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1:37:22

채식주의자(소설)


<colbgcolor=#bc8f1a><colcolor=#fff> 채식주의자
The Vegetarian
파일:채식주의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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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장편소설[1]
작가 한강
출판사 창비
발매일 2007. 10. 30.
쪽수 247
ISBN 9788936433598

1. 개요2. 줄거리
2.1. <채식주의자>2.2. <몽고반점>2.3. <나무 불꽃>
3. 평가4. 수상5. 저자 인터뷰6. 논란
6.1. 영문판 오역
6.1.1. 학계 및 언론의 비판6.1.2. 구체적 번역 검토6.1.3. 저자와 역자의 반응
6.1.3.1. 한강6.1.3.2. 데보라 스미스
6.1.4. 한강에게 거부당한 페미니즘 번역론
6.1.4.1. 윤선경의 페미니즘 번역론6.1.4.2. 페미니즘 번역론에 대한 한강의 인용불허가6.1.4.3.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6.2. 청소년 유해도서 지정 논란
6.2.1. 미성년자에 대한 소설의 건전성 문제와 검열
7. 미디어 믹스
7.1. 영화7.2. 연극
7.2.1. 한국 프로덕션(무산)7.2.2. 이탈리아 프로덕션7.2.3. 오스트리아 프로덕션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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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7년에 출간된 한강의 연작소설[2]로, 작가에게 맨부커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수상 공표문 번역

허무와 결핍을 소재로 한 탐미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부장의 폭력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사회적 제약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한계까지 넘어 식물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과 사회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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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이라는 틀이 말해주듯, 세 편의 이야기가 하나의 캔버스 위에서 그려진다. 고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여자의 이야기 < 채식주의자>, 그 여자가 가진 몽고반점에 강렬한 끌림을 느끼는 남자의 이야기 <몽고반점>, 그리고 이카루스처럼 초월하려다가 인간으로서 파멸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한 여자의 이야기 <나무 불꽃> 으로 구성되어 있다.[3]

세 이야기의 핵심 인물은 영혜이다.[4] 영혜는 과거의 기억과 꿈을 통해 자신이 '목구멍에 생명들이 걸려 남아있어 답답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고, 육식에 대한 혐오로 시작해 생명에 대한 폭력 자체를 거부하게 되며, 마지막엔 다른 생명을 죽여야 살아갈 수 있는 동물로서의 자신을 초월하려고 한다.[5]

주간지 《 대학내일》에서 줄거리를 요약했다. <《채식주의자》 3분만에 읽기>

2.1. <채식주의자>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왜 죽으면 안 돼?"

겉보기엔 평범하다못해 무미건조하지만, 고집이 세고 다른 이를 해치지 않으려는 성격인 '영혜' 는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남자[6]의 아내이다. 하지만 어느 날 영혜는 피가 뚝뚝 흐르는 생육을 먹는 끔찍한 꿈을 꾸게 되고, 고기를 아주 멀리하게 된다. 집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다 치우고, 남편에게는 "몸에서 고기 냄새가 난다" 며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영혜는 어릴 적 자신을 문 개가 아버지[7]의 오토바이에 묶여 끌려다니다가 거품을 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영혜는 그 개로 만든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먹었었다.

영혜의 꿈은 점점 '고기를 먹는 것' 에서 떠나, 누군가가 누군가를 때려서 살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고기를 거부하는 영혜는 사회적인 압박을 받으며 점점 눈에 띄는 행동을 싫어하는 남편의 심기를 건드리고, 보다못한 남편이 그녀의 가족들을 불러 그녀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하다가[8] 그녀가 자해를 하게 만들고 만다. 이 사건으로 가족은 풍비박산이 나고 영혜는 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병원에서는 어머니[9]가 달여준 한약[10]이나 고기마저 발악적으로 거부하고, 벤치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 앉아있다가 새를 잡아다 손에 쥐고 자해한 손목을 핥아먹는 등 남편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결국 남편은 영혜를 버리고 만다.[11]

2.2. <몽고반점>

"그게 아니라, 꽃이⋯⋯"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 그 사람 몸에
뒤덮인 꽃이요⋯⋯ 그게 날 못 견디게 했던 거야, 그것뿐이에요."

"그렇다면⋯⋯"
"내 몸에 꽃을 그리면, 그땐 받아주겠어?"

주인공인 영혜의 형부는 미디어 아트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예술가이다.[12] 집에서는 늘 힘 없는 모습이지만 자신의 카메라로 영상을 찍을 때만큼은 타인은 물론 본인도 이해 못하는 열정을 발휘한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동생(영혜)을 씻기다가 그녀에게서 몽고반점을 봤다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는 흥분에 빠진다.

거부할 수 없는 열망에 빠진 그는, 도덕적인 금기를 깨고 영혜를 불러 그녀의 누드에 꽃을 그려 촬영하고 싶다는 부탁을 한다.[13] 영혜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게 이를 수락한다. 그도 그럴 게 영혜는 내심 식물적인 삶을 갈망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영혜의 몸에 꽃을 수놓고, 어린 시절이 지나면 사라질 게 당연한 몽고반점을 강조한 바디 페인팅을 그리며, 성욕을 초월한 예술적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같은 작업실을 공유하는 남자 후배 'J' 를 불러 모델 일을 부탁하고, 그의 몸에도 꽃을 그려 영혜와 함께 찍도록 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영혜와 하나가 되는 모습을 촬영하겠다' 는 그의 지나친 요구에 질색한 J는, 수치심에 받쳐 촬영 중 스튜디오를 떠난다. J가 떠난 후, 영혜의 "다 젖어버려서⋯⋯"라는 말에 형부는 영혜를 덮치나, 영혜는 거칠게 거부한다. 자기가 형부이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냐고 묻자, 영혜는 자신이 꽃에 끌렸던 것임을 밝힌다. 그렇다면,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린다면 받아주겠냐는 형부의 질문에 영혜는 희미하게 웃음만 짓는다.

주인공은 지인인 P에게 부탁해 몸에 꽃을 그리고 영혜와 다시 만난다.[14] 형부와 처제는 온몸에 꽃을 그린 채로, 마치 짐승 같이 서로의 몸을 탐하며 둘 모두 극도의 쾌락 속에 밤을 보낸다.

주인공은 어느새 잠에 들었고, 깨어보니 처제의 언니인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캠코더를 돌려 이미 다 본 상황이었다.[15] 남편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아내는 남편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갖는다. 영혜의 언니는 정신병자가 있다는 신고를 했다고 말하며, 남편을 경멸하는 말들을 퍼붓는다.

