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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희 (첫번째 배우자) 김정숙 (두번째 배우자) 김성애 (세번째 배우자) |
성혜림 (내연녀) 김영숙 (배우자) 고용희 (내연녀) 김옥 (내연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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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성애 |
|
출생 | 1924년 12월 29일 |
평안남도 강서군[1] | |
사망 | 2014년 9월 (향년 89세) |
자강도 강계시 | |
본관 | 전주 김씨[2] |
학력 | 평양여자사범학교 (중퇴) |
가족 |
남편:
김일성 자녀: 김평일, 김영일, 김경진 남매: 김성갑, 김성호 |
군사경력 | |
복무 | 조선인민군 륙군 |
1947년 ~ 1953년 | |
최종 계급 | 상사 |
참전 | 6.25 전쟁 |
복무 부대 | 국가원수 집무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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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성애 동지의 지시는
곧 나의 지시입니다."
- 김일성
북한의 국가 주석이었던
김일성의 셋째 아내.
조선민주녀성동맹(現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 중앙위원장직을 역임했다.- 김일성
자신의 아들 김평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고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지미 카터와 김일성의 회담 등 공식 석상에 자주 나타났지만 김정일이 차기 후계자로 선정되면서 입지가 축소되었고 자신의 아들, 딸도 본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는 그래도 부인인지라 공식 직책은 가지고 있었지만 김일성 사후에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고 야인으로 살았다.
본명은 김성팔이라는 설이 있다.
2. 생애
젊은 시절의 모습.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농사꾼의 딸로 출생했고 사범학교에도 진학했다고 추정되는데 무학이 많고 문맹률도 70%대에 달했던 일제강점기 기준으로는 고학력자였다.[3] 김일성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47년 군에 입대하면서부터였는데 공교롭게도 그녀를 발탁한 인물은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었다고 한다.
6.25 전쟁 시절 2번이나 포로로 잡힌 적이 있었다. 그것도 같은 사람에게.
첫번째는 개전 3일째인 1950년 6월 28일 서울 미아리 고개에서 행군 중 소변 보러 처졌다가 후퇴 중 뒤처져 있던 한국군 이기봉에게 붙잡혔는데 소속은 4사단 18연대 문화부 소속이며 계급은 없고 분대 선전지도원이라고 밝혔고 따발총과 함께 군인증과 공산주의 정치 선전문, 김일성 개선기, 김일성 유격대 전사초 따위의 소책자를 갖고 있었다. 이때 자신의 고향은 평안북도 강계시이며 외가가 있는 평안남도 순천시 순천여자사범전문학교 재학 중 조국해방전쟁에 참여하였다는 말도 하였다. "군인증과 김일성 소책자를 돌려 달라"고 하다가 안 된다고 하니 "그럼 안녕하라요, 그리구 기 책 잘 간직하구 수령님 항일혁명 투쟁사 깊이 연구하라요!"라고 하면서 그대로 산속으로 도주하였다.
2번째는 인천 상륙 작전 이후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에서 이기봉이 10여 명의 포로를 잡았는데 그 중 하나가 한쪽 어깨에 피를 철철 흘리던 그녀였다. 그러나 이천극장에 수용 중 새벽 2시쯤 변소를 가는 척하다가 복도 경비를 맡고 있던 치안대 한 사람의 옆구리를 칼로 찌르고 달아 났다.[4]
휴전 후 북한 호위국 부관으로 발탁되었다가 김일성과 지속적인 애정관계를 가졌고 김평일을 낳은 뒤에 1957년 김일성과 정식으로 결혼했으며 1963년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당시 조선민주녀성동맹) 부위원장, 1971년 의장까지 맡는 등 계속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다. 김일성이 바람을 숱하게 피우면서 바가지가 긁히자 그녀를 달래기 위해 일가에게 요직을 퍼주고 그녀를 중앙여맹 위원장에 앉혀 놓았는데 여맹은 북한에서 기혼이거나 만 30세 이상인 여성들은 자동가입되는 방대한 조직이고 인민반장과 더불어 북한 사회 체제를 기초부터 장악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엄청난 권력을 누렸다. 인민반장도 모두 여성으로 대개 제대군인이나 로동당원을 시키는데 당위원회에서 시키는 로력동원이나 충성자금 상납, 동네 미화 등 여러가지 사업들이나 일들을 주민에게 지시하고 가스점검이나 위생점검같은 안전관리 업무는 물론 사상동향 보고나 사생활 보고를 하면서 단속하는 역할을 같이 맡는다. 아무리 말단 인민반장도 중앙부서 간부들의 생활을 보고하면 그대로 부서 당위원회에 통보된다. 탈북 외교관 고영환 김동수 박사도 인민반장에 찍혀서 해외파견 예정 외교관이 해직당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만큼 북한에서는 인민반장이 동네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직위임을 알 수 있다.[5] 남성에게는 세대주 반장을 시키지만 직장에서 일하면서 별개의 단체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굳이 동네 일들을 맡기지는 않는다.
