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10px" | <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
노벨상 |
}}} | |||||
<colbgcolor=#663334><colcolor=#cd9f51> 노벨생리학·의학상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
|
주최 및 장소 |
카롤린스카 의과대학교 [[스웨덴| ]][[틀:국기| ]][[틀:국기| ]] 스톡홀름 |
상금 |
1100만
SEK 100만 달러[1] (2023년 기준) |
첫 시상년도 | 1901년 |
최근 수상자 |
빅터 앰브로스 게리 러브컨 (2024년 기준) |
링크 |
[clearfix]
1. 개요
노벨생리학·의학상은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영문으로 된 정식 명칭은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이다.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노벨 생리학 또는 의학상'이 되겠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줄여서 '노벨 생리의학상', 혹은 '노벨 의학상'이라고 부른다. 그 밖에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노벨 의학상이라고 많이 불리는데, 이 때문에 생리학도 노벨상의 시상 분야라는 사실이 우리나라에서는 덜 알려져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벨화학상, 노벨물리학상과는 달리, 노벨생리학·의학상은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대학교에서 선정한다.
2. 관련 상
-
래스커상 : 의학 분야에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 실제로 2020년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인 하비 J. 올터,
마이클 호턴, 찰스 M. 라이스(2020년
노벨생리학·의학상 공동 수상자 3명)는 3명 모두
래스커상 수상 이후에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
3. 생리학의 의미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기금을 조성하고, 그 이자로 매년 그 전해에 인류를 위해 최대의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금 형식으로 분배한다. 그 이자는 똑같이 5등분하여 다음과 같이 할당한다.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가장 중요한 화학적 발견이나 개선을 이룬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 "
이처럼 노벨은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이 상을 수여하라고 유언했다. 그런데
생리학은
생물학의 한 분야이지만,
의학의 한 분야이기도 하다.[2] 따라서 '생리학 또는 의학'이라는 말은 마치 '
전자기학 또는
물리학', '
유기화학 또는
화학'이라는 말처럼 어색하다. 그러므로 생리학이라는 말은 빼고, 간단히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이라고 유언을 남겼어도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노벨이 생리학과 의학을 따로 구분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노벨이 살던 시대에는 생리학이 오늘날의 생물학의 여러 분야를 통칭했던 용어였다. 따라서 노벨이 굳이 생리학을 의학과는 별도로 유언에 적시한 것은, 의학뿐만 아니라 의학에 속한다고는 볼 수 없는 생물학의 여러 분야도 시상 분야에 포함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언에 담긴 뜻을 살리는 방향으로 해석한다면, 노벨 생리학·의학상은 노벨 생물학·의학상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도 노벨 생리학·의학상의 시상기관은 생리학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해왔음이 명백한데, 아래 문단에서 설명하는 1973년도 수상자의 업적(동물행동학 연구 업적으로 수상)과 1983년도 수상자의 업적(식물유전학 연구 업적으로 수상)이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참조1]
4. 특징
초창기에는 인간 생리의 원리를 밝히거나 의학적인 진보(기술 포함)를 이룩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도 인간의 생체 기능에 관한 연구에 수여하는 경향이 여전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령 1973년에는 꿀벌의 춤(꿀벌의 언어)을 연구한 카를 폰 프리슈, 각인 등 조류의 행동을 연구한 콘라트 로렌츠 등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이 시상되었다. 이들의 연구는 동물 행동학에 속하는 것으로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아니었고, 생리학 연구도 아니었다. 또한 1983년에는 바버라 맥클린톡이 식물에 대한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노벨상 위원회는 이러한 곤충, 조류, 식물 연구가 인간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긴하다. 한편 생태학, 분류학 연구는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인간 생리와 그다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4]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미국처럼, 수상자의 절반을 미국인이 차지한다. 세계 생물학 연구 예산의 40%를 먹고 들어가는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볼 수 있다.
노벨평화상을 제외한 다른 과학분야 및 경제상 중에서 여성 수상자가 가장 많은 상이다. 또한 다른 분야에 비해 공동수상의 경향이 크다. 2차대전 이후 단독수상한 경우는 1/10 정도에 불과하다.
