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1 02:00:15

윌리엄 셰익스피어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영국(잉글랜드)의 축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크레이그 셰익스피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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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Greatest Britons
※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윈스턴 처칠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 다이애나 스펜서 찰스 로버트 다윈 윌리엄 셰익스피어
6위 7위 8위 9위 10위
아이작 뉴턴 엘리자베스 1세 존 레논 호레이쇼 넬슨 올리버 크롬웰
11위~10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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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어니스트 섀클턴 제임스 쿡 로버트 베이든 파월 알프레드 대왕 아서 웰즐리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마가렛 대처 마이클 크로포드 빅토리아 여왕 폴 매카트니 알렉산더 플레밍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앨런 튜링 마이클 패러데이 오와인 글린두르 엘리자베스 2세 스티븐 호킹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윌리엄 틴들 에멀린 팽크허스트 윌리엄 윌버포스 데이비드 보위 가이 포크스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레오나르드 체셔 에릭 모어캠브 데이비드 베컴 토머스 페인 부디카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스티브 레드그레이브 토머스 모어 윌리엄 블레이크 존 해리슨 헨리 8세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찰스 디킨스 프랭크 휘틀 존 필 존 로지 베어드 어나이린 베번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보이 조지 더글라스 베이더 윌리엄 월레스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웨슬리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아서 왕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 로버트 스콧 이넉 파월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클리프 리처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프레디 머큐리 줄리 앤드루스 에드워드 엘가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조지 해리슨 데이비드 애튼버러 제임스 코널리 조지 스티븐슨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찰리 채플린 토니 블레어 윌리엄 캑스턴 바비 무어 제인 오스틴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윌리엄 부스 헨리 5세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로버트 1세 밥 겔도프 ( 아일랜드인)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무명용사 로비 윌리엄스 에드워드 제너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찰스 배비지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제프리 초서 리처드 3세 J. K. 롤링 제임스 와트 리차드 브랜슨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보노 ( 아일랜드인) 존 라이든 버나드 로 몽고메리 도날드 캠벨 헨리 2세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존 로널드 루엘 톨킨 월터 롤리 에드워드 1세 반스 월리스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리차드 버튼 토니 벤 데이비드 리빙스턴 팀 버너스리 마리 스톱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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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독일인, 위대한 프랑스인, 위대한 러시아인, 위대한 미국인, 위대한 인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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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21세기 새 시대를 맞아 1999년 조사한 지난 천년동안 가장 위대한 작가. 1999년 2월 한 달 동안에 BBC 웹사이트에서 진행한 투표로 매겨졌다.
1위 2위 3위 4위 5위
윌리엄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조지 오웰 찰스 디킨스 이언 뱅크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J. R. R. 톨킨 제임스 조이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미겔 데 세르반테스 마크 트웨인
출처 }}}}}}
William Shakespeare[1]
파일:1280px-Shakespeare.jpg
출생 1564년 4월 26일[2]
잉글랜드 워릭셔 주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사망 1616년 4월 23일[3] (향년 52세)
잉글랜드 워릭셔 주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직업 극작가, 시인, 배우
서명 파일:William_Shakespeare_Signature.sv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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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일 1616년 5월 5일
묘소 영국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성 트리니티 교회
학력 에드워드 6세 학교,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활동 기간 1585년 – 1613년
종교 기독교( 성공회)[4]
가족 부모님 존 셰익스피어 (1531년-1601년)
메리 셰익스피어 (1537년-1608년)
배우자 앤 해서웨이 (1582년-1616년: 그의 죽음)
자녀 수재나 홀(딸, 1583-1639)
햄넷 셰익스피어 (아들, 1585-1596)
주디스 퀴니 (딸, 1585-1662)
언어별 명칭 한국어 윌리엄 셰익스피어
일본어 ウィリアム・シェイクスピア
중국어 威廉·莎士比亞
러시아어 Уильям Шекспир
아랍어 وليام شكسبير
힌디어 विलियम शेक्सपियर
세르비아어 Виллиам Схакеспеаре
조지아어 უილიამ შექსპირი
페르시아어 ویلیام شکسپیر
에스페란토어 Vilhelmo Ŝekspiro
아르메니아어 Ուիլյամ Շեքսպիր
태국어 วิลเลียม เชกสเปียร์
히브리어 וויליאם שייקספיר }}}}}}

1. 개요2. 생애
2.1. 시인으로서 셰익스피어2.2. 극작가로서 셰익스피어2.3. 언어 창조자(?)로서 셰익스피어2.4. 작품 전반
3. 비판
3.1. 셰익스피어와 잔 다르크
4. 가상인물설5. 기타6. 작품
6.1. 시6.2. 4대 비극6.3. 5대 희극6.4. 역사극6.5. 비극6.6. 희극
7. 각종 매체의 셰익스피어8. 관련 문서


1. 개요

"(영국은) 인도는 언젠가는 잃게 되겠지만,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5]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 중.[6][7][8]
"한 시대가 아닌 만세(萬世)를 위한 작가"
― 벤 존슨

영국 시인이며 극작가.[9] 그는 영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이자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 널리 간주되고 있다.

2. 생애

1580년대에 극단에 들어가서 1594년 "시종장관 극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1599년에는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을 세워[10]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1585년부터 1592년 사이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여백의 미 작품 구상을 위한 여행?