1965년 9월 김은순 장의위원, 1965년 12월 서채순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러나 1973년에 벌어진 인민대학습당 사저신축사건으로 권력이 축소되었다. 여맹조직도 그녀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세포조직들을 해체하여 그녀가 가질 수 있는 권력은 없어지고 야인이 되었다.
인민대학습당 사저신축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1973년 그녀의 아들들을 나락으로 몰아내는 사건이 터졌는데 김일성이 해방 직후부터 아껴두고 또 아꼈던 인민대학습당을 건설하려던 부지를 방문했는데 호화로운 저택이 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김일성이 놀라서 "뭐이야, 이게? 누구네 집이야?"라고 묻자 저택을 지키던 보초가 "해군사령부 정치위원 당비서, 김성갑[6] 동지의 집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이 곧 '인민대학습당 사저 신축 사건'으로 번졌다. 김일성은 대노했고 당사자 김성갑을 불러서 매우 혹독하게 비판하고 질책했다.
그날 밤 지친 김일성이 관저로 돌아가서 그녀에게 "밥이나 먹자."고 하자 한 성깔하는 그녀는 김일성을 구슬러도 모자랄 판에 바가지를 긁었는데 "당신 가시어머니( 장모님)가 그런 집에서 한번 살면 당신 뭐 잘못되는 거 있어?"라고 소리 지르면서 밥상을 뒤엎었다. 난데없이 뜨거운 국과 밥을 다 뒤집어 쓴 김일성은 폭발했고 그날 밤 둘이서 미친 듯이 싸웠다고 한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김정일은 그녀와 그녀의 친족들, 친지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인 김평일의 비리를 김일성에게 낱낱이 보고했다. 김정일은 무척이나 북한의 수령이 되고 싶어해서 온갖 권모술수를 부렸다. 남일 장군을 차로 치어 죽였다는 의혹도 있는데 이복동생인 김평일의 뒷조사를 안 했을 리가 없었으며 꾸준히 그녀와 김평일 모자의 뒷조사를 해 두었던 내용들을 김일성과 그녀의 사이가 나빠진 틈을 타서 보고했으며 다시 강도 높은 검열과 사상검증을 실시했다.
그 결과로 이들의 대부분은 숙청되어 권력의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녀와 그 일가가 워낙 부정부패, 권력 남용을 대놓고 일삼았기 때문에 나중에 세습에 비판적인 북한 여론조차도 김정일의 최대 치적으로 김성애 패거리를 쳐낸 것을 기쁘게 여길 정도였다. 김일성도 중앙여맹 비서직을 쓰던 그녀에게 화를 내면서 비서는 오직 로동당에서만 쓰는 직위라며 위원장 직위로 강등시켰...다는데 이는 확인이 필요하다. 당의 외곽단체인 사로청의 장만 해도 김일성 시대, 김정일 초기까지 사로청 비서로 불렀다.
그러나 1977년 상설회의 의원으로 복귀한 뒤 1983년부터 여성동맹 위원을 다시 지내는 등 북한 상층부에서 요직을 지내면서 해외 우방국가 원수들의 북한 방문 시 김일성과 함께 영접에 나섰으나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보도용 사진이나 영상에서는 나오지 않는 굴욕을 겪었는데 이는 김일성이 맞은 마지막 외국 귀빈인 지미 카터 부처의 방문에도 이어졌다.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장의위원회에 "미망인 김성애 동지"로 이름을 올렸으며 1995년 오진우의 장의위원에 임명된 것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은 사실상 북한 정계에서 사라졌다. 그나마 공식석상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1997년 김일성 사망 3주기 추도식이었고 이후에는 그야말로 이름도 찾기 힘든 신세로 전락했다.
