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ЗиС-30 |
1. 개요
ZiS-30은 1941년에 만들어져 소련군이 사용한 경량 대전차 자주포이다. T-20 콤소몰레츠 화포견인차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2. 제원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분류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 대전차 자주포 |
무게 | 4톤 |
전장 | 3.45m |
전고 | 2.23m |
전폭 | 1.86m |
장갑 |
전면 10mm, 측-후면 7mm 포방패 5mm |
승무원 | 4~5명[1] |
주무장 | 57mm ZiS-2(20발) |
고저각 | -4°/+22° |
회전각 | 양쪽 다 ±30° |
부무장 | 7.62 mm DT기관총[2] |
고저각 회전각 |
±10° |
엔진 | GAZ-M 4기통 액랭식 디젤 (50마력) |
속도 |
최고 40 km/h 후진 속도 6km/h |
항속거리 | 250km |
서스펜션 |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 |
등판각도 | 32° |
수직 벽을 넘을 수 있는 높이 | 47cm |
웅덩이, 참호 돌파 길이 | 1.4m |
도섭 가능 깊이 | 60cm |
생산량 | 100대 |
3. 개발
독소전쟁이 시작되고, 독일 국방군은 기계화부대와 차량화부대로 신속하게 전장까지 갈 수 있었다. 독일군의 기갑전력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운용되었다. 반면에 소련군은 대전차포 부대부터 트랙터나, 말로 끄는 오래된 방식이었으며, 이러한 운송수단으로는 효율적으로 전선에서 운용하거나 빠르게 전장까지 갈 수 없었기도 하고, 공격에 취약하기도 했다.1941년 7월 1일, 인민 군사장비 위원회(НКВ, People's Commissariat of Armament)의 보리스 르보비치 바니코프(Борис Львович Ванников, 1897~1962)는 명령문에 사인을 했다. 그 명령문의 내용은 이렇다.
"대전차포와 대공포의 자주화된 체계[3]가 없는 것을 고려해서 그러한 무기들이 긴급 필요하다."
1. 4번 공장은 37mm 대공포를 장착한 자주대공포를 개발하고 생산할 것.
2. 8번 공장은 85mm 대공포를 장착한 자주대공포를 개발하고 생산할 것.
3. 92번 공장은 57mm 대전차포를 장착한 자주포를 개발하고 생산할 것.
"자주대공포의 섀시나 차체는 오프로드 트럭이나 무한궤도가 달린 트랙터로 해야한다.[4] 대전차 자주포는 파편이나 총탄을 막을 수 있는 포탑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자주포 프로젝트 안건은 1941년 7월 15일까지 상부에 제출해야 한다."
1. 4번 공장은 37mm 대공포를 장착한 자주대공포를 개발하고 생산할 것.
2. 8번 공장은 85mm 대공포를 장착한 자주대공포를 개발하고 생산할 것.
3. 92번 공장은 57mm 대전차포를 장착한 자주포를 개발하고 생산할 것.
"자주대공포의 섀시나 차체는 오프로드 트럭이나 무한궤도가 달린 트랙터로 해야한다.[4] 대전차 자주포는 파편이나 총탄을 막을 수 있는 포탑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자주포 프로젝트 안건은 1941년 7월 15일까지 상부에 제출해야 한다."
기록에 따르면, 그리고리 쿨리크 장군이 명령문의 오류를 수정하고 정치인들에게 무기 개발안건의 실수에 대해 지적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정치인들보다 화포와 무기 체계에 지식이 어느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기에 대해 몰랐던 바니코프는 모든 것을 혼자 했다.[5]
92번 공장의 최고 감독이었던 V.G. 그라빈(В. Г. Грабин, 1900~1980)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 설계국은, 기동성을 향상한 화포 체계를 몇년 동안이나 개발하고 있다. 얻은 결과로는, 화포는 행군 도중 빠른 속력으로 같이 따라 잡을 수 있는 기동성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도 좋은 기동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궤도 차량에 포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자주포를 만들기 위해서. 첫번째로 걱정된 것은, 이 무기체계는 대전차포 부대나 사단급 포병 부대용 목적이었으나, 적군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 나타날 수 있을 자주포 체계는 우리는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었으니 그럴만했다.