영혜는 뒤늦게 방에서 나와 상황을 확인하나, 아무런 반응도 없이 이내 창가로 향한다. 창문을 열고, 타오르는 태양빛에 바람에 젖가슴을 내밀며 주황빛 꽃이 그려진 가랑이를 활짝 펼친다. 주인공은 베란다 난간을 넘어 뛰어내려 자살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는 동시에 마치 활활 타는 꽃 같은 영혜의 육체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2.3. <나무 불꽃>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사람들이, 자꾸만 먹으라고 해⋯⋯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여. 지난번에 먹구선 토했다구⋯⋯ 어젠 먹자마자 잠자는 주사를 놨어. 언니, 나 그 주사 싫어, 정말 싫어⋯⋯ 내보내줘. 나, 여기 있기 싫어.(중략)"

마침내 그녀는 참았던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네가! 죽을까봐 그러잖아!"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몽고반점>의 일 이후, 인혜는 남편과 갈라섰고[16] 영혜는 시골의 깊은 산 속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어느 비 오는 날, 인혜는 병원으로부터 영혜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행히 병원의 보호사가 기적적으로 영혜를 찾았다고 하지만, 영혜가 깊은 산비탈의 외딴 자리에서 마치 비에 젖은 나무들 중 한 그루인 듯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영혜가 사라졌던 그날 이후, 영혜의 모든 증세가 악화되기 시작한다. 영혜는 고기와 동물성 식품뿐 아니라 채식마저 거부하고, 나아가서는 일체의 식사를 거부하는 데 이른다. 온몸에 살이 남아 있는 곳이 없고, 생리는 멎은 지 오래. 뼈만 남은 엉덩이 가운데 찍힌 또렷한 몽고반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모든 식사를 거부하니 병원에서는 생명 보존을 위해 정맥주사를 통해서 포도당과 단백질 등의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정맥주사를 꽂을 혈관조차 성한 곳이 없어 어깨에 연결된 대정맥을 통해 바늘을 연결하는 방법만이 남게 된다. 위험한 시술이므로 종합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는 담당의의 전화를 받는다.

다시 찾아간 면회. 왜 뭐라도 전혀 먹지 않느냐는 언니의 질문에 영혜는, 자기는 내장이 다 퇴화됐을 거라고, 자기는 이제 동물이 아니라고,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햇빛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영혜의 거식이 결국 생명을 앗아가기 직전에 이르러, 병원에서는 영혜를 결박해서라도 코를 통해 미음을 집어넣는 시도를 한다. 가족이 지켜보기 힘든 장면일 수 있다고 간호사가 만류하나, 인혜는 지켜본다. 의료진들이 영혜의 사지를 결박하고 코에 튜브를 꽂아 넣는다. 영혜는 짐승 같이 비명을 지르고 신음하며 거부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튜브를 삽입하는 데 성공하고, 진정제를 놓아 안정시키려는 찰나 영혜는 입에서 피를 뿜어낸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마저 실패하고, 외진 시골의 정신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의사는 서울의 큰병원으로 의뢰서를 써 준다.

서울로 향하는 구급차 안, 영혜에게 말을 걸어 보지만, 영혜는 결코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외튼다. 인혜는 영혜에게 속삭인다.
⋯⋯이건 말이야.
⋯⋯어쩌면 꿈인지 몰라.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3. 평가

학계 및 일반 대중에 있어《채식주의자》는 육식, 가부장제,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으로 주로 해석되고 있다.[17] 특히 사회 공동체 안에서 일종의 규범으로 포장되어 가해지고 있는 일상적인 '폭력'을 개인이 저항하는 과정 속에서 미학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에코페미니즘 소설로 접근하여 해석하기도 한다.[18]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는 채식주의자를 깊이 있는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관점으로 평가했다. # 다만 단순히 에코페미니즘이 이 소설에서 저자가 전달하려는 핵심 전달 주제로 보긴 어렵고 작품의 다양한 접근법과 해석 중 하나라 할 수 있다.[19]

또한 《뉴욕타임즈》는 The Vegetarian의 평론에 대해 오히려 반대되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는데,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비하나 '고문 포르노'와 같은 측면에서 해당 작품에 비난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원대학교의 김대중 교수는 작품세계에 대한 해외 평자들의 설왕설래이고 영어권 독자들이 작품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었다며 이러한 논란의 상당 부분은 데보라 스미스의 의역을 넘어선 오역들에 기반하고 있다고 대변했다.[20]

번역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하단 문단을 참조.

한국에선 <몽고반점>[21]에 호평을 내리는 것에 반해 영역본 제목으로 <채식주의자>가 선택된 것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영역본 소설이 통합되어 나와 연작의 첫 번째인 <채식주의자>를 그 타이틀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연작 3부작(The Vegetarian)이 통합돼서 183쪽으로, 247쪽의 원서보다 쪽수가 적어졌다. 외국 서평 사이트 Goodreads(굿리즈)에서 2024년 10월 13일 기준 독자들이 매긴 별점은 3.58점으로[22] 24,581개의 서평이 올라왔다. 굿리즈 페이지.

초기 영미 출판계에서는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에 대해 ‘too literary(너무 문학적이고), too heavy(너무 무겁고), too dark(너무 어둡다)'라는 평가도 있었다고 한다. #

4. 수상

  •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몽고반점〉
  •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출간된 이후부터 맨부커상을 수상하기 이전까지 판매량은 30,000부에 그쳤으나, 수상 이후 단 3일만에 320,000부를 돌파하고 한강의 다른 대표작들인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도 동시에 베스트 셀러에 랭크되었다.(2016년 5월 22일 기준)
  •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기여.[23] 노벨상은 특정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수여한다. 다만 노벨상 선정 이유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을 들었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수상에 더 큰 기여를 한 것이다.[24]

5. 저자 인터뷰

6. 논란

6.1. 영문판 오역

6.1.1. 학계 및 언론의 비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Debora Smith)의 The Vegetarian에 대한 영미권의 반응과 평가는 출간 초기부터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이러한 호평은 한강의 소설이 맨부커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정점에 올랐다. 뉴욕 타임즈의 서평이나, 보이드 톤킨 심사위원장 등은 번역이 전혀 외국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완벽할 정도로 적절하여 원작과 모든 점에서 어울린다는 등의 찬사를 쏟아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호평과 찬사는 자연스레 국내 언론사들의 경쟁적인 칭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수상 소식의 기쁨과 흥분이 가시고 국내 번역학계에서 스미스의 번역과 한강의 원작을 차분히 대조하고 검토할 여유를 갖게 되면서, 스미스의 번역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 안양대학교 영미언어문화학과의 김영신 교수는 독자 친화적이고 수용자 중심적인 번역 전략을 택한 스미스의 번역을 자국화 전략(로렌스 베누티의 번역 이론에서 인용)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는 1. 영어의 가치를 이국의 텍스트에 각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며, 2. 영어로 번역되는 외국 문학, 특히 제3세계의 문학은 문화권에 상관없이 균질화되고 동질화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고 영미권의 번역 전통을 비판하고 있다. 서구권 독자들의 입장에서, 작가가 팔레스타인의 여성작가인지, 대만의 남성 작가인지, 한국의 여성작가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모두 비서구권이라는 관점으로 일반화된다는 것이다. 결국 『The Vegetarian』은 번역된 한국 문학이라기보다는 동시대 영문학의 리듬(rhythm)과 결(texture)로 온전히 다시 쓰여진 작품이 되어버린다.
  • 이강선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자국화 번역전략을 택한 스미스가 영어권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려는 노력으로 원텍스트에 심각할 정도로 개입해 번역함으로써 두 권의 서로 다른 채식주의자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2016:307).
  • 김대중 강원대학교 교수는 스미스의 번역에 있는 상당히 많은 오역 혹은 과도한 의역 사례들을 자세히 열거하면서 이로 인해 영미권 독자들이 한국 독자들과 전혀 다르게 작품을 이해할 소지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원작의 미학적 완성도도 훼손되었다고 지적한다(2016, 41-45).
  • 영문학자 겸 번역가인 서강대 명예교수·울산과학기술원(UNIST) 초빙교수 김욱동은 텍사스대학 번역학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번역 리뷰(Translation Review)" 100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스미스의 번역이 오역과 졸역이 많은 부적절한 번역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스미스의 번역에 비판적인 학계의 연구가 계속되자, 중앙일보는 2017년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학계의 비판에 주목하는 기사를 실었다. 첫 번째 기사는 스미스의 영어번역이 원작 훼손한 작품 창작 수준의 번역이라는 정과리 교수[25]의 비판을 전했다. # 두 번째 기사는 계간지 문학동네 봄호에 실린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이다. 조재룡 교수[26]는 해당 기사에서 스미스의 한국어 능력 부족(스미스, 주어 생략 이해 못해...)과 그와 관련된 잘못된 번역 사례들을 세밀히 짚었다. #