셰익스피어의 최초 작품집이 사후 400년만에 발견되었다.(!) 링크

2001년에 나온 연구결과에 의하면 그의 집에서 나온 파이프에서 대마초 코카인 성분이 검출되었다. 약빠시고 글쓰셨나

2.1. 시인으로서 셰익스피어

당대에 언어로 구성되는 모든 것에 통달하여 시도 능했다. 오늘날 모든 서사가 따른 기본 기술을 정립시켰으며 4대 비극으로 유명하지만 희곡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를 섭렵한 천재. 제목만 남은 작품을 포함해 희곡 38편, 소네트 154편, 그리고 장시 2편 등이 전해진다. 영국의 르네상스 초기에 이탈리아의 시형식 칸초네가 토머스 와이엇(Thomas Wyatt)에 의해서 영국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14행시 5음보(Pentameter) 정형시인 소네트가 영국의 모든 작가들이 쓰기 시작했고(문학=소네트 수준), 시드니(P. Sidney), 스펜서(E. Spenser) 같은 위대한 작가를 낳는다. 이 때 들어온 소네트의 형식은 이탈리아의 시인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정립한 것이어서 페트라르카식 소네트 (Petrarcan sonnet) 라고 부른다. 페트라르카식 소네트는 그 시작부터가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찬미였기에, 100년 이상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클리셰[11]가 난무하게 되었고, 1590년대 후반 인기가 식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이 진부해진 소네트 형식으로 참신한 내용을 담아내면서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 그 명성을 전한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종전의 소네트와는 다른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소네트 형식을 만들어낸다. 페트라르카식 소네트는 1개의 옥텟(octet, 8행의 묶음)과 1개의 섹스텟(sextet, 6행의 묶음)으로 구성되어있으며, 8행에서 볼타(volta)라 하여 시상의 전환이 일어나고, ABBA ABBA CDC CDC의 각운 구조(Rhyme Scheme)을 따른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3개의 콰텟(quartet, 4행의 묶음)과 하나의 커플릿(couplet, 2행의 묶음)으로 이루어져있으며, ABAB CDCD EFEF GG의 각운 구조를 따른다.그래서 이런 소네트들을 따로 분류하여 셰익스피어(식) 소네트(Shakespearean Sonnet)라고 한다. 본인 이름 = 장르인 수준.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것은 기존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형식으로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을 담아내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술했듯이, 페트라르카 소네트의 내용은 연인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과 찬미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도 연인에 대한 찬미가 주된 내용을 이루기는 하나, 페트라르칸 소네트와의 차별점은 어느 정도의 논리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연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기만 했던 페트라르카식의 소네트와는 달리 (모든 페트라르카식 소네트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연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거나, 연인의 아름다움을 영원화永遠化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변증법을 사용한다. 전술했듯이, 셰익스피어식 소네트는 3개의 콰텟과 하나의 커플릿으로 이루어지는 데 이중 앞의 두개의 콰텟 (즉, 앞의 8줄)이 정명제 (thesis)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콰텟 (다음 4줄)이 반명제 (antithesis)의 역할을 하며,[12] 두 명제의 대립이 커플릿 (마지막 2줄)에서 종합 (synthesize)되어 합명제 (synthesis)로 결론을 맺는다. 각운 구조 또한 이러한 변증법적 구조를 뒷받침한다. ABAB CDCD EFEF GG. 앞의 12줄에서 마치 변증법에서 정명제와 반명제가 서로 대화를 하듯 (변증법 Dialectic의 어원이 대화 Dialog임을 생각하라) 서로 다른 각운이 번갈아서 등장하던 것이, 정과 반의 합이 일어나는 커플릿에서는 하나의 각운으로 통일된다. 플라톤이 철학 (즉, 논리) 로부터 시를 추방한 이래 거의 최초로 철학과 예술, 논리와 감성을 종합하고자 하는 시도인 셈.

2.2. 극작가로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극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시대와 문화, 공간의 보편성이다. 그가 쓴 희곡들을 보면 현대인에게도 대부분 통할 개그센스가 은근히 많이 들어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당시 그가 살고있던 시대적 배경과 관련된 주제가 많이 나오는데 특히 왕이 죽고 나라가 엄청난 혼란에 빠지는 묘사가 꽤나 자주 사용된다. 당시 여왕이던 엘리자베스 1세(1558년 즉위, 1603년 사망)가 나이는 많고 후계자가 없어서 민심이 꽤나 불안했기에 이를 자신의 극에 반영한 것. 사실 유명한 글로브 극단의 소유주가 된 것 등등은 제임스 1세 덕이 많다고 한다. 시종장관 극단을 왕실 극단(King's Men) 극단으로 승격시키는 듯 세익스피어에게 돈을 많이 투자하기도 했다.

그의 극본은 판본마다 텍스트가 제각기 매우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셰익스피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폴저 도서관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제1 이절판을 최대한 많이 수집한 것으로 유명한데, 같은 제1 이절판이라도 내용이 제각기 다르다. 이는 무대에서 상연을 목적을 하는 희곡의 특성상 관객의 반응에 따라 대본이 수시로 고쳐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존재한다.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그야말로 영문학사 전체에서 꼽히는 명대사. 다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적다. 사실 지금도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사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가 이거다 라고 쉽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Be라는 단어 자체가 영문학적으로도 너무나도 많은 뜻을 복합해서 품고있는 단어이며, 은유적인 의미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끝이 없다. 연극계의 영원한 숙제[13][14]

후대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5] 조지 버나드 쇼는 셰익스피어를 깠다. 물론 그들 역시 대문호의 입장에서 일종의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모양.

2.3. 언어 창조자(?)로서 셰익스피어

"가령 우리가 입만 열었다 하면 열 마디 가운데 한 마디는 신조어라고 생각해 보라."
- 빌 브라이슨
어떻게 보면 매우 건방진(...) 느낌일 수도 있지만, 셰익스피어는 엄청나게 많은 신조어들을 만들었다. 그의 희곡에 나온 2만 단어 중에 2천 단어는 새로운 단어였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만들어진 신조어들은 셰익스피어의 신조어(Shakespearean neologisms)라고 한다. 또 다시 본인 이름을 영어영문학과 학생들에게 남겼다.

