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14:55:25

노벨상/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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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수상자 수상자 수상자 수상자 수상자

1. 수상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역대 노벨상 수상자 2023년[1]
이름 수상 연도·부문 수상 사유 비고
찰스 피더슨 1987년, 노벨화학상 크라운 에테르 발견 출생 지역만 대한민국 (당시 대한제국), 8살에 일본으로 이주하였으며 미국 국적 취득자이므로 실질적으로는 미국 수상자
김대중 2000년, 노벨평화상 대한민국의 민주화 및 남북 평화에 기여.

2024년 기준, 한국인 노벨상 수상 사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례가 유일하며, 노벨상 수상자 수 국가 순위로는 에티오피아, 케냐, 필리핀 등의 32개국들과 함께 공동 5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표에 기재된 것처럼 찰스 피더슨이라는 대한민국 출생의 노벨상 수상자가 한 명 더 있기는 하지만, 출생지만 대한민국이지 국적은 미국이기 때문에 한국인 수상자가 아니므로 대한민국의 노벨상은 한 명 뿐이다.

대한민국은 선진국들 중에서는 드물게 노벨상 수상자를 과학 외 분야에서만 단 1명밖에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국가이다.[2][3] 대한민국은 국력과 인구수를 감안했을 때 노벨상 수상자 수가 매우 적은 편에 속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1.1. 노벨화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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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위원회 공식 웹사이트의 기록을 보면, 수상자 중 출생지 대한민국으로 기재된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존재하는데, 1904년 대한제국 부산에서 태어난 찰스 피더슨이다. 그는 8살에 일본 본토로 건너가서 국제학교를 다니다 1922년에 미국 데이턴 대학교에 학부유학을 간 이후 최종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 후 MIT를 거친 다음 42년간 연구에 전념하다가, 1987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피더슨의 노벨상이 대한민국과 엮일 만한 부분은 그의 출생지가 대한민국이라는 점 뿐이다. 그는 엄연히 미국 국적을 받은 미국인이고,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인 혈통도 아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으며, 노벨상을 받은 연구도 전부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떄문에 한국 출생 수상자라고 할 수는 있어도 한국인 수상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연히 그가 대한민국 출생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노벨상 수상자가 김대중 대통령 외에 한 명 더 있다고 대한민국에서도 주장하지 않으며,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처럼 노벨위원회에서 국적이 아닌 태어난 장소로 분류하는 이유는 노벨상 수상자들 중 복잡한 출생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더 테레사는 1910년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북마케도니아는 훗날 튀르키예가 되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주 활동 지역은 인도였으며, 후에 인도 국적을 취득했다. 출생지, 민족, 주 활동지역에 따라 각각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인도 3개국에서 그녀를 자국의 위인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1.2. 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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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다.[4] 이것이 한국인이 받은 최초이자 2024년 현재까지 유일한 노벨상이다.

노벨평화상은 노벨상 부문 중에서도 알프레드 노벨이 상을 만들게 된 의지와 가장 가까운 중요한 상이었던데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2000년 새천년 최초 수상자이면서 동시에 20세기의 마지막 수상자 및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던 노벨상 100회 수상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시대적 상징성이 있는 수상을 일부의 음해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받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100년 역사상 최초로 위원회에서 반대 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되었다. 당시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 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김 대통령의 투쟁노력을 추적해 왔다."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동티모르에서 인도네시아에 의해 인구의 10~20% 가까이(약 20만 명)가 학살된 사건을 APEC 등의 국제무대에서 주도적으로 막을 것을 건의해 결국 학살을 막아낸 것도 수상의 이유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5] 즉,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의 공 외에도 수상사유에는 김대중이 젊은 시절 펼친 민주주의 운동부터 재임 시절의 업적까지 전반적인 삶의 궤적을 평가했다.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문서에 서술된 것처럼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미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운동가로 세계적으로 상당히 주목을 받아왔다. 1987년부터 매년 14번이나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기사