조 교수는 스미스에 대해 "이미지에서 제 번역의 단초를 얻어내, 이미지의 근사치를 연상해내고, 그렇게 낱말을 이 연상의 결과물과 조합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며 "전체적으로 '감'에 의지해, 한국어 원문을 유려하고 화려한 영어로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스미스가 한국문화의 흔적을 과감히 지우고 자신의 문학관을 덧씌웠다며 "원문보다 뛰어난 번역, 원문보다 풍부한 번역, 원문보다 더 감동적인 번역, 원문보다 더 활력이 있으며, 감정을 실현한 번역이 이렇게 탄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여기서 나아가 맨부커상 수상 이후 스미스를 한국문학 세계화의 기수인 양 칭송하며 문학을 국가대표 운동경기처럼 여기는 경박한 문화를 꼬집었다.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 번역은 '수상'으로, 아니 '수상' 콤플렉스로 승리한다. 번역은 과도한 열정, 한국사회가 번역에 대해 걸고 있는 막연한 기대치로 승리한다. 번역은 국가가 이끄는 사업의 일환으로 승리를 점친다. 번역은 무모한 기대와 콤플렉스의 역설을 먹고 승리한다."

정과리와 조재룡의 경우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 작품 내용의 변질과 왜곡이 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조재룡은 한국어의 특징인 생략된 주어를 잘못 파악하는 데서 나타나는 스미스의 “한국어 장악력 부족"과, 창작적 재능을 십분 살려 원문에 번역가의 주관과 감정을 덧씌우면서 "임의로 첨가하고 자의적으로 삭제하는" 그녀의 번역방식에 대한 강한 비판의 어조를 숨기지 않았다.

6.1.2. 구체적 번역 검토

김욱동 교수는 "스미스는 한국어의 기본 어휘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기본적인 어휘인 '팔'과 '다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arms'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feet'로 번역하고, 'feet'로 번역해야 할 것을 'arms'로 번역했다", '고가도로'의 고가(高架)를 높은 가격이란 뜻의 고가(高價)로 오해해 'expensive'로 번역하고, 아파트의 '앞 동(棟)'을 동쪽을 뜻하는 'out east'로 번역하는 등 동음이의어를 잘못 번역한 사례들도 열거했다. 또 주어나 친족어, 구어 등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해 "아르바이트생이 펑크를 내다"를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고 번역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을 베이비시터로 번역하는 등의 사례도 심각한 오역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스미스는 그동안 인터뷰나 강연을 통해 여러 번 자신의 번역이 '창조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구에 얽혀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번역에서 말하는 '창조성'이란 원문에 충실한 뒤 목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할 때 달성할 수 있다. 즉 원저자가 암시적으로 표현할 것을 목표 독자의 이해를 위해 좀더 명시적으로 옮기는 것이 창조적 번역이다. 번역의 창조성은 오역이나 졸역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면죄부가 결코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실은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에서 정은진씨의 프랑스어 번역과 비교해 스미스의 영역이 한국어에서 생략된 주어를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한국문화의 고유성도 지워버렸다고 지적했다.[27]
  • 기본적 한국어 이해의 부족 (생략된 주어를 못 찾음)
한국어 "(나는) 이제 너희 걱정은 다 잊어버렸다. 완전히 자리를 잡았구나." 장인이 수저를 들며 한마디 했다.
스미스의 번역 'Now you've been forgotten all your worries.' My father in law pronounced, taking up his spoon and chopsticks. ' Completely seized the moment!'
직역 "이제 너희는 너희 걱정을 모두 잊어버렸구나." 나의 장인이 수저를 들며 말했다. "완전히 그 순간을 붙잡았어!"

한국어 원문 첫 문장 '이제 너희 걱정은 다 잊어버렸다'의 생략된 주어가 영어판에서는 you로 되살아났다. 과격하게 채식주의자로 돌변한 딸 영혜와 그로 인해 골치 썩는 사위를 장인(영혜의 아버지)이 도닥거리는 장면인데, 웬만한 한국어 독해력 소지자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생략 주어(=장인)'를 스미스는 엉뚱하게도 너희, 즉 영혜와 사위로 둔갑시켰다.

고려대 불문과 조재룡 교수는 스미스의 한국어가 서투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첫 네 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스미스가 전체적으로 한국어 해석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검토해본 결과, 주어가 생략된 문장의 번역이 상당 부분 잘못됐던 것이다. 조 교수는 "한국어를 번역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문장의 생략된 주어 찾기에서 스미스는 번번이 실수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실수로 인해 텍스트의 특수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점이 좀 더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가령 주인공 영혜는 한국적 가부장제에 짓눌린 수동적이고 몽환적인 캐릭터다. 한데 스미스의 번역에서는 능동적이고 이성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는 지적이다. 잘못 해석했거나, 번역 과정에서 번역자 본인의 주관적 해석을 임의로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조 교수는 스미스가 화자인 남편의 단언적 문장을 복문으로 옮기면서 "폭력적이고 단순한 남편"을 "우유부단하고 고민에 휩싸인 남편"으로 뒤바꿨다고도 말했다. 번역자의 주관이 개입됐을 뿐 아니라 인물의 성격 자체가 원문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마치 아내가 유령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문)
'아내가 유령처럼 보였다' (번역)
으로 번역하거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허둥댔다' (원문)
'다른 사람이었으면 허둥댔을 것이다' (번역)
으로 번역했다. #

  • 이하 김대중 교수의 논문 "채식주의자 번역 속 의역/오역 사례를 통해 살펴본 번역가의 과제 연구"에서 발췌.
  • 과도하게 의역해서 원어민 화자를 혼란스럽게 함
한국어 "허공을 오가는 어떤 대화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사람들의 입술에 번들거리는 탕평채의 참기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스미스의 번역 By now, everyone was busy making sure that their mouths were fully occupied with eating, so that it wouldn't be up to them to try and fill the awkward silences that were now peppering the conversation
번역의 재번역 이제 모든 이들은 그들의 입이 모두 먹는데 바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대화에 뿌려지는 당혹스러운 침묵들을 채우려 노력할 필요가 그들에게 없음을 알게 되었다

팀 파크스(Tim Parks)는 뉴욕서평(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독자가 읽으며 의아했던 번역을 지적하고, 번역이 얼마만큼 원문을 제대로 전달하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어떻게 침묵이 "대화에 뿌려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위의 비교에서 볼 수 있듯이, 팀 파크스의 혼란은 잘못된 번역에서 기인한다. 번역에서 발생한 문제가 영어권 독자들이 작품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 것이다(김대중, 2016).

  • 작품에 대한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불러옴
작품세계에 대한 해외 평자들의 설왕설래 역시 있다. 뉴욕타임즈의 서평은 The Vegetarian에 대한 평론에서 "몇몇 영국의 평론가들은 채식주의는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비하나 '고문 포르노'와 같은 측면에서 작품에 대한 비난을 가하고 있다."라고 언급한다(Khakpour). 김대중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논란의 상당 부분은 스미스의 의역을 넘어선 과한 번역과 오역들에 기반하고 있다(2016).