영어사(The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를 배우다보면 셰익스피어가 만든 어휘들이 꼭 나온다. 사전 어원에 별다른 말이 없고 1600년 전후의 연도만 뜬다면 그건 아마 세익스피어 신조어일 것이다. 당대 영어는 문법 책도 라틴어로 나오던 수준이었다. 비슷한 시기 간행된 킹 제임스 성경과 함께 영어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영문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킹 제임스 성경을 최고봉으로 하는 험준한 산맥이라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다만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해당 단어들을 창조했는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셰익스피어가 해당 단어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전까지도 쓰이던 단어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문서일 뿐이라는 것.

Shakespearean neologisms의 예
  • 살과 피(flesh and blood, 거의 대부분 그냥 ' 인간 ' 으로 쓰인다혈육)
  • 마음의 눈(in the mind's eye, 상상,기억)
  • 지구의 것이 아닌 것 같은(unearthly, 기이한, 섬뜩한)
  • fashionable
  • 더러운 행실(foul play, 반칙)
  • sanctimonious (신실한 체 하는)
  • bedazzle (현혹시키다, 매료하다)
  • puke (토하다)
  • Swag
  • 헬카이트 (지옥의 솔개, 냉혈한) 하지만 서브컬쳐에서는 드래곤에 붙는 별명으로 사용된다.

2.4. 작품 전반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뿐만이 아니라, 연기나 연출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도 더럽게 골치아픈 존재. 특히 4대 비극 같은 경우에는 배우의 역량을 판가름하는 작품으로도 쓰이기도 한다. 대사가 고어체도 아니고 고어 그 자체인데다 한번 한번의 호흡이 길어서 글로 읽으면 멋있는데 연극으로 보면 매우 고통스럽다. 게다가 햄릿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긴 대사가 연달아 독백으로 나온다면??? 우리식으로 비유한다면 개역성경의 대화와 독백을 100% 그대로 기독교 연극대사로 쓰는 것과 같아서, 웬만한 사극 연기력이 아니고는 관객들은 보다가 지겨워서 하품만 하게 된다. 관객의 집중력을 유지시켜주기 위해서 배우는 물론이고 연출자 또한 각고의 노력을 해내야 하는데, 충분한 연습과 연구가 없다면, 배우는 그저 대본을 읊는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업계에서는 대사에 배우가 먹혀버린다라고 표현할 정도. 연출자 또한 관객들의 집중을 유지시키기 위해 배우나 무대에 이런저런 색다른 시도를 많이 요구하기도 한다. 아마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안톤 체호프만큼이나 두렵고 무서운 존재. 그래도 체호프만큼은 아냐

영미권 학생들, 특히 고등학생들에겐 그저 귀찮은 숙제를 안겨주는 때려잡을 놈일 뿐. 정철? 셰익스피어가 확립한 초기 현대영어는 오늘날의 영어와 달리 고대 영어의 어미활용이 남아있고, 평소에 볼 일이 없는 생소한 어휘도 많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도무지 주어-간목-직목의 순서를 종잡을 수 없는 프랑스어식 만연체 어순도치구문으로 떡칠이 되어있어서 보면 무슨 내용인지 대강 감은 잡히는데 읽고 정확히 외우기가 참으로 거지같다. 우리식으로 치면 국한문혼용체 개역성경을 고등학교에서 보는 것 비슷하다. 셰익스피어 입장에서는 단순히 그 당시의 말을 사용한 것 뿐이지만, 현재를 사는 영국 본토 학생들은 이를 Shakespear language라 부르면서 극혐한다. 영어도 아니고 다른 나라 말이다라는 불만의 뜻. 실제로 미국 고교에서도 셰익스피어 관련 수업시간이라면 교실의 대다수 학생들의 동공이 풀리고 유체이탈하는 장관을 볼수있다. 덕분에 빌과 테드의 엑설런트 어드벤쳐 애니메이션판에선 과거로 돌아간 일행들이 셰익스피어에게 이건 미래에 니가 괴롭힐 모든 학생들의 몫이다!라고 싸대기를 갈기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미국식 교육을 받는 고등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가봤을 스파크노트 사이트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현대어로 바꾼 걸 볼 수 있으며 분석[16]까지 자세하게 되어있는 내용을 업로드해서 큰 각광을 받고있다. ~~하지만 그 대신 베오울프가 들어왔다. 우와아아

3. 비판


이처럼 영문학, 연극계와 세계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고 세계에서 가장 절대적인 명작가로 칭송받고 있지만, 그도 사람인 만큼 작품에 대한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인생 자체가 그렇게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고[17] 그의 작품은 매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는 이랬다" 라고 정리하는게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의 개인사나 사상에 대한 비판은 굉장히 애매해질수 밖에 없으니 그에 대한 비판은 조심해서 들어야한다.

우선 당시 기준으로 그다지 관념도 없고 애매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표절 논란인데, 대표적인 예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바지선에 올라 탄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하는 부분으로, 토머스 노스가 번역한 플루타르크의 영웅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관한 부분을 표절했다. 하지만 플루타크는 당대의 사람들이 애독하던 도서이다. 벤 존슨의 Devil is An Ass 에서도 서민들도 플루타크를 읽어서 자신의 자식을 플루타크로 이름 짓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이 대부분 아는 이야기를 올리는 것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운데다가, 셰익스피어 본인도 플루타크를 배웠기에 표절이라기보단 배운대로 썼다고 보는 것이 맞다. 덧붙여, 완전 표절이 아니라 후술할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시계같이 일부러 고증을 어겨서 당대의 이야기를 담는 기법도 많다.

'줄리어스 시저'라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일생을 다룬 극을 썼는데 사료 고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창작소설이라고 불리우나[18] 사실 줄리우스 시저가 쓰였던 시기엔 반란과 기근으로 민중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건강이 나빠지며 후대를 걱정해야하는 시기였기에 그 불안감이 극에 나타난 것이다. 시계뿐만이 아니라 상영시 로마식 복장을 쓰지 않고 올린 것은 일부러 시대적 고증을 무시하여 당대의 문제를 극으로서 반영하고 논하기 위해서이다.

인종차별주의자[19]나 여성차별주의자라는 설도 존재.