아시아 출신 수상자는 6명으로, 1987년 토네가와 스스무(일본), 2012년 야마나카 신야(일본), 2015년 오무라 사토시(일본), 투유유(중국),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일본), 2018년 혼조 다스쿠(일본)가 각각 수상하였다. 이 6명 중 투유유는 유일한 여자이고 박사 학위도 없다.
당연하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중대한 질병에 대한 획기적인 치료법이나 예방법, 질병에 대한 기전 연구에도 노벨상에 주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말라리아이다.
현재 의학의 여러 분야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존재하는데, 이걸 해결하면 100%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할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인플루엔자, 에이즈, 에볼라, 말라리아 등의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에 대한 100%에 가까운 예방백신 개발이나 2형 당뇨병과 말기암의 완전한 치료법 개발, 인간의 노화를 되돌리는 역노화 기술 개발, 염색체를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해 중증도 피폭 환자를 치료하거나 이 방법으로 성전환 수술에 성공해 원래 남성이었던 사람이 여성으로 성별을 전환한 후 출산까지 하고 그 아이가 천수를 누리게 하면 무조건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할 것이다. 그 동안 역대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들의 수상 사유를 보자면 이것보다 난이도가 훨씬 낮은 것들이 매우 많았다.
의외로 물리학 및 화학, 응용공학과도 연관성이 높은 상인데, CT와 MRI의 연구 및 개발자가 이 상을 받았다.
5. 역대 수상자
자세한 내용은 노벨생리학·의학상/수상자 문서 참고하십시오.
{{{#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5px -1px -5px; word-break:normal" {{{#555,#aaa |
<rowcolor=#cd9f51> 1901 | 1902 | 1903 | 1904 |
에밀 폰 베링 | 로널드 로스 | 닐스 핀센 | 이반 파블로프 | |
<rowcolor=#cd9f51> 1905 | 1906 | 1907 | ||
로베르트 코흐 | 카밀로 골지 | 산티아고 카할 | 샤를 라브랑 | |
<rowcolor=#cd9f51> 1908 | 1909 | 1910 | ||
일리야 메치니코프 | 파울 에를리히 | 에밀 코허 | 알브레히트 코셀 | |
<rowcolor=#cd9f51> 1911 | 1912 | 1913 | 1914 | |
알바르 굴스트란드 | 알렉시 카렐 | 샤를 리셰 | 로베르트 바라니 | |
<rowcolor=#cd9f51> 1919 | 1920 | 1922 | ||
쥘 보르데 | 아우구스트 크로그 | 아치볼드 힐 | 오토 마이어호프 | |
<rowcolor=#cd9f51> 1923 | 1924 | 1926 | ||
프레더릭 벤팅 | 존 매클라우드 | 빌럼 에인트호번 | 요하네스 피비게르 | |
<rowcolor=#cd9f51> 1927 | 1928 | 1929 | ||
율리우스 야우레크 | 샤를 니콜 | 크리스티안 에이크만 | 프레더릭 홉킨스 | |
<rowcolor=#cd9f51> 1930 | 1931 | 1932 | ||
카를 란트슈타이너 | 오토 바르부르크 | 찰스 셰링턴 | 에드거 에이드리언 | |
<rowcolor=#cd9f51> 1933 | 1934 | |||
토머스 모건 | 조지 휘플 | 조지 마이넛 | 윌리엄 머피 | |
<rowcolor=#cd9f51> 1935 | 1936 | 1937 | ||
한스 슈페만 | 헨리 데일 | 오토 뢰비 |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 |
<rowcolor=#cd9f51> 1938 | 1939 | 1943 | ||