  • 단순 오역
한국어 문턱을 넘자 을 뒤로 뻗어 조용히 문을 닫았다
스미스의 번역 As she entered the room, she stretch out her foot and calmly pushed the door to
기초적인 수준의 단어에서 발생한 오역. 단순히 팔과 발을 헷갈렸든, 번역자가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임의로 단어를 취사선택했든 이미 원문의 의미와 동치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한국어 결혼 전부터 아내는 식성이 좋았고
스미스의 번역 she had proved herself a more than competent cook
번역의 직역 그녀는 자신이 능력 있는 요리사 이상임을 증명했다.
식성에 대한 내용을 요리 솜씨로 둔갑시켰다.

한국어 말도 마세요.
스미스의 번역 She's stopped talking.
번역의 직역 그녀는 말을 멈췄다.
명백한 오역.

  • 이유 없는 생략
한국어 마침내 거기에 생각이 이를 때....그가 그녀를 좌절시킨 만큼 그녀 역시 좌절시켰던 것은 아닐까.(192-3)
반 페이지 분량을 아무 이유 없이 번역본에서 생략해 버렸다.

한국어 그 가을 아침 영혜에게 줄 나물을 싸들고.. 테이프에 담았던 것이다.
한국어 그 아침, 붉고 노란 꽃으로 온통 물감칠이 된 알몸의 영혜 곁에... 분명한 것은 남편의 행동이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뿐이다.
167쪽 한 페이지의 거의 절반 이상이 생략되어 있다.


이 외에도 작품 곳곳에 특히 3부에 생략된 부분들이 많이 목격된다. 다음은 그 예시이다.
  • "석달을 굶으면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영혜의 얼굴은 조그맣다." 188쪽
  • "채식주의자들이야...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166쪽
  • "봄날 오후의 국철 승강장에 서서....그녀는 이미 깨달았다." 201쪽

  • 작품의 오역으로 전체 내용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불러옴.
상황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인간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생각을 하다 영혜와 성관계를 가진 이후 헤어진 자신의 남편을 기억하면서 한 말.
한국어 "아마 그도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하게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스미스의 번역 "And they probably have these same thoughts, too, and when they do it must make them cheerfully recall all the sadness they'd briefly managed to forget."
번역의 직역 그리고 그들(인간)도 아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들이 그렇게 할 때마다, 그것은 그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모든 슬픔을 기쁘게 떠올리게 할 것이다.
남편을 지칭하는 그(he)가 인간 전체를 지칭하는 그들(they)로 변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내용 역시 바꾸었다.

"모로 누운 아이의 몸을 바로 누이며, 그녀는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난 부자의 옆얼굴이 가련하게 닮아있는 것을 보았다."(199)
여기서는 부자(父子)를 mother and child(母子)로 오역했다.

  • 번역가 자신의 해석이 들어간 과도한 의역이 인물에 대한 해석을 바꾸는 경우
한국어 아이를 넷쯤 낳아 기른 중년의 여자처럼 방심한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스미스 she asked absent-mindedly, for all the world like some middle-aged woman addressing her grown-up son
직역 그녀는 무심코 물었다, 마치 어떤 중년 여성이 성인이 된 아들을 꾸짖듯이
중년의 여자처럼 방심한 목소리와 중년 여성이 성인이 된 아들을 꾸짖듯이 행동하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히 다르다.

  • 번역자의 한국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주는 예.
상황 작품에서 영혜의 기이한 행동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비추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속 남편의 직장동료와 상사들과의 부부동반 회식 장면
한국어 이곳까지 오는 동안 줄곧 아내는 말이 없었지만, 워낙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개의하지 않았다. 말이 없으면 좋다. 어른들은 원래 저런 여자들을 좋아한다고, 나는 조금 불편했던 마음을 손쉽게 떨쳐버렸다.(28-29)
스미스 She hadn’t said a single word on the way here, but I convinced myself that this wouldn’t be a problem. There’s nothing wrong with keeping quiet; after all, hadn’t women traditionally been expected to be demure and restrained?(21)
직역 그녀는 여기로 오는 길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조용히 있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결국,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새침떨며 자제하는 모습을 기대받지 않았던가?(21)

위의 번역에서 "어른들은 원래 저런 여자들을 좋아한다"가 함축하는 한국 직장 문화의 상하 수직관계의 문제가 "traditionally"를 통해 전통의 문제로 환원된다. 또한 '말이 없다'는 표현을 '새침떨며 자제하는'으로 과도하게 의역함으로써 동양 여성에 대한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담고 있다고 비판된다.

상황 화자 인혜가 죽어하는 영혜에게 속삭이고 있다
한국어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221)
스미스 "I have dreams too, you know, Dreams...and I could let myself dissolve into them, let them take me over....But surely the dream isn’t all there is?"
직역 "나도 꿈이 있어, 알지? 꿈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을 그 꿈속으로 녹아들게 할 수도 있어, 그들이 나를 지배하게 내버려둘 수도 있어... 하지만 분명 꿈이 전부는 아니겠지?"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과도한 의역은 원작이 지닌 문맥을 서구적 시각으로 바꾸는 우를 범하고 있다. 꿈의 주체를 원문과 다르게 인혜로 만들 뿐 아니라 인혜가 꿈속으로 녹아들어간다(let myself dissolve into them)는 표현을 통해 영혜와 인혜가 꿈에서 하나가 되는 듯한 뉘앙스를 가지게 만든다.

6.1.3. 저자와 역자의 반응

6.1.3.1. 한강
한강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어는 영어에 비해 컨텍스트가 중요하고, 뉘앙스가 풍부한 언어라는 전제를 상정할 때, 《채식주의자》의 영역본은 그 뉘앙스를 포착해 나름의 방식으로 옮겨내려고 노력한 번역자의 시도이자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며, 실수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실수들이 이 소설을 전달하는 데에 결정적 장애물이 되거나, 이 책을 근본적으로 다른 별개의 책으로 만들어버렸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인터뷰를 자세히 읽으면 옹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미스 한국어 서툴러 나온 실수…문제 잘 마무리되길"
"처음에 훑어볼 때 좀더 시간을 할애했으면 좋았겠다는 후회한 것이 사실"
(...)그는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31)가 '채식주의자'를 영역하는 과정에서 한국어가 서툴러 몇몇 실수를 했지만, 그것이 작품을 전달하는 데 결정적 장애물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 번역자 스스로 오역 실수를 60여 개의 수정 목록으로 정리해 해외 출판사들에 전달한 사실을 전하며 이로써 문제가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관심과 우려의 마음으로 원문과 일일이 대조하여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해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작년부터 관련 자료들을 여러 경로로 수집하고, 몇몇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받아 최근에 수정 목록을 완성했습니다. 어떤 기사에는 오역이 백여 군데라고 하던데, 어떻게 그 수치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역자가 최종적으로 완성한 목록은 모두 60여 개로, 단어나 구절, 또는 문장들을 꼼꼼히 수정 교체해 A4 용지 한 장 정도의 분량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목록을 영국과 미국의 출판사, 그리고 영역본을 중역한 몇몇 나라의 출판사들에 전달했습니다. 대부분 한국어가 서툴렀던 데서 나온 분명하고 실질적인 실수로, 이 수정 사항들이 모두 반영되면 부정확했던 문맥들이 명료해져 이해가 명확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소설 전체가 독자에게 문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양상 자체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목록이 반영된 책들이 인쇄되어 나오려면 여러 달이 소요될 텐데, 이 과정을 통해 오역의 문제가 잘 마무리되기를 작가로서 바라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명백한 실수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실수들이 이 소설을 전달하는 데에 결정적 장애물이 되거나, 이 책을 근본적으로 다른 별개의 책으로 만들어버렸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연합뉴스, 한강 "'채식주의자' 오역 60여개 수정…결정적 장애물 아냐"①, 2018-01-29
즉, 한강의 인터뷰는 대부분 한국어가 서툴렀던 데서 나온 분명하고 실질적인 실수로 명백한 오역이 60여개고 저자와 역자가 협력해서 목록을 정리해서 보냈으며, 다만 그 실수들에 의한 명백한 오역들이 근본적으로 별개의 책으로 만든 수준은 아니었다는 의미이며 오역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래 '페미니즘 번역론'와 관련해 인터넷에선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한강이 역자를 옹호했다는 식으로만 잘못 알려지기도 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6.1.3.2. 데보라 스미스
그나마 한강 작가 왈, 이후 작품인 《흰》에서는 데보라 스미스의 한국어 실력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사실 이건 스미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권 번역자들 사이에서는 영어를 쓰는 독자들(정확히는 영미권 독자들)에게 책을 잘 읽히게 하려고, 원작자와 별다른 상의 없이 파격적으로 의역을 해버리거나, 외국인은 이해하기 힘든 요소들을 멋대로 쳐내버리는 경향이 강한 탓도 있다.