1940년이 끝나기 전, 설계국은 자주포 개발안을 신청했다. 이 개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사람은, 포병관리국( GAU)의 총책임자였던 그리고리 쿨리크 장군이었다. 빠른 기동성과 쓸만한 자주포에 대한 아이디어는 우리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우리는 57mm ZiS-2 대전차포나 76.2mm F-22 USV 사단포를 장착할 궤도 차량을 찾으러 다녔다.
F-22 USV 사단포를 장착할 계획은 결국에는 폐기되었다. 왜냐하면 포가 너무 크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ZiS-2 화포는, T-20 콤소몰레츠 궤도식 트랙터에 장착해보았다. 주행/사격 테스트를 하는 동안, 좋은 결과들을 얻었다. 좋은 명중률, 빠른 장전속도, 안정성, 차량의 기동성, 험지 기동성까지 모두 다 갖췄기 때문이다."
92번 공장에선, 바니코프의 명령안을 이행하기 위해, 페테르 페도로비치 무라브예프( П. Ф. Муравьев, 1907~1980)의 감독 아래, 개발국의 인원들은 자주포 개발에 몰두했다. 1941년 7월 말, 두 개의 자주포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ZiS-30과 ZiS-31이었다.
ZiS-30은 T-20 콤소몰레츠 화포 견인 트랙터에 57mm ZiS-2를 얹은 것이며, ZiS-31은 GAZ-AAA 트럭에 57mm ZiS-2를 얹은 모델이었다.
두 차량은 7~8월에 테스트를 거쳤다. 결과는 ZiS-31 자주포 트럭이 ZiS-30보다 명중률과 포 안정성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었으며, 험지 주행력은 ZiS-31이 ZiS-30보다 상당히 낮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두 차량 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었으므로, 두 차량 다 합격을 했지만, 한 개만 채택해야 했기 때문에, 이 채택여부는 테스트를 참관한 군 요인들과 정치인들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결국에는, T-20 궤도 트랙터에 포를 얹은 ZiS-30이 소련군에 재식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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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T-20 콤소몰레츠 트랙터, 아래는 ZiS-30 |
하지만 문제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T-20 콤소몰레츠 궤도 트랙터를 생산하던 모스크바의 37번 공장이 부정확한 생산 계획과 여러 차질로 인해 궤도 트랙터 생산을 중단하고 기존의 경전차 생산만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변경되기 이전에, T-20 콤소몰레츠는 많이 생산되었는데, 대부분의 수는 전선에서 군인들이 화포 견인, 보병 수송을 목적으로 절찬리에 운용하던 중이었으므로, 군대에서 뺏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92번 공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군대에서 사용하다가 고장난 T-20 트랙터를 가져와야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9월 21일이 되어서야 ZiS-30 생산을 시작했다. 다만, 아래 후술할 ZiS-30의 큰 단점들이 있어서, 소련 상부는 ZiS-30 생산중지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1941년 10월 15일까지 총 100대를 생산했다.[6] 그 중 한 대의 ZiS-30은 45mm 53-K 대전차포를 장착했다.
하지만 페테르 무라브예프의 디자인팀은 자주포 체계의 중요성과 효율성을 알고 있었던 터라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10월 초, ZiS-41 차량을 만들었다. ZiS-41은 ZiS-22M[7] 반궤도 트럭에 장갑을 두르고, 57mm ZiS-2 대전차포를 얹은 대전차 자주포였다. 이 차량은 모스크바에서 생산되었고 1941년 11월에 테스트를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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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S-41 |
다시 ZiS-30 이야기로 돌아가서 기록 자료에 따르면, ZiS-30은 공장 표기 코드였고, 이 명칭을 실수로 군대에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운용하는 일선 장병들과 군대 기갑장비 목록에는 ZiS-30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군대는 "57mm 대전차포" 라고만 표기했을 뿐이었다. 57mm ZiS-2 대전차포와 명칭이 겹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혼동되는 표기가 그대로 장비 목록에 올라갔다. 후기 전쟁역사가와 군사학자들이 ZiS-30이 사용된 부대들을 어떻게 알아냈냐면, ZiS-30(서류상으론 57mm 대전차포)을 운용하던 부대의 연료 필요 서류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ZiS-2 대전차포는 견인식이라 트랙터, 소/말이나 인력으로 끌 수 있었기 때문에 기름이 필요하지 않았다.