그러나 수상 과정에서 여러 논란과 정치적 공작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위상에 먹칠을 했다. 이 노벨상 수상에 대해 로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에 대해 가이르 룬데슈타트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2002년 10월 14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비합법적인(illegitimate) 방법으로 받았음을 암시하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노벨위원회가 그에게 상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례하며(outrageous), 위원회의 심사절차 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 # 다만 당시 노벨위원회 부위원장이던 군나르 스톨셋은 2016년 인터뷰에서 노벨상 로비가 존재했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음을 언급하였다. #

노벨상 수상자 결정 전이던 2000년 7월 한나라당 이신범 전 위원을 필두로 한나라당 원외 위원장들이 오슬로에 가서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저지 시위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이에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나라의 위신이 깎일 수 있는 당내 일부의 모난 행동이 한나라당의 공식적인 입장인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6]

당시 김대중에게 노벨평화상을 주면 안 된다는 로비가 실제로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 이는 진보성향 언론 한겨레[7]나 만화가 백무현, JTBC의 손석희( #) 앵커도 언급할 정도로 유명한 의혹이다. 이 의혹은 늦어도 2002년부터 제기되었는데, 2002년 10월 10일 국회 대정부 질문 때 한나라당이 불법 대북송금 의혹과 함께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을 제기하자 한화갑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노벨상 시상식 때 군나르 베르게(Gunnar Berge, 1940~)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상을 주지 말라는 역로비만 있었다고 말했다며 "김 대통령 수상에 반대하는 시위도 있었고, 상을 주지 말라는 서신도 노벨위원회측에 수만통이나 접수됐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으며[8], 조한천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로비가 있었다면 극우단체와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의 노벨상 반대 로비가 있었다고 합니다."라는 식으로 말했다.[9]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을 반박하며 "김 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 노벨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은 오히려 '대한민국에서 (김 대통령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역로비가 많았다. 참으로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다'라고 말했다"는 식으로 언급했다.[10] 적어도 당시까지 진보 진영에서 노벨상 반대 로비에 대한 소문이 암암리에 돌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로부터 4일 후 오마이뉴스에 작성된 손병관 기자의 기사[11]에서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 행사( 2000년 11월 초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렸다는 한반도 국제심포지엄)까지 언급됐다. 이후 이 루머는 살이 붙기 시작했다.[12] 그리고 김대중의 한 비서관도 한나라당이 황우석 노벨상 수상을 위해 해외 로비에 나설 때에 "한나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상을 타지 못하도록 오히려 역로비를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어떻게 그 소문을 알게 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

다만 이는 여러 정황상 가짜 뉴스일 가능성도 있다. 손병관이 주장한 노벨상 역로비가 언급되었다는 행사는 적어도 인터넷상으로는[13] 당시 신문기사와 구글 검색상에서 전혀 찾을 수 없는 행사이고, 노벨상 시상식에서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노벨상 수상자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가 있었다'고 직접 밝혔다는 것이 노벨상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유의 사태로서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데도[14] 수상식 당시 언론에서는[15] 이 의혹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며,[16], 증언자에 따라 앞뒤가 안 맞는 내용도 있다.[17] 결정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이 최초로 언급된 시기가 노벨평화상 수상 2년 후이자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 발각된 후인 2002년 10월 1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인데, 그로부터 2년 전인 2000년에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이 외국인[18]까지 알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지도를 쌓았다는 것은 시간관계가 전혀 맞지 않기에 신빙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19]

그러나 상술한 의혹을 논외로 치더라도 보수 측에서 김대중 노벨상 반대 공작을 벌인 것은 카더라성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까지 발견된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 때는 김영삼이 노벨평화상을 수여받기 위해 김대중의 노벨상 수여 방해 공작을 펼쳤다는 증언도 나오기도 했다. #

이명박 정부 때는 국정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을 벌였으며, 사전 공작으로 라프토 상 수상을 취소시키려던 정황 역시 포착되었다. # 국정원은 한 보수단체 간부를 통해 서신을 작성해 노벨위원회에 부치기까지 했다. 이 과정 중에 사용된 비용은 전부 세금으로 충당됐다. 당연히 김대중의 후계를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분기탱천하여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 발각되며 대내외적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이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20] 2016년 군나르 스톨셋 전 노벨위원회 부위원장(2000년 당시의 직함)은 “당시 노벨상 캠페인이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확정짓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이 사건을 당시 알았더라면 그를 노벨상 수상자로 지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2020년에는 뉴욕타임즈에서 뽑은 “의문의 노벨평화상”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하였다.[21]