이는 자국민 작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돼서, '플롯은 재미있는데 잘 안 팔릴 것 같은 문체다' 싶으면 편집자의 재량 하에 가차없이 윤문해버리는 경우가 많다.[28] 물론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워낙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 문화가 발달한 영국, 미국, 호주 등에서는 윤문에 더욱 거침이 없는 편이다. 물론 《 트와일라잇 시리즈》처럼 큰 윤문이나 첨삭 없이 원작자가 쓴 버전 그대로 덜컥 시장에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번역가인 스미스는 모든 번역은 창조적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1, #2

다만 위의 한강의 인터뷰에서 보듯이 스미스도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오역 60여개를 정리해서 제출하긴 했다. 즉 데보라 스미스도 오역을 인정했다.

6.1.4. 한강에게 거부당한 페미니즘 번역론

6.1.4.1. 윤선경의 페미니즘 번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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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 영어통번역학부 윤선경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번역가 스미스가 명백한 오역 일부를 제외하면 에코페미니즘(생태여성학)적 주제의식을 잘 살린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논문의 내용을 보면, 원작에서 성별을 특정하지 않을 때 데버러 스미스는 젠더 고정관념을 깨는 번역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소설 속 의사와 간호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의사를 여성(she)으로, 간호사를 남성(he)로 번역한다. 채식주의자인 주인공 영혜가 원작에서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형제 같다고 말하는 장면은 영어판에서 한국어 ‘형제’가 ‘형제와 자매’(brother and sister)로 번역된다. 이외에도 데보라 스미스는 원작의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등장인물을 다소 변형한다. 윤 교수는 논문에서서 “원작에서 주인공 영혜의 남편과 언니 인혜의 남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부장적이며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데, 스미스는 (내용의) 추가와 변형을 통해 두 남편의 남성중심적 태도를 강조한다. 또한, 원작의 인혜는 자신을 탓하고 남편을 이해하며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스미스는 인혜의 흔들리는 순간을 최소화하며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바꾼다” 라고 설명했다.[29]

윤선경 교수가 말하는것은 대학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80년대 영미권에서 발생한 "페미니즘 번역"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최근 ‘채식주의자’를 페미니스트 번역의 관점에서 해석한 논문을 게재했다. 페미니스트 번역이 무엇인가.
페미니즘 번역은 캐나다 퀘백에서 1980년대에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번역 방식이다. 처음에는 불어로 제작된 페미니즘 책의 내용을 훼손 없이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시작됐는데 이후 가부장제, 여혐 등에 대해 반대하는 번역 방식으로 발전했다. 급진적 번역의 경우에는 원본이 페미니즘 책이 아닌데 이를 페미니즘 형식에 맞춰 바꾸기도 한다. 쉽게 말해 남자는 원본처럼 권력이 있고 중요하지만, 번역은 여성처럼 의존적이고 나약하고, 열등하게 보는 관점에 반대하는게 페미니즘 번역이다. 여성과 번역의 동일시, 번역의 충실성에 대한 반대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흔한 예로, 번역을 설명할 때 여성을 빗대어 설명하는데, 좋은 도착어로 번역이 되면 ‘예쁜 번역’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 IN-ter-VIEW ] 한국외대 윤선경 교수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작가, 데보라 스미스는 The Vegetarian의 작가” (대학저널)

이 페미니즘 번역론에 의하면 번역은 원본에 대한 번역이 아니라. 가부장제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21일 윤선경 영어통번역학부 교수의 논문 '데보라 스미스의 불충실성: 페미니스트 번역으로서의 <채식주의자>(Deborah Smith's Infidelity: The Vegetarian as Feminist Translation)'가 국제저명학술지 '젠더학 저널'에 출판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번역은 종종 직역 또는 단어 대 단어 번역을 의미하며, 번역은 번역가의 해석 없이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 텍스트를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문제로 환원되는 경향이 있다.

윤 교수는 논문에서 스미스의 번역을 분석하면서 번역이 원본의 베껴쓰기가 아닌 창조적인 글쓰기임을 보여주며 번역의 개념을 확장하고 원본과 번역의 오래된 서열에 이의를 제기했다.
(...)
논문은 또 번역이 정치적인 글쓰기로서 페미니즘에 공헌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윤 교수는 번역은 순수하고 중립적인 텍스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특히 스미스의 번역은 가부장제 권력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번역이라고 분석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가부장제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 논문에 담긴 윤선경 교수의 메시지는 특히 시의적절하며, 번역과 젠더 정치학을 연결시켜 번역의 지평을 넓히고, 원본과 번역,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서열을 무너뜨리는 전복적인 번역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연구라는 평을 받고 있다.
권라영, "채식주의자 英번역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번역", 2021-01-21, KPI뉴스 https://www.kpinews.kr/newsView/179546946360101

이런 "페미니즘 번역" 방법론을 따르면 애초에 번역이란 원문을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역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지만, 정작 저자와 역자는 서로 협력해서 오역을 60여개나 수정했다.

그런데 윤선경 교수는 "즉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작가이고, 데보라 스미스는 ‘The Vegetarian’의 작가라며, 한강의 입장을 무시하고 주장했다. 이러한 부분은 맨부커상 수상에서도 잘 나타난다고 페미니즘 번역론 측은 주장했다. 원작자와 번역가의 상금이 동등했는데, 이는 ‘채식주의자’가 수상하는데 있어 작품에 대한 크레딧이 동등했음을 인정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라고 주장했다. [30] 하지만 " 데보라 스미스는 ‘The Vegetarian’의 작가"라는 식의 표현은 명백히 한강의 저작권을 무시한 주장이다.(...)
6.1.4.2. 페미니즘 번역론에 대한 한강의 인용불허가
결국 이 모든 것은 윤선경 교수 개인의 생각이며, 이후 <K문학의 탄생>을 출판할 때 한강 작가는 윤선경 교수의 본문 인용을 허가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한강은 윤선경의 '페미니즘 번역론'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해 8월 <채식주의자> 영어번역 비평 글을 출판하는 마무리 단계에서 한강이 본문인용 허락에 회의적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편집자에게서 전해 들었다. 작가가 나의 텍스트 해석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고 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어 원본에서 인혜가 남편과 여동생의 정사를 알고 나서도, 남편을 이해하고 자책하려 드는 답답한 순간을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모습이라고 해석한 반면, 작가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저자의 의도와 다른 해석은 잘못된 것인가. 나는 편집자로부터 논문수정을 권고받고 촉박한 시간 속에서 노심초사하며 수정해서 제출했지만, 끝내 거부되었다. 결국 인쇄소 가기 직전 나의 글만 들어내고, <K 문학의 탄생>은 출간됐다.
윤선경, 원작가 ‘한강’ 개입, 한국문학 번역과 세계화에 도움이 될까 (경향신문), 2024.01.09
당연하지만 한강이 위 K 문학의 탄생 출간 인용을 허락하는 순간 암묵적인 동조로 인지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저작권을 근거로 인용을 거부하며, 페미니스트들의 번역 왜곡을 차단시킨 것이다.