4. 실전
4.1. 제2차 세계 대전
4.1.1. 독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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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S-30의 실전 사진 |
하지만 ZiS-30을 계속 운용해본 실 사용자의 입장으로선 많은 단점들이 있었다. 주된 이유는, T-20 콤소몰레츠 트랙터는 이런 무기용도가 아닌, 그냥 조그만 궤도가 달린 화포 견인용 트랙터였기 때문이다.
포병관리국(GAU)은 57mm ZiS-2와 ZiS-30을 운용하는 부대로부터 보고서를 받았다.
"포의 무게가 무거워 과적상태라서 후방의 보기륜이 압박을 많이 받고 있어서 차량의 운행성능이 불안정함. 이런 문제와 더불어 항속거리도 제원상에 나온 것보다 더 떨어짐. 또한, 포탄의 적재량도 매우 적음.(20발) 포의 회전각이 양옆(±30°)으로 너무 길지만, 그에 반해 뒷좌석은 너무 길이가 작고 좁기 때문에 탄 장전이 힘듦.[9] 또한, 조종수와 포수간의 차내 통화장치가 없어서, 서로의 연락이 불가능하여 효율적인 운용이 어려움. 더군다나, 포수나 탄약수가 급할 땐 서서 포 운용을 하는데, 이때 차가 옆으로 선회만 하면, 포에 있던 운용인원들이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매우 빈번함."
이런 문제 말고도, 포 뒤쪽엔 아무런 장갑이 없어서 비나 눈은 당연하고 적군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갑이 너무 얇고 포를 쏘면 반동이 너무 세서, 트랙터가 출렁거리는 것이었다.[10]
ZiS-30은 전투 도중 적군에게 격파되는 등 소모되어갔다. 고장난 차량은 후방으로 보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왜냐하면 공장들은 전부 우랄 산맥 뒤쪽으로 피신한 상태였으며, ZiS-30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KV-1 전차나 T-34-76 전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42년 여름 이후 살아남은 ZiS-30은 없게 되었다.
5. 미디어
5.1. 게임
5.1.1. 워 썬더
소련 테크 트리의 2랭크에 등장한다. 포의 성능이 동랭크 전차들보다 뛰어나지만 탄약을 20발밖에 안들고 다닌다.5.1.2. 블리츠 1941
소련의 첫 구축전차로 등장한다.5.1.3. 강철의 왈츠
3성 구축전차로 등장한다.5.1.4. 로드 투 발러:월드워2
소련측 유닛으로 등장한다.6. 모형
6.1. 프라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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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S-30 |
7. 틀 둘러보기
기갑차량 둘러보기 | ||
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포반장, 포수, 탄약수, 운전수, 전방 기관총 사수
[2]
756발=63발 드럼탄창 12개
[3]
쉽게 말해,
자주포나
자주대공포.
[4]
왜냐하면 두 개의 차량은 그 때 당시 산업현장이나 공장, 군대에서 많이 운용되었기 때문이다.
[5]
쿨리크 장군의 지적을 정치인들이 들었는지 안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6]
9월엔 44대, 10월엔 56대
[7]
나중엔 ZiS-42로 이름이 바뀜
[8]
57mm 포의 성능은 매우 뛰어났다.
[9]
화포를 옆으로 틀었을 시, 장전을 위한 원활한 공간이 없어 장전수가 차 밖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10]
이러한 단점들은 워 썬더에서 잘 볼수 있다. ZiS-30은 이런 포 반동을 억제하기 위해 차량 뒷편에 두 개의
포다리를 장착했는데도 포 사격시의 반동이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