물론 위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남북정상회담이 김대중 대통령 수상의 유일한 결정요인이 아니라고 했던 만큼 이것만으로 노벨상 수상이 잘못되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즉,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에 크게 기여해왔던것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수상을 받은 것이며, 애초에 남북정상회담이 동년 6월에 열렸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수상 자격을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애초에 1987년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후 사민당 동료의원 80여명과 함께 김대중을 추천한 뒤 줄곧 해외의 여러 유력인사로부터 총 15번이나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은 인물이었기에( #) 선거에서 이겨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이후 벌인 로비 하나로 수상후보로 지명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억지스럽다. 애초에 위의 군나르 스톨셋의 이야기가 사실이라 쳐도 결국 그다지 결정적인 영향은 주지 않았다고 언급하였고 말이다.

2. 공식 수상후보자

노벨상의 수상 후보자에 대한 정보는 무조건 50년이 지난 후 공개여부적합성 심사를 거친 다음에 공개 가능하다. 2024년 현재 기준, 공개된 모든 수상 후보자 중에 대한민국으로 분류[22]된 공식 후보자로는 1명이 존재한다. #

그 주인공은 1938년에 노벨생리학·의학상 후보로 지명된 일본인 교수인 하자마 분이치(挾間 文一)[23]로, 나가사키의과대학(현, 나가사키대학 의학부)을 졸업하고 조교수로 지내다가, 추천 후보로 지명될 당시에는 경성(서울)의 경성의학전문학교[24]으로 전근하여 교수로 근무하고 있었다. # 오실로스코프를 이용한 내장의 운동에 의한 전기적 변동을 측정에 관한 연구를 주로 진행했다고 한다.

3. 수상 가능성

3.1. 과학상

과학상 같은 경우는, 노벨상 바로 전 단계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상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 래스커상, 울프상 등이 노벨상 다음의 권위를 가진 상으로 평가받는다. 아직까지 상기한 상을 받은 한국인은 전무하며, 한국인의 노벨 과학상 수상을 위해서는 상기한 상을 우선 받는 성과가 선행되어야 하는 실정이다. 노벨 경제학상의 경우에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이 그 예시에 들어간다. 해당 상 역시 한국인 수상자가 없다.

노벨상이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권위와 가치가 있는 상이라고 인정받는만큼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즌이 되면 늘 대한민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에 관해 다루는 특집 기사가 나오곤 한다. 매년 노벨상 발표 시즌만 되면 언론에서는 한국인 유력 수상 후보들을 거론하다가 수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왜 우리는 노벨상을 받지 못하나' 등의 자조성 기사가 나온다. 특히 옆나라 일본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나오면 이러한 분위기가 더더욱 고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인구가 어느 정도 있고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나라들은 대부분 최소 1회 이상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수상한 기록이 있다. 그 덕분에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 여부는 그 나라의 국가적 역량과 선진국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서 인식되기도 하지만, 유독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면서 인구도 충분히 많음에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기록이 없다. 와닿기 쉽게 예를 들자면 IMF 기준으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 가운데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나라는 그리스, 싱가포르, 아이슬란드, 그리고 대한민국 밖에 없다. 또한 앞의 세 나라들이 인구가 적은 나라들이기 때문에 불리한 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 체급의 선진국이 과학 부문 노벨상이 없는 것으로서는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

사실 이런 문제는 노벨상 뿐 만이 아닌데,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컴퓨터과학계의 노벨상인 튜링상,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25] 역시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 이와 유사한 수학상인 울프상(수학부문), 가우스상, 아벨상, 네반리나상 역시 수상자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압축성장을 위해 극도의 빠른 추종자 전략을 취했음을 대변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상은 단순히 단기간의 뛰어난 실적을 보고 주는 상이 아니라, 최소 수십 년 동안의 업적을 평가하여 주는 상이기 때문에, 수십 년 전에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지금 선진국이라고 성과가 바로 나오길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흔히 대한민국의 경우 기초과학은 부족하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지만, 청색 LED를 개발한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나카무라 슈지와 MALDI 발명한 다나카 고이치가 노벨상을 수상했듯이 노벨위원회는 과학 기술 개발 업적에 상을 수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주장은 다소 어폐가 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기초 과학 기술(Fundamental Technology)을 개발했는가가 중요한데,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기초 과학 기술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많이 미흡한 국가다.