저작권에 의해 인용을 거부당한 윤선경은 경향신문에 기고까지 하며 "한국문학 번역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는 번역가들에게 참담한 소식이 되는 건 아닐까 우려", " 한국문학의 위상에 누가 될 것이다"라고 강변했다.
둘째, 원작가의 개입은 과연 한국문학 번역과 세계화에 도움이 되는가. 랜스 휴슨에 따르면 번역비평은 번역가의 선택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평가해 새로운 번역을 준비시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원작가가 번역비평을 인정하지 않는 이 사건은 한국문학 번역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더군다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는 번역가들에게 참담한 소식이 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번역으로 세계에 가장 많이 이름을 알린 작가의 개입이어서 더욱 당황스럽다.

게다가 <채식주의자> 영어번역이 오역에도 유의미한 페미니즘 텍스트라고 주장하는 글의 출간에 끼어들어, 원작가가 직접 오역논쟁에 동참하는 형국이 됐다. 오역논쟁으로 작가나 번역가가 겪었을 고초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공적인 번역비평 담론에 개입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어떤 경우라도 번역비평에 대한 원작가의 관여는 부적절하다.

이제 우리는 유명 작가가 본문인용을 불허해 비평에 개입하고 번역비판에 동참하는 불행한 선례를 갖게 됐다. 이와 유사한 일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학문공동체의 비평 시스템은 위축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쌓아온 한국문학의 위상에 누가 될 것이다. 이 기고문은 우려의 글로서 쓴 것이며, 공론장에서 상식적인 여론을 환기시키기를 바란다.
윤선경, 원작가 ‘한강’ 개입, 한국문학 번역과 세계화에 도움이 될까 (경향신문), 2024.01.09
하지만 9개월 후 한강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윤선경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6.1.4.3.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이후 윤선경 교수는 고작 오마이뉴스에 투고하면서(...)[31] 한강에게 항의했던 태도도 삭제했을 뿐 아니라 '페미니즘 번역론'이라는 프레임을 삭제한 채 '두 언어, 문화의 차이', 두 언어 글쓰기 관행의 차이', '한국은 영미권에 비해 원본중심주의, 직역의 풍토'라는 합리적인 표현으로 수정한 채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나는 유일하게 그의 번역이 한국어 원본의 주제의식, 페미니즘을 잘 살리고 부각시켰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썼다. 그래서 데보라 스미스의 평판은 오랜 무명에서 한국문학을 구원한 영웅이냐, 한국문학을 배신한 반역자이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이러한 논란은 한국에서 통용되는 번역의 개념 및 위상과 관련이 깊다. 한국은 영미권에 비해 원본중심주의, 직역의 풍토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번역을 얘기할 때, 오역을 했는지 안 했는지, 충실한지 아닌지, 정확한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춘다.

두 언어, 문화가 다르고 두 언어 글쓰기 관행이 다를 진데, 한국어에서 좋은 글쓰기의 기준이 다른 언어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간과한다. 우리의 감동이 그들의 감동이 아닐 수 있음을 놓친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해외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은 원본과 번역을 비교해서 읽지 않으며, 번역을 하나의 시로, 소설로, 작품으로 읽는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그들의 언어로.
윤선경, <채식주의자>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은 재평가 받아야 한다 한강을 세계가 주목하는 데 기여... 번역비평 오역 논쟁에서 벗어나 번역가에게 문학적 자율성 허용해야, 오마이뉴스, 24.10.24,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72427
보다시피 윤선경이 최소 2021년부터 논문까지 투고하며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소위 페미니즘 번역론 개념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윤선경의 오마이뉴스 기고글에는 단 한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황당한 건 노벨문학상 수상에는 스웨덴어가 중요한데 한강의 원저에 대한 스웨덴어 번역을 한 박옥경씨 안데르스 칼손 씨의 활약에 대한 언급은 없고, 스웨덴어 번역에 대한 언급도 아예 없다.[32]

6.2. 청소년 유해도서 지정 논란


2024년 5월 경기도교육청의 청소년 유해도서 폐기 대상 목록에 한강의 작품이 등재된 사건이 재조명됐다.

일부 학부모 단체들이 특정 서적을 자의적으로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지정하여 초중고 학교 도서관에서 해당 책을 뺄 것을 요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간행물윤리위원회는 해당 단체들이 청구한 유해도서 심의 68권 중 67권이 유해 도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의결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도교육청은 2023년 11월 관내 초등학교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교육목적에 적합하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내 해당 학부모 단체들이 언급한 책을 사실상 폐기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2024년 2월에도 학교들을 압박하여, 각 학교 도서관위원회에서 알아서 폐기에 나서다 보니 폐기 도서 목록은 517종 2,528권으로 학부모 단체들이 요구한 43종보다 훨씬 더 많았다. 도서들 중에는 구의 증명, 눈먼 자들의 도시 같은 다른 작가의 소설들뿐만 아니라 과학, 철학 서적들도 있었으며, 경기도 초중고 341개 학교 도서관에서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517종 2,528권의 책들을 폐기했다.[33][34]

논란이 되자 경기도교육청은 교육청이 직접 폐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은 아니고, 폐지 도서 목록도 각 학교들에서 자체적으로 정한 것으로 경기도교육청 측은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현황을 단순히 조사하라는 것이지 폐기하라는 지시가 아니였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육청은 도서의 유해성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으며, 지난해 9월 학부모 단체가 “학교 도서관에서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라”며 연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 등을 참고하라며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특정 작품에 대한 특혜라고 보여질 수 있고, 각 학교 도서관 운영위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므로 한강 작가의 소설들을 권장하거나 장려할 계획은 없다"면서, 한강 작가의 책 폐기는 경기도 전체에서 학교 1곳에서 책 2권으로 폐기 논란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6.2.1. 미성년자에 대한 소설의 건전성 문제와 검열

  • 미성년자가 읽기에 적합한 소설인가?
    이 책이 정말로 미성년자가 읽어도 괜찮을 정도로 건전한 도서인지는 한 번 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칼 들고 자해, 동물학대, 친척과의 불륜, 완강한 식음전폐 의지로 끔찍하게 죽어가는 주인공 등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불편해하는 독자들도 있고,[35] 그래서 19금을 걸어달라는 의견도 있다. 채식주의자-교보문고 이와 관련하여, 8년 전에 이 책에 대한 가수이자 배우 김창완의 감상평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너무 끔찍하다며 완독이 어렵다고 평을 했으며, 이 영상이 화제되자 온라인상에서도 김창완과 비슷한 감상평이 줄이었다. 명확한 스토리라인이 없거나 충격적으로 느껴질 법한 성적, 폭력적인 장면의 묘사가 나온다는 등의 이유로 진입 장벽이 높다는 평이다. #1 #2

