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I 선정 가장 위대한 배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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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 여배우 순위이다.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험프리 보가트 캐서린 헵번 |
케리 그랜트 베티 데이비스 |
제임스 스튜어트 오드리 헵번 |
말론 브란도 잉그리드 버그만 |
프레드 아스테어 그레타 가르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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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헨리 폰다 마릴린 먼로 |
클라크 게이블 엘리자베스 테일러 |
제임스 캐그니 주디 갈런드 |
스펜서 트레이시 마를레네 디트리히 |
찰리 채플린 조안 크로포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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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게리 쿠퍼 바버라 스탠윅 |
그레고리 펙 클로데트 콜베르 |
존 웨인 그레이스 켈리 |
로런스 올리비에 진저 로저스 |
진 켈리 메이 웨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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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오슨 웰스 비비안 리 |
커크 더글러스 릴리안 기시 |
제임스 딘 셜리 템플 |
버트 랭카스터 리타 헤이워드 |
막스 형제 로렌 바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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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버스터 키튼 소피아 로렌 |
시드니 푸아티에 진 할로우 |
로버트 미첨 캐롤 롬바드 |
에드워드 G. 로빈슨 메리 픽포드 |
윌리엄 홀든 에바 가드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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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영화, 사랑 영화, 뮤지컬 영화, 영감을 주는 영화, 배우, 영화 음악, 명대사 |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캐롤 롬바드 Carole Lombard[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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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제인 앨리스 피터스 Jane Alice Peters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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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8년 10월 6일 |
미국 인디애나주 포트웨인 | |
사망 | 1942년 1월 16일 (향년 33세) |
미국 네바다주 포터시산 | |
묘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포리스트 론 공동묘지 |
학력 | 페어팩스 고등학교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21년 ~ 1942년 |
신체 | 157cm |
배우자 |
윌리엄 파월 (1931년~1933년 이혼) 클라크 게이블 (1939년~1942년 사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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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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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
2. 생애 및 활동
<My Man Godfrey>(1936)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윌리엄 파월과 총 3편, 프레드 맥머리와 총 4편을 찍었다.무성영화 시절인 1921년부터 조단역으로 활동했다. 주연급으로 올라서기 전엔 Carole에서 e가 빠진 Carol로 크레딧에 올라갔다. 발음은 둘 다 캐럴로 동일하다.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와 1930년대 초반부터 주연으로 흥행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No Man of Her Own>(1932)를 찍으며 훗날 두 번째 남편이 되는 클라크 게이블과 만났지만 이 당시엔 서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롬바드는 주로 코미디 쪽에서 활동했는데, 이는 배우 본인이 그 외의 장르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33년 공포물 <Supernatural>을 찍을 때 이 문제로 감독 빅터 핼퍼린과 계속 다퉈 촬영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1934년에 개봉한 <Bolero>에선 지그펠드 코러스 걸 출신인 여주인공을 연기했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에 맞춰 남주인공과 2인조 무용 작품을 발표하던 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2] 운명이 엇갈린다. 상대역 조지 래프트는 무명 시절 택시 댄서[3]로 일했는데, 영화 속 주인공 역시 택시 댄서로 일하며 연상의 부인들 춤상대를 해주는 구간이 있다. 조연으로 나온 벌레스크 댄서 샐리 랜드[4]가 팬 댄스[5]를 추는 장면도 있다. 레이 멀랜드도 조연으로 출연했다. <Bolero>의 성공을 재현하기 위해 1935년 < Rumba>가 만들어졌다. 맨해튼 사교계 여성이 하바나의 미국인 무용수(조지 래프트 분)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그러나 <Bolero>와 달리 흥행에 실패했다.
1937년에 나온 <Nothing Sacred>는 스크루볼 코미디로 윌리엄 A. 웰먼이 연출했으며 데이비드 O. 셀즈닉의 셀즈닉 인터내셔널 픽처스[6]에서 제작했다. 롬바드의 유일한 테크니컬러 작품이다. 흑자를 보는 데엔 실패했지만 호평을 받았고 롬바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연작으로 꼽았다. 뉴욕의 기자 월리 쿡( 프레드릭 마치 분)은 오보로 망신을 당한 뒤 특종을 잡기 위해 라듐에 노출돼 죽어가고 있다는 여성 헤이즐 플래그를 만나기 위해 버몬트로 내려간다. 헤이즐은 사실 멀쩡하지만 뉴욕으로 상경하기 위해 이를 숨기면서 일이 꼬여간다.
유부남이었던 클라크 게이블과 거의 공개적으로 불륜 관계를 시작해 1939년 3월 게이블이 아내에게서 이혼을 얻어내자마자 같은 달 게이블과 결혼했다.