1998년 4월 24일 녀맹 5기 28중전회에서 녀맹 중앙위원장에서 해임되어 천연옥에게 자리를 물려줌으로써 북한을 떠들썩하게 한 '여맹 비서'직을 내려놓았고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탈락하여 완전한 야인으로 전락했다. 그나마도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후 해임된 적이 없으니 2010년 3차 당대표자회에서 해임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지, 명목상이나마 30년간 중앙위원직을 유지했다는 증거조차 없다. 이후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신세가 되어 완벽히 잊혀졌다. 1호 호위총국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1990년대 초부터 실성하여 초대소 근처를 배회하며 알아듣지 못할 욕설로 세월을 보내며 고독하게 지냈다고 한다.[7][8] #
말년에 자강도 강계시의 별장[9]에서 사실상의 유배 생활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
3. 사망
그러다가 2014년 이후 사망설이 나돌기 시작했지만 북한의 특성상 확인하기 어려웠으며 정부 기관도 이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NK지식인연대에 의하면 2014년 8월 말~9월 초 정도에 사망했다고 한다. #2018년 12월 12일을 기해서 대한민국 정부는 그녀를 사망한 인물로 간주하기로 결정하였으나 그 구체적 시기나 사인에 대해서는 최근에 사망한 것은 아니라는 말과 함께 아직 협의가 필요하단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
통일부에서 발간한 북한 주요인물정보에 의하면 2014년에 사망했다. # 물론 이런 정보는 그냥 통일부나 한국 정보기관에서 2014년 쯤에 그녀가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 정도에 불과해서 실제로 2014년에 죽은 것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 가령 강성산 전 총리만 해도 통일부에서 2007년 사망으로 두루뭉술하게 적었으나 실제론 2000년 6월에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4. 가계
자세한 내용은 백두혈통 문서 참고하십시오.- 장녀(?) 김경숙 (1951년 ~ ) - 존재 여부 불확실
- 장녀 김경진 (1952년 ~ )
- 장남[10] 김평일 (1954년 ~ )
- 차남[11] 김영일 (1955년 ~ 2000년?)
===# 가계도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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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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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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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대 |
제
2 대 |
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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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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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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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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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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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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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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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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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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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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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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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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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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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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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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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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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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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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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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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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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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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중매체에서
- 1982~1985년 KBS 1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반공 드라마 《 지금 평양에선》에도 등장하는데 배우 사미자가 연기했다. 김일성의 아내라는 위치를 십분 활용하면서 정권 핵심층 내부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드센 모습으로 나왔다.
[1]
現
남포특별시
강서구역.
[2]
김일성도 전주 김씨지만 북한에서는
동성동본의 혼인 금지가 1948년 없어지긴 했다.
[3]
당장 김일성의 전처인 김정숙이 무학에 문맹이었다고 하며, 김일성도 중학교 중퇴로 당시 기준으로는 고학력이었다. 지금 기준으로도 SS급 학력인
이승만이 비정상인 셈이다.
[4]
이기봉, <서울이 울던 밤> 에서 발췌.
[5]
탈북자들이 한창 남한에 많이 넘어오기 시작했을 때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서 일종의 홈스테이 비슷하게 남한 가정에서 살게 하면서 이들로부터 남한 생활을 배우게 하는 방안이 시도된 적이 있었지만 탈북자들이 매우 싫어해서 금방 사라졌다. 왜냐하면 탈북자들은 남한의 도우미 가정을 일종의 인민반장으로 해석해서 남한에 와서도 감시받는다고 학을 뗐기 때문이다.
[6]
김성애의 남동생. 장진성의 증언에 따르면 그나마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처박히진 않고 몰락한 후에 술독에 빠져서 살다가 간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7]
말을 받아주지 말고 그냥 무시하라는 상부 지시로 초대소 근무 경호원들조차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고 하며 김성애의 운전기사나 비서도 1년에 한 번꼴로 계속 교체되어 사실상 그 누구에게 하소연하거나 의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가끔 김평일이 어머니를 찾아오지만 그때마저도 제3자의 입회조건으로 이루어지는 면담이라고 힌다. 어떻게 보면 사실상 호화생활만 할 뿐이지
ADX 플로렌스 교도소 수감자와 비슷한 처지가 된 것이다.
[8]
다만 적어도 김성애는 전술한 것처럼 90년대 후반까지는 나름대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 탈북자가 시기를 헷갈렸을 가능성도 있다.
[9]
김영주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10]
김일성에겐 3남.
[11]
김일성에겐 4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