이는 대한민국이 산업화 이래로 기초 과학 기술을 다지기보다는 빠른 압축 성장을 위해 선택한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 부합하는 검증된 기술을 개량시키는 학문 쪽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상당히 좋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2차 전지를 개발하고 생산하여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데 성공했지만 기존에 개발된 기술을 개선시킨 것으로 새로운 과학 기술을 원천적으로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이같이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취하는 기조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데 도움이 될지라도 기초 과학을 발전시키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당초 기초 과학 기술 역시 기초 과학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기초 과학이 부실한 대한민국의 노벨 과학상의 전망은 어둡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기초 과학에서 뒤쳐지게된 가장 큰 원인은 대한민국은 일찍이 근대화나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늦었고 그 역사도 짧기 때문이다. 당장 북미/유럽/일본 등의 경/중공업 기업들 중 상당수가 긴 역사를 자랑하는 데 비해, 대한민국의 공업 기업들은 대부분이 1950~1970년대 설립되었다. 대한민국의 공학기술 역사는 1960~1970년부터, 기초 과학은 빨라도 1990년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전쟁 후, 빈곤, 가난)은 당장 실생활에 활용할 수 없는 기초과학과 기초 과학 기술보다는 검증된 기술을 이용한 빠른 추종자 전략을 취해 그에 부합하는 공학기술의 발전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세계적인 공업기술을 갖추고 전자산업, 자동차, 조선, 건축, 경공업 등의 부문에서 후발 주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세계 무대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공업력 면에선 여러 유럽 국가들을 뛰어넘게 되었다.

2020년 기준 10년간 노벨상 수상자 77명(물리학상 26명·화학상 27명·생리의학상 2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평균 37.7세에 핵심 연구를 시작해 55.3세에 완성하고 69.1세에 수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연구 시작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2년이다. 심지어 해가 갈수록 수상자 평균 연령이 상승하고 있다. # # 2020년을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32년 전의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이었다. 노벨상 주요국 중에서 가장 기초 과학 육성이 늦은 일본을 살펴보면, 1949년 유카와 히데키의 첫 노벨물리학상 수상 이후 일본 과학자가 노벨상을 다시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무려 16년 후인 1965년이었고, 21세기 이전까지는 과학 분야 노벨상을 거의 5~10년에 한 번 꼴로 수상하다가 2000년부터 간격이 점점 좁아지더니 2014년부터는 매년 한 명 꼴로 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기초과학력이 21세기 들어 갑자기 상승한 게 아니라, 이미 쌓아온 성과가 축적되어 상으로서 인정받는 경우가 흔해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초 과학은커녕 이공 계열로의 투자조차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한 수준으로 그 역사가 아주 짧다. 그 때문에 기초과학 연구 내공이 부족하여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불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옹호적인 의견도 종종 제기된다. 좋은 예로 대한민국보다 1인당 GDP 순위가 바로 한 단계 높은 국가는 이탈리아인데,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기초 과학에 대한 역사는 당연하게도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다. 이런 연구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 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적 투자 총액이 크지 않고,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큰 결과물도 아직 충분히 나오지 않은 이유도 있다.[26]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진 중노년층이 아직은 사회 전반에 있어 많은 영향력을 지니다 보니, 당장의 결과에 집착하게 되고, 전반적인 교육 방향도 그런 가시적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쪽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이는 빨리빨리 문화의 영향도 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가치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셈이다.