코르네유 하이만스 | 게르하르트 도마크 | 카를 담 | 에드워드 도이지 | |
<rowcolor=#cd9f51> 1944 | 1945 | |||
조지프 얼랭어 | 허버트 개서 | 알렉산더 플레밍 | 하워드 플로리 | |
<rowcolor=#cd9f51> 1945 | 1946 | 1947 | ||
에른스트 체인 | 허먼 멀러 | 칼 퍼디낸드 코리 | 거티 코리 | |
<rowcolor=#cd9f51> 1947 | 1948 | 1949 | ||
베르나르도 우사이 | 파울 뮐러 | 발터 헤스 | 에가스 모니스 | |
<rowcolor=#cd9f51> 1950 | 1951 | |||
필립 헨치 | 에드워드 켄들 | 타데우시 라이히슈타인 | 막스 타일러 | |
<rowcolor=#cd9f51> 1952 | 1953 | 1954 | ||
셀먼 왁스먼 | 핸스 크렙스 | 프리츠 리프먼 | 존 앤더스 | |
<rowcolor=#cd9f51> 1954 | 1955 | 1956 | ||
토머스 웰러 | 프레더릭 로빈스 | 악셀 테오렐 | 앙드레 쿠르낭 | |
<rowcolor=#cd9f51> 1956 | 1957 | 1958 | ||
베르너 포르스만 | 디킨슨 리처즈 | 다니엘 보베 | 조지 웰스비들 | |
<rowcolor=#cd9f51> 1958 | 1959 | |||
에드워드 테이텀 | 조슈아 레더버그 | 세베로 오초아 | 아서 콘버그 | |
<rowcolor=#cd9f51> 1960 | 1961 | 1962 | ||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 | 피터 메더워 | 게오르크 폰 베케시 | 제임스 왓슨 | |
<rowcolor=#cd9f51> 1962 | 1963 | |||
프랜시스 크릭 | 모리스 윌킨스 | 앨런 호지킨 | 앤드루 헉슬리 | |
<rowcolor=#cd9f51> 1963 | 1964 | 1965 | ||
존 커루 에클스 | 콘라트 블로흐 | 페오도르 리넨 | 프랑수아 자코브 | |
<rowcolor=#cd9f51> 1965 | 1966 | |||
앙드레 루오프 | 자크 모노 | 페이턴 라우스 | 찰스 브렌턴 허긴스 | |
<rowcolor=#cd9f51> 1967 | 1968 | |||
랑나르 그라니트 | 핼던 케퍼 하틀라인 | 조지 월드 | 로버트 윌리엄 홀리 | |
<rowcolor=#cd9f51> 1968 | 1969 | |||
마셜 니런버그 | 하르 고빈드 코라나 | 막스 델브뤼크 | 앨프리드 허시 | |
<rowcolor=#cd9f51> 1969 | 1970 | |||
살바도르 에드워드 루리아 | 버나드 카츠 | 울프 폰 오일러 | 줄리어스 액설로드 | |
<rowcolor=#cd9f51> 1971 | 1972 | 1973 | ||
얼 서덜랜드 | 제럴드 모리스 에덜먼 | 로드니 로버트 포터 | 카를 폰 프리슈 | |
<rowcolor=#cd9f51> 1973 | 1974 | |||
콘라트 로렌츠 | 니콜라스 틴베르헌 | 알베르 클로드 | 크리스티앙 드뒤브 | |
<rowcolor=#cd9f51> 1974 | 1975 | |||
조지 에밀 펄레이드 | 데이비드 볼티모어 | 레나토 둘베코 | 하워드 마틴 테민 | |
<rowcolor=#cd9f51> 1976 | 1977 | |||
바루크 새뮤얼 블럼버그 | 대니얼 칼턴 가이듀섹 | 로제 기유맹 | 앤드류 빅터 섈리 | |
<rowcolor=#cd9f51> 1977 | 1978 | |||
로절린 옐로 | 베르너 아르버 | 다니엘 네이선스 | 해밀턴 O. 스미스 | |
<rowcolor=#cd9f51> 1979 | 1980 | |||
앨런 코맥 | 고드프리 하운스필드 | 바루 베나세라프 | 장 도세 | |
<rowcolor=#cd9f51> 1980 | 1981 | |||
조지 데이비스 스넬 | 로저 울컷 스페리 | 데이비드 헌터 허블 | 토르스텐 닐스 비셀 | |
<rowcolor=#cd9f51> 1982 | 1983 | |||
수네 베리스트룀 | 벵트 잉에마르 사무엘손 | 존 로버트 베인 | 바바라 매클린톡 | |
<rowcolor=#cd9f51> 1984 | 1985 | |||
세사르 밀스테인 | 게오르게스 쾰러 | 닐스 카이 예르네 | 마이클 스튜어트 브라운 | |
<rowcolor=#cd9f51> 1985 | 1986 | 1987 | ||