    교과서 작품 중 선정적인 작품들이 많긴 하지만,[36]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이런 교과서에 실리는 도서들은 고유의 역사성, 시대상 그리고 청소년기의 발달 단계를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춘향전의 경우 판소리 열 두 마당에 속한 이야기로서 오랜사간 민중들 사이에 향유되었고 특히 그 내용이 정립된 19세기 국어의 전형을 보여주는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게다가 수위가 높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은 청소년이다. 이몽룡의 입장에서는 사랑을 획득하는 성공담이지만 성춘향에게는 사회적 굴레를 이겨내는 성장소설 즉, 사춘기 통과의례의 이야기다. 이로서 내용적 측면에서 가치관 형성(내지는 수용)과 주도적인 성인사회의 진입을 다룬다. 즉, 청소년기에 필요한 삶의 태도, 철학, 진취성 등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이라 판단되기에 교과서에 실린 것이다. 따라서 해당 저서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을 미성년자, 특히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사춘기 청소년에게 권하는 것은 부적합할 수 있다.
  • 미성년자에게 적합한지의 문제와 별개로, 검열은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해당 작품을 권하는 것은 반대 의견이 정당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유의해야 할 것은 해당 문학작품이 법적인 절차로 검열되어야 하느냐는 완전히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이다. 도서 출판의 경우 헌법상 보장된 권리이기에, 책의 내용과 메세지를 떠나서 국가는 출판에 대해 어떠한 사전 검열도 출판 금지도 할 수 없다. 이는 대부분의 실질적 민주주의국가에서 공유되는 가치다. 하지만 국내법으로는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이라는 꼼수로 우회하여 출간 금지하거나, 소송을 통해 출판을 금지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영화, 방송, 인터넷 출간물, 게임 등에서 국가에 의한 검열이 이뤄지고 있다.[37] 물론 외국도 연령별 분류제도가 존재하지만, 그러한 심의를 담당하는 기관은 엄연히 민간기관이다. 해당업계와 관련된 기업,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심의위원회를 구성한 것이고 국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이름만 심의위원회를 달아 놓고 국가나 정부기관 소속에 정부, 장관에 의해 기관장 자리 돌려먹기식으로 임명될 수 있는 한국과는 차이가 많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이러한 검열에 대해 익숙하고 문제삼지 않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즉, 영화나 게임에 청소년이용불가가 있듯, 책도 미성년자들 정서에 유해하다면 청소년이용불가 표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주장하거나 동조하는 자들은 일부 보수단체나 종교단체에 한정되어 있지 않으며, 일반적인 장•노년층, 맘카페등을 이용하는 주부 계층, 심지어 다른 선진국이었으면 검열 자체에 부정적일 진보 정치계에서도 많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38] 그러나 최근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어가며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문화 향유계층을 중심으로 이러한 검열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헌법에 불합치하다는 의견들이 점차 늘어가는 중이다.

    채식주의자의 폭력성, 성에 관한 묘사 등 선정성의 문제로 인해 미성년자가 읽기는 부적절하며 이해도 어렵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는 작가나 출판사 측이 적절한 권장 연령을 명시하는 정도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7. 미디어 믹스

7.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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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연극

7.2.1. 한국 프로덕션(무산)

국립극단 2020년 벨기에 리에주극장과 공동으로 제작을 시도했다. 당시 벨기에 출신 세계적인 연출가 셀마 알루이가 한강과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해 논의까지 마쳤으나,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심화해 결국 엎어졌다. 국립극단 관계자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동의만 다시 얻는다면 극단은 재추진에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7.2.2. 이탈리아 프로덕션

상연명은 이탈리아어판 번역본 제목인 'La Vegetariana'. 3막 구성, 러닝타임 100분이다. 기획, 각색, 연출은 다리아 데플로리안.[39] 이탈리아의 극단 INDEX가 이탈리아 프랑스의 주요 극장 및 페스티벌과 공동 제작하며 2024년 10월 25일부터 25년 2월까지 이탈리아에서는 볼로냐· 로마· 밀라노· 토리노, 프랑스에서는 파리· 투르· 툴루즈· 샹베리· 몽펠리에를 돌며 상연 예정이다. #

현지 한국문화원 이탈리아어 대본 감수 등을 지원했고, 등장인물의 이름도 번안 없이 영혜 등 한국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의 문화나 음식에 대해서는 한국 관련 소품도 제공한다.

개막 직전 절묘한 타이밍으로 들려온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흥행은 대성공했다. 이탈리아 공연이 전 회차 매진되었다고 한다. #

7.2.3. 오스트리아 프로덕션

독일어로 공연된다. 2025년 5월 초연. #

8. 여담

  • 한강(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벨기에의 한국문화원의 채식주의자 한 권이 분실돼 논란이 됐다. 관계자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서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여기려 한다”고 말했다. 뉴스
  • 개정판 표지는 이옥토 사진가가 담당했다.