물론 역시 반론 또한 존재한다. 여성차별주의자라는 설만 하더라도,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을 보자면, 역으로 페미니스트였다는 설도 존재한다. 베니스의 상인만 보더라도,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자이며, 이외에도 여성이 극에서 사실상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거나, 찌질한 남주 대신 일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당신이 뭘 생각하든, 그런 쪽으로 해석한 누군가가 이미 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오늘날까지 학자들을 공밀레시키고, 파고 파도 계속 무한히 나오는 것이 셰익스피어다. 아무튼 당신이 뭘 공부하더라도 이 작가와 연관시킬 수 있다.

3.1. 셰익스피어와 잔 다르크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 제 1부에서 잔 다르크를 마녀, 악녀, 요부, 패륜녀로 묘사했는데, 오늘날 잔 다르크에 대한 평가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고 지나친 폄하로 인해 비판을 받는다.

이는 잔 다르크가 참전한 백년전쟁이 원시적인 민족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왕실과 귀족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고 있었지만 노르망디처럼 프랑스 내부의 영국령이 아닌 브리튼섬 본토의 백성들은 프랑스의 백성들과 문화적 동질감을 느꼈을 가능성은 적다. 특히 헨리 5세는 그 전의 잉글랜드 왕들이 프랑스어를 주로 쓰던 것과 달리 종종 영어를 쓰며 자신이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드러냈고 이를 바탕으로 잉글랜드 출신의 장궁병 위주의 농민 병사들에게 큰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프랑스는 그런 구심점이 없다가 다르크가 등장하여 샤를 7세를 추대하며 프랑스인들을 자각시켰다. 특히 다르크를 비롯한 왕세자를 지지하는 프랑스인들은 대륙에 상륙한 이질적인 잉글랜드군의 약탈에 대해 이골이 난 상태였으며[20] 영국에서 태어난 왕이 프랑스 왕으로 추대되는 것 자체에도 반감을 가졌다. 이렇게 잔 다르크가 어찌되었든 프랑스 민족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에 잉글랜드인인 셰익스피어는 그를 불편해하고 폄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잔 다르크가 (국적을 초월한 의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19세기부터이다. 16세기 영국 대중들이 잔 다르크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을리는 없고 대중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먹고사는 극작가가 이런 생각을 거스를 수도 없다. 다르크는 이미 죽은 지 25년 뒤인 1456년에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재판을 다시 열어 마녀와 이단자가 아니었다고 발표가 났으므로 따라서 외국에 대한 지식이 적지 않았던 셰익스피어도, 또한 셰익스피어가 참고했던 역사서를 쓴 영국의 역사가들도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어차피 왕정 시대여서, 게다가 엘리자베스 1세 때 가톨릭 탄압이 심했을 때여서 의미가 없겠지만.

아무튼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이 작품을 두고 셰익스피어가 아닌 다른 작가가 썼다는 주장도 나왔었는데, 이건 그 무렵 잔 다르크의 시성이 추진되고 영국에서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났기 때문에 책임회피로 느껴질 여지도 있긴 하다.[21]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가 굉장히 잔혹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필력과 묘사 때문에 다른 작가가 썼다고 주장한 것과도 비슷했던 양상. 어쨌거나 크리스토퍼 말로가 셰익스피어를 대신해서 잔 다르크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썼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그가 전부 혼자 쓴 것은 아니고, 이 작품 또한 여러 작가들이 공동집필 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마냥 변명으로만 여길 건 아니다. 거기다가 지배층과 여론이 좋아할만한 연극을 공연하여 잘 보여야 하는 당시 극단의 특성상 신인 작가였던 셰익스피어에게 그런 프로파간다적인 내용을 쓰도록 권유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대에 들어와서도 이 희곡을 역사적 진실과 혼동하는 사례가 일부 있을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극단, 극장, 단체인 셰익스피어 글로브의 트위터에는 잔 다르크의 기일에 오늘은 잔 다르크가 파문되고 이단자로 선언되어 화형된 날임(…)이라는 고인드립까지 쳤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잔 다르크가 명예회복된 날과 시성된 날은 관련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22] 사실 이 부분은 보통은 큰 관심이 없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성녀 잔 다르크에 대해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가톨릭 신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 극장이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을 상영하기도 한 것으로 볼 때 딱히 잔 다르크에 대한 비하의 의도라고 하기 힘들긴 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극중에서의 잔 다르크 캐릭터는 막판 마녀로 돌변하는 모습 이전엔 오히려 셰익스피어가 잉글랜드 입장에서 썼을지라도 그녀를 적일지라도 괜찮은 캐릭터로 만든 편이다. 샤를 7세[23]의 대사를 통해서 생드니한테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말고, 잔이 프랑스 성인이 될 거라는 대사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물론 프랑스까진 몰라도 전 세계의 성인이 될 것까지는 예상을 못했겠지만

후반부 문제의 장면들도 해석에 따라선 참작의 여지가 있는데, 먼저 잔 다르크가 악마를 불러 도와달라고 하다가 거절 당하는 부분은 멘탈붕괴 상태에 빠져 일시적으로 하지 않은 짓까지 하면서까지 영국군을 물리치려는 무리수를 두다가 혼자서 환상을 보고 헛소리를 읊은 것일 수도 있고, 부친을 향해 패드립을 치는 장면[24]과 잔 다르크가 스스로 외치는 임신 드립[25]도 잔 다르크를 화형시키기 위해 잉글랜드 측이 변명을 하거나 어설프게 정당화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근현대에 들어서는 잔 다르크에 대해 원작처럼 직접 마녀나 악녀로 묘사하는 게 부담되는 일인지 이미 20세기 때부터 해당 작품의 무대화에서 잔 다르크의 부정적인 묘사를 지우기도 했으며, 2011년 한국에서의 공연도 그랬고, 2016년 셰익스피어의 사극을 드라마화 한 할로우 크라운 시리즈에서도 잔 다르크의 묘사에 대해 원작과 달리 부정적인 묘사를 지우고 각색해서 연출했다.