조지프 골드스타인 | 스탠리 코언 | 리타 레비몬탈치니 | 토네가와 스스무 | |
<rowcolor=#cd9f51> 1988 | 1989 | |||
제임스 화이트 블랙 | 거트루드 B. 앨리언 | 조지 히칭스 | 존 마이클 비숍 | |
<rowcolor=#cd9f51> 1989 | 1990 | 1991 | ||
해럴드 엘리엇 바머스 | 조지프 에드워드 머리 | 에드워드 도널 토머스 | 에르빈 네어 | |
<rowcolor=#cd9f51> 1991 | 1992 | 1993 | ||
베르트 자크만 | 에드먼드 헨리 피셔 | 에드윈 크레브스 | 리처드 로버츠 | |
<rowcolor=#cd9f51> 1993 | 1994 | 1995 | ||
필립 앨런 샤프 | 앨프리드 길먼 | 마틴 로드벨 | 에드워드 루이스 | |
<rowcolor=#cd9f51> 1995 | 1996 | |||
에릭 위샤우스 |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 | 피터 C. 도허티 | 롤프 칭커나겔 | |
<rowcolor=#cd9f51> 1997 | 1998 | |||
스탠리 프루지너 | 로버트 퍼치곳 | 루이스 이그내로 | 페리드 머래드 | |
<rowcolor=#cd9f51> 1999 | 2000 | |||
귄터 블로벨 | 폴 그린가드 | 아비드 칼손 | 에릭 캔들 | |
}}}}}}}}}
- [ 21세기 ]
- ##
||<rowbgcolor=#663334><rowcolor=#cd9f51><-3> 2001 || 2002 ||
}}}}}} ||
5.1. 생물학 연구와 노벨화학상
자세한 내용은 노벨화학상/수상자 문서 참고하십시오.현대 생물학 연구는 물리학 및 화학적 연구방법론을 적극 도입하면서 발전해왔으며, 물리학자나 화학자 역시 생물학 연구에 힘을 쏟은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생물학적 연구 주제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5] 아래는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생물학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연구로 수상한 경우이다.
생물학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화학상 수상자 | |||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수상 연도 | 수상자 | 업적 |
1901년 | 헤르만 에밀 피셔( 독일) | 당과 퓨린 합성 연구 | |
1907년 | 에두아르트 부흐너( 독일) | 비세포적 발효 연구 | |
1915년 | 리하르트 빌슈테터( 독일) | 식물 색소 연구 | |
1923년 | 프레더릭 벤팅( 캐나다) | 인슐린 연구 | |
1927년 | 하인리히 오토 빌란트( 독일) | 담즙산 및 관련물질 조성 연구 | |
1928년 | 아돌프 오토 라인홀트 빈다우스( 독일) | 스테롤의 구조와 비타민의 연관성 연구 | |
1929년 |
아서 하든(
영국) 한스 폰 오일러켈핀( 독일) |
당의 발효와 발효효소 연구 | |
1930년 | 한스 피셔( 독일) | 헤민과 엽록소 구조 연구 | |
1937년 |
월터 호어스(
영국) 파울 카러(독일) |
탄수화물과 비타민 연구 | |
1938년 | 리하르트 쿤( 독일) | 카르티노이드와 비타민 연구 | |
1939년 | 아돌프 부테난트( 독일) | 성 호르몬 연구 | |
1946년 | 제임스 섬너( 미국) | 효소의 결정화 발견 | |
존 노스럽(
미국) 웬들 스탠리( 미국) |
순수 형태의 효소 및 바이러스 제조 | ||
1947년 | 로버트 로빈슨( 영국) | 알칼로이드 연구 | |
1954년 | 빈센트 뒤 비뇨( 미국) | 폴리펩타이드 호르몬 합성 | |
1957년 | 알렉산더 토드( 영국) | 뉴클레오티드 및 그 조효소 연구 | |
1958년 | 프레더릭 생어( 영국)[6] | 인슐린 구조 연구 | |
1961년 | 멜빈 캘빈( 미국) | 식물의 탄소동화작용 연구 | |
1962년 |
막스 퍼루츠(
영국) 존 켄드루(영국) |
구형 단백질 구조 연구 | |
1970년 | 루이 를루아르( 아르헨티나) | 당뉴클레오티드 발견,탄수화물의 생합성에서 역할 규명 | |
