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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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Rigoberta Menchú Tum 리고베르타 멘추 |
출생 |
1959년
1월 9일([age(1959-01-09)]세) 과테말라 키체주 우스판탄 치멜 |
국적 | 과테말라 |
직업 | 인권운동가, 정치인, 족장 |
정당 | WINAQ[1] |
주요저서 | <나, 리고베르타 멘추> |
수상이력 | 1992년 노벨 평화상, 2008년 Glamour Award for The Peacemaker, 아즈텍 독수리 훈장 |
1. 개요
과테말라의 인권운동가, 정치인, 족장으로 마야인의 후손인 마야-키첼 족 태생의 인디오다. 멘추는 유엔 친선대사로도 활동하였고, 또 과테말라 전역에서 인디오들의 인권을 지키는 인권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자신의 자서전인<나, 리고베르타 멘추>로 인디오들의 아픔을 알리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이 공로로 1992년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2. 생애
그녀는 과테말라 키체에서 인디오의 딸로 태어났다. 그 당시 과테말라에서 백인은 사실상 지배계급의 지위를 누리고, 인디오들은 그저 농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야했다. 멘추도 당연히 거기에 포함되어 어릴때부터 농장에서 옥수수를 따며 차별을 몸소 겪어야했다. 이후 인디오들의 아픔을 깨달은 멘추는 이후 16살의 어린나이에 한 부족의 족장이 되어 백인들의 공격에 인디오 부족들을 지켰고 1979년부터 과테말라에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인디오들의 인권을 앞장서는데 큰 공로를 세웠고 이후 자서전 <나, 리고베르타 멘추>로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한 인디오 인권운동가가 되었다. 그리고 1992년 노벨평화상을 비롯해 다양한 수상을 하며 30대의 젊은나이에 세계적인 인권운동가가 되었고 1993년엔 멘추재단을 세워 인디오들을 돕고 있다.3. 정계활동
그녀는 유엔 친선대사였고 2007년 2월엔 WINAQ란 정당으로 정치인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이후 과테말라의 진보정당과 연합해 과테말라 대통령 후보로도 올랐으나 아쉽게도 낙선하여 대통령이 되는데는 실패했다.4. 기타
- 마야어에 속해 있는 마야-키체어의 화자로 전세계에서 이말을 쓰는 사람들 중에 제일 유명하다.[2]
- 원주민 뿐만 아니라 여성인권운동도 하고 있다.
- 농민연합위원회[3]가입자다.
- 과테말라 내전 중인 1980년 스페인 대사관 화재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었다.