페미니스트 셰익스피어 연구가나 영문학자들 중에선 이 작품의 잔 다르크의 묘사에 대해 당시의 여성차별과 편견의 사례로 연구하기도 한다.

4. 가상인물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러한 추측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의 대한 사료가 부족하기에 아직도 그의 정체는 영국 문학사에 큰 의문들 중 하나이다. 거기다가 밝혀진 바로는 초급학교 중퇴자라 대필 논란에도 휘말려있다. 단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현 사회의 학력지상주의에 의해 생겨난 억지주장이라며 아직도 시끄럽다. 사실 영어로 된 책을 보면 '문법학교(Grammar school)' 중퇴라고 나와있는데 이것은 귀족자제들에게 그리스, 로마 고전을 가르치던 학교를 말한다. 이름이 문법학교라고 번역되지만, 사실은 귀족학교라고 보는 게 맞다. 현재에도 그래머 스쿨은 영어권의 사립학교 이름으로 자주 쓰인다. 중세 이후에 세워진 이러한 형태의 학교에서는 당대 지식의 기반을 이루는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의 문법을 포함한 '자유과목(Liberal arts)'의 기초를 모두 가르쳤다. 현대의 기준에서 보면 학력이 낮아보이지만 의무교육이 보편화 되지 않던 당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대학을 졸업한 완전한 지식인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은 축에는 들어간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당시에는 거의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로도 거의 번역되지 않았던) 그리스-로마의 고전 희곡에서 많은 설정을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에 있어서 알기 힘든 동시대의 외국 언어, 지리, 사회상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는등, 도저히 무학의 무명 연극배우 출신이 이런 대작들을 썼다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작품을 쓰고, 셰익스피어는 이름만 빌려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신분이 드러나길 꺼리지만[26] 대단한 필력을 가진 지식인이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작품을 썼다는 것이 이 가상인물설의 요지이다.

그 후보자로는
  • 프랜시스 베이컨 : 유명한 철학자인 그 사람 맞다. 대학자였기 때문에 작가로 알려지길 꺼렸다고. 프랜시스 베이컨이 엘리자베스 1세의 숨겨진 사생아고 때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다는 주장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설을 부정하고 있다.[27]
  • 윌리엄 스탠리 : 영국의 경제학자.
  • 크리스토퍼 말로 : 르네상스 시대에 매우 유명한 희곡 < 파우스트 박사(Doctor Faustus)>의 작가. 젊은 나이에 천재소리를 들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의 석사를 취득했다. 셰익스피어가 막 뜨기 직전에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극작가로 말로가 장수했다면 셰익스피어의 자리는 말로가 대체했을 거라는 영문학자의 주장도 많다. 실제로 당시 영국에서 가장 많이 상영된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아니라 말로의 <파우스트 박사>였다. (<파우스트 박사>는 이후에 괴테 파우스트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29살의 나이로 술집에서 결투를 하다 상대방에게 한쪽 눈을 찔려서 요절했는데 말로의 사망일이 동료 극작가 토머스 키드의 밀고로 추밀원에게 무신론자로 고발되어 법정에 서기 일주일 전인데다가 말로 사망 직후 셰익스피어가 갑자기 큰 인기를 끌어서 셰익스피어는 사실 부상당한 말로가 운둔하면서 쓴 필명이라는 음모론이 굉장히 많았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말로는 영국정부와 가톨릭 단체의 이중첩자였으며 그를 찔러 죽인 사람도 그를 감시하고 있던 정부측 스파이였다고 한다.
  • 옥스퍼드 백작 에드워드 드 비어
  • 셰익스피어는 한 사람을 칭하는 이름이 아닌, 일종의 서클 같은 것으로 그들이 내놓은 필명이 셰익스피어다.

등등이 있다. 물론 이 설들에도 여러가지 반론[28]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실은 저 너머에.

또다른 주장에 따르면 셰익스피어가 쓴 실제 초판은 매우 거칠고 조악했으나, 시대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갈고 닦여져 지금과 같은 주옥같은 문장으로 재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판본이 여러가지나 되고 햄릿 같은 경우 저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라는 대사가 존재하지 않고 해당 부분의 대사가 상스럽거나 단순한 욕설로 나온 판본도 있으므로. 이 내용은 히스토리 채널에서도 다룬 바 있다.

셰익스피어 자체는 실존인물이지만 우리나라의 이현세, 박봉성 등 양판소 만화가처럼 셰익스피어가 메인작가일뿐, 실제로는 작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글을 쓴 공장만화식의 체계로 운영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유는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발표한 만큼의 글은 절대 한 인물이 쓸 수 있는 분량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쓸 수 있는 글의 수량이 있기에 한 사람이 썼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학계에서 이 논란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공동저술이거나 고스트 라이터가 있다는 문서나 증거가 있는게 아니라면, 꼬리물기식 담론이 되기 때문. "셰익스피어 본인이 살아 돌아와서 해명하지 않는 한 명쾌할 수 없다"는 게 지배적이다. '리처드 3세'에서 리처드 3세가 곱추로 묘사된 것이 리처드 3세가 악당이기에 일부러 그리 묘사했다는 "추한 악당 설"이 분분했지만, 리처드 3세의 유해의 발굴&검식 결과 실제로 곱추인 것이 확인되자 "추한 악당 설"이 쑥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확실한 증거없이 설만 내놓는 것은 무의미한 담론이라는 것이다.

5. 기타

파일:external/www.jiskha.com/shakespeare.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1px-Title_page_William_Shakespeare%27s_First_Folio_1623.jpg
왼쪽 유채 초상화는 이른바 "챈도스 초상화"로, "제1 이절판(the First Folio)"[29]에 실린 오른쪽 초상화의 원형이라고 한다.
"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bear to dig the dust enclosed here.
Blessed b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And cursed be he that moves my bones."