1972년 | 크리스천 앤핀슨( 미국) | 아미노산 서열과 생체활성형태 연구 | |
스탠퍼드 무어(
미국) 윌리엄 하워드 스테인( 미국) |
리보뉴클라아제의 구조와 촉매활성 연구 | ||
1975년 | 존 콘포스( 호주) | 효소-촉매반응의 입체화학 연구 | |
1978년 | 피터 미첼( 영국) | 생물학적 에너지이동과정의 공식화 | |
1979년 |
앨런 매클라우드 코맥(
미국) 고드프리 뉴볼드 하운스필드( 영국) |
컴퓨터단층촬영 연구 및 발명 | |
1980년 | 폴 버그( 미국) | DNA 혼성화와 핵산의 기초 연구 | |
윌터 길버트(
미국) 프레더릭 생어( 영국) |
핵산 염기서열 결정에 공헌 | ||
1988년 |
요한 다이젠호퍼(
서독) 로베르트 후버( 서독) 하르트무트 미헬( 서독) |
광합성 반응센터의 삼차구조 결정 | |
1989년 |
시드니 올트먼(
캐나다) 토머스 체크( 미국) |
RNA의 촉매성질 발견 | |
1993년 |
캐리 멀리스(
미국) 마이클 스미스( 캐나다) |
DNA기반 화학방법론 개발 | |
1997년 |
폴 보이어(
미국) 존 E. 워커( 영국) |
ATP 합성의 효소기작 설명 | |
옌스 스코우( 덴마크) | 소듐- 포타슘 ATPase 발견 |
{{{#!folding [ 21세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수상 연도 | 수상자 | 업적 |
2002년 |
쿠르트 뷔트리히(
스위스) 존 펜( 미국) 다나카 고이치( 일본) |
생체고분자 구조의 분석 및 동정법 개발 | |
2003년 |
피터 에이그리(
미국) 로더릭 매키넌( 미국) |
세포막상의 이온 채널 발견 | |
2004년 |
어윈 로즈(
미국) 아브람 헤르슈코( 이스라엘) 아론 치카노베르( 이스라엘) |
유비퀴틴에 의한 단백질 분해 발견 | |
2006년 | 로저 콘버그( 미국)[7] | 유전자 전사과정 연구 | |
2007년 |
마리오 카페키(
미국) 올리버 스미시스( 미국) 마틴 에번스( 영국) |
녹아웃 마우스 개발 | |
2008년 |
마틴 챌피(
미국) 로저 챈( 미국) 시모무라 오사무( 일본) |
녹색형광단백질 발견 및 응용기술 개발 | |
2009년 |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인도) 토머스 스타이츠( 미국) 아다 요나스( 이스라엘) |
리보솜의 구조와 기능 연구 | |
2012년 |
브라이언 K. 코빌카(미국) 로버트 J. 레프코위츠(미국) |
G단백질 연결 수용체(GPCR) 연구 | |
2013년 |
마이클 레빗(미국, 영국, 이스라엘) 마틴 카플러스 아리에 와르셸 |
컴퓨터를 이용한 생화학 반응의 고전&양자역학적 계산 | |
2020년 |
제니퍼 다우드나(미국) 에마뉘엘 샤르팡티에(프랑스) |
CRISPR를 이용한 3세대 유전자 편집 기술의 고안 | |
2024년 |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 계산적 단백질 설계 | |
데미스 허사비스(
영국) 존 M. 점퍼( 미국) |
AlphaFold를 통한 단백질 구조 예측 |
[1]
한화 기준 약 13억 4000만 원.
[2]
다만, 의학에서는
식물생리학 등은 관심대상이 아니고, 주로
인체생리학만을 다룬다.
[참조1]
이상의 내용은 <노벨상 그 100년의 역사>, 아그네타 발린 레비노비츠 著, p164 이하에서 참조함.
[4]
다만 엄밀히 얘기하면 위에 나와있는 동물행동학도 생태학의 한 부분이다.
[5]
물리학상의 경우에는 없지만,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크릭과 윌킨스도 기본적으로는 물리학자이며,
에르빈 슈뢰딩거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많은 물리학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1979년 수상작인
CT 촬영 기술, 2003년 수상작인
MRI 기술 역시 물리학적인 기반이 없으면 안되는 연구들이다.
[6]
1980년 또 받는 생화학 연구의 먼치킨이다.
[7]
1959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아서 콘버그의 아들이다.
건국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