3. 사망
롬바드는 1942년 1월 16일 고향 인디애나의 전쟁 공채 집회에 참석해 200만 달러를 모금했다. MGM 홍보부장 하워드 디츠(Howard Dietz)는 당시 비행기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우려해 이동시 비행기를 타지 말 것을 롬바드에게 특별히 신신당부했다. 그 말을 따라 롬바드는 모금 중엔 내내 기차를 이용했다.그러나 모금 활동이 끝나자 기차 기다리는 일을 더는 반복하기 싫었던 롬바드는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던 길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어머니, MGM 홍보 직원과 TWA DC-3에 올랐다. 이륙 직후 비행기는 항로에서 이탈했고 포터시(Potosi)산 정상 인근 절벽에 추락했다. 롬바드는 당시 33세였다. 롬바드의 묘비엔 "Carole Lombard Gable"이 새겨졌다.
차후 몇 차례의 면밀한 조사를 통해 애초에 기장의 자침로(magnetic course) 설정부터 잘못돼있었으며, 일본의 공습을 우려해 인근의 항공 등대가 전부 꺼져있었기 때문에 기장이 위치 파악에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망 한 달 후에 개봉한 에른스트 루비치 연출의 <사느냐 죽느냐>는 롬바드의 대표작이 되었다. 신인이었던 상대역 로버트 스택은 이 작품으로 롬바드를 만나 멘토로 삼고 가르침을 받고 있었는데, 롬바드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절망한 게이블은 당시 찍고 있던 라나 터너와의 <너를 찾을 거야(Somewhere I'll Find You)>(1942) 촬영을 한 달 동안 중단하고 술독에 빠져살다가 영화를 완성하자마자 마흔이 넘은 나이에 공군에 입대하여 3년 동안 복무했다. 이후 게이블은 두 번 더 결혼했으나 죽은 뒤엔 롬바드 곁에 묻혔다.
4. 출연작
- 1926 The Johnstown Flood
- 1929 The Racketeer
- 1929 Big News
- 1930 Safety in Numbers
- 1931 Ladies' Man
- 1931 잃어버린 포옹
- 1931 Man of the World
- 1932 Sinners in the Sun
- 1932 No Man of Her Own
- 1932 Virtue
- 1933 The Eagle and the Hawk
- 1933 White Woman
- 1933 Supernatural
- 1934 Bolero
- 1934 20세기
- 1934 We're Not Dressing
- 1934 영원한 맹세
- 1934 The Gay Bride
- 1935 Rumba
- 1935 Hands Across the Table
- 1936 My Man Godfrey
- 1936 The Princess Comes Across
- 1936 Love Before Breakfast
- 1937 Nothing Sacred
- 1937 True Confession
- 1937 Swing High, Swing Low
- 1938 Fools for Scandal
- 1939 또다른 세계의 창조
- 1939 In Name Only
- 1940 Vigil in the Night
- 1940 They Knew What They Wanted
- 1941 스미스 부부
- 1942 사느냐 죽느냐
5. 여담
- 동료들 사이에 평판이 두루 좋은 편이다.
- 감정표현에 매우 솔직하고, 직설적인 걸로 유명했다. 데이비드 니븐에 따르면 하루는 롬바드가 베벌리 윌셔 호텔(Beverly Wilshire Hotel)에서 흰색 복장만 허용하는 파티를 열었는데, 유독 노마 시어러가 이를 무시하고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왔다고 한다. 이를 보고 화가 난 롬바드는 파티 참석자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노마는 X나 자기가 뭐 포주인줄 아나봐?"라고 외쳤다고. 이 당시 시어러는 "MGM의 여왕"이라고 불리고 있었다.[8]
-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의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롬바드의 사교 활동 담당 비서였다고 거짓말하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1]
사진은 유진 라버트 리치(Eugene Robert Richee)의 작품.
[2]
즉 영화 속 시간은 1914년이다. 볼레로는 실제론 1928년에 발표되었다.
[3]
커미션이 포함된 티켓을 한 장씩 받고 이성 손님들의 사교댄스 상대가 되어주던 댄서. 택시를 한 번 탈 때마다 매번 돈을 내야하듯이 손님들이 댄서들과 춤을 한 번 출 때마다 돈을 지출해야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밑바닥 일로 여겨졌다.
[4]
Sally Rand. 1904 - 1979.
[5]
fan dance. 커다란
부채를 이용해 나체를 가리는 안무로 이뤄진 춤이다.
[6]
Selznick International Pictures.
[7]
웰스는 인성이 나빠서 동료 대다수를 까고 다녔던 걸로 유명하다.
[8]
이때 당시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