정리하자면 대한민국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키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빠른 추종자 전략을 취했으며, 따라서 경제 성장이나 관련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기초 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는 자연히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지속적인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빠름 추종자 전략을 크게 수정하거나 혹은 최소한 첫 번째 동적 개시자 전략으로 변경하거나, 과학 기술 분야 전문인력의 양성 및 기초 과학 기술 연구에 대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점은 대한민국 과학계를 견인하여 그 수준을 더 높이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세계 선도 수준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을 만들어 세계적인 석학을 배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벨상 수상자나 권위있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한 핵심 요소 두 가지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젊은 연구자들에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연구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

3.1.1. 노벨물리학상

노벨물리학상의 경우는 최근 수상 경향을 보면, 새로운 분야 개척자에 수상이 많다.

한국인 물리학자 중 노벨 물리학상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 학자는 입자이론을 전공한 고(故) 이휘소 박사가 첫 손에 꼽힌다. 이휘소 박사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자발 대칭 깨짐 이론의 재규격화"인데, 이에 대해서 선구자적 연구를 한 엇호프트와 펠트만이 1999년에 이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만약 1977년 이휘소 박사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공동수상했을 것이라고 평가되었다.

다만, 혹여나 이휘소 박사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지 않아 성공적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그 시점에 이미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엄연한 미국인이었기에 한국인 수상자라는 타이틀은 맞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찰스 피더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출생지역은 대한민국이므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역대 노벨상 수상자'로 등재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이휘소 박사는 한국 전쟁이 끝난 1955년 미국으로 넘어갔고, 1968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기에 대한민국과 별로 접점도 없이 살았다. 또한, 박정희와 박정희 정부에 대단히 비판적이었기에 대한민국 정부에 협조하지 않았다.

3.1.2. 노벨화학상

노벨상은 30대에 연구를 시작해서 50대 이후(빠르면 50대, 늦으면 80~90대)에 받는 케이스가 가장 많기 때문에 30대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보더라도, 202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베냐민 리스트, 데이비드 맥밀런은 2명 모두 50대 나이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화학상 분야 후보로는 아래와 같은 인물들이 거론된다.
  • 유룡 - 2014년부터 톰슨로이터에서 노벨상 후보자로 예측한 기능성 메조나노다공성 탄소물질과 제올라이트 분야의 개척자이다. 후보로 거론 당시에는 KAIST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 박남규 - 2017년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Clarivate Analytics·구 톰슨로이터)에서 화학공학자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를 노벨 화학상 후보 중의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를 태양전지에 적용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
  • 현택환 - 2020년에는 나노결정 합성분야의 권위자인 현택환 서울대 교수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 다만 양자점 연구가 202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기에, 같은 분야로 상을 주지 않는 노벨상 성격상 현택환 교수의 수상 가능성이 하락했다는 분석이 있다.

3.1.3. 노벨생리학·의학상

2021년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를 한국인 최초 수상 유력 후보로 선정한 바 있다. 생리학, 의학 부문에서는 한국인 최초이다. # 하지만 이호왕 교수는 2022년 7월 5일 세상을 떠났다.

3.2. 노벨문학상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전무한 게 대한민국 문학계의 현실이다. 노벨문학상은 유럽 언어 외의 언어로 작품을 쓰는 문학인들에게 굉장히 짜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작품에 사용한 언어는 대부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와 같은 유럽 언어들이 대부분이며, 한자문화권 언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전무할 정도로 굉장히 적다. ( 일본어, 중국어 소설이 각각 2개 수상)

소설가 한강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지만, 인터내셔널 부문의 특성상 한강의 가능성은 현재 시점에선 없다는 게 현실이다.

2020년대 들어선 지금은 수상 논의가 활기를 띄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문학에서 주로 논의되는 주제가 현대 노벨문학상의 흐름에서 크게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노벨문학상은 형식적 파괴(밥 딜런의 수상이나 페터 한트케 등)나 형식의 재해석(루이즈 글뤽), 역사에 대한 관점(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오르한 파묵, 가즈오 이시구로) 등을 조명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문학에는 이러한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현시점에서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들만한 작가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3.3. 노벨평화상