[1] 정확히는 피카레스크식 구성. [2] 이야기는 이어지나, 편 마다 화자의 시점이 바뀌는 소설. [3] 저 인물들은 모두 가족이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인 김영혜와 <나무 불꽃> 의 주인공 김인혜는 자매이며, <몽고반점>의 주인공은 김인혜의 남편(즉, 영혜의 형부)이다. 다만 <채식주의자>의 화자는 김영혜의 남편이다. [4] 성은 김씨여서 김영혜. [5] 영혜의 평범성이 강요된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 [6] 성씨는 정씨. 이름은 나오지 않았으며, 작중에서는 '정서방'이라고 불린다. [7]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이며, 가정에서까지 똥군기를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소설에서는 개를 잡아 먹거나 술국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육식 선호를 마치 아버지의 폭력성과 결부시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서술이 곳곳에 등장한다. 군필자가 많고, 군사화의 잔재가 사회 곳곳에 아직 많이 남아있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묘사에 거부감을 표한 독자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김창완은 2016년 5월에 방영된 KBS 프로그램 'TV, 책을 보다'에 출연해 작가인 한강 본인과 함께 채식주의자를 낭독하다 해당 부분(영혜의 아버지가 딸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입 안에 탕수육을 밀어 넣다 영혜가 저항하자 뺨을 때리기까지 하는 장면)에서 "너무 끔찍해서 못 읽겠다. 작가님도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가 있냐"고 질겁을 했다. 그것도 작가 한강 본인 면전에서. 한강은 멋쩍게 "괴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힘드신 부분은 안 읽으셔도 돼요"라고 말했다. # [8] 여기서 장인, 영혜의 아버지는 사위와 자신의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영혜의 뺨을 세게 때리고 억지로 입을 벌려 탕수육을 먹이려고 했으나 영혜는 이를 뱉어낸다. [9] 즉, 남편의 장모. 그는 장모의 행동에서 딸을 향한 끔찍한 모성애와 동정을 느낀다. [10] 흑염소. [11] 남편이 영혜와 이혼했다는 사실은 <몽고반점>에서 언급이 된다. 타일러가 대학원 시절 채식주의자를 읽다가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답답한 태도에 "진짜 짜증 난다. 역지사지가 하나도 안 되는 머저리 같은 사람", "그러니까 니가 문제지"라는 분노에 찬 코멘트를 책 페이지 밑에 써놓은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12] <채식주의자>의 서술자는 영혜의 남편이다. <몽고반점>의 주인공은 영혜의 형부다. [13] 1부 채식주의자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 영혜가 형부가 바디 페인팅을 부탁하며, 사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14] 형부는 영혜와 만나기 전에 이미 그린 바디 페인팅을 지우지 말라며 부탁했다. [15] 캠코더 사용방법을 알려준 게 바로 남편이였다. [16] 나중에는 자식을 보고 싶다고 연락이 오지만, 인혜는 이때 이후 완전히 연락을 두절해버린다. [17] 김명주 (2020).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피, 섹스, 나무 이미저리 다시 읽기>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664945 [18] (이찬규, 이은지. (2010). <한강의 작품 속에 나타난 에코페미니즘 연구-《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인문과학》,(46), 43-67.), <데버러 스미스의 불충실성 : 페미니스트 번역으로서의 《채식주의자》>, <한강 소설에 나타난 에코페미니즘 양상 연구 -작품집《채식주의자》와 《내 여자의 열매》를 중심으로-> [19] 에코페미니즘 시각에서 본 작품을 분석한 (이찬규, 이은지. (2010). <한강의 작품 속에 나타난 에코페미니즘 연구-《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인문과학》,(46), 43-67.) 논문에서도 "한강의 작품을 생태주의의 반열로 가두기에는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적 스펙트럼들이 보다 넓고 깊은 것이 사실이다."라고 밝힌 것과 같다. [20] 김대중. (2016). 『채식주의자』 번역 속 의역/오역 사례를 통해 살펴본 번역가의 과제 연구. 인문과학연구, 51, 31-59. [21] 이상문학상 수상작. [22] 대부분의 서평 사이트들이 그렇지만 이 사이트도 별점이 짜기로 유명하다. 굿리즈에서 별점 5점 만점에 별점 3.5에서 4를 넘으면 괜찮다는 작품들이다. 한강의 또 다른 작품인 '소년이 온다'는 별점 4.22점. 직전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도 작품마다 별점 3.49부터 4.52까지 다양하다. 2024년 10월 13일 기준 [23] 노벨 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한강을 소개하면서 “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주인공 영혜가 음식 섭취의 규범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을 때 벌어지는 폭력적인 결과를 묘사합니다. (Written in three parts, the book portrays the violent consequences that ensue when its protagonist Yeong-hye refuses to submit to the norms of food intake.)” 라고 언급됨. (경향신문), 노벨위원회의 발표. [24]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채식주의자"가 노벨상 선정의 주 이유로 인식되는 잘못된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25] 문학평론가이자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26]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번역가이자 평론가. [27] 관련 간행물 기사 [28] 영화의 경우도, 감독의 독자적인 재량권을 중시하는 한국과 달리 헐리우드 영화계는 거대 스튜디오로 대표되는 제작사가 편집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제작사와 의견 차이가 클 경우 감독을 바꿔버린다. 그래서 최종 편집권을 두고 감독과 제작사가 별도의 계약을 맺기도 한다. 할리우드 유명 감독들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제작사를 설립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29] “《채식주의자》 영어판 번역 논란, 페미니즘 관점서 새로 봐야” (한겨레) [30] [ IN-ter-VIEW ] 한국외대 윤선경 교수 “한강은 채식주의자의 작가, 데보라 스미스는 The Vegetarian의 작가” [31] 이전에는 한겨레에 소개되거나 경향신문에 투고했었는데, 투고하는 언론의 차이가 심각하게 하락했다. [32] “스웨덴 유학 시절 서점에 한국 작가 안 보였는데…만감 교차”, 경향신문, 2024.10.13 [33] 경기지역 학교들, ‘유해도서’ 압박에 성교육 도서 2500권 폐기경향신문 [34] 학교도서관에 유해 성교육 책이 500여 종? 폐기된 책 목록 봤더니KBS [35]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도 불륜, 낙태 등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불편해하는 독자들이 있다. [36]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들 중에서도 원본을 보면 미성년자가 읽기 부적합한 작품들은 많다. 춘향전 원본은 에로틱한 묘사가 나오며 봉산탈춤이나 꼭두각시 놀음도 원문은 욕설이 나오고 수위가 높다. 한국 현대소설의 시발점으로 불리며 거의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마다 실려있는 김승옥의 소설 역시 미성년자가 읽기에 적합한 작품은 아니다. 보통 교과서에 실리는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가 있거나 선정적, 폭력적인 내용은 생략되거나 각색되어 실린다. 청소년 권장도서로 알려진 문학 작품들 중에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37] 정확히는 영화, 음반은 이미 1996년에 헌법 불합치로 사전검열이 폐지되었다. 게임은 지금 김성회의 G식백과의 게임산업법 32조 제 2항 헌법소원심판을 필두로 문체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 오징어 게임(영화로 나오면 합법, 게임으로 나오면 불법. 즉, 이중잣대.)채식주의자의 저자인 한강과 기생충의 감독인 봉준호의 예를 들어(1996년 폐지 이후 대중문화인은 영화, 음반 사업이 부흥했다고 평가하는데, 이미 봉준호는 상을 탔고, 마침 한강도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게임에서도 한강, 봉준호의 작품같은 게임, 게임사가 안 나올 게 뭐가 있는가?) 연설하였다. # [38] 이는 한국의 경우 좌우 관계없이 기성 정치계가 유독 권위주의 성적 보수주의 성향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39] 그는 원작 소설을 두고 “강렬한 이미지와 놀라운 색상, 충격적인 질문으로 가득 찬 감각적이고 도발적이며 폭력적인 텍스트”라며 “소설을 읽자마자 주인공 영혜에게 사로잡혔다”고 밝혔다. [40] 한충원 목사 본인이 밝히기로 셋째 형이 알콜 중독으로 사망한 뒤 그 셋째 형의 장례식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떤 사람도, 어떠한 것(문학 포함)도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고 소설가인 형 한승원 앞에서 당당하게 주장했다가 이에 격노한 한승원과 장례식에서 크게 싸운 뒤로 의절하다시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목사는 " 조카와 나의 단절도 예수 그리스도 신앙을 미워하고 배척하신 형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네"라고 했다. [41]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도 한 목사는 "조카는 마치 이 대한민국이 정의롭지 못하여 살 만한 나라가 아닌 것처럼 여기도록 만드는 작품을 몇 편 쓴 것으로 알고 있다"라더니 "당시에 '김대중 선생'이 한국에 없었다면 5·18이 일어났을까? 아마 5·18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거나, " 국가비상사태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불가항력의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면, 가해자인 경찰이나 군인이 자원해서 가해했겠는가를 생각해 보소.", "그들이 그 현장에서 죽었다면 그들도 국가 권력에 의한 피해자라고 볼 수 있네. 일반 시민이건 군경이건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네"라며 스리슬쩍 '광주에 투입되어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군경들도 어찌 보면 피해자다'라며 물타기를 하거나, "5·18은 불의하고 야만적인 정권 탈취자에 대한 의로운 항거였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며 5·18의 결과를 '하나님'과도 연관시켜 주장하는가 하면, 제주 4.3 사건을 "남로당(공산주의자)의 선동과 난동에 휩쓸려 선량한 시민들까지 죽임을 당한 비극적 사건"이라며 군경이나 미군의 책임에 대해서는 "그러나 당시의 미군정은 대한민국의 헌정 수립을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난동을 묵과할 수 없었을 것이네. 진압 과정에서 남로당으로 몰려 죽은 사람들이 많았네"라며 '어쩔 수 없었다' 정도로 뭉뚱그리려 드는 등 전형적인 기독교 우파적인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건을 한쪽의 관점만으로 평하는 듯한 시각을 작품에서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이제는 문학 작가도 이념이나 지역 갈등을 부추겨 정치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인의 세몰이에 영합하는 듯한 작품을 쓰지 말고 공평한 자세로 써야 한다. 과거의 상처를 헤집지 말고 양쪽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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