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적 제136호 | ||
강화 참성단 강화 塹星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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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산42-1번지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제사터 | |
면적 | 5,774㎡ | |
지정연도 | 1964년 7월 11일 | |
제작시기 | [1] | |
위치 |
|
위에서 본 참성단. |
[clearfix]
1. 개요
강화 참성단(江華塹星壇)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472.1 m)에 있는 석제 제단이다. 고조선의 창업군주이자 한민족의 국조(國祖)인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민족적 성지로 꼽힌다. 1964년 7월 11일 사적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2019년부터 보수와 관리(무속인 의식 등)로 인해 강화군에서 참성단 출입을 제한하였지만, 문화재청의 지시로 2023년 7월부터 다시 개방중이다.
2. 역사
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 있는데, 돌로 쌓아서 단의 높이가 10척이며, 위로는 모지고 아래는 궁글며, 단 위의 사면(四面)이 각기 6척 6촌이고, 아래의 너비가 각기 15척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이라." 한다.
《세종실록》 <지리지>
단군이 봄, 가을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해진다. 고려
권근의
양촌집에
고려
태조 왕건 이전부터 이미 여기서 단군에 제사를 올렸다는 구절이 있으니, 최소한 1천 년 넘도록 지켜온 풍습이다. 고려 원종 11년(1270), 조선 인조 17년(1639), 숙종 26년(1700)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세종실록》 <지리지>
3. 특징
- 제단은 원석을 다듬어서 쌓았다. 지천태괘(地天泰卦)의 모습처럼 천지의 교류를 위하여 아래는 하늘을 나타내는 동그란 모양을, 위는 땅을 나타내는 네모난 모양을 하였다. 제단 오른쪽 아래의 나무 밑에는 샘이 있는데, 현재는 뚜껑을 만들어 닫아 놓았다. 뚜껑의 틈으로 샘 안쪽을 들여다 보아도 물은 보이지 않는다.
- 마니산 정상에 참성단이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마니산 정상은 참성단 동쪽에서 헬기장을 넘으면 남쪽에 보이는 봉우리다. 이 봉우리에는 바위에 새긴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이 있는데, 삼각점에서 동쪽으로 약 10 m 지난 곳에 있는 바위가 마니산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 참성단까지 오르는 길을 계단으로 개비하여 올라가기가 수월해졌다.
- 이 밖에 전국체육대회 등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경우에도 이 곳에서 성화를 점화하는 등 민족의 기원과 관련된 의례를 치른다. 올림픽 개막 전, 그리스의 올림피아의 헤라 여신의 신전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2013년에 열린 제4회 인천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를 위해, 참성단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모습. * |
4. 소사나무
참성단 오른쪽 바로 아래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소사나무로, 2009년 9월 16일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된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이다. 수령은 약 150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소사나무 종으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소사나무로서는 드물게 오래 살았고 크기도 큰 데다가 참성단이란 상징적 장소에 있다는 것이 문화재 지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천연기념물 지정 이전에는 ‘참성단을 가린다’는 이유로 가지 일부를 자르기도 했다 한다.
5.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강화 참성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강화 참성단
- 답사여행의 길잡이 7 - 경기남부와 남한강: 마니산 참성단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마니산과 참성단
- 대한민국 구석구석: 강화 참성단
- 인천관광 100선: 마니산 참성단
- 두산백과: 강화 참성단
6. 사적 제136호
마니산에 있으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한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했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과 숙종 26년(1700)에도 고쳐 쌓았다. 여러 번 고쳐서 쌓았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제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下壇)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上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일제강점기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생기고 난 이후에는 민족의 성지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행사가 거행되며, 전국체전의 성화는 이곳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붙이고 있다.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상고시대에 무시못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참성단 → 강화 참성단)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제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下壇)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上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일제강점기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생기고 난 이후에는 민족의 성지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행사가 거행되며, 전국체전의 성화는 이곳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붙이고 있다.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상고시대에 무시못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참성단 → 강화 참성단)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