지정학적으로 분쟁의 여지가 산재한 한반도의 특성과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수상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부문 중 하나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2018년의 경우, 2018 남북정상회담 2018년 북미정상회담을 모두 성공리 개최한 덕분에, 북한이 전격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서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점쳐지기도 했다. # # 영국 도박업체 '나이서오즈'(Nicer Odds)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공동 수상 배당률을 최저 1.53에서 최고 2.20[27]으로 내걸기도 했으며, 또 다른 도박업체 '래드브록스'(Ladbrokes)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공동 수상에 1.66의 배당률을 내걸어 가장 높게 전망하기도 했다. # 노벨 사이언스 역시 문재인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물론 문재인/김정은/트럼프의 수상 가능성이 낮다는 반론도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2018년 노벨평화상의 후보 추천은 2018년 2월에 마감했으므로 이후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의 결과가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2019-20 북한 미사일 도발을 시작으로, 2020년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의 남북관계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여러 불상사가 발생했기 때문에 노벨 평화상 관련 이야기는 현재 거론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3.4. 노벨경제학상

그나마 수상 후보라도 거론되는 과학계와는 달리, 경제학계에서는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는 학자들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사실 대상을 아시아 전체로 넓혀도 수상 가능성이 희박한 실정이다. 현재까지 아시아 출신 수상자로는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야 센이 유일하며, 수상 후보로는 신케인즈학파의 기요타키 노부히로만이 거론되는 중이다.[28]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조차 경제학상 부문 수상자가 없는 이유는 경제학 연구의 중심이 미국에 있는데다 미국 연구자들 (혹은 영어권) 간의 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애초에 세계 경제의 중심이 미국인 이상 미국류의 경제학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미국이 아닌 자국의 경제에 집중하는 각국의 경제학자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에는 불리할 수 있다.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29]을 수상한 학자도 전무한데다가 아시아 전체로 넓혀도 1965년 즈비 그릴리커스(이스라엘)과 2005년의 다론 아제모을루(튀르키예, 미국 복수국적) 밖에 없어서 논의하기에도 이르다고 볼 수 있다.