"벗이여, 부디 여기 덮인 흙을 파헤치지 마시오.
이 돌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진저."
셰익스피어의 무덤의 묘비명[30]
  • 서양권 전체에서 제일 많이 상연되는 그의 작품은 리처드 3세라고 한다.
  • 현재 영국에서 웬만큼 거장 취급 받는 배우들(스크린/무대를 막론하고)은 상당수가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역사가 시작된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 출신이다. 예를 들면 이언 매켈런 경.
  • 현 시대의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알 파치노가 특히 셰익스피어 덕후다. 베니스의 상인 등 여러 영화를 비롯, 브로드웨이와 미국 대도시에서 연극을 올린 것도 여러번이고, 심지어 1994년에는 리처드 3세를 만드는 다큐멘터리 <뉴욕 광시곡>[31]까지 감독/출연했을 정도이다. 2012년 현재 리어왕까지 찍고있다니 뭐, 할말 다했다. 파치노 이외에도 오슨 웰스도 한 덕후심하기로 유명하다.
  • 2014년 4월 26일, 세계적인 영국 극작가로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4.26 ~ 1616.4.23)의 탄생 450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인 영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대적인 축제 행사가 열렸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는 음악, 거리 공연, 스토리텔링, 연기, 춤 등 다양한 연극의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셰익스피어 생애를 따라 여행하는 "Cycle Shakespeare's way"를 테마로, 셰익스피어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은 그의 출생지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부터 그의 무덤이 안착된 성 트리니티 교회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그가 거주하며 극작가로써 활발히 활동했던 런던에서는 2014년 한 해 동안 셰익스피어 작품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글로브 극장에서 성대한 박람회를 열어, 셰익스피어 시대의 연극을 재현한 공연, 해설, 전시회 등을 제공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국가를 모두 넘겨주는 때에도 셰익스피어 한 명만은 넘겨줄 수 없다.”라고 남긴 유명한 말처럼, 그에 대한 영국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개최되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셰익스피어 작품 공연 빈도수가 가장 높은 나라인 한국에서는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및 협회, 대학로 연극인들이 대규모 ‘셰익스피어 문화축전’ 주최했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되새기고자, 2014년 4월부터 7월까지 네 달에 걸쳐 릴레이 연극을 펼쳤다.
  • 셰익스피어와 관련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토머스 바우들러(Thomas Bowdler). 그는 1807년 The Family Shakspeare이라고 해서 일반 가정을 위한 셰익스피어 판본을 찍어내는데, 문제는 이게 어린이들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을 수정했다라는데 있다. 그는 감탄사인 'God!'을 'Heavens!'로 수정하는 등의 소프트한 수준의 변형은 물론이고, 햄릿의 오필리어가 죽은 이유가 자살이 아니라 실족에 의한 익사로 고쳐버리는 등의 과감한 수정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판본이 가장 널리 퍼진 판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후대에 바우들러는 말 그대로 의미의 검열삭제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딴 bowdlerize는 내용을 순화시키고 수정해서 고치다라는 의미의 일반 동사로 통용되게 되었다. 대충 원피스의 상디가 담배 대신에 추파춥스를 물게 되는 것이 전형적인 bowdlerize이다.
    • 다만 이후에 밝혀진바로는 저 1807년 판본의 경우는 바우들러 본인이 아니라, 그 누이동생이 순수하게 손을 댄 것이란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하지만 뭐 성은 동일한데다, 바우들러가 저런 식으로 수정한 책은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를 포함해서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 프랑스, 파리에 셰익스피어 & Co.라는 역사깊은 영서(英書) 전문 고서점(古書店)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 글을 쓴 문학가도 많고 봐야할 관광지 중 하나로 지정되어있으며, 파리에 거주지가 없는 가난한 사람에 한정해 공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밥값은 해야한다고 한다. 주소는 37 rue de la Bûcherie.(홈페이지도 생겼으니 확인해볼 것.)
  • 셰익스피어 본인 또는 희곡의 원저자가 이탈리아를 직접 방문하고 "이탈리아 희곡"을 썼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 나왔다.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원제: The Shakespear Guide to Italy)" 작가에 따르면 르네상스 당시 이탈리아에 대해 잘 몰랐던 편집자와 비평가들로 인해 벌어진 각종 오류들이 수두룩하다고.

6. 작품

6.1.

  • 비너스와 아도니스
  • 루크리스의 강간
  • 불사조와 산비둘기
  • 연인의 불평
  • 열광적인 순례자
  • 기타 소네트

6.2. 4대 비극

6.3. 5대 희극

6.4. 역사극

6.5. 비극

6.6. 희극

  • 템페스트
  • 베로나의 두 신사
  • 실수연발
  • 윈저의 즐거운 여인들
  • 사랑의 헛수고
  • 헛소동
  •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
  • 티레의 왕자 페리클레스
  • 겨울 이야기
  • 심벨린[32]
  •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 자에는 자로

