 지경이었다. 거짓말을 매우 지능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한에서도 2000년대에 수천 명의 탈북민의 키를 재보니 북한이 김일성 집권기인 70~80년대까지 성장한 것이 아니었냐며 광복 후 세대의 키의 성장이 멈춘 것을 보고 설명을 못할 정도였다. # 잘해야 국부만 늘고 주민들에게는 식량을 안 주면서 국정이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23] 약 5년간 인구의 5%가 사망했으며 이는 대약진운동 당시 발생한 삼년대기근과 비슷한 수치이다. 거기다가 2년 만에 끝난 삼년대기근과 달리 고난의 행군은 5년이나 지속되었으며, 동구권과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가 호황이던 1990년대 초중반부터 발생한 대기근이기에 훨씬 악질이다. [24] 외국에서 지원해준 식량을 주민들에게 제대로 나눠주기는커녕 군량미 명목으로 걷어가고 이를 제대로 분배하지 않아(원조 식량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북한 프로파간다에서 '대용식료품'을 먹도록 조장했다) 미필적 고의로 장기간 동안 수십만 명을 서서히 굶어죽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주민들이 농사지은 식량까지 군량미를 명분으로 걷어갔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김정일은 '쪽잠에 줴기밥' '외국이 조선을 봉쇄함과 동시에 식량 원조를 전혀 해주지 않아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속이며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자신의 초호화 생활에 탕진했다. 덕분에 당시 북한 정부는 외부의 지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호황기에 대규모 기근이 전란 하나 없이 4~5년이나 계속되어도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하는, 가히 칠천량 해전과 동급 수준으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25] 1968~1972/73년 사헬 지대에서 가뭄으로 인한 장기간의 기근이 있긴 했지만 저들은 내륙국 사막 지역 위주로 일어났다는 변명이라도 가능하며, 프란시스코 프랑코 집권 초 스페인의 기근(1939~1953) 역시 스페인 내전의 후유증에(본격적인 기근은 늦어도 1946년 끝났다) 타 유럽 국가들도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복구 중이라 제 코가 석 자였기에 스페인을 도울 여력이 없었다. [26] 김일성은 한 짓에 비해 서양권에서는 인지도가 부족하고, 김정은은 김정일보다는 인지도가 높긴 하나 아직까지는 아버지에 비해 보여준 임팩트가 덜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 한류 탄압 등 관점에 따라서는 더 막장스러운 짓도 저지르고 있기에 그의 집권이 끝나야 어느 정도 평가가 정리될 듯하다. 하지만 악행의 질을 전혀 따지지 않으면 전반적으로는 김정일이 김정은보다 압도적으로 악행의 스케일이 크다. [27] 탈냉전 시기 악행의 정점을 찍었던 사담 후세인, 오마르 알바시르, 로버트 무가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바샤르 알아사드, 아들 김정은, 민 아웅 흘라잉 등이 있기는 하나 다른 시대(특히 1970년대)에 비해서는 확실히 드문 편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사담 후세인은 내치 면에서 악행을 시작한 때가 1980년대 냉전 시대였으며, 바샤르 알아사드와 김정은, 흘라잉은 아예 신냉전 독재자로 분류되는 게 일반적이다. [28] 다만 평가에 따라서는 알바시르와 무가베가 더 나쁘게 평가받는 경우도 있다. [29] 주성하는 100만 명 미만이 죽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30] 일본군 위안부를 지칭할 때의 그 위안부가 맞다! 기쁨조 여성들은 위관급 계급까지 부여받았으니 사실상 위안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31] 참고로 김일성도 생전에 기쁨조를 즐겼고, 김정은은 증언에 따라 기쁨조 유무 여부가 엇갈리지만 일반적으로 김일성, 김정일보다는 훨씬 덜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32] 물론 북한 관영 매체에는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애초에 김정일의 육성이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된 것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60주년 경축 열병식에서 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라는 한 마디가 유일하다. [33] 당연하게도 이는 김정일 본인 때문이다. 북한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든다고 해봤자 김씨일가 선전 영화가 대부분이고 아무런 의도 없이 만든 영화조차도 왜곡된 해석을 엮고 엮어서 반역 음모 영화라며 감독들과 스태프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집어넣고 총살도 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때문에 북한 영화감독들도 북한 기준으로 딱 중간만 하는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영화를 섭렵한 김정일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도 만족할 수가 없는 것. [34] 저 당시 기쁨조들은 김정일의 명령으로 나체 상태였다고 한다. [35]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의하면 장성택의 다리에는 쇳물이 튀어 화상을 입은 자국들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36] 김정일은 전형적인 채찍과 당근 전략으로 간부들을 다스렸다. 그는 간부들에게 온갖 특혜와 사치품을 제공하다가도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간부가 있으면 호화파티에 일부러 초대를 안하는 것은 물론이고 잠시 숙청해 공장이나 탄광 또는 농장으로 혁명화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숙청된 간부를 복권시켜서 마치 자신이 진정으로 간부를 사랑하는 존재인 것 처럼 가스라이팅했다. 이를 통해 김정일은 간부들의 충성경쟁을 유도했다. [37] 김정일은 평소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어눌해서 대중연설하는 것을 꺼리고 김일성은 매년 했던 신년사를 김일성 사후엔 사설연사로 대체했다. 이는 고영환, 김길선 등 김정일을 잘 아는 탈북자들에 의해 교차검증된 사실이며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몰래 녹음한 녹취록에서도 김정일의 발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그나마 평소보다 또박또박 말한 편. [38] 당시 오진우는 김일성, 김정일 다음가는 북한 권력서열 3위였다. 실질적인 2인자조차도 1인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북한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39]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한 농담이다. 남측 카메라가 비췄을 때는 웃으면서 밝게 대화를 나눴지만 남측 카메라가 철수하고 김대중과 남측 지도부만 남은 상황에서는 김대중 앞에서 무례한 얘기들도 많이 했다. 김정일/성격 참고. [40] 실제로는 전국 각지의 초호화 별장을 돌아다니며 잠을 잤으니 아주 거짓말만은 하지 않은 셈이다. [41] 텐브루너의 오기로 보임. [42] 원래 힘러의 직책은 SS국가지도자이고, 실제 부총통직에 해당되는 총통 비서는 마르틴 보어만이다. 그래서 독일 부총통은 오역. [43] 정작 본인은 코카콜라도 아닌 코냑을 틈만 나면 마셨다. [44] 대놓고 평양 주민과 지방 주민을 갈라치기하고 있다. [45] 당시 미국은 9.11 이후로 온 나라가 전쟁 분위기였고 김정일이 말 잘못하면 이라크와 같은 축으로 묶여서 북한과도 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46] 대놓고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있지만 사실 해당 주장은 김정일만의 주장은 아니다. 애초에 마르크스-레닌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체가 입법부와 행정부의 분리를 부정하는 사상이다. [47] 북한은 자신들이 주체사상 하나만 허용하는 것을 '사상적 일색화' '일심단결' 운운하며 자신들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48]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선전선동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지만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 대중가요와 영화, 드라마가 2000만 북한 인민의 심장을 움직이면서 북한 체제까지 위협하고 있다. 즉,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김정일의 발언은 어떤 면에선 그대로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49] 김일성의 사망으로 무산된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시절엔 김일성과 김정일이 의견차로 다투었던 게 이것 때문이다. 김일성은 말년에 들어서 개혁개방을 주장했지만 김정일은 본인의 권력만을 위해 외부사상이 유입되지 않기 위해 북한을 폐쇄국가로 만들고 싶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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