4. 기타

  • 대한민국은 국내 대학들에서 학사· 석사· 박사 중 한 가지 이상의 학위를 취득/수료했거나 연구원 또는 교수직을 지낸 외국인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 했으며,[30] 한국계의 노벨상 수상 사례도 전무하다.
  •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 여부는 꽤나 오랜 떡밥이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굳이 한국인이 노벨상을 꼭 받아서 얻는 이득이 무엇인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노벨상 자체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어지는 상이고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행사와는 달리 국가간의 경쟁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국의 학문 및 기술의 발전에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기여가 작지 않기에 노벨상을 수상할 만큼의 업적을 지닌 과학자라면 분명히 훌륭한 국가적 인적 재산이기에 국가에 가져다주는 이익은 분명히 있지만 꼭 노벨상을 받아야만 국가 경쟁력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김대중 대통령의 뒤를 이을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고 해서 타국에 대한 열등 의식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으며 대한민국의 교육 토양이 나빠서 노벨상 수상자가 안 나온다고 자조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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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벨위원회의 수상자의 출신지 기재 기준에 따름. [2] 전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과학 외 분야에서만 1명 이하로 배출한 선진국은 대한민국 외에 현재 아이슬란드 (문학 1), 싱가포르 (0) 뿐이다. 그마저도 이 나라들은 인구수가 대한민국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들이다. 아이슬란드는 40만 미만이며, 싱가포르가 그나마 약 6백만 정도이다. [3] '1명 이하'라는 조건을 빼더라도 해당되는 선진국은 그리스 (문학 2) 뿐이다. 참고로 그리스의 인구는 약 천만이다. [4] 수상자 발표는 2000년 10월 13일(서울 시각 기준)이었으며, 시상식은 2000년 12월 10일에 있었다. [5] 당연히 이 덕분에 동티모르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6] 이후 한나라당 의원들의 노벨상 수상 반대 시위 계획은 흐지부지해졌다. 그러나 이는 후술하듯 엄청나게 부풀려진 채 알려지며 한나라당의 이미지 악화에 일조했다. [7] 하술할 오마이뉴스 기사를 인용했다. [8] # [9] # 이신범 측에서는 즉시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주장한 조한천 의원에게 로비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라며 자신들은 노벨상 로비를 할 경비도 여유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 [10] # [11] 기사 자체는 가이르 룬데슈타트(Geir Lundestad, 1945~2023)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이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여를 위한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12] 가장 대표적인 것만 하더라도 (AP=연합)에서 보도한 기사라며 노벨상 로비 주장이 대한민국에서 처음 언급된 지 바로 다음날인 2002년 10월 11일 노르웨이의 '스팔니치뇨'라는 교수를 노벨위원회 관계자라고 언급하며 그 사람이 노벨상 반대 로비에 분노하여 '더 이상 대한민국에게 노벨상을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게 있다. 최초 출처 현재 이 기사의 원문은 인터넷상에서 찾아볼수 없다. [13] 2000년 당시는 인터넷이 전세계적으로 일상화되지는 않았을 때이다. 정보 출처가 궁금하면 보도한 손병관 기자에게 문의해봐야 한다. [14] 반대 로비는 모르더라도 일단 오바마 대통령이나 밥 딜런, 헨리 키신저 등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센 적은 많았다. [15] 대한민국 언론이든, 노르웨이 언론이든, 제3국 언론이든 [16] 베르게가 시상식 중에 뜬금없이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노벨상 역로비 의혹을 말해 분위기를 깼을 리는 없을 것이고, 노벨상 시상식 당시 베르게 위원장이 시상발표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과 따로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으니 기자들에게 역로비 의혹을 언급할 수도 없었다. [17] 김대중 노벨상 역로비설을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사람과 언급 당시 시점만 하더라도 한화갑과 박지원은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김대중 노벨상 시상식 때(2000년 12월 10일)에 밝혔다고 주장했지만 손병관은 올라브 욜스타드(Olav Njølstad, 1957~) 연구실장이 베르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2000년 11월 초에 언급했다고 주장했고, 백무현은 김대중 노벨상 수상자 발표(2000년 10월 13일) 무렵에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첫 언급 시기도 무려 3개나 된다. 셋 다 사실일 가능성, 전해들은 사안에 대해 약간의 착오가 생겼을 가능성(일단 백무현은 이에 해당된다), 누군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 셋 다 고려해야 한다. [18] 백무현은 서양 기자들이, 손병관은 독일 학자가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을 노벨연구소 측에 물어봤다고 주장했다. [19] 일단 노벨평화상 수상자 결정 직후인 2000년 10월 13일 베르게 위원장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언론 측에서 김대중 노벨상 로비 의혹에 대해 언급한 적은 전무했다. #1 #2 훗날인 2016년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당시 노벨위원회 부위원장이던 군나르 스톨셋도 노벨상 로비 의혹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노벨상 반대 로비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20] 한나라당이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돈 주고 산 노벨상'이라고 주장한 것과 상술한 국정원의 노벨상 취소 공작에서 근거로 든 것이 바로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었다. [21] 여기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적지 않은 업적으로 뽑혔던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가 현재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남북은 여전히 전쟁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김정일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은의 통치 아래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언급했다. # [22] 후보자의 정보로는 당시 소속기관과 체류 국가 및 도시가 기록된다. 국적이나 인종 등의 정보는 일체 기록되지 않는다. [23] 요미가나: ハザマ ブンイチ, 영어: Bun-ichi Hasama [24] 경성의학전문학교는 해방 이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합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 [25] 허준이 교수는 유년시절의 대부분 및 석사까지 대한민국에서 취득했지만 미국 국적을 취득한 미국인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수상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커리어 대부분은 미국에서 쌓았다. [26]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수상한 일본조차 이공계 육성 시작으로부터 첫 노벨상 수상자 배출까지 최소한으로 잡아도 반 세기 넘게 걸렸다. 1949년의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의 모교이자 교수로 있던 교토대학 이공학부 설립년도가 1897년이었고,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대학인 도쿄대학도 1877년에 설립했다. [27] 가령 100유로를 건다면 최대 220유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배당률이 낮을수록 수상 가능성이 높다. [28] 신케인즈학파의 노벨경제학상 수상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시상 분야가 거시금융으로 한정될 경우 기요타키와 무어가 유력자들이기 때문이다. [29] 사실 이 상은 권위가 있기 보다는 명예상에 가깝다. [30] 다만 국내 대학에서 객원 연구원이나 방문 교수로서 강의를 한 외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몇 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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