7. 각종 매체의 셰익스피어

  •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조지프 파인스가 연기했다.
  • 마비노기의 등장인물 셰익스피어(마비노기)
  • 팀 포트리스 2에서는 헤라클레스 융합(...)되어서 셰익스페라클레스라는 정체 불명의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힘이 센 극작가라고 하며, 2층 건물, 극장 연극, 아메리카 대륙, 로켓 런처를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계단은 못 만들었다. 2010년의 '전쟁이다!' 업데이트 소개에서만 언급. 실제 초상화를 적당히 합성해 만든 초상화가 매우 엽기적이다. 맨손으로 샤일록 가슴살 뜯어발길 기세
  • Fate/Apocrypha의 등장 서번트 적의 캐스터로 등장.
  • 드라마 닥터후에서도 등장. 클래식 시즌 에피소드 <City of Death>에서 언급되는데, 닥터가 햄릿을 읽다가 '이 부분 이렇게 쓰지 말라니까!'라면서 그의 문장력을 비난한다(...) 뉴 시즌 3 'The Shakespeare Code'에서도 등장하는데, 실재하는 그의 희곡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ur's Lost)의 실전된 속편, 사랑의 수고의 결실(Love's Labour's Won)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로, 셰익스피어는 딘 레녹스 켈리(Dean Lennox Kelly)가 연기했다. 더빙판 성우는 양석정. 닥터는 엄청 기대했지만 그는 닥터가 생각한 것과는 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33] 그래도 닥터가 인정할 정도로 천재였는데, 그 특유의 문장력은 여전했고, 마사와 닥터의 정체를 눈치만으로 정확히 알아챘다. 거기다 닥터의 사이킥 페이퍼가 통하지 않았었다.[34]
  • 닐 게이먼 THE SANDMAN에서는 Dream과 거래를 하여 한여름 밤의 꿈 템페스트 써냈다. 셰익스피어가 원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영원히 기억되는 것, Dream이 원한 것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요정들이 영원히 기억되는 것과 자신을 위한 이야기 템페스트였다.
  • 소설 경계선상의 호라이즌에서 셰익스피어를 습명한 인물인 토마스 셰익스피어가 있다.
  • Epic Rap Battles of History 시즌 1 에피소드 12에 등장해 닥터 수스와 대결을 펼친다.
    셰익스피어 아저씨네 문구점이란 책에서도 가상이지만 나온다. 그림책인데 글이 많으니까 초~중학생들은 참고해도 좋다.
  •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은퇴한 연극 배우이자 탐정인 드루리 레인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명배우였다. 작품 속에서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구절을 가끔 말한다.
  • 로보텍스 오미크론이 가장 좋아한다. 작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구절을 말한다. 주우우욱느냐 사아아아느냐 그것이이이 문제에에로오다!!
  • 리그오브레전드 신지드 또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구절을 패러디하여 말한다. 섞을까 말까, 그것이 문제로다
  • 블리치의 주인공인 쿠로사키 이치고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참고로 꼭두각시 서커스의 등장인물인 기이 크리스토퍼 래쉬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를 줄줄이 꿰고있는 셰익스피어 덕후로 나온다.

8. 관련 문서



[1] 이름 표기에는 Shakespear, Shakespere의 바리에이션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서명이 3가지 서로 다른 철자를 가진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작 셰익스피어 본인은 서명할 때 'Shakespeare'(현재 가장 공식적인 철자)로 쓴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본고장 영국에서는 끝에 e를 뺀 Shakespear를 선호하여 쓴다.셰익스피어의 생전에는 Shakespeare 나 Shakespear 외에도 Shakespere, Shakespear, Shakspeare, Shackspeare, 그리고 Shakspere 등의 표기도 사용되었는데, # 수세기에 걸쳐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거의 Shakespeare로 표준화 되었다. [2] 사망한 날과 같은 23일이라는 설이 있다. 정확한건 모르고, 일단 유아 세례는 26일에 받았다. 보통 세례나 할례는 태어난지 9일 만에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17일도 가능성이 있다. [3] 스페인의 대문호인 세르반테스의 숫자상 사망일과 같다. 다만, 당시 영국은 그레고리력을 채택하기 전이라 둘이 같은 날 죽은 것은 아니다. [4] 사실 위에 적혀있는 출생일도 엄밀히 말하자면, 출생일이라기보다는 성공회 교회 기록에 남아있는 그의 세례일이다. 당시에는 아기가 태어난 지 며칠 내로 세례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출생일과 세례일 사이에 며칠 정도의 간격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우스터의 성공회 교회 법정에서 1582년 11월 27일에 앤 해서웨이와의 혼인 허가를 내주었던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국교회(성공회)에서는 국민들의 관혼상제 같은 대소사를 관장하는 일종의 주민센터의 역할도 겸했기 때문에, 명성에 비해 너무도 빈약한 셰익스피어 개인의 삶에 대한 기록들이 성공회 교회의 자료에서 나오는 경우가 꽤 있다. [5] Indian Empire will go, at any rate, some day; but this Shakspeare does not go, he lasts forever with us. [6] http://www.victorianweb.org/authors/carlyle/heroes/zevin10.html [7] 이 문구가 '인도를 준다 해도 셰익스피어와는 바꾸지 않겠다'로 와전되어 유명해졌다. [8] 이와 비슷한 말로 "다른 그 어떤 이유도 아닌, 오직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영어는 익혀둘 만한 언어다."가 있다. [9] 흔히 소설가라고 잘못 알고있는 경우가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 소설은 없다. 셰익스피어를 소설가로 오해하는 이유는, 아마 그의 작품들을 산문으로 정리해서 출판한 책을 흔히 접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10] 본래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된 후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올리버 크롬웰이 금욕주의로 독재를 하던 시기에 탄압을 받아 강제 폐쇄당하는 등의 수난을 겪다가 1997년에 새로 지었다. 매일 셰익스피어의 공연을 공연한다. [11] 오바된 감정과 절절한 짝사랑 얘기 같은 게 주였다. [12] 정명제와 반명제의 전환이 발생하므로 페트라르카식 소네트의 볼타 (volta)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댜. [13] 일단 한국에서 번역된 버전으로만 사느냐 죽느냐(대부분의 번역), 있음이냐 없음이냐(최종철 역),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최재서 역), 과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이덕수 역), 삶이냐 죽음이냐(강우영 역) 등등. [14] 로완 앳킨슨 휴 로리가 등장한 코미디 스케치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편집자가 내용을 줄인답시고 의미있는 말들을 다 쳐내서 생긴 불상사로 묘사되었다.(...) [15] 조지 오웰은 톨스토이가 리어왕의 리어와 늙은 자신이 겹치는 모습에 불쾌해서 그랬을 거라고 조롱하듯이 분석했다. [16] 단, 문서을 봐도 알겠지만 영문학 전공 학부생들은 스파크노트를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비전공자가 쓴 내용이 많아 문서의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 그래도 텍스트 참고에 있어선 여기만한 곳이 없다. [17] 심지어 1585년부터 1592년까지 이 사람이 어디서 뭘 했는지도 모른다. [18] 그 시대에 자명종이 나온다. 고대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에는 조기경보 시스템까지 있었으니 이 정도 오버 테크놀러지는 이상할 거 하나도 없음(…). 유럽에도 안티키테라 기계가 있었을 정도라면. 뭐니뭐니해도 오파츠계의 먼치킨 헤론을 무시하나효?! [19] 박홍규 교수의 저서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에서는 흑인인 오셀로의 묘사의 비판뿐 아니라 템페스트를 영국에 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주의, 섬의 괴물 칼리번은 식민지의 원주민을 상징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다만 이것 역시 절대적인 분석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본, 이런 새로운 해석도 있을 수 있다고만 알아두자. [20] 물론 프랑스군의 용병들도 심심찮게 약탈을 하곤 했다. 다르크의 동료인 라 이르는 약탈꾼으로 악명이 있었으며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 때 그녀가 생존 당시 점령지의 약탈을 금지하고 약탈한 물건을 바친 스코틀랜드인 병사를 꾸짖었다는 증언이 있다. [21] 20세기 초에 활동한 영국의 작가 아서 퀼러카우치(Arthur Quiller-Couch)는 1910년 어린이들을 위해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바탕으로 역사를 정리한 '셰익스피어의 역사 이야기(Historical tales from Shakespeare)'라는 책을 썼는데, 헨리 6세 1부에서의 잔 다르크의 묘사는 동심파괴가 우려되었는지 원작과 달리 성녀처럼 묘사해서 뜯어 고쳤다. [22] 이게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는게 한 개인이 아닌 사실상 공식단체, 그것도 듣보잡도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극단이란 곳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한 거다. # [23] 이 작품에서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은근히 의심하고 이용만 해먹고 버릴 궁리를 하는 듯한 기색을 보인다. 이건 고증을 잘 했네. 잔 다르크도 붙잡히고 나서 샤를을 저주하는 대사를 퍼붓는다. 물론 실제 잔 다르크는 붙잡히고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재판관들에게 샤를에 대해 원망의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옹호하는 말을 했다. [24] 작중에서 잉글랜드 측이 대동하고 나타난 그 부친이 진짜 잔 다르크의 부친인지 입증이 된 건 아닌 투로 표현된다. 패드립을 들었다고 부친이 그녀에게 맞패드립을 치는데, 진짜 친부라면 친딸이 죽게 생겼는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즉, 군중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고 가짜를 데리고 왔을 수도 있다는 말.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면 친부가 자신을 친딸로 인정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친부를 부정하는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25] 이것 역시 작품을 볼 때 어떤 면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26] 스토리의 통속적 소재들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차마 이름을 못밝힌다는 설. 한마디로 유명 만화가가 동인물을 가명으로 쓰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 동인질 퀄이 ㅎㄷㄷ하다는 게 함정 [27] 이 링크는 말 그대로 '설'을 사실로 단정하는 듯한 말투이기 때문에 걸러서 볼 필요가 있으니 주의. [28] 상기된 말로나 엘리자베스 1세 등 몇몇 후보의 경우 셰익스피어 작품 중 상당수가 그들이 죽은 뒤에 쓰여졌다든지, 베이컨의 경우 극장과는 거의 상관없는 삶을 살아서 소설가가 아닌 극작가로 활동하는 건 굉장한 무리수라든지. [29] 셰익스피어 사망 7년 후 친구이자 오랜 동료였던 존 헤밍과 헨리 콘델이 희곡 18편으로 모아 출간한 극본집. 그 전에도 여러 판본이 나왔지만 이 판은 여러 판을 비교하여 정리한 "정판"이라고 보면 된다. [30] 자작인지는 확실치 않다. [31] 원제는 Looking For Richard이다. 도무지 의중을 알 수 없는 번안제목. [32] 2014년 영화를 통해 현대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는 '범죄의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심벨린이라는 극이 유명하지 않아서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내용이 왜 이러냐 할 정도로 반응이 시큰둥했다. 단 극과 영화 사이에도 간극이 커서 극의 내용을 영화로 잘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33] 닥터는 셰익스피어를 그 전까지 작품만으로 접했기에 모든 말들이 예술 그 자체인 대천재라고 생각했으나, 커튼 콜에 등장한 셰익스피어는 관객들을 향해 그놈의 한심한 주둥아리 좀 닥치쇼라고 일갈하는 오만한 셀레브리티 타입의 캐릭터였다(...). [34] 사실 소설과 오디오 드라마까지 포함하면 셰익스피어의 타임라인은 총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어렸을 때 8대 닥터와 찰리를 만나서 달렉 군단을 물리치고(8대 닥터 오디오 The Time of the Daleks) 이후 청년이 된 후 극단에서 일하다가 9대 닥터 로즈를 만나 '셰이디'란 괴물을 무찌른다.(9대 닥터 코믹스 The Groatsworth of wit) 나중에는 5대 닥터와 잠깐 만나서 얼굴을 튼 뒤 5대 닥터 몰래 타디스에 탑승해서 자신이 쓴 '리차드 3세'의 내용처럼 리차드 3세의 일생을 조작하려 하다가 오히려 역관광 당해서 리처드 3세 대신 보스워스 전투에서 사망한다(5대 닥터 오디오 The Kingmaker). 두번째 타임라인은 내용이 조금 바뀌는데, 셰익스피어는 10대 닥터 마사를 만나 캐리오나이트라는 괴물 군단을 물리친다.(Tv 에피 뉴시즌 3 2화 Shakespeare Code) 이후 4대 닥터가 와서 팔을 다친 셰익스피어를 대신해 햄릿을 대필해 준다. 이후 1대 닥터 일행을 만났을 때는 왕실의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사건에 휘말린 후 독살당한다. 이렇게 완벽한 후비안들도 머리 아파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